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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한정
    소한정(小閒亭)의 발견은 1983년 6월 상순에 경남 양산지방사원의 원림과 별서의 원림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양산군 물금면 화룡리 새터 부락에서 발견된 후 동년 6월 하순에 실측조사를 했었다. 소한정의 경영의 목적과 취지를 살펴보면 “소한”은 “안한”의 뜻으로 곧 명리지문을 피하고 재화지장을 멀리하여 예의염치와 양친과자를 지표로 삼아 정사에 안한을 취하고 자질을 강학하여 선조역동우탁세야의 거룩한 유풍과 유운을 계승하는데 있음을 명확히 하였다. 그리고 소한정의 원림을 경영흐는 의장과 정취는 못을 일러 세심당이라 하고 바위를 일러 침천암이라 하며 시내를 일러 삼미천이라 하여 사시화와 칠곡수와 천층석의 삼미천이라 하여 사시화와 칠곡수와 천층석의 삼미를 갖추었으니 곧 은일과 풍류의 경승을 이루었다. 또한 오동을 심고 연화를 심고, 회수를 심고, 매화를 심는데 봉황, 거북, 사슴, 학으로 하여금 의지하여 봉립오림, 귀상연지, 녹하회정, 일쌍매학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완연한 바위를 취하여 용와운곡을 이루고 형상의 돌로 세워 천년석불을 이루었으니 이것이 그 심오한 뜻이 지닌 십이경이다. ※ 키워드 : ※ 페이지 :
  • 전국토공원화운동을 진단한다 ; 전문위원 시찰평가 - 경상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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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원기행 ; 방배동 K씨댁 - 설계/서인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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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적인 경관속에서
    우리가 경관을 얼핏 보고 느기끼에는 변화가 없는 정적인 것 같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재의 경관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경관 구성인자들이 끊임없이 변화되어 온 것임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경관이란 갑자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부터 현재를 지나서 미래로 연속하는 일련의 과정속의 한 순간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경관이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시간성 때문에 특징적인 경관이 되는 것을 역사적 경관이라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경관은 오늘날의 도시경관처럼 수 년이 멀다하고 몰라보게 달라지는 경관도 아니며 일시에 창조할 수 있는 경관도 더구나 아니다. 역사적 경관의 중요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경관은 그 시대의 인간사회의 특질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간에 대한 경관의 형성은 그 시대의 문화적 특셩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 경관속에서 우리는 우리들 선조들의 우수한 문화적 특질들을 느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실로 여겨진다. ※ 키워드 : 경관, 역사, 문화, 특성, 변화, 역사적경관 ※ 페이지 : 90
  • 샤모니의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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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거주 환경과 과학기술의 과학만박 - 쯔쿠바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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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과 함께 사는 사람 - 정선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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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어떻게 살릴 것인가? ; 한강개발과 환경변화
    도시는 강을 끼고 있을 때 한층 그 겨관이 돗보여지고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강 기슭에서 바라다 보는 저 건너 거리의 풍경은 그처럼 아늑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다. 이때문에 프랑스의 파리를 찾았던 사람들은 고국에 돌아와서도 세느강을 잊지 못한다. 유럽에서도 가장 멋진 도시적 센스가 넘쳐 흐르는 곳이 바로 세느강이기 때문이다. 강폭은 그리 넓지 않지만 풍부한 물은 깨끗하기만 하다. 강 양쪽 기슭에는 주요한 기념비적 건물인 노틀담사원 루불박물관 에펠탑 등이 줄비하게 늘어서 있고 다리의 훌륭한 디자인 또한 건축적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쉴 새 없이 오가는 유람선들, 거기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과 관광개그로 늘 붐비고 있고 유람선의 고동소리와 함께 세느강은 줄거운 회유공간이 되고 있다. ※ 키워드 : 한강, 세느강, 환경, 물 ※ 페이지 : 36 ~ 39
  • 한강 어떻게 살릴 것인가? ; 한강의 어제와 오늘
    한강을 지배하는 자가 나라를 지배한다는 말은 옛부터 있어 온 말이다. 그래서 삼국시대는 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웠다. 한강을 가장 늦게 나라로 자리잡은 신라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신라가 한강을 차지한 뒤에도 한강을 빼앗기 위한 세나라의 싸움은 그칠 날이 없었고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악착같이 한강을 지킨결과 풍부한 물적자원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당나라로 가는 길까지 열어 마침내 삼국통일을 이룩했으니, 한강을 차지하는 나라가 나라를 차지한다는 말은 이미 옛날에 사실로 나타난 셈이다. - 일찍이 한강은 중부와 동부 산악지대를 서울로 잇는 큰 물길이였으니, 이미 고려조 공양왕때 한강에 수첩을 설치한 것만 보아도 나라에서 이 강을 산업로로서 얼마나 중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때부터 한강 곳곳에 창을 설치,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일대에서 조세로 징수한 적곡을 저장하였다가 한강 수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운반하고, 또 서울에서는 거꾸로 어물이며 소금, 그밖의 생활 필수품을 배어 실어 한강 상류 각 고장으로 날랐다, 한강 곳곳에 소금배에 얽힌 노래, 서울로 가는 적곡을 실은 배를 털던 강도들 이야기 따의가 많이 남아 있는것도 이래서이다.- 한강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역시 뗏목이었다. 떼에는 궁궐떼, 가재목떼, 편목떼, 화목떼가 있었다. 궁궐떼, 가재목떼는 건축용 상질의 재목으로서 12자가 넘는것이 허다했으며, 하질의 편목떼나 화목때도 여섯자는 실히 되었으며, 상질 화목의 떼를 타는 쪽이 품삯이 더 높은 것은, 더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더욱이 한강은 의암댐, 소양댐, 청평댐, 팔당댐, 충주댐 등으로 뗏목이니 소금배 커녕 꼴이 아예 바뀌고 말았다, 댐을 막을 강 유역에는 엄청나게 큰 육지 속의 바다가 생겨, 가령 소양호나 충주호는 배를 타고 백리를 훨씬 더 가야 끝에서 끝을 갈 형편이 되었다. - 문제는 소양댐, 춘천댐, 팔당댐 등으로 해서 몇 천의 자연부락이 물에 잠겼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느나는 눈에 보이는 문제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삶의 모습, 삶의 뿌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당장의 삶의 터전을 읽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문화란 하루 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땀과 때로 얼룩지는 역사적 쌓임이기 때문이다. 양수리에서 팔당에 이르는 강유역 20리는 특히 선사시대의 유적이 집중되어 있던 지역이다, 그것이 연구되지도 않은채 물 속에서 잠기고 말았다. 팔당댐을 만들 때, 이댐이 가동하게 되면 선사시대의 유적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걱정을 먼저한 것은 우리나라 사학자도 아니였으며, 댐관계자들은 더욱 아니였다. 부끄럽게도 그것은 댐을 만들기 위해 와서 일하고 있던 외국 기술자였던 것이다. ※ 키워드 : 한강, 한강의역사, 댐, 물길, 뗏목, 자연※ 페이지 : 26 ~ 29
  • 한강 어떻게 살릴 것인가? ; 하천과 도시
    하천은 인류문명을 탄생시킨 곳이고 꽃을 피워온 터전이다. 물을 먹지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보여지겠지만 하천은 그자체가 교통수단이 없고 생존을 위한 자양분이였다. 나일강이라는 연장900km, 폭, 20km의 계곡을 따라 이집트문명이 발상하였고 타이그리스와 유프라데스강이 메소포타미아문명을, 인더스강이 인더스문명을, 황하가 중국문화의 발상지였음을 부연할 필요는 없다. 로마문명이 티베르강을 낀 일곱의 언덕에서 자리잡았다면 중세에 들어와 베네치아는 거미줄 같은 도하의 산물이었다. 런던의 테임즈강이 그러하고 파리의 세느강이 그러하다. 합스부르그도조가 만든 위대한 도시 비엔나는 도나우강이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해서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평양, 부여, 개성, 한양 모두가 한반도를 흐르고 있는 대하천을 접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도시의 형성과 하천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를 흐르고 있는 하천을 도시의 일부로서 어떻게 가꾸고 지혜롭게 이용했느냐의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 키워드 : 하천, 한강, 물, 도시, 문화, 강 인류문명, 역사 ※ 페이지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