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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이 공원을 경영하는 시대, “공원을 부탁해” 공원경영자임포럼 심포지엄, ‘Who makes parks? :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찾습니다’
    철거 예정이었던 폐선부지를 공원으로 만든 ‘하이라인 친구들Friends of the Highline’, 시민의 힘으로 로테르담에 공중 고가 도로를 세운 ‘아이 메이크 로테르담I make Rotterdam’ 등 시민이 경영하는 공원과 공공 공간의 사례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그린트러스트를 비롯해 공원을 활동 무대로 삼고 공원 경영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모임과 단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와 비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9월 10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공원경영자임포럼심포지엄 ‘Who makes parks?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찾습니다’가 열렸다. ‘공원경영자임포럼’은 공원 경영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스스로 맡은 사람들이 모여 공원과 도시를 이야기하며 현장에서의 경험을 연결 짓는 오프라인 포럼이다. 이강오 어린이대공원 민간 원장, 이호진 방울단 대표, 이민옥 서울그린트러스트 서울숲사랑모임 국장, 조경민 고가산책단 대표, 오성화 서울프린지 네트워크 대표 등 공원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펼치고 있는 다섯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포지엄에서 소개됐다. “아이들이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시간은 하루에 평균 7시간이나 되지만 야외에서 여가를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7분에 불과하다.” 흙과 자연이 좋아 ‘흙형’이라는 닉네임으로 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강오 원장의 말에는 빈약한 어린이 놀이 문화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어.대.공.(어린이대공원)의 파트너를 찾습니다’란 제목으로 심포지엄의 첫 발표를 맡은 이강오 원장은 그 원인을 매력적인 야외 놀이 공간의 부족에서 찾았다. 그는 외주 업체에 일을 맡기는 오래된 일 방식 때문에 공원 경영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린이대공원이 아이들이 야외에서 노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이 꿈을 위해 어린이대공원에 다양하고 매력적인 야외 놀이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고 실행할 파트너를 찾고 있다. 공원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와 재미있는 상상을 공유해준다면 주어진 예산 내에서 지원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방울단은 선유도 전신마취 음악 행사, 서울숲 DIY 트리 페스티벌, 서울역고가 꽃길 거리 등 공원과 공공 공간을 무대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방울단의 이호진 대표는 “공간에 대한 시대적 필요에 반응하고 앞으로의 수요에 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며 방울단을 꾸려나가게 된 계기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공간에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이 공간은 용도는 뭐지’, ‘누가 만든 거지’, ‘누가 이용하지’ 등 공간과 사람이 연결되는 맥락을 먼저 찾는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라며 공원은 이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생길 수요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에게 숲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공원을 찾았다가 서울그린트러스트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이민옥 서울숲사랑모임 국장은 ‘서울숲에서 제(멋)대로 들이댈 사람 찾습니다’라는 주제로 세 번째 발표를 맡았다. 그는 공원이 처음 개장한 2005년에만 해도 공원 문화가 성숙하지 않아 “공원에서 ~하지 마라”를 강조하는 일명 ‘하지 마라 캠페인’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자유로운 활동을 지원하는 ‘해라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공원에서 다양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펼침으로써 그 영향이 지역 사회에 확대되기를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숲의 프로그램이 단순히 공원 내에서의 활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그렇기 때문에 서울숲에서 ‘제(멋)대로’ 들이댈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반장’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조경민 대표는 “여러분과 서울역 고가의 분양 상의를 하러 나왔다”며 “낮 동안에는 레스토랑, 밤에는 클럽으로 변신하는 공간이 서울역 고가에 생긴다고 생각해보라”고 서울역고가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이야기했다. 그는 보행 친화적인 도시 계획이 활기찬 거리, 생명력 있는 도시를 만든다는 다큐멘터리 ‘얀 겔의 위대한 실험’의 메시지가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포석유비축기지를 생각하면 심장이 뛴다.” 마포구주민으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사무실을 두고 일하고 있는 오성화 대표는 시민이 만들어 갈 마포석유비축기지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는 단순히 낭만적인 생각이나 공상으로는 시민이 경영하는 공원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수혜 받는 시민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복잡하고 지난한 합의 과정을 거친다는 각오로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원의 잠재된 사회·문화·경제·생태적 가치를 발굴하고 새로운 미래를 찾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지난한 합의 과정을 기꺼이 맡아줄 공원 경영의 자임자가 필요하다. 이날 포럼에서 다섯 명의 활동가가 발표를 마친 후에도 늦은 시각까지 청년들의 질문과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Who makes parks? :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을 찾습니다’란 주제로 시작한 심포지엄의 끝에 시민이 공원을 경영하는 시대를 이끌어갈 예비 활동가 들의 모습이 보였다.
    • 조한결 / 2015년10월 / 330
  • 힘의 각축장, 남산의 역사 ‘남산의 힘’, 2015.8.7~11.1
    우리에게 남산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데이트코스로 한번쯤 가봤음직한 남산타워와 케이블카의 기억으로, 누군가에게는 한 시절 안기부가 자리한 어두운 공간으로 기억되기도 할 것이다. 한편 2009년부터 서울시는 한양 도성 복원의 일환에서 남산 회현자락 정비를 추진하면서 문화재와 공원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광복 70주년 특별 기획전으로 2015년 8월 7일부터 11월 1일까지 ‘남산의 힘’ 전을 1층 기획 전시실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와 근현대 시기를 거치면서 권력 등의 힘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남산의 변화에 대하여 250여 점의 관련 역사 자료들을 망라하여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시는 ‘목멱, 한양의 안산’, ‘식민통치의 현장’, ‘국민교육장 남산’, ‘돌아온 남산’ 이렇게 4부로 구성되었다. 겸재 정선, 김홍도의 그림으로 만나는 남산 1부 ‘목멱, 한양의 안산’에서는 남산이 한양의 내사산 중 하나로 한양의 수호 산이자 친근한 앞산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 전시된다. 남산은 국가 제사의 공인된 공간이자 민간신앙의 성지로서 조선 초기부터 국사당과 와룡묘, 남관왕묘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관리들의 계회 등 풍류의 장소로도 각광 받았다. 사도세자가 쓴 ‘남관왕묘비명’을 비롯하여, 겸재 정선의 ‘목멱산도’(백납병풍), 김홍도의 ‘남소영도’, 김윤겸의 ‘천우각 금오계첩’ 등 쟁쟁한 조선 화가들의 필치로 남겨져 있는 남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한일합병조약 체결의 현장이자 황국신민의 언덕 2부 ‘식민통치의 현장’에서는 일제의 강점으로 남산이 겪게 되는 훼손의 역사가 펼쳐진다. 1880년대부터 일제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 주둔지 ‘왜성대(남산 북쪽 일대)’ 지역에 일본공사관, 통감부, 통감관저 등을 설치하였고, 1910년 8월 22일에는 데라우치 통감과 이완용이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면서 남산은 국권상실의 현장이 되고 만다. 일제에 의해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지역은 전망이 좋은 남산 회현자락이었다. 일제는 이곳에 여의도의 두배에 가까운 43만m2의 대지를 조성하여 조선신궁을 세우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 밖에도 남산에는 일본인 거류지였던 왜성대에 경성신사, 경성호국신사, 노기신사 등이 있었다. 조선의 정신을 훼손하려는 시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충신을 기려 만든 장충단을 장충단공원으로 개조하고 그 안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당 박문사를 짓기도 했다. 한편 남산을 일본식 대공원으로 개조하기 위해 우리 전통 소나무 대신 벚나무와 아까시나무를 계획적으로 이식시켰다. 식민통치의 현장 코너에서는 ‘한국합병조약 및 양국황제조칙의 공포에 관한 각서’(1910), ‘경성부남산공원설계안’(1917), ‘조선신궁전경도’, ‘노기신사 수조’ 등 일제의 남산 개조를 통한 황국신민화 정책의 실체를 보여 주는 자료들이 대거 전시되었다. 특히 ‘노기신사 수조’는 남산 내에서 완형을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식민 유산으로 노기신사 터에 자리 잡은 남산원 측의 배려로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되었다. 한국현대사의 압축 공간 3부 ‘국민교육장 남산’에서는 1945년 8.15 광복 이후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서 남산을 이야기한다. 해방 이후, 다시 남산은 냉전으로 분단된 나라의 상징 공간이 되어 좌익 집회가 주로 열리는 이념의 무대가 되기도 했고, 조선신궁 자리에는 건국 대통령의 초대형 동상이 세워지고, 국회의사당 부지 조성공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거대 도시가 된 서울 속의 남산은 콘크리트 바다 가운데 푸른 섬이 되어갔다. 또한 남산은 국민교육장이 되어 반공을 주창하는 자유센터가 장충동에 들어서고, ‘애국애족’의 동상들이 산 중턱에 무수하게 세워졌다. 또 산 아래에는 국가와 정권 수호의 방패 역할을 했던 중앙정보부와 수도방위사령부가 자리를 잡았다. 특히 41개동 건물의 무소불위 ‘중정’은 ‘남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정부의 경제발전 드라이브 속에서 남산은 공원용지 해제를 통해 급속히 개발되었다. 거대한 외인아파트와 각급 호텔이 다수 들어섰고 도로와 터널이 남산을 관통했다. 야외음악당, 도서관, 국립극장 등 시민위락 시설과 함께 남산 케이블카와 전파송신탑(서울타워)도 이때 세워지게 된다. 지나친 개발 정책은 향후 남산에 대한 보호 의식을 점차 싹트게 하였다. 권위주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4부는 1990년대 탈권위주의 시대에 들면서 남산이 ‘자연’, ‘사람’, ‘역사’의 공간으로, ‘우리들의 남산’이 되는 과정과 함께 남산의 아름다운 모습과 남산 관련 최근의 주요 이슈들을 소개했다.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은 권위주의 청산과 자연환경문제가 제기되면서 시작되었다. 안기부와 수도방위사령부가 남산에서 떠나갔고, 경관을 훼손했던 외인아파트가 폭파·철거되었다. 최근에는 자연환경 복원과 시민 휴식 공간 조성을 위한 시설 철거 사업이 오히려 역사의 기억을 지운다는 문제제기가 있기도 하다. 안기부 터를 인권기념관 등 평화의 공원으로 조성하자는 목소리 같은 남산을 되살리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오늘도 활발하다. 전시 마지막 부분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남산을 시민들의 눈을 통해 보는 코너로 마련되었다. ‘추억 속의 남산’이라는 제목으로 시민 공모를 통해 모은 사진 중 30점을 전시했다. 남산의 다양한 역사와 기억은, 남산이 ‘산’이라는 자연에만 그치지 않고 문화,그리고 사회 구성원과 소통하며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 김정은 / 2015년10월 / 330
  • 지역과 외지인, 이주와 정주의 수상한 혼탕 ‘수상한 목욕탕’, 2015.8.1~10.11
    1930년대 디자인을 그대로 복원한 가로등과 곳곳의 오래된 집들을 지나며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이곳, 일본식 가옥과 이성당 빵으로 유명한 군산 영화동에 버려진 목욕탕을 개조한 미술관이 들어섰다. 오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원도심, 그곳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들, 그리고 새로이 이사해 둥지를 튼 미술관이 쭈뼛하게 만나게 되었다.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 첫 번째 기획전 ‘수상한 목욕탕’은 지역에 문을 두드리고자 이당미술관(관장 정태균)이 마련한 전시다. 이에 레지던시 참여 작가 6인과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초대 작가 5인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 그 첫 번째 걸음 군산은 여러 시대의 물결이 퇴적된 곳으로 다양한 층위의 맥락을 지닌다. 고려 및 조선 시대에는 세곡을 운반하는 항구이자 수군의 요지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제 수탈의 주요 현장이 되었다. 군산을 중심 무대로 하는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를 통해 이 시기 사회상을 엿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전쟁 이후에는 군사적 요충지인 이곳에 미군이 주둔하여 미군을 위한 위락 시설인 ‘아메리카 타운’이 조성되는 등 지역사 자체가 전쟁과 점령으로 점철된 한국사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느 개항장이나 비슷한 모습을 가지기도 하겠지만 영화동을 포함한 군산 원도심 지역은 근대의 흔적을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지역사 발굴과 관광 코스 조성을 포함하는 지역 개발, 또는 도시재생의 정책적 요구와 맞물려 ‘시간여행거리’로 지정되기도 하였다.이렇게 드러나는 지역사는 상대적 미시사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여전히 관광 코스와 더불어 팻말에 새겨진 역사는 한 곳에서 온전히 긴 생을 살아낸 몇몇 토박이 어르신들 외에 대다수 방문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지역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의 층위를 다각도로 반영하지도 못하게 마련이다. 아마도 그 간극을 비출 수 있는 것이 다양한 시선과 표현을 존중하는 문화와 예술인지도 모른다. 이에 이당미술관은 영화동 일대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 넣고자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를 연례 기획으로 하여 지역을 경험하는 다양한 시선과 걸음을 해마다 새로이 조명하고자 한다. 그 첫걸음으로 레지던시 작가와 지역 작가들이 함께 하는 전시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첫 만남은 언제나 쭈뼛하기 마련이다. 미술관 역시 이곳에 올해 막 둥지를 튼 시점이었고 짧게는 고작 한달, 길게는 세 달 동안 머문 레지던시 작가들도 지역민과의 친화성 여부를 떠나 외지인 신분으로 잠시 머무는 방문자의 입장일 수밖에는 없었다. 이렇듯 전시 ‘수상한 목욕탕’은 지역과 외지인, 이주와 정주의 틈새 사이에서 만들어진 수상한 만남인 것이다. 수상한 목욕탕 참여 작가 강제욱이 담은 군산의 기록에서는 지금처럼 개조되기 이전에 폐허와도 같은 영화장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2008년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비둘기들의 휴식처가 되기 전까지 동네 목욕탕 ‘영화장’은 40년 넘게 영화동 주민들의 몸과 마음을 씻겨주었다. 그 목욕탕 위의 2, 3층 객실에서는 각지로부터 온 손님들 역시 여독을 풀었음직하다. 토박이 어르신들, 각기 다른 이유로 기류하는 사람들, 지인을 찾아온 방문객 또는 새로움을 찾는 여행자 등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만남이 겹겹이 쌓인 곳이 곧 지역이자 장소, ‘곳’이라면, ‘영화장’은 이렇게 무수한 개개인의 역사와 이야기가 교차하고 만나는 곳이었다. 전시 기간 중 연계 상영되는 영상창작단 큐오브이의 ‘영화동 쇼트다큐멘터리’는 이렇게 지자체의 지역사 스토리텔링에 채 담기지 못한 지역 주민 개개인의 생생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주민의 구술사는 곳곳에 전시된 이곳 영화장의 원 설계도와 함께 작가나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이 전시를 관람하며 보다 다층적인 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 재료가 되어 전시장에 투영되었다. 이 짧은 다큐멘터리가 영화동의 생생한 삶과 역사를 풀어냈다면 참여 작가들의 작업은 추상적인 풍경에서부터 군산을 산보하며 얻은 풍경, 사물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자연을 담는 작업까지, 영화동을 방문한 가지각색의 시선과 이야기를 드러낸다. 한국화가 정태균은 모필을 사용해 소박한 필치로 영화동의 정겨운 모습을 그려냈고, 정경화는 모필 대신 죽 필을 직접 만들어 금박이 있는 종이 본연의 성질을 매개로 ‘별이 빛나는 밤’을 화폭에 담았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밤의 빛나는 별들은 한없이 그림 앞에 멈추어 있게 한다. 실재와 가상 사이에서 우리의 시각과 인식에 의문을 제기해왔던 박종호 작가는 영화 동어느 식당 안에 걸려있던 액자 속의 군산 풍경을 캔버스 안으로 들이고, 회화작가 주랑은 일련의 이미지, 여행 루트와도 같은 그림을 통해 낡음과 새것 사이 영화동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권혁상 작가의 그림에는 고향을 버리지 않고 모정이 뛰어난 참새의 모습에 자신의 삶을 투영한 그의 따뜻한 마음과 애정이 담겨 있다. 조각을 전공한 강제욱과 진나래는 미술관 안팎에서 찾을 수 있는 사물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였다. 다큐멘터리 사진과 설치를 중심으로 사회 참여적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강제욱 작가는 최근작 ‘사물들의 우주Thinguniverse’를 통해 사물을 소유자의 모습을 투영하는 거울로 드러낸다. 주변의 사물이 형성하는 관계와 대화가 그의 손을 통해 미술관의 전면 유리에 드로잉되었다. 진나래는 미술관에서 수거한 의자들을 배열하여 사회적 관계의 기표로서 의자를 다루었는데, 이는 그가 ‘사회 조각social sculpture’이라고 부르는 작업 형식의 하나다.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밀도가 높았다. 유기종 작가는 사진과 설치 작업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삶의 여정을 기록하고자하였고, 이주원 작가는 어딘가를 걷는 동작을 낮은 시점으로 화면에 담아 작가가 바라본 주관적인 사회 정체성을 드러낸다. 회화와 설치를 주요 매체로 하는 고나영은 영화동의 특정 순간을 피라미드 안에 담았으며 고보연 작가는 버려지는 폐지와 자연물을 미술 작품의 재료로 하여 폐지 등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의 작업은 대지가 되고 그 대지 위에 새싹을 피우는 작품은 많은 삶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인간의 형상을 담았다. 길이 화하는 동네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업들 외에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 오프닝에 마련된 영화동 맛집 뷔페 잔칫상, ‘영화장 셀렉션’이다. ‘길이 화하는 동네’라는 뜻을 가진 영화동에는 이렇게 퍼주고도 남는 것이 있는지 걱정하게 될 정도로 인심 후한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들의 대표 메뉴를 모은 지역 맛집 뷔페가 참여 작가와 지역 상인들의 따뜻한 성원과 노력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레지던시 작가들과 미술관, 그리고 지역의 사람들이 첫인사를 나누는 데에 본 전시의 목적이 있다고 볼 때 자연스레 지역 주민들과 미술관을 서로 소개하고 이을 수 있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했다. 일종의 소셜, 또는 네트워크 다이닝이 되었던 셈이다. 첫걸음인지라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와 같은 주민들의 인심과 작가들의 도움 덕에 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지역’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수많은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행정 구역상 나누어지는 땅일 수도 있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일 수도, 또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어느 불확실한 경계를 가지는 지점일 수도 있다. ‘수상한 목욕탕’은 지역을 곧 어느 지점과 그 지점 언저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보고 이제 막 선착장에 내려 지역에 둥지를 튼 이당미술관, 유목민과도 같은 레지던시 작가들과 군산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작가들, 그리고 영화동 주민들의 아직은 서먹한 만남을 주선하여 그 수상한 혼탕 속에서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의 후속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개어귀에서처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물이 만나는 곳에는 새로운 흐름이 일어난다. 군산 영화동에 가득한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앞으로 보다 탄탄한 준비와 함께 엮여진다면 이는 해를 거듭하며 더욱 값지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및 미술관과 더불어 예술과 문화의 주체인 작가들 역시 상생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군산의 지역민, 그리고 군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특성이 만나 영화동에 어떤 새로운 흐름이 일어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문화 예술계 언저리에서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20대 이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서투른 종합 곡예를 해오고 있으나 결론적으로 반드시 뜻대로만 구르지는 못했다. 작업에 있어서는 주로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주체와 객체, 존재와 (비)존재, 이해와 오해 사이를 흐리는 일에 관심을 두어왔으며 2012년부터는 아트콜렉티브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당미술관의 레지던시 작가로 ‘수상한 목욕탕’의 기획 협력자로도 참여했다. www.jinnarae.com, [email protected]
    • 진나래 / 2015년10월 /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