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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귄터 보크트
보크트 조경설계사무소 설립자 겸 소장, 스위스취리히연방공과대학 석좌교수
  • 환경과조경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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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에서는 아티스트 댄 그레이엄Dan Graham과 조경가 귄터 보크트의 협력 프로젝트인 옥상 정원, ‘생울타리와 반사 유리 체험Hedge Two-Way Mirror Walkabout’을 선보이고 있다. 그레이엄은 반사 유리를 이용한 파빌리온pavilion으로 유명한 작가다. 그는 현대 도시의 대표적 소재인 철과 유리를 사용한 미니멀리스트minimalist 스타일의 추상적인 구성을 통해 서구 정원의 통인 파빌리온을 재해석한다. 그의 작품은 건축과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대 미술과 건축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전통적인 파빌리온이 정원의 초점focal point으로 작동하는 반면, 그레이엄의 작품은 주변의 환경을 반사하며, 공간을 나누고, 틀을 짓는 역할을 한다.

귄터 보크트는 스위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경가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이다.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 노바티스 캠퍼스Novartis Campus Park, 국제축구연맹 본부Home of FIFA, 런던 이스트빌리지East Village와 테이트모던 미술관Tate Modern Collection 등의 프로젝트는 조경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디자인 프로세스나 기저에 깔린 생각에 대해서는 이해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지난 5월 16일, 뉴욕건축센터Center for Architecture에서 열린 ‘도시의 자연Urban Nature: Between Human and Non-Human’ 콘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귄터 보크트를 만났다.


그에게서 이론이 단단하게 뭉쳐진 실무 조경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귄터 보크트는 최근 여러 강연을 통해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소개보다는 주로 현재 조경이 처한 역사적 맥락과 조경 설계의 환경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2005년부터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Eidgenö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Zürich(ETH Zürich)건축학과 교수직을 맡은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힘든 이유로 이미지에 기반을 둔 사고방식을 꼽았다. 즉 공공 공간이나 도시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경관의 각 요소에 대한 역사나, 그 요소들이 존재하는 이유, 각 요소의 구체적 작동 방법 등 전반적인 도시화의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건축이란 기본적으로 매우 제어된 상황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맥락을 무시하고도 작품이 성립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조경의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보크트의 논지다. 보크트는이미지 이전에 그 아래에 숨겨진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취리히와 스위스의 물리적·문화적 환경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현재 스위스 디자인의 힘을 뒷받침하는 토대를 세가지 요인으로 정리했다. 첫째, 스위스의 자연 환경이다. 알다시피 스위스는 항상 알프스를 무대로 살아왔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들의 조경은 낭만적인 이미지의 구축을 통해 발전해 왔다. 이에 반해 스위스는 혹독하고 위험한 자연 환경을 다루기 위해 언제나 실질적 가치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디자인역사가 전개됐고, 이 때문에 비교적 일찍 모더니스트 디자인의 원리를 받아들여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둘째, 스위스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정치 사회적 역사 과정이다. 스위스는 유럽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유럽연합EU에 속하지 않고 중립국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한 번도 왕정이나 귀족 정치를 거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스위스의 각 마을에는 직접민주주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다. 전통의 무게와 굴레가 제거된 상황에서 스위스는 독자적이고 실리적인 건설과 설계 문화를 개척해 왔다.

셋째, 스위스의 독특한 장인 문화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 과정이다. 학생들은 16세가 되면, 고등학교와 대학 교육을 받을지 아니면 도제apprenticeship 수업을 받기 위해 마스터의 견습생으로 들어갈지 결정해야한다. 대부분의 국가와는 달리 스위스는 각 전문 분야를 자격증 제도를 통해 보호하지 않는 반면, 도제 교육을 통해 이른 나이에 직업적으로 성숙한 프로페셔널을 길러냄으로써 높은 설계·시공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 지형으로 구성된 환경과 큰 나라들 사이에 끼어 시달려온 역사적 상황,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인해 말소된 전통 등 한국의 사정은 귄터 보크트가 묘사하는 스위스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 그는 종종 ‘랜드스케이프landscape’와 ‘랜드스케이프 파크landscape park’를 구분해 말하는데, 스위스는 ‘디자인되지 않은 랜드스케이프un-designed landscape’라고 한다. 구체적인 맥락은 다르지만 빠른 산업화를 거치며 대부분의 도시 환경을 실용성 위주로 건설해 온 한국의 경관적 여건도 이와 유사하다. 미국이나 서구 선진국처럼 우리와 국토와 문화적 여건이 다르고, 서서히 성장하고 성숙해온 나라들에 비해 스위스는 직접 참고 할만한 사실이 많다는 뜻이다. 인터뷰를 통해 귄터 보크트의 작품과 스위스 디자인은 어느 순간 이루어진 신화가 아니라 주목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 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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