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환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조경분야 전환의 마디 시간: 3월 3일 조경의 날 성찰이 필요하다
주지하고 있듯이, 내년이면 한국 조경 50년, IFLA 세계총회 개최 30년, 미국 조경의 아버지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 등 굵직한 기념행사가 한국에서 거행된다. 이런 각별한 시간의 마디가 되는 해는 특별한 기회의 시간으로 자리매김 된다. 현재를 기점으로 과거를 성찰해서 미래를 향한 비전의 돛을 올려 나가는 것은 보편적 문명 진보의 길이기 때문이다.
위기는 언제나 있었고 그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낸다. 2003년부터 선정된 조경의 날이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쳐 2014년 1월에 공원법 제정일(1967년 3월 3일)을 기준으로 조경의 날을 3월 3일로 개정한 배경에는 ‘조경의 정체성 및 지위 강화’, ‘범 조경인의 참여 유도’, ‘시민과의 공감대 형성’ 등 3가지 사항의 개선 목적이 있었다고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환의 마디 시간에 과연 현행 3월 3일의 조경의 날이 그런 목적을 제대로 성취할 수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는, 영원불변해야 할 유일한 날인지? 더하여 오늘날 조경 분야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도전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 전략적 날로서 적합한 날인지? 그래서 2022년 새롭게 전개되어 나갈 반백 년 조경 분야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별의 날(The Day of Star)인지 등 관점에서 깊은 성찰 또한 필요하다. 성찰 없이 똑같이 지나온 방법을 그대로 택하면 도달하는 곳은 과거의 그곳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조경의 날’ 선정 시 회의록 이야기: 눈여겨볼 필요 있다
조경의 날 선정 시 환경조경발전재단에 남겨진 회의록을 보면 위 3가지 개정 목표 관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다. 특히 조경의 날에 대한 3가지 대안 ― ▲1967년 3월 3일 공원법 제정일 ▲1972년 4월 18일 청와대 조경에 관한 세미나일 ▲5월 10일 조경담당비서관 직제 설치― 중 3월 3일을 선정하는 것에 대한 한국조경학회(이하 조경학회)의 공식 반대 의견을 제출한 것은 다의적 의미를 지닌다.(그림1 참조)
우선 개학일 바로 다음이라 대학에서 참여하기엔 어려운 날짜라는 것이 첫째 이유였다. 즉 ‘범조경인이 참여’할 수 있는 날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학계가 참여할 수 없는 반쪽짜리 기념일이 될 우려를 에둘러 표현하였고, 실제로 지금까지 대학생 및 교수들의 대학 참여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둘째가 3월 3일은 계절적으로 아직 추위가 있는 시기이므로 조경 분야의 특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따뜻한 4월이 적절한 달이 될 것이란 의견을 제시하였고, 심지어 3월 3일의 날에 대해 조경의 날 개정을 주도한 발전재단 이사장·조경학회장까지도 개인적으로 ‘범조경인의 참여’, ‘시민의 공감대 형성’ 등 관점에서 우려의 의견을 보이고 있다.(그림2 참조)
이러한 조경학회의 의견은 꽃피고 녹음 짙어지는 등 ‘조경분야의 정체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기도 하다. 특히 이 계절에 대한 의견은 시민의 참여와 협력 등 ‘시민과의 공감대 형성’과도 연관되어 있어 주목받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조경학회의 이런 반대 의견이 부적절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적절했는지 범조경인들이 한 번 성찰해 볼 필요가 있고, 실제로 오늘날의 범조경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려하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다음 ‘조경학회’와 또 다른 한 축이었던 그 당시 한국조경사회(현 한국조경협회)의 공식 의견(그림2 참조) 역시 ‘3월 3일의 공원법 제정일’보다는 1405년의 ‘창덕궁 창건’과 관련하여 10월 19일 또는 10월 25일로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것 또한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조경학회’ 및 ‘조경협회’ 등 2개 단체 임원 8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응답자 183명, 회수율 21%)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조경협회’ 역시 ‘조경학회’처럼 3월 3일 조경의 날 지정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경협회’는 창덕궁의 후원 조성 일을 공식 의견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1967년 3월 3일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조경의 정체성과 연계성이 낮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공원법 제정일’인 3월 3일에 안압지 조성일(음력 3월 3일)의 의미를 추가하자고 제안하고 있다.(그림4 참조) 하지만 창덕궁이나 안압지의 창건 날짜는 모두 음력이므로 양력화 하면 조경의 날 3월 3일과 일치될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경학회’와 ‘조경협회’의 공식적인 의견 외에도 1967년 3월 3일에 대해 토론 과정에서도 특히, ‘조경의 정체성’, ‘여론 조사의 신뢰성’ 맥락에서 반대 의견(그림 5 참조)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 또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위원이 제시하고 있는 20% 투표율 지적은 발전재단 산하 6개 단체 중 2개 단체의 임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등 범조경인의 의견을 묻지 못했다는 한계점이 있다. 특히 통계학적 관점에서 설문문항 설정, 설문분석 등에서 신뢰성과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필자도 e-환경과조경 5월 10일자 특별기고문 <2022년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마주친 ‘조경의 날’>에서도 설명한 바 있다.
설문조사를 통해 의견 수렴까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조경학회’나 ‘조경협회’ 등 조경계의 영향력 있는 두 개 단체와 개인 위원들의 의견이 조금씩 상이하다. 또한 ‘조경의 정체성’, ‘범조경인의 참여’, ‘시민과의 공감대 형성’ 등 모든 면에서 문제점이 지적되며 공식 반대의견이 제시됐는데도 불구하고 1967년의 3월 3일을 조경의 날로 선정했을까? 아니, 어떻게 선정될 수 있었을까? 미스터리 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과거의 일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찰해 보고 새로운 길이 있다면 찾아보자는 것이다. 과연 이런 문제점을 지니고 출발한 3월 3일 조경의 날이 현재 어떤 지점에 이르고 있는지? 범조경인들이 조경의 긍지를 느끼고 참여하고 기념하는 날로서 기능하고 있는지? 시민들과 공감하고 협력하는 날로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추고 날인지? 그래서 반백 년을 맞는 한국 조경 앞날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날인지?
기념일은 어떻게 선정되는가?: 두 개의 길과 동시대 ‘제3의 길’
첫 번째 길은 명확한 역사적 사실로 선긋기가 어려울 경우에 택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도시, 건축 학회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성’을 축성한 날, ‘경복궁을 축조한 날’ 등을 기준으로 하여 ‘10월 10일’, ‘9월 25일’ 등으로 선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선정은 일반적으로 도시, 건축 등의 역사적 시작의 사건이 뚜렷하게 정의할 수 없을 경우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럴 경우, 가급적 역사적 관련 사건 중에서 ‘스스로 지위를 높일 수 있도록 상징성이 강한 사건’을 선정하여 연도는 버리고 날짜만 인용하여 그 날을 기념일로 선정한다. 현재 ‘조경의 날’은 이 길을 채택하여 선정되었다. 그렇다면 ‘조경의 날’은 한국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의 시작과 관련하여 뚜렷한 역사적 사건이 없다는 전제를 가지게 된다.
두 번째 길은 역사적 사실(fact) 중심의 선정 기준이다. 우린 6.25전쟁이 끝나고 나서부터 1950년 6월 25일을 기준으로 매년 6월 25일을 기념하고 있다. 올해는 ‘71주년 6.25’를 기념한다고 한다. 미국은 1776년 7월 4일을 기준으로 매년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는 245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이한다. 이날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날이다. 이처럼 특정의 역사적 사건이 사실(fact)대로 명시될 수 있을 경우에는 횟수와 해당 날짜를 사용하여 ‘71주년 6.25의 날’, ‘245주년 독립기념일’ 등처럼 기념한다. 이것은 역사적 사건이 사실적으로 일어난 연도와 날을 동시에 상징하는 기념일이 된다. 형식과 내용, 바깥과 안쪽이 일치가 되는 방법이다.
반면 ‘제3의 길’이 있다. 수년 전부터 미국조경가협회(ASLA)와 세계조경연합회(IFLA)를 중심으로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4월의 조경의 달’을 만들어 ‘날(Day)’이 아닌 ‘달(Month)’을 선정하여 기념하는 방법이다. 조경 분야 특유의 혁신적, 전략적 분야 발전 비전을 담은 제3의 기념 방식이다. 꽃피고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을 선정함으로써 조경 분야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조경을 지역사회와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를 통해 시민과 공감 능력을 넓혀 더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자는 것이다. 물론 4월에는 옴스테드가 탄생한 날(4월 26일)이 포함되기도 한다.
그러면 생각해 보자. 우린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답은 조경 분야 태동의 사실적 역사를 잘 나타내고(정체성), 실질적으로 분야 육성에 도움(범조경인의 참여, 시민과의 공감대 형성)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잘 응할 수 있는 길이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이러한 길들과 관련하여 조경의 날 선정 회의에서도 논의되었듯이 당연히 근대 이전의 역사적 ‘정원’, 근대의 ‘공원’, ‘조경’ 등 3가지가 대상이 논의되었다. 그 결과, 근대의 ‘공원’과 ‘조경’등 2가지가 선정 대안으로 채택된 바 있다. 이점에 대해 이제 제대로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국 조경(K-Landscape Architecture)의 정체성: 1~3세대의 공존의 실체
■ 한국 조경의 1~3세대 존재의 시작과 역사성
우리나라 조경계에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양병이, 유병림, 황기원 등 초창기 교수들과 안동만(서울대), 이규목(서울시립대). 임승빈(서울대). 현중영(영남대). 정영선(청주대), 김윤제(조경협회 고문), 권오준(조경협회 고문) 등 제1세대 교수들 그리고 김민수(대구가톨릭대), 박승범(동아대), 양홍모(전남대), 오구균(전남대), 윤근영(신구대), 이규석(성균관대) 교수 등을 필두로 전국의 50여 대학과 대학원의 조경학과에 계신 선생님들로부터 배출된 2대, 3대 조경인들이 지금까지 조경 분야를 이끌어 왔고 또 가고 있다.
학계든, 업계든 3대에 걸친 조경인들의 출발은 1972년 12월 19일(서울대학교, 영남대학교 조경학과 교육부 설립 인가일)과 1973년 1월 25일(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설립 인가)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인가를 기반으로 1973년의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개원과 학부에 조경학과 개설이 없었다면, 이어진 1974년의 청주대 조경학과 개설부터 2021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경 3세대가 이어오고 공존하는 시간이 올 수 있었을까?
뿐만이 아니다. 1974년부터 2015년의 조경진흥법 제정까지 기술자격면허·조경건설업면허 도입, 한국종합조경공사의 창립 등을 비롯 조경 산업·행정·직제·단체·법 등 전반에 걸쳐 줄지어 만들어지고, 개정되며, 제정되는 등 조경 분야 발전의 과정을 이어갔다(『한국 현대조경 태동의 역사』(조세환, 기문당, 2018) 참조). 인간도, 문명도 생일의 의미는 시작의 의미와 더불어 유전을 통해 후손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적응하고 진화해 나간다.
이 모든 것의 발생은 다시 1972년 5월 10일의 청와대 조경담당비서관 직제로 되먹임 된다. 만약 청와대 조경담당비서관 직제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학부 등 조경학과의 개설이 가능했겠는가? 또 이어서 조경학회의 창립이 가능했겠는가?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 조경계의 1~3세대가 1967년의 공원법 제정에서 출발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면 다소 무리가 있다고 사료된다. 참고로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50년 기념집’에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설립과 관련 청와대 조경담당비서관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도 40주년 기념집에 이 내용을 담고 있다.
■ 청와대 조경에 관한 세미나와 조경담당비서관제 도입의 정체성
1972년 5월 10일은 다시 4월 18일의 ‘청와대 조경에 관한 세미나’로 되먹임 된다. 조경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국가정책으로 도입하고 청와대 내 조경직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조경이 뭔지? 현재 국내 상황은 어떤지? 뭐가 문제인지?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지? 등 조경 정책의 방향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관련하여 이 세미나에는 청와대 제1경제수석(정소영), 건설부 장관(주원)이 참석하고 이종필(영남대 원예과 교수), 민경현(산림청 조림과장), 장문기(홍익대 이공대 강사), 박병주(홍익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홍영표(농촌진흥청 화훼연구관) 등 6명이 발표를 했다.
이어서 손정목(서울시 기회관리관), 이문용(건설부 국토계획국 국장), 김광래(경희대 산업대 교수), 곽병하(고려대 농대 교수), 임경빈(서울대 농과대학 임학과 교수), 윤국병(고려대 농대 교수), 권상수(동아대 농과대 부교수), 황수영(국립박물관장), 강병기(한양대 공과대학 교수), 황용주(건설부 지역계획과장), 유달영(서울대 농과대학 교수) 등 도시계획, 임학, 원예, 지역개발, 미학, 문화재 등 각 분야 전문가와 학·관계(대학, 중앙·지방정부 관련 기관 등)에서 온 11명의 전문가가 토론하였다.(『한국조경의 도입과 발전 그리고 비전-한국조경백서 1972-2008』, 환경조경발전재단, 2008 pp.330~336.)
일부 학자는 “1972년의 4월 18일의 조경에 관한 세미나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실 내부의 회의 자료로 정책의 공포나 선언 같은 가시적 결과가 없다”, 또 5월 10일의 “청와대 조경담당비서관이 해당 직책이 현재까지 지속성이 없어 상징성이 약하다”는 견해로 4월 18일과 5월 10일을 기념일로 삼을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이는 <그림1>의 회의록에서 ‘조경학회’가 4월 18일과 5월 10일에 대해 ‘의미부여’의 문제가 있다고 의견을 제시한 것과도 상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다.
참고로 청와대 직제는 정부에 따라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사항임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에서는 조경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지만 ‘국토비서관’이 조경 분야를 담당하는 직제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1972년 4월 18일에 한국 최초로 청와대 신관회의실에서 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 건설부 장관, 그 당시 조경 관련 다수 분야에서 최고의 각 분야·교수 전문가의 발표와 토론, 공원, 경관, 환경, 도로, 문화재 등에 걸친 광폭에 걸친 조경의 정의, 국토, 도시, 농촌 등 공간을 대상으로 한 조경 영역, 향후 정책 방향 등에 대해 토의한 세미나, 또 그것을 시작으로 대학·대학원 교육, 산업, 직제, 법 등의 제정 전통으로 현재까지 전개되어 온 한국 현대조경의 역사 시작의 날을 결코 조경의 날로서 상징성이 약하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세미나 개최 일을 기준으로 기념일을 선정한 사례도 있음에 비추어 볼 때 특정 세미나 개최 일이 특정 기념일 선정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법은 없다. 비근한 예가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분야에서 경관(Landscape)이 빠져나가 한국경관학회·한국도시설계학회·한국공공디자인학회 등 3개 학회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국토경관의 날’을 들 수 있다. ‘국토경관의 날’은 개정 경관법에 관한 세미나 개최 일을 기준으로 선정한 기념일(표1 참조)이다. 그렇다면 이 ‘개정 경관법 세미나’가 기념일 선정의 기준이 되었듯이, 1972년의 4.18일의 청와대 세미나가 조경의 날 선정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조경의 날’을 넘어 4월 한 달을 ‘조경의 달’로 혁신: 한국 조경의 새로운 50년을 향한 비전 관점
역사적으로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우연과 필연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서 발생한다. 현행 3월 3일의 조경의 날 선정도 그 이전에 여러 차례 조경의 날이 개정되어 온 상태에서 더 큰 조경 발전을 위해 ‘조경의 정체성과 지위의 강화‘, ’범조경인의 참여 강화‘, ’시민과의 공감대 형성 강화‘ 등을 목적으로 일련의 개정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것은 특정 분야 발전의 필연적 과정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우리 조경은 어렵고도 힘든 새로운 가속적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기후변화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응, 사회적 공동체 회복, 주거복지 등의 새로운 과제 대두와 함께 과학과 기술(4차 산업사회), 생태, 미학, 인문학과 사회 분야를 관통하는 새로운 ‘조경문화 창출’의 성공 여부가 조경분야의 먹거리와 일자리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젊은 조경가들이 조경학·산업계를 떠나고 있다.
기후변화·미세먼지·도시숲 등 관련하여 도시에 국한되어 있는 우리의 공원·녹지 영역은 외려 지자체의 조직·재정 축소로 후진하고 있다. 또 다시 조경 산업계는 더 가혹한 새로운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해 있다. 이제 조경 분야는 도시의 공원을 넘어 다차원적 개념으로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아가야 할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다.
새로운 조경문화 창출만이 앞으로 살길이다. 새로운 조경문화는 단순한 공원·녹지의 정체성을 넘어 앞서 언급한 다양한 분야와 영역에서 학·산·관계와 시민들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이뤄나가야 할 엄중한 과제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우리는 범조경인들이 스스로 강한 자부심의 정체성을 지니고 상호 소통과 참여를 통해 사회를 이끌어 간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자의식을 갖추고, 심기일전하여 시민들과 더 공감하고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할 기회의 시간이 바로 오늘이다.
더구나 세계의 조경은 수년 전부터 바야흐로 ASLA, IFLA를 중심으로 따뜻한 4월 한 달을 ‘조경의 달’로 선정하여 혁신과 쇄신 맥락에서 글로벌하게 정부, 지자체, 시민사회와 소통·협력하여 조경의 위상과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한 조경 세계의 변화에 우리 한국 조경도 동참하여 세계와 어깨를 마주한다면 우리에겐 더 유리한 새로운 비전과 기회로 다가올 수도 있다.
계절상 아직도 꽃샘추위가 남아 있는 3월 3일의 ‘조경의 날’이 함축하고 있는 근원적 한계를 넘어, 꽃피고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4월의 한 달을 ‘한국 조경의 달’로 개정하면 ASLA, IFLA와 함께하여 시너지 효과를 높임으로써 중앙정부·지자체·기관·시민과 소통·공감·협력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만드는 촉매가 되고 지속가능한 메커니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조경의 날은 따뜻한 4월의 마지막 주 어느 날을 지정하여 기념행사를 한다면 4월 18일, 5월 10일 등 특정한 날에 대한 구애됨 없이 학·산·관계 등에 종사하는 범조경인의 참여가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조경의 날’ 개정 논의 과정에서 혹 필자의 글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개연성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서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마음을 드린다. 필자의 성정을 잘 알고 있는 분이라면, 결코 후배 단체장들의 권위를 훼손하거나 어떤 사적인 의도를 가지고 후임 단체장이 추진한 정책을 뒤집거나 하는 등 불순한 생각은 추호도 갖지 않고 있음을 이해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조세환 / 환경조경발전재단 고문, 한국조경학회 고문, 한국조경협회 고문,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