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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11) 프로세스: 시간축의 공간화
  • 환경과조경 2009년 12월

프로세스에 대한 논의의 세 갈래 길

두 달 전 리빙시스템을 마무리하면서 동태적 미학의 고찰을 보충해야겠다는 멘트를 달아놓았다. 뿐만 아니라 생명과 관련된 재료를 다루는 조경분야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프로세스에 관련된 담론들을 정리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차였다. 프로세스라는 키워드에 대한 글과 자료를 수집하고 살펴보는 와중에 뭔가 뚜렷해지고 정리되어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산되고 산만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이는 프로세스라는 키워드의 다의성에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세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과정, 공정, 절차, 순서, 진행, 경과, 변화 등의 단어와 함께 쓰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모두 유사한 뜻이긴 하지만 굳이 분류를 하자면 발달과정, 즉 순리대로 자라나는 현상에 관한 것과 진행과정, 즉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나아지게 하거나 주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의 두 가지 뉘앙스를 구별할 수 있다. 이 글은 주제 키워드와 조경설계 간의 연관에 기반을 두어야 하므로, 프로세스로 서술할 수 있는 모든 방향들 중 공간 또는 공간화와 결부되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다. 이에 따라 프로세스를 시간축과 연관된 공간현상 및 공간구성행위라고 좁게 정의하고, 설계행위의 대상인 공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프로세스에 대해서 서술할 예정이다. 다의적 의미의 프로세스를 공간이라는 각도로 좁혀서 규정한다 하더라도 크게 세 가지 방향의 논의의 갈림길이 드러나게 된다. 첫 번째는 거시적 입장에서 도시와 생태계의 인식에 관련된 것이다. 두 번째는 미시적 입장에서 생물재료와 연관된 조경분야의 설계고려사항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설계의 주체인 인간의 사고방식과 설계과정과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다. 이 세 갈래의 담론은 결론에서도 서로 만나거나 통합적으로 논의되지 않을 수 있다. 선택의 기로에서 세 방향중 하나를 선택하여 깊이 파헤쳐보는 것도 고려하였으나 연재의 목적상 포괄적인 접근을 펼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였다. 프로세스는 큰 틀에서는 고정화될 수 없는 현상과 그 흐름을 다루는 방식에 관한 것으로서 시간과 결부된 공간적 특징을 가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공간을 다루는 타 분야와 차별될 수 있는 조경분야의 중요한 키워드라고 인식된다.

인식의 틀로서의 프로세스 - 거시적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

세 갈래의 논의 중 첫 번째는 프로세스에 대한 인문학적 인식에 관한 것이다. 시간의 차원과 행위자의 문제에 주목하는 현대의 문화인류학자들은 하나의 집단 내에도 여러 다양한 관점과 주제, 가치와 규범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것들이 서로 경쟁, 갈등, 모순 관계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문화는 하나의 잘 통합된 구조(structure)라기보다는 여러 다양한 힘들이 끊임없이 작용하며 변화하는 과정(process)으로 파악된다. 문화를 인간의 정주환경으로 치환하는 데에 무리가 없다면 도시를 구조보다는 과정으로 파악하는 관점이 유효하게 된다. 문화인류학자들의 이러한 관점은 근간에 조경분야에서 논의되고 있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방향과도 유사성을 보이는데 제임스 코너는 테라 플럭서스(terra fluxus)라는 에세이를 통해서 도시를 시간에 따른 과정과 교환의 살아있는 장으로 보아야만 하며, 동시에 새로운 힘과 그 관계가 새로운 형태와 주거의 양상을 위한 토대를 형성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계라는 의미의 테라 플럭서스는 문화인류학자가 인식하는 프로세스로 봐야할 것이며 테라 퍼마(terra firma), 즉 변하지 않는 고정과 유한의 개념은 스트럭처로 부드럽게 치환될 수 있다. 코너는 또한 보다 유기적이고 유연한 어바니즘을 개념화하는 데에 있어서 현상이 작동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학문인 생태학이 어떻게 지구상의 전 생명체가 동태적 관계로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는 지를 보여주는 데에 유용한 틀이 된다고 하였다.

도시를 프로세스로 인식하는 관점과 조경설계와의 연관성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시도되고 있다. 과거 도시를 고정된 구조나 대상으로 인식하고 ‘마스터플랜’의 정신으로 공간을 다루었던 접근 방식과 최근 들어 도시를 과정이나 현상으로 인식하고, 도시 형태와 동태적인 환경 프로세스 사이의 관계를 디자인하기 위해 ‘프레임워크 플랜(framework plan)’이나 ‘전략적 플랜(strategy plan)'이 중용되는 방식은 확실히 대비된다. 하지만 필자는 전략적 플랜이 마스터플랜을 무력하게 만들고 폐기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태적 형태에만 초점이 맞춰진 설계사고방식을 견제하고 동태적 미학에 대한 담론과 실험을 유도하는 보완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양한 담론과 설계의 결과로 동태적 미학을 구현하는 프로세스적 설계가 설계스튜디오나 공모전의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된 것은 이제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지만, 본래의 의미를 구현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공모전의 장식재처럼 쓰이는 경우도 눈에 많이 띄고 있으며, 이에 대한 비평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쁜 다이어그램으로만 포장된 공허한 프로세스의 제시는 동태적 현상을 디자인과 접목시키겠다는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무책임한 행위이다. 배정한의 지적대로 프로세스적 설계 자체가 새로운 대안이나 강점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지났으므로 얼마나 정교하게, 탄력적으로, 전략적으로 프로세스를 디자인할 수 있으며 디자인을 통해 프로세스를 조율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런 능력을 취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주장하지 못할 것이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효과적인 연습으로는 동적 평형을 이루고 있는 도시현상을 인문적, 경제적, 생태적으로 나누어 분석적으로 이해해보는 것을 들 수 있다. 이해가 선행되어야지 활용이 가능한 법이다. 어려운 점은 변화의 규모가 너무 크거나,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비물리적인 변화가 많아서 인지하거나 관찰하기 용이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인비저블 프로세스(invisible process)로 칭할 수 있는 본 갈래는 구체적인 공간설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경 분야에 의해 활발한 담론의 소재가 되어야 할 것으로 주장한다. 그 이유는 공간설계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제공할 배경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며, 조경분야가 도시의 계획과 설계에 동태적, 생태적 논리를 부여함으로써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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