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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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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마테른과 헤르타 함머박허
헤르만 마테른은 설계를 하기 위해 부지를 찾는 순간 이미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었더라고 전해진다. 도면위에 굵은 선을 던져 놓는 것으로 작업을 마치던 그는 말하자면 전형적인 예술가 타입이었고 임기응변에 능했는데, 그의 아내이자 동료였던 헤르타 함머박허는 파고드는 노력파에 고지식한 완벽주의자로 마지막 지피식물의 위치까지 한 치도 틀림없이 그려 넣었으며, 시공현장에서는 두려운 존재로서 초화류를 스무 번도 넘게 옮겨 심게 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마테른과 함머박허 커플은 각기 1인자, 2인자의 위치를 겨루며‘사랑과 이별 그러나 평생의 공동작업’ 이라는 그들만의 특이한 이야기를 엮어 간다. 대학시절에 만나 “CC"가 되고, 칼 푀르스터가 1929년 설립한 설계사무실에 나란히 취직이 된 이들 신혼부부는 곧 푀르스터와 의기투합하여 2년 만에 직원에서 동업자로 둔갑하게 된다. 이로서 20세기 독일조경의 트로이카가 탄생하는데 이들의 작업공동체는 그러나 1948년에 동서가 갈림으로서 일단 막을 내린다. 당시 74세의 고령이었던 푀르스터는 비록 포츠담이 공산화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으나 평생의 업이 담겨 있는 식물원을 떠날 수 없어 그대로 머물게 되고 헤르만 마테른은 헤센지방의 카셀로, 헤르타 함머박허는 베를린으로 각각 거점을 옮기게 된다. 마테른과 함머박허 부부는 1935년에 이미 이혼한 사이였다. 동료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관계는 계속 유지되었으며 그들의 정신적인 유대관계는 오히려 깊어져 갔다. 둘은 서로의 능력을 깊이 존중하였고 조경에 대한 이해와 기본개념이 같아 여러 차례 정원전시회를 함께 설계하였으며, 베를린의 국제건축전시회 (IBA)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을 공동으로 수행하기도 한다, 전후 마테른은 카셀대학에서, 함머박허는 베를린공과대학에서 각각 교수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파괴된 국토와 도시를 복구하고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찾는 움직임을 이끌어 가는 핵심멤버들로서도 이들의 길은 끊임없이 교차한다. 바우하우스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마테른은 몇몇 지기와 함께 바우하우스를 부활시키려는 시도를 해 보지만 실패하고 대신 카셀에 도쿠멘타를 개최한다. 한편 함머박허는 베를린공대 최초의 여교수로서 조경과가 아닌 건축과에서 조경을 가르치며 건축과 조경의 접목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바우하우스 건축이 표명하는 기능의 미를 항시 껄끄럽게 생각했던 그는 바우하우스 재건운동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근원이 자연으로부터 출발하였으므로 자연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되어야 하고 따라서 건축도 자연을 닮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유사한 견해를 가진 한 무리의 건축가들이 소위 유기적 건축으로 알려진 후고 헤링이며 루돌프 슈타이너이고 한스 샤룬이었는데 헤르타 함머박허를 베를린 공대로 불러들인 것은 후에 필하모니와 국립도서관건축으로 유명해지는 건축대학 학장 샤룬이었다. 함머박허와는 대학시절부터 알던 사이였고 함머박허를 독일 최고의 조경가로 인정하였던 그는 푀르스터의 세계에도 매료되어 있었다. 그의 “유기적 건축”이 생기기까지는 푀르스터 정원을 드나들며 보니머파와 수없이 나누었던 토론에 힘입은 바 크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용인 죽전3차 현대홈타운
· 위치 : 용인시 수지읍 죽전동 택지개발지구 1BL· 대지면적 : 112,448.00㎡· 조경면적 : 41,632.74㎡· 세대수 : 1,998세대· 시공사 : 현대건설주식회사(대표 이지송, 현장소장 이행기)· 조경설계 : (주)그룹한(소장 박명권, 이주희, 허대영, 김도연, 김은영, 문미영)· 조경식재· 시설물 : 아아조경(주)(대표 이광성, 전무 임재홍) 잔잔한 연못위로 드리워진 나무그림자가 정겹게 느껴지는 단지의 중앙공원 역할을 하는 친수공간이 보인다.한 켠은 감상을 할 수 있고 한 켠으로는 아이들이 물에서 뛰놀 수 있도록 한 이 친수공간에는 특히 당초 용인 죽전1번지로 불리우던 지역, ‘용의 탄생지’라는 기존 마을의 유래를 상기하고 싶다는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용의 알을 상징하는 조형의자와 사인물이 설치되기도 했다.또 다시 다양한 식물이 인도하는 보행로를 따라 동 사이를 거닐다보면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할 수 있는 작은 모임터도 여러 군데 조성되어 있다.어린이들이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테마 놀이터도 중간중간 만나게 되고, 야생화 화단과 건강을 위한 맨발지압로도 즐길 수 있다.온 가족이 함께 쉴 수 있는 넓직한 팔각정자와 평상, 듬직한 정자목 아래 주민들이 마주보고 얘기할 수 있는 쉼터, 그리고 각종 야생 들꽃이 식재된 화단도 조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연령층의 다양한 이용행태와 입주민들의 이벤트도 유도할 수 있는 대규모 다목적 운동장도 조성되어 있다.단지 외곽의 긴 산책로와도 연계되어 있는, 마중하고 기다리고 배웅하면서 즐겨 찾게 되는 곳인 보행자 출입공간에는 레벨 차이로 생긴 옹벽을 활용한 벽천을 조성해 마을 입구의 돌무더기 같은 자연석 사이로 시원한 물줄기가 청량하게 쏟아지는 풍치에 한여름의 더운 햇살도 잠시 잊을 수 있도록 했다.용인 죽전3차 현대홈타운에서는 여타의 아파트에서 보기 어려운 다람쥐들이 단지내 조경공간을 뛰어다니고, 풀벌레와 개구리 소리가 단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으로 건강한 아파트 단지로 조성해냈기 때문이다.단지 전체에 대형목이 주가 되는 풍성한 녹지를 조성해 기존 자연녹지와 연결되는 녹색의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는 죽전3차 현대홈타운에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를 비롯한 대형목들이 20여층에 달하는 건물군 사이의 시원스러운 조경공간에서 녹지의 상승곡선을 그리며 위압감을 완화시키고 있다. 부지의 고저차가 만만치 않아 조성과정에서 많은 입지적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에 주력했고, 그 결과 동과 동 사이의 레벨을 이용하여 모든 입주민들이 녹지와 함께 생활하고, 모든 세대가 공원을 감상할 수 있는 중정을 조성, 녹지속의 보행로를 만들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21세기 조경분야의 발전을 위한 환경생태계 · 설계의 역할
조경분야에서의 생태의 의미1973년 우리나라 대학에 조경학과가 새롭게 생기면서 처음 조경이 도입된 지도 벌써 한세대가 흘러가고 있다. 한 세대가 흐르는 동안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조경분야도 급격한 발전을 계속하여 왔다. 도입된 초기만해도 조경은 건축의 한 분야정도로 인식되었고, 건축 외부공간에 식물을 식재를 하는 것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그러나 점차 사회의 경제적인 성장으로 인해 여가생활이 발달하면서 조경에 대한 인식도 변화되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당당히 독자적인 분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으며, 21세기 환경의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이 글에서는 21세기 환경의 시대를 맞이하여 조경분야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여 재도약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자는 취지에서 “환경생태계획 및 설계의 역할 및 중요성”에 대한 내용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조경은 1858년 미국의 조경가인 Frederick Law Olmsted가 조경가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이후 보편화되기 시작하였고,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어 왔다. 조경의 정의는 용어자체를 해석하면 한자어로는 造景, 영문으로는 Landscape Architecture 로서, 단순히 “경관을 만드는 것” 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경관”이라는 용어를 보다 심도 있게 해석해 보면 매우 광범위한 분야임을 인식할 수 있다.경관은 “토지가 지형학적이고 환경적인 특성으로 묘사되는 것으로 토지와 그를 기반으로 하는 자연생태계, 인공구조물의 외형적인 모습과 속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경이라는 것은 결국 “자연과 인간문화를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조경가협회(ASLA: 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의하여 “조경은 토지를 계획 · 설계 · 관리하는 기술로서 자원보존과 관리를 고려하면서 문화적?과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자연요소와 인공요소를 구성함으로써 유용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라고 하였다.이러한 조경의 개념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조경은 경관을 다루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경관을 다루기 위해서는 자연의 원리를 이해해야 가능한 것이고,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는 생태분야는 조경에 있어서 필수적이라 말할 수 있다. 조경의 변화에 따른 생태의 적용우리나라의 조경분야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급격하게 변화하였듯이, 조경분야의 변화에 따라 생태분야의 적용도 변화하였다. 조경분야의 변화를 시기별로 나눠보면 조경의 도입기, 조경의 인식기, 조경의 발전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생태분야는 조경의 인식기에 도입되었으며, 조경의 발전기에 우리 사회에 생태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하였다.조경의 도입기는 1973년부터 1980년대 초반으로, 이 때 우리나라 대학에 처음으로 조경학과가 신설되기 시작하였고, 조경을 건축 및 토목의 한 분야로 생각하여, 조경은 건축 외부공간 및 기타 새롭게 조성되는 외부공간에 식물을 식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많았다.조경의 인식기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으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양재시민의 숲, 올림픽공원 등이 조성되면서 우리 사회에 조경의 필요성이 인식되었던 때이다. 이 시기에 조경분야에 “생태”가 도입되어 조경학과에 점차 생태전공이 생기기 시작하였다.조경의 발전기는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예를 들면 서울시의 정책수행에 있어서 조경분야가 중심 역할을 하면서 서울시 공원녹지 확충 5개년 계획, 천만그루심기 등의 사업을 통해 도심지에 녹지의 양을 대폭 확충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 생태분야가 조경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게되는데,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길동자연생태공원 등 생태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며, 각종 개발사업에서 환경생태특화 방안이 도입되고 있다. 따라서 조경에서 생태분야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라고 볼 수 있다.21세기는 조경의 확장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기존의 조경분야는 유지되면서 환경생태계획 및 설계의 적용을 통한 새로운 분야로 확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는 본질적인 조경의 개념에 적합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봉 호 Han, Bong Ho 서울시립대학교 건축도시조경학부 교수, 환경생태계획 전공(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이매동 갈보리교회 옥상정원
· 위치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갈보리교회 옥상· 면적 : 약 650㎡· 발주 : 갈보리교회· 설계· 시공 : 한국C.C.R.(대표 변동원) 이매동 갈보리교회의 옥상정원은 직사각 형태의 넓지 않은 면적에 조성되었다. 이용자가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주변으로 높지 않은 건물들이 입지해있는 덕택에 비교적 트인 시야를 확보함으로써 좁은 느낌을 상쇄하고 있었다.계단을 따라 올라 옥상의 입구로 진입하면 정면으로 목재데크가 보이고 작은 연못과 테이블이 방문한 이들을 맞이한다. 몇 걸음 들어서면 왼편에는 작은 담장이 설치되어 뒤쪽의 공간을 가렸다가 보여주는 효과를 통해 공간을 다소 넓어보이도록 하고 있다.중앙의 테이블 뒤로는 지장물을 가리는 목재로 된 벽이 위요감을 형성하고, 연못을 중심으로 왼쪽의 벽면 쪽으로는 옥상의 특성상 크지 않은 교목과 관목, 지피류가 다양하게 심겨있다. 옥상에 도입된 주요 수종으로는 산단풍, 둥근소나무, 선주목 등 교목, 하부의 산철쭉, 영산홍, 화살나무 등 관목, 그리고 애기원추리, 옥매화, 돌단풍, 맥문동, 산수국, 한라구절초, 상록패랭이 등 지피류들이 다양하게 심겨져 계절별로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작고 정형적인 연못이 있는 목재데크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우레탄칩으로 포장된 또다른 공간이 등장하는데, 이곳은 여러개의 파라솔과 의자가 배치되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담소를 즐기거나 야외 교육, 회의 등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였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목동 금호 어울림
· 위치 : 서울시 양천구 목4동 775-32번지 외 1필지· 대지면적 : 16,516㎡· 조경면적 : 5,236㎡· 시공사 : 금호건설(주)(대표 신훈, 현장소장 김상기, 조경담당 백승인)· 조경설계· 시공 : (주)대경(대표 박종본, 실장 안재우, 과장 조재운) 단풍나무 숲길을 지나 들어선 단지의 첫 느낌은 아름드리 대형 홍단풍과 세 그루의 조형소나무가 포근히 맞이해주는 인상으로 시작된다. 출입구에서부터 앞을 가로막는 건물측벽의 부담스런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고 곡선문양으로 치장된 플랜터와 조형성 수목으로 인해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연이어 나타나는 우측의 동과 동 사이 건물 측벽이 살짝 열어 보이는 곳은 동이 터오르는 곳이다. 대형소나무의 잎 사이로 떨어지는 빛이 솔잎의 향기를 담아 그림자에 다다르면 동녘으로부터 들어오는 햇살의 내음이 단지내 정취를 더 해줄 것이다.4동과 5동 사이의 광장에는 이삿짐 차량의 통과를 위한 인위적인 차도를 만들지 않고 어린이놀이터와 휴게공간을 인접시켜 세대간 거리를 두지 않았으며 원형패턴으로 깔린 점토벽돌이 열린 마당으로서의 공간으로 확장시켜준다. 밤하늘을 수놓는 별과 달, 혜성의 꼬리모양이 형상화된 놀이공간 주변부에는 느티나무와 벚나무를 중첩시켜 녹음의 볼륨감을 더했다. 휴게마당에는 인라인 같은 활동성 운동에 지장을 주는 단(段)처리를 배재하고 공간의 개방성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자유로운 휴식과 놀이시설물의 역할을 하는 물결무늬 장식조형물을 두어 단조로움에 변화를 주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호흡하는 빛 - 자연과 빛 그리고 인간과 공간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경관계획 및 경관설계의 현황과 과제
경관분야의 두 흐름비단 조경분야뿐만 아니라 건축 도시 토목 등 인공구조물을 다루는 모든 분야에서 ‘경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를 결과물로 실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경관’이라는 용어가 지니고 있는 다의성은 각 분야별로, 프로젝트별로 확연하게 다른 접근방식을 취하게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경관’분야의 실질적 주체, 결과물의 타당성, 구체적인 실현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현재 국내에서 경관과 관련된 프로젝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광역지역을 대상으로 기본계획적 성격을 지닌 ‘경관계획’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형공사설계,시공일괄입찰(이하 턴키) 내 구조물의 심미적 측면을 다루는 ‘경관설계’ ‘경관설계’는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턴키설계시 주변 경관분석과 구조물 디자인에 관련된 부분을 통틀어서 지칭한다. 경관계획은 ‘국토의계획및이용에관한법률(이하 국토계획법)’에 의해 광역지방자치단체(광역시 도)혹은 기초자치단체(시 군 구)에서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도시 기본계획과 관련성을 가지는 별도의 보고서 형태를 가지거나 도시기본계획 내 부문계획의 성격으로 발주되기도 한다. 경관계획과 유사한 명칭으로 경관관리계획, 경관형성계획 등이 있는데 최근에는 도시계획을 작성하는 광역시, 통합시의 경우 일반적으로 ‘도시경관 기본계획’으로, 도시, 자연, 농촌 등 복합적 경관을 지니는 자치단체(도, 군 등)에서는 ‘경관관리 기본계획’, ‘경관형성 기본계획’ 등으로 개념적 차이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와는 별도로 신도시개발에 따른 경관(형성)계획, 지구단위계획구역 내 경관계획, 도시 주요 축(녹지축, 하천축, 도로축 등) 정비 등이 경관계획의 주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경관설계는 도로(고속도로), 댐, 교량, 항만, 경전철 등 대형공사 설계,시공일괄입찰(이하 턴키) 심사에서 경관에 대한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턴키 시공사 혹은 주관사에 의해 경관부문이 별도로 혹은 조경설계 분야와 통합적으로 발주된다. 또한 턴키설계는 아니지만 송전탑 선로 선정 등과 같이 자연경관에 인공구조물이 들어서는 경우 경관에 대한 영향을 검토하는 것도 경관설계의 내용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일반적으로 계획-설계 과정이 그 경계가 모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경관계획/경관설계도 그 차이점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발주처, 경관형성 및 관리 대상 등에 따라 그 업역은 다분히 구분되어 있으며 다루고 있는 내용도 매우 상이하다. 여기서는 필자가 그 동안 참여했던 프로젝트에서 다루었던 내용과 실제 협의과정 및 경험을 토대로 경관계획/경관설계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 보고, 그 미래를 조심스럽게 전망해보고자 한다. (중략) 향후 전망과 과제경관계획/경관설계가 조경 및 관련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 시장도 매우 커졌음을 더 이상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관련분야에서 바라보는 경관에 대한 인식차이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지금도 경관계획/설계에 대해 조경 및 관련분야에서 많은 발전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관련 분야 간 영역다툼으로 오해를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관계획 및 경관설계는 조경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문제는 관련분야와의 이견을 합리적으로 좁혀나가면서, 경관 전문가로서 인정받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이를 위해서 우선 경관을 바라보는 관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즉, 지금까지는 경관의 개념이 주로 심미적 측면에 비중을 두고 다루어져 왔기 때문에 대상지 주변의 맥락과는 거리감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경관계획/경관설계는 심미적이고 미시적인 관점과 함께 대상지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거시적 관점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그와 동시에 경관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경관전문가라 하면 경관계획이든 경관설계든 과업대상에 대해 지역적 맥락과 함께 분석·해석·평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하며, 경관전문가는 이를 통해 타 분야와의 균형을 모색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과 동시에 창의적 디자인 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프로젝트 진행과정을 통찰하면서 타 분야에서 제시하는 여러 의견들을 조율하고 경관계획과 경관설계를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경관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앞으로 조경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경관과 관련된 프로젝트가 획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경관계획 및 경관설계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신 지 훈 Shin, Ji Hoon (주)그룹한 부설 경관생태디자인연구소 소장(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공간의 생산과 정치 권력
공간은 텅빈 것이 아니라, 온갖 사물들로 가득 차 있다. 지표상의 아주 미세한 공간에서부터 이 천체의 우주 공간에 이르기까지 완전 진공상태로 비어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물론 그 공간 속의 사물들은 고정불변으로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화해 간다. 이러한 점에서 공간은 마치 그 속의 사물과는 분리될 수 있으며, 따라서 사물을 담는 그릇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은 단순한 사물의 그릇 이상의 철학적, 사회적의미를 가진다. 즉 현실의 공간은 데카르트의 절대좌표처럼 선험적으로 주어진 공간 또는 백지 상에 그려지는 기하학적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물의 생성과 변화를 위한 존재론적 기반이 되며, 모든 인간 활동들이 전개되는 사회생활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의 조건으로서 공간과 권력 공간(그리고 시간)상에서 존재하는 사물은 지속적으로 생성, 변화하면서 또한 자신이 위치지워져 있는 공간을 변화시켜 나간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기본적으로 공간상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성을 벗어날 수 없듯이, 태어난 장소에서부터 죽음의 장소에 이르기까지 공간상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간다. 이로 인해 인간의 모든 활동들은 시·공간적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며, 사회의 구성과 발전은 시·공간적으로 조건지워진다. 즉 공간은 모든 사회적 생활의 물적 토대이며, 사회적 관계의 매개수단이요, 사회적 조직의 무대가 된다. 이러한 인간 사회의 활동은 시간의 역사를 만들어 가듯이, 공간의 지리를 생산하고 변화시켜 나간다. 이와 같이 인간 사회의 모든 활동들은 공간적 차원을 내포하고 있지만, 정치적 활동은 특히 그러하다. 왜냐하면, 권력은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간적 관계의 망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 공간은 텅 비어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항상 권력으로 충만하고 지배를 위해 편성?통제되고, 억압/저항의 정치가 전개되고 있는 힘관계의 장이다. 정치 권력은 공간상에서 공간을 매개로 공간에 의해 생성·작동·소멸한다. 이러한 점에서, 프랑스의 탈구조주의 철학자 푸코(Foucault)는, “모든 역사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다시 쓰여져야 한다 - 이는 또한 동시에 권력의 역사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근대적 공간의 생산과 권력의 창출 푸코에 의하면, 공간은 지배의 유희가 거듭해서 등장하는 무대, 권력과 지식에 관한 담론들이 실제적 권력 관계로 끊임없이 전환하는 장소로 간주된다. 에서 그는 벤담(Bentham)이 설계한 원형감옥(Panopticon)을 권력과 공간 간의 권계에 관한 연구에서 패러다임적 사례로 제시한다. 원형감옥은 그 중앙통제탑에서 직접적인 폭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각 감방의 죄수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원형감옥의 기술은 수인(囚人)들의 감화뿐만 아니라 근대적 공간의 발달에서 모든 측면들, 예로 정신병자들의 수용, 학교 아동들의 교육, 공장직공의 감시 등등 수많은 제도들의 공간구성에 응용된다. 물론 근대 이전의 정치 권력들도 공간 상에서 그리고 공간을 통해 창출?행사되었다. 이집트의 고대 국가들은 홍수가 범람하는 나일강 유역의 물리적 공간에 대한 통제와 더불어 피라밋과 스핑크스라는 공간적 상징물들을 통해 지배를 유지?강화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정치는 아테네의 구릉위에 높이 솟은 신전이나 도시의 아고라(agora, 광장)에서의 시민들 간 토론을 통해 발달했다. 뿐만 아니라 동양사회에서도 고대 중국은 황하의 치수를 통해 전제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고, 그 전제적 권력이 입지한 거대한 궁궐의 건축물들은 노골적 또는 암묵적으로 정치권력을 가장 잘 표현하고 행사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이러한 공간의 생산과 정치 권력 간 관계는 근대성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치밀해 진다. 특히 지식의 발달과 내재적 관계를 가지는 근대적 정치 권력은 정치적 합리화를 위한 공간 통제의 도구적 지식 또는 테크롤로지와 함께 발전해 나간다. 즉 근대적 정치 권력은 통제와 지배를 위한 공간 기술과 이의 실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권력-공간의 생성은 지배 집단의 권력이 가장 효과적으로 현시되도록 설계된 건축물의 구조나 공간적 편성 뿐만 아니라 개인의 미시적 신체 공간을 감시하기 위한 기술과 도구의 발달에서, 지역 사회 구성원들 간 공간적 포섭과 격리, 근대국가의 발달과 더불어 국경내 전체 영토를 통제하고 효율화하기 위한 계획, 나아가 세계적 규모로 전개되는 국가들 간 연합과 전쟁의 지정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적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근대 국가의 형성과 새로운 영토 구축 한 국가의 권력이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영토의 개념이 규정된 것은 근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도 물론 국가, 국경 또는 백성의 개념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을 통해, 오늘날과 같이 명확한 선으로 국경과 영토가 설정되고, 그 안에서 배타적 권력으로서 국가 주권이 규정되며, 이 주권이 행사되는 영토 내에서 정치적 공동체로서 국민의 개념이 형성되게 되었다. 이러한 근대 국민국가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영토 공간의 배타적 지배를 위하여 다양한 국토계획을 수립하고 개발사업들을 시행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국토계획과 개발사업들은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새로운 도로나 철도, 항만 등이 조성되었고, 공업단지와 주거단지들이 대대적으로 확충되었으며, 도심의 고층빌딩들이 대규모로 건설되게 되었다. 이러한 국토계획과 개발은 일차적 목적을 경제성장에 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 당시 정권은 자신의 정치권력을 정당화 시키고 더욱 강화시키고자 했다.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은 이러한 측면에서 당시 대표적인 국토사업의 사례로 제시될 수 있다. 엄청난 해외 차관과 월남전 참전의 피땀으로 얻은 자금을 투입하여 건설한 경부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 공간 축이었으며, 또한 동시에 이를 통해 서울로 인구와 경제적 및 정치적 권력이 집중하게 되는 지리적 통로가 되었다. 물론 조선 시대 이전에도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도로가 있었고, 우리나라의 새로운 도로 건설은 사실 일제의 침탈과정에서 본격화되었다. 일제는 한반도 침탈을 위하여 국토의 지질과 토지이용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사업을 시행하여 엄청난 공간정보를 확보하고, 나아가 경인선과 경부선, 경의선 등의 철도를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로, 이른바 신작로(新作路)를 건설하여, 한반도 통치를 위한 물리적 기반을 조성했다. 그 이전의 좁고 꾸불꾸불한 거리와는 달리 직선으로 쭉 뻗은 넓은 도로는 신문명과 연결되는 통로처럼 보였다. 그러나 신작로는 군대와 물자의 이동을 신속하게 함으로써 식민지 지배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한 공간정책이었다. 신작로나 고속도로의 건설과 같이 속도를 내기 위한 거리의 직선화는 정치적, 군사적 지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즉 거리의 직선화를 포함하여 공간 거리(즉 공간적 마찰)의 극복을 위한 새로운 수단과 시설들은 정치권력의 행사를 보다 신속하게 함으로써 공간의 지배를 용이하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맑스가 ‘시간에 의한 공간의 절멸’(즉 자본의 신속한 회전을 위한 공간 거리의 가속적 단축)이라는 개념은 단지 경제 성장의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 권력의 차원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오늘날, 교통·통신수단의 급속한 발전에서 상당 부분은 군사적 목적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며 특히 전쟁과정을 통해 이루어 졌거나 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미국에 의한 이라크 전쟁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전쟁은 이라크 침공에서 미국 군사력의 신속한 배치와 이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 상황을 실시간대에 전세계에 송신하여 일방적으로 미국의 입장에서 전쟁을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세계적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도록 했다. 최 병 두 Choi, Byung Doo · 대구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성남 판교지구 공동주택 설계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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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시민의 강
· 위치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동, 상동, 소사구 송내동 일원· 면적 : 시민의 강 연장 5.5㎞, 인접구간 포함 213,306㎡· 수로 : 평균폭 4m, 평균수심 0.2~0.3m· 발주 : 한국토지공사·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 : (주)한림조경기술사사무소(소장 김경윤)· 시공 : 화성산업(주), 삼풍건설(주)· 공사기간 : 2002년 5월~2003년 8월 부천 시민의 강은 총 연장 5.5km로서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변 완충녹지구간(연장 2.7km, 녹지폭 30m), 중동대로변 완충녹지구간(연장 2.3km, 녹지폭 28m), 흥천길변 완충녹지구간(연장 0.5km, 녹지폭 10m)을 흐르고 있다. 완충녹지 주요 결절부에는 어린이공원 3개소, 미관광장 2개소, 공공공지 4개소, 근린공원 1개소가 배치되어 선형의 강 주변으로 면적인 친수공간을 제공한다. 시민의 강 주변으로 시민들이 쉽게 강을 접할 수 있는 친수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당초 아파트 단지 안쪽에 위치하던 어린이 공원의 위치를 강쪽으로 변경하고 보행자 도로를 녹지로 변경해 시민의 강 부지에 포함시킨 덕에, 수변으로는 비교적 많은 휴식 및 여가공간이 조성되었다.복사꽃근린공원은 시민의 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굴포천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중수가 지하관로를 따라 이곳으로 보내져 폭포로부터 발원된다. 연못 앞에는 작은 정자가 마련되어 폭포를 감상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다양한 수중,수변 식재 덕택에 많은 물고기(시공 초기에 방류한 치어들이 지금은 제법 자라 팔뚝만하다), 곤충, 작은 양서류들이 서식하는 수생생태계를 관찰할 수도 있다.복사꽃근린공원외에도 시민의 강을 따라 걷다보면 다정한어린이공원, 꽃여울어린이공원, 새싹어린이공원 등이 조성되어 시민들이 공원에서 자연스럽게 물을 접하게 하고 있다. 수로에는 다양한 수초가 심겨졌고, 수로를 가로지르는 데크가 곳곳에 조성되어 수면위의 소금쟁이나 물고기들을 만날 수도 있다.추억의 강, 가족의 강으로 명명된 외곽순환고속도로변과 중동대로변의 수로 옆으로는 기존의 방음벽 대신 약 4.5m 높이의 마운딩을 조성했고, 보도와 자전거도로를 시민의 강으로 연접하여 조성하였다. 덕분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산책을 할 수도 있고, 조깅이나 자전거 타기 등의 운동도 가능하다.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중동 I.C.로 나오면 바로 만나게 되는 광장(축제마당)은 전체적으로 생태적인 수로의 분위기와는 달리 도시적인 느낌이 나는 공간으로 직선형의 수로와 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분수 주변으로 너른 마당도 조성되어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 등이 가능하도록 계획되었다. 공사하는 동안에는 계획부지가 완만한 경사도를 형성하고 있어 자연유하방식으로 물 흐름을 유지하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공사에 참여한 모두의 노력으로 지금은 제법 빠르다고 느껴질 정도로 물의 흐름이 좋은 편이다. 수로는 생태적 측면을 감안하여 자연석, 산석붙임, 자연토사구간으로 구분하였고, 식재수종은 자생수종 중 정화능력이 있는 정수식물을 선정하여 식재하였다.이처럼 수생식물들은 물론 다양한 곤충류와 어류까지 볼 수 있는 시민의 강은 자연을 접하기 힘든 어린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되었다. 시민의 강을 제대로 한바퀴 돌아보는 데는 천천히 걸으면 두세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물이 깨끗하고, 쓰레기도 보이지 않아 관리가 잘 되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는데, 어느새 부천의 명물이 된 시민의 강을 한번쯤 거닐어보기를 권한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나눔의 집을 찾은 아름다운 조경마을 가꾸기
-아픈 역사 보듬어 준 따듯한 조경사업- 일제의 강점시기를 지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악랄한 고문에 죽어나가고, 누군가는 친일파가 되어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며 비겁한 삶을 살았을 테고, 누군가는 세상에 나서지 않고 시대의 아픔에 울분을 삼키고만 있었을 것이다. 그 시대는 우리 모두에게 슬픈 역사로 남았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더 슬픈 것은 식민지 공간에서 일어났던 온갖 부당한 일들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점이다. 친일파의 친일 행위는 감추어졌고, 애국자로 둔갑하기도 했다. 그들은 권력을 획득했으며, 그 자손까지 영위를 누리는 기반을 마련했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와 같은 일제 청산 시도는 자기 발에 걸려 자빠지듯이 모두 실패했다. 나눔의 집이 웃었다 최근에 한 방송사 토론회에서 과거 청산에 반대한다는 한 교수가 일본의 “공창론”과 똑같은 발언을 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상업적 누드로 아픈 역사를 알리고 위로하겠다는 천박한 변명이 사회를 뒤집어 놓기도 했다. 식민지 시대의 고문은 사라졌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이 초토화되는 경험이었다. 어찌보면 고문보다 더 아프고 슬픈 일이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한 나눔의 집은 현재 신고된 130여명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중 10여분이 모여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최근 문제가 되었던 여자 연예인과 대학 교수가 다녀가면서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일본군 위안부” 란 태평양 전쟁 말기 강제로 끌려가 위안소에 감금된 된 채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한 분들을 말한다(나눔의 집 홈페이지 www.nanum.org 참조). 최근에는 진정한 참회가 없는 일본보다 더 무서운 우리 내부의 왜곡된 역사의식과 싸우느라 더 지친 모습이다. 그런데 웃을 일이 별로 없었던 나눔의 집이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바로 조경 때문에 웃었다. 아름다운 조경마을 가꾸기 이번 나눔의 집 조경사업은 지난 8월말 개최되었던 “2004한국환경?조경산학기술대전(집행위원장 한승호, 한설그린)”의 부대 행사인 “아름다운 조경마을 가꾸기(이하 아조마)”의 일환이었다. 주변의 소외된 지역의 환경을 개선해 준다는 취지의 “아조마”는 서초구청과 경기지방공사에서 적절한 대상지를 여러곳 추천받아 그 중에서 광주의 “나눔의 집”과 서초구의 “분토골 어린이 공원”을 최종 대상지로 선정한 바 있었고, 이번에 나눔의 집을 먼저 시공하게 된 것이다.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기금조성을 위한 골프대회도 열었으며, 대형 소나무 5주(고운조경, 대표 이주호), 이팝나무 5주(한국조경수협회, 회장 강인), 관목류(대한조경공사협회, 회장 이대성), 플랜터(한설그린, 대표 한승호) 등을 기증 받았고, 삼성물산(팀장 임삼춘)에서 공사지원을 하고 씨토포스(소장 최신현)에서 설계를 해 주는 등 여러 업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 대상지 규모는 비록 작지만, 많은 업체가 참여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의미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정서 담긴 소나무가 좋아 이번 사업을 통해 나눔의 집 생활관 앞 마당에는 아담한 정원이 하나 조성되었다. 애초 민족 정기를 되살리는 상징적인 공간, 방문자 및 할머니들의 휴식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하였으며, 현장의 여건에 의해 약간의 설계 변경은 있었으나 대체로 설계 의도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나눔의 집 입구 계단을 올라 앞 마당으로 들어서면 마당의 뒷부분, 즉 생활관의 바로 앞에 대형 소나무를 식재한 것이 정원의 배경이 되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대형 소나무가 공간에 전체적으로 푸르고 울창한 느낌을 주고 있다. 기존의 은행나무는 측면으로 이식하였고, 측면에는 이식된 은행나무와 함께 이팝나무, 관목류들을 심어 녹색의 느낌이 보다 풍부하도록 보완해 놓았다. 그리고 마당 중앙에 놓여진 동상 주변에는 플랜터를 만들어 놓아 시공전에 비해 한결 정리된 느낌을 준다. “나눔의 집”에 의하면 이후에 벤치 등 조경 시설물을 추가로 설치하고 기념 공원에 대한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소나무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잖아요. 그래서 이곳에서 소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매우 좋아하십니다.” 특히 우뚝 선 대형 소나무 몇주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 방문자들이나 할머님들에게 큰 힘이 되는 듯하다. 안신권 국장(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땅도 어느 독지가에 의해 얻었으며, 건물도 후원을 받았고, 이번엔 조경까지도 후원을 받게 되었다. 이런걸 보면 우리 국민들의 역사의식은 매우 높은 것 같다”며 예산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요즘 과거사 청산에 대한 찬반여론이 뜨겁다. 언젠가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사를 어떻게하면 잘 청산할 것인가라는 논의로 진전될 것이라 믿는다. 다만 할머님들 살아 생전에 진상 규명과 역사적 청산이 이루어 진다면 정말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지.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픈 역사의 상처를 조경이 따듯하게 감싸안은 듯 훈훈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시의 ‘그린파킹 2006’ 프로젝트
- 시민참여와 서울시의 지원으로 새로워지는 골목길 풍경 - 지난해 9월 시작된 서울시의 ‘그린파킹 2006’ 프로젝트가 1년여를 지나면서 그 결과물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린파킹(녹색주차마을) 2006’ 사업은 주차장이 부족한 서울시내 주택가의 담장을 허물고 그 대신 조경을 겸한 주차공간을 만드는 사업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차량 대수에 비해 주차장을 확보하는 일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부지의 확보 없이 주차장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과 주변 환경까지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녹색주차마을 조성사업을 통해 25개 자치구별로 1곳씩 선정된 시범마을에서 1천5백여 가구가 녹색 주차장 조성을 신청했고, 이중 1천여 가구의 공사가 마무리된 상태다(지난 10월 1일 기준). 즉 그동안 서울시내 주택 1천여 가구의 담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녹색의 주차공간이 만들어진 셈이다. 주차장 1면당 평균 550만원이 지원되며, 조경은 주민과의 협의를 거쳐 주택의 특색과 주인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모습으로 시공되고 있다. 담 허물기 공사가 마무리된 지역에는 보행공간을 확보하고 불법주차공간을 없애는 이면도로 정비공사가 진행중이며, 담이 없어짐에 따라 보안을 우려한 주민들의 요청으로 18개구 2백여 곳에는 CCTV설치 공사도 함께 진행중이다. 주차장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면도로를 정비하여 좁은 골목길 일부는 일방통행 도로로 만들고 보차분리를 통해 사고율과 불법주차를 줄이는 것도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 중의 하나라고 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는 주차장 조성이 가능한 주택주의 동의를 얻는 일이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한다. 대개 담당 공무원의 꾸준한 설득을 통해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일단 공사가 시작되면 결과물을 보고 나서는 대부분 만족해한다고 한다. 강남구 세곡동의 윗반마을에는 공사가 가능한 주택들 중 3곳을 제외한 28가구의 공사가 진행중이거나 완료되었는데, 마을 대다수의 주택들이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주민들의 유대관계도 돈독해지고 환경도 좋아져 호응이 높은 편이다. 이곳도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지만 한 집을 시공한 것을 보고 나서는 서로 해달라는 형편이었다는 것이 담당자의 말이다. 서울시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업 외에 30개 그린파킹 사업지구를 선정해 내년에 착공하는 한편, 향후에도 계속 신청을 받아 그린파킹 사업을 확산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린파킹 사업의 완료시기는 2012년으로 보고 있는데, 2006이라는 숫자는 사업의 50% 정도를 마무리하는 목표 시점인 2006년을 뜻하는 상징적인 숫자. 높은 담장으로 인해 커뮤니티가 형성되지 못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지던 주택가의 골목, 주차된 차량과 이를 피해 지나가는 차량으로 항상 위험하게 느껴지던 이면도로들이 이번 사업을 통해 안전하고 편리한 곳으로 새롭게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조경의 틈새시장을 찾아서
조경이란 무엇인가?한때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설계 업무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사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러 사랑스런 후배들에게 내가 아는 작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의무라는 생각에 시작한 강의가 벌써 10년이나 되었다.수많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누구에게나 꼭 질문을 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조경의 정의 -조경은 무엇인가 ?- 에 대한 질문이었다.건축이나 토목분야 같은 경우에는 간단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조경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조경이란 것을 문자 그대로 ‘경관을 조성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각가나 화가가 만들어내는 하나의 조각상이나 그림과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 「인간이 이용하는 모든 옥외공간과 토지를 이용,개발,조성함에 있어서 보다 기능적이고 경제적이며 시각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보존하는 생태적인 예술성을 띤 “종합과학예술이다”」 라는 『조경학원론』 책에서 정의를 외우고 한 적도 있으면서 그 말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지금도 이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곤 하던 기억이 난다. 이번 기회에 나름대로-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조경의 정의를 지면을 통해 내리고자 하는데, 이 내용에 동의한다면 여러분도 이후에 어디서든지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길 바란다. “눈을 떠서 보여지는 모든 대상을 다루는 분야”가 조경이다. 즉 내가 볼 수 있는 건축물이나 땅, 나무 등 모든 보여지는 것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효율적으로 다루는가 하는 것이 조경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이처럼 조경은 건축과 토목의 동등한 삼각관계가 아니라 건축과 토목분야를 통제, 조종, 계획하는 역할을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모든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 조경의 영역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모든 공간을 다루듯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의 디자인은 바로 조경가가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조경의 틈새시장을 찾아서그래서 나는 건축과 토목의 기본적인 업무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찾게 되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 사례들을 정리해보고 우리가 어떻게 선점해서 주도권을 잡아야 할 것인가 살펴보려 한다.그런 대상들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보면 우선은 공간디자인 분야 중에서는 환경 조형물이 있고, 구조물디자인 분야 중에는 교량디자인, 개념적 디자인 분야 중에서는 경관설계 분야가 우리가 접근해야 할 분야가 아닌가 한다.그러면 앞에서 제시한 3가지 분야를 순서대로 살펴보자. 교량 디자인최근 한강을 따라 밤에 다녀보면 보잘것없이 보이던 한강의 교량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되었는지 볼 수 있다. 교량은 A와 B지점을 연결해주는 길의 역할을 하므로 지금까지는 그저 기능적인 단순 교량으로만 인식되어져 왔다. 하지만 월드컵대회를 계기로 경관적인 중요요소로 인식을 하면서 최근에는 다수의 교량 디자인 공모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한다. 최근에 내가 참여한 교량디자인 현상공모만 하더라도 성산대교, 다수의 청계천 교량들, 무안과 영암을 잇는 무영대교, 관제대교, 무안 백련지 보행물 조형교, 평택로변 연결데크교, 대구 아양교, 싱가폴 보행교 등 정말 많은 교량현상공모가 시행되어지고 실제로 교량이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내 교량공모의 경우 주로 구조분야가 포함되어 있는 엔지니어링 업체가 참여하게 되고, 대부분의 공모가 외국 교량디자인 전문업체를 상대로 디자인을 의뢰하여 막대한 외화 낭비를 하고 있어 한국내에는 전문 교량디자인 업체나 디자이너가 없음을 간과할 수 없었다. 물론 대학교에 교량디자인 전문학과도 없긴 하지만……. 결국 누가 가장 근접하게 좋은 디자인 결과물을 내느냐가 중요한데, 그나마 지금까지는 경관디자인 회사라는 간판으로 산업디자인학과 출신들이 디자인을 간간히 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공간을 다루는 조경분야가 공간에서의 구조물로 조경분야만의 디자인 접근방법을 통해 도시내에 주요 시설로서의 교량디자인을 한다면 건축이나 기타 디자인 분야보다 더욱 양질의 교량디자인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참고로 네덜란드의 West 8이라는 회사가 디자인한 교량은 교량자체가 조형물인 것이 많다. 이 회사 사주도 조경가로 널리 활동중이 아닌가? 앞으로 무수히 많은 교량이 생겨날 것이며, 여기에 대비해 교량디자인에 관련된 구조역할분야와 색채, 형태 디자인 관련 지식에 관심을 가지고 조경분야가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면 새로운 영역을 우리가 먼저 차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최 신 현 David, Choi (주)씨토포스 대표(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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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볼리 가든
여전히 찌푸린 날씨가 시간마저 가늠하기 힘들게 하지만, 말로만 듣던 티볼리 가든이 바로 눈앞에 떡하니 서있다. 동행한 김은성 소장님의 얼굴엔 미소가 번지고, 약간의 흥분마저 느껴진다. 도대체 티볼리 가든이 어떤 곳이길래 테마파크에 관여했다는 사람들이 그리도 가보라고 그러는지 한번 내 눈으로 확인해보자는 오기 아닌 오기를 안고 이곳에 온지 이틀째. 시차적응도 적응이지만 백야현상이 나타나는 곳이라 아침도 오후같고 오후도 아침같은 얼떨떨함속에서 피곤함도 그리 문제가 되진 않는 듯 하다. 티볼리를 보러 간다니까 서양조경사 시간에 배웠던 이탈리아 빌라를 생각하여 유명한 빌라 많이 보라던 엉뚱한 소리처럼 필자 역시 처음엔 헷갈렸던 게 사실이다. 그냥 무지의 소치일 따름이다. 티볼리 가든은 1843년 George Cartensen에 의해 조성되었는데 그 동기가 대중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이끌고자 했다는 게 우리의 1980년대를 생각하게 한다. Cartensen은 영국의 Vauxhall의 경험을 티볼리 가든에 집중시켰으며, 1863년에 그랜드 바자, 1900년에 중국식 타워를 세운다. 면적은 약 8.3ha에 24개의 주요 어트랙션과 38개의 레스토랑이 있으며, 매년 하계에 하루 평균 4만명, 일년에 약 5백5십만명 정도 방문한다.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것 같은 내용은 ‘테마의 시대’에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으므로 재론할 필요는 없겠다. 연간 이용객수가 5백5십만이라면 우리나라의 대표적 테마파크인 에버랜드가 약6백8십만명에, 서울대공원이 연간 3백2십만명임을 생각한다면 어마어마한 숫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것도 겨우 2만 8천여평에. 무슨 대단한게 있긴 있나보다. 이런 생각이 필자의 머리에 떠오르자 하나라도 더 보고 가야되겠다는 욕심이 앞서기 시작했다. 티볼리 가든은 코펜하겐시 중심의 중앙역에 대로를 끼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찾기가 쉬웠다. 또 인근에는 시청과 시청광장이 위치해 있어, 집시로 보이는 이들의 작은 공연도 볼 수 있었다. 일단 65크로네, 한화로 치면 200원을 곱해서 약 1만3천원을 주고 웅장해 보이는 입구 게이트를 통과했다.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중앙에 대로가 나있고, 그 양쪽의 독특하게 생긴 철제 반원형 프레임에 조명등이 붙어 있는데, 왠지 약간은 촌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야간에 조명에 불이 들어온다면 괜찮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입구에 보이는 안내판을 한번 휘익 살펴보는데 국내에서 포스터로만 봤던 티볼리 가든과는 차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약 160년이라는 세월을 감안한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닌 것 같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니 군악이 들려오고 천막 쳐진 극장에서 황실 근위대의 군악연주가 펼쳐진다. 무대 앞은 젊은 사람보다는 노인층이 더 많아 보인다. 백발의 노인네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같이 온 듯한 할머니와 관람을 하는 게 부러워 보인다. 그나저나 대체 젊은 애들은 다 어디 있나? 오른쪽은 원형의 무대가 대칭되듯 서 있는데 거기선 야간에 정장차림의 노인들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열린다고 한다. 지금은 낮시간이라 그런지 빈 공간이다. 오케스트라 파빌리온을 지나니 길이 갈라진다. 일단 대로를 따라 둘러본 뒤 다시 세세히 보기로 하고 우측으로의 발길을 재촉했는데, 원형 연못에 있는 조형물의 형태가 독특하다. 원통형의 원기둥에 물이 차 있고 밑에서 기포가 올라온다. 물을 이용한 환경조형물인듯 하다. 야간에 주위에서 비추는 조명이 더욱 묘한 분위기를 만들 것 같다.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덴마크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다. 여기서 한가지 티볼리 가든이 여타의 테마파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선 식당이 무지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간단히 맥주한잔으로 갈증을 채우거나 패스트푸드를 먹을 수 있는 곳부터 예약을 해야만 식사할 수 있는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까지 방문객들이 가히 먹으러 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듯하다. 가만히 보니 계층이 어느 정도 나누어진다. 젊은 층은 패스트푸드를 팔고 있는 카페로, 가족이나 중년층은 Formal한 레스토랑을 즐겨 찾는 듯 하다. 레스토랑을 끼고 우회전을 하니 계단이 나오고 계단 중앙의 난간이 재미있다. 계단사이의 경계난간까지에도 세심한 신경을 쓴 것 같다. 그 뒤쪽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걸로 봐서 뭔가 재미난게 있는 것 같다. 앞서 지나온 레스토랑과는 또 다른 레스토랑들을 지나니 우리나라 재래식 시장골목같은 느낌의 소로가 나있고 그 주변에 갖가지 상점들이 즐비하다. 이 병 훈 Lee, Byoung Hoon (주)유림조경기술사사무소 실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고찰(古刹) 바닥
계룡 갑사 갑사는 여느 다른 사찰과 비교하여 특징적인 모습이 있어서 오랜 동안 기억에 남아 있던 사찰이었다. 강당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적묵당과 진해당이 배치되어 길게 널려있었던 파사드가 참으로 기억에 남는 곳이었고, 특히 강당의 현판에 계룡갑사라 휘 갈려 놓은 강한 필체의 글씨가 그 맛을 더해주는 곳이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고찰 갑사의 옛 모습은 1970년대에 발간된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이란 이름의 한 사진집에 모두 여덟 장으로 간추려져 있다. 요즘 들어 절을 다녀온 사람들의 목소리는 둘로 나뉜다. 어디에고 옛 맛이 남아 있지 않아 씁쓸하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새로 잘 지어놓아 좋더라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주로 전자에 속하는 편이다. 옛 맛이 나는 것이 낡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새로 지었다 (혹은 새로 개보수 했다)고해서 반드시 옛 맛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못살던 시절에야 어차피 개보수하거나 확장을 할 여력이 없었으니 거의 옛 모습 그대로 지니고 있었을 수밖에 없었다고 치면, 이러저러하게 근자에 크고 작은 개보수며 새로운 개발사업이 빈번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추이일수도 있다. 얼마 전, 오대산 월정사에서는 절 들어오는 긴 진입부의 도로포장을 반대하여 그 사업을 않도록 조처했다는 일을 어느 일간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도로포장에 그치지 않고 산길을 넓혀 번듯한 차도를 내려는 추이에 반하여 이미 계획되어 있었을 사업을 굳이 마다한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새겨 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갑사 들어가는 길목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티나는 고찰을 찾는 기분으로 가 볼 수 있었던 작은 산사의 이미지를 지닌 곳이 드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최근에도 그런 느낌을 주는 곳들이 여전할까? 갑사 들어가는 길목에서 옛날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서 그런 생각을 좀 해 보았다. 지금의 갑사 들어가는 길과 옛 사진에 남아 있는 그 길을 두고 잠시 생각해 본 것은, 예전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 볼 기회가 없었을 요즘 세대들을 위해서도 참으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는 점이었다. 게 중에는 혹 절 들어가는 길목의 포장 같은 작은 일이 무슨 사찰의 원형훼손이니 원형보존의 문제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꺼리가 되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찰의 원형이란 곧 사찰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것이고 그 이미지의 보존이란 것이 반드시 대웅전 일곽에 머물러 있는 절대적인 경관 가치로써 이야기될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히 생각하여, 갑사 들목에서는 그냥 바닥에 블록으로 깨끗하게 포장을 하여 걷기 편한 좋은 길을 마련한 것 외의 별다른 일은 없어 보인다. 변화는 결코 대대적인 개발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바닥 포장이라는 사소한 시설물 공사가 사찰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는 것임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략) 내 생각에는 사찰에는 바닥이든 석축이든 대개가 자연석 혹은 흙바닥이었다. 새로 포장을 한다거나 계단을 잘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사찰에는 잦은 개보수 작업이 생긴다. 반드시 옛 모습을 간직한 채 흙바닥이며 자연석으로 처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걸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마감되어야 할 것인가를 살펴 그 해법을 자연스럽게 도출해 보려는 것이다. 쌍계사든 화엄사든 잘못된 것과 잘 처리된 것이 같은 경내에서 함께 하고 있었다. 문제점과 그 해답이 바로 인접하여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문제점으로 나타난 것들은 근자에 이루어진 일이고 해답을 가진 것들은 보다 전 세월에 손질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한마디로 의견을 내 보이자면, 가능한 한 기존의 현황에 가깝게 (덜) 다듬어진 재료로 마감되어 갈 때 가장 어색하지 않은 마무리가 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산사를 찾았다가 몹시 씁쓸한 뒷맛을 안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옛 맛이 없다”고 하는 이면에는 기실 도시의 차도 변에 깔아 놓은 보도 불럭 같은 전통사찰의 바닥에서 비롯되는 그 아쉬움의 토로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정 기 호 Jung, Ki Ho·성균관대학교 건축·조경 및 토목공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스토우 풍경식 정원
런던의 북서쪽 Buckinghamshire에 위치하고 있는 Stowe 정원은 풍경식 정원 중 가장 매력적인 장소의 하나로, 단지 영국을 대표하는 정원일 뿐 아니라 당시 유럽 조경계의 거장들의 역사적인 손길을 느끼며 18세기 정원양식과 정원 조성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이상적인 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1593년부터 Temple 가문에 속해 있던 이 지역은 정원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Richard Temple경 (1643-1697), Cobham자작 (1675-1749), Richard Grenville (1711-1779), 그리고 Buchingham의 첫 번째 공작인 George Grenville공작 (1753-1813)의 4명의 연속된 소유주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풍경식 정원으로 변모될 수 있었다. 이 곳이 풍경식 정원으로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사회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바로크시대까지 여러 정원양식들이 계속 발전되어 왔지만 그 발전을 방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반대의 견해를 가진 정원들은 큰 흐름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태리, 프랑스 등 절대적 왕조의 고전주의를 지나면서 이에 반하는 영국의 자연주의운동은 실제로 정원역사에서는 혁명과도 비유될 수 있었으며 아울러서 17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는 경험적으로 점차 민주주의를 배우게 되었다. 민주적인 Whig당이 당시의 지배적이며 보수적인 Tory당과 반대세력으로 등장하는데 Stowe 정원은 Cobham경 (후에 자작 칭호를 받음) 등이 Whig당의 핵심당원으로 관계해 이런 반대세력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특히 이곳의 사원을 비롯한 많은 구조물들은 이런 정치적 이념이 그 내용에 표현된 기념물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략)Stowe 정원을 풍경식 정원으로 개조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W. Kent도 이 당시 영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유럽대륙으로 여행을 떠나듯이 이태리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이미 조성된지 200여년이 지나 많이 훼손되어 폐허형태로 남아있는 르네상스 시기나 바로크 시대의 정원들은 마치 17세기 풍경화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조성당시의 의도된 모습이 아닌 새로운 시대정신의 풍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그는 티볼리의 신전을 복제하는 일, 또는 이태리 정원에서 받은 영감으로 재해석된 캐스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이태리 풍경을 영국식으로 해석해서 작업을 하게 된다. W. Kent는 화가, 건축가로 활동하다 조경가로 일을 하게 되는데 그의 탁월한 미적 감각은 원예에 대한 전문지식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원을 그림처럼 경치를 그려가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18세기 초 Richard Temple 경은 정원 조성과 기존 주택의 개조를 위해 조경가 Charles Bridgeman 과 건축가 John Vanbrugh 경을 불러들여 구부러진 길과 정형이 아닌 비정형의 축 등을 조성하면서도 이미 조성되어있던 프랑스식의 정원 양식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C. Bridgeman의 조성 방식은 정형식 정원은 아니었고 아마도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풍경을 정원에 도입한 조경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처음 정원조성에 도입한 “Ha-Ha"기법은 원래 프랑스군의 참호를 파는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정원을 산책하면서 경계부근에서 갑자기 도랑을 발견하고 놀라면서 ”아하“ 하고 말하는데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주변에서 기르는 가축들이 정원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하면서도 울타리 등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매혹적인 풍경이 단절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생각된 것인데, 울타리 없이 경계를 지어주는 이 건조한 도랑은 특히 주변의 풍경을 함께 정원조성에 이용하는 풍경식 정원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기법으로 후에 W. Kent도 널리 사용하였다. 김 인 수 Kim, In Su 환경조형연구소 그륀바우 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