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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대공원의 중심이 되는 플랫폼
서울어린이대공원 식물원 리모델링 조경 설계공모 당선작
서울어린이대공원 식물원은 1972년 11월 준공됐다. 50여 년이 흐르며 식물원의 시설은 낡아갔고,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지며 활용도도 낮아진 상황이다. 서울시는 식물원 전면 리모델링을 통해 서울어린이대공원의 새로운 집객 요소로 탈바꿈시키고자 ‘서울어린이대공원 식물원 리모델링 조경 설계공모’를 개최했다. 낙후되고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식물원을 새로운 식물 전시 등을 통해 어린이와 시민의 기호와 수준에 걸 맞도록 바꾸고 안전성을 확보해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공모의 목표다.
1차 제안서 심사와 2차 PT 발표를 통해 씨토포스의 ‘어린이대공원의 중심이 되는 플랫폼’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2등작은 그람디자인이, 3등작은 조경설계호원이 차지했다. 심사위원은 당선작이 서울어린이대공원 식물원 건축설계안(일구구공도시건축의 ‘식물도감’, 2024년 11월 22일 선정)의 내·외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했으며, 특히 어린이를 위한 사바나월드, 다양한 깊이의 식물을 관람하는 트로피컬월드, 중앙의 그리너리월드 등 다양한 기능과 연출로 공원의 중심성을 확보하고 확장성이 높은 계획을 제시했다고 평했다. 식물원 리모델링 사업은 8월까지 설계를 마치고 2026년 6월까지 공사를 완료해 같은 해 8월 재개원할 예정이다.
*환경과조경444호(2025년 4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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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는 무엇을 따르는가
한국조경학회, 제2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주제 토크
한국조경학회는 매달 ‘KILA 포럼’을 열어 조경학의 지식과 이론을 나누고 시의성 있는 의제를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 14일, 2025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과 연계한 ‘형태는 무엇을 따르는가(Form follows what)’를 주제로 포럼이 개최됐다.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조경 디자인의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인 형태 생성의 접근법과 담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포럼은 줌을 통해 발표와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포럼에 350여 명의 조경학과 학생들이 참여해 환경조경대전 주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포럼은 박희성 연구교수(서울시립대학교, 한국조경학회 학술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됐고, 김무한 교수(공주대학교, 한국조경학회 기획 이사), 이명준 교수(한경국립대학교, 한국조경학회 기획 이사), 민병욱 교수(경희대학교, 한국조경학회 기획 부회장)가 발표를 담당했다.
김무한 교수는 ‘형(形)-행(行)-태(態)’를 주제로 조경 설계에서 형태 생성의 중요성과 그 과정에 관한 탐구에 대해 강연했다. 직선, 정사각형, 직사각형과 패턴 등 기본 선과 도형을 활용해 공간의 형태를 발전시키는 방법과 자연에서 나타나는 선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폼 제너레이션(form generation)을 설명했다. 1960~1970년대 프로세스 아트가 조경 설계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면 창의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프로세스 아트적인 조경 설계를 통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과감한 형태 변화와 창의적인 방향이 나왔으면 좋겠다. 시간 요소가 디자인 관점에서 폼 제너레이션을 발전시키는 점에 주목하면 보다 재미있는 폼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과조경444호(2025년 4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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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1승을 향해
고등학교에서 지하철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영화관이 있었다. 영화관 근처에 맛집과 놀거리가 많아 시험 끝난 날에는 이곳에 가 맛있는 밥도 먹고, 영화도 보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통신사에서 선착순으로 천원에 영화 티켓을 선물로 주기도 해 방과 후에 친구랑 종종 영화를 보러 갔다. 그때는 OTT가 없었을 때라 영화관이 아니면 영화를 보기 힘들었다. 티켓이 생기면 한 번은 친구 취향, 한 번은 내 취향의 영화를 번갈아 봤다. 취향과 상관없이 친구들 사이에서 재미있다고 소문 난 영화도 보며 다양한 영화를 접했다. 이때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되면서 나만의 영화 선택 기준이 생겼다.
이제는 OTT가 발달해 많은 영화를 손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때 생긴 나만의 기준은 지금의 영화와 드라마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만의 기준은 네 가지다. 1) 로맨틱 코미디, 스포츠, 타임슬립, 추리물 등 선호하는 장르 2)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 3) 흥미로운 제목과 예고편 4) 입소문 타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 네 가지 기준의 교집합에 속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발견하면 챙겨 보곤 한다.
스포츠 영화인 데다가 주인공인 박정민의 연기를 좋아해서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는데, 예고편을 보고 스포츠 영화 특유의 클리셰 범벅일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 우연히 유튜브 쇼츠로 본 영화 속 한 장면이 보고 싶다는 마음을 일깨웠다. 마침 구독 중인 OTT 영화 리스트에서 이 영화를 발견해 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본 영화가 ‘1승’(2024)이다. 1승은 배구를 소재로 한 영화로, 김우진(송강호) 감독이 만년 꼴찌 후보인 프로 여자 배구단 ‘핑크스톰’의 감독을 맡아 1승을 향해 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처음부터 예상을 뒤엎는다. 강정원(박정민)은 해체 직전인 핑크스톰을 일으키기 위해 구단주가 된 게 아니라 다시 잘 팔기 위해 프로 배구단을 산다. 지도자 승률이 10%인 점과 파직, 파면, 파산, 퇴출, 이혼 경력이 마음에 들어 김우진을 감독으로 선임한다. 구단주의 파격적인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핑크스톰이 1승만 하면 시즌권 구매자 중 추첨을 통해 20억을 준다는 것이다. 구단주는 돈이 없는 구단을 위해 그나마 잘하는 선수 두 명을 다른 구단으로 보내 5억을 받아내는 트레이드를 진행시키고, 통역자를 구할 돈이 없어 재일교포를 용병으로 기용하고, 훌륭한 실력에 그렇지 못한 인성을 가져 출전 정지 명령을 받은 선수를 다시 부른다. 이렇게 구성된 핑크스톰은 1승은커녕 1세트도 따내기도 힘들어진다.
영화는 1승만 바라보며 달려간다. 스포츠 영화에서 종종 선수의 가슴 아픈 사연이 나오곤 하는데, 이 영화는 선수 사연보다 선수가 가진 특징에 집중한다. 특히 감독은 선수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너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니.” 프로 생활 6년 내내 벤치를 지키던 선수는 대답하지 못하고, 반대로 단점을 물으니 소심하고 눈치 보는 것이라 답한다. 이를 들은 감독은 눈치를 보니 다른 선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며 세터 포지션에 서게 한다. 여기에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기술을 연마하게 했고 이는 팀의 무기가 됐다. 다른 선수에게도 똑같이 질문하며 선수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게 포지션을 변동하고 경기를 뒤집는 한 방으로 활용한다. 상대 팀이 예상하지 못하는 공격과 수비로 이어지고 점수로 연결되었다. 점차 프로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고 1세트도 못 따던 핑크스톰은 1세트를 넘어 1승을 바라보게 된다.
스포츠 영화에서 볼 법한 클리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예상을 빗나간 장면과 대사, 몰입도를 높인 시합 연출은 영화를 끝까지 보게 했다. 특히 현실에선 보기 힘든 구단주의 공약들은 나의 웃음요소였다. 그리고 영화는 뜻밖의 질문을 내게 남겼다. “너의 장점은 무엇인가.” 이 질문의 답이 나만의 1승을 향해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될 것 같았다. 내 장점은 뭘까, 갑자기 궁금해져 AI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장점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장점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의식적으로 찾아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과거 경험 돌아보기,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기, 다양한 관점으로 살펴보는 등의 방법을 활용하면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장점도 더 잘 보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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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먼 우주에서 본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을 테다. 시점의 높이를 점점 낮춘다. 대기권에 진입해 구름을 통과하고, 고층 빌딩의 옥상 높이까지 내려오면 종이에 쿡 찍은 작은 점처럼 보일 거다. 생명 활동을 하니 ‘지구 생명체’로 분류된다. 자세히 관찰할수록 나는 여러 이름을 얻는다. 포유류, 인간, 아시아인, 한국인, 선거권자, 여성, 장녀, 노동자. 수없이 많은 단어의 나열 끝에야 내 이름 세 글자가 놓인다. 요즘에는 나를 이르는 또 다른 이름들을 생각하는 일이 잦다. 내가 개인이 아닌 어떤 집단의 일부라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아시아인이 죽으면, 노동자가 죽으면, 여성이 죽으면, 내 일부가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든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거나 피 한 방울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만큼씩 헛헛하고 공허해진다. 이 공허함은 무력감과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영화 ‘미키 17’의 주인공에게도 미키 반스라는 이름이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않는다. 미키 뒤에 넘버링을 붙이거나 익스펜더블이라 부른다. 익스펜더블(expendable)의 의미는 ‘소모용’. 이토록 무례한 형용사를 붙인 이유는 미키가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키가 죽으면 유기체 프린터가 미리 스캔해둔 신체 정보를 활용해 새 몸을 프린트하고 저장해둔 그의 기억을 뇌에 삽입해 미키를 부활시킨다. 불로불사를 이룬 권력자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익스펜더블은 ‘케네스 마샬’이라는 막대한 부를 지닌 정치인―선거에서 두 번이나 낙선했다―이 인류가 새롭게 머물 니플헤임이라는 행성을 개척하기 위해 모집한 직업군 중 하나다. 익스펜더블은 온갖 위험한 일을 도맡는다. 방사능에 노출되면 몸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행성에 인체에 해로운 바이러스가 있지는 않은지, 새로 개발한 백신의 부작용은 없는지 확인하는 온갖 실험의 피험자가 된다. 익스펜더블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 채 계약한 미키는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이 일을 계속한다. 잡히면 제 신체를 가지고 즐거운 살인 쇼를 벌일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야만 했고, 미키는 익스펜더블이 아니면 개척단에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미키의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가 살아나면 대수롭지 않게 새로운 숫자를 미키 뒤에 붙여 부른다. 노동자가 죽어도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또 다른 노동자를 들이는 것처럼, 미키는 끊임없이 죽고 살아나 익스펜더블의 자리를 채운다.
사실 예고편을 봤을 때는 노동자의 인권과 파시즘의 문제를 지적할 뿐 아니라 복제인간에 대한 논의를 펼칠 거라 예상했다. 신체와 기억을 복사한 것만으로 같은 사람을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실제로 여러 미키는 특징이 조금씩 다르고, 특히 미키 17과 미키 18은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일 정도로 성향 차이가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는 끝끝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던지지 않는다. 의아해하는 내게 실마리를 준 건 친구 L이었다. “이 사회가 양산형 제품처럼 다루는 노동자들이 결국 퍼스널리티가 다른 개개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어. 복제인간 이슈가 중점이 아니라 국가가 생산하고 버리는 노동자 1, 노동자 2가결국 하나의 개개인이라는 걸 외치는 느낌. 크리퍼도 모두 똑같이 생긴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 이름이 있었잖아.” 감독이 의도한 답이 아니더라도 내게는 충분했다.
미키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되고서야 미키 반스라는 이름과 존중받을 권리를 되찾는다. “불멸의 존재로 거듭났으나 필멸의 존재가 되어서야 존엄성이 생기는 아이러니다.”(각주 1) 본래 익스펜더블, 노동자, 채무자, 하층민과 같은 단어들은 죽을 수 없다. 개개인이 각기 다른 인격으로 다뤄질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게 된다. 이번호 ‘다시, 정원을 읽다’를 편집하며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정원들을 생각했다. 정원의 정체성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 없이 무분별하게, 전시적인 정치적 산물과 브랜딩 전략으로서 만들어지고 있는 정원은 개개의 이름을 가진 가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을까. “모든 게 정원이어서 정원이 아무것도 아닌, 정원의 시대”(12쪽)를 맞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번 특집이 ‘미키 17’를 보는 내내 날 불편하게 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던 질문처럼 가닿기를 바란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각주 정리
1. 장혜령, “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사랑 이야기’가 담아낸 것”, 『오마이뉴스』 2025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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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쾌적한 도시 환경을 만드는 포그메이커
대기 오염에 효과적인 고압 안개 분무 시스템
미스트는 야외 공간에서 이용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시각적 연출 요소로 활용될 뿐 아니라 주변 온도를 낮추거나 공기를 정화해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에버디포(Everdepot)는 고압 안개 분무 시스템 전문 브랜드 ‘위드미스트(Withmist)’를 통해 인간의 삶과 좋은 도시 환경을 위한 친환경적 해결법을 제공한다. 스마트 ICT 기반 고압 안개 분무 시스템을 활용해 쾌적한 정원과 조경 공간을 만들고 있다. 이 시스템은 초미세 미스트를 균일하게 분사해 식물 생육 환경을 개선하고, 미세먼지 저감과 온도 조절 기능을 통해 지속가능한 조경 유지·관리를 지원한다.
특히 포그메이커(Fog Maker)는 고압 안개 분무 시스템을 적용한 에버디포의 대표 제품으로 대기 오염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 특수 공법으로 제작된 미스트 노즐과 고압 펌프는 물을 빗방울의 약 1,000만 분의 1 크기의 입자로 분사한다. 고압 분사 시 시간당 물의 이용량이 적어 저압 시스템 대비 경제적이다. 단위 면적당 물 입자의 수가 많고 밀도가 높아 분진 입자가 비산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부유 먼지, 미세먼지, 황사, 매연 등을 포집해 대기 중 유해 물질을 50% 이상 감소시키며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다양한 야외 공간에서 활용 가능하며, 고압으로 분사되는 미스트의 도달 범위가 10~90m에 달해 규모가 큰 공간에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도심 속 정원, 식물원, 수직 정원 및 스마트팜 등 다양한 환경에 적용 가능하며 미세 안개 미립자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까지 도달해 넓은 구역의 온습도 조절에 유리하다. 자동 제어반 시스템을 이용하면 분사량과 분사 시간 등을 설정할 수 있어 더욱 편리하다. TEL. 070-4231-8971 WEB. www.withm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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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설계공모의 난맥을 되짚어보며
설계공모라는 네 글자는 언제나 기대와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설계공모가 생각만큼 꿈과 낭만의 보물 상자인 것만은 아니다. 성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경쟁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과정과 결과를 둘러싸고 의혹과 불신이 끊이지 않는다.
설계공모의 목적은 좋은 설계안 또는 설계자를 뽑는 데 있다. ‘좋은’은 ‘독창성 뛰어난’이나 ‘실험성 강한’처럼 가슴을 뛰게 하는 어휘로 대체할 수 있다. 주최자의 의도를 대변하는 설계 지침서들을 보면 “○○를 ○○할 수 있는 ‘독창적’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구한다”는 공모 목적이 예외 없이 쓰여 있지만, 말 그대로 독창적이기만 한 제출작은 당선되기 쉽지 않다. ‘좋은’의 자리를 경제성, 합리성, 공공성 같은 가치가 차지하는 설계공모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경제성은 값싼 재료와 시설, 합리성은 뻔한 디자인, 공공성은 실체 없는 말 잔치로 귀결되는 예가 허다하다.
설계공모의 성과물을 누릴 주체는 당선작에 따라 실현될 공간의 사용자들이지만, 그들이 공모의 과정에 개입할 기회는 매우 드물다.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주체는 출품자, 주최자(또는 그를 대리하는 전문위원), 심사위원 정도다. 세 배역을 조금씩이나마 맡아본 경험담을 나누고자 한다.
설계공모의 꽃은 게임의 선수인 출품자다. 나는 자신을 조경가가 아니라 이론가 또는 비평가로 정의하고 있지만 아주 드물게 공모전에 출품한 적이 있다. 다양한 인력으로 구성한 팀의 일원으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거나 전반적인 디자인 개념을 잡는 데 조력하는 역할을 했다. 불확실한 경쟁의 장에 뛰어드는 일이었음에도 초조함이나 불안감보다는 엔돌핀이 샘솟는, 아주 자극적인 경험이었다. 자신의 디자인 아이디어와 해법을 실험할 수 있다는 기대, 자신의 구상이 실현되거나 적어도 공론화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테다. 당선의 기쁨을 맛본 적은 없다. 억울하진 않았지만 아쉬움은 컸다. 무엇보다도 패인을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패인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주최자나 심사위원회가 제출작과 최종 경쟁작에 대해 상세한 리뷰를 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몇 줄의 형식적인 심사평이라도 발표되면 다행이다. 대부분의 패자는 작품 외적인 모종의 상황 때문에 당선되지 못한 것이라고 의심하며 분루를 삼킨다.
PA(Professional Advisor)라고도 불리는 설계공모의 전문위원은 주최자의 대리자 역할을 한다. 설계공모가 갑자기 늘어난 2000년대 중반 무렵 국내에 도입된 제도다. 나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녹지공간, 광교신도시 호수공원, 동탄신도시 워터프런트, 용산공원 등 몇몇 국제 설계공모의 전문위원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복잡하지만 도전적인 일이었다. 전문위원단은 설계공모 전반을 기획하고 설계 지침을 쓰고 제공 자료를 만들고 심사위원을 섭외하고 심사 과정을 진행한다. 지명 공모라면 지명 초청자를 선정해 섭외하는 일도 해야 한다. 홍보, 의전, 전시 기획, 작품집 출판까지 관장해야 한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경험은 주최자가 공모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였다. 대상지를 무엇으로 어떻게 쓰겠다는 명확한 의도 없이, 원하는 설계안과 설계자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도 없이 행정 절차의 하나로 공모를 맡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공들여 설계 지침을 작성해도 머릿속에 그렸던 작품이 제출되지 않는 때도 많았다. 지침을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일 테다. 심사위원으로 초대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작품 자체보다 태도와 스타일에 초점을 두고 심사를 하거나 난데없는 국가 대항전, 감정적 민족주의의 대리전을 펼치는 등, 심사 과정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
다시 하라면 가장 하기 싫은 배역은 심사위원이다. 나에겐 출품자가 몇 달씩 집중하고 몰입해 제출한 성과를 단 몇 시간 안에 평가할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심사에서는 ‘이 작품은 직선이 많아 생태적이지 않다’, ‘저 작품은 정자가 있으니까 한국적이다’라는 수준의 주장이 토론을 주도했다. 첨예한 이권이 걸린 공모에서는 공정성 보장과 투명성 확보를 구실로 심사자 간 토론을 금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네킹처럼 다소곳이 앉은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채점표에 점수만 매기는 풍경이 생중계됐다. 심사위원을 맡기 난감한 더 큰 이유는 인간관계다. 심사위원 후보로 예상되면 선후배와 친구는 물론이고 친구의 친구, 생전 본 적 없는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친다. 전화기를 꺼놓아도 소용없다. 연구실 문을 잠그고 없는 척해야 한다. 제출작 제목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오는가 하면 패널 이미지 파일이 카톡으로 날아들기도 했다.
설계공모 기획, 설계 지침서 작성, 공모 운영, 심사위원 선정, 심사 진행, 공모 이후 당선작 구현에 이르는 프로세스 전반을 다시 디자인하고 공론의 장에서 토론할 시점이다. 이번 호에는 다섯 명 필자를 초대해 특집 지면 ‘올바른 설계공모를 위하여’를 꾸린다. 최영준(서울대학교 교수)은 한국 현대 조경의 지형 속에서 설계공모가 변천해온 과정을 살피고, 좋은 설계공모의 기준으로 기획자의 선 설계, 참여자의 본 설계, 관람자의 설계 인식을 꼽는다. 이해인(HLD 소장)은 참가 자격, 심사 공정성, 의사 결정 방식, 당선작의 구현 보장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설계공모의 정상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이승환(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설계공모의 공정성을 둘러싼 문제를 다각도로 짚는다. 일부 설계사무소의 당선 독점, 심사위원 사전 접촉과 로비 등 불공정 문제를 검토하고, 심사위원 선정 및 사전 공개와 관련된 현실적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정평진(스코어러 대표)은 ‘스코어러’ 데이터베이스와 심사위원 인터뷰집 『코멘터리』 0호를 바탕으로 국토교통부의 설계공모 운영 지침, 심사위원 위촉과 구성, 당선 결과의 양상, 올바른 심사의 기준 등을 검토한다. 임유경(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은 건축공간연구원의 연구를 토대로 공공 프로젝트 설계공모 이후의 설계 변경과 공사 부실 문제를 살피고, 이상과 실제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2024년 1월부터 이어온 신명진의 연재 ‘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를 맺는다. 도시의 공원을 일상의 장으로, 관심의 공간으로, 다시 연구의 대상으로 경험해온 한 밀레니얼 박사의 이야기에 그간 많은 독자의 호응이 있었다.15회에 걸친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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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손쉬운 다이어트법
아침 수영을 마치고 체중계에 올라선다. 어라, 뜻밖의 몸무게다. 수건으로 몸에 남은 물방울을 꼼꼼히 닦아내고 뜨거운 바람에 머리카락을 바짝 말린 뒤 다시 잰다. 마찬가지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몸무게에 한해서는 언제나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 중이다. 다른 체중계로 재면 다를지도 몰라.
집으로 돌아와 체중계를 꺼낸다. 계기판이 흔들리며 높은 숫자 중 하나를 고르려고 해서 재빠르게 내려온다. 그리고 저울을 옮긴다. 벽에 기대어 세워두고 발로 밀어 몸무게를 잰다. 7㎏ 남짓. 바늘 끝이 아주 가볍다. 다이어트 그까짓 것, 정말 쉬운 일이다. 1월마다 결심해온 체중 감량. 올해는 해낼 수 있을까. 그래도 바늘이 가리키던 숫자처럼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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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설계공모를 위하여
For a Fair Competition
매년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조경 설계공모가 열린다. 2007년 조경 설계공모의 분기점으로 불리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중앙부 오픈스페이스 국제설계공모’ 이후, 설계공모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질적으로도 서서히 진화를 거듭했다. 조경 설계공모가 활성화되자 조경가는 그에 발맞춰 설계 역량을 키웠다. 설계공모의 결과물은 동시대 조경의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냈고, 완성된 좋은 공원과 광장들은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조경의 중요성을 알렸다. 이는 곧 다른 분야와의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어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조경가가 말한다. 목록을 빼곡하게 채운 설계공모 제출물은 그 쓸모를 의심하게 한다. 공모 당선 후 설계안은 발주처에 의해 고쳐지며 원형을 알 수 없게 된다. 실시설계까지 너무나 짧은 시간이 주어지기도 한다. 설계 대상이 분명 조경이지만 설계 자격을 얻지 못할 때도 있다. 설계안을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는 무산된다. 형식적인 자문과 심의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가 하면, 대가 없이 용역 기간이 늘어나거나 추가 업무가 생기기도 한다.
이번 특집에서는 조경 설계공모의 현재를 진단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공모를 조망한다. 조경 설계공모는 어떻게 변해왔으며 현재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가. 그 과정에서 조경가의 자격은 어떻게 변해왔고, 설계공모와 결과물의 상관관계는 어떠한지 살펴본다. 아울러 현재 설계공모의 운영과 심사 방식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이번 기획이 계속 변화해온 설계공모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안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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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설계공모 변천사 _ 최영준
공모 정상화를 위한 제안 _ 이해인
설계공모, 결국 심사위원의 문제 _ 이승환
자격을 논할 자격 _ 정평진
공공건축 설계공모 이후, 이상과 실제 _ 임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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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설계공모를 위하여] 조경 설계공모 변천사
설계공모에 대한 글을 몇 편 쓰며 스스로 묻고 답하고 싶은 질문이 하나 생겼다. 과연 설계공모의 시초는 언제이며 어디에서 시작됐는가. 경쟁‧경연‧대회(competition)라는 형식에 기반을 둔 효시는 쉽게 예상할 수 있듯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이다. 건설 환경 분야와 관련된 디자인 공모에 대한 최초 기록은 기원전 448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세운 전쟁기념관을 위한 설계공모다.(각주 1) 몇몇 글에 따르면, 중세에는 여러 예술 창작자 사이에서 의뢰 지정 방식에 대한 대안으로, 근대에는 건축 양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전에 없던 형태와 디자인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설계공모가 실행됐다. 균등 기회 기반의 경쟁 입찰이 일반화되고 디자인의 교류가 국제화를 넘어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의 설계를 확인할 수 있게 된 현 시점의 설계공모는 어떤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일까.
조경 설계공모의 첫 걸음, 민주적 변곡점
설계공모는 디자이너 개인의 자율 창작 의지에 기반한 아이디어를 사회적으로 합의된 의사 결정으로 만들어가는 열린 동의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다. 조경은 공공 영역과 자주 맞닿기에 공동체를 위한 합의 기능에 기대야 마땅하다고 여겨지고, 분야의 탄생 자체가 옴스테드와 복스의 센트럴파크 설계공모 당선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한국의 조경 중심 설계공모의 역사는 의외로 길지 않다. 그리고 정부 주도의 국토 개발 역사를 지녀 조경 설계공모의 시작과 발전이 정치적 성숙과 그 진도를 함께 해왔다. 건축 설계공모는 해방 이후부터 그 역사를 찾아볼 수 있고 일찍이 일반화됐지만, 공원 녹지 사업을 조경 주도로 기획‧실행한 첫 설계공모는 1996년 말 공고해 1997년에 당선작을 발표한 여의도광장 공원화 설계현상공모다.(각주 2)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에 등장한 민원(民願) 제도와 그 시점이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에게 널리 공개하여 모집한다’는 의미의 공모(公募)와 1997년 제정된 ‘국민이 행정 기관에 어떠한 것을 신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민원 제도가 만났던 이 시기는 공공의 영역에 대한 제안을 국민에게 널리 열어서 모집하는 공식적 경로가 열린 한국 조경의 민주적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여의도광장의 공원화 사업을 시작으로 몇 해 동안의 조경 설계공모는 서울의 대표적 오픈스페이스 유형들에서 하나씩 시행됐다. ‘공원’으로의 변화를 꾀한 여의도(1997)를 시작으로, 서울‘광장’이 된 서울시청 앞 광장조성 설계공모(2002)(각주 3)에 이어 ‘도시 숲’의 시초가 된 서울숲 조성 설계공모(2003)(각주 4)까지 설계공모가 실행된 이 시기를 조경 설계공모의 태동기라 하겠다. 초창기인 만큼 설계공모라는 경쟁 게임에 대한 미숙한 규칙과 진행이 많았다. 여의도광장 공원화 설계현상공모 참가 팀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는 『환경과조경』 1997년 3월호 내용을 인용한다.(각주 5)
“주무부서의 치밀한 사전 준비 절대 부족”, “심판관 얼굴 가릴 필요있나”, “게임이므로 공정성과 형평성의 원칙에 따라야”, “앞으로 설계경기 기간을 이번 1개월 보다 늘리겠지만”, “심사위원 사전 공개는 불변 심사위원 소감 및 소개”, “심사위원 사전 공개 시범적으로 해봄직”, “서울 공원 유지‧관리에 대한 서울시의 장래 계획이 언급되어야”, “더 많은 전문가의 의견 수렴 필요, 추진 방법에는 신중 가해야”, “상식 수준에서 선택된 작품이라고 판단”, “본 과업의 적극적 홍보 필요, 여성 심사위원 수도 좀 더 늘렸으면”.
게임의 규칙, 심판, 선수의 매너 모두에 대한 불만과 불완전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렇듯 설계공모의 기획, 진행, 후속 절차는 초보 단계에 머물렀기에, 여의도의 경우 당선작과 크게 다른 준공 결과물을 남겼고, 서울시청 앞 광장은 당선작이 전면 취소되기도 하는 등 반복되어서는 안 될 선례를 남겼다. 반면, 서울숲 설계공모는 ‘숲’이라는 구체적 오픈스페이스 유형에 맞춘 기획이 탄탄하게 갖춰진 사례였다. 도시 숲 성격에 맞는 숲 연계 프로그램이나 환경 생태 기능을 강조하는 구체적 설계 지침을 제시하는 판을 깔았기에, 상투적 개념 구현이나 형태 중심 설계를 탈피하고 목적에 합당하고 ‘쓸모 있는’ 당선작이 선정됐다(각주 6)는 평가를 받았다. 기획과 결과 간의 동기화가 된 선례다.
*환경과조경443호(2025년 3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Jack L. Nasar, Design by Competition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p.29.
2. 한우드엔지니어링의 작품이 당선됐다.
3. 당선작: ‘빛의 광장’, 서현(당시 한양대 교수)·인터씨티건축사사무소
4. 당선작: ‘서울숲’,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대우엔지니어링·조경진(당시 서울시립대 교수)
5. “여의도광장 공원화 추진의 발자취”, 『환경과조경』 1997년 3월호, pp.143~151.
6. 이상민·조정송, “서울숲 조성 설계공모에 대한 비판적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2(31), 2004, pp.15~27.
최영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조경설계를 가르치고 조경 디자인의 성능을 연구하는 교수지만, 정체성의 중심에는 외부 공간을 그리고 만들어가는 조경가가 자리한다. 매년 다시 찾아가고 싶은 준공된 장소를 하나씩 만들어 이웃들과 공유하는 기쁨을 위해 설계하고 짓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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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설계공모를 위하여] 공모 정상화를 위한 제안
1억 원 이상의 공공 설계 프로젝트는 공모를 진행하도록 한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덕분에 건축에서는 조경보다 설계공모가 더 활성화되어 있다. 하지만 설계공모가 많다고 해서 마냥 부러워 할 일만은 아니다. 설계공모는 만능이 아니며, 오히려 갖은 소규모 공모가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설계공모는 PQ나 제안서 입찰 등 다른 방식에 비해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는데, 참가 팀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매몰 비용만으로도 설계를 몇 번이고 발주할 만한 금액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수상작에 대한 보상금, 공모 운영비뿐 아니라 절차에 필요한 시간적 비용도 크다. 그렇다면 이 모든 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공모를 통해 진정으로 탁월한 계획안을 선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진다.
설계공모는 실적, 기술 점수, 회사의 신용 평가 등 설계와 무관한 요소를 배제하고 설계안 자체를 평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공모 참가 자격이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기회의 박탈이 더 쉽게, 더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심사위원의 편향성과 심사 방식의 오류가 공정성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크며, 결과적으로 공모로 선정된 안이 이후 마구 변경된다면 설계공모의 근본적 목적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참가 자격 설정 방식, 심사 공정성, 의사 결정 방식, 당선작의 구현 보장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개선안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참가 자격
설계공모의 참가 자격은 최대한 포용적으로 설정하되 계약 단계에서는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조정할 수 있다. 참가 자격과 당선자의 계약 조건은 충분히 분리될 수 있으며, 이를 활용하면 불필요한 배제를 방지하면서도 공모의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다. 대부분 건축 공모에 외국 건축사가 참가 자격을 갖는 걸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일부 공모에서는 이런 조정 없이 초기 참가 자격 자체를 불필요하게 제한하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 사례는 건축사만 참가할 수 있거나 대표사를 맡을 수 있도록 나오는 공원 설계공모다. 이런 제한은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뿐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부작용을 가져온다. 제출작 또는 당선작의 크레디트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거나 불리한 하도급의 관계에 갇혀 정당한 설계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일로 이어진다. 공모에서 조경가가 배제되는 건 조경사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공모 운영 방식이 특정 분야를 과도하게 우선하는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다.
공모 정상화 방법으로 조경사 제도 신설을 논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모 제도의 문제는 특정 직능의 법적 지위보다 공모 운영 방식과 절차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조경사 제도가 신설된다 해도 조경이 공모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며, 심사의 공정성이나 당선작 구현 보장 같은 본질적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따라서 공모 제도의 개선은 참가 자격 설정 방식과 심사 구조를 바로 잡는 방향으로 논의되어야 하며 조경사 제도와의 연관성은 별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대부분 참가 자격 설정은 법이 아니라 발주 기관과 운영위원회의 내부 논의를 통해 결정된다. 어떤 분야가 핵심 분야여서 배제되면 안 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프로젝트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 단순히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언제나 합리적으로 작동할 규정을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법 개정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해결이 요원해질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부당한 자격 제한이 설정될 때마다 이를 지속적으로 반박하고 공론화하는 것이 현실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조경 분야 내부 문제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공론화해야 한다. 또한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분야의 대응 방식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런 분야들과 협력해 공통적인 개선 방향을 모색하고, 필요할 경우 공동 대응하는 것도 효과적 전략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참가 자격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기 위한 플로차트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반복되는 논쟁을 줄이고 실무 운영 체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것이다.
제안
· 참가 자격과 당선작의 계약 요건을 분리해 공모의 포용성을 높이되 전문성은 계약 단계에서 보완할 수 있도록 한다.
· 특정 분야를 배제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질적 저하와 사회적 손해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해 공론화한다.
· 법 개정보다는 발주 기관과 운영위원회가 참가 자격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대응하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분야와 협력해 개선 방향을 모색하고 필요하면 공동 대응한다
심사의 공정성
공정한 심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 자체가 쉽지 않지만, 여기에서는 ‘공정하지 못한 심사’를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설계안의 우수성과 무관하게 평가하거나 심사위원으로서의 전문성이 부족해 당선작의 선정을 방해하는 경우로 한정해 논의하고자 한다.
심사위원이 공정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건 쉽지 않다. 결국 심사는 개인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완전한 공정성을 보장하거나 불공정성을 100% 제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현실적 대안은 무엇일까. 대부분 심사위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는 심사 과정을 공개하거나 녹화‧생중계하는 방식처럼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가 부담스럽고 껄끄럽게 만들어 불공정한 심사가 발생할 가능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여기에 더해 심사위원의 심사 패턴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정 심사위원이 반복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편향된 평가를 한다면 이를 데이터로 축적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불공정한 심사가 단발성 논란으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기록을 통해 패턴으로 드러나도록 하는 걸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특정 심사위원이 의도적으로 특정 안을 밀어주거나 배제하는 경향이 감지되면 공론화하거나 심사위원 선정 기준을 조정하는 등의 대응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LH와 서울시처럼 공모를 다수 운영하는 기관 단위로 운영할 수도 있고, 조경‧건축 설계 분야 전반에서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도 있다. 공식적인 운영이든 비공식적인 방식이든 심사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면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편 심사위원 제척은 불공정성을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지만 역으로 전략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제도로 작동하기 어렵다. 블라인드 심사의 실효성도 높지 않다. 설계안 제출 과정에서 익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발표할 때 얼굴을 보지 않는다고 공정성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만약 특정 안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발표장에서 얼굴을 가린다고 해서 이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사전 접촉 여부를 증명하는 것도 어렵다. 누가 설계한 것인지 알고 싶다면 다른 경로로도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에 블라인드 심사는 실효성이 크지 않은 형식적 절차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제출작의 익명성을 유지하는 건 중요하지만, 발표 시 얼굴을 못 보게 하는 블라인드 심사는 특히 국내 조경 설계공모에 비추어 본다면 공정성 향상에 그다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누가 낸 안인지 알고 싶다면 그걸 발표장에서 얼굴을 봐야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전 접촉이 있었는지는 누군가의 자발적 고발이나 수사 없이 알아낼 방법도 없다. 아무 정보도 받지 않았더라도 딱 봐서 누구 것인지 유추할 수도 있는데 얼굴을 안 보고 심사를 한다는 건 요식 행위 아닐까.
또한 공정성을 위해 토론을 배제하는 방식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토론 없는 심사는 심사위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며 논의하는 과정을 차단하고 오히려 개별 심사위원이 자의적으로 점수를 조정하는 걸 용이하게 만든다. 애초에 토론을 배제한 이유는 특정 심사위원이 지나치게 강한 의견을 피력하면서 토론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토론 문화를 성숙하게 만들고 토론 과정을 공개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토론이 사라지면 오히려 심사위원들은 개별적 점수 차등을 통해 본인 의견을 반영할 수 있고 설계자 역시 이러한 평가에 대한 설명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제안
· 심사 과정을 공개하고 심사위원의 심사 이력을 기록하고 아카이브해 패턴을 분석할 수 있도록 한다.
· 심사위원 제척, 블라인드 심사, 토론 없는 투표 방식은 실효성이 낮거나 부작용이 클 수 있으므로 지양한다.
의사 결정 방식
단계별 평가 방식은 심사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번의 투표로 당선작을 정하는 방식과 여러 단계에 걸쳐 심사를 진행하는 방식 중 어떤 것이 더 신뢰도 높은 결과를 가져올까. 만약 심사위원 개개인의 판단이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 독립적 사건이라면, 한 번의 투표와 여러 단계에 걸친 투표 방식 사이에 오류 확률 차이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단계 심사를 거칠수록 토론을 통해 추가적 정보가 축적되기 때문에 더 신중한 의사 결정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때 중요한 점은 단계별 평가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좋은 안이 탈락하는 확률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라면 접수 합산 방식보다 순위 결정 방식을 적용해 여러 차례 걸쳐 탈락자를 제외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반면 상위권 내에서 최적 안을 선정하는 것이 목표라면 1차에서 넓은 범위를 선정하고 최종 라운드에서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이 적절할 수 있다. 이런 다단계 심사는 이미 여러 공공 기관의 공모 심사에서 활용되고 있다.
다단계 심사의 한계는 초반에 탈락한 안이 후반 라운드에 진출한 안 보다 충분한 설명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만약 공사 예산이나 법규 위반 등을 검토하는 사전 기술 심사가 별도로 없고 개별 안을 검토할 시간이 짧다면, 자칫 현실적으로 구현이 어려운 안이 당선되거나 좋은 안이 예선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와일드카드’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심사위원당 한 번씩 탈락한 안을 다음 라운드에 진출시킬 수 있도록 하면 심사의 효율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소수 의견이 충분히 검토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단 와일드카드는 최종 라운드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며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단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특정 심사위원이 강하게 지지하는 안이 조기에 탈락하는 것을 방지하면서도 심사 과정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다단계 심사의 목적은 심사위원이 기존 견해를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판단 속에서 놓친 부분을 보완하고 더 정밀한 평가를 내릴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따라서 심사위원 간 토론뿐 아니라 설계자와의 질의응답 과정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안
· 접수 합산보다는 다단계 탈락자 제외 심사 방식을 채택한다.
· 와일드카드 제도를 활용해 소수 의견이 쉽게 묵살되지 않도록 보완한다.
· 의견 피력보다는 질문과 답변 형식의 토론을 진행한다.
당선작의 구현 보장
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된 안이 제대로 구현되는 것은 당연한 원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심사에서 선정된 계획이 실시설계 단계에서 대폭 수정되거나 심지어 공모 과정에서 제시된 핵심 아이디어가 사라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발주처 관계자가 “설계공모로 뽑아 놓으면 발주자가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어서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설계공모가 아니라 제안서 평가를 통해 선정된 경우, 발주자가 설계자의 원안을 훨씬 더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 공공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설계공모의 본래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경우다.
실제 사례로 얼마 전 한 공모전에서 당선작이 결정된 후 발주처가 당선안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담당자는 “어차피 당선작이 다 바뀔 건데, 괜히 발표했다가 나중에 민원이 발생할까 봐 그렇다”고 답했다. 설계공모가 결과적으로 의미 없는 절차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제안
· 공모 단계에서 예산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현실적 범위 내에서 계획하도록 한다.
· 당선작 변경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요 수정 사항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한다.
· 설계공모를 통해 선정된 안이 지나치게 변형되지 않도록 당선자의 설계 의도를 반영할 수 있는 절차를 제도적으로 보완한다.
정상화냐, 활성화냐
설계공모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만 단순히 공모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안이 실제 공간으로 실현되기까지 우리는 과정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공정한 심사, 합리적인 의사 결정 방식, 그리고 참가 자격의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설계공모는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누가 설계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안이 가장 나은 해법을 제시하는가’다. 참가 자격의 불필요한 제한을 완화하고 공모가 특정 분야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단이 아니라 더 나은 공간을 만드는 도구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공모 제도는 우리 사회가 공공 공간을 조성하는 방식 자체를 반영한다. 만약 공모가 단순한 형식적 절차로 전락한다면 결국 공공 공간의 질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공모 활성화를 논하기 전에, 먼저 공모 정상화를 이루어야 한다. 심사의 공정성을 강화하고, 합리적 의사 결정 구조를 마련하며, 당선작의 구현을 보장하는 장치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공모의 확대는 오히려 문제를 약화시킬 뿐이다. 공모 제도가 정상화된다면 공모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을 것이고, 공모 기획과 운영을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활성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이해인은 조경설계사무소 HLD 소장이다. 디자인을 통한 주장과 혁신이라는 철학 아래, 공간적 문제와 도전 과제에 대한 핵심적 개입 제공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