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name
  • name
  • '`"(
  • ƒ'(
  • -0
  • s3
  • '+'
  • '
  • '||'
  • '
  • '`"(
  • ƒ'(
  • -0
  • s3
  • '+'
  • '
  • '||'
  • '

오피니언

뉴스 상세검색
뉴스 상세검색 닫기
카테고리
기간
~
검색어
  • [기고] 시급한 조경의 전문성 “조경유지관리”
    우리 도시의 옥외공간은 이제 수십 년 자란 수목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부는 여름 한낮인데도 가로등 불빛이 필요할 정도로 빽빽한 수관에 시원함과 상쾌함을 자랑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가로를 정원으로 삼아 보기 좋은 조경공간들이 민간의 손길로 가득 채워진 거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미 한국 조경은 그 만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전문업으로 새로운 지평을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 7월 24일 이와 관련한 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다. 업계의 현황을 반영하듯 부실한 홍보에도 많은 청중이 참여하여 열띤 관심과 의견을 교류한 자리였다. 개인적 소회보다도 행사 이후의 관심과 격려에 한국 조경의 현실이 여전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것은 도시의 조경은 변화를 요청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응하는 업무 환경(전문업)은 고루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조경유지관리에 대한 제도 개선을 모색했던 계기였던 만큼 여기에 집중해 보자면, 건설의 한 종류로 한정된 채 사회적 서비스로 지속되기에는 새로운 활동 반경이 시급하게 필요한 시기라는 진단으로 요약된다. 개선의 방향이야 다방면으로 많은 논의와 소통이 기본일 터, 관심과 담론이 이어지길 기대하며 여기에서는 그 동안 제쳐두었던 기본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 도시의 조경공간과 조경관리 90년대 이후 현대 조경이 장소의 재활용과 단계적 성장 전략을 보편화하며 신규 조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동안 기존 조경공간은 도시에 누적되며 스스로 성장하고 지속해왔다. 가히 제3의 자연으로 진화하며 이제는 도시인지 자연인지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그런 세월은 새로 만들고 채우는데 급급한 조경에 마치 되돌아보며 걸어온 길을 살펴달라는 듯 관심과 관리를 요청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 조경이 지금여기의 위상을 점검할 때 필수적인 새로운 위치이자 또 하나의 지평이다. 도시재생이라는 큰 흐름에 가려 경제적, 사회적 지속성이 도시의 중요한 활성화 주제로 부각되었다지만, 낡은 아파트 단지에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들은 재생의 대상으로 우선시되지 못하는 현실이 단적이다. 민간 영역이라 치부하기에는 그 역할이 달라져 이제는 생활인프라로서 이런 수목들은 도시적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지만 관리 사무에 있어 골칫거리 취급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개발의 저해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 한편에서 미세먼지 등으로 공동의 관심사이자 문제가 된 기후변화의 해결사로 조경공간이 주목받는 추세임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새로 만들어 채울 공간과 그에 따르는 예산은 부족하고 제대로 눈길 주지 못해 제멋대로인 나무들 사이에서 조경유지관리의 필요성이 아이러니하게 부각되고 있는 셈이다. 살펴보면 해방 이후 우리 국토의 대부분에는 넉넉한 조경공간들이 산재하며 채워져 왔고 조경공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녹지공간과 조경시설이 도시의 활력 그 자체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수령이 제법 되어 크기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나무들이 어렵지 않게 가득하다. 오래된 조경공간을 건물과 경쟁하며 커버린 나무들이 제 역할 다할 수 있도록 살펴봐 달라는 시기가 된 것이다. 커지는 재해 위험과 안전 요청, 재건축과 재개발 등은 대형목들에게는 생사여탈을 조경에 묻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현대 조경에 처음 있는 상황이다. 조경관리인가? 조경유지관리인가? 그에 비해 조경공간에 대한 ‘조경의 관리’는 모호한 편이다. 생태복원, 산림경관, 자연환경, 녹색인프라 등 새로운 조경공간의 조성에 제법 기술을 축적하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지난 세월 동안 조경관리는 그 기술이나 체계를 고도화(체계화)하지 못한 채 여전히 미약한 경험지식에 의존하고 있다. 단적으로 고품격의 조경수목관리는 소수의 최고 전문가들만이 활동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관련 교과서의 부실함은 인적 자원 또는 경험지식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카더라식 조경유지관리는 차치하더라도 신규 조경시공에 적용되는 방법을 그대로 여기저기 활용하는 것은 지금의 조경공간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다변화된 조경시설물로 인해 다양한 재료가 활용된 조경공간들은 제대로 된 유지관리가 흔치 않아 흉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목재를 활용한 시설물은 미관뿐만 아니라 안전에도 심각한 우려를 주는 경우가 많다. 관성처럼 신규로 누적되는 조경공간이 고도화되고 보편화된 결과일 것이나, 그 관리가 어떠한지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식재든 시설물이든 ‘조경의 관리’ 문제가 이뿐만이 아님은 조경가라면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은 조경관리와 조경유지관리의 모호함에서 그 첫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개념의 부정확과 혼란이 가져오는 결과들은 단순히 이해와 오해라는 인식의 간극을 뛰어넘는다. 한국 조경은 아직 이러한 이해와 오해의 간극에 천착해보지 못하였다. 단언하듯 말할 수 있는 것은 새로 채워 만드는데 치중해온 세월과 거기에 최적화된 업계의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논의가 필요하다. 7월의 심포지엄은 그런 문제의식의 표출이기도 했다. 조경유지관리는 어떻게? 먼저 중요한 것은 이것이 처음 맞는 상황이고 예상되었던 새로운 지평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무엇에서부터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해야 하는지는 적절한 질문에서 시작한 적합한 해답에서 이끌어낼 수 있다. 자료를 보니 벌써 10여 년도 전에 이러한 논의는 수차례 있었다. 몇 가지 답안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좀 더 근원적 해답이라기보다는 닥친 현실에 시급히 대응하기 위한 임시적 해법이라는 인상이다. 각론이 우선이었고 개론이 두루뭉술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잊듯 서론이나 문제의식은 단순히 형식적 도입부가 아니며 전체를 경계 짓고 방향을 지시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가지는데, 수십 년의 학생 시절을 거친 대부분의 우리는 교과서의 앞부분에 그리 집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또는 당연히 잘 안다는 착각을 가지기도 한다. 심포지엄은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 본성에서 시작하는 접근이 필요한데 몇 가지를 화두로 제시한 바 있다. 우리는 조경(造景)을 행위 개념으로 이해하고 정의하지만 그 결과물은 다양하고 그 경계도 불명확하다. 조경의 결과물이 하나로 지칭되거나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동안은 문제가 아니었을지라도 이제는 사용되는 어휘와 빈도, 관련된 개념이 일반어(보통명사)처럼 통용되고 있어 그 전문성이 희석되어 가는 양상이다. 그 대표격이 “조경공간”이라는 전문어이다. 조경설계기준이나 조경공사표준시방서에 흔하게 사용되고 또한 NCS와 같은 표준 교재에서도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말이지만 전문어로서의 정의나 개념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다시 말해 조경의 관리, 조경유지관리를 위한 대상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것이 지금까지의 조경관리와 조경유지관리를 어렵게 실행해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된다.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조경을 고전적으로 폭넓게 광의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라면 더욱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문제의 원인 하나로는 충분히 곱씹어볼만 하고 이 글에서도 여러 어휘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눈치 챈 조경가가 많다면 조경유지관리의 ‘어떻게’가 충분히 조경의 새로운 지평이 될 수 있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조경이 관리의 시대로 넘어왔다는 지적은 이미 이십여 년 전부터 들려왔다. 그 사이 조경은 어떤 변화와 대응을 해왔는지 따져 묻고 되돌아보자는 것이 아니다. 현장과 현실은 언제나 생각과는 달랐고 조경은 그 특성상 눈앞의 문제에 우선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눈앞에 이제 답을 요청하는 새로운 역할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말뿐인 것이 아니라 현실이다. 새로운 조경의 지평이기도 하다. 조경유지관리는 즉 시급히 필요한 현대 조경의 현실이다. ‘아파트 조경’에서는 이미 그 전문성 미지원으로 인한 문제들이 가시화하고 확대되고 있다. 조경의 전문성이 이러한 현장에 하루 빨리 제대로 역할 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못함으로서 나타나는 문제는 단지 관리되지 못하는 대형목, 조경시설물 등의 문제를 벗어나고, 조경유지관리의 기술과 품질 문제를 벗어나, 조경의 전문성에까지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물론 지식을 체계화하는 것은 최우선의 과제일 터. 그리고 조심스럽게 우리는 조경관리업의 설정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조경의 새로운 공공성은 숨어 있는 고수들의 지식과 지혜에 기반해야 한다. 조경유지관리는 지난 시절처럼 지식을 수입하여 활용하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재적 경험지식에 권위를 부여하고 현대화 된 기술체계로 그것을 해석,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시간이 녹아야 스며나는 현장지식은 조경유지관리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이미 세월은 충분히 흘렀고 우리 현실에 적합한 경험도 충분하다. 현대 조경은 그 공과를 부여안고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야 한다. 안명준 조경평론가
    • 안명준 조경평론가eirene95@naver.com
    • 2019-09-06
  • [유청오의 핀테스트]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올해는 비가 풍년이다. 해가 다르게 날이 다르니 가늠이 잘되지 않는다. 패턴을 파악할만하면 변수가 생겨 촬영 일정을 몇 번 망치고 나니 비가 원망스럽다. 감히 안다고 말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가을에 맞춰 감상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취미 하면서 일하고 좋구먼" 집중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누군가 다가와 처음 내뱉는 말에 무장해제 되어버린다는 것은 어떻게 반응할지도 생각하기도 전에 눈만 껌뻑이는 바보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그 경험은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어떤 감정이다. 마무리가 다 되어가는 현장을 다니다 보면 일꾼들은 한창때보다는 걸음이 길다. 긴 걸음 사이 그들은 하릴없이 주렁주렁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신기한 누군가에게 거침없이 한마디씩 던질 뿐이다. 대답할 쯤 그는 이미 멀리 가버렸다. 처음에는 대답을 듣고 싶어 저런 것인지 아니면 혼잣말에 과민반응한 것인지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해보면 그저 안 보이던 누군가의 행색이 신기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각양각색의 현장 사람들을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닌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게 되는 일종의 각성 시야를 갖게 될 때가 있다. 그들은 짧게는 며칠에서 몇 년에 걸쳐 한 곳에 있었고 심지어 그곳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아왔을 것이다. 단 며칠로 그들보다 그곳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록으로서 사진의 한계가 실제 경험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죽은 나무 찍으러 왔어요? 아니면 뭐를 찍으러 왔데?" 준공이 끝난 현장에서의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공간을 단순히 점유하기보다 이용하면서 겪는 누군가의 경험을 듣는 것은 하자에서 시작해 하자로 끝날 때도 있다. 물론 호평 일색의 설명도 있다. 공간의 소유와 소비 혹은 점유하는 누군가의 관점은 감상을 넘어 보고 싶지 않은 것과 그러한 것으로 나뉘기도 한다. ‘저 나무’ 때문에 ‘이 사진’이 싫은 경우도 있다. 이미 사진 미학은 저 너머에 있다. 그들보다 그곳을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떤 대답을 위해 허공에 사진기를 위치하고 있어야 할까. 한 장의 사진은 누군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때로는 기술적 필요에 의해서, 때로는 아름다움을 위해 대답해야 한다. 어떤 사진은 모든 사람을 위해, 어떤 사진은 일부에 의해 만들어진다. 수많은 변수 틈에서 한 장의 사진은 기록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록은 수많은 사건의 바탕이 될 상상을 해본다. 무한한 바탕이 되어 사진은 무한한 사건들을 품는다. 이쯤에서 사진은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조경을 품은 사진에 대해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일어났고 일어날 수많은 일들을 감히 안다고 하지 않겠다. 다만 짐작하며 담아낼 뿐이다.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자리를 담아내는 것, 그것이 조경사진의 역할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한낱 기억의 파편이 될지라도 말이다. 유청오 / 조경사진가
    • 유청오 조경사진가soulguitar@naver.com
    • 2019-09-05
  • [놀이터 톺아보기, 톺아짓기] 놀이터 만들기 ⑥ _ 어린이 참여디자인(2)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오픈 자문회의 이후, 어린이 참여에 대한 의심은 옆으로 밀쳐놓고 경험과 함께 축적된 편견은 의심하면서 어린이 참여에 접근하고 있다. 운이 좋게도 시간을 가지고 어린이 참여디자인을 차근차근 진행해볼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갖게 되었다. 경험을 되새김질하며 매회 워크숍 계획을 신중하게 짰고, 워크숍이 끝난 후에는 계획한 대로 워크숍이 진행됐는지, 기대했던 결과물을 얻었는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토론했다. 또 2018년 가을부터 2019년 봄 사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으로 ‘아동참여 놀이터조성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면서는 많은 관련 연구도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나나 조경작업소 울 구성원들은 편견을 갖게 된 원인을 파악했고 이는 우리의 노하우가 되었다. ‘연령별로 참여 방식이 달라야 한다. 참여의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아이들은 철사 사용을 힘들어 하고 사용 자체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유독 좋아하는 점토는 어느 회사의 00점토이다. 워크숍 진행시 각 팀은 4~5명을 넘지 않는 게 좋다. 각 테이블마다 보조 진행자가 있어야 한다. 보조 진행자는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크루아상은 부스러지기 쉬워 간식으로 좋지 않다. 유제품을 못 먹는 어린이들을 미리 확인하고 간식을 준비해야 한다’ 등등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중 세 가지 노하우를 공유하려 한다.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언젠가 한 어린이 관련 시민단체에서 어떻게 어린이 감리단을 운영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문을 구하는 연락을 해왔다. 감리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작업인데 어떻게 어린이들이 할 수 있냐고 역으로 질문했더니 난감해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하고 있어 별 의심 없이 자신들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감리’라는 단어를 사전 그대로 적용하기 보다는 ‘어린이들이 공사 과정에 참여한다’라는 의미로 보고 어린이들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공사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두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어린이들과 공사의 과정을 공유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이들의 시선에서 위험요소(hazard)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 속에서 세 번의 워크숍을 기획할 수 있다. 공사 시작 시점에서는 어린이들한테 도면이나 조감도 상의 공간이 어떻게 대상지에 구현되는지를 설명해주면서 디자인의 추상성을 구체화시켜주는 것이다. 공사 중간 단계에서는 현재 어떤 공정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 공정에서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공사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어린이들과 현장을 돌며 위험요소와 불편 요소를 어린이들의 시선에서 점검하는 것이다. “점진적 의사 결정을 원칙으로 두고 과정을 디자인해야 한다”만약 어린이들과 총 다섯 번의 워크숍을 한다고 했을 때, 첫날 만나자마자 어린이들한테 “여러분들이 원하는 놀이터가 무엇이에요?”라고 물으면 테마파크에서나 볼 법한 시설물을 그려놓기 쉽다. 말만으로는 우리가 다루어야할 대상지가 동네 놀이터임을 인식시키기가 쉽지 않다. 반면 먼저 동네 놀이터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원하는 놀이터를 그리게 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동네 놀이터를 대상으로 생각을 펼친다. 이렇게 실행 속에서 어린이들이 프로젝트의 맥락에 들어오고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과정을 디자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문제 인식의 공유, 방향성 설정, 디자인 발전이라는 디자인의 점진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아무리 열심히 과정을 디자인해도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과감하게 순서를 바꿔야 할 때도 있다. 즉 순환적인 과정이어야 한다. “연령별로 어린이 참여의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 어린이 참여디자인 과정을 디자인하고 워크숍 기법을 선정할 때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한다. 대상지가 어린이집 앞마당인지, 학교 운동장인지 아니면 어린이공원인지도 하나의 변수이고 몇 회의 워크숍이 가능한지도 염두에 둔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는 연령이다. 일례로 조경작업소 울은 디자이너와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디자인 워크숍은 보통 초등학교 4, 5학년과 함께 한다. 저학년과는 상호소통을 통한 디자인 발전이 쉽지 않고 6학년은 이미 놀이터에 대한 관심이 줄어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편견인지 아니면 일반화할 수 있는 경험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문헌을 찾아보니 이미 여러 연구자들이 연령별로 참여 기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린이 참여 연구의 권위자인 Hart(1997)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다.“7~10세의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점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또 10세 이상이 되면 다른 사람들의 다양하고 엇갈린 감정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10~12세의 아동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을 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인식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러므로 보다 높은 수준의 참여가 가능하다.” 어린이 참여는 쉽지 않다. 할수록 어렵다.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반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의 어린이들은 색종이를 잘 사용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거나, 어떤 질문이 어디에서는 효과적으로 전달되는데 또 어디에서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 세운 가이드라인과 원칙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지속적이고 반성적으로 경험을 축적하는 게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최선일 것이다. 물론 각자가 자신이 축적한 경험을 공유하고 논하는 자리도 필요하다. 첫날 만나자마자 어린이들한테 “여러분들이 원하는 놀이터가 무엇이에요?”라고 물으면 테마파크에서나 볼 법한 시설물을 그려놓는다.먼저 동네 놀이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원하는 놀이터를 그리게 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동네 놀이터를 대상으로 생각을 펼친다. 어린이 참여디자인은 어린이들이 프로젝트의 맥락에 먼저 들어오고 점차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과정을 디자인해야 한다. ‘아동참여 놀이터 디자인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분은 조경작업소 울(wullandscape@naver.com)로 문의하면 된다. 김연금 / 조경작업소 울 소장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geumii@empas.com
    • 2019-09-03
  • [미래포럼] 도시공원 패러다임 전환: 조성 시대의 폐막과 이용 시대의 서막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우리 사회는 전후 세대의 폭발적 인구 성장시대를 지나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1960년 2500만 명이던 인구는 2012년 5000만 명으로 증가하여 불과 50년 만에 2배로 성장했다. 그리고 2031년 5300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접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인구성장에 맞춰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택지개발촉진법이 1980년 제정되었다. 이 법은 도시지역의 시급한 주택난 해소를 위하여 주택건설에 필요한 택지의 취득·개발·공급 및 관리 등에 관한 특례를 규정하였다. 1989년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등 5개의 1기 신도시 건설계획으로 1992년 117만명이 거주하는 대단위 주거타운이 탄생했다. 2003년에는 경기 김포(한강), 화성 동탄1·2 등 수도권 10개 지역을 포함한 12개 2기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2014년 국회에서 발의된 택지개발촉진법 폐지 법률안은 주택부족 문제가 크게 개선되어 법 실익이 떨어진다고 전했다. 공공택지의 안정적 공급과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향후 택지 개발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도시계획시설로서 공급되던 도시공원의 양적 성장에 기여를 해온 신도시 시대의 폐막을 의미한다. 현재 전국에 2만 1500개의 도시공원이 조성되어있다. 도시공원 문제와 시민참여 그동안 열악한 도시환경에서 공원은 양적인 확대가 가장 큰 과제였다. 도시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도시공원의 기능은 계획 목적과 다양한 활동 요구에 따라 세분화되어 왔다. 하지만 도시공원은 대부분 시설을 중심으로 설계가 이루어졌고 조성 이후 운영과 관리에 대한 고려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최일홍 박사는 2002년 ‘공원녹지 특성화를 위한 이용프로그램 개발 및 계획지침 작성 연구’에서 기존 공원의 문제점으로 설계자 위주의 계획, 법규적 디자인, 공원의 위계적 규모 및 균등적 배치기준의 문제, 과정적 가치의 부재로 인한 주민참여 미흡을 들었다. 공원은 미술관의 전시품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실제 이용하는 하나의 공공재로서 변화된 사회적 요구와 계층별 이용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요소로 구성돼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995년 지방자치시대가 개막되어 도시행정에서 시민참여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으며 일부 도시공원에서는 훌륭한 수용체 역할을 하였다. 김인호 신구대 교수는 2011년 한일 도시공원정책 세미나에서 "시민사회로의 성숙과 함께 참여민주주의로 발돋움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도시공원 정책은 환경개선을 의미하는 단선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제반 사회문제들과 연계되어 검토되어야 한다"며, "이미 선진국에서 성공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성숙한 주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시민참여형 공원관리는 선진 행정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요체"라고 강조했다. 시민참여와 도시공원의 변화 양상 도시공원은 도시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도시의 필수시설로서 점차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3만 불 소득, 주 52시간 근무, 평생교육 등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며 지역 공동체의 중심으로서 녹색복지와 일자리 창출 등에 기여해왔다. 이와 같은 도시공원의 역할 다양화와 더불어 도시공원의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은 변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첫째, 도시공원의 설계, 조성과 이용에 시민참여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도시공원 조성 단계별로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둘째, 참여 프로그램 중심의 공원 이용과 리모델링이 늘어나고 있다. 2013년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도시농업공원이 포함되고, 숲유치원, 자연체험 학습장 등 시민들의 활동과 참여 이용 프로그램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셋째, 공공 주도의 공원 운영에서 기업, 시민단체와의 협업과 타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운영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도시공원의 이용과 운영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 시민참여와 파트너십이 나타나고 있고 도시공원의 접근성과 지역자원에 부응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원 운영이 시도되고 있다. 다양한 시민 이용프로그램 제공 도시공원은 도심에서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시민 모두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활용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의 도시공원 이용 활성화를 위해서는 방문 동기를 높일 수 있는 이용 참여프로그램의 제공이 필요하며 다음의 4가지 프로그램의 유형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환경·생태 프로그램이다. 근린공원에서 많이 시행 중인 환경체험‧교육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환경의 의미와 가치를 경험하고 환경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학습할 수 있다. 둘째, 문화·예술 프로그램이다. 도시공원의 문화·예술 프로그램 및 시설은 지역의 문화적인 활력소가 된다. 최근에는 문화행사를 할 수 있는 주제공원을 조성하여 도시 정체성을 살리고 있다. 셋째, 건강·체육 프로그램이다. 도시에서 공원녹지는 육체적 활동공간으로서 건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치유 환경의 기반이다. 넷째, 도시농업 프로그램이다. 공원형 도시농업의 유형은 공원 내 텃밭 조성과 주제공원인 도시농업공원으로 구분된다. 도시농업공원은 농업이 중심이 되어 농업·농촌과 관련한 공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관리방식의 다각화와 사업모델의 창출 도시공원의 관리주체인 지자체는 전문 인력의 부족과 전문성 결여로 공원관리와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도시공원의 관리는 주로 공원관리청인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운영·관리하는 직영관리나 시설관리공단이나 공원관리공단 등 준정부기관을 통한 간접관리 방식을 채택해 왔다. 하지만 향후 공원관리는 정부의 팽창을 방지하고 시설투자의 비용 감소, 노무관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공원의 일부 및 전체 관리를 공기업, 민간업체, 시민단체 등에 위탁하는 민간위탁 방식으로 확대될 것이다. 특히 공기업은 특수성격의 공원을 총괄관리하고 민간업체는 단위시설 경영관리와 녹지 및 조경시설 유지관리, 시민단체는 이용자나 프로그램, 시민참여 관리 등에 참여기회가 증대되고 있다. 그동안 조경분야는 인구성장에 따른 도시의 확장과 신도시 건설시대를 지나며 공동주택 조경이나 도시공원의 계획‧설계와 시공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국토는 건설에서 관리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어 여건 변화에 따른 탄력적 대응이 필요하다. 조경계는 현실과 미래의 여건 변화를 직시하고 조성 시설의 운영·관리에 대한 관심과 역량 배양을 해야 한다. 특히 도시공원의 질적 향상을 위한 기술개발과 집중을 통해 선진 도시공원의 면모를 갖추고 조경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에서는 시민사회와의 교류와 교과목 개발을 통한 선도적 역할이 필요하며 업계는 기존 도시공원에 대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운영·관리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저성장시대에 있으며 인구 성장의 저하와 성장 동력의 부재로 새로운 가치 창출을 통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요구가 증대되고 있다. 부동산 경기의 침체, SOC 투자 감소 등 건설 산업의 저조는 해외진출이나 대북사업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하지만 현실은 요원한 상황이다. 따라서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한 외연 확장의 기초는 다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도시공원을 기반으로 한 이용프로그램을 확충하는 동시에 시설 리모델링을 병행하는 사업모델 창출이 필요하다. 안승홍 / 한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안승홍 한경대 조경학과 교수
    • 2019-08-22
  • [지금여기 공원미학] 춤추는 나무, 숨쉬는 도시 ⑤ 집들이 춤추는 선유도공원
    05. 집들이 춤추는 선유도공원 아래의 나무를 먼저 보자. 나무는 사연을 가지고 있다.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 모습만으로도 세월의 풍파가 느껴진다. 나무는 이곳에 자리 잡기 전 새로운 개발로 베어 없어질 위기에 놓인 적이 있다. 기회가 있어 이 나무만은 터의 주인공으로 남겨 달라 부탁 아닌 부탁을 했었다. 다행히 나무는 터를 바꾸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기회가 되면 이곳에 들러 그 세월의 흔적을 나무와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선유도공원은 본래 공원 전체가 이 나무와 비슷했다. 지워 없애고 진한 화장의 산뜻한 현대 도시공간으로 흔적 없이 변모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다행히 장소는 재활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처음의 낯설면서 새로웠던 ‘문화적 충격’을 소화한 듯 ‘인문학적 공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마셜 맥루한이 말했다든가 “구텐베르크가 모든 사람을 독자로 만들었듯”. 선유도공원은 드디어 우리에게 공원을 생활(lifestyle)로 선물하고 있다. 알다시피 선유도공원은 정수시설이었다. 산업시설이자 보안시설이었던 셈이다. 우리에게 예전 그곳 모습이 좋든 싫든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도시에, 저 너머 강 가운데 있지만 가볼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자 너머의 장소였던 것이다. 장소의 기억과 이미지는 그렇게 통제되기도 한다. 시설물의 특성이 그렇듯 활용이 달라지고 마침 2000년대로 들어선 시대와도 맞물려 용도를 바꾸어야 했다. ‘일방적이지 않은 의사결정(bottom-up decision making)’이 보편화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곳이 공모를 통해 ‘작품’인 설계안을 선정하여 공원으로 만들어진 배경이다. 이후 여러 상을 휩쓸다시피 하고 그 전략이 다른 공원에도 이식되며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이자 대표성(특이점)을 가지게도 된다. 선유도공원은 그렇게 탄생한 우리 역사 최초의 ‘본격 장소 재활용 공원’이다. 공원을 걷다보면 이제는 과하게 느껴질 만큼 장소의 역사와 흔적이 빼곡하게 꽉 차 있다. 시간이 흘러 새로 자리 잡은 자연물이 그 강렬함을 새로운 차원으로, 새로운 인식으로 이끌어 간다. 아류보다 진품이 깊이가 있다는 것은 공원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선유도공원은 여전히 시대적 화두처럼 문화의 한 시점(viewpoint)으로 작용하고 있다. 21세기의 5분의 1이 지나는 시점에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만큼의 ‘경험과 생활’(文化)이 쌓였다면 이제 새로운 성찰과 통찰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선유도공원이 준 문화적 충격은 어떤 의미였고 새로운 논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우리에게 남겼는지 생각의 깊이를 더해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는 공원을 살펴보기 보다는 몇 가지를 돌아보면 어떨까 한다. 앞 편에서 얘기했듯 공원이 우리에게 이식된 문화의 하나임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첫 번째로 선유도공원은 조경이 만든 공간이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조경이 딱딱하고 무거운 도시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경관과 풍경을 다루는 전문가가 도시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 세계적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공원이기도 하다. 혹자는 건축물로 오해하곤 하는데, 그렇지 않다. 조경공간이다. 조경공간에 건축물과 구조물이 집처럼 뒤섞여 있는 것이다. 공원이 도시기반시설이라고는 하지만 그 전에 조경공간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건축물로 착각하는 배경에는 건축이라는 개념의 포괄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물리적으로 만들고 경계 짓는 것에 익숙한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내외부 풍경이 보이고 보여지며 만들어지는 독특한 공원의 풍경은 기존의 낡은 구조물과 공간들로 인해 은연중 경계가 생기며 다채로우면서도 독립적인 공간 특성을 두드러지게 한다. 당시의 설계는 그것이 중요했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한 공원은 그런 경계진 공간들이 저마다 각각의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공간들이 도시의 집처럼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는 장소로 성장한 것이다. “공원은 삶을 반영한다. 공원은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 다시 말해 기품과 공간, 선택, 전망을 보여준다… 우리는 변하고 나이 들고 머물렀다 떠나가고 종국에는 죽는다. 하지만 공원은 이 모든 것을 견뎌낸다. 언제나 그것에 있을 공원이 슬픈 우리의 영혼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_ 케이티 머론 저, 오현아 역, 『도시의 공원』, 마음산책, 2015. 그런 점에서 선유도공원은 여전히 화두가 된다. 공원이 살아 있는 도시공간으로 성장해갈 것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고려되었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공원은 도시의 삶으로 성장하고 진화할 숙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조경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옥외환경에 조성하는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 조경은 특히 경계 없는 식물 공간을 주 무기로 한다는 점에서 여타 전문분야와 차별되는 독특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조경전문가의 사회문화적 기능과 가치를 획기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국내에서 많지 않다. 여러 면에서 선유도공원은 그 첫 사례로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 한국 조경에서의 아방가르드(the vanguard)라 해도 무방하다. 기획, 계획, 설계, 시공, 관리 모든 측면에서 말이다.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한국에서 장소의 역사를 제대로 활용한 대표적인 곳이 선유도공원이다. 맥주 담금솥 하나로 수줍게 장소를 기억하던 시도(영등포공원)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여기처럼 터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주인공으로 삼은 공원은 우리에게 이전에는 없었다. 환경 재생 공원, 장소 재활용 공원 등의 레토릭은 실은 이를 모두 표현할 수 없는 설명이다. 이곳의 역사와 문화가 외부와 직접 연결된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공원에 펼쳐놓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장소의 특수성이 아니라 시대의 특수성, 시대적 공통감을 먼저 활용했다고 보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에는 터에 담긴 이야기를 뽑아 버릴 수 없는 무엇으로 보는 시각을 모두에게 인식시켰다는 성과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잊고 있지만 그렇게 되살아난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성으로 복기되며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선유도공원은 한강과 위아래 강 너머 풍경, 산업시설과 최신 문화시설, 생태환경과 자연공원 등이 새로운 감성이자 본성으로 체득되었을 것이다. 공사판 같았던 도시 풍경과 빽빽한 철문 사이의 골목길 풍경의 우리들 낡은 도시 기억이 아니라 그들만의 새로운 도시 풍경이 ‘그리운 옛 기억’으로 이미 자리 잡은 것이다. 선유도공원의 가치는 이런 점에서 심도 있게 재탐구 될 필요가 있다. 2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세대에게 기억되는 서울을 기성세대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공원을 생활의 하나로 즐기며 성장한 그들과 행락을 특별한 무엇으로 여겨야만 했던 우리들의 도시 이미지가 선유도공원을 통해 만나고 겹쳐지며 새로워지기를 꿈꾸어 보자. 세 번째로 선유도공원에는 우리 도시의 본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도시는 집들이 춤추는 터이다. 근대 도시계획은 단단한 공간들로 우리의 일상을 꽉 차게 구축한 바 있다. 그래서 도시는 딱딱하고 무겁고 힘들다. 게다가 생산이 멈춘 도시는 이제 시민들이 뛰노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은 정보(IT)가 유목민도 못된 채 그 사이를 날아다닌다. 사유의 실로(失路)가 보편화된 시대에 선유도공원은 옛 구축물로 꽉 채워진 산업시설의 바탕 위에 연하고 하늘거리는 생명이 가득 들어차 묘한 대조의 미, 숭고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선유도공원을 통해서 서울만의 독특한 ‘단자화 된 사람들, 무리로 사는 인간’을 볼 기회를 가진다. 선유도공원은 그런 점에서 인문(학)적이고 감성적인 공원이자 장소인 것이다. 수많은 집들과 공간들이 시간까지 얽어가며 섞인 이 공원은 그런 점에서 다시 보고 다시 보아야 할 고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도시의 모습을 단순히 축소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감성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모든 것을 지을 수 있지만 사는 일을 강요할 수 없다는 아래와 같은 반성은 공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구나 건축가다. 모든 것이 건축이다. All are architects. Everything is architecture.(한스 홀라인, Hans Hollein, 오스트리아 건축가)…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사람의 삶은 건축보다 훨씬 중요하고 또 어려워서,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삶이라 할지라도 건축이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거나 디자인할 수는 없다. 건축가에게는 사는 이의 생활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_ 김광현,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뜨인돌출판사, 2018, pp.68~71. 그런 흔적은 선유도공원에 담겨 있다. 선유정으로 대표되는 본능처럼 작용한 한국성이라는 화두는 그렇게 집들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상징적 전통이 오브제처럼 놓여 있지만 이름이든 공간이든, 의도였든 강요였든 이것은 이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할 지점이다.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처음의 목소리가 어떻게 변화했으며 특히 공원을 생활로 즐기는 우리에게 어떤 목소리를 내게 하는지 장소의 관점에서 시계열적 분석이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녹아 있다고 믿는다. 네 번째로 선유도공원은 생활공간의 예술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간간이 들리는 공공예술의 문제와는 달리 작품으로서의 공원은 전혀 다른 위상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선유도공원은 그 중에서도 아방가르드적이라 할 만큼 커다란 공원미학적 충격을 주었다. 우리 사회는 그러나 그 충격을 재치 있게 소화하였다. 선유정은 그 표징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마크 로스코의 예술관에서 새로운 힌트를 찾아보자. 그는 표현보다 소통에 중점을 둔 것으로 유명한 작가이고 “소통을 위한 표현성은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도 울릴 수 있는 나름의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는 기본적으로 인간적인 감정들(human emotions), 즉 비극(tragedy)과 환희(ecstasy), 그리고 숙명(doom)과 같은 감정들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그림과 직면했을 때 주저앉아 운다는 사실은, 제가 그런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감정들을 ‘소통시켰다(communicate).’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자기표현(self-expression)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행해지는, 즉 세계에 대한 소통(communication)입니다. 이러한 소통이 있은 후 세계가 납득된다면, 우리 세계는 변하게 될 것입니다. 피카소나 미로가 있은 후의 이 세계는 결코 과거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그림은 사물을 보는 우리의 시선을 변형시켜 주는 세계관이기 때문입니다.” _ 강신주, 『마크 로스코(Mark Rothko)(VOL.2:TEXT)』, 민음사, 2015, pp.85~87. 그런 점에서 선유도공원은 조경을 공공을 위한 예술의 하나라고 할 때 무엇을 남겨주었고 보편화하였나, 형태만 좆는 아류 설계 또는 이전 시대 이름만 커다란 설계에 어떤 성찰을 주었나 돌아보게 한다. 아니다, 이제는 무엇을 남겼고 어떻게 진화했는지 꼭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앙리 마티스의 이야기는 예술을 추구하는 모든 이에게 조언이 될 수 있고 선유도공원을 예술로 다룬 모든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든 예술가에게는 시대의 각인이 찍혀 있다. 위대한 예술가는 그러한 각인이 가장 깊이 새겨져 있는 사람이다. 좋아하건 싫어하건 설사 우리가 스스로를 고집스레 유배자라고 부를지라도 시대와 우리는 단단한 끈으로 묶여 있으며 어떤 작가도 그 끈에서 풀려날 수 없다.” 앙리 마티스, “어느 화가의 노트” 중(이광래, 『미술 철학사』 3권, 미메시스, 2016, p.4) 집들이 들어앉아 이제 제 안방인 양 춤추는 공원의 모습을 우리는 인문(人文)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집들이 여기에 들어앉았는지 체험하고 체현하며 새로움은 언제나 낡음으로부터 진화된 것임을 또 하나의 사례로 되새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이식된 근대 공원은 생활로 소화되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은 인간의 가장 작은 생활의 단위, 진화의 단위이다. 오늘날 새 시대의 선유도공원은 어떤 집들이 춤추고 있는지 직접 보고, 자주 보고, 돌아보며 즐기고 느끼는 인문 공원으로 재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를 분별하는 새로운 시점이라는 성찰로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Park 04. 집들이 춤추는 공원들, “확장하는 도시와 공원, 그리고 재생” 우리 사회는 이제 좀 인문학 열풍이 수그러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느 정도 사람과 인간에 대한 생각들이 생활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그것이 수평적 보편화가 아니라 수직적 특수화(개성화)로 깊이를 달리할 것이다. 이때는 경제로 치환되지 않는 역사와 문화, 공동체성이 깊게 작용한다. 문명이 나뉜 것도 그 때문이다. 인문의 보편화는 진화의 초석이고 새로운 문명의 시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미 그것이 시작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빨리빨리와 모두가 함께 라는 동질화가 작용하고 있다. 유행이라지만 몸에 밴 상호작용이라 낙관할 부분이라고 본다. 그리니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은 얼마든지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선유도공원은 그 트리거였다. 월드컵공원도 그러하였다. 하늘공원, 서울숲, 북서울꿈의숲 등 대형공원들도 그러하였다. 우리의 인문(人文)은 그렇게 집들과 공간들 사이를 오가고 있는 셈이다. 공원이 인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공원은 언젠가 “도시의 문양”(都市文)으로 기억되고 활용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그런 개인적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경공환장’ 시리즈의 핵심이라고 할 만 하다. 우리는 집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마련인데 그것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 여기에 압축되어 있다. 기술사(史)가 아닌 문화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만 강연을 통해서 틈틈이 설명해오던 요약 같은 결론만 몇 가지로 도표화하였다. 이는 공원과 조경을 이해하는 좀 더 넓은 시야를 획득하기 위함이다. 앞 편에서 우리는 공원과 산책 사이의 관계를 조경 개념을 매개로 이해해보고자 하였다. 보기에 따라 무리함이 있고 다소 긴 내용이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더라도 한 번의 일별을 권유한 것은 그것을 바탕으로 확장되는 우리 도시와 삶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시야를 위해서였다. 한 번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것을 이번에는 밑그림 식으로 전체를 보고자 하는 것이며, 차차 이것들을 하나씩 심도 있게 살펴보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것은 공원을 통해서이다. 1. 자연(origin)과 파생어들(originality), 본연을 구분짓기 우리 문명에 대해서는 수많은 설명이 있지만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인류가 물리적 공간과 일상적 활동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쉽게 말해 현대 도시는 공간과 삶이 분리된 채 물리적으로 채우는데 급급한 도시로 성장하였다는 것이고 이제는 그렇게 분리된 두 가지가 장소라는 개념을 통해 본능으로 남아 있는 삶터에 대한 욕구를 되살리려 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장소성은 그런 맥락을 통틀어 부르는 가벼운 이름일 뿐이다. 여러 사례들이 전문가의 손을 거치지 않고 도시 생활공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본능의 측면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 그림은 이런 생각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학자들이 말하는 혁명적 사건의 발생에 따라 도시공간과 인간활동은 점점 더 거리를 두며 멀어지게 되었다. 거기에 적응하는 인류의 노력은 여러 문화적 현상으로 뒤따르기는 하였으나 그 힘이 결국에는 우리 도시의 미래를 새롭게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본연이라 할 수 있는 자연이 어떻게 이해되고 분해되느냐에 따라 많은 전문분야가 파생되었고, 심지어는 의도적인 구분짓기를 통해 개념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고의 방향성을 발명처럼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그런 모든 것이 공간과 활동의 새로운 통합을 지향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우리는 나누고 구분하고 분석하며 보낸 20세기를 그렇게 반성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2. 실천(practice)과 실행들(making), 지식을 구별하기 도시가 복잡해지면서 그에 따르는 행위도 복잡해졌다. 그러나 행위의 표현과 소통은 해당 행위 이전에 만들어진 개념과 사고를 통해 이루어진다. 쉽게 말해, 말을 통해 행위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느끼지만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면 행위가 의도와는 다르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언어의 세계는 수학이 아니어서 말이 하나의 행위에 하나의 어휘로 대입되지 않기 때문에 말은 저마다 다른 뜻을 내포한 채 새롭게 필요로 하는 행위에 따라 조합되어 사용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각자가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는 같은 어휘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경험과 사고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곤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어는 본성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시는 항상 탈이 많을 수밖에 없다.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같은 언어라도 위계를 두고 체계를 두어 곤란해질 수 있는 행위들에 기준을 세워두었다. 대체로 “일상어, 전문어, 법률어”로 나뉘는데 사용하는 문자가 다른 것이 아니어서 우리는 경우에 따라 아주 복잡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전문어와 법률어를 모두 우리가 알고 구별하며 사용할 수는 없다. 우리는 대부분 일상생활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일상을 살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또는 대부분 직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직업이 아니더라도 저마다의 전문 분야에 몸담고 저마다의 생산활동으로 삶을 영위한다. 이 생활과 저 생활을 오가는 이때 우리의 일상어와 전문어는 뒤섞이곤 한다. 그런 날들이 많아지면 그 경계는 더욱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 대부분은 그 사람의 말투에 따라 그가 어디에 더 방점을 두고 사는지 알 수 있다. 일상에서야 이런 상황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문 분야에서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동일한 어휘를 사용하고 충분히 소통하였다고 생각하였는데 최종 결과물이 엉뚱한 경우를 대부분 한두 번씩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지속적인 회의와 지난한 협의가 반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래 말들은 그 대표적인 것들을 모아본 것이다. 특별히 범주를 구분하지 않았으나 비슷한 유형으로 보이는 것들은 묶어보았다. 어떤가, 일상적으로는 충분히 이해되고 구별되는 어휘이지 않은가? - 조경, 건축, 도시, 엔지니어링, 경관, 건물, 공간, 환경, 장소, 풍경, 지리, 문화, 유산, 복합, 융합, 통합, 융복합, 생활, 시야, 시선, 시점, 아름다움, 운치, 천연, 인공, 유적, 전원, 조망, 조망점, 진화, 축, 차경 - 토지, 지반, 기반, 대지, 경치, 통경, 풍치, 하천, 마을, 생태, 자연, 시설물, 구조물, 건축물, 문화재, 정원, 공원, 유원지 - 계획, 설계, 구조, 기능, 배치, 설치, 공간구조, 생활권, 주변, 기능, 용도, 도시, 지역, 지방, 지구, 구역, 용도, 기반시설, 공간시설, 공급시설, 교통시설, 광역시설, 공공시설, 공작물, 생활인프라, 생활환경, 자연환경, 야생생물, 습지, 생태계 - 설치, 정비, 개량, 개발, 보수, 제공, 향상, 인가, 허가, 승인, 협의, 의견, 처리, 검사, 지정, 경우, 처분, 행위, 조치, 촉진, 지정, 점용, 분할, 공유, 개발행위, 보전, 활용, 복원, 제공, 공급, 평가, 관리, 변경, 조정, 검사, 안녕, 건전, 양호, 미관, 공동번영, 균형발전, 협력 전문어로서는 그렇다면 어떤가? 그 의미와 용도를 잘 구별할 수 있을까? “개발, 정비, 개량, 보수, 조치, 조정, 변경” 이것들은 각각 무슨 의미이고 어떻게 구분하여 사용해야 할까? 전문성은 거기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전문가라면 최소한 일상어와 전문어는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법률어로 본다면 또 다른 이해가 필요해 진다. 그러나 근래 수십 년간 여러 분야들이 뒤섞이는 과정에서 전문어로 이해되고 구별되어야 할 개념과 사고가 경계 없이 뒤섞이는 경우는 많이 보아왔다. 혹자는 창의적이라 보았고 혹자는 영역의 확장이라고 보았다. 또는 여러 가지가 혼합되는 시대적 흐름이 반영된 것이라 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가는 전문어에 담긴 역사성과 전문성을 무시하고 그로 인한 기술적, 문화적 깊이를 지워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다.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깊이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이기는 하지만 겉핥기식 개념어 혼합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식으로 말하면 키치(kitsch)의 양산일 뿐이다. 단순히 저속한 작품을 양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본성 또는 전문성을 무시한 채 익숙한(일상적) 겉모양만 베껴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라면 최소한 해당 전문 영역의 개념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인접 분야 전문어에 대해서 최소한의 이해가 필수인 시대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다음의 그림은 그런 용어들 중에서 중요하게 구별하고 활용해야 하는 것들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대상물을 지칭하는 말들과 실천행위를 지칭하는 말들은 결국 분야의 전문성과 깊이를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할 때 오해 없는 실천이 가능할 것이다.
    • 안명준 조경평론가eirene95@naver.com
    • 2019-08-19
  • [놀이터 톺아보기, 톺아짓기] 놀이터 만들기 ⑤ _ 어린이 참여디자인(1)
    최근에는 어린이들의 참여를 통한 놀이터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린이 참여를 하자고 클라이언트한테 제안하면 “뭐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말이다. 그들이 달가워하지 않은 이유를 질문 형식으로 거칠게 정리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텐데 써 먹을 게 나올까요?” “애들이 뭘 알까요?”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어린이 참여를 놀이터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보는 이들이 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어린이들의 의견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건 무엇인가요?” “어린이들이 디자인뿐만 아니라 공사 감리까지 해야 하지 않나요?” 어린이 참여 써 먹을 게 나올까요? 회의적인 입장과 어린이 참여를 만능으로 보는 입장, 이러한 극과 극의 입장 사이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초기 어린이들과 했던 워크숍이나 여러 활동은 즐거웠으나 반복될수록 ‘어린이 참여라는 게 필요한가?’, ‘형식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의심이 생겼다. 원하는 놀이터를 그려달라는 요구에 어린이들은 매번 놀이동산에서나 봄직한 놀이터를 그렸고, 설문조사 결과는 진부했다. 또한 설계안을 보여주었을 때 어린이들은 신기해했지만 피드백은 그리 신선하지 않았다. 나의 의심이 정당한가를 확인하고 싶어서 2017년 6월 22일 ‘오픈 자문’이라는 형태로 어린이 참여에 관심과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정우 EUS+건축 대표, 정수진 서울시정연구원 박사, 주신하 서울여자대학교 교수가 함께 했었다. 그 때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어린이 참여에 대해 스스로 가졌던 질문, 타인들이 내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보았다. 어른이라고 다른가! 자문회의에서 지정우 대표는 이 멋진 말로 ‘어린이들은 미숙하다’는 편견에 뿌리를 두는 나의 의심을 간단히 해결해주었다. Driskell(2001)은 어린이들의 참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어린이들은 지식적 및 기술적 배경이 없다. 실수를 한다.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장기적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자주 마음을 바꾸고 판단력이 부족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로 정리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이러한 문제제기에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핵심은 “어른이라고 다른가”이다. 많은 워크숍에서 만난 어른들도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결정하는 걸 어려워했다. 그런데 나는 이를 잊고 있었다. 창의적 아이디어, 창의적 질문 영국의 놀이터 컨설팅 조직인 ‘PLAYLINK’의 사이트에서는 “어린이들한테 원하는 놀이터를 그리라고 하면 알고 있는 것을 그린다. 어른들이 좋아할 것을 그린다”는 어린이 참여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언급하면서 어린이 참여의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어린이들의 한계를 탓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나의 한계였다. 질문이 뻔했기 때문에 대답도 뻔했던 것이다. 지정우 대표와 정수진 박사는 이를 피하기 위해 추상화와 한계를 두기, 스토리텔링 등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을 개발하고 있었다. 받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리는 것 어린이들과 함께 디자인을 했다고 하면, 누군가는 결과물에서 어린이들의 아이디어를 구분해 내기를 원하고 디자이너가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진정한 어린이 참여라고 주장한다. 정수진 박사는 “어린이들의 아이디어를 구분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디자이너의 개입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했다. 소통의 과정 속에서 디자이너도 어린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겠냐는 것이다. 주신하 교수는 그러므로 참여하는 디자이너와 퍼실리테이터의 역할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주었다. 참여디자인은 단순히 디자이너가 참여자인 어린이의 의견을 들어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협업이기 때문이다. 과정을 잘 디자인해야 한다.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어린이들과 한두번 정도만 만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우리’로 칭하게 되는 관계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디자이너와 어린이들은 서로의 언어와 사고 체계에 친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로 탐색하기’, ‘주어진 이슈의 가장자리를 돌기’, ‘아이디어를 교환하기’,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과정을 평가하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가 되어 앞에서 말한 ‘함께 그리기’가 가능해진다. 결국은 정당성의 문제 어린이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디자이너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짚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이 참여의 의의는 결과물보다는 정당성에 있다. 내가 어린이 참여 디자인을 의심했던 건 결국은 ‘결과물’에 대한 집착이었다. 어린이들의 아이디어가 그리 대단하지 않더라도 그 공간의 주인인 그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차근차근 그들의 바람과 욕구를 끌어내는 것은 어른의 책임인데 말이다. 더불어 참여디자인은 그 자체로 어린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새로운 탐색의 문을 열어주는 일이기도 한데 말이다. 어린이들과의 워크숍이 반복될수록 ‘어린이 참여라는 게 필요한가?’라는 의심이 생겼다.어린이들은 매번 놀이동산에서나 봄직한 놀이터를 그렸고, 설문조사 결과는 진부했다.그런데 한 자문회의에서 지정우 대표는 어린이 참여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핵심은 “어른이라고 다른가”이다,많은 워크숍에서 만난 어른들도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결정하는 걸 어려워했다. 나는 이를 잊고 있었다. 김연금 / 조경작업소 울 소장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geumii@empas.com
    • 2019-08-02
  • [유청오의 핀테스트] 장마를 보내는 자세
    수많은 것들이 있다. 눈에 띄는 것이 있고 배경이 되는 것이 있다. 어느 것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대상에 대한 관찰과 솎아내는 작업은 새로운 도전이다. 마치 어지럽혀진 방을 치우는 기분이랄까. 대지 위에 깔리고 솟아있는 대상을 찍는 작업은 보이는 것에서 숨어있는 것까지 긁어내야 한다. 때로는 관찰자가 되고 때로는 경험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비평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소박한 소비자가 되기도 한다. 다만 한가지 어쩌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날씨가 그렇다. 하늘을 움직일 수 없는 노릇이니 요즘 같은 흐림의 연속에는 무심하게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사계절 뚜렷한 한국에서 사진가를 택한 나의 숙명이라 하면 거창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장마를 보내는 사진가는 이렇게 만감이 교차한다. 하늘만 볼 수는 없다. 여전히 대상을 관찰하고 인입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의 작업, 하지만 결국 손가락 하나에 종결되는 작업은 일어날 일이다. 조경 사진은 결국 ‘누군가’의 작품을 재정의하는 과정이 된다. 대상의 크기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 그들이 그것을 만들게 했는가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바람이 되는 ’이쁘게 찍기'를 늘 한 켠에 담아둔다. 사진은 선택의 작업이다. 대상을, 일정을, 장비를, 날씨를, 대상지를, 클라이언트의 욕구를, 나의 욕구를, 프레임을, 데이터를, 결과물을 미리 선택한다. 그리고는 결과물 중에서 골라 디지털 현상을 한다. 마음대로 되는 것은 오로지 한순간, 현장에서 꿈틀거리는 하나의 손가락만이 내가 할 수 있는 행위다. 그것이 다른 선택으로 선순환하니 타노스의 핑거 스냅과 맞먹는 것일지도. 장마가 끝나간다. 긴 더위가 시작하면 잎들을 위해 한낮은 비워두어야 한다. 배롱을 위해 이른 아침은 담아두어야 한다. 이슬을 위해 새벽을 남겨두어야 한다. 쉬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일몰 시간은 서성일 것이다. 늦은 일몰에 날벌레가 렌즈에 등장하는지 노심초사할 것이다. 장마가 끝나면 또 다른 선택을 위해 바닥을 끌고 다닐 것이다. 유청오 조경사진가
    • 유청오 조경사진가soulguitar@naver.com
    • 2019-07-31
  • [미래포럼] 진정성과 시대지능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근대건축의 거장 프랭크로이드 라이트를 모델로 했다는 소설 마천루에는 주인공이 대략 다음과 같은 대사를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철근콘크리트란 공법이 나왔습니다. 새롭고 혁신적인 '유리'라는 소재가 나왔습니다. 이제 이것들을 사용하면, 대규모의 건물을, 빠른 시간 내에, 그것도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아직도 기둥과 기둥사이가 폭이 좁아야만 하는, 석조건물의 모델을, 다시 말해, 파르테논신전의 모사품을 만들고 있어야 합니까?” 당대의 기준으로 보면 주인공은 신식의 문물(?)을 주장하는 열정 가득한 야심가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주인공과 늘 다투는 상대편 진영의 고고한 어떤 인물께서 등장하셔서 ‘전통이란 말일세... 진정성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하나의 중요 양식이며, 우리가 지켜야만 할 것이며...’라는 투의 입장일 때 그러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이 근대건축운동(movement)의 거대한 광풍조차도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하나의 양식(orders)이나 스타일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근대 '양식'을 옹호하는 건축가는 노출콘크리트의 재료적인 미학을 이야기하며 시간과 철학을 읇조린다. 여기에 변혁은 없다. 오히려 변혁을 외치는 쪽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근대 '양식'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진정성'을 이야기 한다. 100년 전의 그들에게 사용한 단어들이 그렇게 서로 뒤바뀌어 있다. 아방가르드가 아리에가르드가 된 상황이다. 문제는 우리가 시대라는 맥락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이다. 시대는 변한다. 진정성이란 단어 조차도 이제 그것이 처한 위치나 발화자의 입장에 따라서도 말의 뜻과 범위가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 ‘조경을 넘어’라는 전혀 앞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은 오래된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라는 맥락을 읽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외국의 저명한 어느 조경가의 새로운 디자인이론, 신문물, 신사조만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것이 변화의 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변화라기보단 수동적 답습에 가까울 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알아야 하고, 그것은 현재 우리가 처한 시대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트렌드따위에 영합한..."이란 말을 하는 그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대가 그토록 이 용어를 거북스러워 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서로 대립하는 생각을 동시에 아우르며 목표에 이르는 길을 찾는 능력을 사전에서는 '지능'이라 한다. 여기에 '시대'라는 단어를 조합한다. '시대지능', 다시 말해 우리가 유의미한 변화를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현시점의 시대를 보고 거기에 반응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자. 그것을 이야기하고, 그것의 문제점에 대해 논하면서 오직 ‘진정성’ 있는 개발만을 이야기 한다면, 소위 말해 다시 그 모든 사회현상의 대항점을 '진정성'에만 두고 만다면, 시대의 오독이며 자가당착이며 학습하지 않는 자의 게으름에 불과하다. 당장 스스로 답을 만들기 어렵다면 그것에 반응하는 타분야의 공간개발사업에서는 과연 이런 문제가 어떤 양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사회문제가 어떤 해법으로 다시 사회에 투사 적용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유학파들의 어학연수 비자 시절의 그럴싸한 향수만을 골라 젊은 부자동네에 기획한 공간 '슈퍼막셰' ▲오랫동안 수집한 기품있는 사물들로 뮤지엄과 점포사이의 중간영역 소비자들을 정확히 타겟팅한 성수동 '오르에르'나 잠원동 '파운드로컬' ▲자연을 벗삼으려면 자연이 주최가 아니라 자연이 제공하지 못하는 따스한 환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남양주의 '비루개' 등 요즘의 공간추세는 '덜하고', '엣지있게', '디자인이 아닌 간지'라는 추세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심은 주인이 나가라고 할 때 금방 핵심집기만을 들고 나갈 수 있도록 가능하게 공간을 기획하는 바에 있다. 비단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놓고 보아도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학습할 재료들은 동시대의 세상에 넘쳐나고 이런 학습이 쌓여서 세상을 이겨내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놓고 보면, 앞으로 중요한 것은 디자인이 아니다. 비용이 발생하는 디자인보다는 가치를 재편하는 디자인 이전 단계 기획의 영역이 훨씬 중요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조경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서비스디자인, 경험디자인이라는, '디자인' 앞에 붙는 새로운 신조어의 조합 영역들이 출현하는 이유 역시도 이제는 더 이상 공간디자인 만으로는 그 어떠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음에 기인한다. 변화를 원하는가 세상을 보라. 알렉산드로 미켈레, 수년 전 구찌(Gucc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하면서 그가 주장한 것은 '맥시멀리즘'이다. 미니멀리즘, 예를 들어 흰색과 검은색, 톤앤매너의 일치를 꾀하는 생각은 이미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보내버린다. 그가 디렉팅한 화보와 스테이지 공간들에서는 동물원과 우주인이 나오고 털복숭이 낙타같은 기괴한 생명체가 등장한다. 우리는 주변의 크리에이터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반응하는가, 나에게 스스로 늘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미니·맥시멀리즘의 사례에서도 그러하듯 늘 같은 습관적 사고 안에, 혹은 '조경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다'라는 식의 허울 좋은 인문학적인 명제 속에 스스로에 매몰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변한다. 끊임없는 진행형이다. 나 역시 그러해야 한다. 페이팔의 창립자 피터틸이 설립한 '틸장학금'이란 것이 있다. 미국의 우수한 IT전공의 학부·대학원 인재에게 매년 수여되는 장학금이다. 단일 장학금으로 무시 못 할 액수를 자랑하는 이 장학금은 수여자의 선정도 까다롭지만, 정작 수여를 하기위해 내세우는 조건이 파격적이다. 장학금으로 학업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을 중단하고 창업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당신 같은 인재는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니 이 자금으로 창업을 하라'는 이야기이다. 전통적 교육 방법으로는 혁신과 변화를 따라가기가 어려움을 모두들 알기 때문에 이런 조건이 환영받고 있는 시대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유승종 / 라이브스케이프 대표
    • 유승종 라이브스케이프 대표
    • 2019-07-25
  • [놀이터 톺아보기, 톺아짓기] 놀이터 만들기 ④ _ 통합놀이터(2)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통합놀이터의 가치를 추구하는 놀이터를 조성했다. 조성 과정에서 진행했던 워크숍에서 아이들에게 원하는 놀이터를 그려달라고 주문하자, 한 아이가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까지 오를 수 있는 사다리의 모습을 그렸다. 그 아이의 소망을 조금이나마 담아내고 싶어서 높이 오를 수 있는 시설물을 구상했다. 그런데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휠체어 이용자가 휠체어를 탄 채 시설물의 어디까지 오를 수 있게 할지를 정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쳤다. 결국 시설물 주변의 지형을 올려 시설물 앞까지는 접근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시설물의 바닥 면적이나 땅으로부터 시설물까지의 높이 등을 고려하다보니 시설물 자체에 오르게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이전 글에도 언급했던 옮겨타기 시스템을 설치해 휠체어에서 내려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휠체어에서 내려 놀이시설물 끝까지 놀이터가 조성된 후, 이 사업의 실행 주체였던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이하 무장애연대)는 아이들의 평가도 듣고 통합놀이터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한계도 발견했지만, 긍정적인 피드백도 받았다. 가장 기뻤던 것은 설계 의도대로 휠체어 이용 아이가 휠체어에서 내려 손으로 짚어서 시설물 끝까지 올라갔다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친구들의 도움도 있었다. 친구들은 “여기를 짚어라, 다음에는 저쪽을 짚어라”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휠체어 이용 아이의 역량에 결합해 팁을 주었다. 통합놀이터가 고려되지 않는 안전기준 통합놀이터만들기네트워크에서는 내부적으로 휠체어 이용자의 시설 이용 범위를 논해왔다. 아래 사진처럼,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휠체어 이용자가 휠체어에서 내려 놀이시설물을 오를 수 있을까? 오르려 할까? 부모나 보호자는 오르도록 할까? 이것은 신체적으로 가능한지 안한지의 문제가 아닌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단순히 ‘yes’ 혹은 ‘no’로 답하기 쉽지 않은 충실한 고민이 필요한 질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충실한 답을 만드는 데 단초가 될 수 있는 장면을 마주했다. “그 아이는 오를 수 있었고, 오르려 했다.” 통합놀이터를 공부하고 만들수록, 그리고 사람들과 이에 대해 말을 할수록, 통합놀이터는 단순히 시설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설계자의 한계를 실감하게 된다. 장애인의 인권,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철학적 태도를 드러내는 리트머스지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여러 장면은 우리의 사회적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특히 놀이터 안전기준이 그러하다. 조수미 씨가 서울시와 세종시 등에 장애아와 비장애가 함께 탈 수 있는 휠체어 그네를 기증했지만 놀이터에는 설치되지 못했다. 어린이제품 안전특별법에 장애 아동용 놀이기구 시설에 대한 안전인증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기존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 기준을 장애인용 놀이기구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한 놀이시설물 제작 업체에서는 휠체어를 탄 채로 탈 수 있는 시소를 개발하면서 국민신문고에 통합놀이시설물에 적용되는 기준과 관련 기준 제정의 가능성에 대해 문의했다. 휠체어 그네와 같은 문제를 겪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에서는 현행법에는 장애아동을 위한 놀이시설에 적용되는 별도의 기준은 없으며, 해외사례, 관계부처, 이해당사자 등 여러 의견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추진돼야 할 사항으로 판단한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노력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통합 팝업 놀이터, 다름을 보다 이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무장애연대 등 어린이나 장애와 관련된 9개 단체는 어린이날이 있는 5월 30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팝업 통합놀이터를 운영했다. 당일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그동안 나는 창 안에서 창밖을 구경하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그네라는 것을 타보게 됐다. 앞뒤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네를 타면서 나무 위를 올려다보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 중에는 나처럼 어른이 돼서야 처음 그네를 타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팝업 통합놀이터의 디자인은 조경작업소 울에서 진행했다. 비록 잠깐 열렸다 닫히는 놀이터였지만, 여러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함께 하는 단체들과도 많은 논의를 했다. 이를 통해 신체적 움직임뿐만 아니라 감각을 자극하는 놀이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과자 따먹기를 할 때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이들은 자신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지 않도록 빨리 먹을 수 있는 과자를 선택했다. 더불어 종이상자 쌓기에서는 참여자의 다양한 신장을 고려해 종이상자의 크기를 결정했다. 조경작업소 울의 구성원들은 이번 팝업 통합놀이터를 디자인하며 지식적인 것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타인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함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휠체어를 탄 채 탈 수 있는 그네나 시소를 도입한다고 해서 휠체어 이용 아이들의 이용이 많아질 것이라고, 혹은 발달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 감각놀이시설물을 설치한다고 그들의 이용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항상 무장애연대의 김남진 국장이 말하는 것처럼, 선택의 결과로 이용하지 않는 것과 선택의 여지도 없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또한 그것을 만드는 과정과 존재 자체가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하는 사회에 대한 학습이기도 하다. 한 아이가 설계 의도대로 휠체어에서 내려 손을 짚어가며 시설물의 끝을 올랐다.“그들은 오르려 할까?” “그 아이는 오를 수 있었고 오르려 했다” 휠체어채로 탈 수 있는 놀이시설을 도입한다고 그들의 이용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하지만 ‘이용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는 것과 ‘선택의 여지도 없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통합놀이터 디자인 가이드라인 Ver 1.0’이 필요하신 분은 조경작업소 울(wullandscape@naver.com)로 문의하면 된다. 김연금 / 조경작업소 울 소장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geumii@empas.com
    • 2019-07-02
  • [유청오의 핀테스트] 오래된 연인처럼
    처음부터 미쳐있던 것은 아니었다. 차츰 친해졌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어느 날 다가왔고 매력을 느꼈으며 내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 좋았다. 한 걸음 다가가면 알쏭달쏭한 질문을 다시 던져주고 그것을 풀기 위해 온 신경을 써서 해결하다 보니 정이 들었다. 때론 깊게 빠져들었다. 집에 가는 길에 가로등에도 생각나 집에 들었다 다시 나와 한참을 만났다. 빛이라는 것이 그렇게 신비하고 재밌을 수가 없다. 결국 남은 것은 알 수 없는 결과였지만 그것도 매력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그때는 아날로그라 바로 답해주지 않았다- 답해주는 것이 좋았다. 정이 들듯 논리정연한 것이 아닌 무엇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지금도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사이, 하지만 정으로만 만나지는 않는다. 디지털시대, 답을 바로바로 해준다는 점이 변했다. 내가 질문하는 속도가 못 따라갈 정도로 말이다. 시간 속에 사진은 오랜 연인이 되었다. 가끔 어떻게 해야 좋은 사진을 찍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연애 상담처럼 느껴진다. 길고 길게 답을 늘어놓든지 짤막한 해결책이든지 듣고 싶은 대로 말해 주는 것이 상책이다. 몇 가지 생각 나는 나만의 방식을 늘어놓아 본다. ‘돈을 많이 쓰면 됩디다’ 물량 공세만큼 쉬운 것은 없다. 상대방을 현혹하는 직접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 원하는 사진이 생기면 원하는 장비를 사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시중에 수많은 액세서리가 준비되어 있다. 그래도 안되면 명품 카메라나 렌즈로 스스로 미혹되는 것이 상책. 장비는 남는다. 떠나간 것들이 있을지언정 물건은 남지 않는가. 먼지가 쌓이는 것만 주의하시라. 약간의(?) 헛헛함은 덤. ‘많이 찍어보세요’ 수없이 대화한다. 될때까지 들이대는 것이다. 그래도 안된다면 -열번 찍어도 안될 수 있으니- 남는 시련은 감수해야 한다. 떠나가도 사진은 남는다. 애정 공세 끝에 몇장의 사진도 남는다. 자기만족의 가장 쉬운 방식. 짝사랑은 그렇게 시작하고 끝나기 마련. 물론 성공하면 좋다. 짝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 쉽지 않아 문제라면 문제이지만. 한 가지 주제가 어렵다. ‘책을 찾아봅시다’ 이론에 빠삭한 분석가가 되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부작용이 있는데 아는 만큼 결과도 미리 짐작하여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이럴 때는 아는 것이 병이다. 이성으로만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게 맞는 감성은 책에 쓰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이러저러해서 안돼’라며 염세주의자로만 변하지 말자. ‘소개라도 받아보세요’ 정확한 목표설정은 방법을 강구하게 한다. 공모전이 대표적인 방법. 상대방을 아는 방법을 배우기 좋다. 역시 단점이 있는데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주변에서 찾아보세요’ 익숙한 것을 담아내는 것은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하나씩 일기처럼 기록하고 비틀어 주제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다만 익숙하니 쉽게 질릴 수 있으니 이것도 주의. 이렇게 늘어놓으니 사진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닮아있다. 쉽게 만들어지고 상실감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진득하게 오래갈 때도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본다. 첫 카메라를 손에 쥐고 기뻤던 순간. 그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잠들었던 풋풋한 기억들이 살아난다. 어설펐던 그시절, 대상에게 내 생각만 강요하던 시기는 어느덧 지나고 대상이 들려주는 것에도 집중하려 한다. 오랜 연인과 이야기 하듯 말이다. 아 그리고, 연재에 실리는 인물 사진을 찍어준 이계후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유청오 조경사진가
    • 유청오
    • 2019-06-30
  • [미래포럼] 연산적 설계: 조경의 새로운 도구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나는 결코 컴퓨터에 친숙하거나 프로그램에 능숙한 기술적인 사람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흔한 컴퓨터 게임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늦은 출산과 육아로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서 다시 학교에 돌아와 보니, 갓난아기가 아장아장 걷게 된 짧은 기간에 세상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었다. 이전의 수업에서 다뤘던 설계기법이나 접근방식이 구닥다리로 느껴졌다. 현재의 복잡하고 다양한 설계이슈들을 풀어내고 조경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는 학생들의 역량을 키워줘야 하는 의무와 함께, 새로운 설계방법의 도입이 절실했다. 현재 커리큘럼을 새로 만들고 평소 교류하던 재야의 고수들을 총동원하여 직접 배워가면서 모든 수업을 전면 개편하는 중이다. 21세기 조경분야의 계획가와 설계가가 풀어야하는 기후변화, 도시재생, 스마트시티, 미세먼지 등 긴급하고 도전적인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접근방법을 넘어서는 용감한 시도가 필요하다. 특히 설계기법에 대한 수업은 실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만큼 최근의 설계방식이나 기술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학계는 미래를 위한 인재양성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는 만큼, 업계에서 새로운 업역을 구축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설계 이슈는 더욱 복잡해졌는데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설계 교육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디자인이란 주어진 제한적 조건 안에서 디자이너(설계가)가 우선적으로 고려할 규칙들을 정하고, 좌뇌와 우뇌의 반복적인 사고와 드로잉이나 모델에 의한 구체화를 통해 형태와 시스템이 걸러지고 결정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가장 처음 그린 디자인이 최종안인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을 안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대략 3~4번째 쯤에 시도했던 디자인이 최종안으로 발전됐던 것 같다. 그렇다고 마지막 디자인이 가장 완벽한 디자인인가? 최종안은 단지 주어진 마감시간에 내에 완료된(완성이 아닌) 디자인일 뿐이다. 나는 어떤 디자인이라도 충분한 분석을 근거로 현실화에 시간을 들인다면 최종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산적 설계(Computational Design)는 디자인을 구체화하여 표현하는 방법을 기하학에서 논리로 전환하는 설계과정으로, 고도의 복잡성을 알고리즘을 통해 제어한다는 면에서 ‘설계의 자동화’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연산적 설계는 컴퓨터가 대신 설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설계가가 특정 데이터에 어떠한 규칙을 적용하는가에 따라 설계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빠른 시간에 확인하는 과정이다. 연산적 설계의 전제는, 설계자가 과학적이고 정량적인 분석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 규칙인지를 결정하고 이를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따라 설계안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계방식은 디자인이 공간의 시각화와 소통의 기능을 넘어서 기능성(performance)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해외동향을 파악해보면 연산적 설계(Computational Design)는 다양한 분야를 중심으로 실무에 활용되고 있다. 건축 분야에서는 이미 10여년전부터 연산적 설계의 한 축인 파라메트릭 디자인(Parametric Design) 수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실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술과 디자인 분야에서도 다양한 변수를 추출하여 파라메트릭 모델을 구축하고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방식의 수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건축설계와 시공업계를 중심으로 점차적으로 의무화되고 있는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ling)의 도입도 설계와 시공 프로세스의 획기적인 변화이다. 게임제작도구인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으로 구축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설계안의 시뮬레이션을 넘어 블루프린트라는 코딩 작업을 통해 공간에서의 상호작용을 재현하는 도구로 활용가치가 높다. 건축이나 예술 분야에 비해 조경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매우 느리게, 때로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협업의 일원으로서 조경분야도 이제는 BIM을 CAD와 같은 기본적인 프로그램으로 여기고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외부 공간의 특성상 환경적 요소의 지대한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감성적이거나 단편적 분석에 의존하여 어떤 환경적 변수를 어떤 가중치로 설계에 적용해야 하는지를 검증할 기회도 없이 설계안이 그려지고, 공사가 시작된다. 우리는 이제 조경분야에서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이 연필, 지우개, 가위와 풀을 대신하여 전산화된 작도와 표현의 도구로만 사용되었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와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설계가가 코드나 스크립트를 만들어서 소프트웨어를 사용자화하고 설계 도구를 직접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주위에는 무료로 제공되는 오픈소스가 넘쳐나고 융합적인 설계방식과 아이디어들을 교환하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를 활용하여 학생들과 신진 세대가 새롭고 혁신적인 도구를 익히고 실무에 적용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어야 한다. 기존 세대가 첨단의 기술과 프로그램을 익혀서 실무와 교육에 활용하는 일은 쉽지 않으나, 최소한의 시도는 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 또한 잠깐이라도 쉼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면 다람쥐 쳇바퀴에서 내리는 용기를 갖지 못했을 것 같다. 일단 맨땅에 던져지고 나니 그제야 지금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탐구가 시작되었기에. 이유미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 이유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2019-06-19
  • [지금여기 공원미학] 춤추는 나무, 숨쉬는 도시 ④ 길들이 춤추는 서울숲
    04. 길들이 춤추는 서울숲 하릴 없이 걸으며 사색과 풍경을 즐기는 도시민은 얼마나 될까? 우리 도시가 그런 도시인지는 차치하고, 숨쉬기 바쁘게 걸어야 하는 출근길도 제외하고 부족한 운동을 만회하기 위해 식사 후 하는 잠깐의 걷기 정도가 우리시대 산책의 대부분이 아닐까 싶다. 특별히 시간 내고 돈 들여야 하는 걷기 말고, 우리시대 일상적 산책은 어떤 의미일까? 산책이라고 함은? 먼저 노래를 들어 보자. “산책이라고 함은 정해진 목적 없이 얽매인 데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갈 것. 누굴 만난다든지 어딜 들른다든지 별렀던 일 없이 줄을 끌러 놓고 가야만 하는 것. …(중략)… 인생에 속은 채 인생을 속인 채 계절의 힘에 놀란 채 밤낮도 잊은 채 지갑도 잊은 채 짝 안 맞는 양말로 산책길을 떠남에 으뜸가는 순간은 멋진 책을 읽다 맨 끝장을 덮는 그때. 이를테면 “봉별기”의 마지막 장처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心情)에 불 질러 버려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_ ‘속아도 꿈결’, 계피 노래, 정바비 작사/작곡, 「가을방학 1집」(2010년) 중 “속아도 산책~ 속여도 산책~”이라 해볼까, “그늘진 심정”을 ‘그늘진 심장’이라 들어도 좋을 설명이다. 노래처럼 ‘산책’은 집중하던 일상의 마침점이자 시작점이고 누구나 아무에게나 저마다의 의미를 주는 다양성과 변화의 가치도 있다. 그러니 산책은 다단한 일상 언제든, 어디에서든 가능해야 하지만 그런 여건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럴 공간이 여기저기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선언하듯 말하자면, 삶에서 “산책을 빼버린 도시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 건강하지 못한 도시는 산책이 없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산책이 없는 도시는 불행하다, 산책할 수 없는 도시는 나쁘다. 너무 직설적인지 모르겠으나, 산책을 대표하는 도시 공간은 공원이다. 사회문화적 변화가 대형 몰과 마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었다고는 하여도 나이를 막론하고 산책은 이왕이면 좋은 풍경과 느낌 있는 발걸음을 부르는 곳이어야 가능하다. 공원은 그럴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다. 기능적으로 보자면 산책은 기분 전환에 업무 효율 상승에 휴식과 치유에 모두 좋다. 도시에서 그것은 공장과 마트에 모아두고 매일 아침 전달되는 녹즙처럼 배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품질(실효성)을 생각하는 산책이라면 인위적으로 통제된 그것은 의미 없기까지 하다. 아무리 실외 공기 오염이 심해도 실내 환기가 필수인 것처럼 산책은 뭔가 다른 차별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보자면 이렇다. 산책은 먼저 땅과 함께 걷는 길을 말한다. 흙길과 풀길 없는 산책은 그대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굳건한 포장로를 무릎 아프게 오래 걷는 일은 산책길이 아니다. 운동이거나 작업이거나 어쨌든 하기 싫은 무리한 행위인 것이다. 땅을 즐기며 걷는 것은 자연과 이 지구와 내가 하나임을 실감하는 일이며 산책은 그것 자체이기도 하다. 요즈음 많은 푹신한 우레탄 포장길은 그런 점에서 적당한 산책길이 아니다. 그저 차선이자 대안일 뿐. 산책은 또 계절을 느끼며 걷는 길이다. 인위적 환경에서 통제된 생활을 이어가는 우리들 대부분이지만, 어쩌면 일기예보조차 시답잖게 여기며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날들이지만, 잠깐의 산책은 해와 달이 바뀌고 습기와 햇볕이 바뀌는 지구의 시간을 직접 체감하는 길이다. 세월의 변화를 직접 직면하는 강제적인 감상의 기회이기도 하다. 작게는 적당한 복장이나 우산 챙기기 등 실용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크게는 미세먼지나 지구환경 변화를 생각하며 분리수거를 추동하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공기의 맛만으로 날씨를 점치던 우리의 본성을 되찾는 걸음이기도 하다. 최근의 산책은 이웃과 공동체를 즐기며 걷는 길이 되기도 한다. 혼자 사는 도시가 아니라 함께 살며 어울리는 도시로 변모하며 확대되는 우리 일상을 만나볼 수 있는 길이다. 여기에는 정원문화가 널리 공유되면서 확산되고 있는 이웃과 즐기는 도시, 함께 가꾸고 나누는 도시라는 새로운 공동체성이 깔려 있다. 이쯤 되면 개인적인 산책을 사회적인 산책으로 진화시켜 준다. 다시 말해 어울려 사는 나와 우리를 드러내주는 발걸음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책은 나를 돌보며 몸을 느끼는 길이다, 감각의 행위이다. 자연에 반응하는 나를, 내 몸을 우리는 쉽게 접하지 못한다. 몸은 이미 인공물로 둘러싸여 알레르기처럼 이상 반응이 나타나기 전에는 매일 샤워하며 보는 내 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몸은 의사 선생님들이 훨씬 더 잘 알고 분석해준다. 산책은 그런 내 몸이 내 것이자 나임을 알게 해준다. 꽃향기, 강한 햇볕, 소음과 냄새 등 나만의 감각을 시험하게 한다. 때로는 이런 느낌이 있었나? 몰랐던 감각을 일깨워주는 놀라운 체현의 길이기도 하다. 병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나를 생각이 아니라 몸(육체)으로 먼저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글자로 치환되지 않는 나의 구석구석을 일깨우는 길이 된다. 우리시대의 이런 산책 경험은 다시 말하지만 공원에서 대표적이다. 그 중 서울숲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잘 만들어진 공원이다. 현대 공원은 산책을 기본 유전자로 삼는다. 버큰헤드파크가 센트럴파크가 그랬던 이유 때문이다. 산책 때문에 공원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숲은 그런데 더욱 특화된 공원이다. 공원의 원래 터는 논란과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런 대규모의 터는 여러 갈래와 여러 연결이 가능한 터의 본성을 강하게 보여준다. 공원의 유전자는 도시 건물숲의 정돈된 걷기에서 발걸음을 해방해주는 알고리즘을 가진다. 조경가는 그것을 잘 해석할 의무가 있다. 서울숲은 그런 땅과 공원의 유전자 번역을 거친 장소인 것이다. 길이 많은 공원은 최근 한국의 정원문화, 공원문화의 선두 주자들과 이들을 지원하고 이들과 함께하는 봉사자들의 전당처럼 성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언제나 다채롭고 활기 있으며 변화가 잉태되고 있는 공원으로서도 중요하다. 물론 한계는 있다. 개발 여건 변화에 따라 공원의 특성이 주변으로 확장되지 못한 것은 가장 먼저 지적되어야 한다. 공원이 욕심의 공간이 되어버린 듯 한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한 번은 겪어야 할 몸살인지도 모르겠다. 좀 길게 가는 몸살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서울숲이 여전히 여러 산책의 모습들을 너무도 쉽게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집안에만 있지 말고 어서 한 번 산책해볼 일이라는 듯 길과 걸음이 공원에 가득하다, 발밑이 무엇이었을지 상상을 접어둔 채로. 꼭 공원에서만 산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원이 어디에든 주변에 많거나 배달이 되는 것도 아니므로 서울숲 마냥 쾌적한 산책길은 사실 많지 않다. 최상은 아니더라도 안전에 유념치 않고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책길이 많은 것은 우리 도시만의 자랑이라고 할 만하다. 더욱 다행인 것은 우리 도시는 대부분 차량이나 장애물 정도에 유념하는 정도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도시라는 점이다. 필요한 것은 산책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뿐이다. “걷기는 ‘나’라는 존재의 시간과 공간에 차분하게 다시 매력을 불어넣는 방법으로 일단 집에서 나와 삶에 대한 의욕을 흐리는 구태의연한 습관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_ 다비드 르 브르통 저, 문신원 역, 『느리게 걷는 즐거움』, 북라이프, 2014, p.9.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처럼 강제로 사색에 잠기게 되는 길은 사실 산책에 적합하지 않다. 뭉크가 보여준 오슬로의 에케베르크 언덕(Ekeberg Park)처럼 강렬하게 나를 공포에 떨게 하는 길도 좋지 않다. 산책을 마치 중노동인 양 의무처럼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주변 풍광이 아무리 자연스러운 사색과 감성을 부른다하더라도 그것은 잠깐의 관광에 지나지 않는다. 풍경으로부터 나를 떼어놓기 때문이다. 일상의 산책이 그런 모습이라면 곤란하다. 우리의 뇌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을 구분하지 않는 정보처리 기능을 기본으로 한다. 디지털 시대의 우리가 상시적 주의력 결핍에 시달리며 하이퍼텍스트를 뛰어 다니는 것도 그런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산책은 직접 경험에 더 초점을 두며 산만해진 머리를 보완해 준다. 도시에서 공원이 필수적인 이유 한 가지는 거기에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사색 없는 시대가 산책 없는 일상”과 연관되고 “산책 없는 도시가 사색 없는 시대를 낳는다.”고까지 말할 수 있게 된다. 서울숲은 그런 풍경을 체험하게 한다. 공원이 아름다운 이유는 길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은 공원 안에만 있지 않다. 안팎이 경계를 드나드는 녹색의 풍경과 그 사잇길로 연결된다. 동적 경관(Landscape Sequence), 연속 경관(Sequencial Landscape)은 생각과 행동을 풍부하게 한다. 공원에 펼쳐진 물리적인 길은 결국 마음과 진로로 확장되는 것이다. 서울숲은 그런 새로운 마음의 길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다른 어떤 공원보다도 다양하다. 각자의 새로운 길이 그렇게 생성되는 공원인 것! Park 03. 길들이 춤추는 공원들, “도시의 공공공간과 공유 가치” 나무 심는 일만이 조경의 업(業)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의아해 할 사람이 많이 줄어든 시대를 지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조경에 대한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는 21세기를 지나고 있다. 역사적 전통까지 생각한 조경의 의미와 역할을 의문 없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시대를 바라는 것이 무리는 아닐 터, 작은 노력이지만 조경의 본래적 의미를 한 번 쯤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싶다. 이것이 쌓여 편견이 걷히고 모두가 도시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조경(造景, landscape architecture)은 전문분야(profession)이자 학문(scholarship)으로서 성장한 엄연한 도시 관련 대표 분야이다. 지난 시대 개발의 필요는 조경을 산림사업의 하나쯤으로 여기게 만들었다지만 이제부터라도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것이 지향하는 본래 역할을 공유하는 것이 오해를 줄이는데 중요하다. 따라서 다음의 긴 이야기는 비록 금방 잊어버릴지라도 일독을 권장한다. 조경은 기본적으로 삶의 터를 다룬다. 터를 닦고 길을 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연과 환경을 보전하고 인간과 생태를 보호하는 넓은 의미의 직업적 소명도 가진다. 생명과 지구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한 직업윤리가 필요한 분야이고 그저 나무 심고 녹색 공간을 풍부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최적의 기술과 최선의 철학이 기본인 분야이기도 하다. 이 점까지 여기서 다룰 수는 없고 우선 우리는 도시의 공원으로 맛볼 수 있는 조경의 역할을 기본적인 것 몇 가지로 되짚어보도록 하자. 1.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에 대한 올바른 이해 도시에서 조경의 역할은 전방위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조경은 오해가 많은 분야다. 몇 가지 오해를 이해로 바꾸어야 정원일(gardening)을 실천하는 우리의 시선도 풍경을 바라보는 그것처럼 여유로워질 수 있다. 우선 먼저 우리는 경관과 조경의 관계를 아래 그림과 같이 체계적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관을 어떤 측면에서 접근하여 다루느냐가 조경인 것이다. 바로 보는 ‘조경’ 일반적으로 조경(造景, Landscape Architecture)은 나무만을 다루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조경은 전문적으로 구조물을 제외한 모든 경관을 다룬다. 즉 조경은 ‘경관(景)을 만드는/다루는 행위(造)’인 것이다. 조경이 경관을 다루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고 건물 주변에 나무심어 환경을 치장하는 것으로만 이해되기 때문에 조경하면 다음과 같은 오해를 만나는 경우가 많다. ① 돈이 많이 있어야 한다? 아니다! 비용을 적게 들이고도 누구나 할 수 있다. 화초 하나만으로도 경관이 살아나곤 한다. ② 나무만 심으면 된다? 아니다! 조경은 경관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경관, 즉 풍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③ 보기에 화려한 것이 좋다? 아니다! 그림 같은 풍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알록달록 화려하다고 좋은 그림은 아니다. ④ 비싸고 귀한 나무가 많아야 한다? 아니다! 장소에 맞게 나무가 쓰여야 한다. 경관에 맞는 다양한 식물 소재가 얼마든지 있다. ⑤ 뭔가 범접 못할 신비하고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아니다! 조경은 장소에 담긴 삶의 예술이다. 소소한 일상만으로도 예술이 된다. ⑥ 도시와 농촌이 다르다? 아니다! 누구나 어디서나 조경은 가능하다. 작은 실내정원에서부터 옥상정원, 하천, 산지 등 어디에도 가능하다. ⑦ 정원과 공원이 다르다? 아니다! 자연을 대하는 방식과 자연을 제공하는 방식이 다를 뿐, 자연을 즐기고자 하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같다. 조경을 정의에서부터 살펴보자면, “자연경관과 인공환경을 연구하고 계획, 설계, 관리하는 등의 분야로서 예술적, 과학적 원리를 적용하는 분야”로 되어 있다. 건축, 토목과 같은 구조물을 다루는 분야가 아니라 그 구조물 외부의 공간 또는 외부 경관을 계획하고 설계하고 시공하는 것이 핵심을 이룬다. 조경을 할 때에는 구조물의 주변 경관을 살펴 거기에 맞는 풍경을 만들게 되는데, 대체로 개인 정원이나 공동주택의 정원, 도시공원과 녹지, 문화재, 위락 및 관광시설, 생물 서식환경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개발 개념과 함께 생태적 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어 이와 관련된 생태공원 조성, 생태통로 조성, 하천 복원, 옥상 정원, 벽면 녹화 등이 활발하게 연구되기도 한다. 시민 참여와 장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면서 이에 대한 연구와 실천 사례도 많으며, GIS, RS, AI 등 첨단 기술을 응용한 연구도 활발하다.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환경계획, 농촌시설계획, 녹색관광, 농촌 어메니티 발굴 등 지역 활성화를 위한 연구와 실천도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인공물뿐만 아니라 자연 그대로에도 복원이나 보존의 시각에서 접근한다는 점에서 개발을 기초로 하는 건축이나 도시, 토목 등의 접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야이다. 또 살아있는 것과 구조물을 동시에 다루어 생태와 문화의 접목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굉장히 폭넓은 분야에 걸쳐 경관을 조성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좋은 조경의 조건 조경이란 이처럼 건축물/구조물의 외부 경관을 다루는데, 그저 이러한 경관을 다루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생물 모두가 즐길만한 경관,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자 하는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경관을 애써 만들었는데 오히려 전보다 못하다면 그것은 잘된 조경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조경이란 아름답다는 가치가 가미된 경관 만들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름다움의 기준은 하나가 아니어서 조경으로 만든 경관이 객관적인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경가의 역할이 중요하고, 경관을 조성하는 사람의 미적 감각과 꾸준한 관심이 중요해진다. 최근에는 아름다움을 보는 시각이 예전과는 다르게 인식되고 있는데, 이는 그저 눈에 보기에 좋은 것만이 아름답다고 보았던 과거의 태도를 벗어나게 되면서부터이다. 여기서 신경 써서 즐기고자 하는 경관은 풍경이라고 달리 부를 수 있는데, 누군가에 의해서 해석되고 감상되어야만 경관은 풍경이 되어 좋은 조경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조경에서 말하는 경관이란 무엇일까. 경관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환경적 요소들 모두를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보니 사람 손이 많이 가지 않은 하천과 산지 같은 자연경관, 도로와 건물 같은 문화경관 등으로 경관이 세분되기도 한다. 경관은 본래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요소들이 너무 많으면 복잡하고 너무 적으면 단조로워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좋은 조경은 경관 요소의 많고 적음을 잘 조절하고 그것을 얼마나 잘 배치하느냐가 관건을 이룬다.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몇 가지 좋은 조경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주변과 조화를 이룬 조경이어야 한다: 조경을 하고자 할 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주변의 경관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너무 튀거나 너무 왜소한 조경은 좋지 않다. 적절한 조화는 경관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와 어울리는 경관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② 만들어진 경관에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조경이 이루어진 경관은 전체적으로 통일된 느낌이 있어야 한다. 하나의 분위기 또는 풍경으로 다양한 경관 요소들이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형태나 색상, 질감 등 시각적 요소의 통일된 구성은 경관에 질서와 비례, 균형의 느낌을 주게 된다. ③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경관이어야 한다: 너무 단조로운 경관은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몇 가지 강조가 되는 경관 요소는 자칫 침체되기 쉬운 풍경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다양성이 있는 경관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다양한 경관은 좋지 않다. 복잡한 경관이 되어 오히려 통일성을 깨트리고 어수선한 경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통일과 다양은 그래서 핵심을 이루며 그 균형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조경가란 나름의 개성적 감각으로 자신만의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는 조경전문가(조경가)를 말한다. ④ 일상 활동이 함께여야 한다: 생활과 함께하는 조경은 자연과 함께하는 것과 같다. 콘크리트 도시 속에서 녹색의 자연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실내에 있는 화분 하나만으로도 자연과 자연의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다. 손쉽게 접할 수 있고 큰 노력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⑤ 의미가 있는 조경이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경관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그저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외부 경관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 수 있지만, 왠지 그것만으로는 풍경이 주는 맛이 오래 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조경 공간이라 하더라도 의미와 체험이 있는 장소가 되도록 여러 가지 노력과 이야기가 담기는 것이 좋다. 장소성을 고려하는 것은 그러므로 기본이 된다. 조경 공간의 구분 조경 공간의 구분은 몇 가지의 기능적 특성에 따라 이루어진다. 요구되는 기능에 맞는 공간적 순서와 재료가 사용되도록 하는 것도 기본이다. 다음의 설명은 일반적인 조경공간에 대한 설명이지만 이를 참조하여 조경을 이해하고 정원의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좋은 조경이 될 것이다. ① 진입공간(진입로, 주/부출입구, 정문, 후문 등): 조경공간에는 어디에나 진입공간이 있다. 주진입과 부진입으로 나뉘어 진입의 위계가 설정되기도 하고 공간이 작은 경우 하나의 진입공간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도 한다. 진입공간에는 대부분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경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그늘을 주는 나무를 심거나 작은 화단을 만드는 등 조경이 필요하다. 특히 진입로가 길게 만들어지는 경우 차량에 방해가 되지 않게 가로수를 심어 진입로부터 인상을 살릴 필요가 있다. 간판이나 시설물을 두되 디자인이 가미된 형태로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쉽게 해결이 어려운 경우 초점이 될 수목을 두어 좋은 경관으로 살리는 것도 방법이다. ② 작업공간(논밭, 마당, 비닐하우스(온실), 휴게장소 등): 작업공간은 주로 마당과 작업공간, 창고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주요 동선이 여기를 중심으로 뻗어나간다. 작업을 항상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한 조경은 어렵다. 그렇더라도 건물 옆면이라든지 창고 뒤편 공간, 군데군데 있는 휴게장소 등에는 나무뿐만 아니라 몇 가지 조경 시설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작업하다가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주변의 어수선한 경관을 차분하게 정리해주는 역할도 조경을 통해 바랄 수 있다. ③ 생활공간(주택, 공동시설, 가로, 주차장 등):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정돈된 경관이 만들어지는 것이 좋은데, 여기서 더 나아가 보다 신경을 쓴 조경으로 지역성을 살릴 필요가 있다. 주목할 만한 꽃나무를 심거나 사계절을 고려한 화단을 두는 등 보다 적극적인 조경 식재가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세심한 풍경을 만들어 저마다의 조경공간을 대표하는 경관으로 삼는 것도 좋다. 그렇다고 너무 화려한 꽃치장은 지양하자. ④ 경계공간(경계부, 공간별 교차부분, 외부경관): 도심의 조경공간은 대체로 넓은 면적이 아니고 개방되지 않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폐쇄적인 구성이 많다. 그러나 기능적 문제를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면 가급적 개방적 경관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이는 내부의 경관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주변에 보일 아름다움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변 마을로부터의 근중원의 조망점과 조망 경관을 고려한 조경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⑤ 공유공간(실외 공간, 오픈스페이스, 공원, 공개공지 등):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공적인 도시 공간으로 공공성이 우선된다. 이용 행태와 안전성 등 고려할 사항이 많지만 잘 가꾸고 디자인된 공유공간은 도시의 가치를 높여주고 거주민의 자부심을 형성하게 한다. 다만 수많은 제약과 요청으로 인해 쉬운 의사결정이 어려운 공간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거시적, 미시적 방법론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⑥ 기타 공간(하천, 비오톱, 산지, 옥상, 벽면 등): 도시에는 많은 실외 공간이 형성되며, 최근에는 생태계를 별도로 고려한 공간 구분과 조경 도입이 기본으로 여겨진다. 정형화되기 어려운 공간이지만 도시 서비스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할 때 놓치지 않아야 할 부분이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여러 문제들을 접근하는 단초로서 이러한 공간들에 대한 별도의 접근과 이론, 이해가 필요하다. 조경식재의 기능 구분 조경에서 수목을 사용하여 경관을 조성할 때에는 각 공간별 이용 특성과 수목별 경관 특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위치와 크기로 수목을 배치해야 한다. 정원의 경우 작업 공간과 생활공간, 야적 및 창고 공간 등으로 공간 구성과 동선 구성이 이루어지므로 여기에 맞게 식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경식재의 기능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식재 기능을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정원에서의 식재 기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이렇게 나누어진 식재 기능은 각 공간별로 적절히 배치하고 이에 따라 수종을 선택하도록 한다. ① 차폐식재: 차폐식재는 시각적으로 부정적인 요인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좋지 않은 경관을 수목을 통해 적절히 가리고 내부의 쓰레기장 같은 혐오시설을 차단하도록 식재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에는 수목을 밀식하여 시각적으로나 경관적으로 차단이 가능한 측백나무류, 사철나무, 쥐똥나무 등이 사용되며, 완전하게 가리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는 수고가 높은 메타세쿼이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② 동선유도식재: 차량 및 보행을 유도하기 위한 식재를 말하는데 주로 외곽 진입로와 순환형 작업로 등이 해당한다. 도심에서는 가로수가 이에 해당하며 보행자나 자전거, 자동차 이동을 유도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작은 텃밭이나 정원에는 별도로 가로수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는 없지만 규모가 크고 동선이 분명하게 구별되는 경우 은행나무, 느티나무 같은 녹음수를 열식하여 터널식의 가로식재를 할 필요가 있는데, 가로수 식재만으로도 훌륭한 조경이 되기 때문이다. ③ 초점식재: 식재를 통해 시선을 한 곳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하며 방향성을 주는 식재 기법이다. 길이 만나거나 건물 앞마당 부분 등 시각적으로 초점이 되는 위치에 포인트가 되는 나무를 심어 경관을 살리는 경우이다. 보통 조형성이 높은 수종을 식재하여 공간의 개성을 나타내므로 고가의 수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조형 향나무, 조형 소나무 등 고가의 나무도 좋지만 그보다는 경관에 맞는 느티나무, 섬잣나무, 모과나무, 목련, 단풍나무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사용하면 경제적이다. ④ 경관식재: 중요한 경관을 부각시키거나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기 위해 식재하는 경우로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핵심이다.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데 식재의 목적이 있으므로,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볼륨으로 수목이 위치하도록 한다. 군식이 필요한 곳과 단독목으로 경관이 강조되는 경우를 구분하여 식재한다. 계수나무, 자귀나무, 목련 등 고급스럽고 화려한 수종은 단독 또는 소수로 경관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녹음이 푸르게 형성되어야 하는 곳에는 어떤 수종이든 구하기 쉬운 수목을 군집 형태로 사용한다. 철쭉, 회양목 등 관목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⑤ 경계식재: 공간을 기능별로 구분하고 분리해 주는 역할을 하며, 영역을 설정해 주는 식재를 말한다. 철재 또는 목재 울타리로 경계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가급적 강한 인공 시설로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시설물로 경계를 구분해야 하는 경우 경관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수목을 추가로 식재하는 것이 좋다. 특히 외부에서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경관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효과적이며, 차폐의 기능과 동선유도의 기능을 동시에 하도록 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2. 우리 시대 도시와 조경의 방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라!” 현대 정원문화, 공원문화는 변화를 맞고 있는데 호사취미가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자연이자 공동의 일상 활동으로 전환되고 있다. 여기에 이전부터 그래왔듯 외부의 도움을 바랄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도시 풍경을 개선하려는 각자가 주인공이라는 성찰과 그런 주인공들의 교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사는 도시 공간 및 환경 그 자체를 미적 장(the aesthetic field)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깔려 있으며, 이를 통해 도시의 여러 주인공들(urban actors)이 미적 감성(the Aesthetics)을 소통하려는 욕구가 확산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제 도시의 일상 환경이 하나의 정원으로 인식됨을 잊지 않아야 한다. 현대 정원문화는 이미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모르는 새 우리의 정원과 정원문화가 이미 “의생어중(義生於衆), 심생어원(心生於園)”의 그것을 찾아 움직이고 있음을 성찰할 때가 되었다. 언제나 정원은 생각과 소통의 마당이자 모든 정원사의 스승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새로운 공원문화도 그 갈피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은 우리 도시를 경관이 아니라 풍경으로 보려는 태도에 있다. 물리적 외부 요소로서의 경관이 아니라 감성과 느낌의 내외부 요인으로서의 풍경을 그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다. 풍경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흔하게 쓰인다. 그것은 물리적인 경우도 그렇고 사유나 문화와 같이 개념적인 경우도 그렇다. 다시 말해 실체가 있는 풍경도, 그렇지 않은 풍경도 우리는 흔히 사용한다. 생각해보면 풍경이란 말(개념)은 그 위치나 내용을 고정하기가 어려운데, 그러면서도 우리 사이에서 쉽게 통용되니 뭔가 특별한 지위를 가진 것에는 틀림없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나’로부터 시작되는 풍경, ‘경관’으로부터 시작되는 풍경에 대해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경계와 대화하기; 발견하는 풍경과 설정하는 풍경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의 위력을 쉽게 체감하지 못하고 인공의 환경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도시로 경계 지어진 행동의 반경이 일상의 반경이기도 한 것은 대부분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삶이 무르익으면 우리는 대부분 전원을 찾아 조금은 덜 인공적일 것 같은 환경으로 삶의 자리를 옮기곤 한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이런 세태에도 변화가 있어 기존의 밀집된 도시에서도 경계 없이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자연과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인공의 경계 속에서 하나둘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정원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문화는 가히 정원의 원형을 제4의 본질로 생활기반의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이라고까지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시대의 변화이고 문화의 전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변화는 뭔가 다른 경지를 우리에게 성찰하도록 요청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공동사회와 이익사회의 중간쯤에 놓인 우리의 생활문화가 새로운 첨단을 시험하는 첫 관문에 들어선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고, 핵심은 동서양 자연관의 차이에서 이러한 성찰의 가치와 지평이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동양 자연관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점은 삶의 환경을 자연과 인공이라는 두 주인공만으로 압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자연과 인공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단순화(dualism)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자연과 사회라는 보다 포괄적인 경계설정이 그 본질로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절대법칙으로 자리하지 않고 생활문화 전반으로 그 실체를 분명하게 못 박지 않은 채 저변을 이루게 된다. 철학자의 말대로 ‘기우뚱한 균형’은 그렇게 삶의 기초로서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시작되는 풍경을 따져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로부터 담(생활환경) 너머, 자연(경관) 너머는 풍경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시 크게 두 가지 범주로 감흥의 소통을 담지하게 한다. 먼저, 발견하는 풍경은 내면적이고 참여미학적이다. 그것은 적극적인 참여(engagement)를 부르고 소통을 이끄는 방식이다. 다음, 설정하는 풍경은 외향적이다. 그것은 구축적 합리와 감성적 통리가 경관으로부터 피어나게 한다. 내면에 녹아있는 감성을 먼저 자극하는 풍경이 되게 하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는 자연과 대화하는 우리(인간, 사회)를 이끌며 물리적 실체가 아닌 감성적 실재로서 ‘우리시대 저마다의 풍경’을 시작되게 한다. 시퀀스적 풍경과 풍경적 시퀀스 풍경이란 결국 우리 주변의 ‘경계’들과 대화하는 한 방식이자 매체(channel)라고 할 수 있다. 대화는 동적이어서 흐름(flow & follow)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가 흔히 잊곤 하지만 풍경은 그렇게 고정된 풍경(그림)이 아니라 흐름을 내포한 담지체라고 할 수 있다. 흐름으로 보는 풍경은 새로운 생각과 이론을 불러오는데 연결성(sequence)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 중요한 한 가지 방식이다. 그간 우리는 이 점을 심도 있게 다루지 못했다. 동적이라는 것은 그 만큼 앉혀놓고 판별하기 어려운 상황을 다루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딜 가든 주변(파노라믹 경관)을 먼저 살핀다. 상황(situation)을 파악하는 것은 자연에서든 사람 사이(사회)에서든 중요하다. 이것은 발견하는 풍경과 소통하는 풍경이 결국 ‘전체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주며 풍경을 보기 전에 전체(경관)를 먼저 살펴야(지나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지적해 준다. 여기서 전체는 부분들의 합 이상을 이루며, 풍경이 설정되는 것도 이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앞서 살핀 두 가지 풍경의 범주가 그런 전반적인 관계성과 연관됨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의 네 가지는 결론적으로 새로운 관점으로 정원을 통해 풍경을 진화시키고 있는 우리시대 풍경(개념)의 단면을 보여준다. ① 원로(園路): 담지적 풍경, 움직이는 주인공. 먼저 가있는 감성(viewpoint) 원로는 흔히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우리시대에 집중해서 살펴야 할 경관 및 풍경과 관련된 개념어이자 실행개념이다. 원로는 그 자체로 담지적 풍경들의 연속이며, 그러한 연속성의 구성(originality)은 감성을 옮겨가게 한다. 정원은(공원 포함) 이러한 원로들의 마당(field)이며 움직이는 이용자들에게 저마다의 연속성을 스스로 체험하게 한다. 풍경의 시퀀스는 그렇게 형성되며, 이것은 장소를 형성하는 기본이 된다. ② 차경(借景): 들고나는 관점. 우리시대 정원과 공원의 생산성(productivity) 담 너머 풍경은 주인공이 없이는 안으로 향할 수 없다. 차경이란 결국 주인공을 먼저 상정하는 방식인 것이다. 흔히 우리는 차경하면 일방적 끌어들임을 생각하기 쉽지만 소통과 교류가 없이는 이를 얘기하기 어렵다. 풍경은 그렇게 발생하는 결과중의 하나이자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관점을 고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경은 안팎을 동시에 고려하는 방식이다. 건물과 정원(공원)을 들고나게 하며 우리시대 차경은 풍경(과 관점)을 그렇게 들고나게 한다. 차경은 풍경의 역동성을 그렇게 자극하는 방식이다. ③ 의경(意景): 미리 담은 속마음. 생성적 자연과 생성적 자연관 자연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경관도 그렇다. 그러나 풍경이 되면서는 달라진다. 말(이야기)하기도 하고 말하게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말이 되지 않으면 풍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의경은 풍경이 가능할 때에야 나타난다. 의경은 그대로 생성적(Becoming) 방식이어서 말없는 자연을 말하게 하는 핵심이 된다. 풍경의 다음에서야 이루어지는 이것은 그런데 먼저 담긴 것, 미리 담은 것을 함의하기도 한다. 이분법을 벗어난 우리는 말이 없는 자연에 말을 담기도 말을 꺼내기도 하는 것은 그것이 풍경이 되면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④ 생활(生活): 멀지 않은 풍경, 일상에서 즐기는 생활기반(life-structure) 다시 말하지만 우리 도시는 우리 인류에게 처음인 환경이다. 처음인 생활이다. 그리고 처음인 풍경이 되고 있다. 본능적 가꾸기는 이런 환경에서 빛을 발하며 우리시대 삶터 변화와 진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살펴보면 자연을 즐기려는 여러 욕구의 방향들이 이미 여기저기에서 제각각인데, 그것들은 의미 없고 생각 없는 환경(자연)에 의지를 담아 즐기려는 새로운 생활양식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우리시대 경관이 인프라라면 풍경은 생활인프라로 성장하고 있다. 공원과 정원에 더한 생활기반으로서의 풍경은 새로운 주인공으로 주목받고 있다. 풍경은 그렇게 연속되거나 연속을 이끌거나, 불연속을 뛰어넘거나 하면서 존재한다. 경관이 풍경으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이러한 힘이 작용하지만 경관은 그것과 관계없다. 우리는 이제 우리 도시의 풍경이 그렇게 만들어져 왔음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우리 도시의 경관이 그러한 과정 없이 다루어져 왔음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런 자문도 가능하다. 변화하는 아름다움이 만들어놓은 우리시대의 경관에는 풍경이 있는가? 우리시대의 경관에는 시퀀스적 풍경이 있는가, 풍경적 시퀀스가 있는가? 생각의 아름다움화, 풍경의 예술화 우리는 흔히 잊지만 아름다움(개념)은 달라지고 변화한다. 시절에 따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아름다움이 이 지구를 가만두지 않기도 했다. 풍경은 그 위치가 내면이면서도 그 지향이 자연이이어서 달라지는 아름다움에 따라 우리의 내면을 움직이게도 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풍경 안팎의 문화적 본질이다. 그리고 흔히 잊는 또 하나는 그것의 바탕에 감각을 지원하는 생각(이해)이 흐른다는 점이다. 생각이 담긴 아름다움은 그런 점에서 예술을 지향하고 작품이 되고자 한다. 풍경이 하나의 작품처럼 소통을 기다리며 그림에 담길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풍경화는 그렇게 그 시절의 아름다움(생각)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이다. 작품이 되는 풍경은 그런 점에서 감성과 이성을 이끄는 원본성이 필요하다. 우리시대 정원이 문화가 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아름다움의 표현(풍경) 또한 이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생각과 원본성, 이것에 바탕하는 정원 속 풍경이라면 그 자체로 예술(정원예술)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시대, 우리에게 풍경에는 어떤 아름다움과 어떤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일까? 아니 먼저 그것을 담을 경관을 제대로 이해하고는 있는가? 풍경으로 역동칠 우리 삶터의 경관은 어떤 이론과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우리시대 경관이란 무엇인가? 풍경을 볼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많아져야 할 때이다. 3. 조경이 그리는 공동체 정원, “주민을 주인공으로!” 공동체 정원은 다양한 정원 유형 중의 하나이다. 중요한 점은 정원을 조성하고 유지관리하는데 그 주인공들이 부각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공동체 정원은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과 정원을 즐기며 유지관리 하는 과정 자체에 중점을 두는 참여형 정원 유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원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의 문제보다는 공동체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할 필요가 있고, 다양한 의사를 가진 주민들을 상대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를 리드할 수 있는 여러 수법과 리딩의 경험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참여하는 주민들의 정원 가꾸기 참여 정도 또는 열망에 따라 공동체 정원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참여하는 주민이 주인공이라는 점만을 충분히 주지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를 달성했다고 할 수도 있다. 농촌 지역에서의 경우 고령화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이러한 사업의 추진이 상당히 어려울 수 있지만, 이미 도시 지역의 경우 많은 연구와 실천 경험을 통해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를 획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변화하는 정원문화의 트렌드에 맞춰 공동체 정원을 장려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형식과 실행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충분히 습득하고 실행에 임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 정원의 개념과 새로운 의미 공동체 정원은 여러 형태로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으나 공동체(community)가 주인공이 되는 공공의 정원(public garden)이라고 기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기존의 정원이나 공원의 중간쯤에 놓이는 것으로, 실행하고 지원하는 방식이나 주체에 따라 그 범위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대체로 지역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꽃이나 식물을 좋아하고, 흙과 가까이 하는 것을 좋아하며, 도심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적인 활동공간을 확보하고,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텃밭이나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것”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커뮤니티 가든은 유럽의 경우 도심의 적절한 공간을 주민에게 분배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온 역사가 있으며 근현대로 넘어오면서는 정원문화의 확산과 함께 도시를 친환경적으로 재조정하는 역할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메리카의 경우 도시농사를 테마로 식량 생산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정책적으로 장려된 바 있으며 1970년대에 들어서야 문화 활동이자 시민운동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서구의 커뮤니티 가든은 지역마다 역사와 배경이 다르게 작용하여 현재의 모습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커뮤니티 가든의 효과가 “먹거리의 생산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식물의 체험, 협동작업과 자연물을 통한 힐링, 방치된 지역 공간 활용이나 교류가 없던 지역민 참여를 통한 지역 활성화, 인근 주민들의 매개체 역할을 통한 지역사회 재형성, 녹색의 친환경 마을 만들기, 재해나 범죄 대비를 위한 피난처” 등 식물의 직접적 생산과 육성의 측면 이외의 것들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공동체 정원은 ‘정원이라는 물리적 실체, 생산 활동이라는 결과’가 중심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교류와 문화적 창의성이라는 측면에서 그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업과 도시재생 사업, 다양한 주체간 파트너쉽 등에서 그 가치가 증대되고 있으며 새로운 유형과 진행 형식들도 나타나고 있다. 주민주도 정원 조성의 유의점 공동체 정원은 주민의 생활공간과 가깝다는 점에서 많은 장단점을 가진다. 주어진 대상지가 어떠하냐에 따라 운영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고 주민의 참여도와 정원 관련 지식의 정도에 따라 가변성이 크다. 그간의 연구에서 제시된 참고할 만한 공동체 정원의 대상공간은 다음 표와 같다. 그러나 도시 공간 중 공동체 활동이 가능한 옥외공간이라면 충분히 공동체 정원으로 활용을 고민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대상지에 대한 고민을 우선할 것이 아니라 정원을 어떻게 형성하고 운영해 갈 것인지를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상지의 윤곽이 어느 정도 정해지면 이에 참여할 주인공들을 찾고 지원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년회, 노인회, 부녀회, 주민자치회, 각종 시민단체, 환경단체 등” 기존 대상지와 관련하여 주민들이 자주 모이거나 모임이 가능한 기존 지역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공동체 정원의 취지와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주민 리더를 중심으로 주인공들을 찾아내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의 경우 행정에서 일종의 조력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으며 기존 도시재생 관련 활동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사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먼저 이루어진 후 실행에 나서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농림부에서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매뉴얼 또는 가이드라인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므로 행정 담당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발적으로 주민모임을 형성하여 행정의 도움 없이 공동체 정원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주민들도 있으니 이들을 리더로 육성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수원시의 경우 이러한 주민참여형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공동체 정원을 운영할 수 있는 주민 역량이 상당히 높아져 있는 경우로 유명하다. 어떤 정원을 만들 것인가 부터는 참여하는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상지를 선정하고 어떤 설계안을 마련하여 적용할지 가급적 주민 리더를 통해 결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기술적인 필요가 반드시 필요하게 되는데 이때 적합한 전문가의 도움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특히 공사 진행시 발생할 수 있는 전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주민이 먼저가 아니라 행정 담당자가 사전에 검토하고 확인하여 예방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주민은 어떤 상황에서도 전문가가 아님을 잊지 않아야 한다. 공동체 정원의 운영과 활용 공동체 정원은 지역 사정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다음의 네 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University of California, Division of Agriculture and Natural. “Community Gardens,” marinmg.ucanr.edu, Retrieved 2017-05-22.) 그러나 사실 이러한 유형은 개략적인 것으로 관점에 따라 더 많은 범주로 유형화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웃 정원(Neighborhood gardens)은 과일, 야채 및 관상용 식물을 재배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정원으로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가장 흔한 유형이다. 그것은 명목상 연회비로 지불하는 정원사들 개개인의 임대하는 개인 또는 공공 토지의 구획으로 식별 할 수 있다. · 거주민 정원(Residential Gardens)은 일반적으로 아파트 공동체, 보조 생활 및 저렴한 주택 단위의 주민들이 공유한다. 이 정원은 거주를 전제로 하는 주민들에 의해 조직되고 관리된다. · 단체 정원(Institutional Gardens)은 공공 기관 또는 사설 기관에 연계되며 주민에게 많은 유익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신적 또는 육체적 재활 및 치료뿐만 아니라 직업 관련 기술을 가르치는 것까지도 해당한다. · 시범 정원(Demonstration Gardens)은 교육 및 레크리에이션을 목적으로 사용된다. 짧은 세미나 또는 정원 가꾸기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제공하고 공동체 정원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은 운영의 중점을 어디에 두고 지원할 것인가와 관련되고 실제적인 실행의 중요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공동체 정원이 어느 하나의 유형으로 고착되지 않고 각 유형이 상보적으로 섞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각각 특징이나 방법이 다르므로 적합한 유형을 설정하고 지원 방안을 찾는 정도에서 공동체 정원의 각 유형을 고민해 최적의 방식을 찾을 필요는 충분하다. 미대륙의 경우 공동체 정원은 식량 재배와 소비라는 측면에서 각광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저소득층 도시민들에게 중요한 기능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지적되는 것은 이웃들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와 장소를 제공하였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범죄를 줄이는 동시에, 정치적 조직화의 장이 되는 등 다양한 이점을 가져왔다.(데이빗 헤스, “도시농업, 미국: 커뮤니티 가든의 폭넓은 역할”, 『환경과조경』 2011년 7월호) 반면에 몇몇 문제들도 지적되는데 토지 이용 문제가 먼저 지적된다. 지가 상승 압력으로 인해 개발 압력이 증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원을 가꾸고자 하는 사람들과 개발을 추진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충돌이 있었고 정치적 갈등 요소로까지 확대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뉴욕시에서의 경우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자 개발업자의 편을 드는 시와 정원을 가꾸던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이러한 갈등을 비영리 단체가 개입하여 토지를 매입하면서 해결한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공동체 정원을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다양한 사회적 반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특히 도시재생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도시 문제 해결 방안 중에서 활성화 된 도심에 개발 압력으로 등장하며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큰 사회문제로까지 등장하고 있다. 공동체 정원에 있어서도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안명준 조경평론가eirene95@naver.com
    • 2019-06-16
  • [기고] 명승 제35호 성락원 연원의 재검토
    명승 제35호인 성락원의 원래 주인에 대한 재검토의 문제가 불거졌다.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沈相應)의 별서였다는 기존의 설명과 달리 심상응이란 인물이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으면서 벌어진 논란이다. 이러한 진위논쟁은 성락원에 각자(刻字)된 ‘영벽지(影碧池)’ 시문의 출처가 밝혀지면서 전기를 맞게 되었다. 황윤명(黃允明)의 『춘파유고(春坡遺稿)』에 수록된 「인수위소지(引水爲小池)」라는 시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논의를 보면 성락원은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의문을 품게 한다. 하나는 성락원을 조선시대에 조성된 정원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성락원의 존재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도에서만 확인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하나는 성락원이 우리나라 전통 정원으로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과연 성락원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정원으로 평가하기에 무색한 곳일까. 이러한 의문의 실마리를 해결하는 데 주목할 만한 자료가 있다. 1887~1888년 정선군수(旌善郡守)를 지낸 오횡묵(吳宖黙, 1834~?)의 『총쇄(叢瑣)』에 기록된 내용을 아래에 밝힌다. “북쪽 시내로 방향을 돌려 시내가로 난 오솔길을 따라 1리 쯤 들어갔다. 길이 구불구불 돌고 아름다운 나무가 무더기로 빽빽하며 기이한 새와 꽃들이 세속 사람의 이목을 번쩍 뜨이고 기쁘게 하였다. 걸음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취병(翠屛) 하나가 있는데 제도가 매우 오묘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듯한 하나의 정자가 걸음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니 바로 황춘파(黃春坡: 황윤명) 선생의 별서이다. 제도가 작고 경계가 그윽하며 폭포물이 떨어지고 향기로운 화훼가 형형색색이라 사람을 기쁘게 할 만 했다.”_ 오횡묵, 『강원도정선군총쇄록(江原道旌善郡叢瑣錄)』 1887년(고종 24) 4월 25일. 오횡묵이 1887년(고종 24) 4월 25일 황윤명의 별서를 기록한 내용의 일부이다. 이때 오횡묵은 혜화문(惠化門)으로 나가 성북동에 들러 참판 김병시(金炳始)의 집과 민영환(閔泳煥)의 별업을 방문하고 이어서 황윤명의 별서를 둘러보았다. 오횡묵의 언급대로 대단히 아름다운 제도를 갖춘 별서였음을 상상하게 한다. 특히 이어지는 내용에서 오횡묵은 정자에 몇 편의 시가 걸려 있어 읊으니 대단히 청아했다며 감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위 글을 쓴 시기가 1887년으로 결국 19세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별서였음을 증언한다. 이후 오횡묵은 황윤명과 친교를 맺고 다시 황윤명의 별서를 방문했다. “참봉(參奉) 이승국(李承國)은 호가 청몽(淸夢)으로 산을 구경하는 벽(癖)이 있다. 일찍이 함께 가기로 약속했는데, 내가 황춘파를 방문하기로 하여 청몽(이승국)에게 먼저 광릉천점(光陵川店)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혜화문에서 황춘파의 계정(溪亭)으로 들어갔다. 춘파는 몇 년 간 병환으로 인해 조제를 불러다 머무르게 하였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몹시 기뻐했다. 안부를 묻는 동안 몇 시간이 지났기에 억지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별장을 나섰다.” _ 오횡묵, 『경상도고성부총쇄록(慶尙道固城府叢鎻錄)』 1894년(고종 31) 10월 20일. 1894년 10월 20일 오횡묵이 이승국과 약조하고 도성을 나서는 길에 황윤명의 별서를 들른 기록이다. 당시 황윤명은 건강이 좋지 않아 병환을 다스리고 있다고 하였다. 황윤명의 『춘파유고』에 자신의 병세를 자조한 시문이 종종 보이는데 어쩌면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일인지 모른다. 이때 오횡묵이 방문하자 황윤명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몇 시간 대화를 나눈 끝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1887년 묘사된 그의 별서가 이때까지 지속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상은 성락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황윤명 별서 기록의 일부에 불과하다. 황윤명의 『춘파유고』를 보면 영벽지에 석가산을 조성한 사실은 이미 밝혀진 바이고, 국화, 대나무, 오동나무 등 화목(花木)의 기록도 곳곳에서 산견된다. 비가 많이 내린 날에는 그곳에 배를 띄워 손자들과 노닐었다고 하였다. 앞서 오횡묵이 선경(仙境)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했던 설명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19세기 한말사대가의 한 사람인 강위(姜瑋)는 1870년대 육교시사(六橋詩社)를 통해 당대 명성을 드날렸다. 이들의 모임을 기록한 『육교연음집(六橋聯吟集)』에도 황윤명의 별서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당시 강위는 황춘파(황윤명)의 시옥(詩屋)에서 문형당(文衡堂: 문유용), 김추당(金秋棠: 김창순) 이취당(李取堂: 이원긍) 이소화(李小華: 이시영), 주소창(朱小滄: 주우남)과 만나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였다. 강위가 말한 곳이 성락원과 동일한 장소인지 여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나 강위의 몰년이 1884년임을 고려하면 황윤명이 별서를 경영한 시기는 그보다 이전일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황윤명의 별서는 본래 존재했던 누군가의 정원을 이어받아 경영되며 주변 문인들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화재청에서도 관련 학자들이 모여 사료를 검증 중이라고 하니 성락원의 가치를 정립하는 일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김세호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문학박사 *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세호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문학박사shils@naver.com
    • 2019-06-12
  • [기고] 나무는 나무란다
    경복궁 후원에 향원지(香遠池)란 연못이 있다. 향원지에는 원형의 섬이 있고, 섬에는 육각 2층 정자인 향원정(香遠亭)이 있다. 그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취향교(醉香橋)라는 목교를 건너야 한다. 향원지, 향원정, 취향교의 공통 키워드는 연(蓮)이다. 북송시대 학자 염계 주돈이(濂溪 周敦頤, 1017~1073)는 애련설(愛蓮說)에서 군자가 지녀야 하는 성정을 연(蓮)의 성질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칭송하고 있다.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어 있고 밖은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 치지도 않으며,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더 맑고(香遠益淸)’ 우뚝한 모습으로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함부로 하거나 가지고 놀 수 없음을 사랑한다. 연꽃 향을 표현한 '향원익청(香遠益淸)'이란 구절이 경복궁 후원의 경관요소로 사용됐다. 연의 뿌리, 줄기, 잎, 연자, 꽃, 종자주머니 등은 식재료, 약재, 화훼장식용, 직물, 염주, 향수, 공예 및 놀이용품, 조경용 등 다양하게 사용될 정도로 유용한 식물자원이다. 미국 태생의 아동문학가 셸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 1930~1999)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에서 나무의 성질을 부모의 성정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예찬하고 있다. 한 소년이 사과나무 곁에서 놀고 있다. 그러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면 따먹고, 소년이 자라 청년이 되어 결혼을 한다. 청년은 사과나무 가지를 잘라서 신부와 함께 살 집을 짓는다. 또 세월이 흘러 청년은 장년이 됐다. 이번에는 아예 사과나무 둥치를 베어 배를 만들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노인이 된다. 이제 기력이 다해버린 소년에게 사과나무는 그루터기에 와서 쉴 것을 권한다. 노인이 된 소년은 앉아서 쉰다. 그 모습을 본 사과나무는 행복해 한다. 한국의 현대 수필가 이양하 (李敭河, 1904~1963)는 자신의 수필집 '나무'에서 나무를 의인화하여 성자와 같은 나무의 삶을 예찬하며, 나무를 닮은 삶을 살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아는 덕을 지녔다. 나무에게는 달과 바람과 새 같은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을 차별 대우하는 법도 없고 그들이 오고 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나무의 가장 좋은 친구는 서로 이웃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같은 나무들이다. 나무는 각자 천성대로 가지를 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에 힘쓸 따름이다. 그리고 언제나 하늘을 향해 손을 펼쳐 들고 감사하고 묵도한다. 나무는 견인주의자이며 고독한 철학자이자 현인이다. 인류의 발전사를 돌이켜보면 식물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이로움은 설명이 구차하다. 식물이 없었다면 과연 인간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철학적인듯 하지만 어리석은 질문이다. 진화론적 관점이든 창조론적 관점이든 인간은 식물 없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도 미래에도 식물없는 인간의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호흡 작용을 통해 생명유지 기능에 필요한 산소를 식물로부터 공급받고 체내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호흡의 주된 목적은 산소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우리 몸에서 빨리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요즘에는 ‘(초)미세먼지 농도는 어때’가 주된 아침 인사가 되어버렸다. 비상이다. 인간의 생명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인체의 탄소교환 활동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집, 사무실, 학교, 유치원 그리고 도시와 농촌, 산촌, 어촌을 가리지 않고 전 국토, 모든 곳에서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국가 차원의 환경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때문이다.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진단이 따른다. 중국발생, 화력발전소, 자동차배기가스 등이다. 하지만 대처방안은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다. 발생 원인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안된다.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마지막 해결사 '나무'가 호출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 지자체, 기업, 그리고 사람들마다 나무를 심겠다고 나선다. 20년 전에 시행되었던 ‘생명의 나무 1000만 그루심기(1998~2002)’는 고건 31대 서울시장의 주요 시책 사업이었다. 그리고 20년후, ‘아낌없이 주는 나무심기 프로젝트’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요 시책 사업으로 다시 소환됐다. 그리고 순천시, 울산시, 창원시,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몇 년 전부터 혹은 올해부터 슬로건처럼 내민 정책이 ‘1000만 그루 나무심기’다. 이중 대전시, 광주시, 서울시 등은 올해부터 3000만 그루 나무심기로 상향조정했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처럼 인류를 위한 인간의 마지막 소명 같은 것이다. 그동안 국가, 단체, 개인 차원에서 많은 나무를 심고 가꾸어 왔다.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조경인들도 이제 나무를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달리해야 한다. 염계 주돈이, 셸 실버스타인, 이양하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를 바라보자. 군자, 부모님, 현인처럼 말이다. 너무나 거창한가? 그렇다면 부모가 갓난아이를 돌보듯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어떠한가? 아이가 태어나면 매일 같이 씻기며,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인다. 우리도 나무에 이렇게 해야 한다. 전국 모든 도로변 가로수의 생육환경에는 공통점이 있다. 전선이 지나가는 곳, 간판이 있는 곳의 나무줄기와 가지는 강전정을 당한다. 통신맨홀, 상수도관, 하수도관, 우수관, 도시가스관 등이 지나는 곳의 뿌리는 가차 없이 잘려나간다. 겨울철 눈 온 뒤의 차량과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뿌려지는 염화칼슘은 가로수가 심겨있는 땅속으로 스며든다. 나무를 심자. 하지만 먼저, 심겨진 나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관리하자. 철학적이거나 문학적 감수성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나무가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 중구는 지난 2006년부터 가로수를 버즘나무에서 소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2008년에는 을지로입구역에서 을지로3가 까지를 ‘속초의 거리’라 명명하고 그 거리에 속초시로부터 기증받은 소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소나무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편견이 있었다. 소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백두대간 산마루, 해가 잘 드는 남쪽에 면해서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많은 자동차와 사람이 지나다니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가로수로 식재된 소나무와 관리노력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중구의 이야기다. 중구는 매년 주기적으로 가로수와 주요수종에 목욕을 시킨다. 자동차 매연, 황사, 미세먼지 등에 의해 얼룩진 잎과 줄기에 묻어있는 찌든 때를 씻어준다. 나무 목욕은 뿌리가 있는 곳의 토양에 스며들어 염화칼슘을 중화시키고 배출시켜 뿌리가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어린아이를 대하듯 때론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대하듯 나무를 샤워시키는 것이 중구의 소나무가 건강한 이유였다. ‘나무도 숨을 쉰다.’ 우리가 종종 잊고 지내는 사실이다. 뿌리가 건강해야 줄기가 건강하고, 잎도 건강해서 호흡작용이 잘 이루어진다. 이제는 나무도 숨을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를 자기 몸 안에 가두며 인류에게 필요한 산소를 내어준다. 나무가 묻는다.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나무는 나무란다. 박경복 한국정원산업협동조합 이사장 / 가든프로젝트 대표
    • 박경복 한국정원산업협동조합 이사장1059501@naver.com
    • 2019-06-09
  • [놀이터 톺아보기, 톺아짓기] 놀이터 만들기 ③ _ 통합놀이터(1)
    2015년 대웅제약과 아름다운재단이 후원하고 통합놀이터만들기네트워크가 주최가 되어 어린이대공원에 통합놀이터의 가치를 지향하는 ‘꿈틀꿈틀 놀이터’를 조성했다. 이후 아이들의 놀 권리, 새로운 형태의 놀이터를 요구하는 사회적 흐름과 맞물려 통합놀이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하고 있고 여러 지역에 조성되고 있다. 그런데 통합놀이터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알려지기 전에도 이미 통합놀이터의 가치를 추구하는 놀이시설은 동네 놀이터 곳곳에 있었다. 이미 마주쳤던 통합놀이시설 아래의 첫 번째 사진은 서울시내 한 놀이터에서 본 조합놀이대 모습이다. 조합놀이대에 오르는 계단이 두 방향으로 나아있다. 한 쪽은 계단 폭과 높이가 좁고 낮은 일반적인 계단이고, 다른 쪽은 계단 폭이 넓고 높이가 높다. 그런데 다른 사진을 보면 계단이 왜 두 곳에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높은 계단은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몸을 가누기 어려운 아이가 시설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이러한 장치를 영어로는 ‘transfer systems’라 하는데 우리말로는 ‘옮겨타기 시스템’이라 번역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미국의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Accessibility Guidelines(미국 장애인법 접근성 지침, 이하 ADAAG)’에 제시돼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1990년에 제정된 장애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시민권법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미국 장애인법, 이하 ADA)’에 따라 작성된 것이고 놀이터를 포함해 여러 환경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디자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옮겨 타기 시스템은 ‘옮겨타기 플랫폼’, ‘옮겨타기 계단’, ‘옮겨타기 지지대’로 구분된다. 각 요소의 디자인 원칙과 규격은 가이드라인에 자세히 명시돼 있다. 그런데 앞서 보았던 국내의 조합놀이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옮겨타기 시스템 가까운 곳에 낮은 미끄럼틀이 있다. 조합놀이대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아이는 올라가면 되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더 오를 필요 없이 낮은 곳의 미끄럼을 타면 된다. 이 시설물이 설치된 놀이터 어디에도 옮겨타기 시스템이나 시설물 구성의 이유를 설명하는 안내문은 없지만 아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이 시설물을 즐겼을 것이다. 통합놀이터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모든 아동이 놀이터나 놀이시설에 접근해 자신의 능력에 따라 놀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렇게 우리나라에 수입된 미국의 제품이나 미국의 제품을 참조하여 제작된 국내 놀이시설물 덕분에 인식하지 못하고 통합놀이시설물을 이미 만나고 있었듯이, 통합놀이터는 그리 별난 게 아니다. 통합놀이터, 장애인의 사회적 통합 영어로는 ‘inclusive playground’인 ‘통합놀이터’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몇몇 사람들은 단어에서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함께 노는 놀이터라는 개념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통합’이라는 단어를 장애아와 비장애아의 ‘통합’만으로 한정시키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런데 왜 ‘통합’이라는 단어를 쓸까? ‘통합 놀이터’는 장애인을 장애인 시설에 고립시키지 말고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살도록 해야 한다는 ‘장애인의 사회적 통합’을 지향하는 시민운동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2018년 ‘어른이 되면’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공개되었고 같은 이름으로 책도 발간됐다. 이 영화의 감독은 18년간 장애인 수용시설에 살았던 중증발달장애인 동생이 시설에서 나와 자신과 사회에서 살기 시작한 첫 6개월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 제작 당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에서 제작비 모금이 이뤄졌다. 장애인의 ‘탈시설’에 대한 이해를 위해 텀블벅에 실렸던 소개 글의 일부를 옮겨 본다.“시설은 보살핌과 지원보다는 통제와 ‘순육(順育)’을 제공합니다. 순육이란 말 그대로 순하게, 고분고분하게 되도록 기른다는 뜻입니다. 시설은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돌보고 지원하기보다는 장애인들을 시설의 규칙에 맞추어 통제합니다. 시설은 장애인들에게 ‘조용히, 얌전히, 가만히 시설의 규칙에 따르기’를 요구합니다.” (자료: https://tumblbug.com/grown_up) 장애인이 몇 명 이용하냐구요? 통합놀이터를 지어야 한다고 하면 받는 질문이 있다. ‘그 동네에 장애아가 몇 명이 있는지?’이다. 또 지었다고 한다면 ‘몇 명의 아동이 이용하는지?’라는 질문도 받는다. 물론 수요조사나 이용 후 평가는 보다 정밀한 현장 진단을 위해 필요하지만, 통합놀이터나 통합놀이터 디자인의 준거가 되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추구하는 바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다. 우리가 계단 옆에 경사로를 놓는 건 단지 장애인만을 위한 건 아니지 않는가? 유모차를 모는 사람, 관절이 좋지 않은 사람도 경사로를 선호한다. 어린이대공원 꿈틀꿈틀 놀이터에 벨트 그네를 설치했더니, 몸을 가누기 어려운 장애아뿐만 아니라 혼자 그네 줄을 잡기 어려운 유아들도 그네를 탈 수 있게 되어 반응이 좋았다. 또 높이가 있는 모래테이블은 다양한 방식의 놀이를 유도한다. 턱이 없는 회전무대는 휠체어 이용자의 접근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안전성이 높아져 많은 아이들에게 놀이 기회를 제공한다. 유니버설디자인이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듯이, 통합놀이터도 장애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아이들이 자신의 신체적 능력과 특성에 맞게 그리고 그 차이를 넘어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추구한다. 통합놀이터를 지어야 한다고 하면 받는 질문이 있다. ‘그 동네에 장애아가 몇 명이 있는가?’통합놀이터는 그리 별난 게 아니다. 계단 옆에 놓인 경사로가 단지 장애인만을 위한 건 아니지 않는가? 유니버설디자인이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듯이 통합놀이터도 장애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통합놀이터 디자인 가이드라인 Ver 1.0’이 필요하신 분들은 조경작업소 울(wullandscape@naver.com)로 문의하시면 된다. 김연금 / 조경작업소 울 소장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geumii@empas.com
    • 2019-06-03
  • [유청오의 핀테스트] 나는 어떻게 그곳에 간 것일까 ?
    ‘어떻게 오셨어요?’ 시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겪게 되는 경험이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현장에 가면 그곳을 지키는 누군가는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기웃거리는 사람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한 장소에서 근무자가 바뀔 때마다 ‘보고’를 해야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일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 명찰을 패용하는 것이 차라리 편할 때가 있다. ‘조경을 찍으러 왔습니다’ 이 대답은 나름 숙고한 끝에 만들어 낸 모든 단서다. 가끔 퉁명한 담당자를 만나면, ‘나요? 집에서 왔수다’ 하고 싶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긴 하다- 나는 분명 용건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갔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사람이 ‘아, 조경이요. 여기 찍을 게 있나요?’라는 너스레에는 말문이 막힌다. 나는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된 것일까? 지극히 사적인, 어떻게 20대에 생업이라 생각했던 조경을 카메라로 비춰보게 된 것은 30대 초반이었다. 취미 혹은 아르바이트 수단에 불과했던 사진은 일종의 ‘특기’와 같은 존재였고 언젠가 나이가 들거나 안정적일 때 하고 싶은, 반드시 하고 싶은 짓이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전업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결정적 계기라는 것은 없었는데, 지면을 통해 밝히기엔 사소하지만 긴 우연 덕분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사진을 계속하고 있으니 우연은 필연을 낳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 더, 어떻게 또 다른 계기는 수 많은 사람들이 수 많은 조경(경관)을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그리고 수 많은 고찰의 시간과 발전 위에 있음에도, 제도와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면서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구조와 제도를 바꿀 형편은 못 되니 찾은 방법이다. 개인이 사진을 통해 기록으로 혹은 다른 관점으로 조경(경관)을 표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찮은 것 - ‘체계적 정리’의 필요성 기록된 것(곳)은 역사가 된다. 수천년 전 누군가의 낙서가 역사의 중요한 단서가 되듯 지금의 기준과 생각으로 한정 짓는 것은 서둘러서 변방으로 내몰아 낙인을 찍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경(경관)사진의 중요성도 기록에서 시작한다. 사진은 단순히 현실을 베껴 쓰는 행위인 기록에서 발전해 이미지라는 매체로 나의 견해를 덧대는 것이니 이보다 좋을 것이 없다. 하지만 촬영은 대상에 대한 고찰을 동반한다. 조경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무엇으로 찍어야 조경다울까? 남겨둡시다, 우선 손쉽게 허물고 바꾸는 조경(경관)을 보게 된다. 오래된 집을 허물지 않고 고쳐 쓰듯 외부 공간도 ‘맞춰가는’ 행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외부공간이 생겨나고 스러지는 과정에서 '남겨두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것은 비단 사진만이 아니라 영상이 될 수도 있고 글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사진가이니 사진을 강조하고 싶다. 민간에서는 특화설계가, 공공에서는 개선사업과 같은 일들이 있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공간에 내재화되지 않은 이상 기록은 기록일 뿐이다. 단계 중 하나. 이쁘게 찍는 것은 핸드폰도 잘하는 일이다. 찍는 행위가 이쁘게 만들려고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남겨 두는 일, 눈으로 담기에도 바쁜 시간에 카메라를 들고 남겨두는 일이 필요하다. 조경(경관)이 남게되는 것이 공간에서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스스로 자문해 본다. 우리는 어떻게 조경을 하게(알게) 된 것일까? 유청오 조경사진가
    • 유청오 조경사진가soulguitar@naver.com
    • 2019-05-29
  • [미래포럼] 도시공원일몰제 시한폭탄 남은 시간 1년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제정법의 헌법불합치 여부에 대한 결정을 해준다. 1999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인 소유의 땅에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4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가 있다. 도시계획시설의 기반시설은 녹지, 학교, 공원, 도로 등을 말하며 이중 공원용지는 전체 도시계획 시설 면적 중 50.1%를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20년간 공원이 조성되지 않은 곳들은 2020년 6월 30일까지만 도시공원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도시공원 일몰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2020년 7월 1일 도시공원이 일몰되면 법리적으로 해당지역은 이전 용도로 전환이 된다. 해당 부지는 토지주의 반발로 공공의 자연녹지로 존치가 될 가능성이 많지 않고 개발 허용은 더 더욱 쉽지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19년의 세월이 흘렀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쾌적한 환경과 시민건강을 위해 1인당 공원면적을 9㎡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선진국의 1인당 공원 조성 면적은 20~30㎡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원일몰제로 고시된 공원 면적의 83%가 2020년에 사라지게 되면 당초 1인당 13.16㎡로 계획됐던 공원면적이 약 4㎡ 밖에 남지 않아서 녹색인프라 후진국이 된다. 한국조경학회와 환경조경발전재단은 2011년과 2012년에 걸쳐서 ‘국가도시공원 및 녹색인프라 구축 전국순회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공원일몰제에 대한 전략도 함께 논의했으나 내용이 빈약한 일명 ‘국가도시공원법’으로만 개정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세미나와 행사를 통해서 정부의 대책을 요구했지만 찻잔 속의 태풍으로 여겨졌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둔 1월 29일과 3월 28일에는 전국 27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2020도시공원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이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대국민 서명캠페인 및 지방선거 후보자 도시공원 일몰제 정책 지방선거공약제안 공동기자회견과 협약 활동 선포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방선거 시국에 맞춰 지자체 단체장 출마자들이 공원일몰제에 대한 공약을 내놓았고 환경운동연합은 6월 13일 전국지방 선거를 맞아 환경정책을 발표하고, 각 정당과 지방선거 출마자에게 정책 제안서를 제출했다. 정책제안서에는 공원일몰제 해결을 위해 지방재정 확보, 도시공원구역 지정, 사유지 매입 및 임차제도 도입, 국공유지 도시계획결정 실효 배제, 민간공원특례사업 시 국공유지 제외 등이 포함됐다. 정책제안은 6개 전국 공통과제와 17개 광역자치단체의 141개 환경과제 그리고 375개 세부과제를 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각 후보와 정당에 정책제안서를 전달하면서 환경정책토론회, 정책분석, 시민참여캠페인 등을 통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란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도시공원일몰제 문제해결 노력을 보면서 조경분야의 그동안의 활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지방선거 이후 공원일몰제 대책에 대한 많은 의견이 개진됐다. 기존에 진행되던 민간공원특례사업이 있지만 특정집단에게만 이익이 돌아간다는 폐단이 거론되고 있고 해당 토지매입을 위한 지방채를 발행하면 국가에서 발행 지방채 이자의 50%를 지원해준다지만 올해 겨우 79억 원만 책정되어 있어서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동안 지자체에서는 미집행공원 문제를 모르고 있던 상태는 아니었다. 담당 공무원이 대책을 논의하려해도 해당 지자체장은 자신의 임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며 국가 재정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 손을 놓고 있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실제 중앙정부는 1999년에 공원녹지 업무를 자자체로 이관을 해버렸는데 업무는 주고 예산은 안준 정책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 그사이 새로운 이슈가 등장했다. 미세먼지 문제를 비롯해서 기후 환경문제가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문제도 대두되면서 도시녹지가 미세먼지 등의 도시환경문제 해결책의 일환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공원녹지정책은 다시 중앙정부의 업무로 환원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조경직 국가공무원을 2022년까지 200명을 채용한다고 한다. 이어서 국토부와 환경부에 5급 7급 경력 조경직 국가공무원 채용 공고가 나왔다. 첫 조경직 국가공무원의 책임도 막중하지만 이들이 미집행공원, 미세먼지 대책, 미기후 발생 등의 도시환경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조경분야의 연구 개발과 정책제안이 전폭적으로 있어야 하겠다. 대책 없이 지나온 세월 때문에 발생된 도시공원일몰제 문제처럼 녹색정책 공백이 반복되어서는 안되겠다. 지난 3월 27일 ‘도시공원일몰제 대응 평가와 대안 로드맵’을 주제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원욱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더불어민주당)은 “전국적으로 미집행공원 문제를 풀지 못하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 도시공원 일몰제 시한폭탄 폭발시간이 1년여가 남았다. 재앙이 될 것인지 재난이 될 것인지 모르지만 이 시대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크던 작던 간에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대책이 책상 위에만 있다는 것이다. 김부식 / 한국조경신문 회장
    • 김부식 한국조경신문 회장
    • 2019-05-20
  • [지금여기 공원미학] 춤추는 나무, 숨쉬는 도시 ③ 흙땅이 말하는 남산(남산공원)
    03. 흙땅이 말하는 남산(남산공원)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대부분인 ‘지금여기 도시’는 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아이와 놀다보면 도시가 어때야 좋은 기억으로 이 시절을 기억할 지 심심치 않게 되묻곤 한다. 그러니 실내 보다는 나무 그늘, 천변 산책로 또는 공원이나 가로수길을 선택하지만 시야에는 늘 높은 건물과 뾰족한 시설물들이 빼곡하게 배경을 이루곤 해서 가슴 한켠이 답답하다. 그래도 아침이면 먼저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는 세 살 아이, 겨우 나비와 꽃을 발음할 수준이지만 조막스런 손가락으로 꽃과 나무를 찾으며 웃는 그 눈빛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싶다. 한편으론 장난감을 더 사드려야 하나 싶기도 하면서. “자연의 가치를 말하는 이야기들은 도시를 벗어나야 할 곳으로 거론할 뿐이다. 자연은 마지막 도로의 끝, 마지막 보도와 교통 신호등 너머에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야생이 시작하기를 우리 대다수는 바란다. 대다수 동식물은 사람이나 도로, 가옥, 농장 등 인간의 상징물들이 거의 없는 곳에서 번창한다. … 하지만 자연 보호 운동이 멀리 있는 자연만 집중해서 보는 사이 정작 손 가까이에 있는 중요한 것이 잊힐지도 모른다. 자연의 가치가 다양한 형태로 주류 경제학, 과학, 그리고 정치학에 들어올 때, 그것은 자동차나 인터넷과 같이 우리 사회와 경제를 혁신할지 모른다.” _ 마크 터섹·조너선 애덤스 저, 김지선 역, 『나는 자연에 투자한다』, 사이언스북스, 2015, p.227. 자연을 대하는 이런 태도는 어쩌면 평범할 정도로 지난 시절 우리에게 가득했다. 비대해진 서울에도 이런 역사가 깔려 있다. 다만 뭔가 다르다. 서울만의 특별함이랄까, ‘아파트숲’인 삶터 사이로 공원이든 공원 아니든 녹색 자연이 적지 않은 것이다. 서울은 다행히 시작부터 자연과 인공이 조화로운 곳에 터를 두었기 때문이다. 시작이 그러하였으니 우리 도시는 산과 들이 그 일부를 이룬다. 서구 도시와 다른 이것은 지금여기 우리가 세심하게 살펴야 할 부분이다. 미세먼지, 기후변화가 피부로 느껴지는 지금과, 아파트, 대로(大路), 지하공간 사이를 헤매는 여기의 우리는 새로운 성찰이 시급하다. 공원을 터와 연관 지어 보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특히 남산공원은 남다르다. “서울을 둘러싼 산계는 내사산(內四山)과 외사산(外四山)이 있습니다. 외사산은 북한산하고 관악산, 용마산, 행주 쪽에 있는 덕양산, 이렇게 크게 둘러친 산들이고, 내사산은 그 안에서 서울 성곽을 이루는 네 개의 산입니다. 마운틴 서클이죠. 내사산은 북악, 인왕, 남산, 낙산 자락이 있는데, 북악산(342m)이 제일 높고, 그 다음이 인왕산(338m), 남산(262m), 낙산(124m)은 거의 백 미터로 제일 낮고요. 이 네 개의 산과 이를 잇는 성곽은 옛날부터 서울이라는 도시의 경관을 가장 크게 결정한 요소입니다.” _ 조성룡, 『건축과 풍화: 우리가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수류산방, 2018, p.307. 「경국대전」은 다른 내사산이 바위산인데 비해 남산은 흙이 많은 토산이라고 지적한다. 의미의 터였던 서울에서 남산은 별도 가치로 언급된 것이다. 흙(土)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오행(五行) 중 위치 상 중심이 되고 다른 것들에 토대로서 작용한다. 나무가 잘 자라는 생태적인 환경은 남산이 가진 가장 중요한 도시적 위상이었던 셈이다. 의미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러니 남산에 들인 남다른 시각은 「사산금표도」 같은 별도의 관리 방안을 가지게 한 것이다. 소나무를 보호하고 묫자리를 금하여 특별한 의미와 가치의 장소로 보호하고 보전하려 한 것이다. 그 결과가 애국가에 흔적으로 남은 “남산 위의 저 소나무”이며 그 소나무는 한국전쟁 때까지도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오래도록 잘 보호된 소나무는 그 줄기가 거북 등같이 갈래가 선명한데, 철갑으로 보일 만큼 충분히 그랬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쉽게도 갑옷 같은 나무들 군집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남산 위에는 많은 나무들이 흙에 뿌리를 두고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서울의 남산은 지리산이나 백두산, 한라산처럼 특별한 영험함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도시의 생활과 문화를 투영하고 시대를 기록하며 중요한 랜드마크(Landmark), 타임마크(Timemark, 타임마크는 도시와 공간에 중점을 두는 랜드마크에 견주어 장소를 대표하는 시대적 특징과 이미지를 지칭하는 용어로 필자가 조탁한 것이다.)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겸재의 그림처럼 특별한 이미지로 인식되곤 한다. 그러니까 남산은 서울(도시)을 보게 하고, 또 보이게 한다. 거기 중심에 남산공원이 있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유년의 뜰’이었을 그곳은 관심만큼이나, 위치만큼이나 근대 이후 부침이 많았다. 모두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어 흔히 잊어버리는 부분만을 살펴보면, 외세 침탈과 전쟁 이후 남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확연히 이전과 다른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남산은 보호의 손길이 무력화되자 개발의 대상으로 바뀌었고, 「조선시가지계획령」(1934년 제정)은 그 종합판으로 1926년경 ‘경성부’ 구상을 설명하는 “대경성” 마스터플랜으로 장기적 변질이 추진되게 된다. 여기에는 무엇이 우리 사고에 이식되었는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일제는 남산 주변에 거류 공간을 확보한 이후 왜성대공원(1987), 한양공원(1910), 장충단공원(1919) 즉 남산의 북, 서, 동쪽에 공원의 설치라는 명목으로 토지를 침탈하였습니다. … 경성의 시가지 확장으로 남산이 점차 경성의 중심 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1917년에는 대삼림공원계획을 수립합니다. … 한편 일부 일본인들을 위해 남산 남록의 조망이 좋은 곳에 고급주택을 짓고자 신당에서 삼각지에 이르는 남산주회도로가 부설되기도 하였습니다. 남산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본의 전원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_ 「남산의 힘(도록)」, 서울역사박물관, 2015, p.54. “도시계획은 하루가 늦어지면 그 하루만큼 손해이다. 또한 그것은 도시계획계만의 일이 아니라 부민 전체의 일이다. … 내무성의 표준이 장래 30년이기 때문에 경성부도 그에 맞추어 진행 중이다. … 경성부의 현재 인구는 33만 명인데 과거의 경향과 수학적 방법을 쓰면 30년 후는 약 46만면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경성부의 현재 주거 가능 면적은 전 부역의 4할 정도이기 때문에 밀집, 포화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 대경성의 장래의 중심은 경성부 신청사(1926년 신축한 서울시 구청사)의 동편이며, 이 중심에서 60분 내에 도달하는 지점은 동은 숭인면 휘경리의 북단, 서는 연희면 연희리 철도 교차점, 남은 북면사무소, 북은 북한산으로 … 도회화가 역연하므로 장래 경성과 공존공영해야 할 지역이다. 이렇게 장래 대경성의 구역을 정하는 것이 경성 도시계획에서 최급선무이다.” _ 염복규, 『서울의 기원 경성의 탄생: 1910~1945 도시계획으로 본 경성의 역사』, 이데아, 2016, p.124, 재인용. 그에 따라 서울의 전체 평면이 다시 작성되었으나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설전 마냥 무슨 사상이나 철학은 아랑곳 않고 “대사업” 도시계획으로 남산의 위상은 재편된 것이다. 남산공원은 이런 연유 후 1940년 3월에 “공원결정”이 “고시”되며 탄생한다. 전쟁 후 1968년 9월에는 남산공원관리사업소도 설치된다. 남산타워가 만들어지고 터널이 뚫리며 길들이 똬리를 틀고 허리춤에는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이후 남산은 개발시대의 상징 노릇이 되기도 한다. 남산공원도 그에 따라 분수대, 야외공연장 등을 추가하며 성장하였고 팔각정이 있는 도심 산책로와 드라마로 대표되는 새로운 이미지의 도시 공원이 된 것은 1990년대가 되어서이다. 남산이 본격적으로 관광지이자 일상의 공원이 된 것도 이 즈음이다. 서울의 남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전국의 남산들 대부분이 그러하였다. “남산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모습은 희뿌연 스모그 사이로 우뚝 솟은 빌딩과 아파트만 보이는 회색 도시다.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산과 일부 공원형 숲을 제외하면 규모가 큰 숲은 찾아보기 어렵다. …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치장한 거대한 괴물을 연상케 하는 것은 비단 서울만이 아니다. 부산, 대구, 대전, 인천, 광주 등 대도시들도 모두 서울의 모습을 닮아가면서 삶의 터전이 갖추어야 할 모습과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 도시화는 1960년대 후반부터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도시 인구가 1984년 대략 3,000만 명 정도였는데, 불과 30년 만에 5,100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_ 안병옥, 『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 21세기북스, 2014, pp.88~89. 남산은 산이기도 하지만 그대로 공원이기도 하다. 자연은 본능에 속하는 것이어서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충분히 그러하게 받아들인다. 흙과 땅은 자연의 기본이어서 바탕에 숨어 드러나지 않더라도 마음을 흔든다. 남산은 언제나 그러했다. 안 그런 것 같아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지금여기 우리에게도 그러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옆에 끼고 산다고 하여도 남산엘 자주 가지는 않을 테고, 멀리 떨어져 보일까 말까하고 살지만 바쁜 일상에서도 우리 대부분은 남산에 꽃이 피는지 눈비가 오는지 동네 공원보다 잘 알지 않는가. 봉우리와 산은 바람을 흔든다. 길을 방해하며 모여 사는 터(도시)의 잡스러움(먼지)을 빨아낸다. 흩어지는 공기는 나무가 추동한다. 땅에 새겨진 물길은 그 시각적 흔적이다. 흙과 땅은 물길을 품는다. 나무는 거기를 통해 숨쉰다. 다져진 땅에는 잡풀도 나지 못한다. 비대해진 서울은 남산이 있어 바람이 통하는 도시다. 빽빽한 삶터가 되었지만 다지고 다져도 가운데 흙이 스스로 자생하며 중심이 되어 주니 도시 전체가 빙 둘러 숨쉬고 춤춘다. 그렇게 남산과 남산공원은 흙과 땅으로 먼저 말하는 곳이다. 공원을 이야기하며, 남산을 이야기하며 서울의 역사와 배경 문화라는 먼 길을 돌아온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남산은 공원이면서 랜드마크이면서 관광지이자 도시이미지, 삶의 전망대, 시대의 타임마크인 것이다. 장소는 기본적으로 여러 위상과 켜로 이해되는데 그 중에서도 남산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서 하나의 중심점이자 도시이미지의 기준이 되는 공원이다. 장소에 투영된 역사와 문화는 그간의 우리 삶을 되돌아보고 지금의 생활을 성찰하게 해준다. 남산공원은 곧 그런 남산의 살가운 피부인 것이다, 모두가 만져볼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것이다. “나무와 물과 바위 위에 투사된 상상의 구성물이라는 점에서, 풍경(경관)은 자연이 되기 전부터 문화다.” _ Simon Schma, Landscape and Memory, New York, 1995, p.61. 그렇게 본능적으로 우리는 땅을 읽으며 산다. 그런 것을 경관(또는 풍경)이라고 한다. 경관은 단순히 흙과 땅, 터를 지칭하는 물리적 개념만이 아니다. 경관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며, 그런 자연은 이미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다. 공원이 우리 시대 자연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지만 산과 들이 함께였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본다면 결코 근대적 발명품이라 편협하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서구 근대성이 사고의 기저를 이루고 있음은 그런 맥락에서 성찰해야 한다. 공원을 삶에서 떼어 보려는 어떠한 시각도 ‘20세기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품앗이가 산촌의 무기”라며 “오히려 시골이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모타니 고스케 저, 김영주 역,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동아시아, 2015, pp.240, 17.)는 말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다음과 같은 힌트를 남산과 남산공원이 던져준다고나 할까. “진리는 새롭지 않다. 오류만이 새롭다. … 없는 데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을 ‘발명(Invention)’이라 한다면(無->有), 있는 데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을 ‘발견(Discovery)’이라 할 수 있다(有->有). 융합은 문언가 이미 있는 것을 발상의 재료로 삼아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에, 형식상으로는 발견에 해당한다. 하지만 새로 창출된 것이 이미 있던 것과는 다른 것이기에, 내용상으로는 발명이라 할 수 있다.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화학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_ 최재목, “삶은 어차피 융합이다(머리말)”, 『융합 인문학』, 이학사, 2016, pp.5,6. Park 02. 흙땅이 말하는 공원들, “공원과 조경의 현대상” 서울의 옛그림을 보면 산과 길이 강조되던 도성도가 후대일수록 물과 녹지가 강조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옛그림에는 터가 가진 경관 특성이 잘 드러난다. 풍속화에서는 나무와 물이 생활공간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그대로 나타난다. 잘 살펴보면 우리에게 조경과 풍경(경관)은 서구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정원과 공원이 경계 없이 삶터에 혼재한 것은 아주 쉽게 흔적으로 찾을 수 있다. 근대 조경학이 대부분의 도시를 감싸고 있지만 역사와 문화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그것으로 공식(公式)화되지 못하는 부분이 우리만의 본성으로 남아있음을 깨닫게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은 뇌가 많은 양의 모르핀을 투여해 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풍경에 색․깊이․움직임이 더해지면 그 경로를 따라 더 많은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된다.” _ 에스더 M. 스턴버그, 서영조 역,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더퀘스트, 2013, p.76. 그것은 위와 같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풍토의 영향이 생과 삶(다시 말해 지역문화)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서구 과학만으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면서 본능과 문화로 이어지고 있는 오래된 정원문화, 오래된 공원문화를 눈 밝게 읽어야 할 때이다. 새로운 성찰은 그러할 때 가능하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그것을 몇 가지로 정리해보니 꼭 읽어두면(알아주면) 좋겠다. 우리 도시에 깔린 조경과 정원(공원)의 문화를 본성으로 깔린 이것을 통해 눈치 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아, 그 전에 여기서는 공원과 정원을 굳이 따로 구분하지 않고 정원으로 일단 부르고자 한다. 그 이유는 다른 기회에 다룰 수 있을 것이다. 1. 우리에게 녹색 자연은 “삶의 배경이자 터(녹색인프라)”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도시가 건축술의 발달로 만들어지고 강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도시혁명이 그런 차원에서 지적되곤 한다. 공원은 그 뿌리를 정원에 두고 있어 정원의 시작을 좇다보면 식물을 가꾸고 즐기던 시절만이 그 전부인 것인 양 한정짓는 것을 보게 된다. 정원이 “작업공간이자 생산환경, 열락장소(황기원, “정원의 원형 시론”, 『환경논총』 제 20권, 1987, pp.85~97.)”이었음을 지적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는 탁월한 원형찾기, 본류찾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놓친 부분이 있다. 정원이 본질적으로 정주환경, 마을공간을 구성하는 뼈대로서 기능하였다는 점과 그 정원을 통해 생산과 문화의 교류가 계속되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정원은 문화적 교류의 바탕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근대적 사고로 분석한 세 가지의 정원 본질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고 본다. 마을이나 공동체가 성장하면서부터는 정원이 마을 단위의 큰 뼈대가 되어주고 마을 문화의 배경이 된다는 점에 이제 주목해야 한다. 이러할 때 우리가 마을정원, 공동체 정원, 도시정원과 도시경관 등을 논의할 수 있는 근거가 확인된다. 다시 말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시대에 정원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으로서의 도시에서 정원이 가지고 있던 본래의 속성 중 하나인 ‘생활기반(green infrastructure)’의 측면을 되살리고 진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원녹지로 대표되는 도시 녹색 공간은 공사(公私)의 여부를 떠나 도시적 기능으로 다시 이해될 시점이 되었다. 따라서 현대 정원은 그 개념에서부터 문화적 확장을 통해 진화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현대 정원과 정원일(gardening)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가장 기초적인 행위라는 측면에서 1)자연물(인공물의 반대적 개념으로, 자생성이 있는 자연속 다양한 동식물과 유기물 등)을 다루는 행위, 2)인간의 의지와 요구에 따라 자연물을 활용하는 방식, 3)대체로 자연물을 선택하고 배치하고 유지관리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추구하는 모든 활동, 4)그리고 자연물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즐기는 공동의 자연(공공정원, public garden)이라는 개념적 확장을 이루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것들은 지금 여기 우리 도시의 정원문화이며 정원의 본질 중 네 번째의 그것을 말한다(안명준 외, 『텃밭정원 도시미학: 농사일로 가꾸는 도시 정원일로 즐기는 일상』,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정원의 네 번째 본질, 정원의 생활기반으로서의 특성에서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을 동시에 모색할 수 있게 된다. 도시가 인공이 가득한 불편한 삶터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유쾌한 삶터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정원으로부터 받았듯 우리도 이제 정원을 가꾸고 정원으로 돌봐야 할 시점이다. 현대 공원은 그렇게 정원과의 경계를 지우며 공진화하고 있다. 2. 우리에게 조경은 자연에 살고 자연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정원은 고래로 인간(문화)과 자연의 접점이었다. 이상적으로 보자면 정원은 인간 탄생의 장소(eden)였으며, 파라다이스였다. 충분한 보호, 적절한 관리로 자연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크지 않았던 보호 공간이었다. 그것은 자연의 말 그대로 자연스런 순환성을 배제한 통제된 자연이자 문화였으며 그러다보니 투입되는 에너지에 비해 실제 얻는 효과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정원의 소유조차 한정되게 만들었다. 근대 이전까지 정원은 그렇게 발전하였고 우리가 가진 정원에 대한 편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원은 본래 자연이 문화화한 것으로서 노동과 예술이 만나 이루는 일상의 미적 장(aesthetic field)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감각이 살아있는 공감각적 경험의 장이었다. 과학의 발달과 풍부한 잉여 산물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사회의 등장은 정원을 보는 시각 또한 변화시키고 있는데, 정원은 제3의 자연(the 3rd Nature)으로서 자연과 문화가 적절하게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환경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는 체험과 참여가 기본이 되는 새로운 장소 구현이 정원의 뼈대로 요청된다는 점이 담겨 있다. 자연을 그림으로 보기 시작한 이래, 그 그림을 자연으로 재작성하던 시대를 벗어나, 이제 저만치 물러나 이러한 상황을 관조하던 ‘나’를, 자연 속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부각시키는 미적 태도가 보편화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과정에 조경(造景, Landscape Architecture)이라는 전문영역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원은 조경의 기초 결과물이자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다루는 방식인 셈이다. 그 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어서 동양의 경우, 이미 조경을 통해 취경(取景)과 유경(遊景)이라는 큰 틀의 기법들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다(황기원, “한국 조경의 문화적 전통 시론,” 『환경논총』 제 42권, 2004, pp.55~81.).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스타일(style, 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경은 그렇게 자연을 어떻게 즐기고 적응하며 사느냐의 방법론이었던 셈이다. 취경은 목적에 따라 경관을 취하여 정원으로 만드는 방식이고, 유경은 대상 경관에 직접 들어가 참여하며 즐기는 방식이다. 경관을 취하는 방식에는 그대로 베껴 만드는 방법 외에도 의미만 취하거나 바깥으로 시선만 열어두거나 하는 방법들이 쓰였다. 경관을 찾아 직접 즐기는 방식으로는 좋은 위치에 정자나 별서를 두고 옮겨 다니며 즐기거나, 몇 가지의 경관을 유람하며 즐기는 방식이 있었다. 다시 말해 이미 오래 전부터 자연은 소유로 한정되지 않고 또 감상자 없이 존재하지 않음을 기본 태도로 삼았던 것이다. 전국의 정자가 보고 보이는 위치에 자리한 것도 그런 연유가 있다. 이 두 가지는 결국 조경의 기법이면서 자연과 정원을 다루는 시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태도는 근대 학문으로는 모두 체계화 되지 못하여 여전히 연구할 부분을 남겨두고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본능에는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자연을 뛰어넘고 이겨내려는 승패의 이분법이 아니라 자연에 적응하고 적당한 인간적 요청만을 이끌어내는 적응의 지속성, 그리고 포월의 취향으로 남아 급속한 산업주의 성장의 시대에도 쉽게 그 오랜 문화를 지우지 못했다. 우리에게 조경은 그저 삶의 기본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요즈음의 누구라도 나무심고 꽃심는 ‘노동’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3. 우리에게 본래부터 정원과 공원은 전통이었다 도시 정원은 그 역사가 짧지 않다. 정원을 만드는 행위를 조경이라고 할 때 조경은 그 시작이 건축, 토목, 원예 등 원시에서부터 시작하는 인접 분야와 비슷한 시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조경은 하나의 문화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데, 조경의 대표적인 산물인 정원은 여러 가지 조경 중에서도 정수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정원은 문화만큼이나 다변화되는데 현대의 정원은 보다 민주적인 자연 향유의 방법으로서 공원과 함께 도시민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도시 요소로까지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문화사적 전통으로 무장한 정원이 도시 삶의 변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변화의 조심까지 보이고 있다. 서양에서 정원을 의미하는 단어는 garden(영), Garten(독), jardin(프), giardino(이) 등인데,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접두어 gar가 쓰인다. 어원은 인도유럽어계의 gher(gherdh)이며, 그 뜻은 일정한 공간을 둘러싸는 행위 또는 그렇게 둘러싸인 공간을 뜻한다. garden이라는 말은 gan과 oden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는데, 접미어 oden은 낙원을 뜻하는 기독교의 이상향 에덴(eden) 즉, 파라다이스(paradise)를 말한다. 따라서 정원에는 ‘울타리 속의 기쁨’이라는 의미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즉 ‘순치(馴致)’된 이상적인 환경이라는 뜻도 있다. 최근 우리에게는 도시농사, 주말농장, 수목원, 정원, 텃밭, 가드닝스쿨, 스쿨가드닝, 옥상정원, 실내정원, 공원, 공공정원, 숲해설, 올레길, 등산 및 야영, 꽃박람회, 정원박람회 등 자연을 직접 체험하고자 하는 다양한 행태들이 사회적으로 활발하다. 이는 콘크리트 회색인프라 속의 일상에 대한 반성으로서 녹색의 자연, 녹색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즐기고자 하는 욕구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것은 웰빙, 삶의 질, 건강, 쾌적한 삶 등 다양한 어휘들로 설명이 되며, 우리시대가 녹색 중심의 도시 환경, 삶의 환경을 기본으로 요청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뭔가 변화된 사회를 우리는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현대 정원은 도시와의 관계 속에서 재설정되고 있고, 현대 도시의 성장 없이는 이러한 유형의 정원도 발전하지 못하였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시대 정원은 새로운 형식으로 현대 도시에 적응한 자연을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중이다. 언제나처럼. 그 중 공원은 지금까지 인류가 내놓은 해법 한 가지인 셈이다. 공원보다 정원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결국 자연을 어떻게 활용하든, 정원이든 공원이든, 텃밭이든, 숲이든 간에 그것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중요하게 작용할 삶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행위라는 점을 성찰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풍족한 도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미와 내용, 가치가 지속되는 삶의 터를 우리는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원과 공원은 지금까지의 기술로 우리가 만들어낸 습관이자 전통인 것이다. 여전히 정원은 여러 이름으로 분화되고 있다. 지금도 새로운 정원 명칭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가 녹아있는 전통적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발맞추어 최근에는 정원과 공원이 뒤섞이며 공원의 개념마저 확대, 진화하고 있다. 이게 모두 우리 삶의 터이자 흙땅 위에서 감추고 속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교류하며 이루어지고 있는 자연 향유의 21세기적 전통문화인 것이다. 4. 우리 도시는 새로운 공원문화, 흙과 땅의 공진화를 부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원예술이 꽃폈던 시절에 정원은 사실 모두의 것이 아니었다. 당시 정원에는 고도의 순수 미학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것을 지원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다. 실은 잉여 에너지가 충분했기에 정원이 예술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풍경식 정원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정원예술에 대해서는 조경가(정원사)에게 맡겨졌던 정원이 화가에게로 넘어간 것으로 비유되기도 한다(Gilles Clément, Une brève histoire du jardin, 이재형 역, 『정원으로 가는 길 : 역사와 인문학의 세계정원 순례』, 홍시, 2012, p.73.). 모더니즘 시대 이후에는 정원예술의 양상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뉘게 되는데 옴스테드의 센트럴파크 스타일을 중심으로 하는 풍경식 정원과 프랑스 모더니즘 정원을 중심으로 하는 기하학식 정원이 그것이다. 하나는 자연의 형태를 모방하고 하나는 인공적 형태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지만, 둘 다 자연물을 이용하여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점은 같다. 이후 ‘정원의 재발견(reinviting gardens)’에 대한 논의가 1980년대 이후 서서히 강조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기술과 과학의 발달로 특정 계층에서만 가능하던 정원 즐기기가 성장한 경제 수준과 문화예술에 맞추어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자연 즐기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다변화된 사회문화로 정원의 가치가 재설정되기도 하고, 정원일의 의미가 다양하게 지적되기도 하면서 정원은 이 분야에서는 핫이슈로 부각한다. 급기야 마이클 폴란은 약 150년간 자연 찬미로 서구 자연관에 경종을 울렸던 “월든”의 저자 소로우에게 “정원을 가꾼 것”이라며 지구 정원에 대한 인간의 돌봄(care)을 역설하기에 이른다 (Michael Pollan, Second nature : a gardener's education, 이순우 역 『세컨 네이처』, 황소자리, 2009, p.162.).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점차 정원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도시 삶터에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자연으로서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적인 추세로 우리 도시에서도 일상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모두가 공유하는 ‘새로운 정원’은 함께 어울려 사는 도시에서 모두의 것이면서 각자의 것이며, 자연에 함께 참여하고 즐기기 위한 것이 되고 있다. 각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주인공의 의지대로 자연의 과정에 참여하게 하며, 서로 즐기고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만족스러운 소통과 교감이 이루어진다. 살펴보면 공사(公私)가 뒤섞인 채 지난 시대 공원이 주던 공공성을 정원에 요청하는 방향으로 실천적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정원과 공원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은 이 때문이고, 도심 자연에 대한 새로운 나이테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정원문화가 대도시에 나타나고 소도시에서 성장하는 모습의 핵심에는 정원을 통해 모두가 돌봄의 의미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정원이 그 스스로 사람들 내면에 담겨 있는 선한 돌봄의 의지를 일깨우고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 정원은 정원문화이기도 하지만 사회현상이자 사회진화의 수단이기도 하다. 인류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현대 도시에서, 이러한 정원은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야 하고 그것을 정원의 새로운 원형으로 지적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자연을 즐기고 자연에 참여하고자 하는 과정과 연관되면서, 우리 도시와 삶터를 그렇게 돌봐야 함과도 관련 있다. 정원은 그런 면에서 인간이 가진 ‘만들기와 가꾸기, 돌보기’ 본성의 발현인 것이다. 이야기가 다소 현학적이 되었다. 도시적 위상은 공원은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만큼 장광설로 밀어두기 보다는 이를 시작으로 모두들 각자의 생각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그렇더라도 많은 생각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곤란하니 생각들의 기저에 항상 흙과 땅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을 옛 경전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 한 줌의 흙에 우리 생존이 달려 있다. 가꾸고 보살피면, 흙은 먹을거리와 땔감과 거처를 길러 내고 우리 주변에 아름다움을 펼쳐 놓는다. 낭비하면 흙은 무너지고 죽고 만다. 인류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_ 「베다(Veda)」(산스크리트 경전), 기원전 1500년. 안명준 조경평론가
    • 안명준 조경평론가eirene95@naver.com
    • 2019-05-11
  • [놀이터 톺아보기, 톺아짓기] 놀이터 만들기 ② _ 안전과 위험 - 2
    ‘위험-유익 평가’란? 이전 글에서 영국의 ‘Managing Risk in Play Provision: Implementation guide’에서 제시하고 있는 ‘위험-유익 평가’를 잠깐 언급했었다. 이 평가는 놀이터를 만들고 관리하는 놀이터 제공자는 위험과 유익이라는 두 가지 목표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당위성에서 머물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목표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막을 수 있는 손상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과 아이들에게 모험의 기회를 주는 것을 말한다. 일례로 안전기준 적용의 대상도 아닌 마을의 큰 나무에 아이들이 오를 때, 혹은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안전기준에는 맞지 않는 놀이시설물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나무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거나 안전기준에 벗어나는 놀이 기구를 철거해야 할까? ‘위험-유익 평가’는 나무 오르기나 놀이기구가 갖는 유익함도 평가하자는 것이다. 다음의 표는 아이들한테 마을에 있는 나무에 오르게 해야 할지 금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평가를 보여준다. ‘선택지, 가격, 장단점’, ‘위험-유익 평가’, ‘지역적 판단’ 항목의 내용이 흥미롭다. 표1. ‘나무 오르기를 허용해야 할까? 금지해야 할까’에 대한 위험-유익 평가 주제 설명 유익 -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기쁨과 건강 , 자신감 그리고 웰빙 측면에서의 유익 - 주변 환경에 대한 인지 향상에 있어, 자연과의 정기적 접촉이 갖는 유익 *출처 = Forestry Commission Growing Adventure Report(Forestry commission, 2006), 놀이의 유익성에 대한 출판물, Play England publications 일상적 경험과 관찰 위험 - 경미한 상처와 장기적인 골절의 위험 - 심각한 부상 위험은 적음 - 나무에 해를 입힐 위험 - 몇몇 거주자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될 위험 - 클레임, 소송 및 명예훼손 *출처 = 국가 사고 정보, 상해와 민원 강도 수준에 대한 지역 기반 지식, 동료와 전문가 네트워크로부터의 클레임에 대한 정보 전문가의 관점 - 수목을 조사했을 때 일부 나무는 눈에 띄게 약한 가지가 있음 - 다른 전문가의 관점 : 아동발달 전문가들의 긍정적 관점 - 사고 예방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고려사항 *출처 = 수목 조사 보고서, 놀이 조사자의 관점, Play England publications, 사고 예방 기관에서 출판된 가이드북 관련 지역 요인 - 나무 오르기의 유행 가능성 - 나무의 종류와 위치 *출처 = 공원 관리자들 선택지, 가격, 장단점 1. 나무를 그대로 두고, 올라가기를 허락한다. 2. 약한 가지를 쳐낸 후 올라가기를 허락한다. 3.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를 베거나, 낮은 가지를 쳐낸다. 4. 교육과 강제를 통해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 5. 아이들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도록 아이들과 함께 나무의 강도와 가지의 안전을 이야기한다. - 수목조사, 교육 또는 집행 조치에는 모두 금전적 지출이 따른다. - 약한 가지를 쳐내면 나무 오르기에 유리하게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게 되므로 집중적 사용을 부추기고 장려할 수 있다. - 강제 금지는 아이들을 적대시하는 것을 의미하며, 가능하지도 않다. 결국 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나무에 오르거나, 더욱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다. *출처 = 새로운 정보 없음 : 논의를 통해 선택지에 대한 장단점이 부각되어야 함 선례와 비교 Cityville Metropolitan Borough Council은 나무 오르기를 허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긍정적인 결과를 경험해왔다. *출처 = 전문가 네트워크 : Play England, Greenspace, Design Council, CABE, and other agencies. 위험-유익 평가 - 일반적으로 유익성이 위험보다 더 크지만, 만일 나무를 있는 그대로 놓아두고 오르기를 허락한다면 관리가 필요함 - 상황이 바뀌면, 한 해의 각기 다른 시간대에 세심 하게 모니터링한 후, 1년 이내 혹은 더 빨리 결정 을 검토 - 공원 스태프와 지역주민에게 그 결정사항과 결정 이유에 대한 정보를 제공 *출처 = 전문가 네트워크 : Play England, Greenspace, Design Council, CABE, and 지역적 판단 - 어린 시절 나무에 오르는 것은 많은 어른에게 보편적 경험이었으므로,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아이들을 위해 동의할 것이다. - 부모, 보모, 그리고 감독의 역할을 맡고 있는 다른 어른들은 나무 오르기에 대한 규칙을 정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은 위험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위험 감수에 대한 시의회의 접근 방식을 알리고부모에게 강조하기 위해 결정 사항 홍보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출처 = 전문가 네트워크로부터 얻은 다른 유사한 환경에서의 경험, 국가 에이전시와 지역 놀이연합(ex. London Play 등)으로부터의 지원 자료: Play Safety Forum(2012) Managing Risk in Play Provision: Implementation guide. pp. 67-68. 다치는 사람만 손해죠 얼마 전 가졌던 디자인 워크숍에서 “제일 재미있는 놀이가 무엇이냐”고 아이들한테 물었더니 한 아이가 “정글짐을 끝까지 오르는 것”이라고 했다.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 아이는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놀면 괜찮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다치면 다치는 사람만 손해죠!” ‘손해 볼 짓은 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석할 수 있다. ‘위험-유익’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른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도 ‘위험-유익’ 간의 균형을 이야기했다. 새롭게 조성된 놀이터 개장식을 열면서 아이들한테 이 놀이터에서 놀 친구나 동생들한테 해줄 말을 써달라고 했더니 ‘조심’을 가장 많이 이야기했다. “애들아 놀이터를 안전하게 사용해줘. 그리고 깨끗하게 써줘”“심한 장난 쳐서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놀아”“애들아. 후배들도 써야 하는 놀이터니까 조심히 예쁘게 쓰렴 ㅎㅎ”“재미있고 조심히 놀렴” 아이들은 이미 ‘위험-유익’의 균형을 알고 있는데, 어른들의 ‘위험-유익’에 대한 균형감각은 어떠한가? 강력한 안전기준으로 무조건 위험을 방지하거나, 놀이터는 위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어른들의 책임은 위험을 무조건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에서 만날 위험을 놀이터에서 미리 만나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일 재미있는 놀이가 무엇이냐”고 묻자 “정글짐을 끝까지 오르는 것”이라고 했다.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에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놀면 괜찮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미 ‘위험-유익’의 균형을 알고 있다. 어른들의 ‘위험-유익’에 대한 균형감각은 어떠한가? ‘Managing Risk in Play Provision: Implementation guide’이 필요하신 분들은 조경작업소 울(wullandscape@naver.com)로 문의하시면 된다. 김연금 / 조경작업소 울 소장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 2019-05-03
  • [기고] 1G 시대의 조경(造景), 5G 시대의 정원(庭苑)
    국내에서 1984년부터 상용화된 1세대 이동통신은 음성통화만 가능한 아날로그 통신시대를 말한다. 1 Generation(1세대)은 1G로 줄여서 쓰인다. 이어 1993년부터 등장한 디지털 방식 이동통신 시스템을 2G라고 한다. 2000년대에 상용화된 3G는 음성 데이터와 비음성 데이터를 모두 전송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영상통화도 가능해졌다. 2010년에 상용화된 4G는 게임서비스 및 멀티미디어를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기능을 가진 포괄적이고 안정된 기반의 솔루션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2020년부터는 초고화질 영상이나 3D 입체영상, 360도 동영상, 홀로그램 등 대용량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5G 시대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10년 주기로 시대를 달리하며 발전해온 통신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갈까?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10년은 지난 10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조경 분야 1G에서 5G까지 한국 조경의 변천사도 1G에서 5G까지로 구분해 살펴보면 어떨까? 1970년대는 한국조경의 ‘도입기’로 조경의 1세대(1G)로 볼 수 있다. 1972년 5월 18일 오휘영 청와대 조경담당비서관 임명을 시작으로, 1972년 12월 19일 최초의 조경학과 개설 결정, 1972년 12월 29일 한국조경학회 창립, 1974년 7월 2일 한국종합조경공사 발족, 1980년 12월 12일 한국정원학회 창립 등이 한국조경의 1세대를 가늠할 수 있는 궤적들이다. 1980년대는 한국조경의 ‘성장기’로서 조경의 2G로 생각할 수 있다. 종합조경 면허업체가 1974년 1개에서 1982년 11개, 1988년 33개로 증가하였고, 1980년 조경식재공사업 79개, 조경시설물설치 공사업 67개로 증가하는 등 조경시장이 활성화됐던 시기이다.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은 내수시장 활성화를 불러와 조경 분야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1990년대는 29차 IFLA 한국총회를 계기로 세계적인 조경가들과 교류를 통해서 국제적인 조경계의 흐름을 접하고 이해하는 동시에 한국 전통정원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2000년대는 한국 정원을 해외에 조성하고, 조경시설물을 해외로 수출하면서 다변화를 꾀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를 ‘도약기’인 3G로 볼 수 있다. 2010년대는 초반 민간 건설시장을 통한 경기부양과 공공 조경사업 확대에 따라 기업 숫자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2018년에는 조경공사업 1491개, 조경식재공사업 4419개, 조경시설물설치공사업 2426개였다. 조경 산업의 몸집은 비대해졌지만, 건설경기 불황과 대형 SOC 공사의 감소로 산업계의 어려움은 조금씩 가중돼 왔다. 빙하기, 먹잇감이 없어서 사라진 공룡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기에 새로운 조경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서 ‘정원(庭園) 산업’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4G는 ‘위기(危機)와 기회(機會)’가 공존하는 시기로 볼 수 있겠다. 앞으로 다가올 5G 시대, 2020년대 조경 산업은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1차 산업(수목생산), 2차 산업(시설물 가공‧조립), 3차 산업(설계‧컨설팅)이 결합한 6차 산업화 전략에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과 이동통신 5G 기술을 조경 산업에 접목하여, 스마트시티(Smart City) 사업과 정원(庭苑)이 결합하는 ‘스마트 가든 시티(Smart Garden City)’가 조경 분야의 주력 산업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5G 시대의 조경 '사람이 답이다' 그럼 5G 시대에 펼쳐질 ‘스마트 가든 시티’를 ‘인공지능’에 맡겨야 할까? 아니다. 흔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에게서 답을 찾아야 한다. 현재와 미래 조경의 주역인 당신이 만들어야 한다. 2017년 기준 1년에 배출되는 조경 전공 학생 숫자는 1400여 명이다. 그 가운데 약 66%가 취업문을 통과했다. 전체 취업률인 66%와 유사하다고는 하지만, 그 66% 중 과연 얼마나 전공에 맞춰 취업했는지는 물음표다. 근래 자기 진로를 정확하게 말한 조경 전공 학생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무원, 대형 건설사,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몇몇을 빼곤 ‘아직 잘 모르겠다’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왜 진로를 확실하게 말하지 못할까? 조경일이 싫어서? 아니면 갈 곳이 없어서? 그들이 고민하는 지점은 과연 어디일까? 내 집 앞의 눈을 내가 치워야 하듯, 조경 전공 졸업생 일자리는 조경계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경착륙하는 건설 경기만을 바라봐서는 요원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환골탈태를 위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체질 개선은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처방이 없으면 달성하기 힘들다. 정확한 진단이 먼저다. 조경 분야에 충분한 기초체력과 열정이 있다면, 어려운 경제상황을 마주해도 몇 번이고 넘어졌다 일어서고를 반복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조경계가 처한 상황은 아쉽게도 그렇지가 못하다. 출산율 감소는 국가적 위기로 이어진다. 생산 인구가 감소되기 때문이다. 조경 분야에서도 조경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취직할 곳이 없으면 누가 조경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할까? 중요한 것은 취업률 자체보다는 전공과 관련된 분야로 진출하는 전공 취업률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조경의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 비용과 효과에 치중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사람 중심, 가치 중심으로 사회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변화를 관찰하는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 대안은 ‘민간 건설시장에 편중되어 있는 조경 산업 분야를 사회적경제라는 제3섹터 속으로 확산시키자’이다. 비록 사회적경제가 건설처럼 크게 돈이 되는 영역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회적경제는 일자리를 만드는 복지로서 조경 전체의 몸집을 키우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조경전공 학생들이 선호하는 건설사, 공무원, 공공기관에서 1년에 뽑는 숫자는 배출되는 전체 숫자의 10%가 되지 않는다. 나머지 90%는 어디로 가야 할까. 설계, 시공, 관리 회사의 신입직원 채용공고도 어쩌다 한 번이다. 조경이 위기라고 한다면 생존 전략으로 태세를 전환하자. 살아남아야 기회가 온다. 상위 10%를 위한 조경이 아닌 90% 대중을 위한 조경이 필요하다. 5G 시대의 조경 기업 ‘새 술은 새 부대에’ 대기업 중심의 무한자본과 기술력이 총동원되어 세계시장과 경쟁하는 최첨단 이동통신기술과 중소기업에서 1, 2차 산업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경 산업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겠다. 동시대에 산업 활동을 영위하는 반도체의 경우, A.I 기능을 탑재한 로봇 팔이 생산 공정에 투입돼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조경 산업 분야에서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삽질로 뿌리돌림을 하고 있을 것이고, 기껏해야 굴삭기에 분뜨기 기계를 결합한 대형 장비로 분을 뜨면서 최신 기술을 적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국인의 식생활 문화에 기반한 반도체 분야는 화려한 성공스토리를 써 내려가고 있지만, 조경 분야는 동네 축구에서 공만 쫓아 우르르 몰려가는 아이들처럼 이윤만 좇아가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2019년 조경식재 면허 4400개, 조경시설물 면허 2400개 종합조경면허 1500개에 종사하는 기술자 중에 실제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고 싶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굳이 들추지 않아도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밀한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오고 있다. 위기는 구태에 젖은 사람의 몫이고 기회는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가볍게 하면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기업의 몫이 될 것이다. 여기서 구조조정이란 적절한 곳에 필요한 사람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면허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4대 보험 비용을 대납하고, 최소한의 자격증 비용을 지급하며 1년에 1~2건의 공사를 입찰로 따내면 회사가 유지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래의 기업 형태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이 가치만을 쫓아 경제적 이익을 등한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사회적 가치와 이윤 추구가 대척점에서 부딪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제도적으로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가져 가고 있다. 지난해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방계약법 시행령’에서 5000만 원 이하의 물품‧용역 계약에 사회적기업이 추가됐고, 지난 3월 5일부터는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따라 중앙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5000만 원이하의 물품‧용역에서도 사회적기업이 수의계약을 할 수 있게 됐다. 사업의 규모도 그만큼 늘릴 수 있다는 말이다. 사회적기업의 영역은 조경의 사업 분야와도 밀접하다. 산림청은 ‘공동산림사업’, 그 안에 정원의 조성과 관리사업과 같은 사업들을 사회적기업이 할 수 있도록 했다. 전라남도의 ‘공동체정원 공모’의 참여대상도 사회적경제 중 하나인 ‘사회적 협동조합’이 포함돼 있었다. 특히 그동안 사업적 규모를 확장하는데 제한 요소가 되어왔던 일부 실적요건이 폐지되고, 진입 문턱까지 낮출 예정이어서 사회적기업의 기회 요소는 앞으로 넓어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공원, 녹지, 정원을 만들 때 전문가가 중심이 되었다면, 이제는 소비자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과정을 공유하며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큰 규모의 사업이 아니라도 마을단위에서 지역단위로, 지역단위에서 도시단위로 녹색복지, 환경복지 분야로 역할을 넓혀가다 보면 어느새 조경 영역은 크게 확장돼 있을 것이다. 조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시키기 위한 명칭 변경 논의도 확대되고 있다. 이제 ‘사회적경제’와 ‘환경복지, 녹색복지’에 주목해야할 때이다. 조경업계와 단체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사회적경제라는 새로운 기회요인은 남의 동네잔치로 끝날 수 있다. 5G 시대의 조경은 그 명칭이 무엇이던지 ‘사회적 가치’를 담은 ‘녹색복지’로 진화해야 한다. 5G 시대의 조경 '환경복지, 녹색복지'로 향해야 지난 3월 5일 조경의 날 기념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축사를 통해 조경직 국가공무원 채용을 약속한 것이 당장 올해부터 5급 2명, 7급 5명 채용 실행으로 옮겨지면서 조경계는 한껏 고무돼 있다. 이 총리는 국가공무원의 조경직 채용을 약속하는 자리에서 ‘외상박수’라는 표현을 썼다. 오늘의 시점에서는 그가 약속을 실천에 옮겼으므로 박수의 부채를 갚은 셈이다. 그간 국가공무원에 조경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오랫동안 애쓰신 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국무총리의 축사는 사전에 조경계와 충분히 조율된 내용이란 점도 잘 안다. 그래도 이것은 좀 빠르다 싶어서 그날의 축사를 다시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이낙연 총리는 정제된 언어로 조경계의 숙원사업을 잘 알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적당한 유머로 조경인들을 격려해주는 섬세함을 보여주었다. 물론 조경직 채용과 조경전문가의 참여도 약속했다. 하지만 유독 필자에게는 조금 다른 내용이 크게 보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을 위주로 듣고, 보고 싶은 것을 위주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일 것이다. 이 총리는 자치단체에게는 공원, 녹지의 조성 뿐 아니라 관리실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했고, 중앙정부에 조경직공무원 채용을 확대하는 목적 또한 조경을 공부하는 청년들이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말했다. 그리고 그는 분명한 목소리로 조경인이 역량을 키우고,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조경인들은 이 총리의 마지막 발언을 가볍게 들어선 안된다. 정부는 조경계의 요구에 대해 발 빠르게 대처하며 각 부처에 대해 수요조사를 실시하여 조경직 국가공무원의 채용계획을 2022년까지 200명을 채용하겠다고 화답했다. 조경인들은 그간의 성과에 취해있기 보다는 약속을 지킨 이 총리와 정부 그리고 국민에게 어떻게 응답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조경계는 2022년까지 몇 명의 일자리 창출로 응답할 것인가?’ ‘몇 명의 청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박경복 한국정원산업협동조합 이사장 / 가든프로젝트 대표
    • 박경복 한국정원산업협동조합 이사장1059501@naver.com
    • 2019-05-02
1 2 3 4 5 6 7 8
  • 환경과조경 2019년 9월
  • 2020 CONQUEST 조경기사·조경산업기사 필기정복
  • 꽃보다 아름다운 열매 줄기
공모전
  • 2019 디에스디삼호 조경나눔공모전 상업 활성화와 공공성의 경계 - 신길음 보행가로환경 설계 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구조와 형태, 라이프스타일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오랫동안 미아리 텍사스촌이 자리했던 길음역 주변 일대는 ‘신길음 도시환경정비사업’에 따라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새로운 풍경으로 변모하고 있다. 도시 재개발과 재생 프로젝트에서는 늘 사성(私性)과 공성(公性)이 충돌한다. 신길음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도시환경정비사업에 따라 들어서게 될 지상 29층의 아파트 3개 동과 오피스텔 1개 동 앞의 300m 가로는 건물 저층부의 상가와 연접하여 상업적 활성화의 매개체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지하철 연결광장, 공개공지, 공원이라는 공공적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 상업 활성화와 공공 가로환경의 긴장과 대립을 넘어 지속가능하고 탄력적인 도시 가로환경을 제안하는 것이 이번 공모전의 과제다. 공모전 일정 ○ 공 고 : 2019년 8월 12일(월) ○ 참가신청 : 2019년 9월 30일(월) 17시 까지 ○ 작품접수 : 2019년 10월 28일(월) 17시 까지(우편접수는 10월 29일(화) 17시 도착 분까지) ○ 작품심사 : 2019년 11월 1일(금) ○ 결과발표 : 2019년 11월 4일(월) ○ 작품전시 : 2019년 11월 8일(금)~11월 15일(금) ○ 시 상 식 : 2019년 11월 8일(금) 주최 및 주관 ○ 주 관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 후 원 : 디에스디 삼호(주), 월간 환경과조경 시상 ○ 대상(1작품) / 디에스디삼호 회장상 : 상금 300만원, 상장, 상품(환경과조경 1년 구독권) ○ 최우수상(2작품)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원장상 : 상금 100만원, 상장, 상품(환경과조경 1년 구독권) ○ 우수상(3작품) / 환경과조경 발행인상 : 상금 50만원, 상장, 상품(환경과조경 1년 구독권) ○ 가작(5작품 이내) : 상장, 상품(환경과조경 1년 구독권) 대상지 개요 ○ 위치: 서울시 성북구 길음3동 524-87외 244필지 ○ 용도지역: 준주거지역 ○ 건축규모: 지하5층, 지상29층 / 아파트 3개동, 오피스텔 1개동(공동주택 474세대, 오피스텔 294실, 판매시설 13,754.8㎡) 대상지 특성 ○ 교통환경 - 길음역(8,9번출구) 연결된 초역세권 - 서울 동북부 주요 간선버스노선 운행 ○ 생활환경 -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이마트(2개소), 길음시장, 숭인시장 위치 - 사업지 서측 길음뉴타운(1,2,4~9단지) 약 9,300세대 - 반경 1km 내 약 30,000세대 거주 ○ 교육환경 - 사업지 1km 내 다수 학군 위치 - 미아초, 영훈초, 영훈국제중, 길음중, 대일외고 도보가능 설계 내용 ○ 범위: 미아로 38m 도로에 인접한 지하철 출구앞 광장에서 공개공지/보행자도로, 공원에 이르는 가로(약 300m) ○ 공공성과 상업 활성화를 동시에 고려하는 공간 설계 ○ 가로 공간의 유연하고 탄력적인 설계 아이디어(상가 건물의 구조 변경 가능) ○ 보행자의 편의와 가로환경 정체성을 위한 프로그램 ○ 주변 교통 요충지에 적절한 중심 지구 형성 아이디어 ○ 참조 자료 첨부 1. 대상지 주변 현황(PDF) 첨부 2. 설계 대상지 도면_평면도(CAD) 첨부 3. 설계 대상지 도면_단면도(CAD) 문의처 (재)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전화 02-585-4251 / 팩스 02-585-4240 / 이메일 lwi2013@naver.com
  • 에버스케이프 어워드 2019 삼성물산 조경사업팀은 인구 감소, 1인 가구 증가, 도시 쇠퇴, 기후 변화 등 급변하는 외부 환경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는 주거단지 외부 공간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한다. 본 공모전은 조경, 건축, 도시설계, 공간 디자인 등 다양한 관련 학과 학생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통해 도시 주거 경관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고자 한다. 공모 주제 주거단지 경관의 회복탄력적 설계Resilient Design for Urban Housing Landscape 2019년을 기점으로 한국은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아지는 인구 자연 감소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50년 후에는 총 인구가 1982년 수준인 3900만 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우리는 이미 '혼자 산다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1인 가구 수는 562만을 넘어서 전체 가구의 30퍼센트에 달한다. 열 집 중 세 집이 혼자 사는 집이다. 인구 감소와 1인 가구 증가는 경제 체제의 변동에 따른 도시 쇠퇴 현상과 함께 도시의 구조와 형태,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급격히 바꾸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의 주거단지 외부 공간은 이런 인구 변화의 물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기후 변화에 따른 미세먼지, 온난화, 자연재해의 위험을 직면하고 있기도하다. 종래의 아파트 조경설계로는 도시의 사회 시스템과 생태계의 복잡성, 동적 변화, 교란에 대처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경관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파트로 대변되는 도시 집합 주거지의 외부 공간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에버스케이프 어워드 2019' 는 인구 감소, 1인 가구 증가, 도시 쇠퇴, 기후 변화 등 도시의 다각적 변화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주거단지 외부 공간 디자인 아이디어를 구하며, 그 핵심 개념으로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제시한다. 경관의 회복탄력성은 도시 환경의 변화와 교란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경관의 근육이다. 주거단지 외부 공간의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는 설계적 지식을, 회복탄력적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실천적 지혜를 구한다. 공모 대상지 규모 : 1,000세대 내외 OOO 아파트 단지 외부 공간 (대상지는 참가자 임의 지정) 범위 : 기존 동 배치와 건축물 형태 유지 / 외부 공간과 시설(물) 리노베이션 / 외부 공간 설계와 주변 도시 맥락 연계 응모 자격 조경, 건축, 도시설계, 공간디자인 및 유관 분야 전공 등 공간의 미래에 관심있는 대학생과 대학원생(휴학생 포함) 1팀 1작, 1팀은 3인 이내로 구성, 응모 시 재학증명서 첨부 해외 재학 중인 한국 국적 학생 참여 가능 심사 기준 대상지의 합리적 선정 공모전 핵심 주제 이해 도입 디자인 및 프로그램의 창의성과 실험성 도입 기술의 효율성과 적정성 심사 위원 배정한(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테공학부 교수)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전재현(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조경사업팀 디자인그룹장) 전문가 멘토링 1차 심사 후 선정된 10개 작품을 대상으로 팀별 멘토링 진행 강한솔(얼라이브어스 소장) 백종현(자연감각 소장) 이호영(HLD 소장) 최영준(Lab H+D 소장) 최혜영(성균관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팀별 담당 전문가 지정 후 (전문가별 2팀) 약 한 달 간 멘토링 주요 일정 참가 신청 마감 : 2019. 09. 10 (everscape.cnt@samsung.com) 1차 접수 마감 : 2019. 10. 14 (everscape.cnt@samsung.com) 1차 심사 발표 : 2019. 10. 21 (10개팀 선정, 멘토 지정) 2차 접수 마감 : 2019. 11. 18 (everscape.cnt@samsung.com) 최종 PT : 2019. 11. 21 (순위 결정) 시상 : 2019. 12. 03 (예정, 추후 공지) *상기 일정은 주최측 사정에 의하여 변경될 수 있음 *최종 PT 및 시상식 장소/시간, 심사 발표는 개별 Email 공지 및 Web게시 예정(http://bit.ly/everscape2019) 시상 내역 대상(1작품): 10,000,000원/상패 우수상(2작품): 5,000,000원/상패 가작(3작품): 3,000,000원/상패 입선(4작품): 부상 및 상패 관련 문의 본 공모와 관련한 기타 자세한 내용은 everscape.cnt@samsung.com으로 문의
  • 노들에서 용산까지 잇는 한강보행길 아이디어 공모 100년의 기억을 되살려 서울을 잇다. 백년다리(한강대교 북단 보행교) 조성을 위한 아이디어 공모 노들섬과 한강대교는 광화문광장, 서울로, 용산과 한강, 노량진을 잇는 주요 보행축에 해당되며, 노들섬은 음악중심의 복합문화기지로 9월 중 개장을 앞두고 있습니다.노들섬 접근성 개선을 위해 노량진 ~ 노들섬으로 이어지는 한강대교 남단은 기존 교각을 활용하여 공중 보행길로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2단계 사업으로 추진예정인 노들섬에서 용산으로 이어지는 한강대교 북단은 남단과 달리 아치교가 없으며 용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시설물이 없어 보행길을 조성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시민들의 다양한 상상과 전문가의 구체적인 아이디어 발굴을 통해 기본구상으로 활용할 예정이오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1. 공 모 명 : 노들에서 용산까지 잇는 한강보행길 아이디어 공모 2. 공모기간 : 2019. 8. 6 (화) ~ 9. 20 (금) 3. 응모자격 : 제한 없음 4. 공모내용 : 한강대교(노들섬~용산)를 활용하여 보행길을 조성하는 다양한 아이디어 제시 ○ 일반 부문 : A4 크기로 1~10장 이내로 제시 ○ 전문가부문 : A1 패널 2장과 PPT 10~15장이내로 제시 - 한강대교와 조화를 이룬 보행교의 창의적 디자인 제시 - 한강의 다양한 기후(바람, 폭염, 추위 등)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 한강 조망,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 녹음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 제시 - 한강대교의 구조적 안정성과 시공성 등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 - 사업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 - 노들섬과 용산 이촌동 방향 보행교 연결 방안 5. 공모취지 ○ 노들섬 접근성 강화를 위해 노들섬에서 용산지역을 잇는 기존 한강대교를 활용하여 보행길을 조성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기본구상 등 시정책방향을 결정하는데 활용하고자 합니다. 6. 공모범위 : 한강대교 북단(노들섬~용산이촌동) 7. 공모일정(안) - 공모기간 : 2019. 8. 6(화) ~ 9.20(금) - 질의접수 : 2019. 8. 6(화) ~ 8.23(금)▸ 질의에 대한 답변은 8.30(금) 일괄 게시 - 공모접수 : 2019. 9. 20(금) 10:00 ~ 17:00까지 - 발표일자 : 2019. 9. 27(금)▸ 심사결과 및 당선작은 공모 홈페이지 공개 및 개인통보 예정 - 시 상 식 : 2019. 9월 중(당선자에게 별도 통보) 8. 제출물 및 제출방법 신청서 (첨부 양식) - 이름, 생년월일, 주소, 연락처 입력 (양식준수) 일반부문(메일접수) - 제출파일명 : 일반부문_참가자성명_작품명.hwp 혹은 .jpg(제출양식 없음) - 작품설명서 A4 10장 이내 전문가부문(방문접수) - 제출파일명 : 전문가부문_참가자성명_작품명.pdf 혹은 jpg, png - A1 사이즈 세로 이미지(594×841㎜) 2장 - PPT 10~15장 작품설명서 - 다운로드 가능한 URL 제출가능 제출방법 - 정해진 기간(2019. 9. 20(금) 10:00 ~ 17:00까지)내에 참여 부분별로 아래의 방법으로 제출 · 일반부문 : 메일 접수(competition@masilwide.com)(참가신청서와 작성한 제안서를 압축하여 <참가자 명.zip>으로 이메일 제출) · 전문가부문 : 방문 접수[서울시 공공재생과(서울시 중구 세종대로110 시청본관 11층)] (참가신청서, A2 패널 두장, USB(참가신청서 스캔본, 패널파일, PPT파일) ▸ 내 손안에 서울(http://mediahub.seoul.go.kr) 공모전에서 양식 다운로드 9. 심사기준 적합성(20점):공모 취지와 부합여부 정합성(20점):한강대교 남단 보행교 및 한강대교와 조화 실현성(30점):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시공이 가능한 방안(사업기간 단축 방안) 창의성(30점):아이디어의 참신함과 독창성 ※ 세부 심사기준 및 내용은 심사과정에서 조정 될 수 있음 10. 시상내역 : 총 22작품에 총 시상금 1억원 대상(부문당 1개팀): 일반 500만원, 전문가 3,000만원 최우수상(부문당 2개팀): 일반 250만원, 전문가 1,000만원 우수상(부문당 3개팀): 일반 150만원, 전문가 600만원 장려상(부문당 5개팀): 일반 50만원, 전문가 300만원 ※ 제세공과금은 당첨자 부담입니다 ※ 문의사항 - 서울시 도시재생실 공공재생과(공공재생정책팀 윤지선) : hjyd33@seoul.go.kr, 02-2133-8650 - 공모관리팀(마실와이드) : competition@masilwide.com, 02-6010-1022 ※ 공모의 변경 사항은 ‘내 손안에 서울(http://mediahub.seoul.go.kr)’ 을 통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