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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고대 로마의 유산
  • 환경과조경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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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도로망(출처: Andrei nacu)

 

 

#60

길 혹은 쿠오 바디스

 

고대 로마의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우선 시간적·공간적으로 교통정리를 잠깐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유산과 계속 혼동되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라고 하면 지금의 로마 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개는 로마 제국 전체를 일컫는다. ‘대개는’ 이라고 불확실하게 표현하는 이유는 고대 로마가 왕정에서 시작하여 공화정이 되었다가 다시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 제국’이라는 표현 역시 완전하지 않아 ‘고대 로마’라는 총칭을 쓴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750년경에서 기원후 5세기경까지이나 정치적·문화적으로 크게 위상을 떨쳤던 시기는 대개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 정도로 본다. 어림잡아 고조선 시대 후기에서 고구려 미천왕 시기에 해당한다. 제정의 기틀을 닦아놓고 살해당한 카이사르,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로 신의 대접을 받은 아우구스투스, 폭군으로 악명높은 네로 황제, 티볼리에 빌라를 지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등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통치자들의 이름이며 키케로, 타키투스, 비트루비우스, 베르길리우스 등의 소위 인문가humanitas들 역시 이 시대에 속하는 인물이다.

5세기경 게르만족이 동과 북에서 로마 제국으로 침입해 들어오며 제국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우선 동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으로 나뉘었다가 5세기에 서로마 제국은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이때부터 고트족, 랑고바르드족, 프랑크족, 반달족 등 게르만의 여러 부족이 유럽에서 영토를 나누어 가지며 국가 체계를 확립하는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이 시기가 이삼백 년가량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8세기, 프랑크족의 카롤루스 대제가 중원을 평정하면서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카롤루스 대제가 세운 프랑크 왕국이 지금 프랑스와 독일의 전신이다. 이로써 유럽의 중심 세력이 알프스 북쪽으로 완전히 이동하게 되었다. 이 시기를 중세라고 한다.

기독교가 정치, 사회, 문화뿐 아니라 개인의 삶과 죽음을 모두 지배하는 시대였다. 이런 상태가 또다시 칠팔백 년 유지되었다. 기독교 문화는 그 이전의 고대 문화와 확연히 차별되기 때문에 고대와 중세 사이에 문화적으로 단층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의 별은 참으로 오랫동안 빛을 잃었다. 그러다가 15세기에서 16세기에 다시 화려하게 무대에 등장한다. 이때를 르네상스 시대라고 한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가 로마 제국의 한 행정 구역Dioecesis Italiae이었고 제국이 와해되자 여러 도시 국가들이 우후죽순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15세기 말경 이탈리아는 마치 퍼즐처럼 여러 과두제의 소국들과 왕국의 집합체로 구성되었다.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사보이아, 로마 교황국, 나폴리 등등 각자 통치자가 따로 존재하는 독립된 국가였다. 이 시기의 중심지는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였으며 이때의 주역들은 메디치, 비스콘티, 스포르차 등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 보티첼리, 도나텔로, 벨리니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번 언급되었던 팔라디오 등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을 낳았다. 이렇게 로마, 혹은 이탈리아는 역사적으로 크게 두 번 유럽 문화를 지배했으며 고대와 르네상스는 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유전자를 나누고 있다.

물론 로마 시가 고대 로마의 절대적인 구심점을 이루었으나 로마 시를 둘러싸고 있는 라치오 주와 그 남쪽의 캄파니아 주까지 문화 중심권이 넓게 확장되었다. 특히 캄파니아 주의 나폴리 만을 중심으로 폼페이, 헤르쿨라네움, 파에스툼, 스타비아에 등 여러 도시 문화가 꽃피웠는데 하필 베수비오 산을 등지고 있었던 까닭에 서기 79년 이 도시들은 지도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 아니 사라졌다가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다시 나타났다. 문자 그대로 시간이 그 자리에서 멈추어버렸으므로 고대 문화가 어떠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로마 시보다 이들 박제된 화산 도시들 을 엿보는 편이 낫다. 로마 시에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수천 년에 걸쳐 정치, 종교, 문화적 유산들이 켜켜이 쌓여있으므로 이 중 고대의 것을 가려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단 모든 길이 그리로 통했다는 로마 시를 먼저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서기 64년, 로마 시에 대화재가 발생했다. 14개의 구가 파괴되었으며 인명 피해도 적지 않았다. 민심이 흉흉했다. 그렇지 않아도 밉상이었던 네로 황제가 불이 난 자리를 정리하고 자신의 황금궁전Domus Aurea을 거대하게 확장하자 민심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네로 황제 방화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에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기독교인에게 방화의 책임을 뒤집어씌워 대대적인 학살을 일으켰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가 ‘쿠오 바디스’다.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당시 베드로가 로마에 살고 있었는데 기독교도가 끌려가기 시작하자 무서워 도망을 친다. 성문을 빠져나가 남쪽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하여 약 800m 정도 갔을까? 문득 예수님이 나타난다. 놀란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쿠오 바디스 도미네)”라고 묻자 예수님은 “로마로 간다. 가서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가 크게 뉘우치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 결국 순교했다는 이야기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던 길이 아피아 가도Via Appia Antika다. 지금도 일부 남아있는 고대 로마의 길이다. 고대 로마가 그 넓은 제국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도로망이었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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