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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공공공간으로서 광장
  • 환경과조경 2004년 7월
최근 광장과 광장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시청 앞 잔디광장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광화문을 시민문화광장으로 만들자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높다. 그렇다면 과연 광장이란 무엇인가? 광장의 기능은 무엇이며 그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가? 또 현대도시에서 광장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광장은 도시의 공공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의 공공공간이란 집 안으로 대표되는 개인의 사적공간과는 구분되는, 집 밖을 말하는 것으로 도시민이 자유로운 만남을 하는 공간이다. 여기에선 사적영역에 이루어지는 행위와 구별되는 공적, 종교적, 상업적 또는 정치적인 행위들이 이루어진다. 서구도시의 공공공간은 길과 광장으로 대표된다. 광장을 뜻하는 plaza와 piazza가 open space 또는 broadened street 를 뜻하는 라틴어 platea에서 유래한데서 알 수 있듯이 광장은 길과 연속된 공간이면서 길이 넓혀진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광장은 고대 유럽에서 길과 구별되는 독특한 형태를 갖는 도시의 공공공간으로 발전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와 로마시대의 포럼은 유럽의 대표적 광장이다. 아고라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시민회의가 열려 공적업무와 법적토론이 행해졌고 시장의 기능도 혼합되었다. 여기에 스토아를 세워 공간의 경계를 정의하기 시작했는데 로마는 이것을 받아들여서 열주들에 의해 둘러싸이고 그 뒤에 공공기관들이 둘러있는 포럼을 발전시켰다. (사진 아고라/ 사진 로만 포럼) 광장의 기본형태는 사각형이다. 그래서 광장을 스퀘어라고도 한다. 건축가 레온 크리에는 스퀘어는 인류가 발견한 도시공간을 사용하는 최초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로마에서는 점차 사각형태가 아닌 다양한 기하학 형태의 포럼을 건설했다. 나아가 로마에서는 중요한 길에도 열주를 세워 공간을 정의하고 길이 만나는 부분은 개선문을 세워 도시 공공공간을 기념적으로 꾸몄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포럼과 같은 공공광장은 당시 공적생활의 중요한 장면들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곳은 도시의 외부공간이지만 하늘이 열린 공공집회장이자 연주 홀 또는 시장이기도 했다. 서양 중세의 도시도 이러한 광장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의 쇠퇴 이후에도 유럽남부는 로마의 도시구조와 공공공간의 흔적을 보유했고, 북쪽의 경우는 12세기 이후에 도시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중세유럽의 도시에서 광장은 시장으로 출발한 경우가 많지만, 시장과 종교, 정부가 공간 사용의 주도권에 대한 긴장과 타협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공공간을 만들었다. 중세도시의 광장은 로마나 그리스처럼 외부공간이 열주와 기념비적 건물로 둘러싸여 광장의 공간적 경계를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시장의 기능이나 종교시설의 광장으로, 또는 시청 앞 광장으로 도시의 중심적 공간을 형성했다. 이러한 기능들은 분리되기도 하고, 또는 혼합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사르트르 성당 앞 광장에서는 시청의 승인하에 상행위가 이루어졌다. 광장이 다시 기념비와 열주 등으로 디자인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에 이르러서이다. 르네상스시대에는 광장의 형태를 로마시대와 같이 다시 규격화했고 바로크시대에는 광장에 극적인 디자인 부여했다. 이후 도시공간은 다시 공공의 퍼포먼스가 행해지는 무대장치나 극장과 같이 쓰였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공공공간을 서구사화에서 공공영역의 역사와 괸련지어 설명한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공론장 또는 공공영역은 집으로 대변되는 사적공간과 구별되는 공적인 영역으로 시민들이 모여 서로 토론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자발적인 정치적 참여가 일어나는 장으로 민주적 정치행위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나 로마의 포럼은이러한 공론장의 행위가 일어났던 대표적 공공공간이다. 중세 말이나 르네상스시기에 도시의 공공공간은 축제의 장소로, 또는 귀족이나 왕의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무대장치로 사용되었다. 이를 통해 도시민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의식을 느낄 수 있는 공공공간이 광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8세기말 이전까지 공공공간은 주로 왕과 귀족의 권력을 표상하는 장소로, 그리고 백성은 그들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강요받는 공간으로 디자인 되었고 사용되었다. 18세기말 시민혁명은 이러한 도시의 공공공간을 민주적 공공영역으로 바꾸어 놓았다. 18세기 이후 급격히 도시인구가 팽창하고 부르주아적 도시대중이 형성되면서 그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고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형성됐다. 신문과 잡지가 등장하면서 자유롭게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게 되었고, 서로 만나 토론하고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새로운 공론장의 장소로 거리와 광장, 커피숍, 까페, 술집 등이 사용됐다. 이로부터 공공공간의 개념은 대중토론과 집회를 통한 여론형성의 장으로 확장되었고, 도시의 공공공간은 이러한 합리적인 부르조아 공공영역의 모델이 되었다. 현대도시에서 광장은 과거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시장, 퍼레이드 그라운드, 교회나 시청 광장은 중세의 유적들이며 이것이 가진 상징적 의미와 원래의 기능은 상실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상거래를 하는 광장에 기대어 삶을 지탱하지 않는다. 공공광장은 더 이상 대중 축제의 공간이나 우리의 일상생활의 요구를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유럽도시 광장의 오픈스페이스는 단지 도시공간의 무료함과 단순함을 해소하는 공기와 빛을 제공하는 공간일 뿐이며 오직 보존에 의해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지금 우리가 도시에 광장을 만든다고 해서 과거와 같은 광장의 기능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도시에서 만들어진 광장에는 실패한 사례가 많다. 현대인은 텔레비젼과 전자 통신, 신문의 매체를 통해 소통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연설을 듣거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러 광장에 나가지 않는다. 현대도시의 외부공간에서 대중의 접촉은 도시민의 일상생활에서 사라졌고, 도시의 공공공간에서 공적생활의 장면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시장기능은 간혹 열리기는 하지만 점점 내부공간화하고 있다. 또, 광장은 보행자를 전제로 하는데 현대도시는 보행자위주가 아니다. 도시가 보행자위주로 되지 않는 한 광장의 의미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광장문제는 그래서 문화적인 것이고 우리의 삶의 방식과 결합되어있다.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고 정보기술이 발전한 현대도시에서 도시민은 대중적 경험으로부터의 소외되고, 이것은 광장을 광장답게 사용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가 된다. 현대도시에서 공공공간의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이러한 상황에 근거를 둔다. 이 상 헌 Lee, Sang Hun·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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