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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12)
  • 환경과조경 2010년 1월
대상지라는 텍스트 읽기: Site Reading

시간성과 조경설계가 만나는 세 가지 층위의 접합지점에 대한 섬세한 논의였던 프로세스에 이어 이번호의 주제는 대상지 분석에 대한 내용이다. 대개의 설계과정은 대상지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분석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연히 연재의 첫 글이었어야 할 것 같은 대상지 분석의 이야기를 마지막에 쓰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전체의 연재가 기계적으로 따라가야 할 순서있는 매뉴얼처럼 이해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큰 이유는 대상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설계의 핵심 단서들을 잉태하는 중요한 단계이기 때문에 다른 주제들과의 상호참조를 꾀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기도 하였다.

조경하는 사람들에게 대상지는 화가에게 캔버스라고 비유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대상지를 배경, 혹은 건물이 놓일 받침대로 사고하는 일반적인 건축적 태도와 달리, 치밀한 대상지 분석은 조경을 타 설계분야와 구별짓는 독창적이며 고유한 과정이다.1 대상지를 이해해가는 과정은 오히려 백지 상태의 캔버스를 시간에 의해 새겨진 정보들이 중첩된 초벌그림으로 정의하는 과정에 가깝다.


대상지의 개념
대상지에 대한 영어단어는 “site”이다. 우리 입에 “대상지”보다도 더 익숙해진 “사이트”는 흔히 “대지경계선” 내의 땅덩어리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소유권 혹은 필지와 같은 습관적인 연상작용은 대상지에 대한 협소한 정의를 내포한다. 몇몇 학자들은 이러한 “사이트”라는 영어단어의 기계적이고 중성적인 대상지의 개념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장소(place) 혹은 대지(ground)가 갖는 특정지역에 고유한 인문학적인 특수성에 주목하여 대상지의 복합성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대상지에 대한 개념은 문화적 패러다임과 그에 근거한 조경설계 양식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프랑스의 정형식 정원이나 영국의 풍경식 정원에서의 대상지는 시대적 양식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 혹은 배경으로서 기능하였다. 풍경식 정원의 픽춰레스크 양식을 계승받은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이상화된 낭만식 풍경을 창출하기 위해 늪과 습지, 불량주거촌이 산재해있던 대상지의 조건이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각색된 경우이다. 경관의 시각적 흥미에 집중하였던 모더니즘적 양식 역시 대상지의 다층적인 잠재력에서 형태적 요소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했다. 물론 항상 양식이 대상지의 조건을 무력화시키지는 않았으나 경관에 대한 시각의 변화가 대상지의 개념의 변화에 미치는영향은 지대하였다.

번스와 칸이 엮은 책 『Site Matters』는 대상지에 대한 빈약했던 조경이론을 업그레이드시킨 보기 드문 집합적 이론서이다. 엮은이들은 통상적인 사이트의 기계적이고 내부지향적인 개념을 극복하기 위해 대상지의 세 가지 특성을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는 통제영역으로서의 대상지이며, 이는 대지경계선 안쪽의 직접적 계획의 범위이다. 두 번째는 영향권으로서의 대상지로 대상지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는 주변지역의 범위를 일컫는 개념이다. 마지막인 파급권으로서의 대상지는 설계안이 실현되었을 때에 그 파급효과가 미치는 영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설계가들에게 첫 번째 개념의 대상지는 설계안을 통해 변형할 수 있는 한계를 의미한다. 두 번째 개념의 대상지는 소위 말하는 맥락(context)에 대한 것으로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맥락의 공간적, 시간적 범위의 설정 역시 설계가의 해석에 의존한다. 설계는 현재의 상태를 바꾸는 것이므로 모든 변화는 그에 따른 파급적 변화를 초래한다. 그 파급효과는 매우 광역적이며 공간적 변화를 뛰어넘는 사회현상에 연관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을 다루는 세 번째 파급권으로서의 대상지는 설계가의 상상력이 단지 대지 경계선 내부에 머물지 않도록 제어해주는, 소홀히 지나치기 쉬우나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러한 대상지에 대한 다층적인 개념은 대지경계선 내부의 자기완성도에 집중하는 설계가들에 대한 견제책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설계가의 상상력이 미쳐야할 시공간적 범위를 확장시키고 설계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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