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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 환경과조경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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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조금 망설이게 된다. ‘독서인데, 선뜻 말하기가 어렵다. 첫째, 책에 대한 나의 애정은 어딘가 어설프고 애매하다. 흥미로운 이야기, 맛깔 나는 문장, 똑똑해지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 책을 읽기도 하지만, 나와 책의 관계는 물질적인 면에 좀 더 치우쳐 있다. 반듯한 사각형, 종이의 냄새와 질감, 정갈한 글자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 쉽게 들뜬다.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뿌듯하고,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달라진 것 같다는 예감(착각)에 사로잡혀 정작 책 읽기는 뒷전이다. 둘째, 소심한 성격도 한몫한다. ‘취미는 독서라고 했을 때 돌아올 반응이 신경쓰인다. 집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따분한 애로 보거나, 잘난 척하는 인간으로 보거나, 그냥 폼 잡으려고 아무 말이나 하는 허언증 환자로 볼 게 뻔하다. 셋째, 요즘 같은 시대에 독서는 매력적인 취미가 아니다. 이력서 속 빈칸에 대한 답일 때는 더욱 신중해진다. 독서라고 썼다가는 제대로 된 취미 하나 못 찾은, 도전 정신이나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지원자로 보이기 십상이다.

 

책 좋아하세요?” “좋아하긴 하는데... 많이 읽고 그러지는 않아요.” 생각해보면 언제나 우물쭈물,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던 적이 많지 않다. 책 좋아하는 인간으로 알려지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생일 선물은 항상 책이었고, 내가 똑똑하고 올곧은 애인 줄로 아는 엄마 친구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으며, 아는 게 많고 글을 잘 쓸 거라는 기대는 정말 별로였다. 이런 소심한 책쟁이에게 한 줌의 해방감을 준 책이 있었으니,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이다. 책을 사게 된 건 순전히 제목 탓이었다. 폐활량이 부족한 사람은 한 번에 다 말하기도 힘들 것 같은 저 긴 제목에는 뭔가 씌여 있는 게 분명했다. ‘멸종 직전이라는 절박한 표현을 거부할 수 없었다. 동료가 내미는 손 같았고, 종이책이 보내는 일종의 구조 신호 같기도 했다.

 

이 책은 미국 칼럼니스트 조 퀴넌의 삐딱한 시선으로 쓰인 지극히 주관적인 독서 예찬론이다. 곧 일흔을 바라보는 그가 평생 읽은 책은(그의 추산에 따르면)7천 권 남짓이다. 태생이 까칠한 탓인지 엄청난 독서량에서 비롯된 자신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책과 독서 생활에 관해 말할 때만큼은 그는 누구보다 솔직하고 거침없다. 세상에는 위대한 책도 많지만 펴 볼 가치도 없는 허섭스레기 같은 책도 많으며, 그중 기업가나 정치가가 쓰거나 그들을 다루는 책은 끔찍하기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그해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군림하는 책을 그해에 읽고 넘어가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마뜩치 않고, 14살 때부터 경멸해 온 책을 자기 인생 책이라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건네는 친구를 무서워한다.

 

보통 독서법에 관한 책이라면 독서 행위를 고상하고 감상적인 일로 미화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러한 점에서 여타 책과는 결을 달리 한다. 그에게 책 읽기는 지루한 인간들 틈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자, 지긋지긋한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도피처이며, 해야 할 일을 미루게 만드는 좋은 핑곗거리다.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붙들고 있는 이유도 대단한 데 있지 않다.

 

아무리 책이 정서를 고양하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해도,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이라는 물체에 대한 일종의 페티시가 있기 때문이고, 책이 허접한 예능보다 재밌고, 많이 움직이지 않고 빈둥대는 일이 태생적으로 잘 맞아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종이 뭉텅이에 집착하거나, 현실 부적응자거나, 숨쉬기 운동 밖에 할 줄 모르거나, 속에 화가 많은 것뿐인지도 모른다. 책 읽는 걸 대단하게 혹은 괜히 아니꼽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좀 알아야 한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뭔가 대단한 사람처럼 굴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눌려 있는 이도 마찬가지다. 머쓱한 표정이 아닌 심드렁한 얼굴로, “취미는 독서에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 할 수 있는 권리를 허하라.

 

각주 1.조 퀴넌, 이세진 역,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위즈덤하우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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