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탁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email protected])
2019년 9월 28일 복합문화공간 노들꿈섬이 정식 개장했다. 개장 후 불과 석 달 만에 26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기록하며 부풀었던 기대감은 갑작스러운 코로나의 등장으로 사그라들었다. 더불어 노들섬의 건축물을 둘러싸고 야기됐던 논란도 금세 수그러들었다. 노들섬 내 건축물 존재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도, 선례 없는 최초의 시도를 통해 조성된 지난 과정에 대한 논의까지도 너무 빨리 희미해져 버렸다.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노들섬에는 또다시 인적이 드물어졌다.
하지만 그사이 노들섬은 더 노들섬다워지고 있다. 동측 노들숲으로 이주한 맹꽁이들은 그들의 새로운 터전에 정착했고, 하단부의 범람지에 조성됐던 크랙가든과 서측의 초지는 지난해 역대급 장마와 홍수를 경험하며 장소에 적합하고 어울리는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노들섬의 운영팀은 한발 앞서 노들섬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조경가로서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우리네 사회처럼, 꾸준히 변화하는 장소를 열고자 했던 노들섬 프로젝트의 사업철학이 조금 더 회자되길 바라며, 짧게나마 노들섬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변화의 기록
노들섬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개발과정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원래는 섬이 아니었다. 한강 북측 변 모래톱이었던 이곳은 봄이면 쑥, 냉이, 조개를 캐는 수확의 장이었고, 여름이면 강수욕을 즐기던 피서지이자 놀이터였으며, 겨울엔 썰매를 탈 빙판과 얼음을 내어주던, 아낌없이 주는 땅이었다. 1917년 한강대교를 건설하기 위해 이 땅 위에 흙을 돋우고 석축을 쌓아 올려 ‘중지도’라는 작은 섬이 만들어졌다. 한편 서울의 교통난 해소, 홍수피해 예방 등을 위한 각종 개발계획(한강 개발 3개년 계획, 한강종합개발 등 시행)의 일환으로 강 북단에 제방도로(현 강변북로)를 건설하면서 한강 백사장의 모래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1973년 중지도는 매립공사로 인해 그 면적이 15만㎡ 규모로 다섯 배 정도 증가했고, 매립시공사가 소유권을 넘겨받으면서 사유화 됐으며, 주변모래는 매립에 사용돼 사라졌다. 중지도는 완전한 섬이 되었고, 한강의 접근성도 사라졌다.
노들섬은 1995년 일제지명 개선사업에 따라 바뀐 중지도의 새 이름이다. 노들섬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이 모든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강대교와 인접한 가장 높은 레벨엔 오래된 중지도 석축의 흔적이 남아있고, 하단부의 콘크리트 슬래브로 덮인 바로 아래엔 모래층이, 외부로 노출된 상단부의 지반엔 시간의 흔적을 반영하듯 모래층 위에 약간의 점토, 표토층이 혼재하고 있다. 노들섬의 콘크리트 둔치엔 범람원의 역할을 하던 너른 모래밭이 사라지고 콘크리트 섬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난 수리적 변화의 흔적 또한 새겨져 있다. 한강의 물살을 정면으로 맞는 동측의 ‘물머리’와 집중류 형성 지역은 강력한 침식작용을 견디기 위해 밋밋한 콘크리트로 남아있지만, 서측의 ‘물꼬리’와 분산류 형성지역은 유속이 느려 퇴적작용이 일어난 결과, 강변 식생대가 자연 발생하였다. 변화는 계속된다. 노들섬에 새롭게 조성된 공간들은 계속해서 변화의 기록을 남길 것이고, 더 큰 변화를 위한 움직임의 장이 될 것이다.
재구성된 지형
문화공간 노들꿈섬은 3단계의 공모를 거치면서 구성된 설계팀과 운영자 그리고 프로젝트를 발주한 서울시의 협업을 통해 조성되었다. 설계팀은 노들섬의 지형을 재구성해 노들섬 상단부의 한강대교로부터 하단부의 한강변까지 다층레벨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킴으로써, 노들섬의 운영자가 계획한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노들섬의 자연환경, 서울의 도시경관이 서로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설계팀이 제안한 핵심 전략은 노들섬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양녕로에서 노들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는 연결 플랫폼이다.
이 새로운 레벨의 플랫폼은 노들섬의 공간 프로그램을 크게 상층과 하층으로 구분한다. 상층에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담을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와 녹지가 문화시설 및 다목적 시설과 함께 배치되고, 하층에는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인 ‘라이브하우스’, 서점 겸 도서관인 ‘노들서가’, 음식문화공간, 식물 공방, 패션스튜디오, 뮤직펍, 자전거 카페 등 다양한 민간업체들이 들어선다.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배치된 중정과 보이드, 계단, 엘리베이터, 다목적 스탠드는 상층과 하층을 물리적·시각적으로 연결하여 이 모든 공간이 하나의 장소임을 알리며, 자연스러운 소통을 유도한다.
생태계와의 상호적 변화
한때 한강대교를 떠받치는 콘크리트 덩어리였던 노들섬은 사람이 심은 묘목이 자라고, 바람에 날아온 씨앗이 싹트면서, 동측의 대부분과 서측의 곳곳이 울창한 숲과 식생대로 변화했다. 노들섬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서측의 일부 유휴부지에서는 사람들이 그곳을 텃밭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맹꽁이, 도룡뇽, 참개구리, 줄장지뱀이 등도 등장했다. 고립된 줄 알았던 노들섬은 자연과 사람의 상호작용으로 변화를 이어나가며, 나름의 방식으로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설계팀은 이를 주목했다. 노들섬이라는 터전에서 만들어진 기존 생태계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이를 토대로 자연과 사람이 또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향으로 대상지를 설계했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집중될 서측에서 발견된 양서류들은 각각의 적합한 생육환경에 맞게 좀 더 안전한 동측 숲에 서식처를 조성하여 이주시켰고, 이들의 생태환경이 교란받지 않는 범위에서 사람들의 이용공간과 동선을 계획하였다. 사람들이 이들을 관찰하며 이들의 보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작은 이들의 존재를 좀 더 쉽게 확인하고 싶다면 여름철 비 온 뒤의 노들숲속 데크산책을 권한다. 매년 장마철이 되면, 그 자그마한 몸통으로 노들숲을 가득채우는 우렁찬 맹꽁이들의 구애소리를 들을 수 있고, 운이 좋다면 참개구리나 도롱뇽을 만날 수도 있다.
기반시설의 재자연화를 위한 틈
노들섬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되기 전까지 반세기 가까운 시간동안 한강 가운데 유기된 채로 있어 온 도시기반시설이었다. 그러한 시간적 맥락을 반영하듯, 노들섬이 새롭게 조성되기 전 섬의 곳곳엔 갈라진 시멘트 틈새로 다양한 야생의 수변식물과 버드나무 등이 자라고 있었다. 설계팀은 콘크리트 바닥 틈에서도 자라나는 식물들처럼 이러한 자연의 생명력과 회복력을 드러내기 위해 노들섬 하단부의 순환동선을 따라 노들섬 틈새정원(Crack Garden)이라는 녹지공간을 조성했다.
하부지반을 덮고 있는 기존 콘크리트의 일부를 걷어내기 위해 계획된 라인을 따라 콘크리트를 커팅했다. 이때 커팅으로 인한 폐기물을 줄이고 크랙가든의 조성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커팅 된 콘크리트 덩어리를 다시 조각내고 재활용하여 식재와 함께 연출했다. 크랙가든이 조성된 하단부 일대는 평상시엔 건조하다가도 여름철 집중호우시 때때로 침수가 되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 때문에 크랙가든의 식재는 이러한 환경에도 잘 적응할 수 있는 저관리형 수종들로 계획되었다. 작년 여름,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노들섬 하단부에서 풋풋한 표정으로 크랙가든을 거닐고 있는 커플과 설레는 표정을 한 노년의 부부를 마주한 적이 있다. 크랙가든은 방문객들에게 노들섬에서 만나는 이색적인 휴게, 산책 및 레저공간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도시환경의 자연화에 대한 지속가능하고, 단순하며, 소박한 해답을 보여주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비일상적 공간
노들섬은 ‘열린과정’을 표방하며 기획 및 운영계획을 공모한 뒤 당선된 계획안에 따라 공간과 시설을 조성한 의미 있는 사례이다. 또한, ‘일상 속에서 접근 가능한 비일상성’을 내세워, 도시에서 접근이 어려운 고립된 섬이라는 약점을 장점화시킨 프로젝트이다. 도시 내 해방구로서의 노들섬은 일상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주변 도시경관을 보는 곳, 압도하는 구조물이 아닌 자연이 먼저 보이는 곳이며, 노들섬을 채우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곳이다. “노들섬은 물리적으로 보면 바둑판에 가깝다. 기보에서 들여다봐야 할 것은 줄눈이 아니고 바둑알들이다.”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의 총괄기획가를 맡았던 서현 교수가 한 일간지 사설 칼럼에서 언급한 표현이다. 사람들이 채우고 변화시켜 나갈 앞으로의 노들섬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박경탁 /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