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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 흐트러뜨림과 바로잡기
  • 환경과조경 2004년 10월
들어가는 이야기, 근정전과 인정전 경복궁의 근정전과 마찬가지로 창덕궁의 인정전은 반듯한 회랑에 둘려 좌우가 엄정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워낙 궁의 엄격한 범제가 있어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궁궐건축으로서 그러한 분위기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정전의 조용한 분위기는 반드시 안내자를 따라 단체로 움직여야 하기에 관람객의 자유로운 행동으로 인한 어수선함이 없어서 우선 그렇고, 또 이렇듯 도심 한가운데에서 현대건축의 숲에 아랑곳하지 않고 낮은 저층건축의 전각 속에서 한가로이 지낼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어서 더욱 그럴 수 있겠다. 한 무리의 관람객이 안내자의 열성어린 설명을 들으면서 지나간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우리는 궁이든 절이든 어디에서나 우루루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몰려간다. 그렇게 달려갔다가는 중요한 그림을 만나고는 곧장 그 자리를 뜬다. 그리고는 다른 볼일을 찾아 나선다. 하긴 왕이 지내던 곳에 왔으니 왕이 있던 곳을 보는 것이고 절에 왔으니 부처님 모셔져 있는 곳을 보았으니 목적을 달성한 셈이 아닐까? 그런데 거기에 무엇을 빼 놓았다는 듯이 그렇게 따지고 드느냐고 반문하면..., 안 되지. 절이든 궁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곳이든 목적한 곳을 눈여겨보고는 그냥 되돌아 나오거나 여기저기 둘러보기는 하지만 눈여겨보지 않는 습관은 많이 손해 보는 일이 될 수 있다. 들어가면서 감상하는 것 못지않게, 한번쯤 뒤를 돌아다보는 습관의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오늘 인정전에서는 거기에 덧붙여, 문간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똑바로 보이는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이야기해 볼까한다. 궁이든 사찰이든 아니면 상류주택이라 이름 된 옛 건축물을 마주하고 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으로는 좌우가 반듯한 대칭의 균형을 지니는 것 같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한쪽을 흐트러뜨려 놓은 소위 파격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두고 보통 한국건축에서 발견되는 破格(파격)의 美(미)라고 부르곤 한다. 우리의 전통건축에서 보이는 이러한 파격은 문자 그대로 흐트러뜨려 놓은 모습일까, 아니면 균형을 맞추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의 결과일까? 인정문 드날목의 경관 기왕 인정전에 왔으니 들어가면서도 보고 돌아 나오면서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인정문은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문안으로 한 걸음 들여놓기 전에 인정문 처마 아래서 인정전을 한번 관조해 보도록 하자. 그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기로 해보고, 일단 인정전의 월대에 올라 몸을 돌려 들어오던 방향으로 눈길을 돌려 보자. 인정문 너머로는 바깥의 좋은 나무가 무리를 이룬 모습이 보이고 그 너머로 남산 한 부분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그 옆으로 회랑 울타리 너머로 서울의 고층 건물이 현대도시의 면모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남산 기슭 쪽으로 막 몰려오다가 걸음을 멈춘 듯 서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잠시 현대와 전통이 한데 어우러진 장관을 만나보는 것도 인정전의 이 자리가 우리에게 주는 좋은 기회요소가 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조경의 과업을 짊어지고 도시의 경관을 책임지는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가라고 한다면 인정전에서 내다보이는 이 광경의 아름다움만을 취할 일이 아니라, 앞으로 이 도시의 경관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지 중요한 과제를 만난 일임을 생각하게 되리라. 도시의 경관을 적절히 통제하고 질 높은 경관을 유지하는 일, 그건 가로를 차지하고 들어서는 건축물 하나하나에 대한 통제와 조절의 일일 뿐 아니라, 상당히 먼 거리에서 영향을 줄 시각경관의 광역적인 안목을 가지고 다루어야 할 것임을 생각하는 계기를 만난다. 이것은 궁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사찰이든 서원이든 또는 다른 여타의 무수히 많은 역사물의 경관보존과 관련되어 주위의 남다른 경관이 어떻게 시각적인 침범을 하게 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과제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 10여 년 전 어느 날, 카메라를 메고 정독도서관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매표소 관리하시는 분이 ‘여기서는 사진촬영을 할 수 없노라’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하였더니 청와대 방면으로 훤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그러노라고 했다. 청와대가 아니라 경복궁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사진 몇 장을 찍으려 한다고 사정했더니 정 그렇다면 도서관 관리하는 책임부서에 가서 허락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성가시게 할 이유가 있나 싶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해서 사진촬영은 하지 않겠노라고 약속을 하고는 그냥 구경만 하고 왔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서관 앞마당 한쪽에는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새겨 놓은 안내 표지판이 하나 있었다. 거기서 정선의 그림에 표현된 인왕산의 진경산수를 실제로 그렇게 만날 수 있음을 친절하게 안내해 준 역할을 한 것이었다. 이제는 그렇게 사정을 한다거나 몰래 어떻게 한다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이 되었다. 민주화가 되어서라거나 개방사회가 되어서라거나 하는 이야기도 전혀 아니다. 정독도서관 마당 어느 곳에서도 인왕산이고 경복궁이고 한 귀퉁이나마 바라볼 수 없이 되었다. 정독도서관의 울타리를 높여 놓아서도 아니고 아무도 그 바깥을 내다보지 못하도록 금지해 놓아서도 아니다. 담 너머 동네의 집들이 삼층 사층으로 치솟아 올라와 있어서. 일석이조의 성과를 두고 흐뭇해 할 것인지, 아니면 미처 그런 일이 생길 것을 고려하지 못한 처사였는지는 알 수 없다. 정독도서관과 인왕제색도의 현장(?)의 관계를 떠올리면서, 인정전 월대에서 나는, 역사경관의 보존과 역사물의 관리라는 것이 문화재 주변 몇 미터 반경에서의 규제라는 차원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는 극히 자명한 일을 생각하고, 도시경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를 꿰어 차고 있어야 할 책임과 의무조차 역사경관을 다루어갈 사람들의 몫이어야 할 것을 확인해 보게 된다. 최소한 관람객의 보는 즐거움을 가로막지 않게 한다는 명목 하에서 만이라 하더라도. … 중략 … 이제 원래의 우리 이야기 화제로 돌아오자. 인정전을 정면으로 보면서 인정문 처마에 서서 한참을 관조한다. 인정전의 양 옆 날개 부분에서 파격이 생긴다. 이 파격은 인위적인 파격의 미를 추구하는 일환으로 일부러 한 것이었겠는가, 아니면 다른 피치 못할 여건에 따른 자연스런 처리이며 그 와중에 가장 대칭을 유지할 수 있는 대칭구조의 극치라 일컬어야 할까? 전통조경, 비단 조경이고 건축이고 구분할 이유도 명분도 없이 뭉뚱그려 전통경관에서 비쳐지는 대칭의 구성이며 엄정한 대칭을 피하여 소위 파격의 미를 가져온 구성은 일반적으로 민가에서 어렵지 않게 보아오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를 따라 우리는 곧잘 “대칭이면서 대칭이 아닌”, “파격의 미”를 추구한 것으로 이야기해 오고 있다. 그리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심심파격, 심심해서 한번 뒤틀어놓은 것과 필연적으로 그리 되어가는 것은 서로 다른 상황임에 틀림없다. 민가에 있었던 것은 그것대로 또 특수한 상황으로써 전개되었겠지만, 일단 오늘 우리의 이야기는 인정전이라고 하는 궁의 정전을 두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파격의 추구가 아니라 대칭적 구성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을지 모르는 몇 가지의 기미를 살필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기존에 해 온 생각들을 잠시 정리하고 가야할지 모른다. 경복궁 근정전에서도 그랬듯이, 창덕궁 인정전에서도 자연을 어떻게 하지 않고 슬그머니 피하듯 스며들어 가면서 기필코 엄정한 대칭을 이루기 위한 기막힌 처리를 만날 수 있었다. 화계와 담장 그리고 회랑의 처리, 북악의 봉우리에 대칭되는 전각의 구축과 같은 것이 확연히 눈에 띈다. 전통경관으로부터 배우는 친환경적인 처리와 엄정한 원칙의 고수를 위한 여유로운 우회.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만난 고도의 디자인 사례가 아니었나 싶다. 정 기 호 Jung, Ki Ho·성균관대학교 건축·조경 및 토목공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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