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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학 교육인증의 첫걸음을 떼다 The First Step Toward the Accreditation of Landscape Architecture Education
    한국 조경의 역사와 조경 교육은 50년 시간을 함께 걸어왔다. 하지만 50년 조경 교육은 전문직능이자 학문분과인 조경(학) ‘전문 교육’ 실천의 목표, 체계, 내용 정립에 소홀했다는 의구심을 피하기 쉽지 않다. 조경의 전문성을 중심에 두지 않은 조경 교육의 다양성과 다각화 추구는 조경학의 중심에서 조경의 존재를 흐릿하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연구 성과의 양은 늘었지만 그 성과가 조경 실무의 질적 발전이나 졸업생의 조경 관련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거듭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조경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교육의 중심에 두고 전문 교육과 전문 학위, 면허(가칭 조경사)로 이어지는 체계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9월, 한국조경학회는 ‘조경학교육인증준비위원회’를 구성해 기초 연구를 시작했다. 그 발걸음에 맞춰 조경학 교육인증의 필요성과 주요 사례를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디자인 팽선민 -------------- 조경학 교육인증 논의를 시작하는 첫 질문 _ 김아연 설계 교육의 정도는 무엇인가 _ 최영준 미국 조경학 교육인증제 현황과 시사점 _ 김정화 IFLA APR의 조경 교육 방향과 기준 _ 김영민
  • [조경학 교육인증의 첫걸음을 떼다] 조경학 교육인증 논의를 시작하는 첫 질문
    조경학 교육인증이라는 화두를 꺼내는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나는 반대”라고 단언한다. 인증 준비의 지난한 과정에 대한 부담, 인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학교의 도태에 대한 걱정, 학교 다양성 저하와 획일화, 대학원 과정의 위축에 대한 우려, 개별 교수의 재량에 맡겨져 있던 수업 내용의 공개와 평가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 등이 주요 이유일 것이다. 인증은 융합 시대의 학제 간 협력을 저해하는 근대적 칸막이식 교육 제도라고도 비판할 것이다. 많은 사람은 건축학 교육인증이나 공학 교육인증의 폐해를 논거로 득보다 실이 많다는 주장을 펼칠 것이다. 이 모든 이유는 일면 합당하다. 그러나 “지금의 조경 교육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 역시 많지 않을 것이다. 대학 입시 인기 학과 리스트에서 조경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지 오래고, 학부제로 합쳐지면서 정원이 줄어들거나 학과 이름에서 조경을 폐기한 대학(원)도 등장했다. 학교별 커리큘럼의 차이는 특성화 혹은 차별화로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조경학의 정체성을 의심할 만큼 이질적이다. 얼핏 평화로워 보여도 학과 교수진 내 전공 간, 세대 간 불화가 없는 대학이 드물다. 2022년, 대한민국 조경 50년을 맞으며 지난 50년의 기록과 성찰, 앞으로 50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다양한 기획과 행사가 진행되었다. 교육은 한 분야의 전문가를 생산하는 근간이지만, 작년에 쏟아진 조경의 전/후 반세기에 대한 논의에서 교육과 관련한 진지한 반성과 새로운 비전을 보지 못했다. 첨단 학과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학회 내 교육 분과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운데, 식물과 자연과 생태와 공원이 좋아 조경학과에 지원한 학생들은 현장과 멀어진 교과목보다 오히려 각종 정원박람회 참여를 더 중요시 여기는 듯하다. 유튜브나 블로그, SNS에 교육 현장을 비판하는 학생들과 전문가들의 발언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와도 이를 체계적으로 수렴해 근본적인 개혁을 할 수 있는 플랫폼 역시 없는 상황이다. 대학 랭킹과 연구 업적에 대한 압박은 교수자의 시간과 노력을 교육보다 연구에 맞추도록 유도한다. 교육은 전적으로 교수 개인의 역량에 내맡겨져 있다. 타 교수의 수업은 불가침 영역이라, 수업 간 연계에 대한 학생들의 요청이 해마다 쇄도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몇 년 전 조경학과 교육이 “식빵 위에 얇게 잼 바르기” 같다고 토로한 학생이 있었다.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내심 공감했다. 열악한 교육 환경, 낮은 국제적 경쟁력, 부족한 재교육 시스템도 오래된 문제들이다. 백년대계가 필요하다는 교육, 대한민국 조경 100년을 향한 반세기를 새로 시작하는 이 시점에 “나는 반대”라는 말로 일축하기 전에 고질적 교육 체계의 실태를 점검하고 반성적 논의와 성찰적 모색을 시작해야 할 절실함과 절박함을 느낀다. 2006~2008년, 한국조경학회는 교육인증제를 검토했으나 큰 진전없이 논의 자체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당시 조경학회는 단독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계획‧설계 관련 학과의 전문가들과 연합해 계획설계학교육인증 방안을 논의했다. 이론과 실천 혹은 학계와 현장의 괴리와 단절, 교육 방법의 미비, 범용 전문가(generalist)와 특수 전문가(specialist) 육성 교육의 미분화, 이론-실습 과목 편성 순서의 부정합, 특정 분야 편중, 교육 내용-방법의 불일치, 그리고 학교 교육 이외의 재교육 미비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1 이 문제들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학령 인구의 급속한 감소와 생성형 인공 지능의 확산 등 사회적‧기술적 변화는 교육 현장의 도전과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조경학 교육인증은 궁극적으로 조경의 전문성을 대외적으로 증명하고 인정받는 동시에 그러한 인정의 대가로 품질의 보증과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는 공공의 약속이다. 2021년부터 조경 자격증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의 세부 사업 중 하나로 조경사(造景士)(landscape architect) 제도 도입을 선정하고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중이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홍윤순, “조경교육인증제 도입을 위한 커리큘럼의 방향(안)”, 한국조경학회 내부 세미나 자료, 2007.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건축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경 교육에 대한 고민을 몇 개의 글로 발표해왔고,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고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한다.
    • 김아연
  • [조경학 교육인증의 첫걸음을 떼다] 설계 교육의 정도는 무엇인가
    설계에는 정답이 없다 설계 교육 현장에서 교육을 시작한 지 만 1년, 조금 더 거슬러 올라 설계 실무의 현장에서 관리자로 설계 팀원들을 이끌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어떤 분야보다 조경설계는 그 과정에서 순행과 난행을 반복하고 성취와 실패가 항상 공존하기에, 미로와 같은 설계 과정을 걸어가면서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나 어렵사리 도달한 결승선에서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을 때면 위로와 탄식을 섞은 이 한마디가 들려온다. “설계에는 정답이 없다잖아.” 이 말에서 느껴지는 정답의 부재라는 공백은 작은 내려놓음을 허락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무상함은 자칫 설계 교육의 교육적 효과도 희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으로 이어질까 두렵다.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설계 과목의 교육적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 설계 행위에는 정답이 있는지 없는 지 믿음의 부재를 품고 있는 표현일 것이다. 조경학 교육인증제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있으나 그 실현 여부에 대해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조경 교육에서 가장 큰 덩어리인 조경설계 교육에 대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몽타주가 정해진 답 없이 흐릿하기때문일지 모른다. 설계 교육에는 정도가 없다 설계 교육, 설계 과목에 대한 모호함 이상의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다. 이러한 오해와 편견은 보통 공유된 기본 지식과 개념이 서로 어긋날 때 발생한다. 하지만 방법론도 열려 있고 정해진 교과서도 없는 설계 교육은 그 공유 기반이 얕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수자와 학습자 사이의 대화와 가치 판단을 수반하는 설계 과목의 소통 방식은 왜곡된 인식과 기억을 남긴다. 설계 업계에 대한 고착된 인식과 괴소문은 설계 작업을 통한 학습과 성취보다는 설계 분야와 학생 사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든다. 어긋난 설계 교육에 대한 이미지를 교육인증제를 기회로 바로잡고 전국의 모든 학과‧전공들이 공유해 정도(正道)로 삼을 만한 설계 교육의 정도(正度)는 무엇일지 구체적인 육하원칙으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주인공은 누구인가 먼저 설계 교육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누가 설계 과목의 주도자이고 주체적 의식을 가진 주인인가. 이 질문이 어쩌면 모든 것을 바로 세우는 시작이자 끝일지도 모른다. 교육의 패러다임이 실증주의에서 구성주의로 넘어오면서 학습은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탐구, 해석, 창조하는 과정이고, 학습자가 주체가 되어야 하고 교수자는 촉진자, 조정자의 역할이 된다. 하지만 절대적 권위를 가지는 마스터와 학생을 수련공으로 삼는 도제식 교육이 여전하고, 전통적인 유교 사상으로 인해 사제 간의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는학생과 교수자 의 위계가 아직도 공고하다.(각주 1)리뷰, 발표 시 크리틱은 틀린 부분을 지적 받는 과정이 아니라 조금 더 경험이 있는 사람이 내어 주는 색다른 방향에 대한 제안의 의미가 더 커야 한다. 수업을 디자인하는 설정자가 교수자지만 교수자는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 다른 생각도 있음을 일깨워주고, 비평적인 시각으로 비난이 아닌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비평을 제시할 필요와 의무가 있다. 설계 교육의 주인공인 학생 개개인의 자기 주도적 진로 설정을 돕는 것이 설계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언제 할 것인가 언제, 어떤 주기로 교육을 하는가도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점이다. 보통 설계 교육은 폭발적 양의 과제, 매주 도전적 과제의 연속이라는 학생들의 인식이 만연하고, 그 과제는 수업 외의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 학교의 현실이다. 물론 실습 시간을 배정해 두기도 하지만, 교수자와 학생의 상호 교환이 일어나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긴 수업 시간이 부족하기 쉽다. 강사 수급의 어려움과 수업 편성 편의 등의 사정으로 강사 없이 주 1회로 한정되어 있는 대부분 학과의 상황에서는 조경학의 꽃인 조경설계 교육을 피우고 열매 맺기에 손길과 돌봄이 부족한 현실이다. 교육인증제를 통해 설계 수업이 한 주당 이틀 이상으로 배분되고 충분한 실습 시간이 편성된다면, 수강생들의 향상된 학업 성 취와 적절한 수업 참여의 호흡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설계 수업이 주말이란 세금을 늘 헌납해야만 하는 악독한 세리라는 악명에서도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 할 것인가 어디서는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학생들의 설계 작업 공간인 스튜디오다. 스튜디오는 수업 때만 쓰는 일반 강의실과 구별된 다. 수업 시간 외에도 학생들 간의 상호 학습과 커뮤니티 활동이 함께 일어나는 상보적, 자생적 학습 공간이 된다. 건축학과 조경학 인증에서 필수적으로 학생 1인당 스튜디오 공간을 확보하는 기준이 있는 것은 확보된 물리적 공간이 성공적 교육의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재 국내 몇몇 학교를 제외하고는 설계 수업에 필요한 다양한 자료를 정리하고 게시하여 깊이 있는 계획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스튜디오 공간 이 한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업 공간으로서의 스튜디오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 도구와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실습할 공동 작 업 공간도 실내외에 필요하다. 또 다른 측면은 현장, 대지와의 관계다. 외부 공간을 다루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이 실내 책상과 모니터 앞에서 주로 진행되는 것은 역설적 상황이다. 대지에 대한 심층적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기회를 프로그램화하고 외부 기관과 연계로 현장 및 사회적 감각을 키우며 자연환경을 가까이서 자주 마주하게 하는 시스템과 학풍이 절실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스튜디오 수업은 IFLA 유네스코의 조경교육헌장과 유럽조경학과협의체ECLAS(European Council of Landscape Architecture Schools)의 조경교육지침이 명시하듯이, 조경 교육의 절반을 편제해야 할 만큼 핵심적인 교수 학습 방법이자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이에 대한 논 의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ECLAS가 제시한 지침 에 의하면 스튜디오가 반드시 설계 교과목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스튜디오 수업은 현실의 문제와 교육을 이어주는 프로젝트 중심 수업이며, 주요 실무 분야를 학습자 중심으로 배우는 수업으로 제시된다. 또한 공학, 의학, 교육학 등의 분야에서도 스튜디오 수업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사실은 비설계 교과목에서도 스튜디오 수업 형식이 주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같은 형식을 적용할 핵심 교과목들을 선별하고 학생 진로와 연계한 방식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각주 2)스튜디오 수업의 효능과 범위를 넓히는 방향을 교육인증제의 한 축으로 삼아, 조경을 둘러싼 다양한 이론 수업과 연계를 맺고 새로운 스튜디오 수업을 발굴해 이론적 지식이 어떻게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수진 내부의 긴밀한 협조 체제, 타 전공 및 외 부 기관과의 유기적인 기획 체계가 필수적일 것이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다음은 학부 교육에 있어서 특히 어려움이 따르는, 무엇을 대상으로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다. 설계의 단계적 빌드업을 위해 작은 스케일의 정 원형 과제에서 시작해 점점 더 복잡하고 넓은 대상지로 확장해가며 교육 과정을 편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학부제의 일반화와 자율전공에 대한 지향으로 전공필수 과목이 줄어들다보니 연속적인 계획설계 과목의 시퀀스에서 다루는 대상의 유형이 축소되는 것이 학부 교육의 현주소다. 이와 반대로, 동시대에 조경 분야의 실천과 연구 대상으로 요청되고 있는 프로젝트들과 사회적 이슈들은 기본 유형을 넘어선 복합 적 대상으로의 확장과 다학제 전문 지식들의 융합을 요청한다. 기본형 설계 과제도 수업에서는 기본계획 수준으로만 그친 채 설계 스펙트럼의 좁은 부분만 다루는 실정이 수십 년째다. 설계가 어떻게 사회와 관계를 맺고 어떻게 실제 공간으로 지어지는지까지 포괄하는 디자인 빌드식 수 업으로의 확장이나 커뮤니티 베이스 디자인 등의 폭넓은 가능성과 실 효성에 대한 실천과 실습은 실무로 진출한 뒤 재교육이 되거나 학교 밖 에서 이벤트성으로 교육되는 것이 현실이다. 인증제를 기회로 설계 교 육 과정이 체계적으로 재정비된다면, 단축된 시간에 정통성 있는 설계 교육을 이수를 받고, 학부 고학년 때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확장적 성취를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는 체계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설계에는 정답이 많다 요즘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표현이 있다. “설계에는 정답이 많아. 그 래서 처음에 조금 어려운 거야. 하지만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너희 들만의 답을 찾아봐. 그 과정을 나는 응원해, 우리 교수진이 도와줄게.” 정답이 없다는 편향된 해석을 초래하는 가설로 인해 오명을 쓰고 있는 설계와 설계 교육에 대해, 설계에는 정답이 무수할 수 있고 그래서 조금 어렵지만 자신만의 답을 찾는 공부와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환영받는 분위기다. ‘없지 않고 있다’는 긍정의 표현 이라서만이 아니라, 왜 조경학 설계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설명하는 답 이 되기에 그렇다고 믿는다. 교육인증제를 통해 조경학과 교과 과정에서 학습한 지식과 기술을 토대로 동시대의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그 해 결책을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통합적 틀을 제공하는 설계 과목의 쇄신이 이루어진다면, 조경학도 모두가 자기 브랜드를 갖는 조경 전문가로 성장해 나가는 큰 동력이 될 것이다. 각주 1. 김아연, “조경설계 스튜디오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한국조경학회지』 38(2), 2010. 각주 2. 김아연, “조경교육에 있어 학습자 중심 스튜디오 수업의 쟁점”, 『한국조경학회지』 43(1), 2015. 최영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설계대학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다. 랩디에이치(Lab D+H)를 로스앤젤레스에서 공동설립하여, 동아시아의 여러 도시에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크고 작은 오픈스페이스들을 만들어왔다. 현재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조교수로 조경디자인성능연구실(ldpl)을 열었다. 『공원을 읽다』, 『용산공원』 등의 공저가 있고, ‘한강변 보행네트워크’, ‘상하이믹시몰과 공원’, ‘타임워크명동 공유정원’ 등을 설계했다.
    • 최영준
  • [조경학 교육인증의 첫걸음을 떼다] 미국 조경학 교육인증제의 현황과 시사점
    작년 이맘때 필자는 미국 네바다주립대학교 라스베이거스 건축대학 조경 전공의 미션 설명문을 읽고 있었다. 막 임용된 신임 교수 눈에는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검토해야 했다. 얼마 뒤에는 교육 목표를 다시 보고 조정하는 회의를, 또 얼마 뒤에는 모든 교과를 교육 목표에 따라 나눠보고 살피는 회의를 했다. 이 모든 일은 필자의 임용과 함께 때마침 닥친 조경 교육 재인증을 위한 과정이었다. 미국 조경학 교육인증제의 현황을 짚어보고 시사점을 찾는 이 글은 조경인증위원회가 제공하는 각종 보고서와 문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했다. 여기에 우연찮게 경험하게 된 조경 프로그램 재인증 과정을,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덧붙였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적이 없던 사람이 재인증을 준비하기 위해 인증제를 공부하며 작성한, 일종의 노트 필기와 같은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미국 조경교육인증제 개요 1.목적 미국의 조경교육인증제는 학사와 석사 학위 수준의 조경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그 외 프로그램, 예를 들면 박사 학위 프로그램은 평가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인증제의 목적은 “조경 학위 프로그램의 교육 품질을 평가하고 지지하며 발전시키는” (각주1) 데 있다. 다시 말하면, 교육과 직능의 밀접한 연결이 핵심으로, 학생들이 조경 직능에서 요구되는 지식과 기술을 갖출 수 있도록 조경 분야의 고품질 교육을 보장하는 데 있다. 고용주에게는 이 제도가 고용하려는 사람이 엄격한 교육을 이수했는지, 전문적 업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판단하는 도구가 된다. 2.관련 조직 조경 프 로그램 인증의 주체는 1978년 미국조경가협회(ALSA)(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 산하에 설립된 조경인증위원회(LAAB)(Landscape Architectural Accreditation Board)다. 본래 미국조경가협회는 1920년대부터 인증을 지원해왔으나, 위원회는 두 가지 임무를 지닌다. 하나는 조경 프로그램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기준 개발이고, 다른 하나는 조경 프로그램의 검토와 인증 절차 수행이다. 위원회는 조경 분야의 실무자와 교육자, 그리고 조경 분야 외부의 대중 대표로 구성된다. (각주2)미국조경가협회 조례(각주3)에 따라 12명으로 이루어지는데, 미국조경가협회, 조경교육자협의회(CELA)(Council of Educators in Landscape Architecture), 조경사등록위원회협의회(CLARB)(Council of Landscape Architectural Registration Boards)가 임명한 각 1인을 포함하며, 조경교육자협의회 소속 위원이 위원장을 맡는다. 미국조경가협회 조례는 위원회 구성뿐 아니라 비용에 관한 사항도 정하고 있는데, 인증 방문과 회의 직접 비용은 위원회가 징수하는 수수료로 충당되며, 미국조경가협회는 간접비와 인력을 제공한다. 이외 관련 기관으로는 조경인증위원회가 회원으로 속한 특수‧전문직능인증협회(ASPA)(Association of Specialized and Professional Accreditors)(각주 4)와 조경인증위원회의 기준과 과정을 검토하는 고등교육인증위원회(CHEA)(Council for Higher Education Accreditation)가 있다. 3. 인증 기준 인증 기준은 조경인증위원회가 2021년 9월에 공표한 22쪽의 문서인 “조경 전공 인증 기준(Accreditation Standards for Professional Programs in Landscape Architectur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서가 밝히고 있는 인증 기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최소 요구 사항 11가지가 있다. 여기에는 전공 및 학위명, 학위 과정 기간과 요건, 정보 공개 온라인 플랫폼, 교수진 규모와 임용 상태, 소속 대학의 인증 여부, 관리자, 인증 지속을 위한 의무 사항 등이 포함된다. 눈에 띄는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공과 학위명은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조경학학사(BLA)(Bachelor of Landscape Architecture) 또는 조경과학학사(Bachelor of Science of Landscape Architecture)는 4년 과정 기준에 최대 1년 과정을 추가할 수 있고, 조경학석사(MLA, Master of Landscape Architecture)의 경우 3년 과정으로 1년을 추가할 수 있다. 교수진 규모도 명시되어 있는데, 최초 인증 시 학사 또는 석사 과정 중 하나만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정년 트랙 교수 최소 1인을 포함해 관련 학위를 소지한 교수로 최소 3인을 임용해야 하고, 학사와 석사 과정을 동시에 제공하는 경우 관련 전공 학위 소지자 5인 및 정년 트랙 교수 2인을 포함해 최소 6인의 교수진을 확보한 상태여야 한다. 재인증 시 교수진 수는 최초 인증 때보다 많아야 한다. 예컨대 학사와 석사 과정을 동시에 제공할 시, 관련 학위 소지자이자 정년 트랙 교수진 5인을 포함해 최소 7인의 교수를 임용한 상태여야 한다. 인증 기준은 총 7가지로, 프로그램 미션 및 목표, 커리큘럼과 같은 교육 내용 관련 사항 두 가지, 교육 행정 관련 한 가지, 교수진 한 가지, 학생 한 가지, 외부 네트워크 한 가지, 교육 시설 한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각 기준은 다시 세부 항목으로 나뉜다. 예컨대 첫 번째 기준인 프로그램 미션 및 목표는 미션, 목표, 다양성‧형평성‧포용성에 대한 약속, 장기 계획, 프로그램 공개와 같은 5가지 부문으로 나뉜다. 여기서 각 세부 항목은 평가 기준과 짝을 이루고 있는데, 평가 기준은 모두 서술문으로 작성되어 있어 정성 평가 구조를 지닌다. 평가 기준별 가중치, 점수, 등급과 같은 정량 체계는 찾아볼 수 없다. 평가 기준을 간략히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4.인증 절차 조경 프로그램 인증 절차는 초기 인증인지 재인증인지에 따라 세부 절차와 인증 기간 등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신청, 자체 평가, 방문 평가, 검토 및 의견 수렴, 결과 공표로 이루어지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는 점에서는 같다. 현재진행중인, 필자가 속한 대학의 조경 프로그램 재인증 과정과 조경인증위원회가 제공한 인 증 절차 설명서 “조경 전문 프로그램 인증 절차(Accreditation Procedures for Professional Programs in Landscape Architecture)”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파악 한 인증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과정은 인증 신청이다. 여기서 해당 프로그램이 최초 인증을 신청하는 후보자라면 교수진 요건 외 최소 요구 조건을 갖춘 후 후보 자격을 신청할 수 있다. 이후 조경인증위원회와 긴밀히 소통하며 인증을 준비하게 되는데, 교수진 최소 조건을 갖추고 첫 졸업생을 배출한 후 1년 내이자 방문 평가 최소 4개월 전에 최초 인증을 신청해야 한다. 이와 달리 재인증의 경우 최소 5년에 한 번 인증위원회가 정한 시기에 재인증을 신청한다. 두 번째 과정은 자체 평가로, 프로그램에 대한 자기 검토와 자기 분석은 조경인증위원회가 추구하는 6가지 가치 중 하나다. 인증을 신청한 조경 프로그램은 작성 지침과 서식에 맞춰 자체 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 내용은 프로그램의 개요와 향후 계획부터 이전 평가 시 권장 사항에 대한 답변, 평가 기준별 준수 현황을 아우른다. 필자가 속한 대학의 자체 평가 보고서의 경우, 평가 기준별 준수 사항 이외 내용으로 프로그램 역사, 조직, 이전 평가 대응 사항, 프로그램의 장단점, 주요 변화, 참여진을 담았고, 부록에 장기 계획, 예산, 커리큘럼, 교육 결과, 강의계획서, 강의 평가 계획, 학생과 졸업생 정보, 교수 정보와 이력, 시설 정보 등을 정리했다. 보고서와 별도로 학생 작업물을 제출할 수 있다. 자체 평가 보고서를 방문 일정을 포함한 초대장과 함께 해당 마감 일 전에 제출하면 자체 평가가 완료된다. 세 번째 단계는 방문 평가다. 방문 평가는 실제 평가단이 해당 학교에 도착하기 전, 방문 팀 선발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방문 팀은 조경인 증위원회장이 평가단 인원 중에서 선정한 조경교육자 1인, 조경실무자 1인, 조경 비전공자인 학술행정가 1인으로 구성된다. 이때 평가단 구성 원은 해당 학교와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 방문 사전 절차에서 학교 측은 숙소를 준비하지만, 실제 여비는 모두 조경인증위원회가 부담한다. 방문 평가는 약 4일간 실시된다. 날짜별 활동 내용을 추려보면, 첫날 방문 팀은 학교에 도착해 학생 작업물과 시설을 검토하고 프로그램 관리자와 만나 일정과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한다. 필자의 경우 첫날 환영회를 진행했다. 일요일 오후, 학생들의 작업물을 전시한 로비에서 학생, 교수진, 평가단, 그리고 졸업생과 지역 실무자들이 모여 인사를 나눴는데, 평가단장이 특히 교수진, 학생, 졸업생에게 적극적으로 자연스럽 게 말을 걸며 학교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둘째 날은 학교 최고 경영자, 프로그램 소속 감독자와 평가단의 미팅, 그리고 교수진의 커리큘럼 소개, 평가단과 학생 미팅이 이어진다. 이날 필자는 한 시간가량 점심 식사 겸 미팅 자리에서 커리큘럼에 대한 평가단의 질문에 답변했다. 셋째 날은 평가단의 교수진 인터뷰가 있다. 인터뷰를 위해 필자가 별도의 자료를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약 30분간 이어지는 여러 가지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는데, 주로 연구와 교육 애로 사항이나 학교의 지원, 교육 프로그램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평가단 지침서(각주 5)에 인터뷰 질문 예시가 있는데, 실제 평가단은 이를 바탕으 로 프로그램별 조건에 맞춰 질문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였다. 넷째 날은 평가단의 보고가 있는 날이다. 평가단은 각각 프로그램 관리자, 학교 최 고 경영자와 함께 조사 결과를 검토하고, 끝으로 교수진과 학생이 참석 한 자리에서 조사 결과를 공유한다. 이때 프로그램의 장단점과 권장 사항이 구두로 언급되는데, 권장 사항이 많다면 부정적인 인증 평가 결과 를 받을 것을 예상해야 한다. 네 번째 단계는 평가 검토와 의견 수렴 과정이다. 평가단은 방문 후 10일 내 제공된 형식에 따라 보고서 작성을 완료하는데, 보고서는 기준 별 ‘기준 충족’, ‘권장 사항과 함께 충족’, 또는 ‘기준 미충족’을 명시한다. 조경인증위원회의 검토를 거친 보고서는 평가단의 인증 방문 후 30일 내 해당 조경 프로그램에 제공되며, 해당 조경 프로그램은 보고서 수령 15일 이내에 보고서에 대한 의견과 수정 사항을 포함한 답변을 조경인 증위원회에 제출한다. 마지막 다섯째 단계는 인증 결과 공표다. 매년 2월과 7월에 개최되는 조경인증위원회 회의에서 위원들은 자체 평가 보고서, 평가단 조사 결과 보고서, 교육 프로그램의 답변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인증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린다. 인증 기간은 1~6년이며, 인증 유형으로는 인증, 임시 인증, 초기 인증, 인증 정지, 인증 거부, 인증 취소가 있다. 모든 기준이 충족되거나 혹은 하나 이상의 기준이 권장 사항을 보여주는 수준일 경우 인증이 수여된다. 하나 이상의 기준이 권장 사항을 갖고 있으면서 결함으로 인해 프로그램의 교육 품질이 지속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2년의 임시 인증 조치를 받는다. 기준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인증 거부 혹은 취소가 있을 수 있으며, 두 경우 해당 조경 프로그램은 결정에 대해 항소할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인증 심사와 결과를 받은 곳은 총 16개 학교, 22개 프로그램으로, 전체 프로그램의 20%를 상회한다. 하와이주립대학교와 신시내티주립대학교 조경 프로그램은 최초 인증을, 대부분의 프로그램 은 재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3개 학교 5개 프로그램은 임시 인증을 받았다. 가장 최근에 임시 인증을 받은 한 학교의 경우 9가지 권장 사항을 통보받았는데, 이전 평가 단계부터 지속된 권장 사항이 개선되지 않았 을 뿐 아니라 결함으로 인해 지속적인 기준 준수가 불확실하다는 판단에 따라 임시 인증을 통보 받았다.(각주 6) 미국 조경 교육인증제의 효과와 의미 여러 보고서와 문서를 검토하고 최근 방문 평가를 직접 경험한 것을 바 탕으로 필자가 파악한 조경 교육인증제의 효과와 의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다. 첫째, 인증제를 통해 조경 교육의 핵심 가치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인증 기준 7가지 중 하나는 전문 커리큘럼인데, 인증 기준 설명서는 조경 교육의 목표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목표는 지식과 기술 및 역량 두 가지인데, 지식은 디자인 과정, 역사와 이론, 식물‧생태계‧기후과학, 탄력성, 직업 체계 등 7가지로 나뉘고, 기술 및 역량은 평가, 설계 및 시공, 커뮤니케이션 등 9가지로 이루어져 있다(표 2 참조). 인증 평가는 각 조경 프로그램이 이러한 16가지 사항을 교육과정에 어떻게,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지를 보기 때문에, 결국 이 인증 체계는 미국 100개 조경 프로그램을 표준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필자의 경우 학교에 임용된 때가 마침 인증 평가를 1년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 인증 기준에 맞춘 교육과정 수정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지난 1년 동안 필자를 포함해 정년 트랙과 비정년 트랙 교수진이 모두 주 기적으로 회의를 열고, 조경 프로그램의 미션과 교육 목표부터 커리큘럼까지 모두 검토하고 수정했다. 수정된 미션과 목표를 반영하도록, 모든 전공 과목의 강의계획서를 업데이트하기도 했다. 물론 수정 수준이 대대적으로 전공 교과를 개혁하는 정도는 아니었으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었다. 과목들이 인증 기준이 되는 교육 목표 16가지와 짝을 이 루고 있는지,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다각도로 확인하는 일이 사실 인증을 준비하는 과정의 핵심이었다. 두 번째 효과는 통합적인 데이터 구축이다. 인증 체계에 포함된 조경 프로그램들은 매년 필수 정보와 주요 변화를 보고하는 의무를 지닌다. 또한 인증 때마다 자체 평가 보고서를 통해 주요 정보를 제출하는데, 필 자가 속한 학교의 경우 예산, 학생, 졸업생, 교수진, 시설 정보를 부록에 담았다. 조경인증위원회는 이렇게 모인 정보 중 핵심만을 추려 매년 홈페이지를 통해 “연말보고서 요약본(Summary of Annual Reports)”을 공개 하면서 미국 내 조경 교육 체계 현황을 한눈에 보여준다. 예를 들어 가 장 최근에 나온 2022년 보고서는 미국에서 공인된 조경 프로그램 학 부 47개, 석사 53개, 총 74개 학교 100개 프로그램의 정보를 담고 있다 (그림 1). 정보는 등록 학생과 졸업생의 학생 수부터 성별 비율, 유학생 규 모, 인종 구성, 취업 현황까지 다양하고 구체적이다.(각주7)게다가 2022년 보고서는 이전과 달리 교수진 정보도 담고 있어서 유용한데, 정년과 비정 년 교원 수, 성별 비율, 자격증 소지 비율, 인종 구성, 전공 체계 등을 알 려준다.(각주 8) 연간 데이터가 쌓이면 조경 교육 체계의 변화도 보인다. 조경인증위원회는 2년 혹은 4년에 한 번씩 변화 동향 자료를 제공하는데, 현재 홈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자료를 종합하면, 2013년부터 현재까지 약 10년 동안 학생 수, 졸업생 수, 미국인과 외국인 학생 규모, 인종 구성의 변화 를 읽을 수 있다(그림 2). (각주 9) 또한 인접 분야이자 인증제를 기반으로 교육하 고 있는 건축, 도시계획과도 비교해 볼 수 있는데, 조경인증위원회는 몇 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동향 자료에 같은 시기 건축과 도시계획에서 학생 수의 변화도 함께 보여준다.(각주 10) 세 번째 의미는 확장과 네트워크로, 미국 조경교육인증제의 범주 안 에는 캐나다 조경 프로그램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캐나 다 역시 캐나다조경가협회(Canadi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의 조경 인증위원회LAAC(Landscape Architecture Accreditation Council)가 인증 심사를 하는데, 교육, 교수진, 시설과 재정을 중심으로 한 캐나다의 인증 기준은 미국의 기준과 유사한 것으로 간주된다. 캐나다의 인증제는 최근의 일로, 2018년 여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석사 과정이 그 시작이 다. 2023년 가을 현재, 6개 학교 7개 프로그램이 인증을 받았고, 1개 학교는 후보 상태에 있다.(각주 11) 미국 조경 교육인증제의 시사점 미국의 사례를 검토한 결과, 조경 교육인증제는 매우 체계적이면서도 동 시에 느슨한 구석도 지닐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여기서 체계적이어야 하는 부분은 평가 기준이다. 평가의 내용과 범위, 그 요구 사항과 수준이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교수진의 최소 규모 기준 으로 숫자가 제시된다거나, 전공명이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느슨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학교별 특수성과 다양성을 권장하고 지원하는 내용, 그리고 무엇보다 평가 방식이다. 미국의 조경교육인증제 평가는 등급이나 점수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평가단에게 제공되는 평가 보고서 샘플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등급표나 점수표, 기준별 가중치 와 같은 정량 지표가 없다. 오히려 ‘그림 3’에서 볼 수 있듯, 평가표는 꽤 단순하다. 기준 충족, 권장 사항 및 충족, 미충족, 이렇게 세 가지로 나 뉠 뿐이다. 인증제의 목적이 최소한의 적절한 조경 교육 수준을 보장하 는 것에 있다면, 학교 간 비교나 경쟁을 발생시킬 소지가 있는 순위, 점 수와 같은 평가 방식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시사점은 인증 체계와 과정에서 인증을 받으려는 주체의 역할과 권한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조경교육인증제는 조경 프로그 램의 자체 검토와 분석을 인증 평가의 핵심으로 인식한다. 자체 평가 보고서는 인증 절차가 시작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기한 내 보고서가 제 출되어야 방문 평가단이 꾸려진다. 자체 평가 보고서가 200쪽에 이르는 것만 보아도 그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물론 인증의 객관성과 전 문성 역시 중요하며, 그렇기에 방문 평가단과 인증위원회의 철저한 검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조경 교육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체는 인증을 신청하는 학교이며, 주체의 의지와 실천이 없다면 조 경 교육의 품질이 보장될 수 없다. 따라서 주체의 자체 검토를 장려하고,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비처벌적 방식을 원칙으로 한 질적 평가 구조, 평가단의 발전적 피드백 제공과 같은 시스템을 함께 마련해야 할 것이 다. 마지막으로 놓쳐서는 안 될 부분으로 조경교육인증제 외부의 체계를 꼽고 싶다. 미국의 조경 교육인증제가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 에는 조경계 내외의 여건과 조직들의 역할이 있었다. 예를 들어 조경 인 증의 핵심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커리큘럼, 즉 조경 교육의 목표인 16가 지 지식과 기술은 2000년 북미 조경 조직 대다수가 참여해 조경의 핵심 가치와 필요 학습 내용을 검토하고 개발한, 조경계 다수를 대표하는 결과물이다.(각주 12) 100개의 조경 프로그램이 이러한 표준화된 교육 목표에 공감하고 맞춰갈 수 있는 동기는 공동의 작업물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외에도 조경인증위원회에 재원과 인력을 제공하는 미국조경가협회와 전공 인증 체계 전문 기관으로 지속적인 지침과 협조를 보내는 특수‧전문 직능인증협회 없이 조경인증위원회의 노력만으로는 이 제도가 지속되 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경교육인증제는 홀로 작동할 수 없다. 제도의 시작과 끝은 조경계 내부 여러 구성원의 공감과 참여, 그리고 조경계 외부의 협조와 기댈 수 있는 체계에 달렸다. 덧붙이며 이곳의 여러 교수들은 필자를 만날 때마다 연구나 수업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확인하며 꼭 이 말을 덧붙인다. “당신의 성공이 곧 우리의 성공이에요. 진심으로 잘 되어서 정년 보장받았으면 좋겠어요. 도와줄게요. 필요한 것 없어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반신반의했다. 정년 보장은 내가 잘하느냐에 따라 달린 일인데, 내 책임인데, 과연 내 정년 보장이 이 들에게 무슨 득이 되는 것일까. 지난주, 필자의 대학에 조경 재인증을 위한 평가단이 다녀갔다. 평가단을 보내며 한 교수가 후련하다는 듯 미 소를 띤 채 말했다. “그러니까 떠나지 말고 여기 남아요, 김 교수.” 이번 에는 이해했다. 이 말이 진심인 것을. 안정적인 교수진과 그들의 성과 없 이는, 조경 (재)인증을 받기가 어려우니까. **각주 정리 1. LAAB, “Accreditation Standards for Professional Programs in Landscape Architecture”,2021, p.1. 2. 2023년 10월 조경인증위원회 구성은 다음을 참조. www.asla.org/laabboard.aspx 3. 미국조경가협회 이사회 정관, 섹션 814. 4. 미국의 전공 인증 연합으로, 관련 전공만 100개에 이른다. 간호학, 약학, 공학 같은 기술과 실무 중심 학문부터 무용, 미술, 음악, 영문학과 같은 예술·인문 분야까지 다양하다. 조경 인접 전공으로는 건축과 도시계획이 있다. 관련 내용은 다음의 홈페이지를 참조. aspa-usa.org/ 5. LAAB, “Visiting Team Guidelines”. www.asla.org/rove.aspx 6. 조경인증위원회는 매년 두 차례의 위원회 미팅 결과를 공개하는데, 이를 통해 인증 대학과 조치 결 과를 파악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www.asla.org/laabnews.aspx 7. 몇 가지 정보를 소개하면, 2022년 기준 등록 학생 수는 학부 3,747명, 석사 2,074명으로, 총 5,821 명이다. 졸업생 수는 학부 730명, 석사 641명으로, 총 1,371명이다. 등록 학생 중 백인 비율은 55%, 히스패닉 및 라틴계는 15%, 아시안은 14%, 흑인은 4%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LAAB, “Summary of 2022 Annual Reports”, pp.5~8. 8. 2022년 기준 미국 조경 프로그램의 정년 트랙 교수는 총 470명, 비정년 트랙 교수는 총 640명이다. 정년 트랙 정교수 여성 비율은 39%, 조교수 여성 비율은 60%다. 정년과 비정년 트랙을 통틀어 자 격증 소지 비율은 31%다. 정년 트랙 교수의 인종 구성은 백인 76%, 아시안 12%, 히스패닉 및 라 틴계 5%, 흑인 3%이다. 전공 체계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석사 과정만 제공하는 경우로, 한국 에 많이 알려진 하버드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를 포함한 27개 프로그램이 이에 속한다. 필자 의 대학과 같이 4년제 학부 과정만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나 4년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동시에 제공 하는 프로그램은 각각 18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LAAB, “Summary of 2022 Annual Reports”, pp. 9~13. 9. 학부와 석사 과정을 합친 조경 전공 학생 수는 2013년에서 2017년 사이에는 10.08% 감소했 고, 2017년에서 2021년 사이에는 6.23% 증가했다. 조경 전공 학생 중 유학생 수는 2013년에서 2017년 사이 51.95% 증가한 반면에, 2017년에서 2021년 사이에는 7.45% 감소했다. 인종 구성 의 경우 2013년에서 2017년 사이 백인 비율이 상당히 감소하고 아시안 비율이 크게 증가했으나, 2017년에서 2021년 사이에는 두드러진 변화가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Accredited Academic Programs, “Summary of Annual Reports 2017-2021”; Accredited Academic Programs, “Summary of Annual Reports 2013-2017”. www.asla.org/laabnews.aspx 10. 예컨대 2017년과 2021년 사이, 학부와 석사 과정을 포함한 조경 전공 학생 수는 6.23% 증가 했고, 건축 전공은 8.16% 증가, 도시계획은 1.47% 증가를 보였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Accredited Academic Programs, “Summary of Annual Reports 2017-2021”. www.asla. org/laabnews.aspx 11. 캐나다 조경교육인증제에 대한 정보는 다음을 참조. www.csla-aapc.ca/career-resources/ accredited-university-programs 12. ASLA, CSLA, CELA, CLARB, LAAB가 함께 연구해 만든 결과물로, 2004년 “조경지식연구보고서 (Landscape Architecture Body of Knowledge Study Report)”라는 이름으로 발행되었다. 김정화는 미국 네바다주립대학교 라스베이거스 건축대학 조교수로, 2022년 가을 학기부터 조경 이론과 역사 수업을 담당하며 스튜디오도 함께 가르치고 있다. 주로 19~20세기 한국과 그 주변국의 교류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조경사를 다룬다. 2017년 “우리나라 식물원의 기원과 진화”라는 논문으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막스플랑크 예술사연구소 내 식물을 테마로 한 연구팀인 4A_LAB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다. 2018년부터 도시경관연구회 보라의 멤버로 활동하며 조경 아카이브 구축에 힘쓰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티스트 이선주와 김익명, 큐레이터 김금화와 함께 다학제 리서치 팀인 갯벌랩을 조직해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는 갯벌 생태계에 주목하고 있다.
    • 김정화
  • [조경학 교육인증의 첫걸음을 떼다] IFLA APR의 조경 교육 방향과 기준
    1973년과 2023년의 한국의 조경 교육 한국 조경의 시작은 대학에 조경학과가 설립된 해인 1973년이다. 그래서 한국 조경 50주년이라는 말은 전문 실무 영역으로 조경이 시작된 해라기보다는 조경 교육이 시작된 지 50년째 되는 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50년 동안 조경 교육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맞춘 교육 체계가 제안되기도 했고, 분야별로 새로운 교과서가 정비되었다. 정부의 교육 정책 변화와 학령 인구 감소라는 대학의 위기 상황에 맞추어 대대적인 학제 개편이 이루어졌다. 많은 대학의 조경학과에서 원치 않든 원하든 교육의 변화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조경 교육의 변화는 국내 여건에 대응하기 위한 변화였지, 국제적인 조경 교육의 변화와 큰 상관은 없었다. 간간이 유학한 실무자와 연구자가 대학으로 오면서 해외 교육 프로그램이 일부 도입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교수 개인의 수업 영역에 한정된 변화였다. 학회나 협회 차원에서 국제적인 조경 교육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우리는 어떠한 점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고민과 변화의 노력은 사실상 없었다. 많은 이들은 대학이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이 시점에서 국제적 교육의 기준을 따지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고 일축하곤 한다. 그런데 정작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같은 조경학과이지만 대학에서 서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며 논의도 없다는 점이다. 이는 교수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공식적인 비판이나 제언이 원천적으로 금기시되는 관행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조경학과의 교육에 대한 합의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1973년 조경학과가 처음 생겼을 때 조경학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한 공통된 틀이 제시되어야 했고, 해외에서 수입된 전문 분야였던 조경학의 틀은 싫든 좋든 국제적인 교육 체계를 모태로 성립될 수밖에 없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조경학을 조경학으로 성립하게 하는 틀은 여전히 50년 전의 낡은 틀밖에는 없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의 조경학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국내의 어느 특정 학교의 커리큘럼이 기준이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그 보편의 기준은 외부에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 2023년에 국제적으로 조경학과가 어떠한 기준과 틀에 따라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우리의 교육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경 교육에 대한 국제적 논의 가장 활발하게 조경학의 교육 방향을 논의하는 국제 단체는 CELA(Council of Educators in Landscape Architecture)와 ECLAS(European Council of Landscape Architecture Schools)다. CELA는 전 세계 120개 대학교로 이루어진 단체로, 한국도 정식 회원국이지만 개별 교수들의 행사 참여 외 특별한 활동은 없는 상태다. ECLAS는 유럽의 조경학과 중심의 단체로 LNI(Le:Notre Institute)와 에라스무스(Erasmus)를 통해 유럽 조경 교육의 방향을 규정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CELA와 ECLAS의 틀을 토대로 한국의 조경 교육을 점검하고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것도 대안이겠지만, CELA는 북미와 영어권 학교를 중심으로 하고 있고, ECLAS는 EU를 통해 인적 교류를 해야 하는 유럽의 특수성을 전제로 하고 있어 한국의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 교육 분야에 한정하지 않는다면 IFLA(International Federation of Landscape Architecture)가 현재 조경계를 대표하는 국제 단체라고 할 수 있다. IFLA는 여러 분과로 구성되며, EAA라는 교육 분과가 IFLA가 지향하는 조경 교육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한국조경학회(KILA)가 IFLA의 회원 단체로 한국을 대표하며 아시아‧태평양 지회인 IFLA APR(Asia Pacific Region)에 속해 있다.(각주 1) IFLA의 구체적인 활동은 지회를 통해 이루어지며 IFLA APR에서도 교육 분과가 있어 매년 교육의 방향을 논의하고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왔다. 당연히 한국에서 국제적인 조경학 교육의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가장 적합한 틀은 우리가 속해 있는 IFLA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기준일 것이다. IFLA APR은 2018년에 교육 정책과 기준, 그리고 인증 과정(Education Policy and Standards+Accreditation Procedure)에 대한 틀을 마련했다.(각주 2) IFLA APR의 교육 기준은 아시아‧태평양 지회의 독자적 기준은 아니다. 2005년 IFLA는 유네스코와 함께 IFLA 유네스코 조경교육헌장(Charter for Landscape Architecture Education)을 발표했다.(각주 3) 그리고 2008년에는 조경의 고등 전문 교육 기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인증의 기준을 제시했다.(각주 4) 2012년에는 IFLA 유네스코 조경교육헌장을 보완해 구체적인 고등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한다.(각주 5) 2018년 IFLA APR의 교육 기준은 선행된 IFLA와 유네스코의 조경 교육에 대한 연구와 논의에 기반해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해 제시된 지침이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아시아·태평양 지회는 아시아권의 국가뿐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의 국가들도 포함 한다. 반면 중동 지역은 별도의 지회로 구성되어 있다. 2. IFLA APR, “Education Policy and Standards+Accreditation Procedure for IFLA AsiaPacific Region”, 2018. 3. IFLA/UNESCO, “Charter for Landscape Architecture Education”, 2005. 4. IFLA, “Guidance Document for Recognition or Accreditation”, 2008. 5. IFLA/UNESCO, “Charter for Landscape Architecture Education Revision”, 2012. 김영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며, 세종상징광장, 광화문광장, 파리공원 재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주요 설계자로 참여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으며,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 김영민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Reading Daegu and Its Landscape Culture
    대구는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분지이자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여름이면 기온이 높게 치솟는다. 이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대구는 1996년부터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을 진행해왔다. 수천 그루 나무가 식재됐고, 도심 한복판에 두류공원, 팔공산자연공원 같은 굵직한 공원이 조성되었다. 쓰레기 매립장과 고수부지 주변의 방치된 땅은 생활의 숲으로 바뀌었다. 두세 줄로 풍성하게 심긴 키 큰 가로수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널찍한 띠 녹지 역시 대구의 특징적 도시 경관이다. 같은 해 시작된 ‘담장허물기 운동’ 역시 도심에 더 많은 녹지 공간을 만들어냈고 마을공동체 문화를 형성시키는 효과를 냈다. 대구는 국내 대도시 중 보기 드문 단핵 도시이기도 하다. 대구에서 가장 번성한 거리인 동성로가 중심에 있고 방사형으로 외곽 시가지가 펼쳐진다. 주요 도로 역시 중심가를 둘러싼 여덟 개의 고리형 순환도로로 구성되어 있다. 시가지에서 가지처럼 뻗은 원도심의 촘촘한 길들은 도시화 과정을 거치고도 살아남았고, 켜켜이 쌓인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특색 있는 골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구는 문화라는 키워드 아래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된 달성군은 ‘누구에게나 호혜로운 문화도시’로 변모를 꾀하는 중이다. 2023년 7월에는 군위군이 대구로 통합되며, 특‧광역시 중 가장 큰 도시로 발돋움하게 됐다. 군위군을 상징하는 삼국유사의 고장을 비롯해 풍부한 자연자원이 더해져 문화‧예술적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변화를 앞둔 대구의 도시 문법을 공원, 골목, 원도심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조경의 관점에서 풀이함으로써 도시 대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대구에서 진행된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의 면모를 살펴본다. 이번 특집이 도시의 구조와 특색이라는 맥락에서 조경 문화의 의미를 살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 대구 도시공원 르네상스를 위하여 _ 정태열 대구 골목길에 대한 인상 비평 _ 최이규 대구 원도심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_ 양진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 _ 김모아 대구 도시 공간 10선 _ 금민수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도시공원 르네상스를 위하여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내용은 이정연과 정태열의 논문 “대구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 해석”1에서 발췌했고, 2000년대 이후는 대구시 자료를 참조했다. 도시공원 계획‧개원 과정의 특징을 시대별로 분석하고, 이를 시대적 상황과 연관 지어 고찰함으로써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알아보고자 했다. 향후 대구 도시공원 르네상스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대구 도시공원 태동기 1960년대 이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복구기 등을 거치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체계적인 공원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도시민의 건전한 휴식 공간 확보 및 자연 경관 보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1967년 공원법이 제정되면서 공원‧녹지 관련 정책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됐으나 대부분 공원 지정에만 그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성공원은 대구의 유일한 공원이었다. 달성공원은 고대 달구벌 부족국가의 성터로, 대구에 있는 도시공원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1905년(고종 38년) 처음 공원으로 조성된 이래 일제강점기에는 신사가 건립되는 등 각종 성역화 사업이 추진됐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군사 시설 주둔지로 활용됐다. 1964년 국유 재산인 달성공원이 대구시에 무상으로 양여된 후 재정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먼저 대구시는 공원의 운영 및 시설에 대한 자문 기관으로 시민 대표와 권위자들로 구성된 공원조성위원회를 만들고, 막대한 예산 확보를 위해 시비와 국비를 최대한 할애하고, 시민과 대구 출신 재벌들의 후원을 얻는 등 공원 재정비 계획의 대략적 원칙을 세우고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공원 설계는 당시 경북대학교에서 조원학을 강의하던 임순문 교수에게 의뢰했고, 1964년 7월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소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1966년 8월 공원 내 신사 건물 철거를 계기로 공원 재정비를 계획했으나 자금난으로 3년 만인 1969년 8월에 개원했다. 당초 계획했던 어린이 놀이터, 도서관, 분수 시설, 연못 등은 예산 부족으로 손대지 못하고 시민의 여론에 쫓겨 미완성인 채로 문을 열었다. 당시 공원 입장료는 어른 20원, 어린이 10원이었다. 1960년대에 계획‧개원된 또 하나의 공원은 중앙공원(현 경상감영공원)이다. 중앙공원은 조선시대 감영監營이 있던 장소로, 해방 이후에는 경북도청, 공무원교육원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 곳이다. 당시 대구에는 달성공원 외에 변변한 공원이 하나도 없었던 상황이었으므로 시민들은 이 부지가 공원이 되는 것을 열망했다. 이를 받아들여 대구시는 1965년 2월 건설부고시로 공원(당시 포정공원)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대구시의 결정과 달리 1966년 5월 경상북도는 이 부지에 관광호텔과 백화점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당시 건설부가 시민들의 여론과 결정‧고시 후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부지의 공원화가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으나, 공원을 원하는 시민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공원 조성은 실현되지 못하고 계속 방치됐다. 그러다 1970년 1월에 포정공원 조성계획을 확정하고 10월에 개원했다. 당시 입장료는 어른 30원, 어린이 10원이었다. 1960년대는 국가적으로 경제적 빈곤이 문제시 되던 시기로, 시민은 물론 일부 정책 결정자들조차도 도시공원에 대한 인식이 매우 미흡한 상태였으나, 시민들의 공원을 열망하는 여론이나 기부 문화는 싹트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당시 사회적 상황을 종합해보면 시 외곽이나 도심부의 새로운 장소에 도시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은 재정적 면에서 불가능했으므로 시민의 접근이 용이하고 공원 조성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도심지 내 역사 유원지의 공원화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당연했다. 대구 도시공원 준비기 1970년대 들어서면서 백만 명을 넘어선 대구 시민이 이용하기에는 공원이 너무 부족한 상태였고, 계속되는 인구 증가와 도시화로 공원의 중요성은 부각됐다. 1965년 2월 공원으로 지정된 앞산공원은 별다른 계획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대구시는 앞산공원을 자연공원 성격을 띤 대규모 공원으로 개발하고자 1970년부터 개발 사업에 착수했고 1971년 공원조성계획을 수립했다. 계획 당시, 앞산공원은 규모가 커 조성 비용이 많이 소요되어 전체 개발은 불가능했다. 계곡별로 성격이 다른 다섯개 지구로 분류해 1년에 한 지구씩 1975년까지 연차적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앞산공원 역시 민간 자본 유치 저조와 대구시의 재정난 등의 이유로 개발이 늦어지게 된다. 1975년 12월 앞산순환도로가 준공되면서 다시 조성에 탄력을 받게 된다. 비록 준공 시기를 여러 번 넘기긴 했으나 제2지구는 각종 놀이공원을 갖춘 유기장으로 1979년 4월에 완공됐다. 대구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서구 내당동과 서당동 일원에 위치한 두류산이 두류공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두류공원은 1965년 2월 공원(건설부고시 제1387호)으로 결정‧고시되면서 조성 계획이 마련됐다. 1966년 2월에 발표된 두류공원 종합계획을 보면, 박물관, 대도서관, 야외 음악당, 드라이브 인 극장, 실내체육관, 풀장, 종합경기장, 어린이 놀이터, 식물원, 동물원, 양어장 등과 함께 케이블카와 두류산 정상에 높이 300m의 대구 타워 설치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재원 확보 방안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이여서 두류공원은 종합대공원이란 이름으로 설계만 된 상태로 방치됐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원 조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1974년 두류공원 기본계획이 확정된다. 그러나 공원 전체 면적의 92%가 사유지로 부지 매립 문제와 앞산공원 개발과 병행으로 실시에 따른 대구시의 재정난으로 인해 공원 조성은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다가 1977년 5월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개원됐다. 1970년대에 수립된 도시공원 조성계획은 주로 자연 경관이 수려한 풍경지와 명승지에 구상됐고,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대규모 공원으로 계획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구 증가와 도시화 등으로 도시가 거대화됨에 따라 도시의 기초 기반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공원 또한 보다 발전적 방향으로 계획되는 점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당시의 공원조성계획은 시대적 상황과 재정적 문제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수립되어 결국 재정적 문제 등으로 공원 조성은 계획 기간 내 완공하지 못하게 됐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이정연, 정태열, “대구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 해석”, 『한국조경학회지』 41(3), 2013, pp.72~82. 정태열은 경북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랜드스케이프연구소(TLA)에서 11년간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도쿄공업대학에서 공학박사(경관공학)를 취득했다. 이후 서울에서 소울랜드스케이프(SLA)를 창립해 일하다가 2012년부터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을 역사적 공간에서 찾는 중이며, 풍경을 어떻게 하면 팔 수 있을지 자문하고 있다.
    • 정태열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골목길에 대한 인상 비평
    석류나무, 콩국 냄새, 오페라, 고요하고 바람이 정체된 밤공기. 대구의 골목길 인상들이다. 사뭇 소박하다. 대구란 도시는 한 쪽으로 치우치는 정치색을 제외하고는 딱히 뭐라 연상 작용이 없는 곳이다. 본인들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도시랄까. 어지간해서는 좀처럼 올 일이 생기지 않는 도시. 부산, 제주, 속초처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라이프스타일 도시 근처도 못가는 무척 심심한 도시다. 대도시지만, 그 흔한 호텔 체인도 없다. 노보텔이 있다 없어지고, 최근에 매리어트가 하나 생겼다. 아마 한국에서 재미없는 도시 뽑기 경기를 한다면 1, 2위를 다툴 만한 라이벌은 대전 정도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구에 와서 할 만한 유일한 소일거리는 구도심의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 골목길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냐 묻는다면, 그런 건 기대하지 말고 그냥 잠자코 걸어볼 수는 있다고 하겠다. 대구는 무채색의 도시다. 약간 거무스름한 회색이랄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도시. 대구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고요함이 아직 뇌리에 남아있다. 늦여름이었고, 머물던 게스트하우스 근처 골목을 돌아다녔다. 마치 도시만 남겨두고 모든 사람들이 휴거해 버린 분위기는 적막함 이상의 정체된 흐름이었다. 분지라 그런가. 고요함에도 색이 있다면 아마 검회색일 것이다. 일전에 대구의 어바니스트이자 대한민국 최초로 근대골목지도라는 걸 만든 역사 연구가인 권상구에게 외지인으로서 느끼는 대구의 도시색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한동안 대구시가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도시 브랜드가 ‘컬러풀 대구’였는데, 나는 이 말이 더없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고 대답했다. 정치적 쏠림에 대한 시니컬한 농담인지, 아니면 지루한 도시에 대한 반어법적 표현인지, 다양성에 대한 뜬금없는 강조라니. 목표와 현실이 이렇게 수만 광년 떨어져 있어도 되는 것인가. 대구는 채도가 낮은 도시고, 굳이 그걸 감출 필요가 없다. 단단한 무채색은 세련되고 깊다. 요즘 대구에서 오픈하는 새로운 상업 공간들은 꽤나 감각적이고, 그건 블랙으로 요약된다. Green is the new black(초록이 새로운 표준이 되다)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나무조차도 회녹색이다. 조용히 골목을 걸으면서 메뉴가 적당하고 디자인이 괜찮은 카페에서 공간과 시간을 즐기는 것. 내가 추천할 수 있는 유일한 팁이다. 낮에는 더위 탓에, 어느 정도 어두워진 밤거리를 걷는 것을 권한다. 습기에 눅진해진 공기 사이를 헤쳐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대구는 천만그루 나무 심기 등 나름 도시 녹화에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 생활자로서 특별히 무성한 도시라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오히려 나에게 대구의 일반적인 골목은 가끔 촘촘히 박혀있는 붉은 석류열매와 함께 연상된다. 예전에는 사과가 유명했다고 하지만, 이제 대구와 사과를 연관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주택가를 걷다보면 종종 만나는 주렁주렁 열린 과일이 석류다. 붉게 익은 석류와 땅에 떨어져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과육은 아마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그 아래에서 평상을 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쉬고 있는 노인들을 볼 수 있다. 석류는 이란 근처의 중동이 고향이니, 한반도에서는 무조건 남부 수종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바람이 적은 대구에서 잘 적응했다. 팔공산과 비슬산 줄기에 둘러싸인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은 기후 외에도 독특한 역사적 궤적을 만들었다. 대구 시내는 한국의 대도시 중 거의 유일하게 한국전쟁의 직접적 피해를 겪지 않은 곳이다. 미8군 사령부의 제공권 덕에 폭격이 덜하기도 했고, 육상 전투가 낙동강 전선에 한정되었기에 연합군이 지켜낸 마지막 요충지였다. 부산의 경우에 수많은 피난민들이 자리 잡으면서 일종의 난개발이 진행된 것과 달리 대구는 일제가 계획한 도시 구조를 이어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60~1970년대, 섬유가 주축이 된 공업화와 국가산업단지 조성 또한 성서와 서대구 지역에서 꽤나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초량 일대에 남아있던 적산가옥이 빠르게 소실된 부산과는 대조적으로, 대구는 군산과 함께 상당량의 일식 가옥을 보유한 도시이기도 하다. 북성로 일대는 일본식 상점가인 마치야에서 해방 후 소규모 공업사 골목으로, 최근에는 다시 예전 가옥의 복원을 통한 재생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일본인들이 철수하자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자를 재활용하여 금속과 전기, 공구 등을 취급하는 제조업이 사뭇 어울리지 않는 목조 적산가옥에 자리 잡게 되었다. 100년 가까이 된 건물 안, 온갖 기계의 굉음과 기름때가 거뭇거뭇한 설비 사이에서 작업 중인 수작업 장인들, 일명 브리콜레르bricoleur. 이들의 존재가 부각된 것은 소위 국가적으로 창조경제를 외치던 때였다. 개인이 가진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 소규모 공업사의 존재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북성로는 일찍부터 일종의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로 기능해 온 셈이다.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그려 가면 물어물어 그걸 제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북성로 어디에선가 찾을 수 있다. 발명이나 디자인, 혹은 그저 만들기에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 이곳은 영감을 주는 곳이다. 서울로 치면, 을지로나 성수동, 부산의 신암로 같은 곳이랄까. 하지만 막상 북성로에서 뭘 만들기는 쉽지 않다. 업주들이 고령화되어 현장에서 통용되는 은어와 그들만의 용어를 알아듣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계화된 검색 도구가 없어 온종일 발품을 팔아도 허탕을 칠 때가 많다. 권상구는 현장에서 쓰이는 단어들을 수집하여 요즘 우리가 알아들 을 수 있는 말로 풀어낸 책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단지 지나간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나 단순히 지적 취미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술자와 기술을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명맥이 끊어질 손기술들이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후계자들에 대한 교육을 지원하고 양성하는 일이다. 적산가옥이라는 과거의 유물보다 거기서 쌓인 경험과 노하우가 훨씬 값지기 때문이다. 북성로 서쪽 끝 지점은 유서 깊은 달성공원이다. 대구의 종가집이라 할 달성 서씨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일제가 신사와 동물원으로 바꾸었다. 한강 이남의 창경궁 정도가 되겠다. 지금은 이용자의 대다수가 노인들이라 탑골공원의 분위기를 풍기는데, 역시나 매일 새벽에는 도로변과 인근 골목에서 장터가 열린다. 오전 4시부터 상인들이 좌판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어둑어둑한 길에서 생선이나 채소를 파는 모습이 이채롭다. 차량 통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도로는 사람들로 붐벼 널찍한 프롬나드를 방불케 한다. 이런 곳을 돌아다니는 전문 상인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작은 소쿠리에 담아 파는 할머니들도 볼 수 있다. 뱀파이어처럼 새벽 시장은 해가 뜨면 파장 분위기가 된다. 주변 상권에는 아침부터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주를 들이키곤 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과 환경관리학을 전공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내외 설계사에 근무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공과대학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식물벤처기업 에어리 대표를 맡고 있다.
    • 최이규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원도심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먼저 말하고 싶은 것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그래서 원도심은 재생되었을까? 막대한 예산이 집행된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와 효과가 ‘참으로’ 궁금하다. 이렇게 질문하니 원도심이 사업 방식으로 재생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원도심 재생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관료, 공무원, 지식인 그룹의 상상속에서 존재하는 판타지적 기호가 아닐까. 과연 원도심은 재생될 수 있을까? 다른 지자체 사정은 어떨까? 대구 외의 여타 지역은 이전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도시재생 사업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대구 원도심은 재생되지 않았다. 아니 재생될 수 없었다. 애초에 원도심 재생을 기대한 게 무리였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원도심은 재생될 수 없다고 말이다. 사람이 재생될 수 없는 것처럼. 원도심은 사업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재생되는 게 아니다. 원도심은 진화한다. 원도심은 단지 오래된 거리, 골목, 집 그리고 원주민을 뜻하지 않는다. 원도심은 오래된 거리, 골목, 집, 원주민을 포함하여 유입자,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커뮤니티가 종횡으로 엮인 복잡 생태계다. 또한 원도심은 과거‘들’과 현재‘들’의 서로 다른 시간이 교차하는 복잡 생태계다. 놀라운 사실은 이 복잡 생태계가 진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진화의 표정은 한 가지로 그려지지 않는다. 대구의 대표적인 원도심인 북성로. 북성로 거리에는 여전히 공구 가게가 성업 중이다. 도시재생 사업을 계기로 더 주목받은 북성로 공구 가게. 이 가게들의 몰락을 예고한 리뷰와 언론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문닫은 가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직 이 거리의 주인공은 공구 가게들이다. 북성로 거리와 달성공원의 교차 지점 도로에는 여전히 새벽마다 번개 장터가 열린다. 토요일, 일요일 번개 장터는 인파로 가득하다. 향촌동 골목 콜라텍에는 어르신들이 출입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원도심의 풍경이다. 달라진 풍경도 있다. 북성로 입구에 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여러 동 신축되고 있다. 올해 내로 입주 예정이라고 한다. 달라진 풍경이 더 있다. 청년 사장이 영업하는 레트로 카페들이 원도심에 입점하고 있다. 더 놀라운 풍경도 있다. 대구 교동시장과 인근은 지역의 ‘힙’한 청년들이 즐겨찾는 거리로 탈바꿈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2023년 가을의 대구 원도심은 불변과 가변이 뒤섞인 진화의 풍경을 연출한다.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불변과 가변이 혼재된 대구 원도심의 진화는 도시재생 사업과는 무관하게 전개된 풍경이거나 일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풍경과 일상은 그 자체로 선이거나 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풍경과 일상은 대구 원도심의 풍경과 일상이며 우리는 이 풍경과 일상을 선입견 없이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원도심을 재생 대상으로 간주한 원도심 초보자였다. 수제화 골목에 ‘스토리텔링 공방 북성로대학’을 만들 정도로 원도심 마니아를 자처하며 도시재생 사업의 예산을 지원받아 이런저런 일을 주도하거나 관여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원도심은 재생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원도심은 재생되는 어떤 대상이 아니었다. 원도심은 사업 대상이 아니라는 반성과 원도심은 스스로 진화하는 생태계라는 성찰을 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원도심은 사업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깨달았다. 원도심 진화의 풍경을 조망하고 인정하는 너른 사랑이 내게는 부족했다. 정말 말하고 싶은 건 대구에 교동시장이 있다. 교동시장은 대구역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다. 교동시장의 교동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향교가 문을 연 마을은 대개 교동으로 불린다. 교동마을이 전국에 산재한 이유이다. 대구도 그렇다. 본래 교동시장 인근에 대구 향교가 있었다. 현재 대구 향교는 남산동에 있다. 1932년 일제 총독부는 대성전, 명륜당 등을 남산동으로 이전한다. 이리하여 대구 향교의 역사가 남산동에서 새로이 시작한다. 향교는 이전했으나 마을 이름은 바뀌지 않는다. 도깨비시장으로 불리던 교동시장은 한국전쟁기에 탄생한다. 교동시장의 인기 품목은 미군 PX 군수품이었다. 이렇게 문을 연 교동시장은 여타의 재래시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다른 재래시장에서 찾기 어려운 구제 의류, 일제 상품, 전자 제품, 시계 가게 등이 교동시장에는 흔하다. 그런데 교동시장이 언제나 호황을 누릴 수는 없었다. 교동시장은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도시재생 사업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그런데 교동시장을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바꿔낸 주역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역 청년들이다.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가 아니다. 교동시장과 인근의 오래된 집과 건물, 거리, 골목은 전형적인 원도심의 표상을 연출한다. 그런데 이 거리가 ‘힙’한 청년들의 아지트로 변모하고 있다. 교동의 변모는 인근 동성로와는 비교될 만한 현상이다. 대구 대표 상권 동성로는 터주 역할을 하던 대구백화점이 문을 닫으며 부진을 겪고 있다. 교동은 그렇지 않다. 교동시장과 그 인근에는 터주 역할을 하는 고급 브랜드가 없다. 고층 건물도 없다. 높아야 2층, 3층 게다가 구축이다. 골목은 미로 같다. 임대료는 교동이 동성로보다 저렴하다. 그런데 이런 원도심의 여건이 교동을 살린다. 교동이 대구 레트로의 성지로 변모하고 있다. 교동의 진화는 누가 의도한 게 아니다. 정책 당국자들은 더욱이나 아니다. 누가 의도하였다 하여 이렇게 교동이 바뀔 일이 아니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개업한 청년몰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주된 이유가 거리 생태계와 무관한 청년몰의 개업이다. 반면에 교동은 그렇지 않다. 교동은 진화의 여건이 충분하다. 시장, 구축 건물, 거리, 골목이 교동을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바꿀 진화 토대다. 교동의 예기치 않은 진화를 반기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원도심의 진화를 초래하는 청년들의 더 많은 관여와 상상력을 응원하는 마음이 컸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그렇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진화할 수 있고 진화해야 한다. 원도심이 진화할 수 있는 생태계라면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그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이론이거나 주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 역시 충분히 진화할 수 있으며 어쩌면 더 진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는 박제화된 담론이지 않아야 한다. 만약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박제화된 담론처럼 이야기된다면 청년 세대들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아니 청년 세대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이는 대구 원도심도 해당한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는 재발견, 재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재구성될 수 있다. 대구 원도심이 식민지 근대를 경험하며 탄생한 배경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한 예로 대구 원도심에는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있다. 대구를 포함한 경상도 지역에 위안부 강제 연행을 겪은 어른들이 있는 까닭이다. 물론 위안부 강제 연행이 비단 대구와 경상도에 한정하여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하는 역사 관은 지역에 인권과 평화라는 인문학적 가치를 파급한다는 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인권 문제로 현재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 또한 인문학적 가치의 진화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 논의 과정에서 청년 세대의 참여가 긴요하다. 그런데 청년 세대 의 참여는 언어적 이론으로 피력될 이유는 없다. 청년 세대의 참여는 놀 이와 퍼포먼스, 축제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매년 5월이면 대구 중구 일대에서 거리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름하여 ‘파워풀대구페스티벌’. 적어도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은 거리의 주인공이 시민이다. 차로를 막고 개최된 여러 행사 중에 유독 돋보였던 것은 K-POP 커버 댄스 경 연이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청년들이 저렇게 신나게 춤을 추는 한, 이 나라에 희망이 있구나 싶었다. 저 청년들의 춤이 저 세대들의 언어이구나 싶었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원도심 거리에서 자기를 표현했다. 인문학적 가치라는 게 뭘까? 인문학에서의 ‘문’을 나는 꼭 글로 해석하지 않는다. 나는 ‘문’을 ‘무늬’로 더 해석한다. 인문학의 ‘인문’은 ‘사람 의 무늬’라는 말이다. 그 무늬는 우리들의 노래일 수도 율동일 수도 호흡 일 수도 있다. 지역 원도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기록하는 청년 들을 인문학의 새로운 주체로 보고 싶은 마음이 각별하다. 또 다른 예를 들고 싶다. 해마다 10월이면 대구 향촌동 골목에서 독 립출판작가들의 북페어가 열린다. 2022년 10월 22일부터 23일, 이렇 게 이틀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슬로건으로 북페어가 열렸는데, 8회를 맞이해 대구의 대표적인 독립출판서점 더폴락과 인근의 어울리커피클럽에서 진행됐다. 이 북페어가 열리는 장소는 향촌동 골목이다. 향촌동은 ‘향기로운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다. 향촌동의 유래는 식민지 대구로까지 소급된다. 대구에서 향촌동 골목은 한국전쟁 전시 문화의 본산으로 기억된다. 그럴 이유가 있다. 한국전쟁 때 대구는 경향 각지 피난민들의 집결지였다. 서울에 이어 대전을 잃은 한국군은 대구에 사령부를 차린다. 대구가 반격의 거점이었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시인, 소설가, 음악가, 화가들이 대구로 피난 왔다. 그들은 향촌동 골목에서 우정과 돌봄의 후일담을 남겼으니 그 주역이 구상 시인이다. 독립출판작가들의 북페어는 향촌동 골목에 또 다른 기억을 입히는 작업이다. 과거의 전시 기억만이 아니라 독립출판작가들의 현재의 기억 이 입혀진 향촌동 골목. 골목은 이처럼 여러 기억을 보유할 때 빛나는 인문학의 자산으로 탄생한다. 그래서 이 북페어가 좋았다. 대구 독립출 판작가들의 북페어는 향촌동 골목을 청년들의 골목으로 바꿔내는 놀이 였고 축제였고 사건이었다. 향촌동 골목이 전시 문화의 본산으로 기억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향촌동 골목이 전시 문화의 본산으 로‘만’ 기억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향촌동 골목이든 원도심의 어떤 골 목이든 기억의 중첩을 거듭하며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갱신해야 한다. 독립출판작가? 서울과 부산에 비하자면 그 수가 많지 않다. 그리고 독립출판서점도 서울과 부산에 비하면 그 수가 많은 게 아니다. 그러나 대구에서도 어느새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북페어가 열리고 있다.북페어 참여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즐거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책을 몇 권 샀다. 그러는 사이에 졸업한 제자를 북페어 현장에서 반갑게 만났다. 나는 그날 책을 산 게 아니다. 나는 그날 청년들이 새롭게 일궈낸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산 것이다.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대구의 인문학적 가치, 좀 젊게 가자는 말이다. 그래야 대구 원도심이 인문학적 자산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구 원도심이 특정 시기의 기억만을 보유하지 않게 하자는 말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과거 회귀나 회고에 머물지는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하고 싶은 건 대구 원도심 진화의 풍경은 다양하다. 교동은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진화하고 있다. 식민지 대구의 표상인 북성로 입구에는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우람하게 세워지고 있다. 어르신들은 콜라텍 출입을 계속하실 것이다. 청년 사장이 개업한 카페는 더 늘어날 추세다. 또 다른 한편으 로는 북성로 도시재생 사업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마무리될 상황이다. 어떤 풍경은 반가움으로, 어떤 풍경은 우려로, 또 어떤 풍경은 아쉬움으 로 나에게 남는다. 그런데 반가운 풍경, 우려의 풍경, 아쉬움의 풍경 모두 원도심 진화의 풍경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그럴 것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다양하게 진화할 수 있다. 원도심을 지배하는 권위적이고 절 대적인 인문학적 가치는 애초부터 없다. 또한 최고의 가치도 없다. 진화 하는 원도심의 풍경처럼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진화할 수 있다. 예 를 들면 이렇다. 틈틈이 들르는 극장이 있다. 대구 오오극장이다. 정확 한 명칭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오오극장이다. 오오극장 은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견인하는 독립영화 전용관이다. 시 설은 롯데시네마나 CGV와 같은 멀티플렉스를 따라갈 수 없다. 그렇더 라도 나는 틈틈이 오오극장에 들른다. 8월의 대구는 ‘덥다’라는 말이 무색하다. 습기까지 더해져 8월의 대구는 사람을 완전히 지치게 한다. 8월 대구에서 오오극장 중심으로 ‘대구단편영화제’가 열린다. 올해로 24회째다. 국내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유일한 전국 규모의 경쟁영 화제가 바로 ‘대구단편영화제’다. 그런데 이 영화제를 아는 대구 시민들이 많지 않다. 전주와 부산만 영화제가 있는 게 아니다. 대구 원도심에서도 개성적인 영화제가 열린다. 이 영화제에서 재현되는 대구는 어른 들이 경험한 대구와는 또 다른 대구다. 이 대구에는 지역 청년들의 삶이 다양하게 재현된다. 그들은 영상으로 그들의 대구를 이야기하고 있었 다. ‘대구단편영화제’ 때문에 8월의 대구가 뜨거웠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고여 있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이상화, 현진건만 말할 게 아니다. 국채보상운 동의 의의만을 말할 게 아니다. 지금 여기, 특히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인문학적 가치도 이야기하자는 말이다. 대구 원도심의 장소를 밀어내고 신축 아파트는 완공되고 있다. 원도심의 오래된 거리와 골목, 집들은 사라지거나 철거되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교동은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탈바꿈했다. 대구 오오극장은 ‘대구단편영화제’를 거행했다.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이 름의 북페어는 올해에도 개최되리라. 롤러커피처럼 대구를 전국적인 커피 명소로 이끌 청년 커피 장인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골목 책방들은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리라. 그리고 청년들은 계성중학교에서 춤을 춘 뉴진스처럼 어딘가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활약이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견인하는 몸짓이 아 닐까?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원도심 골목과 거리에서 영화를 찍고 글을 쓰고 춤을 추는 청년들에 의해 진화하기를 응원한다. 그럴 수 있고 그렇게 가야 한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그렇게 가야 한다. 그래야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죽지 않고 지역도 소멸의 오명을 피할 것이다. 양진오는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에서 학생들에게 지역 문화, 스토리텔링 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대구 수제화 골목에 스토리텔링 공방 북성로대학을 만들어 마을 인문학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 양진오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
    이번 특집 의도 중 하나는 한 권의 잡지를 후루룩 훑어보는 것만으로 대구를 궁금하게 하는 것이다. 대구라는 도시의 역사와 특징을 완벽하게 읽어내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지게 만들고 여행의 큰 틀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지면을 꾸리고자 했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는 『환경과조경』에 실렸던 대구와 관련한 기사를 정리해 소개한다(1982년~2020년). 모든 장면을 포착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구의 조경사에서 중요한 지점 몇몇을 이어 변화의 궤적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글의 제목, 발행년월을 표기해 언제든 궁금해지면 책갈피가 꽂힌 책장을 열어볼 수 있도록 했다. 참고로 환경과조경은 2014년 이전에 발행한 잡지를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단, 가입은 필수. 지방도시의 녹지행정: 대구직할시의 녹지 행정 이재환, 1989년 3월호 산업화의 여파로 자연이 점점 사라지고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되는 시기에 지방 도시의 바람직한 녹지 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피는 특집을 기획했다. 서울특별시와 당시 직할시였던 대구, 인천, 광주를 다뤘다. 당시 대구직할시 도시계획국 녹지과장 이재환이 글을 썼다. 대구시 녹지 공간의 현황 및 이용 실태, 대구 공원 정책의 기조 및 공급 지표, 개발 계획의 문제점 및 개원방향, 녹지 공간 창출에 대한 의견이 주요 내용이다. 당시 대구는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라 도시의 과밀화를 겪고 있었다. 더불어 소득 증대에 따른 여가 선용 기회가 확대되며 시민들은 공원, 녹지 공간의 확충과 시설의 수준 향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부응해 대구는 1982년 ‘제1차 5개년 공원, 유원지 개발계획’(1982~1986)을 수립해 두류공원과 범어공원을 비롯해 8개소의 도시공원을 개발 조성했다. 이어 ‘2차 5개년 공원, 유원지 개발 계획’(1987~1991)을 수립해 팔공산 자연공원을 활용해 개발 광역관광권을 형성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녹지 공간이 집중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절대적인 녹지 공간이 부족해 유지·관리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고 그 비용이 막대하게 들고 있다는 사실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캠퍼스 조경: 경북대학교 김용수, 1990년 11월호 전국 대학교의 캠퍼스 조경을 살펴보는 연재 꼭지에 경북대학교를 소개했다. 당시 경북대 조경학과 교수 김용수가 글을 썼다. 경북대학교는 1946년 대구사범대학, 대구의과대학, 대구농과대학을 모체로 문리과대학과 법정대학을 신설해 1952년 국립종합대학교로 개편됐다. 당시에는 25만평 규모의 부지에 12개 단과대학 87개 학과와 6개 대학원의 154개 학과를 갖추고 있었다. 경북대학교 캠퍼스는 본래 산격동과 북현동 일대의 야산이었고, 지반 대부분은 청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극한 극서로 유명한 대구의 기후 특성으로 인해 식생 생육의 기반이 좋지 못했다. 교육 기능의 역할을 초월해 더 큰 스케일의 단지 혹은 도시로서의 질을 겸비한 활기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부적절한 식생 기반과 기후 악조건을 고려해 쾌적한 환경 조성에 역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국내 최초 꽃시계를 비롯해 일청담, 지도못, 야외 박물관, 교시탑과 시계탑, 야외 공연장, 장미원, 운동 공간, 학생회 관할 광장, 다목적 강당 앞 광장, 본관 앞 광장 등이 조성됐다. 태창철강 성서공장 1992년 12월호 1992년 도시환경문화상 조경부문 수상작 중 하나로, 설계·감리는 녹지환경연구소가 맡았다. 일반적으로 공장 조경은 공장의 본래 기능인 생산 기능에 치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태창철강 성서공장의 경우 토지이용계획단계에서부터 인공적이고 딱딱한 공장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나아가 종업원의 후생 복지, 지역 사회에서의 봉사 등 여러 측면에서 조경에 보다 많은 역할을 부여해 정원의 위치와 면적을 결정했다. 공장은 부지 안쪽으로 배치하고 길이 120m, 폭 40m의 정원을 과감하게 대로변에 접하도록 조성했다. 대로를 따라 높이 3m 정도로 계획했던 옹벽은 1m 이하로 낮춰 경사면으로 처리했다. 더불어 투시형 담장을 설치함으로써 외부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개방된 정원을 전개시킨 것이 핵심이다. 대구광역권 녹색플랜과 환경보전전략 이석희, 1996년 5월호 특집 ‘지방자치단체 녹색플랜과 환경보전’의 두 번째 시리즈에 수록된 글이다. 당시 대구경북개발연구원 지역개발실장 이석희가 글을 썼다. 주요 내용은 대구의 입지 특성과 개발 여건, 환경 오염 실태, 녹지자연도, 환경 보전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등이 다. 당시 대구는 ‘지방의제 21’의 제정과 환경도시 선포를 앞두고 있었다. 이에 대기, 수질, 생활환경의 오염을 적극 예방하고, 기존에 실시하고 있는 각종 환경 사업과 연계해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1차, 1996~2006)을 진행했다. 11년간 천만 그루의 나무 심기를 목표로 추진해 1,093만 그루를 심었으며, 그 성과로 한국조경학회가 주관하는 2001년 제1회 한국조경대상에서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어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 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기초단체, 연구 기관 등에서 110회에 걸쳐 벤치마킹을 하기도 했다. 2차 사업(2007~2011)은 담장 없는 열린 문화 실현, 일상생활에서 즐길 수 있는 생활권 녹지 및 공원 확대 조성, 시민과 함께하는 쾌적한 숲의 도시 실현을 목표로, 3차 사업(2012~2016)은 양적 목표 달성을 넘어서 디자인 질을 높이는 녹화 사업으로 추진됐다. 2017년부터는 미세 먼지 절감과 도시 열섬 현상 완화를 목표로 4차 사업이 진행 중이다. 실험적 도시가로 테마공원: 들샘공원 1999년 2월호 대구시 북구 동북로 229에 위치한 공원으로, 박찬용 교수(영남대학교 조경학과)와 디멘션 조경설계사무소가 설계했다. 대상지는 예부터 맑은 샘물이 솟아나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해서 ‘물새미’라 불리던 곳이다. 북구의 ‘휴먼도시 북구 창조’ 발전 계획에 따라 테니스장으로 활용되고 있던 부지를 도시가로형 테마공원으로 새롭게 바꾸었다. 공원법상으로는 어린이 공원에 해당하지만, 지역의 상징성을 지녔으며 접근성이 좋다는 점을 고려해 어린이 이용 중심의 단편적인 기능을 위주로 하기보다 지역 주민의 정서와 문화 행사를 담는 복합 용도의 공동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공간감과 인지성을 높인 주진입광장, 중앙수변광장, 휴게광장, 조형벽체, 놀이 공간과 가로 공간으로 구성된다. 한국도로공사 경북지역본부 사옥 1999년 9월호 한국도로공사 경북지역본부 사옥의 조경은 조경과 박수미가 설계하고 감독했다. 토목 공사 일정이 늦어지며 식재 공사 물량의 80%를 식재 부적기인 혹서기(6~7월)에 시공하게 되었는데, 여러 노력을 기울여 하자 발생률을 최소화한 과정을 담은 기사다.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생육 기반 조성 공종을 조경 공사 설계 단계부터 적극 반영해야 한다. 둘째, 조경용 보조 약품의 국산화 및 사용 기준의 명확한 설정이 필요하다. 셋째, 수목의 대형 용기(컨테이너) 재배가 정착되어야 한다. 넷째, 식재 공사에 유지·관리비를 적극 반영해 철저한 사후 관리를 꾀한다. 다섯째, 부적기 시공의 경우, 적기 시공과 시공 단가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현장감독 박수미와 함께 확장 구간을 감독한 이흡 과장(한국도로공사 경북지역본부 조경과)은 “조경 관리는 사후 관리만이 아닌 공사의 시작 단계부터 고려되어야 하며 공사의 엄연한 과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운암지 수변공원 1999년 10월호 대구시 북구 구암동 349에 위치한 공원으로, 박찬용 교수(영남대학교 조경학과)와 디멘션 조경설계사무소가 설계했다. 당시 대구의 여러 저수지는 도시개발로 인한 농지 감소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대상지 역시 농지가 택지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매립될 저수지였으나, 조경가의 강력한 권유와 지자체의 적극적 지원으로 수변공원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완성된 공원에 많은 시민이 찾아와 대구 경실련이 실시하는 도시환경문화상에서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설계 주안점은 자연성과 현대적 감각의 조화였다. 기존 저수지 보존을 원칙으로 하되, 저수지 동쪽 일부 밭으로 이용되고 있는 평지를 집약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동쪽에 전망데크, 계류, 놀이 시설, 체력 단련 시설을 설치했다. 전망데크 주변에 무대 개념을 도입해 친수 공간의 이용성을 함께 도모했다. 반면 자연학습장으로의 기능을 위해 수변에는 목재 데크를 조성해 저수지와 사람의 관계를 더욱 밀착시켰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1단계 완공 1999년 10월호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의 1단계 구역이 완성됐다. 대구시는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인 대구에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고자 49억 원의 예산을 들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계획했다. 1만3천여 평 중 1단계 구역에 해당하는 2천 7백여 평에 종각과 광장, 진입로, 조형 분수, 산책로 등이 조성됐다. 광장에는 달구벌대종이 설치된 종각이 들어섰는데, 종각 후면부에 조성될 잔디밭과 함께 대규모의 행사장으로 쓰이도록 계획했다. 광장의 바닥 포장에는 종의 울림을 상징하는 곡선을 반영했다. 진입부에서 시작하는 산책로에는 단풍나무를 열식하고, 그 아래 아이비와 옥잠화, 맥문동, 원추리를 군식해 숲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원의 일부를 완성해 개장했음에도 하루 1천여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정도로 호응이 좋았고, 특히 동성로와 가까워 젊은 층의 유입이 활발했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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