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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당신에게 공원은 무엇입니까?
Editorial: What is the Park for You?
  • 환경과조경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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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는 겨울과 봄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던 어느 오후에 구상되기 시작했다. 벌써 두 계절 전이니 꽤 철저하고 제법 정교한 기획일 거라 오해하시면 안 된다. 답답한 공기와 마감의 긴장으로 충만한 편집실에서 날이면 날마다 배달 음식 시켜먹으며 궁상떨지 말고 우리도 우리가 매달 다루는 근사한 공원 같은 곳에 가서 따스한 햇살 높은 하늘 벗 삼아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자는, 낭만을 빙자한 푸념이 그 발단이었다. 그나마 ‘단톡’으로 나눈, 회의를 빙자한 ‘집단 잡담’의 부산물이다.

요즘은 어느 직장에서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엄숙하게 앉아서 하는 회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카카오톡을 비롯한 여러 모바일 메신저가 회의용으로도 널리 쓰인다. 심지어 학과 교수 회의도 카톡으로 한다. 장학금 배분, 졸업생 사정, 논문 심사 같은 묵직하고 예민한 안건을 메신저로 다루는 시대! 『환경과조경』도 예외는 아니다. 에디터 모두가 둘러 앉아 진지한 표정 지으며 하는 토론의 횟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뭔가 찜찜한데, 몇 번 하다 보면 대면보다 부드럽고 대화보다 빠른 장점에 이내 길들여진다. 손쉽게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이모티콘의 힘을 빌려 표정도 관리할 수 있다. 마샬 버먼의 책 제목을 패러디하자면, “모든 견고한 것들은 카톡 속으로 사라진다All That Is Solid Melts into Kakaotalk.” 논리를 압도하는 재기와 발랄, 숙고를 뛰어넘는 순발력의 진격. 일순간에 휘발되곤 하는 이 과정에서 때로는 ‘득템’을 했다며 서로 흥분하고, 기막힌 아이디어를 건졌다며 기뻐한다. 이런 풍경에 심각한 의문의 부호를 단다면 시대착오거나 촌스러움일까. 진단은 사회학자나 심리학자의 몫으로 돌린다.

정작 우리 편집부에게 중요한 건 이번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가 매우 느슨한 카톡 회의의 생산품이라는 점이다. 치밀한 취재와 치열한 토론을 괄호 안에 잠시 숨긴 기획. 괜찮다! 괜찮을까 괜찮겠지…. 전문 분야로서의 조경은 기능, 미학, 생태, 구조, 운영 같은 무거운 숙제들을 공원의 켤레로 삼아왔지만, 원래 공원은 여유와 여백의 대명사 아닌가. 그래, 공원은 자유로운 곳, 아니 적어도 자유로워야 하는 곳이니까 느슨해도 괜찮을 거야.

다음 문단에서 지난 몇 달 간의 자유로운 ‘집단 잡담’을 대략 간추려 본다.

‘서울에 사는 일곱 사람, 그들의 공원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책 『더 파크』가 나왔다. 케이티 머론이 엮은 『도시의 공원』의 가벼운 한국판 변형? 여행, 도시, 건축을 휩쓸고 간 대중적 유행이 이제 공원으로 옮겨가는 조짐일까. … 라이프스타일 전반이 집에서 길로 향하고 있다. 물론 공원도 넓은 의미의 길이다. 삶이 집을 벗어난다는 건 개발 시대를 지탱시켜 준 가족과 스위트 홈 개념의 변화와 해체를 뜻한다. … 집 안에서 집 밖으로 일상이 옮겨가고 있다. 모든 종류의 만남을 집 밖에서 하며 산다. 여가 시간의 반 이상을 집이 아닌 곳에서 보낸다.

가족 모임도 식당에서, 공부도 카페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대표적인 집 밖 공간인 공원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무엇을 하며 사는가. 공원에서의 삶을 소프트하게, 그러나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특집, 괜찮다. 그래, 의미 있다. …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의 1인 가구 비율은 이미 전체 가구의 26퍼센트다. 지금 20대인 사람이 40대가 되는 2035년이 되면 35퍼센트에 달할 전망이다. 1인 가구가 핵가족조차 제치고 가장 많은 가족의 형태가 된다. 이건 문제가 아닌 현상이다. 이런 인구학적 변화에 따라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도시의 형태와 구조도 바뀌지 않을 수 없다. 공유를 키워드로 하는 주거 형식과 주택 형태의 실험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공원도 변할 것이다. 변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집, 공원.’ … 박해천, 전상인, 고미숙, 이런 필자들이 좋지 않을까.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사회학자노명우도 빼놓을 수 없다. 보스턴에서 열린 전시회 ‘에머랄드 네트워크: 도시 공원의 유산 되살리기’나 일본에서 진행된 설계공모전 ‘공원이 있는/없는 미래 2105’도 엮어 보자. 그렇다, 멋진 기획이 아닐 수 없다. … 아예 단행본으로 돌려서 대박을 꿈꾸는 게 더 낫겠다. 1만 부 돌파하면 동남아, 5만 부는 유럽, 10만 부면 미국 횡단! … 진정하고, 우선은 특집으로 간다. 과연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공원은 무엇인가. 나의 공원, 일상의 공원, 인생의 공원을 묻는다. 제목은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로 간다. … 필자 후보로 올렸던 인문학자나 사회학자 말고 우리가 직접 쓰자. 조경물 오래 먹은 우리만의 시각은 진부하지 않을까. 편집부가 총출동해 여름 한 계절을 온통 투자했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던 작년 9월호의 ‘활자 산책’ 특집처럼 되지 않을까.

그래도 간다. 우리 전원이 조경 잡지 에디터가 아닌 동시대 도시를 사는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한 개인의 시선을 가지고. … ‘괜찮다! 괜찮을까? 괜찮겠지’를 다시 몇 달 간 반복하면서 엄청난 양의 말풍선으로 모니터 한 구석이 도배됐다. … 드디어 마감이 코앞이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건 의문문 단 하나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그들의 응답을 듣지 못한 채 몇 시간 후면 발트 해연안의 에스토니아로 떠난다. 유럽조경학교협의회ECLAS 컨퍼런스에서 돌아올 때는 그들의 공원 이야기가 이미 인쇄소를 거쳐 10월호에 담겨 있을 것이다. 대부분 한 개인의 경험과 사정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지만, SNS를 점령하고 있는 노출증적 자기 취향 고백과는 다를 것이다. 동시대 도시를 사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이슈가 적지 않게 녹아 있을 것이다. 즐겁게 읽어주시고 독자 여러분도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에 응답해 보시길 기대한다. 

본문 속 필자의 글처럼 ‘나의 공원은 없습니다’밖에 떠오르는 게 없으시다면, 이렇게 물음을 바꿔보셔도 좋을 것 같다. 당신에게 공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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