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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전시 정원의 기회와 남겨진 과제
Seoul International Garden Show 2025, Opportunity and Challenge of Show Garden
정원과 공원의 경계와 개념이 희미해진 시대의 틈을 비집고 공원과 정원 사이를 기웃거리는 혼종의 정원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5년 제1회 서울정원박람회를 기점으로 정원 문화 확산과 대중화를 목표로 한국형 전시 정원 모델이 출현했다. 학생, 시민, 기업, 전문가 등 다양한 주체의 참여는 정원 문화 저변의 확대에 일부 기여했으며, 전시 정원은 저년차 조경가의 성장을 위한 관문이자 정원 작가 등용문이 되었다. 최근에는 기업이 기후 위기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며 시민과의 연결을 꾀하기 위한 기업정원을 조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박람회 종료 후 유지·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존치 정원, 특별한 차별점이 없는 주제와 유행에 영합한 디자인 전략, 브랜드를 위한 테마파크가 된 정원 등 전시 정원의 한계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10주년을 맞아 보라매공원을 시민대정원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선언했다. 4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보라매공원은 관악구와 영등포구와 맞닿아 있어 많은 시민들의 일상 공간으로 큰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의 대상지인 보라매공원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111개의 정원이 조성됐다. 특히 올해에는 기업·기관·지자체 정원의 수가 대폭 늘어났는데, 기업정원의 개수가 20개에 달한다.
열 번째 행사라는 의미 있는 숫자를 기념하며 전시 정원 소개를 넘어 서울정원박람회의 방향 재설정을 모색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의 가치와 역할을 되짚고 남겨진 과제를 살핀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사진 유청오 디자인 팽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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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세계로, 가든라이팅 _ 이명준
동네 공원 + 정원 = 시민대정원? _ 서영애
도시 ESG 전략으로서 기업정원 _ 이호영
초청정원
세 번째 트랙 _ 박승진
비행사의 정원 _ 마크 크리거
작가정원
금상 | 마지막 식사 _ 김기한
은상 | 영원한 생명의 정원 _ 김윤빈
네스팅 _ 틸 레발트·가르트흐 볼리손
동상 | 워터루츠! _ 알레산드로 트리벨리
제3의 플라타너스 숲 _ 이양희·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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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작가정원 국제공모
주제 세 번째 자연
규모 5개소(250㎡ 내외/개소당)
지원금 7천만원(개소당)
상금
금상: 1천만원(1팀)
은상: 6백만원(2팀)
동상: 3백만원(2팀)
주최 서울특별시,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
주관 환경과조경, 동아일보
위치 서울시 보라매공원 일대
기간 2025. 5. 22. ~ 10. 20.(박람회 이후 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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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정원의 세계로, 가든라이팅
언제부터였을까, 정원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어릴 적 분재와 꽃꽂이 취미의 유행으로 여성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식물이 2010년대 이후 정원박람회라는 대형 이벤트와 SNS 콘텐츠의 주요 소재가 되면서 전국민 모두가 즐기는 밈(meme)이 되었다. 오픈스페이스와 생태 서식지가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 대응의 방편으로 우리 ‘사회’에 들어왔다면, 정원은 우리 감각에 미적 즐거움을 주는 매체(medium)로 우리의 ‘일상’에 향수처럼 퍼졌다. 일반적으로 공원과 오픈스페이스 디자인이 도시, 문화, 생태적 맥락 등을 신중히 고려한 사회적 예술이라면, 정원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순수한 창의성으로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자율적(autonomous) 예술 활동이다. 그리하여 우리 문화에서는 정원 디자이너를 종종 정원 ‘작가(author)’라 부른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서울정원박람회는 보라매공원이라는 거대한 오픈스페이스를 정원의 세계로 탈바꿈시켜 현재 한국 정원 디자인과 문화의 최전선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디자이너의 자기완결적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가정원과 초청정원, 기업‧기관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공간 디자인을 통해 구축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기업‧기관정원, 정원 디자인 교육의 산물인 학생정원 등 다채로운 정원 팔레트가 공원 도처에 펼쳐져 있다. 박람회장 입구에 다다르면서 우리는 서서히, 그러나 강력하게 정원에 가스라이팅, 아니 ‘가든라이팅(gardenlighting)’ 당하며 정원의 세계에 빠져든다.
의미를 경험으로
지난 십여 년 동안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정원 디자인의 미묘한 변화가 관찰된다. 무엇보다 정원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강박이 줄어들고 대신 직관적으로 정원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연출 전략이 펼쳐지고 있다. 거대한 의미를 정원의 구성에 대입하여 설계 설명 없이는 좀처럼 감지하기 힘들었던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이, 재료의 물성과 시설물의 형태로 공간에 구체화되고 현상학적인 분위기로 연출되면서 우리에게 직관적으로 체험된다.
김윤빈의 ‘영원한 생명의 정원(Garden of Eternal Life)’은 생태계의 순환, 정원의 생태성, 자연과 인간의 관계라는 의미를 원형(circular)의 공간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작품의 경계를 구성하는 링 형태의 동선 구조물 하부는 고사목으로 장식된다. 죽은 나무의 단면을 드러내어 방문자에게 목재 분해 과정을 시각적으로 알아채도록 하여 정원의 생태적 작용과 생태계의 순환을 재현하고 있다. 정원의 내부는 숲 경관, 습지 경관, 초지 경관을 조합하여 생태계를 재현한다. 이 중 숲 경관에 마련된 작은 샘에서는 물을 마시며 가볍게 춤을 추는 듯한 새들의 몸짓이 눈앞에 펼쳐진다. 방문객이 내딛는 동선 표면을 내후성 강판의 거친 물성으로 처리하고 돌더미, 쓰러진 나무, 자생종 초지 등의 거칠음과 병치시켜 인간 문명과 야생 자연의 회복력을 체험하도록 한다.(각주 1) 이와 유사하게 틸 레발트(Till Rehwaldt)와 가르트흐 볼라손(Garth Woolison)의 ‘네스팅(Nesting)’은 새의 둥지 형태에서 모티브를 얻어, 공원의 자연 재료를 생태적으로 부식시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기능을 하는 거대한 나선형 미로 구조의 둥지 구조물을 만들어 생태계의 사이클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정원 디자인 전략은 조경 이론가 엘리자베스 마이어(Elizabeth K. Meyer)의 이론을 설명하는 적절한 사례가 된다.(각주 2)마이어는2008년에 발표한 에세이 “지속가능한 아름다움(Sustaining Beauty)”에서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경험의 구축(constructing experiences)”으로 설명하고, 그러한 경험이 “우리를 세계와 연결하고, 생각하게 하고, 함께 있도록 만든다”라고 주장했다. 두 정원에서 생태계의 순환이라는 개념은 경관을 매개로 재현되어 방문객에게 하나의 현상으로 경험하게 하고, 그러한 경험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자율적 형상
정원의 형태 만들기가 이전보다 자유로워졌다. 직선보다는 자유 곡선이 많아졌고 시각을 즐겁게 유희하는 기하학적 패턴이 증가했다. 형태 만들기가 자유로워졌다는 말은 경직되지 않은 비정형적 형태를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무리하게, 직관적 공간 디자인의 원천이 아닌 단순한 디자인 레토릭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디자인 태도다. 외부적 여건을 참조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결정적(self- determined)인 경관의 형태를 빚어내는 예술가적 접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에서 아름 다움은 개념에 의한 것이 아닌 대상에 대한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 의 판단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각주 3)실용적이거나 도덕적인 목적을 비롯한 일체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파악하는 태도. 정원 디자인이 기능과 교훈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공원과 도시 디자인에서 요청되는 다양한 맥락에서는 다소 해방되어 작가 의 마음 가는 대로 순수한 감각적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 정원의 자율적 형상 추구는 20세기 초중반 모더니스트의 접근법을 닮았다. 모더니즘 조경의 아이콘인 토머스 처치(Thomas Church)와 로렌스 핼프린(Lawrence Halprin)이 함께 디자인한 주택 정원인 ‘도넬 가든(Donnell Garden)’에서 콩팥 모양을 닮은 소위 생물 형태적(biomorphic) 수영장은 건물의 중심축을 느슨하게 풀어헤쳐 배치한 것 같다. 이번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 조성된 알레산드로 트리벨리(Alessandro Trivelli)의 ‘워터루츠(Waterrooots)!’는 간결하지만 자율적인 형태가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한과 통로를 상징하는 원형 형태의 금속 재질 링 구조물이 지상 위에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 지표면에 부정형의 형태가 강조된 서로 다른 크기의 금속 화단 경계가 마치 땅에 새겨진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내부에는 식물이, 주변에는 군데군데 암석이 배치되어 있다. 다양한 형상의 화단이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동선을 따라 걸으며 식물을 감상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링 구조물이 하나의 창틀이 되어 하늘을 담고 있어 무한성의 경험으로 이끈다.
예술로서의 정원
정원은 조경 디자인을 예술로 읽히게 한다. 정원은 19세기 사회적 예술인 공원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조경 예술 형식의 하나였다. 제1의 자연인 야생의 자연을 순치해 일군 제2의 자연인 인간의 문명, 여기에 바로 인간의 문화적 욕구를 반영하는 제3의 자연인 정원이 만들어졌다. 정원 디자인은 조경 고유의 업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원 예술은 조각, 미술, 건축, 원예 등 다양한 분야가 혼성적으로 결합된 다학제적 실천이자 공간, 시간, 생태를 다루는 하나의 ‘확장된 장(expanded field)’ 속에 위치한다.(각주 4)어쩌면 조경은 정원 덕분에 대중에게 보다 친밀하게 예술 장르로 인식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의 작품은 유럽의 대지 미술적 접근인 생태 예술의 경향을 보여준다. 미국의 대지 미술이 거대한 규모와 재료의 거친 물성을 강조해 땅을 조각처럼 형식적으로 변경하면서 숭고의 미학을 드러냈다면, 유럽에서 전개된 생태 예술은 자연의 프로세스 기반의 설치 미술적 접근을 통해 생태학적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앞서 설명한 ‘영원한 생명의 정원’과 ‘네스팅’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나무의 자연적 분해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생태학적 순환을 재현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원이 물성, 형태, 디테일에 대한 탐구를 주로 정원 시설 물의 디자인을 통해 드러낸다. 공원 부지의 평평한 특성 때문인지 지형 을 디자인하는 정원은 드물다. 마이어는 조경을 대중에게 예술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조경 디자인의 근본이자 전제 조건”이라고 하면서 하이퍼네이처(hypernature) 디자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각주 5)다소 과장되고 증폭된 자연의 특성을 재현하면서 자연처럼 보이는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김기한의 ‘마지막 식사(The Last Meal)’는 흡사 페트리 접시(petri dish)처럼 보이는 금속 재질의 거대한 원형 수반을 테이블로 형상화하고 내부를 얕은 수공간으로 마련해 개구리밥으로 가득 채워 우리의 농경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주변에 심은 큰 잎이 도드라지는 머위와 토란이 자잘한 개구리밥의 질감과 대비된다. 농경지 풍경을 원형의 밥상 위에 올린다는 연출 전략은 그 자체로 독특한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정원, 환경 가치를 전달하는 매체
정원은 감각적 아름다움과 더불어 환경에 대한 생각을 담아내면서 비 로소 예술로 완성된다. 자율적 형상 만들기와 현상학적 경험의 연출은 방문자에게 환경적 가치라는 교훈을 자연스레 전달한다. 과거의 정원 디자인이 환경적 가치를 텍스트를 통해 교조적으로 주입하려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러한 교훈이 정원 공간에 구현되어 우리의 감각적 경험을 통해 체화된다.
마이어는 조경의 지속가능한 아름다움은 경관의 겉모습의 성능(performance of appearance)을 통해 완성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성능은 생 태적 기능을 넘어서 사회적·문화적·환경적 가치를 포함한다. 경관의 경험은 우리에게 “환경을 알아보고, 돌아다니고,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지도록 하면서, 환경 가치를 배우고 가르치는 지속가능한 실천 방식”이 된다.(각주 6)앞서 설명했듯 작가 정원들은 생태학적·환경적 가치를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체험하도록 한다. ‘영원한 생명의 정원’에서 생태계의 순환 은 목재의 분해 과정을 관찰하고 숲, 초지, 습지 경관을 순회하면서 경험되며, ‘마지막 식사’에서 방문객들은 생태적 생명력이 느껴지는 수생 식물이 가득한 테이블 앞에 둘러앉아, 우리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시작할 수 있다. 초청정원인 마크 크리거(Mark Krieger)의 ‘비행사의 정원(Aviators Garden)’은 우리 땅에서 자랄 수 있는 숙근초를 이용해 야생 벌과 조류의 서식 공간을 조성한다. 군데군데 배치된 고목들은 수많은 작은 구멍을 통해 야생벌의 미래 서식처로 기능하는 동시에, 자라나는 나무처럼 연출되어 설치 예술 작품으로 감상된다. 표지판에 적힌 설명을 찾아 읽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생태 서식처의 중요성을 알아챌 수 있다.
브랜드스케이프
기업·기관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투영된 정원은 대중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면서 공간적 홍보 수단으로 기능한다. 반대로, 정원 디자인을 대중의 이목에 집중시키는 좋은 소재가 바로 유명 기업과 기관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전자를 브랜드의 정원화로, 후자를 정원의 브랜드화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실로 이번 박람회장의 기업·기관정원은 방문객으로 가득하다. 오픈니스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농심의 ‘인위자연’은 식품 회사인 농심 브 랜드 로고와 식품 제조 과정에서 모티브를 얻어 정원 시설을 디자인한다. 로고의 형태를 한 여러 개의 수반은 캐스케이드로 구성되어 차례대로 물이 흐르며 식품 공정을 떠올리게 하며, 과감히 로고 형태와 색상을 한 조각품은 모빌이 되어 정원 부지 위를 하늘하늘 부유하며 방문객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킨다. 국립생태원의 ‘순환하는 원, 생태정원’은 사방으로 뻗은 짐승의 뿔처럼 생긴 고사목들을 툭툭 던져 놓는 단순한 제스처로 기관의 아이덴티티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의 산 생태계와 생태공원에서 생물 서식처로 기능하는 고사목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면서 우리를 단박에 저 멀리 숲 속 어딘가로 데려다 놓는다.
정원화된 공원
이번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정원을 매개로 공원을 사용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보여준다. 행사를 위해 임시로 여러 유형의 정원을 나열해 설치 한 것이 아니라 방문객이 정원을 누비면서 공원을 구석구석 탐색할 수 있도록 신중히 배치된 기획의 산물이다. 이러한 재기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초청정원인 박승진의 ‘세 번째 트랙(The Third Track)’을 꼽을 수 있다. 디자이너는 공원 운동장 육상 트랙 일부의 내부 영역에 트랙 형태의 선형 정원을 조성했다. 탁 트인 운동장 트랙을 하염없이 뛰다가 템포를 늦추고 싶을 때 슬쩍 경로를 변경해 세 번째 트랙인 숲길로 뛰어들어 자연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작가, 초청, 기업, 기관, 학생정원들이 공원 곳곳에 배치되면서, 공원은 하나로 통일된 정체성보다는 패치워크식 구성으로 나타난다. 애초에 공원과 정원이 추구해 온 미학은 서로 다르다. 공원이 넓은 잔디밭이 드리워진 풍경화 같은(picturesque) 전원 경관을 닮았다면, 정원은 화려하거 나 자연주의적인 초화류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질적인 미학적 산물 이 한 데 꿰어진, 이토록 정원화된 공원(gardenized park)은 보라매공원의 아이덴티티를 불가피하게 변경한다. 진화인가 아님 파괴인가. 이 공원이 그간 이용이 뜸했다면 정원박람회는 공원을 재생하는 효과적인 대안으 로 작동될 것이다. 한편으로, 보라매공원은 오랫동안 시민들에게 이용되어 다채로운 기억이 켜켜이 쌓인 양피지(palimpsest)다. 새로운 정원이라 는 화려한 조각보로 누벼진 땅에 기존 보라매공원의 아이덴티티를 신중히 살핀 정원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양희와 오세훈의 ‘제3의 플라타너스 숲’은 보라매공원의 플라타너스 숲을 보존하고 야생 자연의 특성을 연출한 뒤 그 위에 식생 태피스트리라는 레이어를 얹어 대상지의 본래 역사와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화려하거나 새로움이 직관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기존 공원의 풍경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다. 지금 은 축제의 시간이다. 초여름 햇살을 듬뿍 머금은 정원 천지에 시민들과 함께 푹 빠져 걷다가, 문득 축제가 끝나고 난 뒤 보라매공원이 어떤 풍경 일지 궁금해졌다.
**각주 정리
1. 인간 문명과 야생 자연의 거친 풍경을 병치하는 방식은 숭고의 미학을 연출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을 참조할 것. 이명준·배정한, “숭고의 개념에 기초한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의 미학적 해석”, 『한국조경학회지』 40(4), 2012, pp.80~81.
2. Elizabeth K. Meyer, “Sustaining Beauty: The Performance of Appearance”, Journal of Landscape Architecture 3(1), 2008, pp.6~23.
3.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역, 『판단력 비판』, 아카넷, 2009.
4. Elizabeth K. Meyer, “Expanded Field of Landscape Architecture”, In G. Thompson, and F. Steiner, eds., Ecological Design and Planning , New York: John Wiley & Sons, 1997, pp. 45~79.
5. 2번 글, p.17.
6. 2번 글, p.20.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다가 2020년, 안성으로 이사 와 한경국립대학교 친구들과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정원의 마력에 휩쓸렸다. 이건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정원 개벽의 현장이야! 정원 천지가 된 서울의 풍경에 먼저 감탄했고, 곧이어 정원 디자이너들이 나를 어떻게 가든라이팅(gardenlighting)하는지 마법의 레시피가 몹시 궁금해지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던 보라매공원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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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동네 공원 + 정원 = 시민대정원?
동네 공원에서 열리는 정원박람회
보라매공원은 여의도공원 1.8배 크기의 대형 공원이다. 위치는 동작구 신대방동이지만, 북문 건너편은 영등포구, 남측 면은 관악구와 닿아 있다. 남서쪽은 구로구로, 서울의 서남부 네 개 구민이 즐겨 이용하는 공원이다.
보라매공원은 1986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원했다. 오래된 주거지와 면해 있다 보니 멀리서 찾는 사람보다는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노년층은 곳곳에서 장기나 바둑을 두고, 겨울에도 나란히 앉아 햇볕을 쬐거나 운동을 한다. 중년층은 자발적으로 모여서 에어로빅이나 체조를 한다. 보라매공원의 상징과도 같은 잔디 마당 주변 순환로에는 계절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걷거나 뛴다. 평상시에도 하루 평균 2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작년에 보라매공원이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이하 정원박람회) 장소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용한 동네 공원에서 서울 시민이 모이는 큰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에 기대보다 우려가 앞섰다.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원박람회를 위해 땀을 쏟았는지 지켜본 데다, 축제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라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이 글은 보라매공원 옆에서 30년 넘게 살며 일한 동네 조경가가 쓴 공원 자랑이자 정원박람회에 대한 짧은 소감이다.
공원, 정원, 운동장, 놀이터
나에게 보라매공원은 아이 셋을 키운 공원이자 정원이자 놀이터다. 큰 아이는 돌 즈음에 동물원의 연못 근처에서 비둘기 모이를 주며 걸음마 연습을 했다.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가서 김과 흰밥만 싸서 하나씩 먹여주며 해질 때까지 놀다 오곤 했다. 아이들은 보라매공원에서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배웠다. 비행기를 구경하고, 공놀이와 연날리기를 하고, 겨울에는 꽁꽁 언 연못에서 썰매를 탔다. 대학생들과 함께 시립발달장애인복지관 정원에 꽃을 심기도 했다.
세 아이가 다녔던 보라매초등학교에서는 봄과 가을마다 순환로에서 걷기 대회를 했고, 가을 운동회와 축구 대회도 공원에서 했다. 어린이날에는 공원 근처 농심사에서 과자와 라면을 나눠줬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요즘도 종종 축구나 러닝을 하러 공원에 간다.
우디 앨런의 영화 ‘멜린다와 멜린다’(2004)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 세 명이 센트럴파크의 보우(Bow) 브리지에 서서 학창 시절을 회상한다. 뉴욕이 고향인 사람들이 센트럴파크에서 어린 시절을 기억하듯, 도랑에서 가재 잡아본 적 없는 신대방동 아이들은 어릴 때 놀던 보라매공원이 고향이다.
나는 집에서 사무실로 걸어서 출근한다. 날씨 좋은 날은 공원 부지인 와우산을 넘어가서 공원을 가로질러 가기도 하고, 퇴근길에는 순환로를 몇 바퀴 돌기도 한다. 해 질 녘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공원에서 하루를 정리하는 것은 크게 내세울 것 없는 동네에서 누리는 행복 중 하나다. 나와 같은 사람들로 저녁 시간대에 순환로는 늘 만원이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기술사사무소 이수에서 소장으로 일하고,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겸임교수로 가르치고,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에서 공부한다. BoLA의 친구들과 2019년 보라매공원에서 ‘공원학개론’ 포럼을 열면서 공원 아카이브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21년까지 서울시와 서울기록원의 프로젝트로 서울의 공원 기록물을 분석했다. 그 일환으로 보라매공원에 대한 논문 “이전적지 공원으로서 서울 보라매공원의 변화와 의미”(『한국조경학회지』 51(1), 2023)을 함께 쓰고 기록물 온라인 전시(서울기록원 홈페이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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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세 번째 트랙
초청정원
공원은 일과 일상에서 벗어나 걷고, 쉬고, 노는 공간이다.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공원들을 살펴보면 제각기 조금씩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공군사관학교가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보라매공원은 넓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특별한 점은 공원 한가운데에 커다란 운동장(과거 공군사관학교 연병장)이 있고, 그 둘레에 걷고 뛸 수 있는 긴 트랙이 조성되어 있는 점이다. 주민들은 이 공간을 사랑한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고, 또 뛴다.
트랙의 전체 길이는 600m에 이른다. 바깥쪽은 걷는 사람들, 안쪽은 뛰는 사람들로 구분하고,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도록 하고 있다. 설계자는 이러한 특징에 주목했다. 두 개로 구분된 트랙 안쪽에 ‘세 번째 트랙’을 제안했다. 일명 라르고(largo). 라르고는 음악 용어로 ‘아주 느리게’라는 뜻을 갖는다.
세 번째 트랙에서는 서두르지 않기를 바란다. 정원의 길이는 80m 정도. 원래 이곳에 심겨 있는 느티나무와 이팝나무 사이에 트랙을 삽입하고 좌우에 작은 숲을 만들었다. 산딸나무, 산목련, 가침박달, 히어리, 물철쭉, 까마귀밥여름나무, 생강나무, 조팝나무 등등. 여기에 고사리, 눈개승마, 노루오줌 같은 작은 풀들을 더했다. 우리 주변의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이다. 공원을 방문한 이들이 호젓한 산길을 걷듯 천천히 이 길을 걷기를 바란다. 나뭇잎과 꽃, 향기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아주 아주 천천히 걷기를 바란다.
이 정원은 박람회 기간이 지나도 철거되지 않고 존치 된다. 설계자는 이번 작업을 완성작으로 보지 않는다. 여건이 되면, 지금의 80m 구간을 좌우로 계속 연장해 서 600m에 이르는 세 번째 정원 트랙이 온전히 완성 되기를 기대하고 제안했다. 어떻게 보면 이 80m 구간 은 전체 구간의 샘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 다. 빠르게 걷거나 뛰는 첫 번째 트랙, 보통의 걸음으 로 걷는 두 번째 트랙에 이어, 숲길을 다른 속도로 천 천히 사색하며 걷는, 세 번째 트랙 전 구간이 곧 완성되기를 희망한다.
설계 박승진
시공 태극조경
면적 500㎡
박승진은 경관, 도시, 정원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loci 대표소장이다. 통의동 브릭웰 정원, 대구 mrnw 복합문화공간, 서울 목동의 오목공원 등을 설계했다. 조경건축가로서 푸른별 지구,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곳,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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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비행사의 정원
초청정원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를 겪으면서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조경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설계의 중요한 비전이 됐다.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이를 대상지에 구현할 좋은 기회였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은 매력적인 녹지 공간을 제공하며 생물 다양성에 기여하는 정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모든 생명체를 위해
비행사의 정원(Aviators Garden)은 옛 공군사관학교 터였던 대상지의 특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공군 비행사를 배출했던 공군사관학교를 기리며 인간뿐 아니라 나비와 벌 등 비행사처럼 공중을 누비는 모든 생명체를 수용하는 정원을 연출했다. 야생벌 둥지(Bienenhaus)와 새집 등 생명체를 위한 구조물을 통해 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풍성한 녹지 공간을 마련해 새와 곤충을 유인하고, 공간 안에서 인간, 동물, 식물이 서로 조화를 꾀하는 화합의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과정과 결과물 모두 자연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언제든 자연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자연친화적 자재를 활용했다. 가령 길의 경계선 에지 재료로 목재를 활용하고,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소재를 지양해 다양한 생명체의 접근성을 높였다.
조용한 오아시스
비행사의 정원은 주변의 바람을 막아주는 생울타리에 둘러싸인 정원으로, 시민들이 분주한 도시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조용한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 최대 1.5m 높이의 생울타리는 다양한 종류의 관목으로 구성되며 기존 수목을 그대로 보존하는 동시에 정원 경관의 구조적 틀이 된다. 정원을 가로지르는 곡선형 산책로 사이에 서식처 환경을 고려한 다양한 숙근초를 심어 계절별로 색다른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숙근초는 이 정원의 핵심적 역할을 하며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주도종, 주도종과 조화를 이루며 경관의 깊이를 더하는 동반종, 낮게 깔려 빈자리를 채워주는 피복종, 골고루 분산되며 역동성을 만들어 내는 분산종을 정원에 심었다. 서식처 기반의 식재 디자인 원칙을 바탕으로 구성된 다양한 숙근초 군락은 단순한 조화를 넘어 각 식물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며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한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Mark Krieger
시공 이양희, 오세훈, 김명윤
후원 예건
코디네이터 고정희
마크 크리거(Mark Krieger)는 스위스 동부 응용과학대학교(Ostschweizer Fachhochschule) 조경학과 교수로, 자연주의 정원 디자인을 추구한다. 식물에 대한 관심과 깊은 생태적 통찰, 감각적 디자인을 통해 자연스러운 조화를 꾀하는 식재 공간을 연출한다. 2013 함부르크 정원박람회, 함부르크 도시개발환경부 데크 정원 등 정원박람회 식재 기본계획부터 숙근초 정원까지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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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마지막 식사
작가정원 금상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육류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넘어섰다. 오랜 시간 한국인의 식탁을 지탱해 온 쌀보다 고기가 더 많이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지금보다 더 극심한 생태계 파괴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개구리밥을 바라보며 육식 문화와 자연 생태계 변화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세 가지 구성 요소
연못 테이블: 정원의 중심 요소로, 대가족이 큰 식탁 주변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테이블로 기능한다. 정원 중앙에 둔 7.6m 지름의 원형 테이블 속 뒤집힌 원뿔 형태의 물을 담는 구조물을 놓았다. 수반에 연결된 수위 조절기를 통해 연못 물의 증발을 최소화하고 범람을 방지한다.
벽돌 포장: 바닥을 붉은 벽돌로 포장해 정원의 투수성을 유지하고 유지·관리를 용이하게 했다. 40㎝ 높이의 벽돌 조적 구조물을 원형으로 쌓아 벤치로 만들고 사색과 모임을 위한 공간으로 기능하게 했다.
식재 공간: 잎이 넓고 키가 큰 식물을 식재해 녹음이 풍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김기한
시공 공간이오
협력 님프가든(식재)
후원 바이루트(개구리밥 지원)
김기한은 인하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공대(UPC)에서 조경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졸업 후 파리에 위치한 MDP(Michel Desvigne Paysagiste), AJOA(Atelier Jacqueline Osty & Associés) 등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는 조경 및 환경과 연계된 공공 설치 작업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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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영원한 생명의 정원
작가정원 은상
‘영원한 생명의 정원’은 자연의 순환, 특히 썩음과 분해 과정을 통해 생태계의 근본적 작동 원리를 드러내는 정원이다. 낙엽, 병든 나무 껍질, 버섯, 곤충은 단순하고 하찮은 잔재가 아니라 생명을 지속시키는 연결망의 중심이다. 분해와 순환을 설계의 핵심으로 삼아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변화하고 썩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죽은 것들에서 생명이 움튼다
정원 경계를 이루는 링은 걷거나 앉을 수 있는 시설인 동시에 하부 목재의 분해를 통해 정원의 생태적 작용을 촉진하고 그 과정을 보여주는 정원의 핵심 요소다.
링 상부, 스틸 데크: 나무의 수피에서 모티브를 얻어 링을 조성했다. 수피는 나무를 외부로부터 보호하지만, 틈이 생기면 침입을 허용하기도 한다. 수피에 자잘하게 남은 침투의 흔적은 굳건해 보이는 나무 줄기 안에서 벌어진 치열한 생명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흉터들을 패턴으로 형상화하고 데크에 무늬로 표현했다.
링 하부, 나무 더미: 하부에는 나무 분해 과정을 드러내는 조형물을 설치했다. 무너지면서 만들어진 변칙적 구조와 여러 생물이 경쟁적으로 잠식하며 우위를 다투는 모습을 담고자 했다.
경관이 교차하며 풍요로워진다
정원에 숲, 초지, 습지 세 종류의 경관을 엮고자 했다. 지형 변화와 돌담, 로그바 등의 자연적 지물을 통해 다채로운 미기후와 서식처를 조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태계는 높은 종 다양성과 회복력으로 도시공원에 새로운 생태적 공간으로 기능할 것이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김윤빈
시공 뜰1994, 팀 파베르, 김윤빈
김윤빈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사무소를 거쳐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조경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자연과 장소를 기반으로 한 경험과 사회적 해법의 디자인으로서의 조경을 추구한다. 설계를 비롯해 분야를 넘나드는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통해 기획자의 관점과 실천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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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네스팅
작가정원 은상
보라매공원의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신화 속 새의 기원 이야기를 상상하며 디자인을 구상했다. 정원에서 네스팅(nesting)은 명사가 아닌 동사로 기능한다. 공원 주변에서 재료를 모아 정원을 만들고 정적인 둥지가 아닌 살아 있는 행위로서의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탄생, 성장, 소멸이라는 생명의 흐름을 반영한다.
곡선 형태의 정원
정원의 형태는 태극 문양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동양의 철학적 개념인 균형과 음양의 역동적 상호 작용을 표현했다. 자연의 생태적 과정과 예술적 개입을 통해 제3의 자연의 본질을 담아내고자 했다. 두 개의 나선을 부드럽게 엮어 정원을 둘러싸게 했으며 주변 도로와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꾀했다.
곡선 형태는 음과 양의 변화를 상징한다, 한국 전통 색채인 오방색에서 영감을 받아 식물을 선정했다. 남쪽에는 따뜻한 색감의 식물을, 북쪽에는 시원한 색감의식물을 배치했다.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순환을 반영하는 동시에 인간과 자연의 시너지를 느낄 수 있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Till Rehwaldt, Garth Woolison
공동 설계 He Hao, Mengs Martin, Liu Yanting, Xu Yu, Yu Xihe
시공 공간이오
협력 데코가드닝(식재)
틸 레발트(Till Rehwaldt)는 1993년 레발트 조경설계사무소(Rehwaldt Landschaftsarchitekten)를 설립해 공원, 정원, 도시 오픈스페이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가르트흐 볼리손(Garth Woolison)은 레발트 조경설계사무소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2023년부터 체코 프라하의 제4분할 도시 디자인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 Till Rehwaldt, Garth Wool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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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워터루츠!
작가정원 동상
워터루츠(Waterrooots)!는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들여놓지 말라(You never step twice into the same river)”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 삶과 자연의 영원한 역동성, 시간에 따른 자연과 개개인의 변화를 정원에 담고자 했다.
원
원은 중심으로부터 등거리에 있는 점의 집합으로, 서로 다른 공간을 구분하고 통로를 상징한다. 정원에서 원은 외부와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공간이자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방문객들에게 개별적인 공간이자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얼음과 정원
알렉산드로 트리벨리는 정원에 빙하를 상징하는 얼음을 설치하고, 얼음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통해 인류의 행동이 기후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동시에 녹아내린 얼음이 주변 식물의 생육에 필요한 영양분이 된다는 점도 강조하고자 했다. 이는 자연이 훼손되어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힘인 회복 탄력성을 의미한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Alessandro Trivelli
공동 설계 SDARCH Architects with Andrea Sogja, Tommaso Gabba, Martina Gangi
시공 공간이오
협력 그린팜널서리(식재)
알레산드로 트리벨리(Alessandro Trivelli)는 이탈리아 밀라노 공과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공학과 건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밀라노 공과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SDARCH 트리벨리 & 어소시에이티(Trivelli & Associati)의 파트너이자 설립자이며 건축, 조경, 환경 기술 연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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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제3의 플라타너스 숲
작가정원 동상
제3의 플라타너스 숲은 ‘제3의 자연’을 제1의 자연(원생림)과 제2의 자연(인공 녹지)이 공존하는 가운데 사람의 문화가 깃든 공간으로 구현한 정원이다. 정원 한가운데에 플라타너스가 자리하고 주근부를 과감히 비워 그 여백 사이로 초본 식물을 심었다.
뿌리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본래 저습지에 사는 플라타너스가 대상지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플라타너스의 뿌리 때문이다. 이 뿌리가 건조하고 단압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무수한 균근균류와 협동해 물과 양분을 옭아맸다. 수관폭 너머로는 수평근, 모근으로 구성된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수분과 양분을 찾아다녔다.
따라서 주근의 지하부는 보호되어야 한다. 세근의 영역 지하부에 배수층을 만들고, 지상부로는 숲 바닥 식물을 심기로 했다.
두 가지 접근
두 조경가는 결은 닮되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원에 접근했다. 한 사람은 풍경을, 다른 한 사람은 식물을 지었다.
정원 속에서 사람이 어디에 머물고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며 어떤 순간에 감각을 멈추는지를 고려해 숙근초를 모든 흐름을 이어주는 풍경으로 삼았다. 숙근초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감각적 배경으로 기능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정원의 본질이 된다.
초본의 태피스트리를 중심으로 한 식재 전략을 세웠다. 숙근초는 살아 있는 생명이자 계절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재료다. 식물 하나하나의 구조와 빛, 그림자, 질감에 몰입하면서 사초류의 흐름, 반복과 대비, 수피의 리듬까지 정원의 가장 낮은 층부터 이야기를 엮어갔다. 시간의 결이 스며든 생명의 직물을 직조해 나갔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이양희, 오세훈
시공 마이조경, 더퍼레니얼
후원 지이든
이양희는 2021년 스튜디오 천변만화를 설립했고, 다양한 분야 간의 협업을 통한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 도시 공간 내 지속가능한 여러해살이풀 식재에 대한 관심을 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설계에 적용하는 이론의 실무화를 추구한다.
오세훈은 정원디자인 스튜디오 이듬해의 대표로, 정원가이자 식물교육자 및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연주의 정원 철학과 숙근초 중심의 식재 디자인을 기반으로, 정원 문화의 심화와 확산을 위한 다양한 창작과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