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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경 감각] 틈
    평소보다 짙은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학교 화장실에는 그리 환하지도 어둡지도 않은 하얀 전등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고, 평범한 회색 가벽이 화장실 두 칸을 나누고 있었다.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가벽과, 가벽에 붙은 화장지, 그리고 지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수선하게 흩어져 보였다. 그날 밤 가벽과 바닥 사이의 한 뼘 채 되지 않는 틈에는 여러 개의 그림자가 모여 만든 검고 선명한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휴대폰을 쥔 손이 불쑥 튀어나와 찰칵 셔터 소리를 냈다. 설계 스튜디오로 돌아와 숨을 골랐다. 다음날까지 결과물을 제출해야 했고, 늦은 시간이지만 환하게 불이 켜진 설계실에는 과제를 하는 동기들이 모여 있었다. 안심이 되었다. 가벽 아래로 손을 뻗어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모른다. 혹시라도 해코지를 할까 무서워 따지기는커녕 누구인지 확인조차 못했고, 옆 칸에 있던 사람이 문을 열고 나간 뒤 발자국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낯선 화장실에 갈 때면 바닥과 가벽 사이의 틈에서 아른거리는 그림자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길게 늘어져 흐늘거리는 휴지 그림자 위로, 금방이라도 카메라를 쥔 낯선 손이 불쑥 솟아오를 것 같아서다. 10cm도 되지 않을 그 틈을 막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보면 손이 닿을 듯한 높이의 낮은 가벽도, 벽면의 크고 작은 구멍도 전부 신경 쓰인다. 오래 전 짙은 그림자의 주인을 향해야 할 화살을 작은 틈에 돌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두 막아주는 매끈하고도 완전한 벽을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글·그림 조현진 | 연필 드로잉에 디지털 채색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정동극장 공연 ‘궁:장녹수전’ 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 식물학 그림책 『식물 문답』을 출판했다. 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씨에이티 조경설계사무소 대지의 기억을 읽고 장소의 서사를 담는 디자인
    조경이 하는 일은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일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먼저 찾게 되는 것은 그 지역만이 가진 이야기들이다. 문학적 이야기가 아니라 그 땅이 생겨남으로써 발생한 자연과 사람의 현상적 이야기들. 그것은 역사, 지리, 기후, 생태, 인문 등 대지의 시간과 공간에 관한 기록일 것이다. 우리는 공간 디자인에 앞서 그 장소가 지닌 이야기를 탐색하고, 그 공간이 요구하는 적합한(올바른) 이용을 탐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서 풀기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가장 먼저 그곳의 내력을 살핀다. 오랫동안 배어 있던 본 모습, 원래의 쓰임, 여기에 왜 이렇게 큰 나무가 남아있는지 등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품는다. 사실 가장 기초적이고 당연한 설계 수순이다. 그런데 의외로 프로젝트를 의뢰한 사람도 그런 내력을 모르고 오히려 놀라는 경우가 많다. 설계안에 지역의 이야기를 담겠다고 하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지역의 이야기를 제공해주어, 그 속에서 중요한 키워드를 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장소성 찾기와 공간 디자인 공간을 다룰 때 시각적 디자인의 완결성은 공감각적 측면에서 신선함, 안정감, 흥미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시각적 디자인보다 먼저 하는 일은 장소성 찾기다. 장소의 가치와 쓰임을 정립하고 그것을 가장 적합한 형태로 공간에 녹여내는 것이 좋은 공간 디자인이다. 최근 진행한 부산 사상구 감전당산공원이 그랬다. 구청장 보고회 때 발표의 절반 이상을 장소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는 데 썼다. 오래된 나무가 있고 주택가가 밀집한 지리적 연유를 고지도와 함께 설명하고, 오래전부터 살기 좋은 마을이었음을 알리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담당 국장은 이런 방식의 설계 보고회는 처음 본다고 놀라며 사업에 대한 기대를 표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반응은 이후에 선보인 계획안의 디자인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감전당산공원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곳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당시의 풍경을 추측할 수 있는 옛 지도는 오래된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특정 장소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알리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은 공간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다. 장소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알리는 일련의 과정이 공간을 시각적으로 화려하게 디자인하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 디테일 설계를 하면 할수록 디테일의 중요성을 느낀다. 디테일은 직접 시공에 참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다루기 까다로운 영역이다. 감리나 시공을 병행하지 않는 설계자가 가까이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작은 요소에 공간의 정체성과 이미지가 드러나도록 설계하고 싶어도 현장의 성격과 여건에 따라 공식적이고 효율적인 설계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공에 필요한 것을 빠짐없이 작성하는 디테일과는 다른) 디테일한 설계를 하고 싶어도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았다. 김해시의 작은 프로젝트에서 복잡하고 민감한 설계안을 내자, 담당 부서가 비공식 감리를 요청하는 상황이 생겼다. 우리가 원하던 바였다. 공사의 외주 업체인 시설물 팀은 대충 빨리 마무리하고 현장을 떠나고 싶어 했고, 우리는 현장에서 꼼꼼하게 위치, 각도, 높이 등 하나하나를 조정하고 싶었다. 시청 담당자는 우리에게 감독의 권한을 넘겨주며 원하는 품질이 나오도록 시공사와 협의하도록 했고, 우리는 도면과 다르게 만들어온 시설물을 설계 의도대로 조정하여 완성할 수 있었다. 작지만 완성도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을 본 다른 발주처도 비공식 감리를 자연스럽게 요청했다. 중요한 공정의 경우 자재의 종류, 색상, 시설물의 위치 등을 시공자가 설계자에게 허락을 받고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비공식 감리를 진행했던 부산 금정구의 어느 쌈지공원 공사. 약 300평 공간에 경사지를 활용해 모던한 계단 공간과 상징 공간, 휴게 공간을 계획했다. 우리는 시공사와의 첫 미팅에서 도면과 공사에 문제가 있으면 우리에게 먼저 연락 달라, 공사의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이야기하며 서로 신뢰와 유대를 형성했다. 경사지에 계획한 UHPC 계단은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복잡한 하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복잡한 구조 도면을 본 철골 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레벨을 못 맞춘다고 현장을 포기해 버렸다. 사실 복잡하긴 했다. 너무 복잡해서 레벨을 이해하고 철골 도면을 작성해 줄 수 있는 구조 팀을 구하지 못해 직접 작업했던 도면이다. 다행히 빠른 시간에 다른 철골 시공팀을 찾았고, 시공 팀은 복잡한 도면을 잘 소화해 상판만 얹으면 되는 깔끔한 계단 구조를 만들어냈다. 공간 계획의 실마리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며 풀어나간다. 오래된 지도 한 장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설화의 짧은 문구에서 시작하기도 하며, 그 장소에서 필요한 이미지를 찾거나 그곳에 있었을 법한 이미지를 상상하기도 한다. 김해 경전철 하부의 작은 공간 시설물은 김수로왕의 탄생 장면을 묘사하며 가야 왕도 김해의 오랜 역사를 한번에 보여주었다. 해운대수목원의 생명의 숲은 수목원에 결여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시작했다. 종류별로 모아놓은 묘목장 같은 수목 전시장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한 장소에서 다양한 식물과 자연 소재, 공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계획했다. 김성완(씨에이티 조경설계사무소 대표)의 논문에서 시작된 영도 근대 역사 흔적 지도는 조경설계사무소에서 흔치 않은 종류의 일이다. 강영조 교수(동아대학교)가 100년 전 영도 지도를 입수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김성완 대표는 오래된 길에서 보아온 풍경을 ‘경관 유산’이라는 새로운 유산의 개념으로 제시하며 강영조 교수와 함께 2018년 한국조경학회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100년 묵은 영도의 도시 풍경 연구를 계기로 근대 영도의 흔적을 따라 걷는 탐방 지도와 안내 책자를 제작하고 전시 공간까지 조성했다. 100년된 지도 한 장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2020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2022 아시아 도시경관상 본상에도 올라 현재 심사 중이다. 오래된 도시를 걷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벽면 녹화 프로젝트인 율리 강변 풍경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보았을 풍경을 상상하며 시작했다. 대상지 인근에는 선사시대 유적이 있는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볼 수 없지만 삼십여 년 전만 해도 서쪽의 낙동강 변이 보이는 지역이었다. 우리는 선사시대부터 보았을 강변의 풍경을 상상하며 대상지 벽면에 잔물결의 이미지를 담았다. 작은 공간의 설계 건축가와 함께하는 개인 주택, 카페 등의 조경 설계는 작은 공간이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개인 공간의 설계는 감리를 병행하고 시공사 선정에도 깊게 관여하며 진행한다. 작은 공간일수록 도면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작은 바위, 야생화, 소관목, 이끼류 등을 배치할 때는 직접 시공하기도 한다. 중요한 위치의 수목 한 그루, 바위 하나를 찾기 위해 공사 기간의 대부분을 보내기도 한다. 개인 공간 설계의 경우 거의 모든 공정을 다루다 보니 별도의 시공사가 있는 공공 공간 설계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하지만 그만큼 공간에 대한 애착이 더 가게 된다. 양산의 개인 주택 정원의 경우 더 좋은 공간으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약에도 없는 작은 정원 수첩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땅의 기억 아직 많은 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않았지만 프로젝트마다 깊은 이야기를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는 시도는 발주부서의 의욕적인 업무 수행과 관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아직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과 타협하고 의도와 다르게 진행되는 상황을 경험하며 배워나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한 뼘이라도 더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 함께하고 있는 동료들의 생각을 옮긴다. 조경이 디자인할 수 있는 영역이나 범위가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하지만 여러 분야와 협업하는 일들, 특히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한정된 공간이지만 많은 고민을 통해 공간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가용 범위 내에서 분위기를 바꿀 방법과 재료를 찾아보며 작업에 임하고 있다. 누군가의 일상 속 기억에 자리 잡을 수 있는 담백한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 언제든 편하게 다시 찾아오고 싶은 그런 공간(모현호). 입사 초기에는 땅의 형태에 집중하며 디자인했다. 그 결과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설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땅의 기억에 집중하고자 한다. 장소가 가진 이야기, 장소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기억과 같은 것들.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만든 공간을 다수의 사람과 공유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앞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질 공간들을 기대한다(김경언). [email protected] 씨에이티 조경설계사무소(CAT Landscape Design Group)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생각하는 젊은 조경설계인들과 함께 21세기를 이끌어갈 창의적인 지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쾌적한 삶과 사람의 가치가 보장되는 맑고 밝은 세계를 꿈꾸는 우리는 다양한 영역의 공간과 시간을 우리만의 신선하고 새로운 역량으로 디자인해나간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CAT를 회사명으로 정했다.
  • [모던스케이프] 종묘의 공원화
    지난여름, 의미 있는 사업 하나가 오랜 시간 끝에 완공됐다. 식민지기에 분리된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작업으로, 90년간 두 장소를 갈라놓은 율곡로 일부에 지붕을 덮고 지형을 복원한 것이다. 사업은 2007년 녹지문화축 사업 계획의 일환에서 시작되었다. 북악산 자락의 응봉에서 창덕궁과 창경궁–종묘–세운상가(철거 계획)–남산을 잇는 사업의 첫 단계인 셈이었는데, 이 구간은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회복해야 마땅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 종묘(宗廟)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으로, 수도 한양을 건설할 당시 사직(社稷)과 함께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 종묘 북측에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은 각각 1405년(태종 5년)과 1483년(성종 14년)에 건설되었으니, 창덕국·창경궁 일대인 동궐(東闕)과 종묘가 하나의 큰 권역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부터인 셈이다. 임진왜란 이후 오랜 시간 빈터로 있었던 경복궁과 달리, 조선왕조 대부분 기간에 동궐을 왕과 왕후의 주궁으로 이용했기에, 위치적으로도 종묘와의 긴밀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이번 사업에서 복원된 북신문(北神門)은 왕이 궁궐과 종묘를 오갈 때 사용한 문이라고 하니, 두 장소의 연속성은 이용 측면에서도 드러나는 셈이다. 두 공간을 설명하는 또 다른 관점은 풍수지리다. 한북정맥인 북한산 기운이 백악을 타고 동굴 권역을 지나 종묘로 흐른다는 해석은 정서적 측면에서의 위상과 상징을 공고히 하였는데, 일제의 율곡로 건설로 이 논리는 극심한 타격을 입는다. 이른바 지맥을 끊어 민족혼을 말살하려 했다는 통설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학자 염복규는 율곡로 건설의 근거가 어디에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음에 의구심을 갖고 도로 개설의 과정과 여론을 전방위적으로 살펴본 바 있다. 동궐 권역과 종묘 사이를 관통하는 율곡로의 처음 이름은 경성시구개수(京城市區改修) 제6호선이다. 조선의 길은 전통적으로 잎맥 형태를 하며 길 끝에 가옥이 있는 막다른 길이 많은데, 이는 도성 길도 마찬가지였다. 丁자 형태의 대로를 갖췄을 뿐 순환형 도로 체계는 아니었다. 헤이안 시대부터 격자형 도시계획을 체화한 일제는 병합 초기인 1910년부터 순환형 도로망 구축에 공을 들였는데, 그중에 제6호선, 즉 율곡로 계획은 처음부터 궁궐과 종묘를 관통해야 한다는 난제를 안고 있었다. 총독부 청사였던 경복궁 이전·신설 계획을 가지고 있던 일본은 제6호선 건설을 관철시켜야만 했기 때문에, 순종은 물론 이왕가(李王家), 전주 이씨 종중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도 이완용계와 내통하며 도로 부설 계획을 추진했다. 그 와중에 놀라운 점은 종묘의 공원화를 논의했다는 사실이다. *환경과조경415호(2022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염복규, 『서울의 기원 경성의 탄생』, 이데아, 2016. 경성부, 『경성도시계획구역설정서』, 1926. “犬牙錯雜한 今日의 京城이 卅年後에는 一大理想園 (14) : 公園遊步地增設과 火災豫防大計劃 火災를 防禦하기 爲하야 新築家屋은 全部 防火材 旣築家屋도 改造”, 「매일신보」 1926년 4월 29일. “社說: 宗廟地帶를 開放함이 如何 – 安息處 없이 헤매는 北部民을 보고”, 「동아일보」 1929년 6월 28일.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 [에디토리얼]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 IFLA 2022가 남긴 것
    이번 달 특집 지면에서는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예술과 혁명의 도시 광주에서 열린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를 기록한다. 40개국 1,500여 명의 조경가가 참여한 IFLA 2022는 기후변화와 도시 위기에 대응하는 조경가의 비전과 전략을 깊이 있게 논의하고 지혜를 모으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대회는 2019년 9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개최에 발맞춰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발표한 ‘기후행동공약’의 실천적 토론장이기도 했다. IFLA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달성을 위해 전 세계 조경가의 전환적 협력과 행동을 촉구하며 “1.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의 실천, 2. 204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 3. 살기 좋은 도시와 커뮤니티의 수용력과 회복력 강화, 4. 기후 정의와 사회 복지 지원, 5. 문화 지식 체계의 학습, 6. 기후 리더십 발휘” 등 여섯 가지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광주 세계조경가대회는 한국 조경계에도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경학계와 업계가 협력해 성공적으로 치러낸 이번 대회는 한국 조경계의 난맥을 교정하고 조경 직능과 학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조 강연, 논문 발표회, 라운드 테이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펼쳐진 여성 조경가와 미래 세대의 활약은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기대하게 했다. 이번 IFLA 2022의 무엇보다 큰 성과는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Re:public Landscape)’라는 현재와 미래의 좌표를 한국은 물론 세계 조경계에 제시했다는 점일 것이다. ‘리:퍼블릭’은 서로 연관된 세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리:퍼블릭의 ‘리’를 ‘어떤 것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이라는 뜻의 접두사 리(re)로 생각한다면, 리:퍼블릭은 ‘공공(성)에 다시 주목하는’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다시 공공성의 경관과 조경을 지향하는’ 의제라 볼 수 있다. 둘째, 리:퍼블릭의 ‘리’를 ‘~에 대한, ~를 주제로’라는 의미의 전치사 리(re)로 여긴다면,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공공적 조경 행위라는 주제’로 해석될 수 있다. 셋째, 리퍼블릭(republic)은 군주제 반대편의 정치 체제인 공화제에 해당한다. 본래의 경관(landscape) 개념에 배태된 수평성을 떠올린다면, 군주제의 수직적 위계와 권위에 대항하는 공화제가 경관 개념과 조응하는 체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리퍼블릭의 어원인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는 ‘일, 사건, 상황, 문제’를 뜻하는 명사 ‘레스’에 ‘공적인’이라는 뜻을 지닌 여성형 형용사 ‘푸블리카’가 결합된 말로, 공적인 일(또는 문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곧 ‘공적인, 공공의 경관’ 그 자체이기도 하다. 대회의 주제문을 다시 옮긴다. “전 세계는 팬데믹 확산, 기술 혁명, 정치적 갈등과 같은 급격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건강, 행복, 미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할 사명이 조경 전문가에게 주어졌다. 국지적 지역부터 전 지구적 스케일까지 포괄하는 조경의 다양한 이슈를 논의하기 위해 조경가들이 모인다. 조경의 공공 리더십을 강조하는 2022년 세계조경가대회의 주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다음과 같은 세부 주제를 포괄한다. 조경의 전문적 성취와 학문적 성과를 되짚어보고(re:visit),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이론과 기술을 통해 지구 경관의 재구성을 실험하고(re:shape), 일상의 생활과 환경을 건강하고 활력 있게 되살리며(re:vive), 자연과의 연결을 추구한다(re:connect).”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봉건 시대의 장식적 조원 전통과 결별하고 근대 도시의 공공 환경을 구축하는 전문 직능으로 탄생했던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의 이념을 다시 소환하고 회복한다.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인류세의 지구가 마주한 기후위기, 도시의 파국, 도시 정의와 형평성, 라이프스타일과 미감의 변동 등 복합적 난제를 풀어갈 조경의 좌표다. IFLA 2022를 통해 제시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 개념을 구체화하고 실천할 과제가 한국 조경에 주어졌다. [email protected]
  • [풍경감각] 작은 잎사귀는 너른 평원이 되고
    그냥 풀을 그린 그림,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거죠? 북 페어에서 받은 질문이다. 식물 세밀화는 풀을 그린 그림이 맞고, 그림은 보이는 것이 전부이며, 각자의 감상법이 있기 마련이므로 “보이는 그대로니 천천히 감상해보시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그는 다른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풀, 그 잎사귀 한 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은 세계가 펼쳐진다. 작은 잎사귀는 너른 평원이 되고, 그 사이를 물길 같은 잎맥이 가로지른다. 울퉁불퉁한 산맥 사이로 하얀 협곡이 구불거리거나, 평행한 녹색 이랑이 끝없이 이어진다. 식물 세밀화는 이런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이라 생각한다. 식물을 매개체로 어떤 의미나 심상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작은 식물의 세계가 작아만 보이지 않도록 캔버스의 크기를 키우고 확대 비율을 높인다. 털, 턱잎, 수술과 암술, 꽃받침, 줄기의 단면처럼 전체 모습에서 보여주기 어려운 작은 디테일도 따로 담는다. 이 작은 풍경들이 누군가의 발걸음을 붙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조경그룹 이작 장소와 시간의 힘을 믿는 창작 공동체
    이번 작업(this work)을 줄여서 말하면 이작이다. 말 그대로 이번 작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스튜디오 이름을 지었다. 생생한 설계실 현장의 치열함과 진지함, 즐거움과 고단함. 이 모든 단어가 성남시 분당에 있는 우리의 구성원 이자커스(eejaacers)에게서 들리는 숨소리의 표정들이다. 늘 현재진행형이다. 2008년 탄천이 흐르는 작은 오피스에 둥지를 틀었다. 지치지 않고 열다섯 해를 천천히 산책하며 산에 올라가듯 지나왔다. 동네도 떠나지 않고 잘 지키고 있다. 함께하는 동행들도 서서히 늘어나서 그런지, 요즘은 산책 같은 작업이 더 재미있고 즐겁다. ‘이작’이라는 한자어의 말장난을 통해 우리를 설명해 본다. 아마도 보편적인 얘기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조경그룹 이작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異作, 다를 이 모든 디자인 오피스가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 다름에 대한 강박감이 있다. 태생적으로 디자인은 ‘다르게 하기’와 같은 뜻이라고 본다. 접근 방식이거나 태도이거나, 혹은 도구이거나 결과물이거나, 그중 하나라도 다르면 그때부터 안테나가 쫑긋 선다. 소위 안달이 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다름의 오리지널리티는 결과일 수도 있지만 과정이기도 함을 늘 명심하려고 노력한다. 理作, 다스릴 이 질서에 대한 이야기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나아가 감각과 무감각의 영역에서 세상의 순리를 따르고 현상에 귀 기울인다. 우리가 하는 모든 작업이 자연과 문화의 순환 고리 안에서 잘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거스름이 없다. 시간과 진화에 열려 있다. 지속가능하다. 이런 문장들이 떠오른다. 창의적 발상이 자연의 이치와 손잡을 때 비로소 우리의 작업은 순전한 날개를 달게 된다. 利作, 이로울 이 윤리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과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이로움을 지향한다. 대부분의 작업을 공공의 영역에서 진행하는 우리에겐 특히 중요한 문제다. 공간을 통해 공공에 전달될 ‘경험의 기회’는 곧 혜택과 복지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롭고 이롭지 않은가에 대한 판단의 문제는 삶의 질과 연결된다. 그 최전선에서 일하는 공급자 그룹의 어딘가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두렵다. 以作, 써 이 이렇든 저렇든 결론은 결국 작업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작업물로 세상과 연결된다는 사실이 좋다. ‘만든다’라는 범주는 도면에서부터 완성작까지 모두를 아우르며 우리가 추구하는 의미 영역 안에 있다. 페이퍼워크는 전문가 집단과, 완성작은 일반인들과 나눌 수 있으니 좋다. 작업물로써(以作) 전달하는 조경가의 언어가 비로소 세상에 낯을 내밀기까지, 너무도 고단한 프로세스가 있다. 그래서 설계는 과정의 마술이다. 육체적, 사회적으로 힘들다. 우리는 오늘도 짓고, 만들고, 작업한다. 지난 몇 년간 완공된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면서 고민했던 흔적과 남겨진 것들, 혹은 사라진 것들을 정리해본다. 군포송정 중앙공원 도시공원 설계공모 첫 당선작이다. 아파트 단지와 공원의 공적 관계를 사적 관계 영역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다. 뒤뜰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기억을 공공의 공간에서 구현하고 탐색해보려 했다. 가끔 슬리퍼를 신고 뒷마당에 나온 것 같은 이웃들을 공원에서 만나게 된다.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한국적 정서의 마당을 대표적인 도시 공간인 아파트로 옮겨 보려 했다. 공간의 서정성을 투박한 물성, 단정한 구획, 친근한 단차, 그리고 계절과 자연 현상을 감지하는 식물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용산 고가 하부도로 정원 서울시 공공 프로젝트로 진행한 도시 인프라 개선 작업이었다. 고가 하부의 죽은 공간 살리기를 주제로 빗물과 수 순환, 습도와 식물의 기법과 적용, 공공 공간의 미적 기준 제고,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등을 고민했다. 치장과 단장의 디자인 방향을 완전히 배제하고, 도시 구조물과 식물로만 밀도 있게 조직한 정원 구조체를 제안했다. 엔지니어링 기술과 조경의 협업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던 프로젝트로 기억한다. 아쉽게도 정원 구조체는 몇 년 후 철거되고 보도블록 포장과 오토바이 주차 금지 펜스만 있는 다리 밑 공지가 되어버렸다. 진도 쏠비치 리조트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다녀온 뒤 한참 동안 우리 마음속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던 차 잔잔한 바닷가, 전라남도 진도에 있는 리조트 설계를 맡게 됐다. ‘마음과 영혼에 접속하는 정원’을 주제로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정원을 배치하는 작업을 했다. 개개인의 작업물을 독려하고 비평하고 수정하고 도와가며 조성했다. 조형적 탐구, 관점과 차원의 전환, 낯설게 전달하기, 내적 움직임의 실체 등 깊숙이 들어가서 작업한 짧지 않은 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결과적으로 상업적 리조트와 충돌하는 상황이었지만 곳곳에 고민의 흔적들로서 소울 가든(Soul Garden)들이 자리하게 되었다. 개입한다는 것의 의미와 어떻게, 얼마나,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배웠다. 성남 은행동 소공원 옹기종기 모인 다가구 주택이 즐비한 산동네에 위치한 공원이었다. 경사가 가파른 지형을 생활 언덕으로 바꾸려고 했다. 가장 친근하고 알차게 사용할 수 있도록 멀리 보이는 산자락과 대조를 이루는 도시 언덕을 화강암으로 테트리스 쌓듯이 조성했다. 테트리스 언덕의 활용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치맥(치킨+맥주) 하기, 나물 말리기, 태양초 널기, 생활 품앗이, 낮잠 자기 등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채우는 생활 언덕의 일상은 다채로웠다. 화강암 언덕은 도시의 산자락을 은유하는 동시에 경사지 구조체로도 요긴한 장치였다. 동탄 신리천 교각 하부 공공 디자인 동탄 신도시 신리천을 따라 다섯 개 다리 밑 공간을 공공 디자인하는 작업이었다. 하천을 따라 북측은 갤러리와 같은 공공 미술 벤치로, 남측은 친근한 마을 카페로 변신시켰다. 색깔과 틈, 빛과 장소 브랜딩을 탐구하며 황폐한 교각 하부를 ‘얌전한 화려함’이 살아나도록 하는 갤러리 벤치 공원으로 조성했다. 따뜻한 감성의 브리지 카페는 주민들에게 쉽고 친근하게 접근하려는 시도였다. 수변을 따라 매일 산책하는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활력을 불어넣는 장소가 되기를 기대한다. 의정부 고산지구 공원 지역성으로 시작해서 지역성으로 마무리한 작업이다. 신도시의 4개 공원과 녹지를 설계했다. 기억과 유산이 풍부한 산야의 공간을 도시 속에서 새롭게 정리해갔다. 산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들판과 물줄기를 핵심 장치로 가장 지역성이 잘 드러나는 공원이 되기를 기대하며 작업했다. 도시를 뚝딱뚝딱 순식간에 만드는 한국의 조급한 방식 때문에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남겨야 할 것, 기억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알아야 할 것들은 지역 박물관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원을 통해 온몸으로 공간을 느끼고 도시의 기억을 경험하고 읽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해당 지역 곳곳을 누비며 멍 때리기와 파헤치기를 한 덕분에 술술 풀어나갈 수 있었다. 지역성은 옛 풍경의 내적 질서를 발견하고 새롭게 정리해 만드는 공원의 중요한 주제어다. 대구 복현자이 공동주택 아파트 놀이터 공간의 주인공을 바꾸고 싶은 생각에서 시작했다. 공터에 이것저것 매달 조합 놀이대를 포기하고 중앙에 놀이마루를 제안했다. 원형 놀이마루에서는 자유로운 놀이가 생겨난다. 마을 사랑방으로 활용되고, 때로는 아이들이 뒹굴뒹굴 나뒹구는 툇마루로 변신한다. 벤치의 높이가 주는 심리적 친근함과 만만함을 동그란 잔디마루 위에 재구성했다. 놀이터의 주인공은 놀이 기구가 아니라 마루다. 놀이터의 핵심은 놀이가 아니라 모임이다. 원형마루에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한다. 둘러앉고 마주앉고 드러눕고 나뒹군다. 별다른 놀이가 필요할까. 우리는 장소와 시간의 힘을 믿고 탐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공간을 통해 대화를 시도하는 도시의 화자(storyteller)들이 모여 즐겁게 작업한다. 주거 단지 정원부터 도시의 공공 공간까지 예민하고 깐깐한 조경가들이 참여한다. 트렌드에 얽매이기보다는 상상력이 이끄는 객관화된 낯선 공간의 실체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조경 공간으로 말하고 소통하면서 외롭지 않은 조경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의도적으로 외로워진다. 장소성과 브랜딩, 공공 디자인과 지역성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바우하우스 포스터를 수집해볼까 생각 중이다. [email protected] 조경그룹 이작(eejaac landscape architects)은 행복한 조경가를 꿈꾸는 이들의 창작 공동체다. 장소의 힘에 대한 믿음은 작업의 시작점이자 동력이다. 문제의식은 잠재력을 찾고, 잠재력은 상상을 이끌고, 상상은 사람을 생각한다. 넘치는 상상력과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사람을 위한 공간을 찾는 생각의 무한궤도, 그 어느 지점에서 오늘도 팽팽하게 산다.
  • [모던스케이프] 관광의 목적
    바야흐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피서와 달리 여행에는 방문과 경험이라는 적극적인 행위가 따른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과 도전이 수반되는 여행, 벅차오르는 감동도 있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고통스러움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여행에 해당하는 travel의 어원은 travail(고통, 고난) 아니던가. 그에 반해 눈으로 보고 안다는 뜻으로 새겨진 관광(觀光)은 주체의 시선이 더 강조되는 단어다. 눈으로 확인하고 참관하며 견학하는 의미가 담긴 관광을 이야기할 때 17~18세기 영국에서 크게 유행한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빼놓을 수 없다. 외딴 섬 영국에서는 사회가 안정되자 상류층 자제들을 대륙으로 보내 세련된 취향과 외국어를 학습하게 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견문을 넓히고 지식을 확장하는 목적을 가진 그랜드 투어는 근대적 의미의 관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영국인 토머스 쿡(Thomas Cook, 1808~1892)은 570명의 관광객을 모집하여 영국 레스터(Leicester)에서 러프버러(Loughborough)까지 이동하는 기차 여행을 시도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부터 관광은 서서히 오늘날 통용되는 보편적 개념으로 자리 매김했고, 관광의 목적 또한 교양을 학습하는 것을 넘어 위락과 휴식, 기분 전환 등 즐거운 경험을 누리는 데까지 확장됐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선진 취향을 학습하고자 했던 그랜드 투어가 계몽주의적 측면에서 근대적이라면, 토머스 쿡의 기차 여행은 자본주의 시대에 급부상한 시민 계층을 여행객으로 흡수하고 산업혁명의 상징인 기차를 여행의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근대적이다. 그런데 관광의 대중화에는 각종 매체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컸다. 쿡이 그 시절에 수백 명의 여행객을 모집할 수 있었던 것도 광고라는 방식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급성장한 사진술과 인쇄술, 출판 기술 등 새로운 기술이 관광이라는 아이템과 엮이면서 엽서와 지도, 브로슈어 등 다양한 관광 안내물이 쏟아져 나왔고, 이러한 인쇄물은 다시금 관광의 대중화를 촉발하는 역할을 했다. 한반도에 근대 관광이 정착하게 된 양상은 표면적으로 서구와 닮았다. 개항 이후 왕족과 외교관 등의 관료들이 가장 먼저 해외 여행의 특권을 누렸고, 점차 선진 문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여행이 확산되었다.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대』, 두산동아 한국문화사 시리즈 22, 2008. 김선정, “관광 안내도로 본 근대 도시 경성: 1920~30년대 도해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국문화연구』 33, 2017, pp.33~62. 한경수, “한국의 근대 전환기 관광(1880~1940)”, 『관광학연구』 29(2), 2005, pp.443~464. 阪野祐介·김윤환, “식민지도시 부산을 그린 요시다 하츠사부로(吉田初三郞)의 조감도(鳥瞰圖)와 타소표상(他所表象)”, 『문화역사지리』 33(2), 2021, pp.49~68.
  • [에디토리얼] 50×15,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2년 가까이 매달렸던 책 한 권의 편집을 마무리하고 조금 전 인쇄소로 최종본 파일을 넘겼다. 이번 달 잡지가 독자 여러분에게 도착할 때쯤 신간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도서출판 한숲, 2022)도 펼쳐볼 수 있다. 1972년 한국조경학회 창립을 기점으로 잡는다면, 한국 현대 조경은 이제 50년의 역사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은 역동하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도시와 경관, 지역과 환경, 삶과 문화의 틀과 꼴을 직조해온 조경 50년사의 주요 담론과 작품을 ‘기록’하고 ‘해석’한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여름, 한국조경학회는 ‘한국조경50 편집위원회’를 구성해 책의 방향과 구성을 기획하기 시작했다.1 필자 섭외와 원고 집필, 편집 과정에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re:public landscape)’의 이름으로 ‘다시, 조경의 공공성’을 소환해 토론의 장을 펼치는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World Congress 2022)’ 개막에 맞춰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출간의 목적은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설계하는발판을 마련하는 데 있다. 미래를 전망하고 예비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성과와 한계를 다각도로 되짚고 다시 촘촘히 읽어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 한국 조경 50년의 이야기와 성과를 ‘기록’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책의 의도가 자리한다. 열다섯 가지 서로 다른 시선으로 지난 50년을 탐사하는 이 책은 중성적 아카이브나 백서보다는 해석적 비평서에 가깝다. 책의 1부와 2부는 한국 조경 50년이 남긴 지형과 풍경에 대한 해석이자 비평이다. 이명준(이론과 미학), 최영준(설계공모), 임한솔(전통의 재현), 고정희(식재 디자인), 최정민(시대성과 정체성), 박희성(개발 시대)의 글 여섯 편으로 구성한 1부는 50년을 가로지르는 큰 흐름과 이슈를 조감의 형식으로 해석한다. 2부는 주요 단면에 대한 클로즈업이다. 김아연(생태 공원), 이유직(선형 공원), 서영애(이전적지 공원화), 김영민(아파트 조경), 김정은(사이와 경계), 김연금(맥락), 김한배(사회적 예술), 박승진(시민 사회), 남기준(텍스트)의 글 아홉 편을 엮은 2부는 한국 조경의 궤적 위에 펼쳐진 주요 주제를 포착하고 해석한다. 책의 3부는 한국 조경 50년이 낳은 주요 작품을 기록하는 데 방점을 둔 기획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선정한 ‘한국 현대 조경 50’ 작품의 정보를 정리해 싣는다. 2021년 4월 19일부터 5월 21일까지 한국조경학회 회원,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회원, 조경 설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303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2 지난 50년의 작품 경향과 시대상이 담긴 대표작 50선에서 한국 조경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다. 한국 조경 50년사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과제는 해석적 비평에 무게중심을 둔 이번 책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동안 『현대한국조경작품집 1963-1992』(도서출판 조경, 1992), 『한국의 조경 1972-2002: 한국조경학회 창립 30주년 기념집』(한국조경학회 편, 2002), 『Park_Scape: 한국의 공원』(도서출판 조경, 2006), 『한국조경의 도입과 발전 그리고 비전: 한국조경백서 1972-2008』(환경조경발전재단 편, 2008), 『한국조경학회 창립 40주년 기념집』(한국조경학회 편, 2012), 『환경과조경』 통권 400호(2021년 8월호)를 비롯한 여러 기록물이 백서, 자료집, 작품집 등의 형식으로 출간되었지만, 종합과 체계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아쉬운 면이 적지 않다. 여기저기 흩어져 소실되고 있는 방대한 자료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범 조경계 차원의 기획 프로젝트가 절실한 시점이다[email protected] 각주 1.편집고문 조경진, 편집위원장 배정한, 편집위원 김아연·남기준·박희성, 편집간사 임한솔 각주 2.50개 선정작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정보는 『환경과조경』 통권 404호(2021년 12월호)에서 볼 수 있다.
  • [풍경 감각] 때론 잊는 일도 도움이 된다
    2022년 5월 24일, 미국의 롭 초등학교에서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사망한 총기 참사가 일어났다. 참사 이후 미국 정부는 사건이 일어난 학교 건물을 부수기로 결정했다. 건물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비단 롭 초등학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총격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학교를 부수거나, 이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조하는 것이 보통이다.911 메모리얼 파크,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떠올렸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부수고 지우는 게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추모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마치 이미 결론이 난 것처럼 생각을 하다가 조금 놀랐다. 이런 딱딱한 생각이 돌보지 못하는 귀퉁이들이 떠올라서. 총성이 울리던 교실과 괴한을 피해 달아나던 복도에서, 그리고 빈 책상과 총탄 자국이 남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예전과 같은 날들을 보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때론 부수고, 지워버리고, 그래서 잊어버리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정동극장 공연 ‘궁:장녹수전’ 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 식물학 그림책 『식물 문답』을 출판했다. 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안팎 재미를 찾고 경계를 허무는 토털 디자인
    맨땅에 헤딩을 해보자 독립하는 많은 디자이너는 “왜 잘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하려 하는가?”에대한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금전, 업무 환경 및 범위, 나의 디자인 등 다양한 조건을 고민한 끝에 디자인 오피스를 연다. 안팎의 두 소장에게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운이 따라줘서 좋은 설계사무소를 다니면서 중요한 공공프로젝트에서 트렌디한 상업 시설까지 오랜 기간 좋은 공간을 만나왔다. 즉 독립한다는것은 양질의 프로젝트를 당분간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안정적으로 나오던 월급,체계적인 업무 환경, 좋은 동료 등 많은 것을 포기하고 우리는 맨땅에 헤딩하기로 했다.하고 싶은 것을 다 해 보기 위해서. 이런 생각을 토대로 만든 안팎은 기획, 제안, 디자인, 설계, 공사, 프로젝트 운영, 소품 제작 등 디자이너로서 개입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수용한다. 이것은 안팎이 가진 색깔이자 앞으로 나아갈 길이다. 시공을 통해 안팎을 만난 사람들은 “안팎에서 설계도 하나요?”라고 묻고, 설계를 통해서 안팎을 만난 사람들은 “안팎에서 시공도 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두 소장도 안팎의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디자인만 하다가, 디자인한 공간을 직접 공사하니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다.나무를 자르고, 돌을 놓고, 레미콘을 타설하고, 용접을 하고, 직접 꽃과 나무를 심는다.꽃꽂이와 소품 제작을 통해 조금 더 색다른 공간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나는 우리의 디자인은 때로는 모자라고 때로는 과하기도 하다. 하지만설계와 시공의 연속된 프로세스 안에서 발생하는 빠른 피드백은 그 부족함과 넘침을신속하게 채워주고 덜어내 준다. 디자인-보고 자료-도면-내역-납품의 과정에 시공이 들어오니 지루했던 루틴에 활기와 재미가 생겼다. 대상지를 바라보는 방식과 디자인 방법에도 변화가 생겼다. 물론 직장인 시절 시공 경험이 전무했던 두 소장의 삶은 이전보다스펙터클해졌다. 이처럼 넓은 범위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안팎은 디자인을 기본으로 하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바라는 그것이 우리의 설계 철학? 안팎의 두 소장인 반형진과 정주영은 서울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조경설계 서안에서잠시 같이 일하다가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았고, 2019년에 함께 일을 시작했다. 둘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겹치기도 하지만, 이 둘은 삶, 디자인 등 많은 부분에서 취향이 다르다. 대부분의 디자인 오피스들이 디자인 지향점, 혹은 설계 철학을 가지는것처럼 우리 역시 지향하는 디자인이 있다. 두 소장이 선호하는 디자인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안팎이 지향하는 바가 한 지점으로 모인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두 소장뿐 아니라안팎의 직원들, 또 모든 디자인 사무실의 취향은 산개되어 있지만 지향점은 한 곳을 향하지 않을까? 아마도 안팎이 바라보고 있는 그 지점을 모든 디자이너가 바라보고 있을것이라는 건방진 생각까지 하게 됐다. 물론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주 형태적인 디자인을 선호한다든지, 자연을 복제하는 수준의 경관 구성을 선호한다든지, 트렌드를 선도하거나 따르는 힙한 디자인을 추구한다든지.안팎은 그 과정과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자 한다. 각각의 프로젝트에서 가장 적합한 과정을 따를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시공을 곁들이다보니 현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개인 클라이언트를 대하다 보니 우리는 작가와 디자이너 사이를 오가며 줄타기를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깨닫게 됐다. 그래서 대상지와 현장 상황과 클라이언트의 의도를 거스르지 않고 좋은과정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지향점으로 향해야 한다. 물론 어떨 때는 떼를 쓰거나 징징대기도 한다. 우리도 다른 모든 디자인 사무실들이 추구하는 그것을 함께 추구하기때문에. 개갑장터 순교성지의 마스터플래너 조경가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조경을 계획하거나 설계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동안의 조경은 공공 프로젝트와 대형 상업 프로젝트, 아파트에 기생하였고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근래 일어난 정원 붐은 조경이 우리의 삶에 스며들 좋은 기회다. 보고 자료를 만들고 모델을 만들고 왕복 8시간이 걸리는 멀고 먼 고창에 세번을 방문해 건축주를 설득해냈다. 조경 설계라는 것을 처음 들어보고, 나무 몇 그루심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신축 수도원 주변을 정원으로 만들고자 했던 건축주는조경 설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외부 공간 전체를 안팎에 일임하였다.이미 부지 정지와 건축 공사가 진행된 상황이라 여러 문제점이 많았지만 마스터플래너로서 대상지전체를 다룰 수 있었다. 덕분에 부대 토목 공사까지 떠맡게 됐다. 많은 조경 공사는 건축 공사의 끝 무렵에 시작한다. 조경 공사는 전체 건설 공사의꽃이자 공사장의 문을 닫고 나오는 마지막 공종이다. 조경 공사가 마무리되면 먼지가가득하던 커다란 공사장은 아름다운 외부 공간을 가진 곳으로 변하고 준공 검사 절차를 밟아 공간 활용이 시작된다. 마지막에 있는 공정으로 인해 조경 공사가 시작되기 전만들어진 구조물들은 조경 공사의 큰 난관이 되고, 심할 경우 디자인 의도를 구현하지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건물 역시 외부 공간에 설치되는 큰 구조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조경가는 대상지 전체의 마스터플래너로 적극 활동해야 한다. 개갑장터순교성지 수도원 정원 공사에 뒤늦게 참여해 대상지 레벨이나 건물의 위치, 형태 등에 대한 결정에는 의견을 내지 못했다. 다행히 부대 토목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함께 논의하면서 맨홀, 트렌치, 정화조, 수전 등 이설하기 힘든 구조물들의 위치를 조정하고 우리의 디자인 의도를 잘 구현할 수 있었다. 만약 조경 공사만 진행하게 되었다면 갑자기 만난 구조물들을 피하기 위한 방책을 세우느라 현장에서 골치 아팠을 것이다. 이는 공사에서만 해당하는 상황은 아니다. 낙선에 그쳐 매우 안타까운 프로젝트였지만 안면도 지방정원 및 가든 센터 현상설계공모에서 우리는 대상지 전체에 대한 계획과 함께 건축물의 위치와 규모, 외형까지 적극적으로 제안‧협력하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안팎은 다양한 공종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마스터플래너로서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조경만의 영역에 한정된작업을 수행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박준서 안팎의 두 소장도 독립했다 우리는 조경설계사무소에 취업하는 대다수 친구의 최종 목표가 독립이라고 믿는다. 안팎을 거쳐 가는 직원들이 좋은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이름을 가졌으면 한다. 물론 독립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갖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성장이 필수다. 이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 안팎을 성장하게 할 것이다. 한 가지에 집중해서 그 분야의 숙련자가 되는 방법도 있지만 안팎의 욕심과 함께 이것저것 해보면서 여러 경험을 쌓고, 그중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안팎에서는 본인이 설계한 것은 직접 시공하는 것을 권장한다. 설계에서 시작하여 시공 현장을 넘나드는 넓은 업무범위는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일 수도, 업무의 질과 양 측면에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디자인한 공간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보는 과정은 본인의 디자인에자부심을 갖게 만들고, 일이 아닌 업으로의 조경 전반에 재미와 활력을 부여할 수 있다. 좋은 방향으로만 말하고 있지만 재미와 활력, 흥미 등 온갖 긍정적인 이야기들은 소장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직원들과의 세대 격차가 조금씩생기게 된 소장들이지만 안팎 구성원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안팎 구성원을 비롯해 앞으로 거쳐 갈 많은 사람이 업으로서, 또 너무가볍지만은 않은 재미로 조경을 대할 수 있는 밑바탕으로서의 안팎이 되었으면 한다. 어쨌든 안팎에서는 직원들의 최종 목표가 독립인 친구들도,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그 다이내믹한 과정을 실천할 친구들도 모두 소중하다.조경가로서 다룰 수 있는 공간의 영역을 한정하지 말자그동안 봤던 디자인 오피스들은 각자의 특화된 프로젝트 종류들이 있었다. 아파트만디자인하는 친구들, 대형 현상설계 위주인 친구들, 공원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친구들, 작은 정원을 디자인하는 친구 등 각자의 특화된 영역이 있다. 욕심이 많은두 소장이 함께 만든 안팎의 프로젝트는 작은 정원에서 대형 공공 공간, 개인 주택에서상업 시설까지 매우 다양하다. 사실 규모와 공간의 성격을 넘나드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요구 사항, 디자인 접근 방법, 발주처를 설득하는방법 등이 매우 다르므로 스위치를 이리저리 옮겨줘야 한다. 정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안팎은 더 많은 영역에 진출하고 싶다. 상업 시설의 공간 장식, 실내외를 포함한 토털공간 디자인 회사로 성장하는 것을 꿈꾸고 있으며, 조경이 가지는 공공성이라는 핵심성격 덕분인지 미래 도시 공간의 운영, 유지·관리 등에도 관심이 있다. 아직은 조심스레 관심을 가지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본격적인 발걸음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조경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은 학교에서 기획, 디자인, 설계, 운영 관리 등 폭넓은 커리큘럼을통해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연습해 왔다고 본다. 우리가 배웠던,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안팎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도해 보고 싶다. 안팎의 소장들은 관성에 따른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매우 달콤하지만 금세 지루해진다고 굳건히 믿는다. 안팎(ANPARK)은 공간을 다루는 토털 디자인 오피스로 성장하는 것을 꿈꾼다. 디자인을 함에 있어 공간의 규모와 성격에 차등을두지 않으며, 디자인에서 시공까지 이어지는 연속적인 프로세스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덕분에 416 생명안전공원, 서울대공원동물원 정문 광장 등 규모 있고 공공성이 강한 공간부터 개인 정원, 수도원 정원 등 작고 사적인 공간까지 다양한 공간들을 다루며,현상설계와 실시설계, 시공 등 디자인 프로세스 곳곳에서 업무를 즐겁게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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