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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떨림이 시작된 공원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 환경과조경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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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아래 한 커플, 전망대 위에 두 커플, 공원에선 때로 사랑이 피어난다. 해질녘 석양은 데이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배경이 되어 준다. 하늘공원 전망대 ⓒ유청오

 

동아리를 만든 게 불순한 의도는 아니었으나

대학교에 입학해서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했다. 과대표부터 시작해서 학생회 활동도 일부 돕고, 사진 동아리, 무술 동아리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잡지사의 학생통신원까지 하면서 여러 모임을 두루 경험했다. 다 배워보려 시작한 활동들이지만 대학 생활이란 것이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기승전‘술’로 연결되다보니 참으로 쓸데없이 허송세월 한 것 같은 느낌도 가끔 든다. 그래도 잘한 일 중 한 가지는 군 입대 전 학과 동아리를 만든 것이다.

우리 과에는 과거 학술 동아리가 있었는데 체제가 학부에서 학과로 개편되면서 명맥이 끊긴 상태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교수님들께서 동아리를 만들면 지원을 많이 해주신다 약속하셨고, 어찌어찌 내가 총대를 메고 동아리원을 모집해 조직 구성, 운영, 행사 진행 등을 도맡았다. 그렇게 몇 개월을 유지하다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어릴 때 학과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다보니 나름 선배들에게 예쁨 받는 후배가 돼 있었다. 한참 윗 기수학번의 선배들도 알게 되고 교수님들께도 신임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얻은 듯싶었다. 하지만 학과동아리를 만든 게 내 대학 생활에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된 이유는 이게 아니다. 복학과 동시에 재학생들과 자연스레 융화되는 장치가 됐고, 그럼으로써 연애를 하는 발판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어찌 잘 만들었다 안 할 수 있을까.


동방탈출: 애정의 시작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나는 연애를 늦게 시작한 편이다. 동갑내기 친구들보다 군대를 조금 늦게 간 편이라 전역했을 때 나이가 스물넷이었는데, 그해 처음 연애를 했다. 복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과 동아리에 가입한 같은 과 후배를 꼬셨다. 그녀는 지금의 내 여자 친구다. 사실 처음엔 연인 사이로 발전할 줄 꿈에도 몰랐다. 내가 그녀를 갈구는 못된 선배였기 때문이다.

복학하기 전에 학과 동아리 방에 잠깐 들른 적이 있는 데 그때 여자애 둘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나보다 학번이 3년 아래인 꼬맹이들이었다. 한 명은 회장, 한명은 부회장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군대에 가 있는 사이 동아리 회원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는데, 동아리를 만든 입장에서 애정이 있던 터라 그 후배들을 도와 신입생들을 뽑고 가르쳐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 회장과 부회장을 정말 많이 괴롭혔다. 그러다 심하게 감정적으로 서로 격해진 일이 있었는데 이후 화해를 하고 다시 친목을 다지기 위해 공원으로 스터디를 위한 답사 겸 출사를 나가게 됐다. 


사랑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내 대학 시절 생활권이었던 전주의 중심부에는 덕진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덕진공원의 면적은 약 15만m2로 전주에서 가장 큰 도시 공원이다. 공원 면적의 3분의 2를 연못이 차지하고 있는데, 초여름 연꽃이 만발하면 절경을 이뤄 출사지로 각광을 받는다. 또한 이곳은 후백제 때 견훤이 도성 방위를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설과 고려 때 건지산과 가련산을 잇는 비보풍수를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함께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왕조의 발원지로서의 전주와도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오제면 물맞이를 하기도 하고, 축제의 장소로, 그리고 평상시 소풍과 나들이 장소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전주의 명소 중 하나다.

도시 마케팅의 수단으로 하고많은 관광지 중 구색맞추기식으로 공원을 넣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하지만 전주에서 덕진공원은 지역민들이 타지 사람들에게 꼭 소개하는 핫플레이스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전주내에서 놀러 갈 외부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전주에서 주거지와 멀지 않은 근교의 손꼽히는 나들이 장소는 크게 전주동물원, 한옥마을, 덕진공원 정도다. 물론 지금은 패턴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으나 불과 4~5년 전쯤에는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이유로 덕진공원은 그 주변에 위치한 대학교들의 조경학과 졸업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대상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조경학과 동아리이니 답사를 목적으로 가닥을 잡고 토요일 낮 점심 때 쯤 덕진공원에 모였다. 지금은 조경시공 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 같은 1년 후배와 나보다 키가 작아 신뢰하는 ‘평생 막내’,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신입부원들을 데리고 답사를 빙자한 나들이에 나섰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도 있어 조촐한 인원이었는데 이날 부회장이 조카를 데리고 와서 더 나들이 분위기로 기울었다. 어쨌든 격식을 갖춰보고자 각자 카메라로 세 가지 주제를 찍어보라고 후배들에게 미션을 줬다. 이 공원에서 안 좋은 요소, 좋은 요소, 그리고 풍경 사진을 포함해 각자만의 ‘주제 사진’을 하나씩 찍도록 했다. 첫 두가지는 수업 때 들었던 “문제를 해결하는” 설계의 재료를 찾아나서는 과정의 일환이었고 세 번째는 후배들에게 사진 찍는 데 재미를 붙이게 하려는 목적 혹은 그냥 공원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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