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나 공간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공간 공감’답사 대상지를 매월 선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토론이 벌어질 만한 장소를 많이 알지 못하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꽤나 디테일한 공간 담론이 펼쳐질 만큼 디자인의 수준이 높은 공공 공간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지난 일곱 번의 연재를 살펴보아도 대상지의 절반 이상이 공공의 접근이 가능한 민간 필지다. 대학로, 서울시립대학교 캠퍼스, 연남교 교차로는 적극적으로 디자인된 공간이라기보다는 개성 있는 도시 공간이라는 이유로 선택된 장소였다. 공공에서 발주하는 오픈스페이스가 양질의 이미지를 구현하기 힘든 데는 다양한 이유가 얽혀있을 것이다. 적정 예산, 설계 감각, 시공 능력, 갑의 안목 등이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데, 이중 하나라도 빠지면 공간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하향하게 된다. 아무래도 일사불란한 기획이 가능한 민간 프로젝트에 비해 네 항목 간의 균형을 갖추기 힘든 공공 프로젝트는 항상 풀기 어려운 숙제로 인지된다. 같은 수준으로 구현되었다면 공공 프로젝트가 더 많은 칭찬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공 프로젝트의 질적 향상을 염원하면서 이번 글에서 다룰 대상지는 분당에 위치한 ‘책 테마파크’다. 굳이 말하자면 본 연재에서 디자인을 중심에 놓고 논의를 펼치는 ‘첫 번째’ 공공 발주 프로젝트인 셈이다.
율동공원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책 테마파크는 경기문화재단이 기획한 공모전을 거쳐 2005년에 준공되었으며, 현재는 성남문화재단이 관리하고 있는 문화 시설이다. 당선안 선정 당시 유명 화가가 공모전의 설계를 주도했다고 해서 이슈가 되었던 프로젝트다. 완공 이후 10년 가까이 지났으니 나무도 많이 자랐고, 주변의 경관과 자연스럽게 동화될 정도로 안정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우리 중 개장 초기에 와 보았던 멤버도 있었지만 절반은 첫 방문이었다. 사선을 첫 인상으로 드러내는 건축의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면 철판과 화강석 판석을 활용한 부조를 감상하면서 건물의 옥상부에 다다를 수 있다. 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지형적 건축에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야외 공연장이 입지하고 있는데, 도서관이 나선 스타일로 돌출되어 있다면 야외 공연장은 반대로 함몰되어 대비를 이룬다. 이 두 시설은 지하 레벨에서는 통로로, 지상부에서는 잔디 마운딩으로 연결되어 있다. 넓고 완만한 계곡 지형에 입지하고 있는 책 테마파크는 도서관과 야외 공연장, 책형상의 수경 시설에 이를 때까지 천천히 상승하다가 상부에서는 성남 저수지 방향을 내려다보는 풍광을 제공한다. 이 뷰를 보면서 도서관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도서관의 전면 입구와 지형을 활용한 선큰 광장을 만나게 된다. 지형, 파사드, 야외 스탠드 등으로 위요된 적절한 규모의 광장은 건물 내의 프로그램과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유적지를 연상시키는 입지와 선명한 기하학적 특징을 지니는 책 테마파크는 특징이 뚜렷한 공공 공간임에 틀림없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