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은 중요 민속자료 제5호로서 조선시대 후기의 반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건축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현존하는 많은 사대부가옥(士大夫家屋)들이 대부분 건축물만 덩그라니 남아 있고 그 공간내에서 직접 생활용구로 쓰이던 물품들, 즉각종 기물들이 없어 당시의 생활내용을 알 수 없는 것과 달리 이 주택에는 수천점의 생활용품들이 보존되어 있고, 최근에는 행랑채와 사랑채에 진열까지 함으로서 오늘의 시점에서 200년 전인 조선시대 후기 반가의 생활 이모저모를 알게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교장의 전체구성을 본래에는 상당한 규모로서, 현재와 같은 안채, 동별당, 중무간채, 사랑채, 정자, 사당, 행랑채 이외에도 중문간채 안쪽으로 서별당이 자리잡고 또 솟을 대문 앞터에 ㄱ 자형 몸채와 행랑으로 구성된 별채와 안대문 앞 동측터에도 별채가 있었다. 안채는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의 개기(開基)때의 건축이고, 사랑채인 열화당의 손(孫) 오은(鰲隱) 이후(李后) 가 순조(純祖) 15년(1815) 건립 한 것이다.
※ 키워드: 고택, 선교장, 고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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