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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강만생 사려니숲길위원회 위원장 모두를 위한 숲길
    제주는 곧 한라산이다. 우선 느낄 수 있는 것은 도와 시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제주에서의 삶의 영역은 어디에 살던지 간에 섬 전체에 걸쳐 있다. 그러한 사실은 모종린 교수의 지적처럼 제주를 우리나라의 유일한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만든다. 일과 휴식이 지근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이곳에서, 경관과 자연은 생활의 일부이자 제주인의 굳건한 토대,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 결과 제주도에는 개발 자본뿐만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창조 계층이 몰려들고 있다. 다수의 연예인도 그중 일부다. 욕구의 변화는 지금까지의 소극적 행복 추구를 거부한다. 육지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삶에 대한 적극적 개척이 이루어 낸 제주 문화는 대한민국의 진보적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으며,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도시적 이노베이션을 제시한다. 한편으로는 급격한 도시화에 대한 우려도 점증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도로 공사, 신축 건물,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풍경은 멀미를 일으킬 정도다. 빠르게 소비하고 떠나버리는 제주에 대한 안타까움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의 물결 속에서 천천히 음미하는 제주 본래의 모습, 가려져 있던 한라산 문화를 찾으려는 노력 또한 함께 진행되어 왔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0호(2017년 6월호) 수록본 일부
    • 최이규[email protected] /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 2017년06월 / 350
  • [명사들의 정원 생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기보다 정원사이기를 바란 실천적 이상주의자
    미국 조경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국가 이상과 민주주의의 이념적 기초를 다진 정치가로 평가된다. 건국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그는 정치뿐만 아니라 예술, 과학, 교육, 원예, 건축, 조경 등 실로 광범위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화려한 정치가의 길보다는 농부 혹은 정원사로서의 삶을 더 선호한 듯하다. 부친과 장인으로부터 광대한 농장을 물려받은 그는 평소 신념이기도 한 ‘자영농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 실현을 꿈꾸며 농부이자 정원사로 살기를 바랐다. 스스로를 조경가라고 한 적은 없지만 제퍼슨은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란 용어가 생기기 전부터 조경가로 활동한 이로 평가된다. 당시 신생국 미국에서는 대농장 등에서 이탈리아나 프랑스식 기하학적 정원이 유행하고 있었을 뿐 조경에 대한 별다른 인식이나 시도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전적 미와 낭만주의 전원 이상에 매료된 제퍼슨이 특별히 심취했던 것은 팔라디오식 건축과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이었다. 제퍼슨의 자연관과 정원관 자연에 대한 제퍼슨의 생각은 크게 기독교, 정치 철학, 과학이라는 세 가지 다른 출발 지점을 갖는다. 자연은 인간의 이성적 관찰로 가치를 탐구하고 지적으로 체계화하는 대상으로서 인간 사회와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합목적적 자원이라는 것이 제퍼슨을 비롯한 당시 엘리트들의 기독교적 자연관이었다. ...(중략)...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있다. 연구소와 설계사무소에서 기획부터 설계, 감리에 이르는 실무를두루 익힌 후 지금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93 대전세계엑스포 조경계획 및 설계, 인사동길 재설계, 용산국립중앙박물관 조경설계, 신라호텔 전정 설계 및 감리, 선유도공원 계획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환경과조경350호(2017년 6월호)수록본 일부
    • 성종상[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 2017년06월 / 350
  • [이미지 스케이프] 하늘을 걷다
    오늘 하늘 보셨나요?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잠깐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것도 못하고 삽니다. 늘 우리 위에 있지만 평소에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게 하늘인가 봅니다. 그나마 조경을 전공한다는 핑계로 공식적으로 공원에서 가끔 하늘을 보는 호사를 누립니다. 주변의 다른 전공 교수님들이 꽤 부러워하십니다. 이번 사진은 ‘북서울꿈의숲’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드림랜드’라는 놀이동산이 대형 공원으로 탈바꿈한 곳입니다. 설계공모 때 명칭은 아마 강북대형공원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서울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공원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곳입니다. 개장 초기엔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전망대에는 이병헌과 김태희 브로마이드가 있습니다. 이젠 뭐 둘 다 유부남, 유부녀. 이 공원에는 멋진 곳이 많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글래스 파빌리온 앞에 있는 창포원과 그 주변 공간입니다. 선큰sunken된 창포원에서 잔디 쪽을 보면 산책로 너머로 바로 하늘이 보입니다. 마치 산책로 뒤로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도시를 멀리 떠나와 있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거기 앉아 있으면 정말 기분이 좋아집니다.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0호(2017년 6월호) 수록본 일부
    • 주신하[email protected] /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 2017년06월 / 350
  • [시네마 스케이프] 카페 소사이어티 공원, 발명과 진화
    어릴 적만 해도 공원에 가는 일이 특별한 행사였다. 양장점에서 맞춘 옷을 입고 동생과 브라보콘을 들고 어린이대공원 분수 앞에서 찍은 초등학교 시절 사진이 여러 장 있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남산 팔각정 앞에서 찍은 사진과 덕수궁에서 찍은 가족사진도 남아 있다. 공원이 일상과 가까워진 것은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다. 집 근처 보라매공원에서 첫 아이가 걸음마 연습을 했다. 아이들이 자전거나 롤러 블레이드를 처음 배운 곳도 공원이다. 아이가 밥 먹기 싫어하면 밥에 김을 묻혀 만든 간단한 주먹밥을 싸들고 공원에 가곤 했다. 뛰어노는 아이 입에 밥을 물려주며 시간을 보내다 빈 도시락을 들고 돌아오는 길이 뿌듯했다. 아이들은 청소년이 되자 나와 공원에 가는 대신 친구들과 어울려 테마파크나 극장에 갔다. 나는 동네 친구와 가끔 운동하러 공원에 들르지만 요즘은 미세 먼지 때문에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가까운 들과 산으로 소풍 다니던 우리 경우와 달리 서구에서는 일찍이 공원이 기획되었다. 도시 공원은 19세기 영국에서 왕실 정원이 개방되며 처음 생겼지만, 공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표 선수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다. 한 번도 뉴욕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센트럴 파크 이미지에 친숙하다. 마천루를 배경으로 키 큰 나무와 드넓은 잔디밭, 뛰노는 아이들과 조깅하는 세련된 뉴요커들. 이 전형적인 공원 풍경이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거대한 센트럴 파크 전체가 조작된 자연이라는 점. 원래 자연이 풍성했던 곳을 공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황폐한 진흙땅에 동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바위를 옮기고 연못을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에 가고 싶은 공원, 한 도시를 상징하는 공원, 도시와 함께 진화하는 공원, 그런 공원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이번 글은 2017년 5월 27일 선유도공원에서 열린 ‘공원학개론’ 중 필자가 강의한 ‘공원은 발명되었다’의 내용을 짧게 줄인 셈이다. * 환경과조경 350호(2017년 6월호) 수록본 일부
  •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혼종적 내러티브의 집합체
    어린 시절 가지각색의 와펜이 촘촘히 박힌 친구의 걸 스카우트 띠가 부러워, 수행 활동에 따라 학교에서 지급하는 와펜을 ‘반칙’으로 구하려 했던 적이 있다. 친구와 함께 수소문한 결과, 동네와 조금 거리가 있는 일명 ‘배다리’란 곳에 가면 수십 가지 종류의 걸 스카우트 와펜을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신이 나서 원정을 가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배다리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가려 했지만, 어른들은 한결같이 그저 이 근방이다, 심지어 같은 자리에서도 여가 배다리다, 저가 배다리다, 하는 것이었다. 결국 가게를 찾지 못하고 나중에 부모님 차를 타고 가서야 와펜을 구할 수 있었다. 부모 없이 동네를 떠나본 적이 별로 없던 시절 겪었던 혼란이었지만, 성인이 되어 지역 기반 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다시 배다리를 찾았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행정 구역 상에 존재하는 이름이 아니었기에 당시 프로젝트를 같이 하던 작가들과 함께 ‘배다리’가 어디인지 지역 주민에게 지도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주민들이 그린 배다리의 영역은 제각기 달랐다. 이로 인해 우리는 ‘지역’이란 무엇인지 각자가 생각하고 있던 정형적인 무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비단 배다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모네 가게가 있던 ‘석바위’ 역시, 정확히 석바위가 어디냐 하면 도통 명확한 경계를 그려낼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어떤 위치 감각은 있지만, 어디까지가 그 동네이고 그렇지 않은가는 결국 개개인의 기억과 인식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있어 석바위는 이모네 가게가 있던 곳 근방이지만, 누군가에게 석바위는 그곳이 아니라 그 근방 다른 곳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내가 자란 이 동네만이 아니라, 행정 구역보다는 마을이나 동네 이름이 더 친근했던 시절 전국 어느 곳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구’, ‘◯◯동’과 같은 행정 구역이 좌표의 영역이라면 ‘◯◯마을’이나 ‘◯◯동네’는 인식의 지도인 셈이다. 그리고 그 인식의 지도는 사람들 개개인과 그들 사이에 형성되는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정보이자 기억, 내러티브의 집합체인 것이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0호(2017년 6월호)수록본 일부
    • 진나래 [email protected] / ‘일시합의기업 ETC’, ‘잠복자들’ 공동대표 / 2017년06월 / 350
  • 미술관, 정원을 말하다 ‘정원사의 시간’ 전, 4월 1일~6월 25일, 블루메미술관
    우리는 고즈넉한 자연 풍경을 두고 느림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흐름 속에서도 식물은 정직한 속도로 묵묵히 자라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여유를 찾고 싶을 때 공원을 방문하고, 정원이나 작은 화분을 가꾸며 심신을 달래기도 한다. 왜 자연 속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될까? 이 같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간성에 주목한 전시가 블루메미술관Blume Museum of Contemporary Art(BMOCA)에서 개최됐다. 4월 1일부터 6월 25일까지 열리는 ‘정원사의 시간’ 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13년 4월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개관한 블루메미술관은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비영리 사립 미술관이다. 특히 소통의 과정을 중요시 여겨 느린 호흡으로 현대 미술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힘쓰고 있다. ‘정원사의 시간’ 전은 블루메미술관의 설립자인 백순실 관장의 바람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평소 정원 가꾸기를 즐기는 정원사이기도 한 그는 “식물에 의해 건물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며 정원의 가치에 눈뜨게” 됐고, 이번 전시를 통해 정원 가꾸는 일의 가치와 의미가 보다 널리 퍼져 나가기를 바랐다. 강운, 김원정, 김이박, 임택, 최성임 등 다섯 명의 작가는 회화, 드로잉, 설치 예술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정원에서 식물을 기르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50호(2017년 6월호)수록본 일부
  • 아크로리버파크, 고급 주거 단지 조경의 새 장을 열다 이순지ㆍ김영민, 대림산업
    한강변에 자리한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는 대림산업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아파트 브랜드의 첫 번째 단지다. 아크로리버파크는 수준 높은 아파트 조경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며 설계와 시공 모두에 각별한 공을 들인 고급 주거 브랜드다. 그 결과 입주민들의 호응뿐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난 상태. 대림산업에서 각각 설계와 시공을 담당했던 이순지 차장과 김영민 부장(현재 국립세종수목원 공사 부장), 두 파트너를 현장에서 만나 그 성공 비결을 들어 보았다. 설계대로 시공한다 이순지 차장은 남다른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로, ‘설계대로 시공한다’는 원칙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설계를 그대로 구현하기보다는 시공하기 편한 디테일로 바꾸는 경향이 있다. 또 놀이터나 수생ㆍ육생 비오톱과 같이 법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설들이 똑같은 디자인으로 귀결되고, 식재는 늘 심는 하자 적은 수목을 택하다보니 어딜 가든 비슷비슷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획일적인 아파트 조경을 벗어나기 위해 CA조경과 함께 철저하게 특화 설계를 하면서 그간 보아왔던 선진 사례 못지않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단다. 관행을 뛰어넘는 일은 의지만 있다고 되지 않는다. 김영민 부장은 설계사무소에 프레젠테이션을 요청해, 여러 협력사들이 시공 전에 설계의 개념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식재, 시설물 등 여러 파트의 소장들이 각자 나름의 생각이 있었겠지만, 설계 의도를 파악하는 시간을 가진 덕택에 정확한 시공을 할 수 있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50호(2017년 6월호)수록본 일부
  • 용산공원의 미래를 그리는 새로운 시도 박영석 플레이스온 대표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19일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전문가와 국민이 함께 용산공원의 청사진을 그리는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1.0(이하 라운드테이블)’의 첫 번째 행사를 개최했다. 5월부터 11월까지 총 여덟 차례의 공개 세미나를 개최할 뿐만 아니라 용산공원 프렌즈 그룹으로 성장할 청년 프로그래머도 양성할 계획이다. 그간에도 용산공원에 관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공청회, 세미나, 포럼, 설문 조사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그렇다 할 성과는 얻지 못했다. 과연 라운드테이블은 그동안의 시도와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라운드테이블 진행을 맡고 있는 박영석 대표(플레이스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두터운 논의를 얇고 밀도 있게 올해 초, 독일에 머물고 있던 박영석 대표는 국토부 관계자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국토부가 용산공원 기본설계와 조성 과정의 다양한 이슈를 전문가와 함께 토론하고 국민에게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관계자는 박 대표가 ‘플레이스온Place_On’과 도시 공간 연구 집단 ‘빅바이스몰Big by small’을 통해 수행한 노들꿈섬 공모, 마을만들기 사업 등에서 쌓은 노하우가 좀 더 유연한 방식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라운드테이블의 실무를 부탁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50호(2017년 6월호)수록본 일부
  • [편집자의 서재] 희랍어 시간
    수영을 처음 배우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기대와는 달리 몸이 자꾸만 가라앉았다. 키 판을 쥔 손의 힘을 빼라는, 그러면 몸이 저절로 떠오를 거라는 선생님의 조언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물을 잔뜩 먹었고 결국 돌아오는 셔틀버스 안에서 울음이 터졌다. 같은 버스에 탄 처음 보는 아이들이 나를 위로해줬다. 고맙다기보다는 창피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아마 그때 내게 필요했던 건 울지 말라는 말이 아닌 혼자만의 시간, 또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종종 여백이 주는 따뜻함에 대해 생각한다. 차량이나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이 적어 이어폰 없이 걸어도 좋았던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이나, 말없이 긴 시간을 함께 걸어도 어색하지 않았던 친구와의 하교 길, 전철이 한강을 건널 때면 핸드폰이나 신문에서 시선을 옮겨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 채우지 않고 비워두는 공간이나 시간은 내게 작은 위로로 다가온다.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도 그랬다. “어두운 곳에서 글을 쓸 때 윗문장에 아랫문장을 겹쳐 쓰지 않으려고 가능한 넓게 간격”(각주1)을 둔 것 같은 문장들은 여백이 많은 시를 떠오르게 한다.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단단하지만 아름답게 정제된 문장을 읽다보면 절로 호흡이 느려진다. 시를 읽듯이 문장들을 곱씹다 보면 사람들이 북적이는 출근길 지옥철도 금방이었다. 『희랍어 시간』은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다. 눈과 입. 세상을 받아들이는 감각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잃은 (혹은 잃을 예정인) 둘은 서서히 세상에서 고립되어 간다. 아니, 스스로를 고립시킨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10대 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독일에서 이민 생활을 했다. 은연중에 행해지는 인종 차별은 그를 고독에 빠뜨렸고, 그러던 중 찾아온 첫사랑은 그의 메마른 삶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어리석은 실수로 사랑은 끝나버리고 그는 한국에 홀로 돌아와 희랍어 강사로 일한다. 여자는 문자의 형태, 단어가 주는 느낌, 심지어 발음할 때의 입 모양까지, 언어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그녀는 학창 시절 이유 없이 실어증을 앓는다. 다행히도 낯선 언어인 이탈리아어를 접하며 기적처럼 실어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년 뒤, 어떤 전조도 없이 다시 실어증이 찾아온다. 이혼 후 하나뿐인 딸의 양육권을 박탈당한 그녀에게 말하는 법을 되찾는 일은, 딸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느다란 희망이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희랍어 강좌를 신청한다. 희랍어 수업은 남자와 여자가 유일하게 만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시선이 부딪치거나 둘 사이에 대화가 오가는 일은 없다. 다른 학생이 여자가 시를 썼다고 알리자, 궁금해하며 여자에게 다가서는 남자의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쏠린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여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고, 급히 따라 나간 남자는 사과한다. 소설이 중반부를 넘어가도록 닿지 않던 둘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서로 마주한다. 그들은 언어나 표정 대신 “기척”으로 소통한다. 방안은 어둡고 사방은 고요하다. 안경을 써도, 쓰지 않아도 똑같이 느껴질 어둠 속에서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는 이야기에 대한 감상이나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가끔씩 “…내 말이 들리나요?”, “…거기서, 듣고 있나요?”(각주2) 물으면 여자가 다리나 손을 움직이며 소리를 내 자신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려온다. 『희랍어 시간』의 문장처럼 긴 여백을 두고 드문드문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둘은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한다. 남자는 “문득, 그럴 수밖에 없는 듯, 어둑한 공기 속에 떠오른 그녀의 희끗한 얼굴을 향해 다가선다. 견딜 수 없이 떨리는 왼팔을 들어, 처음으로 그녀의 어깨를 안는다.”(각주3) 마감을 앞둔 토요일,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기대 속에 서울로 7017이 개장했다. 인터넷 뉴스로 현장 사진을 보던 나도 저녁 7시 즈음 회현역으로 향했다. 만리동광장에 설치된 공공 미술 작품 ‘윤슬’에서 진행되는 개장 특별 프로그램 ‘윤슬 사용법’을 보러 가는 길에 고가도 구경할 셈이었다. 고가에 진입한 지 오 분도 지나지 않아 후회했지만 말이다. 이십여 분간 구경한 것이라곤 내 앞에서 걷는 사람들이 입은 티셔츠 등판에 그려진 무늬와 가끔씩 길을 가로막으며 등장한 거대한 콘크리트 화분이었다. 만리동광장에 도착해 관람한 ‘윤슬 사용법’은 내게 충격을 주었다. 스테인리스 스틸 루버 아래 선큰 공간, 공간을 이루는 2,800개의 계단 위를 무용수와 어린이 퍼포머가 오가며 퍼포먼스를 펼쳤다. 상대의 동작을 따라하거나 쫓는 등 놀이처럼 느껴지는 퍼포먼스에 공연을 보던 어린이들도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끼어들어 놀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공공 공간에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촉매제를 던져 사람들을 퍼포먼스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싶었다는 안무가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였다. 웅장한 느낌을 주던 선큰 공간은 단 십여 분 만에 아이들이 얼음땡이나 공놀이를 하는 놀이터로 바뀌어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이번 호의 프로젝트 중 ‘금천 폴리파크’의 소개 글 일부가 떠올랐다. 공원을 설계한 조윤철 대표는 “세부적인 공간은 이용자들의 계절별 이용 행태나 햇빛의 방향에 따라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복잡한 구성이나 소모적인 개념, 어휘는 배제”했고, “결국 공원의 풍경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공원을 즐기는 사람들의 다양하고 여유로운 모습일 것”(각주4)이라고 말한다. 갓 개장한 서울로 7017의 성공 여부를 따지기엔 아직 이르지만, 조금만 사람이 몰려도 정체되는 구간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아 버거워 보인다. 걷기 위한 길이지만, 어딘가에 여백을 두어 시민이 점차 바꾸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 놓았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1. 한강, 『희랍어 시간』, 문학동네, 2011, p.148. 2. 위의 책, p.169. 3. 위의 책, p.181. 4. 이번 호의 “금천 폴리파크” 참고.
  • [CODA] 말맛과 글맛
    고민은 지난 5월호 특집 ‘빅데이터와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한 필자가 보내온 원고에서 기획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건축, 도시, 조경 계획 분야의 연구자와 실무자들에게는 낯선 딥러닝에 관한 내용을 다룬 글이었다. 글쓰기라면 건조한 논문이 익숙한 필자임이 분명한데, ‘-습니다’나 ‘-요’ 같은 격식, 비격식의 종결 어미를 섞어 높임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쉬운 비유와 사례를 곁들였다. 분명 가볍지 않은 내용을 독자에게 친근한 목소리로 이해시키려는 구성 전략처럼 보였다. 원고를 앞에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환경과조경』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해라체’로 문체를 통일하고 있다. 이는 청자(독자)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방식으로, 일종의 무표정한(중성적인) 표현법이다. 독자와 일정 정도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보를 적절한 무게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지에 어울린다. 독자를 높이지는 않지만, 독자 외에 다른 이들을 높이지도 않는다. 높여 표현하기 위해 ‘-시-’나 ‘께서’, ‘님’ 따위를 쓰지 않아서 글이 간결해진다는 장점도 있다. 평소의 원칙에 따라 원고를 모두 ‘해라체’로 바꿔놓고 보니 이상하게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필자가 원래 보내온 대로 원고를 복구했다. 그런 ‘삽질’을 해놓고 보니, 높임말을 고수하고 싶어 하는 필자들이 종종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가 ‘해라체’를 쓰는 좀 더 명확한 근거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높임말을 쓰고 싶어 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마감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건너에 살고 있는 필자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이번 원고에서 높임말을 쓰신 이유가 친절하고 쉽게 느껴지는 전달을 위한 전략인가요?” “음… 말씀하신 이유 외에도, 서양 언어에서 상하관계보다는 친소 관계에 따라 표현을 달리 하기도 하고, 반말인 ‘thou’가 점차 사라지고 일종의 존칭인 ‘you’만 남는 현상을 보면서 한국어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또 문어文語인 ‘해라체’와 입말 사이의 괴리가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도 있었구요.” 몰랐다. 영어에 높임말이 없는 게 아니라 한국어에 반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화는 우리 언어가 우리 사회의 수직적 상하 관계를 반영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말투 혹은 글투의 차이가 은연중에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논문을 뒤져보니 흥미로운 주장을 찾을 수 있었다. 인지철학자 김광식 교수(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수직적 문화를 바꾸기 위해 ‘반말공용화’를 제안하고 있다.(각주2) 그는 한국 사회에서 윗사람은 공공연하게 반말을 하고 아랫사람은 높임말을 하면서 실질적 불평등을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하여 아랫사람이 반말을 할 수 있어야 몸에 밴 순종의 문화를 걷어낼 수 있다는 급진적(?) 주장을 펼친다. 그래서 문어체 반말을 구어체 반말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예를 들면 “너는 대통령이다”라고 쓰거나, “너는 대통령인가?”라고 쓰고 말하자는 것이다. 김광식 교수의 주장에는 말의 형식이 말의 내용보다 행동 방식을 바꾸는데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현재 『환경과조경』의 편집 원칙은 사회적 평등을 실천하고 있는 셈인가? 하지만 만약 내가 “주간, 에디토리얼 원고를 빨리 주시오”라고 말한다거나, 혹은 김모아 기자가 나에게 “코다 원고는 아직인가?”라고 말한다면?! (과연, 말할 수 있기는 할까) 김광식 교수의 말처럼, 머리로 이해한다고 몸까지 저절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내용과 형식의 관계다. 『환경과조경』의 여러 원고 중에도 이러한 관계를 생각해 보기에 적절한 사례가 있다. 바로 주신하 교수의 ‘이미지 스케이프’다. 이 연재 꼭지는 『환경과조경』에서 거의 유일하게 고정적으로 높임말을 쓰고 있다. 서정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진 한 컷과 짧은 글로 이루어진 지면이다. 편집자 P는 ‘이미지 스케이프’의 원고를 ‘해라체’로 바꿔본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문체를 바꾸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서 애써 바꿔보았더니, 참 사소한 내용처럼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P는 “이 경우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구나,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하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높임말이라는 형식으로 인해 다정한 느낌, 혹은 친절한 감성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감성’을 얹어서 전달하는 ‘다정한 『환경과조경』’은 어떨까 상상해보게 된다. 최이규 교수의 인터뷰 꼭지,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례다. 이 지면에는 교정의 원칙을 뛰어넘는 구어가 표현된다. 분명 문법에는 어긋나지만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문장을 보고 있으면, 들고 있던 빨간 펜을 내려놓게 된다. 어느새 이번 호도 마감이다. 이번 달도 간결하고 무게 있는 글, 다정한 글, 펄떡이는 활어 같은 글들을 가다듬어 한 권의 잡지로 세상에 내놓는다. 독자 여러분에게는 어떤 글이 마음에 가닿을지 궁금하다. 1. 이 제목은 문체에 관한 단서라도 얻어 볼까 해서 자료를 뒤지던 중 발견한 한 문학 평론에서 빌려온 것이다. 민명자, “말맛과 글맛”, 『수필시대』 3, 2008, pp.280~288. 2. 김광식, “한국사회에 반말공용화를 묻는다: 인지문화철학자의 반말 선언”, 『사회와 철학』 28, 2014, pp.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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