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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파크 라이프
Editor’s Library: Park Life
  • 환경과조경 2015년 10월

이건 순전히 분량 탓이다. 처음에는 기욤 뮈소의 『센트럴 파크』를 쓰려고 했다. 어떤 장르인지도 모른 채, 오로지 ‘센트럴 파크’라는 제목만 보고 장바구니에 담았던 책이다. 동시에 클릭한 책으로는 에릭 오르세나의 『오래 오래』가 있다. 『센트럴 파크』는 336쪽이고, 『오래 오래』는 611쪽 분량이다. 『오래 오래』에는 중국의 원명원, 파리 식물원, 프랑스의 베르사유, 세비야의 정원, 영국의 시싱허스트, 벨기에의 정원, 일본의 고산수식 정원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더구나 주인공이 원예가다. 저자는 파리에서 태어나 베르사유에서 자랐고, 경제학자이면서 대통령 문화 보좌관, 최고 행정 재판소 심의관, 국제 해양 센터 원장 등의 경력도 쌓았지만, 특히 국립고등 조경 학교 학장을 역임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저자 소개 문구는 “여러 공직을 역임하는 동안에도 매일 새벽 두 시간씩 글을 써가며 왕성한 사회 활동의 경험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는 대목이다.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이력이다. 하지만 책의 전체 분량이 만만치 않다. 결국 “사랑과 감동의 마에스트로 기욤 뮈소의 매혹적인 스릴러”란 카피가 앞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센트럴 파크』를 먼저 집어 들었다. 택배가 도착했던 그 당시에 말이다.


하지만, ‘편집자의 서재’에 뭔가를 쓰기 위해서는 둘 중의 한 권을 ‘새롭게’ 펼쳐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그 때, 불현 듯 10년 전에 읽었던 책한 권이 떠올랐다. 요시다 슈이치가 지은 제127회(무려 127회다)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인 『파크 라이프』다. 전체 지면은 190쪽이지만, ‘파크 라이프’는 채 100쪽이 되지 않는다. 나머지 90여 쪽은 ‘플라워스’라는 별개의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이 책은 열림원에서 2003년 3월(오유리 옮김)에 초판을 출간한 후, 노블마인에서 2010년 3월(이영미 옮김)에 다시 펴냈고, 은행나무에서도 2015년 8월(이영미 옮김)에 새로운 표지 디자인으로 개정판을 발간했다(책값은 7,800원에서 10,000원으로, 다시 12,000원으로 계속 올랐다). 즉, 꾸준히 팔리는, 여전히 읽을 만한 책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제목이 ‘파크 라이프’라니? 바로 이번 특집을 위한 책이 아닌가. 주저 없이 노란색 건물과 공원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파크 라이프』(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열림원, 2003)의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주인공 ‘나’는 거의 매일 히비야 공원의 어느 벤치로 출근한다. 그렇다고 백수는 아니다. 자신이 지정해 놓은 공원 벤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 쇼핑몰 미팅에 참석하는 게 중요한 일과다. 지하철에서 실수로 말을 걸었던 여자와 히비야 공원에서 우연히 다시 조우하게 되면서, 공원에서의 만남이 하루 이틀 이어진다. 급기야는 공원을 벗어나 사진 전시회도 함께 보러 가게 되고, 그곳에서 돌아 나오며 소설이 끝난다. 대단한 반전도, 조마조마한 갈등도 없다. 한마디로 사건이 거의 전무하다. 하지만 다음 줄을 읽게 만드는 묘사의 힘이 탁월하다. 빨간 기구를 공원상공으로 띄우는 노인을 비롯해, 저마다의 ‘파크 라이프’를 즐기는 여러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굳이 이유를 따질 필요도 없다. 그들이 왜 그런지를. “‘무언가가 항상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현대인의 존재의 불안감과, 뒤틀린 유머는 미미한 희망 같은 것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무라카미 류의 심사평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장을 모두 덮고 나면.


그녀와 헤어져서 혼자 히비야 입구로 걸어갔다. 분수 광장 앞 벤치는 약간 지쳐보이는 회사원들로 만원이었다. 예전에 “도대체 왜 모두들 공원으로 몰리는 거죠”하고 긴토 씨에게 물은 적이 있다. 긴토 씨는 평소와는 달리 진지하게 한참을 생각하다가 “한숨 돌리려는 거 아니겠어”하고 시원스레 답했다. 딱 떨어진 대답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대꾸 없이 그대로 지나치려 하자, “보라고, 공원이란 장소에선 말이야,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누가 뭐랄 사람은 없잖아. 오히려 누굴 붙잡고 권유를 하거나, 연설을 하거나, 뭔가를 하려고 하면 내쫓기지”하고 덧붙였다.1

흥미로웠던 대목 중의 하나다. ‘공원에서 무언가를 하면 쫓겨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을, 이 부분을 읽으며 처음 했다. 공원에서 어떤 새로운 걸 할 수 있을까, 공원이란 공간을 좀 더 색다르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만 고민했지, 공원의 금기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작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허락된 공간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쪽, 항상 저기 저 벤치에 앉지” 여자가 연못 건너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가지를 쭉 뻗은 소나무 밑에는 확실히 내가 혼자 이곳에 올 때마다 앉는 벤치가 있다. “그쪽, 저 벤치에 먼저 와서 앉은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 그 앞을 왔다갔다 하지? 요 며칠 전에도 먼저 와서 앉아 있던 커플 앞에서 일부러 휴대전화를 걸지 않았어? 큰소리로 3분 정도 계속 떠들어서 결국 그 커플이 못 버티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신나하던 그 표정, 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걸.”2


가장 신나하며 읽었던 대목이다. 참, 별거 아닌 부분인데 말이다. 공공 공간에 놓인 공공의 시설물이 순간적으로 한 개인에 의해 사적인 영역화가 이루어진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혹은 순간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게 왠지 꽤 근사해 보였다. ‘이 공원엔 나만의 벤치가 있다!’ 실제로 긴토 씨의 대답처럼 “한숨 돌리려” 혹은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위해 공원에 간다면 좋은 위치의 벤치를 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꼭 이 대목 때문은 아니지만, 이즈음부터 벤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그렇게 찍은 사진의 일부가 이번호 특집 원고에 실렸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의 공원이 아니라, 나의 벤치가 있었던가? 나의 ‘파크라이프’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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