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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슈벤데너는 발견을 하고 숨을 헐떡이네 그의 렌즈 아래 지의류는 공생체라는 것을 두 종이 서로 함께 의지하여 하나의 삶을 이루네. 꿈속에서 말하기를, 오! 내 사랑 누렇고 누런 곰팡이 달콤한 당분을 먹여주는 조류 곰팡이 손길에 젖고 햇빛에 초록빛 나는 세포 하나하나 – 모두 바위 위에 뿌리내리네 나도 우리로 만들어졌어. 내 연인은 나를 구속하네 해야할 일 그리고 하지말 일과 함께. 나는 햇살을 수확하여 아침으로 딸기를 그녀에게 가져오네. 그녀는 식탁 그릇에 백일홍 꽃 한송이를 띄우며, 여름 땀 냄새로 나를 흠뻑 적시네 우리가 하나가 아닌 둘이 될 때까지. 마치 지의류처럼 우리는 다르다네. 바위와 물이 다르듯이. 바다가 바닷가와 다르듯이. 손이 손잡음과 다르듯이. -딕 웨스타이머 ‘지의류처럼 나는 사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지의류의 종류 지의류는 모양도 색깔도 매우 다양하고 사는 곳에 따라 전혀 다른 종류가 나타나기도 한다. 우선, 자라나는 형태, 즉 생육형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나무처럼 하늘로 뻗어자라는 ‘수상지의류’, 펼쳐진 잎사귀같은 ‘엽상지의류’, 작은 알갱이나 부스러기가 나무껍질이나 바위표면에 바짝 붙은 ‘가상지의류’이다. 두 번째로 자라는 장소, 즉 생활형에 따라 나무껍질에 사는 ‘수피지의류’, 바위에 붙어있는 ‘암석지의류’, 흙 위에 자라는 ‘토양지의류’, 그리고 특별히 나뭇잎사귀 윗면에 자라는 ‘엽권지의류’이다. 천이(succession)라는 생태학 개념을 지의류에도 적용시켜 본다면, 일반적으로 가상지의류가 먼저 나타나고 이후에 엽상과 수상지의류와 같은 구조적으로 더 발달한 지의류가 나타난다. 또한 암석지의류나 토양지의류가 먼저 생겨나고 이후에 나무와 같은 고등식물들과 함께 수피지의류가 나타나는 현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생태계 발달단계 초기에 엽상이나 수상지의류 일반종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로 매우 발달한 숲 속에서만 보이는 가상지의류 특수종들이 있기도 하다. 단편적으로 짐작할 수 없는 자연의 난해하고 복잡한 질서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지의류와 공생 1869년 스위스 식물학자 시몬 슈벤데너는, 지의류는 두 개의 상이한 생물(곰팡이와 조류)로 이루어져 있다는 ‘2생명체가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당시 주류 식물학자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실제로 화학적 분석법의 하나인 정색반응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유명한 핀란드 식물학자 윌리엄 나일랜더로부터 ‘바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심한 조소를 받기까지 했다. 그 후, 1877년 독일 식물학자 알베르트 프랑크는 곰팡이와 조류가 서로 파트너인 관계임을 확인하였고, 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위대한 용어를 만들었는데 바로 ‘공생(symbiosis)’이다. 즉, 우리가 요즘 생물뿐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를 설명할 때에도 흔히 쓰는 ‘공생’이라는 말이 실제로는 지의류라는 생물 구성의 난해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만든 단어라는 것을, 바로 지의류를 위해 생겨난 신조어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알베르트 프랑크 이후, 안톤 드 베리 등 많은 식물학자들이 ‘공생’이라는 용어를 더 일반화시키고 나아가 슈벤데너의 ‘2생명체가설’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경쟁과 갈등으로만 설명되었던 진화라는 개념이 이들에 의해 협업과 상생으로까지 확대되어 (지의류는 그냥 협업이 아니라 계(kingdom)간 협업이지 않은가!) 19세기까지의 진화적 사고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최근, 인체 소화기관에 여러 박테리아로 이루어진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즉 장내 미생물이 사람의 감정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지의류를 포함한 여러 생물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가 실제로는 외부의 독립된 종이었다가 우연한 계기로 세포 속으로 들어와 기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세포는 2~3개의 에너지(ATP)를 만들 뿐이지만, 미토콘드리아가 세포 속에 있는 경우, 미토콘드리아는 필요한 산소를 공급받으며 세포에 필요한 에너지(ATP)를 30여 개나 생산해 주는 상리공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식물 또한 박테리아(남조류)에서 기원한 엽록소가 식물로 들어가 공생하면서 잎을 발달시켜 광합성이라는 큰 역할을 하게 되고 식물의 뿌리는 뿌리 속 그리고 뿌리를 둘러싼 여러 균근곰팡이들이 돌과 흙 속에서 영양분을 뽑아내 식물에 공급한다. 알베르트 프랑크 이전, “하나의 종은 독립된 개체이다”라는 관념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종은 서로 의지하는 공생체이다”라고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의류가 바로 그러한 전환으로 가는 비밀의 문인 것이다.
- 이병권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대간보전실 박사 [email protected]
-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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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연재 조경인이그리는 미래 재작년이었던 2022년은 한국에 조경이 도입된지 50년이 된 해였다.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지난 50년 동안의 주요 작품을 회고하며, 건설산업의 한 분야로 자리잡은 조경을 위해 노력해온 조경인들의 헌신과 업적을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연신 펼쳐졌다. 조경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에게도 뜻깊은 한해였다. 아직은 불안하긴 하지만, 창업한지 3년차에 접어들면서 그래도 열명이 넘는 동료들로 이루어진 그럴듯한 디자인오피스로 성장하게 되었고, 병아리같던 신입사원들도 이제 어엿한 경력직이 되어서 손발이 착착 맞아가기 시작하면서 웬만한 프로젝트는 자신있게 풀어나갈 정도가 되었다. 3년의 시간이 축척되고 사업자로서의 경험도 쌓여가면서 자연스럽게 조경설계업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시작은 무사히 버텨내었지만 앞으로의 시간은 과연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일 수 있을지, 디자인오피스로서 설계적 역량만 잘 키워나간다면 우린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조직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날 따르는 청년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줘야한다는 책임감도 들기 시작했다. 협력 중인 엔지니어링회사의 홈페이지를 들어가기 위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했더니 평균연봉이 6천만원 후반대라는 기업정보가 뜨는 것을 보고 나서는 우리 회사에 다니고 있는 훌륭한 디자이너들의 처우가 비교되어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직장인에게 꿈의 연봉이라는 1억이 설계사무소 직원에게도 꿈꿀 수 있는 금액이 되려면 과연 나는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우선 지금보다 일을 더 열심히할 자신은 없다는 확신은 있었다. 지난 3년의 시간동안 과거 설계사무소 직원이던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갈아넣고 있었기 때문에 더 갈아넣다가는 남아나는게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데, 이는 결국 설계 용역비의 단가를 높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침 2021년에 조경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조경설계 표준품셈’이 공표되었다. 필자는 재빠르게 엑셀파일에 표준품셈 계산을 위한 서식을 만들고 품셈의 기본면적인 5,000제곱미터를 입력해 보았고, 드디어 그 안에서 조경설계업의 밝은 미래를 발견하게 되었다. 면적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가 기존에 받아오던 설계비 대비 2~3배까지 산출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대단한 품셈이 제정되었다니! 그것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고시한 법적 기준에 근거한 품셈이기 때문에 반드시 적용해야하는 제도이기에 더욱 반가운 소식이었다. 조경설계 표준품셈이 공표된지 3년 정도가 경과하여 2024년이 되었고, 예상대로라면 조경설계업이 품셈을 기반으로 현실적인 설계대가를 받으며 당당하게 채용공고를 내고있어야 하지만, 체감하는 변화는 전혀 없는 상태이다. 오히려 인건비와 물가는 오르고 설계비는 제자리인 탓에 더 쪼그라든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사이 회사 이름이 더 알려지게 되어 감사하게도 수주 프로젝트의 개수가 상당히 늘어났지만, 각 지자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정원’열풍은 오히려 사업규모를 더 작게 쪼개는 결과를 초래하여 수익성은 낮아지는듯하다. 조경설계 표준품셈은 실무에 반영되고 있긴하다. 기존의 발주방식이 ‘공사비 요율’에 의한 용역비 산출에 따라 진행되었다면, 이제는 조경설계 표준품셈에 따라 ‘실비정액가산방식’을 통해 산출이 되고 있다. 다만 20~50%의 조정율을 적용하여 마지막에는 결국 예전과 같은 수준의 설계비로 회귀시키고 있기 때문에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조정율은 법적, 논리적 근거가 없이 적용되고 있고 용역사 입장에서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다. 조경설계 표준품셈은 여전히 법과 제도라는 테두리에서 우리 업계를 뒷받침해줄 든든한 기반이고, 우리는 이를 주장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공발주사업의 공원녹지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조경에도 똑같이 적용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설계용역 대가 산출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지금이 우리의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시기이다. 지난 2023년에는 한국조경가협회가 재창립되어 활동하기 시작했고, 올해는 정영선이라는 브랜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조경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좋은 기회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50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모두의 마음을 모아 2021년에 보았던 조경의 밝은 미래가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길 기대한다. 이남진 / 바이런 대표
- 이남진 바이런 대표
-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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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낙원이에요. 우리들은 모두 낙원에 살고 있어요. 만일 하느님의 은총으로 내가 더욱 오랫동안 살게 된다면 그때 난 당신의 시중을 들겠어요. 인간이란 누구나 할 것 없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물론 세상에는 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저분들이 내게 베풀어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저들을 위해 일하겠어요.”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의아해하지 마시라. 지의류라는 생소한 생명체를 소개하는 글에 뜬금없는 제사(題辭)라고, 낙원이니, 하느님의 은총이니, 주인과 하인이니, 서로 베풀고 돕는다는 이야기가 다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지의류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제사를 곱씹어 보리라 의심치 않는다. 알았든 몰랐든 간에 우리는 거리에서, 공원에서 그리고 숲 속에서 이끼나 이끼같은 무언가가 가로수나 바위에 피어있는 것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무껍질이나 바위가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얼룩이 진 것을 기억하기도 하고, 좀 더 호기심과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백두산같은 고산의 수목한계선 너머 바위 너덜에 마치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한 사면 자체가 레몬 빛깔로 펼쳐진 것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얼룩일까? 이끼일까? 아니면 곰팡이일까? 이 알 수 없는 생명체, 바로 지의류에 대해 설명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해설서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급적이면 새로운 생명체에 낯설은 여러분의 심기를 최대한 거스르지 않으며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전통을 따라 지의류의 정의를 내려보면, 지의류는 지의균(lichen fungi)과 광합성 파트너로 이루어진 생물이다. 지의균은 지의류를 만드는 곰팡이를 뜻하고 광합성 파트너는 광합성을 하는 조류(algae)나 박테리아(cyanobacteria, 이하 남조류)를 말한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약 15만 종의 곰팡이가 알려져 있고 그 중 약 2만 종의 곰팡이가 지의류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지의류와 곰팡이가 같은 것인가 헷갈릴지 모른다. 조금 어려워질 수 있는 이야긴데, 분류학에 대해 잠깐 설명이 필요하지만 독자의 상식을 더 채워주는 유익이 있을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5개의 계(kingdom)로 나뉜다. 그 어떤 생명체도 이 5계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중학교 시절 생물시간에 들었던 ‘종속과목강문계’가 어렴풋이 기억날 것이다. 생물을 분류하는 가장 높은 단계가 ‘계’이고 5계가 바로 동물계, 식물계, 균계, 원생생물계, 원핵생물계이다. 앞의 3계는 익숙하지만, 뒤의 2계는 다소 생소하다. 뒤의 2계 이름은 잊어버려도 좋다. 다만 지의류를 구성하는 광합성자가 뒤의 2계에 속한다는 것만 알고 가자. 앞서, 전통적인 정의로서 지의류는 지의균과 조류 혹은 남조류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지의균은 당연히 균계에 속할 것이고, 조류는 원생생물계, 남조류는 박테리아로서 원핵생물계에 속한다. 그렇다면 지의류는 사실 2가지 혹은 3가지의 다른 계에 속하는 생물들의 결합인 것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지의류는 버섯과 달리 곰팡이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데 곰팡이로 분류를 하는가? ‘현재는 그렇다’가 정답이다. 모든 분류는 인간이 편리하게 이해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지의류를 구성하는 생물 중 조류나 남조류에 비해 지의균이 훨씬 다양하기 때문에 지의균을 따라 분류하면 더 세분하여 이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지의류의 조류는 약 100 종, 남조류는 약 10여 종 되는데 비해 지의균은 약 2만 종이나 되기 때문이다. 다양성 측면 말고도 지의균을 분류의 기준으로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관계성 측면에서 볼 때, 지의균은 조류나 남조류가 살 거처를 마련해주고 조류나 남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지의균에 양분을 제공하는 주인과 하인의 관계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곰팡이가 주인이고, 조류와 남조류는 하인으로서 농사를 짓는 곰팡이농업의 곰팡이농장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항상 1대 1인 것은 아니다. 실제 지의류를 절편을 내어 현미경 아래 관찰해 보면, 지의균 1종류에 조류·남조류가 1종류인 경우가 흔하지만, 지의균 1종류에 조류·남조류가 여러 종류이거나, 지의균 여러 종류에 조류·남조류가 1종류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 지의균 여러 종류에 조류·남조류 여러 종류인 경우도 있다. 즉 균류와 광합성자가 1대 1, 1대 다, 다대 1, 혹은 다대 다의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지의류는 살아간다. 서로 돕고 살아가는 인간의 방식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지의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최근 전통적인 정의를 뒤흔드는 연구가 나왔다. 지의균과 광합성자에 더해 ‘제 3의 생물’로서 효모가 지의류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 효모는 지의류 표면에 살면서 지의류가 생산하는 유용한 물질(2차대사산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실제 현미경으로 지의류를 살펴보면 주인인 지의균과 하인인 조류·남조류이외에 잠시 머물러 있는 손님같은 다른 종류의 균들과 조류 혹은 알 수 없는 모양들이 지의류 표면이나 속에 숨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마치 지의류라는 집의 문앞에서 노숙하거나 집 안에서 잠시 하숙하는 것 같지 않은가! 아직도 다 밝혀내지 못한 지의류를 둘러싼 이 모든 생명체를 생각해 본다면, 지의류는 이제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라 거대한 컨소시움을 이루는 하나의 생태계로까지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지의류를 마주 칠 기회가 있다면 보이지 않는 그 모든 생명들과 아울러 살아가는 아주 작지만 거대한 생명체를 보면서 인간사회와 다르지 않다고 곱씹어 보면 좋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신의 섭리 혹은 자연의 의지로 태어나 서로 돕고 살아가는 조용한 생물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병권 /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대간보전실 박사
- 이병권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대간보전실 박사[email protected]
- 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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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도시여가국이 정원도시국으로 바뀌었다. 2013년부터 서울시의 공원녹지의 정책을 총괄했던 푸른도시국은 10년 동안 썼던 이름을 버리고 정원도시국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이름이 모두의 마음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언론에는 명칭 변경의 과정에 대한 여론 수렴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고, 학계와 업계의 원로들이 새로운 이름을 못마땅해하며 항의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정원도시국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은 이들은 정원의 개념이 공원이나 녹지가 다루는 영역을 포괄하기에 너무 제한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정원도시국이 정원에 틀에 갇혀 도시적인 문제를 다루기보다 장식적으로 여기저기 꽃과 풀만 심게 되어 그 역할이 축소되지는 않을까라는 우려도 있다. 이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푸른도시국이라는 이름을 붙일 때도 공원녹지의 이름을 버리고 모호한 문학적 수사를 내켜 하지 않았던 이들도 있었다. 푸른도시라는 이름을 버리고 공원녹지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푸른도시 선언을 한 이후에 푸른도시국으로 돌아간 후에야 자리를 잡은 시행착오의 과정도 있었다. 이름보다 저 중요한 것은 정원도시국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를 진단하고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어쨌든 서울의 공원녹지의 미래와 비전은 앞으로 정원도시라는 이름으로 만들어가야 하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정원이 최선의 대안이었는지 몰라도 푸른도시국의 새로운 이름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2022년, 여가 관련 부서가 푸른도시국에 들어오면서 푸른도시여가국이라는 임시방편 같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 2023년, 오세훈 시장은 서울의 새로운 공원녹지의 방향을 담은 정원도시 선언을 발표한다. 이는 서울의 공원녹지 정책에서 천만다행의 일이었다. 오세훈 시장의 취임 직후 발표한 새로운 시정의 비전에 공원·녹지의 역할은 사실상 없었다. 전임 시장과 정치적 철학도, 정책적 비전도 다른 오세훈 시장이 대대적인 부서의 재편을 단행하면서 전임 시장의 선언이 담긴 푸른도시국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이는 공원녹지 분야에 대한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서울의 공원녹지 정책도 변화가 필요했다. 꼭 시장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숙해지고, 인구감소와 고령화라는 돌이킬 수 없는 숙명을 받아들여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많은 녹지와 큰 공원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던 과거 성장기의 양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이제는 질적인 공원·녹지의 변화를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전문가의 관점에서 정원이 너무 가볍게 느껴질지 몰라도, 시민들이 공감을 쉽게 이끌어내기 위해서 정원이 주는 일상에 더 가깝고 친근한 느낌은 새로운 이름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필요한 것은 가시적 성과이다. 사실 선언은 일종의 포장이다. 선언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선언은 정책 결정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건축, 토목, 디자인,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정원도시 못지않은 선언과 기획이 있었다. 문제는 서울링과 새로운 세종문화회관, 노들섬과 세운상가의 레노베이션,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이미 언론에 발표된 조 단위의 대형 프로젝트들과 비교하면 공원·녹지의 변화는 소소하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많은 냉소주의자는 정원도시 선언을 곧 잊힐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으며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23년의 선언 이후 2024년의 푸른도시국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정원도시 선언을 현실화할 첫 단추로 동행·매력정원이라는 다수의 소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구마다 26개의 정원을 상반기에 만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국제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2024년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역대 최단기간 최다 방문객을 유치하였다. 그리고 여러 민간기업을 참여시켜 역대 가장 많은 수의 양질의 정원으로 뚝섬한강공원을 변모시켰다. 이 모든 것이 나무랄 데 없이 완벽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최소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질적인 변화를 단기간 내에 보여주고 언론과 정책 결정자의 관심을 이끌어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정원도시 선언을 통해 무엇인가 실제적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대치는 높아졌다. 그런데 초기의 성과는 말 그대로 초기의 성과이기 때문에 성공적이었다. 곳곳에 꽃과 풀을 가득 심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작은 정원들을 만들어 호평받았다고 해서 이런 정책만을 계속 추진한다면 정원도시의 회의론자들의 예언처럼 될지도 모른다. 정원도시국은 여기저기 꽃과 풀이 가득한 사진찍기 명소만 양산하는데 그칠 뿐 도시에 대한 본래의 역할과 비전을 영영 상실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새로운 정원도시국이 이러한 걱정과 우려를 보기 좋게 틀렸다고 말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기 위해서는 정원도시국이 명심해야 할 몇 가지 전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양적 패러다임으로의 회귀를 경계하고 질적 패러다임의 정책적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정원도시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다는 정책적 변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더 많은 녹지, 더 큰 공원, 더 빽빽한 나무라는 보편적인 구호는 무의미하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인구감소가 예정되어 있는 서울에서, 더 이상 대형 공원을 지을 땅이 남아 있지 않은 이 도시에서 이제는 양적 팽창의 시대에 간과했던 세세한 질적인 요소들을 챙길 때가 되었다. 정원도시국은 매력동행 정원의 성과에 힘입어 1,000개의 정원을 짓겠다고 한다. 물론 1,000개의 정원이 새로 만들어지면 우리의 삶은 풍부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100만 평, 1000만 그루, 1000개와 같은 목표는 결국 숫자를 채우기 위한 정책으로 변질되는 것을 너무나 자주 보아왔다. 1,000개의 정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원을, 어떻게, 어디에, 누구를 위해 만들 것인가라는 정책적 디테일이다. 둘째, 우리가 당면한 더 큰 과제를 다룰 수 있는 새로운 정원의 개념을 추구해야 한다. 사람들은 정원이 예뻐서 좋아한다. 그러나 정원을 만들고 도시에 녹색이 풍부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예뻐서,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다. 설령 사람들이 정원이 예뻐서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서울시의 한 국 전체가 나서서 사진찍기 좋은 포토존을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정책의 궁극적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정원도시국의 중요한 선례가 되었던 싱가포르는 2021년 50년 넘게 추진한 “정원 속의 도시(City in Garden)”라는 정책을 버리고 “자연 속의 도시(City in Nature)”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그 이유는 전지구적인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공원녹지의 패러다임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뿐만 아니다. 예외 없이 세계의 선도적인 도시들은 이제 모두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한 개발, 사회적 형평성 등 우리 시대가 당면한 주요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공원과 녹지를 재규정하고 있다. 정원도시 서울의 정원 역시 사계절 꽃이 만발하여 예쁜 정원이 아니라 더 큰 시대적 소명을 위한 새로운 매체가 되어야 한다. 셋째, 정원의 테두리에 스스로 한정하기보다 기존의 공원과 녹지의 한계를 넘어 도시의 영역으로 역할을 확장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기후변화 대응과 사회적 형평성의 재고와 같은 전세계 모든 도시에 주어진 과제는 공원과 녹지에 더 큰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과거 공원과 녹지의 영역이 아니던 건물과 도로, 기반시설까지 녹색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서울도 다르지 않다. 서울시는 도심 대개조를 위해 개방형 녹지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녹지는 도시계획의 과정 끝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요소가 아니라 도시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선결적으로 제시되어야 하는 매체가 되었다. 정원도시국은 후속 사업으로 공원 내 건물을 녹화하고, 공공건물에 실내정원을 확대하고, 기존 공원에 식재 특화를 그랜드가든을 제시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전부라면 공원과 녹지를 넘어 도시를 변화시키기보다 기존의 공원과 녹지의 테두리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는 셈이다. 녹색이 지닌 힘은 생각보다 크다. 정원이라는 개념은 도시를 모두 포괄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넷째, 정원도시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과 계획적 로드맵을 마련하여 실현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 서울에는 1,000개의 매력정원과 기존 공원을 업그레이드할 그랜드가든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많은 정원, 큰 정원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많은 크고 작은 정원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연계하여 도시를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구상과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도 있는 리서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의 조언과 협력이 필요하다. 단기간 내에 눈에 띄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오랜 기간이 걸릴지라도 도시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전략 플랜도 필요하다. 그리고 실현을 위해서는 개별 공간의 조성 뿐 아니라 운영과 유지관리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다. 많은 사례들은 식재 특화에만 초점을 맞춘 공공공간은 수많은 재원이 소요되거나 금세 황폐화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초기에 주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준 정원도시는 그 성공을 교훈 삼아 이제는 통합적이고 복합적인 여러 단계의 실질적인 전략과 계획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김영민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email protected]
-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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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정책이란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수립하는 정책은 공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결정하고 수행하는 행동방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방침과 전략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계획이 정책기본계획이다. 경관법 제6조에는 국토부장관이 아름답고 쾌적한 국토경관을 형성하고 우수한 경관을 발굴·지원·육성하기 위하여 경관정책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경관정책기본계획 수립에 대한 조항은 2007년 경관법 제정 당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2013년 전부개정(2014년 2월 시행)을 거치면서 정책 기반을 형성하기 위해 도입된 수단으로서 도입되었다. 필자는 운 좋게 2014년 제1차 경관정책기본계획(2015~2019)과 제2차 경관계획기본계획(2020~2024) 수립에 참여하였고, 이제 제3차 경관정책기본계획(2025~2029) 수립 용역을 수행 중에 있다. 동일한 정책계획 수립에 세 번이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정책연구자로서 매우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중 가장 곤욕스러운 일은 “경관법(또는 정책기본계획)이 생기고 경관이 얼마나 좋아졌느냐?” 그리고 경관법이 언제 그 수명을 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경관법이 다시 살아나느냐?”하는 질문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제3차 경관정책기본계획 수립 연구를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경관법 제정 당시부터 전부개정, 그리고 1차 기본계획 수립, 2차 기본계획 수립 등 그간 경관정책이 형성되어 집행되어온 과정을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현재 경관정책은 어떻게 추진되어 왔는지를 되짚어보고 그 성과와 한계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다. 처음 정책기본계획이라는 것을 수립하던 당시에는 제1차 경관정책기본계획의 성격과 방향을 설정하는데 여러 전문가들과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국토에 대한 경관마스터플랜인지 아니면 국토경관 관리를 위한 로드맵인지... 결국 후자로 결론짓고 경관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고, 지자체 경관관리 역량과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2개의 정책목표, 3개의 추진전략, 8개의 정책과제, 그리고 61개의 세부사업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국토경관 헌장 제정, 경관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 시행, 경관협정 시범사업 추진, 공무원 대상 경관행정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 나름의 성과를 냈다. 제2차 경관정책기본계획은, 경관심의 등 경관관리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제기된 제도의 실효성 문제, 특히 실제 경관 관리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그렇지 못한 것을 개선하기 위해 지역 경관관리체계의 실행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3개의 정책목표, 3개의 추진전략, 6개의 정책과제, 그리고 46개의 세부사업을 도출하였다. 추진성과로는, 국토교통부가 비도시지역 경관관리, 경관자원조사, 경관심의 등 제도 개선 관련 연구를 주로 진행한 반면, 본격적으로 경관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지자체 차원에서 경관심의 기준 및 운영 개선, 지역자원조사 실시, 경관협정 사업 시행 등 가시적인 성과를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두 계획을 나란히 놓고 보면 비전은 같으나 계획의 목표와 추진전략에 따라 과제의 성격과 추진성과에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토경관 관리에 대한 문제, 즉 경관정책 추진의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필자는 그 원인을 경관이라는 개념의 속성에서 일부 찾고자 한다. ‘경관’이라는 개념은 정책대상으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추상적인 개념이다. 경관이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도 주관적이어서 정책이 달성해야 하는 국토경관의 관리에 대해 이해도 개인마다 차이가 크다. 그러다 보니 정책목표 달성 정도, 즉 정책추진의 효과를 측정하기 매우 어렵다. 게다가 경관은 경관법에 의해 컨트롤 할 수 없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즉 경관법의 제정사유에는, “자연경관 및 역사·문화경관을 보전하고 도시·농산어촌의 지역특성을 고려한 경관을 형성함으로써 아름답고 쾌적하며 지역특성을 나타내는 국토환경 및 지역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중략)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경관법에 근거한 관리수단 대부분은 도시적 경관을 관리하는데 적합한 것들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국민들이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자연경관이나 농촌(어촌과 산촌 모두 포함)경관, 그리고 역사문화경관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것처럼 느낄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라 경관법 또는 경관관리 수단(정책기본계획 포함)과 전혀 무관한 상황에 의해 경관이 훼손되고 그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경관법과 경관정책기본계획에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최근 사회적 여건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정책 여건도 변하고 있기에 조금은 기대해 본다. 제3차 경관정책기본계획은 올해 안으로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 많은 사람들 앞에 공개될 것이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좋은 의견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이상민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신유정[email protected]
- 202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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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가히 정영선 조경가의 해다. 마치 한국조경 50주년이 올해였나 싶을 정도. 지난 식목일에 오픈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와 지난 4월 17일 개봉한 정영선 조경가의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는 한여름으로 접어든 현재까지도 장안의 화제다. 수많은 조경 분야 인력들의 땀방울이 대지에 뿌려진 역사가 바탕이 되었겠으되, 이를 대표해 팔순의 할머니 조경가가 AI가 대세인 이 시대의 핫한 아이콘으로 등극하다니, 그 맥락을 따라 읽다 보면 상상 이상으로 흥미롭다. 지난 7월 3일에는 국현 전시와 연계해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라는 학술행사도 열렸다. 방대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정영선 조경가의 작품들을 다종다양한 철학과 경험과 시선과 정책으로 예리하게 읽어내는 자리라 무척 풍성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김아연 서울시립대 교수는 전 국토가 정원이 되어야 한다는 정영선 조경가의 표현과 전국적으로 정원도시라는 슬로건 아래 비슷비슷한 정원이 만들어지는 현실을 대비하며, 정영선 조경가가 이미 수십 년간 공원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정원들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 순간 십여 년 전 선유도공원 소장 시절이 떠올랐다. 한여름 노루오줌을 주인공으로 다양한 초화류가 어우러지던 ‘시간의 정원’이 눈앞에 펼쳐지며, 선유도공원에서 시도된 다양한 정원들이 갑자기 소환된 것. 당시 설계자인 정영선 조경가를 모셔 정원이나 시설 개선에 대한 자문을 받거나 도시정원사(이후 시민정원사로 확대) 양성 강의를 부탁드리곤 했는데, 오실 때마다 공원 곳곳을 돌며 공간과 정원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주셨기에 가능한 기억이었다. 생각은 선유도공원 조성시 공사 감독을 했던 선배 공무원들이 “경험해 본 적 없던 다양한 정원형 식재 설계를 고집하며 정영선 조경가가 현장에서 손수 심고 옮기고 하는 바람에 준공일을 맞추느라고 무척 마음을 졸였다”던 하소연 섞인 말씀으로까지 이어졌다. 전국적인 정원도시 붐 속에서 도시의 공원과 가로변 같은 공공공간에 짜임새 있는 정원이 무수히 들어서며 주민들께 선명한 인상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하나 선유도공원이 개장한 지 22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정원형 조경(식재) 설계는 공무원에게 부담인데, 다름 아닌 유지관리 때문이다. 아직까지 공공의 녹지관리는 전정기와 예초기가 그 중심이다. 군식된 관목과 초화류를 전정기가 선두에서 거칠게 쳐내면 예초기가 바닥을 사정없이 난도질하고 그 남은 잔해를 블로어(송풍기)로 불어 마대자루에 담는 식이다. 드넓고 산재된 공간에 관리인력은 늘 모자라니, 빠른 시간내 많은 구역을 헤집으며 이동해야만 한다. 이마저도 2~3개월이 지나면 도로 잡초밭이 될 수밖에 없어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란 표현이 적확한 상황. 정원으로 조성된 공간은 관리방식이 전혀 다르다. 지난달 말 자연주의 정원으로 이름 높은 제주 베케정원을 동료 직원들과 함께 방문했을 때 해주신 김봉찬더 가든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잡초는 잘 뽑지 않아요. 힘도 들지만 억지로 뽑아내면 그 땅이 비워지면서 다른 잡초가 싹이 터 올라오죠. 작은 낫으로 잡초 중간을 툭툭 끊어 기세를 잠재워요. 잡초가 주춤하는 그 사이에 우리가 원하는 식물이 햇볕을 받으며 캐노피를 장악하죠” 사실 잡초도 흙을 일구고 표토의 유실을 방지하는 등 생태계의 일원이기에 정원식물이 잘 자리잡는 수준 안에서 지혜롭게 제어하는 것도 필요한데, 분절된 크고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만 하는 공공에선 선뜻 적용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결국 정원 관리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수적이다. 우선은 당초 설계와 시공을 담당했던 가드너가 조성 직후부터 한시적이나마 주기적으로 관리에 참여하는 것이 설계 의도를 지속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 공간을 늘상 관리하는 현장관리팀이 이 과정에 함께 결합하며 자연스럽게 관리의 연속성이 구축되어야 한다. 더불어 현장관리팀의 개별 근로자에겐 지속적인 가드닝 교육과 실습이 오랜 기간을 두고 뒤따라야 하는데, 1년 단위로 채용하는 시스템이 걸림돌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걸음 더 나간다면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직접 가드너 교육과 현장 실습을 받고 계절마다 지역의 정원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주민 가드너의 대표적 사례가 2013년부터 서울시에서 시행중인 ‘시민정원사’ 제도다. 기본 교양교육에 해당하는 시민조경아카데미는 현재까지 2,949명을 배출하였고, 1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180시간의 가드닝 이론 및 실습교육을 받는 시민정원사 양성과정을 모두 마치신 분들도 756명에 이른다. 양성된 시민정원사들은 (사)서울시민정원사회 회원으로, 구청이나 각 공원의 가드닝 자원봉사자로, 기존 정원박람회장의 정원 관리자로, 가드닝 전문강사 등으로 맹활약 중이다. 2024년 뚝섬한강공원에서 개최하고 있는 서울국제정원박람회장에도 주기적으로 정원관리 자원봉사에 참여하며 오롯한 행사 주체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정도. 자치구도 시민정원사를 활용한 정원 조성 및 관리에 적극적이다. 서울 양천구의 경우 2021년 7월 서울시에서 기 양성한 시민정원사 중 양천구에 거주하는 21명을 양천구 정원친구(자원봉사자) 1기로 위촉한 뒤, 첫 프로젝트로 신정3동 신정허브원을 조성하며 주민 가드닝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4년차인 현재까지 총 3기 49명의 정원친구가 양천구청역 앞 해누리정원 등 양천구 관내 9개 매력정원 조성, 관리를 자원봉사로 진행하는데, 작년 한 해 92회 1,136시간 동안 활동했을 정도다. 여기에다 그린페스티벌, 반려식물 분갈이 서비스 등 각종 관련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이와 병행해 전문가의 특강과 실습 등 역량 강화교육를 주기적으로 받음으로써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자원봉사 활동을 보완하고 있다. 영등포구에서도 작년부터 다종다양한 정원 조성사업에 시민정원사를 적극 활용하는 등 그 흐름이 확대되는 추세다. 정원도시가 단순히 정원을 많이 만드는 방식으로만 이룩될 수는 없을 것이다. 도시 전체가 계획 단계마다 녹지를 충분히 확보하고 숲과 녹지와 수계를 이어나가는 네트워크를 통해 생물다양성과 보행성을 높여야 한다. 자연지반을 확보하여 비옥하게 관리하는 한편으로, 인공지반을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만들어 적극 활용해야 한다. 가로와 건축물을 더 정원친화적으로 유도하고 공공에서 가정까지 크고 작은 정원이 빼곡한 그물망처럼 도시를 점령해 나간다면 일견 멀게만 느껴지는 정원도시라는 미래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도시 구성원 모두가 이러한 비전을 함께 공감하고 공유해 나가는 컨센서스다. 그러하기에 좀 더 자주 정원도시를 이야기하고 논쟁해야 한다. 1902년 영국의 사회개혁가인 에베네저 하워드(Ebenezer Howard)가 주창한 정원도시가 지금의 비전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경가가 계획하고 정원사가 만들고 가꾸는 정원도시(Garden City)라는 현실적 개념 또한 선언적 수준에서 벗어나 참여와 실천에 방점을 둔 가드닝시티(Gardening City)로, 또다시 모든 시민이 정원사로 활약하는 정원사의 도시(Gardener’s City)로 확장되어야 한다. 체계적 시민교육을 바탕으로 모든 시민이 정원사가 되어 정원과 공원과 도시를 가꾸는 초록한 정원도시를 상상해 본다. 온수진 / 서울시 정원도시국 조경과 조경협력팀장
- 온수진 서울시 정원도시국 조경과 조경협력팀장[email protected]
- 202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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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신유정 기자] 아담한 마당의 장미정원부터 웅장한 수목원까지, 보살핌이라는 정원적 삶의 태도를 통해 소중한 삶의 균형감각을 찾아 마음을 산책해 볼 수 있는 책이 발간됐다. 신간 ‘정원의 위로’는 30년 가까이 신문기자 생활을 해 오면서 꽃과 나무, 새소리와 숲의 매력에 푹 빠져 조경학을 공부하는 ‘산림교육전문가’(숲해설가)가로맨틱한 위로, 일의 위로, 폐허의 위로, 시간의 위로, 감각의 위로 등으로 국내 아름다운 정원과 공원을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는 국내·외 많은 정원들을 방문했고, 우리나라에도 해외의 유명 정원들 못지않게 아름다운 정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동안 방문한 수많은 개인 정원, 서울과 지방 수목원, 대형 국가정원 가운데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녹아 있는 24곳을 선정해 담았다. “제가 요즘 정원들을 다니면서 깨닫는 것은 정원이야말로 문학, 예술, 자연, 산업, 과학, 동 서고금을 망라하는 통섭의 장소라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부유물을 걷어내고 나 자신과 고요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생명의 공간입니다” 저자는 정원에서 ‘끊임없이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따듯한 유대감,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 미학적 감수성, 겨울 정원에서 찾아내는 낯선 아름다움, 미완성된 수수한 것들에서 발견하는 충만함, ‘화려하건 조용하건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는’ 삶의 감각을 통해 위로와 회복이 있는 나만의 시크릿가든을 찾아 떠난다. 우리를 위로가 되는 공간으로 안내하면서 회복을 제안하기도 하고, 기존의 문법을 뒤엎는 공간을 소개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촉구하기도 한다. 정원에서 ‘힘들어도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태도와 ‘평범한 일상을 감탄으로 채우는’ 힘을 배우며, ‘감탄의 순간들이 삶을 지탱하게 해준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원 산책은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서 삶의 철학과 태도에 대해 숙고하게 해준다. 이 책에는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든 바르다.” 같은 묵직한 괴테의 문장을 음미하게 하는 ‘여백서원’이 있는가 하면, “인생은 한 길만 있지 않아.”라고 유쾌하게 격려하는 ‘스누피가든’도 있다. 모과 냄새가 향긋한 ‘사유원’은 “세상에 없는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한 결과”이며, 호암미술관의 ‘희원’은 영화 ‘땅에 쓰는 시’의 주인공 정영선 조경가의 한국적 미학의 결실이다.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기업가적 혁신의 산물이다. 이 밖에 김영하 아보카도나무가 있는 국립세종수목원, 특별한 진념이 서려 있는 순천만국가정원, 목련의 종류가 가장 많은 천리포수목원, 치유가 있는 신구대식물정원, 그리고 홍경택 화가의 옥상정원처럼 예술가들이 쉼을 얻는 공간도 소개한다. 저자 김선미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정성껏 가꾸는 정원사들을 부러워하고 존경한다. 오랫동안 예술과 패션을 사랑하다가 식물과 정원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산림교육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 전공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저서로는 ‘지금, 여기, 프랑스: 혁신, 창업, 교육, 문화, 예술 등 현재 프랑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 신유정[email protected]
-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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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얼마 전 한 건축 관련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올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야마모토 리켄의 인터뷰 기사다. 그는 한국의 건축 현실을 이렇게 꼬집는다. “한국은 한국 건축가들에게 제대로 설계할 기회를 주지 않아요. 온갖 제약과 규제에 묶여있죠. 한국 건축가들이 불쌍합니다. 자유도가 전혀 없어요. 그러면서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자유롭게 건축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건축물은 거의 외국인 건축가의 작품이에요. 이상합니다.” 맞다. 참 이상하다. 내심 전부터 스스로 느끼고는 있었지만, 한 발 떨어진 타국 건축가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니 왠지 검증받은 팩트가 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국의 문화 역량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지 오래다. 음악과 미술, 영화는 물론이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앞에 K자를 달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건축은 대표적인 조형 예술의 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그 와중에 조경 분야 세계 최고의 상을 정영선 소장님이 수상하신 것은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정부도 유독 건축 분야의 후진성이 께름칙하기는 했는지 몇 년 전 국토부발로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라는 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은 상이 제정된 1979년 이래 무려 아홉 명의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우리나라는 언제 첫 수상자가 나올지 가늠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해외의 선진 설계기법을 배워오라며 건축가들에게 해외 연수의 기회를 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사업은 건축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소위 해외 유학파가 발에 채일 정도로 넘쳐나는 마당에, 해외 선진 설계 기법을 몰라서 우리네 건축 문화가 발전을 못한다는 국토부의 진단은 번지를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는 주장이었다. 말하자면 문제는 설계 능력 부족이 아니라 설계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불거진 시흥시 문화원 갑질 논란 또한 우리나라 건축 설계 환경의 척박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간단히 말하자면 발주처인 시흥시가 문화원 건립 사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전검토와 심의과정을 받은 다음 사업비는 그대로 둔 채 규모를 제멋대로 키워서 공모전을 내보내고, 당선자가 선정되자 공사비에 맞추어 설계할 것을 요구한 사건이다. 불합리한 공사비 산정을 근거로 발주처에게 증액을 요청하던 건축가는 계약의무 불이행으로 계약해지를 당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6개월 행정처분까지 받아야 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다른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에둘러 찾지 않아도 그냥 공공건축을 한 번이라도 겪어보기만 하면 하나의 온전한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든 깨닫게 된다. 당선된 안이 온전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보호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문이다 심의다 해서 누구든 자리에 모셔놓으면 설계안을 꼭 뜯어고쳐야만 자기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믿는 선배 건축가들과 교수들 탓에 배가 산으로 가기 일쑤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금액을 맞춰 납품하고 나면 임의 변경이 몸에 밴 현장 소장, 감독관들과의 신경전이 기다리고 있다. 건축사(제도적 측면에 대한 내용이라 건축가 대신 건축사라는 직명을 선택했다)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종종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뭘 잘해서 언론에 실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사고나 논란, 비리와 같은 안 좋은 일이 생겨야만 건축사를 들먹이니, 건축사라는 자격증을 가진 집단 전체가 문제만 일으키는 집단처럼 비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권한은 제대로 주지 않고 책임만 묻는 꼴이다. 10여 년 전 설계사무소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건축 문화 자체가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국가의 경제력이 탄탄해졌으니 건축 문화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뀔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설계가 어떻게 비슷한 공사비를 들이고도 건축물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건축가에게 어떤 식으로 요청을 하면 되는지 사람들이 깨달을 거라 생각했다. 글쎄,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건축 문화에 대한 인식 자체는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안도 타다오나 노먼 포스터의 전시에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런데 야마모토 리켄의 말대로라면 그게 딱 외국 건축가들까지다. 국내 현업 건축가로서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것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도와 절차는 좀 더 합리적이고 정교하게 바뀌었을지언정,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는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건축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시도는커녕 말이 되는 건축을 만들어내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도, 예산과 시간의 부족에 더해 건축가로서의 자긍심을 짓밟는 사건의 연속으로 몸과 마음이 다 너덜너덜해지지 않고는 프로젝트를 끝낼 수가 없다. 제목으로 던진 “왜?”라는 질문의 답을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건축가, 또는 건축사라는 집단이 균질적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제도는 균질적인 집단을 가정하고 만들어졌는데 말이다. 또 어쩌면 공공건축을 몇몇 설계사무소들이 불공정한 수단을 통해 독점하고 있던 시절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신뢰를 제대로 심어주지 못한 일종의 업보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유야 어쨌든, 에너지의 90% 이상을 설계 자체가 아니라 설계를 지키는 데 써야 하는 지금의 우리네 건축가들은 또 하나의 극한 직업을 몸소 실천하는 중이다. 다만 다른 극한 직업과의 차이가 있다면, 창작자로서의 의지를 버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편해진다는 것. 아마도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건축가가 나오기 힘든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승환 /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소장
- 이승환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소장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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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 5월이 지났다. 지난 수년 동안 팬데믹으로 짓눌려 있던 시민들의 마음을 알기나 한 듯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주제로 축제를 열었다. 정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특별했다. 다른 축제가 하루, 이틀로 마쳤다면 꽃과 정원축제, 즉 정원박람회는 한 달을 넘게 릴레이로 이어졌다. 고양에서 시작해서 전라남도로, 전주, 청주를 거쳐 서울까지, 마치 봄꽃이 피듯 박람회는 5월을 가득 채웠다. 정원 관련 업무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으로, 때론 정원을 직접 가꾸는 사람으로 축제가 많다는 것은 매우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매체가 아닌 현장에서 정원을 보고 느낄 수 있기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대가로 박람회와 축제의 기획과 운영을 자문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감수해야 하지만 현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식물, 정원을 볼 수 있는 조건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치르게 된다. 최근 박람회의 주제는 환경과 사회, 그리고 미래를 내포하는 등 매우 광범위하다. 또 한편으로는 평범하게 느껴지는 시민들의 생활 속 정원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 속에서 저마다 다른 박람회와는 차별화를 고민하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런 주최자의 고민을 참여하는 시민들은 얼마나 느끼고 공감할까. 참여한 박람회의 주제를 알고는 있을까. 박람회를 통해 정원에 대한 생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리나라에서 정원이 법제화되고 사업이 시작된 건 올해로 10년째로 아주 짧다. 물론 이전에도 수목이나 식물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지만 법과 정책, 그리고 사업으로 체계화된 건 최근이며 이마저도 팬데믹 이후 급격히 늘었다. 주무부처인 산림청에서는 국민들이 조금 더 가까이에서 정원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공공시설에 실내외 정원을 조성하였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한편 관련 일자리를 만드는 등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였다. 무엇보다도 생활 속 정원문화 확산을 위해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박람회가 대표적인 사업이 아닐까 한다. 최근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의 조사결과 정원 관련 박람회만 15개가 운영되거나 계획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정도면 금방이라도 정원문화가 자리 잡고 관련 산업이 활성화될 듯한데 아직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유야 앞서 언급했지만 정원문화가 정착한 유럽보다 역사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짧으니 당연하다. 그렇지만 마냥 부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의 정원박람회나 축제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들과는 다른, 특히 규모나 운영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흥미로운 박람회가 있다. 대표적으로 고한 골목길 정원박람회와 달성 토성마을 골목축제가 그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지역주민의 주도로 지역재생과 활성화를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정선 골목길 정원박람회가 시작된 시기의 추진방향과 운영방법이 색다르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추진방향에 따라 행정과 전문가는 지원과 교육에만 주력했고 철저히 마을과 주민주도로 운영되었다. 정원으로 무엇을 해결하려 했는지 목적이 뚜렷 했고 이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교육과 지원으로 분명했다. 지역주민과 전문가, 지자체의 역할 분담이 명확했기에 작지만 성공적인 박람회로 기억되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대구 달성의 토성마을 골목축제 또한 시작부터가 남다르다. 한 골목의 주민 4명이 내놓은 화분으로 시작되었다. 골목이 밝아지자 경쟁하듯 주변 주민들의 참여로 골목 전체가 정원이 되었고, 엄청난 크기의 대추나무와 포도는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관광자원이 되었다. 낙후지역의 대명사로 불렸던 마을이 관광마을로 변화했고 협동조합까지 생겨났다. 삼국시대를 시작으로 역사를 담고 있는 벽화와 소박한 정원이 있는 달성 토성마을은 문화 그 자체로 남았다. 이 지역의 주민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할까. 매년 지자체에서는 정원박람회를 마치면 결과를 분석한다. 몇 명의 인원이 방문하고 경제적 가치는 얼마를 남겼다고 평을 한다. 문화를 염두에 두고 평가한다면 과연 합당할까. 참여했던 시민들의 지속적인 정원활동에 얼마만큼이나 도움이 될까. 정선이나 달성의 마을의 주민들보다 정원에 대한 지속과 참여가 앞선다고 할 수 있을까. 문화는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과정의 산물이다. 그래서 생활이란 단어를 굳이 같이 쓰는 이유기도 하다. 모든 지자체들이 가진 자원이 같을 수는 없다. 지역과 환경이 다르고 가진 자원이 다르다. 모두가 같은 규모로 박람회와 축제를 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내실 있는 계획과 운영이 필요하다. 지자체의 박람회에 자문을 할 기회가 있으면 지역민의 참여기회를 늘려달라는 얘기와 향후에는 그분들이 기획하는 박람회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청한다. 그렇게 되면 굳이 방문인원이나 경제적 가치를 매기지 않더라도 충분히 성공적인 박람회로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우리에겐 여전히 정원은 멀리 있는듯하지만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가로수만 덩그러니 있던 도시의 거리는 정원형 화단으로 바뀌었다. 도로 중앙분리대 대신 돌과 숙근초로 장식된 정원이 생겼다. 역의 광장에 정원이 생겼고 지하철역과 공항에, 그리고 백화점과 베이커리에 정원이 생겨났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생활공간 곳곳에 정원이 자리한 것이다. 그 아름다운 정원을 보고만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쉽다. 아름다움을 가꿀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화는 누림에서 오는 것이고 정원의 누림은 참여에서 시작된다. 더 많은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과 기회의 제공이 정원박람회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와의 모든 만남을 축제로 경험한다. 축제란 기다려지는이다. 그와 약속된 현존으로부터 내가 기다리는 것은 어떤 엄청난 즐거움의 총체요. 향연이다. 생의 가장 순수한 기쁨.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 남수환 /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정원진흥실장
- 남수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정원진흥실장[email protected]
- 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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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지난 4월 말 안양천공원에 스무개 정도의 의자를 설치했다. 작년 환경부가 양평교 주변 1만5000㎡ 둔치에 초화원을 조성하면서 수변 산책로와 포켓쉼터를 설치했는데, 쉼터에는 정작 의자없이 포장만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물멍하기 맞춤한 장소라 오래 앉을 수 있는 등의자를 골라야 했는데 간혹 침수가 되는 곳이라 한참을 망설였다. 홍수가 무서운 것이 물만 덮치는 게 아니라 토사는 물론 각종 나뭇가지와 풀, 쓰레기 등이 뒤엉켜 내려오는데, 의자와 같은 시설에 달라붙으면 수압을 받는 면적이 커지며 뿌리째 뽑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장고 끝에 외발로 선 단순한 등의자를 골라 설치했고, 지나는 분들이 간간이 물멍하며 다리쉼을 하신다. 끝났나 싶었지만 곧 햇볕이 따가워지는 철이라 다시 고민에 들었다. 결국 쉼터마다 그늘목을 심기로 하고 강가에서 잘 버티면서도 겨울 철새들 먹이로 유익한 참느릅나무를 수배했다. 동네 자그마한 어린이공원에 그늘막 주변으로 각양각색 1인용 의자들이 모인 걸 볼 수 있다. 모든 공원은 아니고 주변에 어르신이 많이 사셔서 서로 어울리는 분들이 많고 그늘이 깊은 공원일 경우다. 동네 어르신들이 개별적으로 가져다 놓으신 일명 ‘움직이는 의자’인데, 추울 때는 햇볕으로 더울 때는 그늘로 비올 때는 비가림 아래로 이동한다. 등받이가 있고 푹신한 재질이 많으며 간혹 바퀴가 달린 경우도 있다. 작은 공원엔 의자가 제한적이라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하니 서비스를 자급하는 방식인데, 어르신 특성상 오래 머무르셔야 하니 등받이가 없으면 지속성이 떨어지고, 딱딱한 재질도 부담이고, 무엇보다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다. 문제는 불법이라는 이유로 철거를 요구하는 반대 민원인데, 내키지는 않지만 적절한 위치와 방향으로 의자를 추가하면서 조금씩 양보하는 차선책으로 수렴되기도 한다. 움직이는 의자는 햇볕과 그늘을 찾거나 고독과 대화를 위해 의지대로 이동시킬 수 있어 이용자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며 자존감을 높이는 순기능이 크나, 훼손과 분실에 대한 관리 우려 또한 상존해 공원의 오랜 쟁점이었다. 이제는 고객을 환대하는 상징으로써 공원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때다. 양천구는 2022년 파리공원에 시범적으로 도입했고, 지난 말 리노베이션한 오목공원에선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전면 시행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오목공원 회랑 아래론 부드러운 라탄의자와 테이블이, 그늘 깊은 숲라운지에는 철재 가든벤치와 테이블이 설치되어 인기를 독차지한다. 아직 단 1개만 분실되었을 정도로 잘 지켜지고 있어 큰 걱정은 덜었으나, 외려 입소문이 나면서 이용객이 늘어 지속적으로 추가해야 하는 행복한 상황이다. 의자와 관련된 또 다른 쟁점 중 하나는 팔걸이를 빙자한 노숙인 배척장치다. 많은 짐을 동반하며 심각한 냄새를 풍기고 (술에 취해) 의자에 누운 노숙인을 좋아하기는 누구도 어렵다. 하나 분명한 것은 특별한 사회적 계기가 없는 한 노숙인은 크게 늘어나지 않으며, 더더군다나 의자 때문에 노숙인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건 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우리도 혹여 응급상황 등으로 공원에서 잠시 누워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정 어렵다면 1인용 의자를 놓는 한이 있더라도, 도시의 품위를 내려놓지는 말자. 차별은 인권의 문제이며 공공공간의 태생적 취지와도 걸맞지 않는다. 이렇듯 공원을 관리하는 일에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사람뿐 아닌 방문하는 뭇 생명에게도 환대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바쁜 도시인들이 잠시나마 그곳에 머물길 바란다면 의자는 필수다. 공원은 도시의 쉼표고 의자는 공원의 쉼표다. 삭막한 도시라는 표현도 한편으론 몸 누일 공간(집)도 몸 쉴 공간(의자)도 부족한 탓일테니, 우리가 유독 카페에 집착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점심때마다 직원들과 카페를 찾는데, 커피맛이 우선이지만 멋진 경관과 쾌적한 공간과 편안한 의자도 중요한 기준이다. 언제나 우리를, 아니 우리의 카드를 환대하는 공간이지만, 아뿔싸, 자리가 없는 경우도 다반사고, 원하는 자리는 늘 귀하고, 아니, 원하는 숫자만큼의 자리마저도 쉽지 않다. 어쩌면 이리도 도시의 공간들과 빼닮았는지. 이런 빈틈을 메우는 완충공간이 공원과 같은 공공공간이라 무척 소중하다. 특히, 의자는 공공공간이 제공하는 환대의 수준과 정비례하는데, 도시에서 늘 공원이 부족한 것처럼 공원에서도 늘 의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늘 깊은 숲, 멋진 전망, 시원하고 맑은 물, 사랑스러운 아이를 바라보는 자리에 의자는 더 놓여져야 한다. 그래야 더 머무른다. 상업 서비스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게 체류시간인데, 공원도 마찬가지다. 경쟁력이 높다는 것은 기꺼이 오랜 시간을 내어 줄 만큼 감동받는 것이고, 의자는 그 핵심이다. 누구나 소중한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려는 욕망을 충분히 받아 안는 공원을 꿈꾼다. 도시인의 자존감을 높이는 공공공간의 환대가 온갖 위기 속에서도 결국 도시를 구할 것이다.
- 온수진 양천구청 공원녹지과장[email protected]
- 202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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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신유정 기자] 조경공사 현장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 생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조경수의 역할을 설명한 책이 발간됐다. 신간 ‘도시나무 오디세이’는 저자가 2023년 3월부터 환경과조경에‘도시 나무오디세이아’로 연재하던 글을 묶어 출간한 책이다. 오랜 시간 조경 현장에 근무한 저자는 아름다운 경관을 만드는 데에서 나아가 생태계 복원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나무에 대한 시각이 다양해졌다. 이 책은 48종의 도시 나무에 대한 에피소드를 스토리텔링 한 책이다. 나무 지식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나무를 심는 과정에 대해 일반인은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를 심는 장소, 시기, 공사비, 유행 등을 설명한다. 또한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키가 큰 나무 48종을 4계절로 나눠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무의 특징과 정보를 제공한다. 꽃이 주는 화려함뿐만 아니라 신록이나 단풍색과 가지 발달까지 이야기 하며, 단순히 나무 이름만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생태나 인문학적 가치까지 설명한다. 아울러 나무별 생산 및 식재 방법과 키울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조경수의 지식을 제공한다. 저자 홍태식은 강원도 동해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단국대에서 농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건설에서 조경업무를 시작해 청산조경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성균관대·삼육대·청주대·연암대 등에서 조경시공과 생태복원을 강의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시설물공사업 회장, 한국생태복원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한국정원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참여 공사로는 청와대 관저, 제일은행본점, 평화의 공원, 서울숲 등이 있다.
- 신유정[email protected]
- 20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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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짧은 계절이 지고 봄꽃들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미풍의 계절이다. 이 계절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정영선 선생님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극장에는 정영선 선생님의 영화가 상영 중이다. 지난주에는 전시를 보았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전시실에 한국 조경의 거의 모든 것이 압축적으로 담겨있어 정영선이라는 거인에 압도되었다가,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은 검박한 정원에서는 정영선이 주는 소소하며 편안한 위안을 받았다. 이번 주에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정영선이라는 사람과 그가 만든 공간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정영선이 작은 중정에 숲을 닮은 정원 같았고, 포항의 바위와 바다와 어우러진 해국의 경관이 정영선 같았다. 벚꽃이 내리는 봄의 후원과 눈이 내리는 겨울이 후원의 모습이 교차하는 장면은 황홀했다가, 풀과 꽃에게 말을 걸며 쪼그려 정원을 어루만지는 선생님의 모습은 모두의 마음에 있는 할머니의 모습처럼 그리웠다. ‘땅에 쓰는 시’라는 영화의 제목은 정영선 선생님이 직접 정하셨다고 한다. “하늘보다 더 높은 하늘이, 바다보다 더 깊은 바다가, 내 앞에 고개를 숙였다.” 영화에서 선생님은 본인 쓴 백합이라는 시를 읊으신다. 감독님이 전하기를 선생님은 조경은 시처럼 아름다워야 하고, 그 아름다움은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준비하는 사전 회의에서 선생님을 잘 아시는 건축가는 선생님의 조경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셨다. 선생님의 조경은 자기의 목소리를 내세우지 않으며 모든 것을 어울리게 만드는 배경을 제공하는 자연의 겸손함 닮았다. 나는 그 말이 선생님의 조경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평가이면서도 가장 큰 오해라고 생각했다.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하여, 울림의 공명이 작은 것이 아니다. 첫눈에 시선을 사로잡지 않아도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기억의 각인을 세길 수 있다. 시인이 약하고 여리다는 것은 편견이다. 선생님은 시인이면서 전사였다. 아직 조경의 영역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던 개발시기의 건설판에서 첫 조경기술사로서 선생님은 전사였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가들과 행정가들을 설득해 여의도 샛강을 자연으로 돌리기 위한 과정은 투쟁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겸손은 양보와 낮춤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투쟁의 결과이다. 혼자 우뚝 서고 싶고 가장 화려하고 싶은 의지들과 맞서 땅에 시로 쓴 조경을 하기 위해 선생님은 강렬히 온 힘을 다해 싸워왔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시인이 선생님의 지향이었다면 전사는 시대가 선생님에게 던진 소명의 결과였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감독님께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 조경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혹시 아쉬운 점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감독님은 조경이 늘 내세우는 겸양의 미덕을 추켜세우시면서 재치 있는 답을 해주셨다. “글쎄요. 아쉬웠다기보다 의외였던 것이 있기는 했어요. 영화를 만드는 중간에 정영선 선생님께서 젤리코 어워드를 받으셨잖아요. 하늘이 이 영화를 돕는구나 싶었어요. 이 상이 조경가에게 주는 최고의 상, 노벨상이나 건축의 프리츠커 상과 같은 영예잖아요. 그래서 저는 조경계가 나서서 많은 홍보도 하고, 신문이나 뉴스에도 크게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너무 조용한 거예요.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도 사실 엄청난 일이잖아요. 세계적인 상도 받고, 영화도 나오는데 이렇게 조경하시는 분들이 본인들의 이야기에 조용한 것이 의외이기는 해요. 아마 조경하시는 분들 자연을 닮아 겸손하시고 말을 아끼시는 경향이 있나 봐요.” 50년이 걸렸다. 조경가가 국현에서 전시를 하고, 조경가에 대한 영화가 나오기까지 50년이 걸렸다. 한국 조경가가 세계 최고의 조경가에게 주는 상을 받기까지 50년이 걸렸다. 그런데 한국 조경은 별말이 없다. 할 말이 없는 것인지, 겸손한 것인지, 다른 일에 바빠서 관심이 없는 것인지 조용하다. 조경 관련 매체에서도, 조경 학계에서도 정영선과 서안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기획은 보지 못했다. 건축과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정영선 선생님의 전시와 영화를 보았냐고. 그런 좋은 전시와 영화가 나왔는데도 왜 너희는 아무런 말이 없냐고. 전시회에 걸린 작품의 리스트를 보았다. 나는 앞으로 그 정도 위상과 규모의 프로젝트를 몇 개나 할 수 있겠느냐고 자문해보았다. 아마도 그 어떤 조경가도 그 정도의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조경가들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제는 과거 정영선과 서안에 주어진 그런 큰 프로젝트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정영선 선생님을 통해 마련된 이 축복과 같은 기회와 시기를 그냥 지나쳐 버리면 앞으로 한국 조경에 대한 이런 뜨겁고 애정 어린 관심받게 될 계기는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조바심이 생겼다. 이 전시와 영화는 그 끝에서 우리 조경의 다음 이야기는 무엇인지 우리에게 되묻는다. 정영선의 조경이 아무리 아름답고 감동적이어도 그것은 정영선의 길이지 우리 조경에 대한 정답지도 아니고 종착지도 아니다. 우리는 정영선과 다른 자신의 시를 써야 하고, 정영선이 마주한 현실과는 다른 현실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정영선의 조경을 자양분으로 삼아 각기 다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 할 것이며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이야기를 우리가 줄기차게 떠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겸양의 미덕은 잠시 치워두고 아무리 작은 의미라도 부풀려 우리의 조경 이야기를 여기저기 퍼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대가 되어야 한다. 광대, 딴따라, 연예인, 인플루언서가 되어 스스로 풍악을 울리며 조경을 팔아야 한다. 누군가 전시를 기획해주고 초청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이제 우리가 스스로의 전시를 만들고,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소망하기보다 사람들이 볼 만한 영상 콘텐츠라도 만들 고민을 해야 한다. 전시의 한 영상에는 정영선 선생님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중정에 정원을 만들기 위해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에게 허락을 얻고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광화문 광장을 같이 설계했던 소장과 함께 한 저녁 자리에서 지인이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광화문 광장에 팬지 꽃밭이 조성되었는데 원설계자인 우리가 허락한 일이냐고. 우리는 둘 다 금시초문이었고 조경에서는 그런 것이 관행이라고 얼버무렸다. 최근 골프장을 설계한 조경설계사들이 무단으로 골프장 설계에 대한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였는데, 법원은 골프코스 설계는 창작성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을 하면서 패소하였다. 건축가의 권리와 너무나도 상반되는 조경의 문제를 보며 나는 담당 공무원에게 화를 내고 또 다른 소송을 준비하는 것보다 지금 열리고 있는 전시와 상영 중인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보여지고 알려지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조경에 이런 전시와 영화가 몇 번 더 나와 조경에 대한 사람들과 사회의 이해가 높아졌을 때, 조경은 스스로 권리를 인정받고자 애를 쓰지 않아도 될까? 범죄도시 4가 개봉 4일 만에 300만 명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나는 다시 마음이 초조해졌다. ‘땅에 쓰는 시’를 본 관객 수는 6,500명인데, 이 아름다운 조경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만 더 오래 상영관에 걸려, 조금만 더 많은 이들이 이야기를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김영민 /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email protected]
-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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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농산물중에서 오렌지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는 썬키스트, 델몬트, 키위는 제스프리, 이러한 유명 브랜드는 글로벌시장에서 고객들의 머리속에 믿을 수 있는 고품질의 명품으로 인식되어 있다. K-농산물중에서는 2016년 전후에 중국시장에서 급성장했던 유자청 식품이 있는데, 지속성장한 대표브랜드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시장에서 보기힘든 자연의 달콤함과 차로도 타서 마실수 있는 장점으로 히트상품으로 성장해왔다. 일본의 경우에는 오랜시간 가업으로 전통을 계승하며 발전시켜온 농산물이나, 식품들이 많은데, 명품 메론 하나에 200만 원 선에 판매하는 제품도 있다. 오랜시간 고객들로부터 전통적인 기술과 품질과 신뢰도, 고객만족 요소를 꾸준히 받아서 명품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 브랜드 제품들의 특징이다. 특히 유명 브랜드라면 핵심 이미지와 색, 제품명, 형태, 전통, 일관된 고품질등이 오랜시간 고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확대 재생산되며, 고객의 머리속에 명품 브랜드로 존재해 왔다. 필자는 농업전문가, 정원문화전문가로서 선진국인 네델란드등에 우리 종자와 종묘를 수출하는 사람으로서, 네델란드 화훼산업의 국제경쟁력에 대해서 연구해왔다. 그들은 오랫동안 민관학협력체제로 신품종, 신기술 연구개발부터 농법의 개발, 온·오프라인 플랫폼의 구축, 국제전시회 개최등을 통하여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들의 종자, 종묘, 완제품들은 이미 체계화되고, 명품브랜드화 되어, 글로벌시장에서 리더역활을 하면서 수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냉동김밥이 새롭게 성공적으로 미국시장에서 팔리고 있으며, 한국산 초고파이, 만두 제품등도 미국, 러시아, 중국, 베트남등에서 히트하고 있는 성공사례들도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등 동남아시장에서는 한국산 딸기등 과일들이 히트상품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최근 한류열풍도 함께 작용하여, 한국산 K-농산물의 성공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모든 마케팅 성공의 원천은 대한민국 5000년을 이어온 현대 농업의 성과이다. 우리나라에는 300만 명의 농업인들이 있다. 그중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특별히 선정하는 한국신지식농업인들이 있고, 이분들이 대한민국 농산물 분야에서 수십년간 성공해온 전문가들이다. 농업 전문가로서 우수한 종자와 종묘 개발, 우수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으며, 농산물 가공식품까지 확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좋은 기반을 육성하여 이제는 좀더 체계적으로 민관학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함께 협력하여 ‘K-농산물의 전문브랜드화와 글로벌시장 수출’을 추진하는 구체적인 정책방안이 필요하다. 현장에서는 이를 위하여 종자, 종묘, 생산농법, 수확, 포장등의 전과정을 전문화, 시스템화 해야 한다. 또한 완제품을 기반으로 정밀한 시장조사 및 비교분석, 영업성공요소의 확충, 실패요소의 대책수립, 브랜드 네이밍, 명확한 디자인, 진실한 스토리텔링, 팩키지 디자인, AI플랫폼으로의 전환, 브랜드상품화 전략과 수출확장에 각 전문가들과 연합하여 함께 연구하고, 협력하여야 한다. 필자는 그동안 이러한 노력을 민관학 전문가들이 연합하여 함께함으로 향후 거대한 글로벌시장에서 인류공영에 기여하고, 부농이 많아지고, 농산물 분야의 리더가 되고, K-농산물 수출의 활성화가 되기 바라며, 신지식농업인의 한사람으로서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박공영 / 우리씨드 그룹 회장
- 박공영 주식회사 우리씨드 그룹 회장
- 20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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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신 회사 선배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건강, 돈, 친구’가 제일 중요하다고 반복해 강조하셨다. ‘돈’이야 어렵겠으나, ‘건강’과 ‘친구’라면 그래도 공원이 제법 커버할 수 있겠다 싶었다. 기실 공원의 발단이 1832년 영국 런던의 콜레라 대유행과 연관이 클 정도로 공원과 건강은 한 몸이나 다름없다. 공원에서 산책과 달리기 등 운동을 통한 시민의 건강뿐 아니라, 맑은 공기와 생태계 조절 등 도시의 건강까지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런 건강 측면으로 요즘 공원에서 유의미한 움직임이라면 ‘맨발걷기 붐’과 ‘야외체육시설의 진화’가 손 꼽힌다. 점점 흙이 없는 도시가 되니 외려 흙길을 찾는 것인지, 맨발걷기는 현재 공원에서 가장 핫한 이슈다. 어찌 보면 건강의 영역을 벗어나 신화의 영역에 다다를 정도. 거친 산길을 맨발로 걷는 건 기행에 가까웠는데, 2006년 대전 계족산 황톳길(14㎞)을 시작으로 2020년 서울 양천구 안양천 황톳길(570m)과 강남구 양재천 황톳길(600m) 조성 등을 통해 맨발걷기용 흙길이 공원 제도권으로 진입했다. 물론 맨발공원으로 불리던 지압보도도 있었다. 밀레니엄 전후로 주요 공원마다 자갈, 사고석 등의 재질로 지압로가 조성돼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현재도 일부 남아있지만, 이젠 이용률이 극히 저조해지며 사라져간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공원도 개별 시설마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흥망성쇠를 겪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공원으로 진출한 황톳길에서 수년간 경험이 쌓이고 민간단체가 태동하고 몇몇 언론보도를 통해 맨발걷기의 장점이 증폭되는 과정을 거치며, 2022년부터는 공원 내 흙길 조성 요구가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작년부터 양천구는 현황조사를 거쳐 총 20개소 3.7㎞의 맨발흙길 기본계획을 수립·추진 중이고, 전국 주요 공원마다 황톳길 등 맨발흙길 조성이 쇄도한다. 신규 조성뿐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활성화된 공원 내 흙길을 정비하는 방식도 활발하고, 시설 측면에서도 황톳길과 마사토길, 건식흙길과 습식흙길로의 분화와 배수를 위한 황토 배합비 조절, 이용 편의를 위한 세족장, 신발장, 비닐하우스, 방수포 설치 등 다방면으로 진화 중이다. 건강 측면에서 요즘 공원의 또 다른 이슈는 야외체육시설의 진화다. 2000년대 초반 공원에 처음 도입된 야외체육시설은 종목 확대와 내구성·디자인 개선 수준에 머무르다, 팬데믹을 거치며 폭발적으로 진화했다. 초기 집합금지와 거리두기로 인해 인기를 끌며 공스장(공원+헬스장), 산스장(산+헬스장) 같은 유행어를 만들더니, 팬데믹이 지속되며 높아진 수요는 난이도 높은 근력운동과 맨손 복합운동기구로는 물론, 난이도 낮은 어르신을 위한 감각 운동기구로까지 확대시켰다. 비가림 시설과 조합해 일상성도 높였고 에너지 생성까지 스마트하게 뻗어나가면서, 상대적으로 배제되었던 청년과 여성까지 폭넓게 포용하는 중이다. 두 번째 주제인 ‘친구’로 넘어가기 전에 소개하고픈 중첩된 사례가 도심 공원과 거리에서 자주 만나는 러닝크루(Running Crew)다. 주로 평일이나 일요일 저녁, 젊은 직장인이나 학생 그룹이 깔끔한 복장으로 줄지어 달린다. 건강을 챙기면서도 느슨한 팀워크를 구축해 안전성과 참여도를 높이는데, 볼 때마다 흐뭇하다. 이런 낮은 단계의 관계망은 ‘혼자’를 강조했던 팬데믹을 거친 이후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트렌드이기도 하다. ‘친구’라 표현했지만 ‘관계’로 해석하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할 것이다. 공원은 혼자 찾는 사람도 많고 또 그만큼 다양한 관계망이 동반되기도 한다. 가족이나 연인과 피크닉을 위해 찾는 경우도, 친구와 함께 운동을 즐기는 경우도, 반려견 등 반려동물과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전국에 600만 명(命) 정도로 추산되는 반려견은 요즘 공원의 주 이용객으로서 큰 변화를 이끈다. 2004년 최초로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반려견 놀이터가 생긴 후,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지역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를 넘어서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하나 인구 4명에 1명꼴, 약 1300만 명까지 반려인구가 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특히 팬데믹을 지나며 반려동물 입양률이 연간 20% 가까이 증가하니, 반대 목소리를 드높이시던 어르신들의 데시벨이 크게 낮아졌다. 현재 서울시 공원내에만 반려견 놀이터 23개가 운영중이며, 그 중 양천구도 7개로 30%를 차지한다. 특히, 내달 양천구 목동IC 남측녹지대에 개장하는 ‘목동반려숲’은 녹지공간 전체를 반려견 테마로 꾸몄다. 앞으로 모든 공원에 다양한 형식의 반려견 놀이터가 도입될 뿐 아니라, 교육기관, 보호소, 보건소, 캠핑장 등 반려동물 테마시설도 확대될 것이다. 반려동물뿐인가? 팬데믹은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도 키웠다. 즉각적 반응이 특징인 반려견과 스마트폰에 대응하는 ‘느린 관계 맺기’다. 집에서의 반려식물은 공원에서의 텃밭과 정원으로 확장되는데, 모두 가드닝의 영역이다. 요즘 공원에서 식물 관련 최대 이슈는 ‘정원’으로, 전국적인 정원도시 트렌드와 맞물리며 도시의 공원과 거리를 다채로운 정원으로 바꾸는 중이다. 서울시는 작년 5월 정원도시 선언에 이어 올해 봄에만 1000개의 매력정원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양천구도 도시 곳곳에 25개의 매력정원을 일구는 상황. 우리는 왜 이렇게 공원과 거리에 정원을 만들려 노력할까? 정원이 갖는 아름다움과 계절감과 색과 향기와 질감의 매력도 그 이유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복잡한 도시 속에서 인간이 자연과 더 밀착된 관계를 맺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선 모두 ‘반려’식물인 셈. 집에서의 반려식물도 공원 내 정원의 확산도 불안하고 외로운 도시의 삶에 대한 대응이며, 이 노력들로 인해 공원과 거리는 더 많은 가드너들이 함께 가드닝하는 정원도시로 향해있다. 반려동물·반려식물에서 확장된 생태적 관계망 또한 중요하다. 기후위기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꿀벌의 실종 등 작은 곤충류의 생멸(生滅)부터 숲에서 마주치는 너구리, 강에서 살아가는 새와 물고기와 수달까지 서로 연결되며 큰 위기에 함께 대응한다. 공원에서 생물다양성에 진력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몇년새 시민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안양천 철새보호구역에 새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결과를 얻었다. 지속적인 조사데이터를 바탕으로 겨울철 공사 자제나 갈대군락지 관리 등에 목소리를 내주신 덕분이다. 올해부턴 양천구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 ‘에코친구’도 함께 참여한다. 결국 공원을 중심으로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도시와 자연까지 서로 함께 ‘관계’ 맺음으로써 우리도 도시도 지구도 더 안전해진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70여 년간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라는 목표를 향해 모든 분야마다 부지런히 달려왔지만,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성적표로 받았다. 물론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거뒀고 민주주의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왔지만, 결국 우리 사회는 자식을 가지길 거부하는 또 스스로 삶을 소거하는 마음이 가장 강한 나라가 된 셈이다. 출산율의 추락은 젊은 세대가 불암감에 휩싸여 미래를 비관하는 것이고 자살률의 상승은 어르신 세대가 외로움에 휩싸여 현재를 비관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생명의 관점에선 가장 본능적 욕구인 생존과 번식을 선택적으로 포기하는 ‘불임사회’에 돌입했고 또 돌진해갈 태세인 셈이다. 도시는 더 심각하다. 202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0.72명에 비해 서울은 0.55명 수준이다. 도시에 사는 젊은 세대들이 도시에서의 삶을, 도시의 미래를 더 비관적으로 본다는 얘기다. 불안감과 외로움이 지배하는 불임사회의 이 엄중한 현실에 대해 도시와 공원과 시민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큰 틀에서는 포용도시일 것이고 자연에 대해서는 생태도시일 것이며 공공공간과 개인의 영역에선 정원도시일 것이다. 건강하게 서로 관계맺고 진화를 통해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요즘 공원에 요구되는 핵심 과제다. 온수진 양천구청 공원녹지과장 / 공원주의자 저자
- 온수진 양천구청 공원녹지과장[email protected]
- 20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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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요즘 밤양갱이 때 아닌 인기를 누린다고 한다. 가수 비비의 ‘밤양갱’이란 노래 덕분이다. 밤양갱의 가사를 들어보면 헤어지는 남녀간의 평범한 노랫말인데 가사나 리듬은 달고 단 밤양갱보다 더 달콤하다.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 매력적이고, 익숙한 것 같은데 처음처럼 신선하다. 사랑과 이별, 너무나 익숙한 스토리이지만 이 노래가 우리에게 처음처럼 다가서는 이유가 뭘까? 이 노래를 듣다 순간 오버랩되는 이미지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다. 사랑과 이별을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 박해일의 바다 그리고 안개가 자욱한 미장센의 순간을 영원히 각인시키려는 듯 영화의 OST가 흘러나온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1967년 세상에 처음 선 보인 정훈희의 ‘안개’가 2023년 ‘헤어질 결심’에서 함춘호의 기타와 송창식과의 듀엣으로 다시 태어났다. 처음처럼, 익숙하지만 낯설게. 그렇게 우리는 처음처럼 대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술자리에서 우리가 소맥으로 말아 즐겨 마시는 ‘처음처럼’의 의미를 작고하신 신영복선생은 서화 에세이집 「처음처럼」에서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라고 소개한다. 흔히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새로운 것들은 어쩌면 다시 태어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재들의 라떼에나 등장할 법한 양갱이 MZ세대들 덕분에 때 아닌 호사를 누리는 것처럼. 변화에 대한 도전은 늘 두렵다. 하지만 도전은 그 자체로서 희망이기에 많은 이들이 젊은이들에게 늘 도전하라고 권유한다. 사람들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위해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변화하는 미래에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소중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비비의 밤양갱이나 정훈희의 안개가 그렇듯,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에 대해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변화하지 않는 삶의 방식과 전통, 그리고 축적된 삶의 가치와 문화가 미래에 어떻게 투영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도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도시, 건축, 조경 등의 삶을 담는 공간을 다루는 영역에서 처음처럼 변화를 꾀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변화하지 않는 가치는 아마도 공간의 공동체성과 공공성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삶터에서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사는 공동체성을 향한 도전의 한걸음 한걸음은 공간에서의 더 나은 삶, 더 나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이다. 뭔가를 처음처럼 도전해 보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어느 순간 늘 해 왔던 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닌지, 변화를 향한 도전을 꿈꾸는 것마저도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지극히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치부하진 않는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세상을 향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저 습관처럼 일에 매달려 있지나 않는지 돌아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최근 주목할만한 공원과 광장, 그리고 공공건축 등의 사례에서 엿 볼 수 있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공동체성과 공공성의 공간언어에는 변화하지 않아야 할 공간의 공공성과 공동체성의 가치를 구현한 더불어 숲의 지혜와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정신이 담겨져 있다. 최근 지식사회에서 화제의 중심이 된 이슈가 챗지피티(ChatGPT)이다. 생성인공지능이 만들어 내는 경이로운 지식의 재창조이다. 하지만 미래의 초정보화시대가 펼쳐지더라도 우리는 지식의 한계에 대한 도전,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끝없는 상상, 그리고 동시대를 사는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식노동을 능가하는 현실에서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의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공간을 상상하고 공간적 상상력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체인지 메이커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의무이다. 미래도시에서 공동체성이란 개념과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보편적으로 도시공간에서 지속적으로 공동체성이란 근본 가치를 찾아 나서는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한 초개인화로 인해 내가 중심이 된 세상, 디지털공간에서마저 사유(私有)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공동체성이 인간이 과연 인간다움으로 존중되고 있는가를 묻는 화두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도시에서 우리가 꿈꾸는 희망의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온라인이거나 오프라인이거나 마찬가지로 결국 삶과 터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삶터로서의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은 개인의 삶의 만족도와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동시에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와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 함께 사는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드는 장소와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미래도시에서도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 구분되지 않고 이 둘이 서로 엮여서 한 몸이 되어 삶과 터의 관계망을 잘 엮어 낸다면 삶이 터를, 동시에 터가 삶을 서로 보듬어 미래의 우리의 삶터가 공유와 공존의 숲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영범 / 건축공간연구원 원장
- 이영범 건축공간연구원 원장
-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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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경의선공원, 경춘선공원, 서울로 7017... 나아가 프롬나드 플랑테(파리), 하이라인(뉴욕), 벨트라인(애틀란타)... 그렇다. 모두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선호도 높은 긴 선형공원들이다. 제주도의 올레길이나 북한산의 둘레길과 같이 트레일을 위한 길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을 관통하는 ‘~선(라인)’으로 명명되는 공원들이다. ‘길’과 달리 ‘선’이라는 명칭에서 오는 차이는 어떠한가? 전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그리고 자연 속에 위치한 순환형 동선을 갖춘 산책로의 느낌이다. 반면 후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그리고 도심 속에 있는 일자형 동선을 지닌 공원이다.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 면적인 공원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형공원은 단순한 산책로 정도의 ‘길’적인 의미였으나, 최근에는 면적 공원을 조성할 여유가 없는 좁은 도심 공간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대안적 형태의 공원이 되고 있다. 그린네트워크라는 현판 아래 면적 공원을 연결하는 보조적 의미로서의 선형공원이 아니라, 이제는 대등한 대안이 된 것이다. 면이 주는 장점은 다양하다. 선적으로 나타나는 이용자들의 동선을 무한대로 조합할 수 있다. 그래서 각 동선의 조합에 따른 다양한 공간 활동이 가능하다. 가벼운 혼자만의 산책부터 축구와 같은 격렬한 단체 운동까지, 넓은 잔디밭에서는 시민들의 모든 여가 행태를 수용할 수 있다. 다만, 갈림길은 선택에 부담이 있는 낯선 이에게는 고민의 시작이다. 이곳을 잘 알고 자주 찾는 주민이라면 매일의 공간 체험으로 무의식적인 공간 선택이 가능하겠지만, 낯선 이에게는 객관식 시험지의 보기들과 같다. 그래서 선택(체험)하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 중간고사 같은 곳이 면적 공원이다. 선은 면과는 다른 측면에서 매력이 있다.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이 주연을 맡아, 미국 에미상에서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을 포함해 무려 8관왕을 차지한 ‘성난 사람들(원제 BEEF)’이란 드라마가 있다. 매 순간 잘못된 선택으로 점철된 인생 속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의 모습을 블랙 코미디로 실감 나게 그려냈다. 현대인들은 무의식적으로 매 순간 선택을 강요받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스트레스로 좀 쉬고 싶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걷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가까운 주변의 선형공원을 찾아서 걸어보라고 귀띔해 주고 싶다. 코로나를 계기로 일방향의 선형공원은 중요한 공원의 형태로 등장했다. 강요된 선택 없이, 머리를 비운 채, 아무런 간섭없이, 짜여진 각본대로 방향과 속도를 제어해 주는 곳이 선형공원이다.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공원에 대한 매뉴얼은 단순하다. 정해진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머리를 비우고 심신을 단순하게 정화하는 순간이다. 다른 점은 앉는 게 아니라 걷는다는 것이다. 선형공원은 이곳을 처음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형태의 공원이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 관광객들에게 일방통행의 선형공원은 오히려 유용한 관광 코스가 될 수 있다. 서울을 보행 친화적인 21세기형 관광도시로 만들고 싶다면, 선형공원을 도심 속 핵심 인프라로 조성해 보길 제안한다. 서울이 가진 잠재적 랜드마크를 찾아서, 각 점을 연결한 선형공원을 조성한다면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 시점에 어떠한 시설을 놓고, 종점에 어떠한 시설이 있느냐에 따라 선형공원의 효용과 가치 그리고 이용률에 차이가 난다. 잘 짜여진 각본으로 대박 흥행을 기록할 수도 있다. 뉴욕의 하이라인은 뉴요커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전형적인 선형공원이다. 같은 선상을 왕복해야만 하는 선형공원은 지루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선형 상의 진행방향과 역방향 보행 시 보이는 경관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데 이를 잘 해결한 선형공원이 하이라인이다. 풍성한 나무와 초화들을 의도적으로 활용해 시야를 적절히 닫아주면서 선형을 되돌아올 때는 새로운 경관이 전개되도록 조성했다. 만약 개방감을 위해 시야를 열어주었다면, 오히려 지겹고 단조로운 공원이 되었을 것이다. 더불어 토머스 헤더윅의 베슬이라는 명확한 시점(혹은 종점)과 리틀아일랜드라는 명확한 종점(혹은 시점)이 있어 더욱 걷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센트럴파크가 보고 싶은 공원이라면 하이라인이 걷고 싶은 공원인 이유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사례로 애틀란타의 벨트라인이 있다. 둘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이용객의 차이가 있다. 하이라인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공원인 데 반해, 벨트라인은 관광객보다는 지역주민들의 이용 빈도가 높다. 조성 당시부터 바이커들을 고려하여 개방감 있게 공간을 조성하였다. 산책보다는 이동 통로의 역할에 좀 더 주안점을 두고 조성하여, 바닥 포장재 역시 목재나 블록보다는 콘크리트나 아스팔트와 같은 재료를 주로 사용하였다. 다소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공원의 목적에서 선형공원의 형태를 그려보고 결과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복잡한 도심에서 면적 공원도 중요하지만, 잘 짜여진 각본처럼 의도된 선형공원을 목적에 맞게 잘 살릴 수 있다면, 걷고 싶고 보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촉매 역할을 할 뿐아니라 관광객 유치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선형공원이 더 이상 조연이 아닌 당당한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가 왔다. 변재상 / 신구대학교 환경조경과 교수
- 변재상 신구대학교 환경조경과 교수[email protected]
-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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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이제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학기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시작부터 하고 보는 성격에 4년간 얻은 경험 자체는 꽤 많았고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렇게 한국의 조경에 대해 나름대로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조경학을 공부하면서 조경이 타 건설 분야나 일반인들에게 조경 고유의 특정한 성격을 가진 분야로 인식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경의 법적인 위치나 대한민국 발전 구조상 현재 조경의 입지는 내부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태어난 환경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앞으로의 환경과 기회는 바꿀 수 있다. 녹색나눔봉사단에서의 보조 교사 경험을 통해 어떤 특성의 조경을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본다. 작년 여름 어린이 조경학교는 나에게 몇 없을 특별한 경험이었다. 어린이 조경학교는 8살~12살 사이의 아이들이 공원을 직접 돌아보고, 자신들이 원하는 공원을 설계하는 프로그램이다. 한 조에 모인 네댓 명의 아이들은 서로 나이도 학교도 성격도 다르다. 어색한 공기도 잠시, 대학생 보조 교사가 아이들에게 몇 가지 가벼운 질문들을 던지면 아이들은 공원에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어떤 재밌는 추억이 있는지 자랑하기 시작한다. 우리 조에는 그래서 이러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초등학생임에도 어떤 공간과 놀이가 필요한지에 관한 주관이 아주 뚜렷하다. 나는 이를 통해 조경의 분명한 사회적 면모를 발견하게 되었다. 조경은 사회적 관계성을 다루는, 타 건설 분야에는 없는 유연함을 가진 분야이다. 지금까지 기업 혹은 지자체에서 사회 공헌을 위해 활용된 조경을 살펴보자.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으로 서울숲 가꾸기, 도시 양봉, 마을 숲, 학교 숲 사업 등이 그것이고, 지자체에서는 녹색 복지를 지향하는 사업으로서 골목길 가꾸기, 정원박람회 등을 개최하고 정원 도시 슬로건을 내건다. 빈 유리병에 돌을 채우고 모래를 채우고 물을 채워야 비로소 빈 공간이 없어지는 것처럼, 사회에 약간의 공백은 늘 존재한다. 조경은 그 간극을 메우는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 공통의 기억을 도출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물리적 환경에 대해 고민할 때 말이다. 어린이 조경학교는 이와 같은 과정의 축소판이었다. 어린이 조경학교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귀갓길 지하철에서 동료 봉사단원과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조경은 포크를 들고 싸우러 나가는 것 같다고, 조경’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 우리는 조경 바깥에서 새로운 네트워크와 인사이트를 찾아야 한다. 조경인은 특히나 사회적 역량을 더욱 키울 필요가 있다. 사람에 대해, 사람의 행동과 사람 간의 관계와 경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경험의 폭을 넓혀야 한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이용자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팀을 이룬 사람들 간의 관계를 잘 맺을 줄 알아야 한다. 시공과 설계 간의 괴리를 메울 필요도 두말할 것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경의 테두리 바깥에서 시간을 쓸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어쩌면 조경 바깥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조금 더 다양한 관련 학과 학생들을 더 많이 만났더라면 싶다. 나는 나눔연구원 봉사단과 같은 다양한 학생활동 프로그램이 풍부해져서, 보다 많은 대학생들에게 여러 대학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생겨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경학과 학생들 간의 교류가 특정 기관이 주도하는 기관과 학생 사이의 수직적 수혜적 구조이기보다는, 학생 자신들이 주도하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울림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그 울림의 시작을 환경조경나눔연구원 녹색나눔봉사단이 마련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 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공모전과 같은 경쟁이 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나, 경쟁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람을 많이 만나보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고, 공감하는 일은 한 분야를 이끌어갈 아주 중요한 자산이다. 조경을 원해서 조경을 선택한 사람이든, 조경을 어쩌다 붙들게 된 사람이든, 그들 모두가 끌리는 점 하나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간으로 메타포를 드러낸다. 사람들 일상의 행동을 효율적으로 구현할 공간을 만들고 그들이 속한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킬뿐 아니라, 소속감과 더불어 공간의 의미를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조경을 사용한다. 조경을 택한 사람들은 사람과 그들이 속한 커뮤니티를 이해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조경을 택한 것이다. 조경이 단순히 녹색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문화적, 인적 유산을 형성하는 한 분야로 더욱 굳건히 자리잡기를 바란다. 어린이 조경학교에서 8~12살 아이들이 함께 놀 공간에 대해 떠들게 한 힘 같은 것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운 조건들을 뛰어넘을 사고와 실천이 필요하다. 더 많이 놀고, 떠들고, 배우자. 서예람 /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제10기 대학생 녹색나눔봉사단 부대표
- 서예람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제10기 대학생 녹색나눔봉사단 부대표
- 202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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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기묘한 이야기’라는 글을 통해 조경계의 불합리한 점을 몇 가지 지적한 뒤 1년이 지났다. 시간은 지났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것만 같아 글을 시작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책과 잡지를 뒤적이다가 이런 문구를 발견하고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주 오랫동안 해안을 보지 못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새로운 땅을 발견할 수 없다.” -앙드레 지드 한 업계의 작은 발전을 꿈꾸는 것이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일’만큼 대단한 일이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때론 그만큼이나 요원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기에, 호기롭게 이 사람의 명언에 힘을 얻어 아직 별다른 변화의 조짐을 발견 못했어도 계속 가 볼 생각으로 지금까지 시도해 본 몇 가지에 대한 소회를 공유하기로 한다. 1. 표준계약서(초안) 2022년에 조경설계업협의회의 정책분과 소속으로 조경설계 표준계약서의 초안을 만들었다. 이 문서가 갖는 한계는 너무 많다. 애초에 번듯한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고, 한 개인이 경험상 알게 된 계약 관계의 애로사항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서 한 문서에 정리한 내용이다. 다행히 변호사의 검토를 거쳤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누가 공인한 것도, 공인을 하려는 문서도 아니라 이제는 없어진 한 사조직의 게시판에 올린 이후 서서히 잊혀 가고 있다. 간혹 개인적으로 연락해 이 문서를 공유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은 있으나, 실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이게 만들어진 뒤에 실익은 있었는지 챙기지 못했다. 이 경험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조경계의 어떤 조직이 갑자기 나서서 표준계약서를 제대로 만들어보겠다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이고, 또 동시에 내가 표준계약서를 계속 발전시키겠다고 해서 누가 막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음 버전은 좀 더 효율적으로 의견과 사례를 수집하고 프로젝트 정보와 과업 내용 외에 대부분의 조항을 수정하지 않아도 되는 버전의 표준계약서로 발전시켜 볼 생각이다. 공식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걸까? 2. 설계자 의도 구현 권장 조항 서울시 도심에서 새롭게 등장한 ‘개방형 녹지’ 등 조경의 중요성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문제는 조경 분야가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조경 분야에서 설계와 시공의 간극은 유독 심한데, 공산품이 아닌 식물을 재료로 다룬다는 점뿐만 아니라 조경감리 전문가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 관련된 전문 분야 자격제도가 조금씩 불완전한 점 등 워낙 다양한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문제의 실마리를 풀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법이 필요하지만, 참 다양한 법에서 조경의 업역이나 자격, 기능은 정의되어 있지 않거나 제외되어 있거나 생략되어 있다. ‘개방형 녹지’는 계획과 설계, 시공 및 운영관리를 포함한 전 생애주기에서 조경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일례로 개방형 녹지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에 설계자 의도 구현 용역을 권장하는 문구를 포함하고 있다. 근거법이 없기 때문에 민간의 계약 관계에서 본래 공공 건축에 도입하기 위해 정의된 ‘설계자 의도 구현 용역’을 의무화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에 강제성은 없다. 강제성이 없으니까 달라지는 것이 없을까? 3. 공원 조성단가의 설정 투자심사와 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공원녹지의 조성은 늘 비용 편익 분석의 벽을 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사업이 진행되고 안 되고가 달라지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현대 사회에서 기대하고 필요로 하는 질 좋은 공원을 만드는데 턱없이 부족한 조성예산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실비 정액방식을 도입하도록 하고 있어서 공사예산과 설계비는 별개의 문제일 것 같지만, 타당성조사를 진행하는 조직에서는 여전히 공사비 대비 요율로 설계비를 책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 단계에서의 예산이 반드시 최종 예산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투자심사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의 공원 조성비를 서울시가 알려주지 않고 설계사가 추론해 내야 한다는 점, 그 방식이 매번 달라 기준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는 점도 문제다. 공공조경가로 활동할 당시, 서울시가 서울시에 적용할 수 있는 공원조성단가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건의했지만, LH에서 만든 기준이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중복되는 연구를 할 수 없다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답변을 듣고 시간만 지나갔다. 얼마 전 새해를 맞아 서울시 푸른도시여가국의 미래전략 TF회의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틈타 전문가 위원으로서 공원 조성 단가를 제대로 책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설계 단가 역시 적정하게 책정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견을 냈다. 서울시의 답변이 있던 자리는 아니었다. 그냥 의견이기 때문에 여전히 변화는 없을 것인가? 위 세 가지는 내가 직접 관여했던 적은 노력 몇 가지를 적은 것이어서, 2023년 조경계가 애써서 개선한 점은 이보다 훨씬 많겠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새 땅이 보이는” 정도의 변화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우선 조경계의 발전을 위해 크고 작게 애쓰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작은 한 발자국도 응원하며 계속 정진하자고 말하고 싶다. 어떤 노력이 있었는데 이를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건 대부분 그게 사소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사실은 노력하는 척을 하고 있었거나, 노력하는 행위 자체의 만족감에 머무르거나, 부딪혔던 문제까지만 가고 거기서는 다시 한발 물러나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느라 에너지를 쏟고 있거나, 격려의 말에 취해 스스로 지금 괜찮다고 위로하게 되는 굴레에 빠지는 것일 테니 이를 경계해야 하겠다. 이해인 / HLD 대표
- 이해인 HLD 대표[email protected]
-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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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방학입니다. 저에게 방학은 또 다른 개학이기도 합니다. 어린이조경학교를 진행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부터 시작한 어린이조경학교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주춤했던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마다 연 2회씩 진행해 이번이 15번째 어린이조경학교가 됩니다. 어느덧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린이조경학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조경의 개념과 역할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으로 서울특별시 동부공원여가센터와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서울시 동부공원녹지사업소(현 동부공원여가센터) 윤세형 과장님과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임승빈 초대 원장님(현 이사장)의 대화였습니다. 봉사활동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 어린이 조경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하던 두 기관이 서로 힘을 합하면 좋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거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던 거죠.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한 나눔연구원은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기획과 진행을, 그리고 조직력이 잘 갖추어진 서울시는 행정적인 지원과 운영을 맡아서 지금까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어린이조경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첫 회부터 교장선생님으로 참여하고 있고, 몇 해 전부터는 허윤선 박사님이 교감선생님으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어린이조경학교를 처음 시작할 때의 막막함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할지, 어떤 수준과 내용으로 아이들을 만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건축분야에서는 어린이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찾아봤습니다. 건축계에서는 정말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학회나 지자체에서도 교육이 진행되고 건축 관련 문화재단이나 박물관에서도 어린이 건축학교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주로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아이들과 함께 건물을 모형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건축을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식의 내용들이었습니다. 부럽기도 했고, 조경분야에서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내용을 적용해서 강의와 실습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공원이나 놀이터를 만들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개인별로 만드는 건축에 비해서 모둠별 활동이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전문가 특강, 공원 둘러보기, 아이디어스케치, 공원 구상도 그리기, 모형 만들기, 발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해 오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된 커리큘럼을 갖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진행과 운영에 이르기까지 조경전공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도 보조교사로 같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 글을 통해서 다시 한번 보조교사 역할을 해 준 학생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보조교사들 없이는 운영이 힘든 프로그램이라는 걸 진행해가면서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어린이조경학교에 대해서 문의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조경교육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내용들이지요. 어린이 조경교육이 지금보다 확산되기를 희망하는 저에게는 참 고맙고 반가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의 내용의 대부분은 저보고 맡아서 진행해 줄 수 없겠는가 하는 말씀들입니다. 주로 문의하시는 곳은 지자체나 조경 관련 단체들인데, 아무래도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실제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을 맡을 곳이 필요하거든요. 저는 이미 방학 때마다 운영하고 있어서 추가로 다른 프로그램을 맡기는 어렵다고 정중히 거절하면서, 혹시라도 진행에 관심 있는 분이나 단체가 있으시면 그 동안의 노하우는 얼마든지 전달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관련 학회나 협회에서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선뜻 나서는 곳이 없는 상황입니다. 2019년 어린이조경학교 10회 기념 세미나에서 ‘10번의 어린이조경학교’이란 제목으로 앞으로 더 많은 어린이조경학교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발제를 했었습니다. 조경인 스스로 조경이 사회적으로나 인접 분야로부터 저평가되고 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곤 하는데, 거꾸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조경의 중요성을 대외적으로 알리는데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해서 반성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경을 알리기 위해 모든 조경인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작은 노력이라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8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시작한 제1회 어린이조경학교는 14회까지 약 930여 명의 어린이들을 배출했고, 이번 겨울을 지나면 어린이조경학교를 거쳐 간 학생들이 1000명이 넘게 됩니다. 저 스스로도 아이들 몇 명 데리고 조경 얘기한다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시작했지만, 역시 세월이 쌓이면서 이제는 조금씩 그 영향력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조경학교를 수강한 학생들이 조경을 전공하거나 이 분야로 진출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조경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클라이언트로 만날 수도 있고, 훌륭한 오피니언 리더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아져서 더 많은 어린이 조경학교가 같이 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끝으로 교육과 시간에 관한 마리아 몬테소리의 이야기로 마칠까 합니다.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좋은 생각을 뿌려라. 아이의 이해 속에서 그것을 해독하고 마음에 꽃을 피우는 일은 세월이 하게 될 것이다.” -마리아 몬테소리 주신하 / 서울여자대학교 교수·어린이조경학교 교장
- 주신하 서울여자대학교 교수·어린이조경학교 교장[email protected]
-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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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조경의 영역에서 눈에 띄는 성취를 이루거나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한 노력으로 분야 발전에 기여한 ‘2023년을 빛낸 조경인’들로부터 신년 메시지 “2024년에 바란다”를 들어봤다. - 편집자주 가장 찬란히 빛나지 않아도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2023년은 나에게 빛나는 해였다. 상복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유독 많은 상을 받았고 좋은 프로젝트를 할 기회도 많이 생겼다. 주변에서 나를 인정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만큼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생겼다. 모두가 빛나기를 원한다. 그리고 매해 신년이 되면 그해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학생들은 10년 넘게 가르치다 보니, 어떤 해의 가장 은은했던 학생이 어떤 해에는 가장 빛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누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각자 저마다의 빛이 있다.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빛난다. 누군가는 깊은 벽(碧) 빛을 띄고 있고, 누군가는 톡톡 튀는 진홍색 빛을 낸다. 내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의 빛이 적절했던 순간이, 그리고 내 주변의 수많은 빛들이 함께 만든 결과이다. 2024년은 모두가 가장 빛나기 위해 조도(照度)만에만 집착하는 해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2024년의 조경이 가장 빛난다면 그것은 모두가 서로 다른 빛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롭게 내는 해일 것이다. 누군가는 식물을 통해 빛이 나고, 글을 통해 빛이 나고, 드로잉을 통해 빛이 나고, 제도를 통해 빛이 나고, 만들어짐을 통해 빛이 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빛들을 통해 수많은 성좌가 만들어지고 각자의 조경이 서로의 조경을 만나 빛이 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장 찬란히 빛나지는 않더라도. 마디를 지나며 임한솔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선임연구원 2023년은 마디와 같은 해였다. 그동안 해 온 것이 결실을 맺기도 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도 했다. 6월에는 몇 년간 붙잡고 있다가 완성한 학위 논문을 심원건축학술상에 제출해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12월에는 4년 전에 시작한 도시경관 잡지 유엘씨(ULC)의 열 번째 책을 만들어냈다. 그런 한편 문집, 명승, 사찰숲 등 흥미롭지만 연구자로서 다루어 보지 않았던 주제를 탐구할 기회를 얻어 새로운 공부를 텄다. 감사한 일이다. 마디가 두꺼운 이유는 약하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다음으로 나아가고 싶어 몇 가지 소소하지만 중요한 일도 했다. 봄부터 한 주에 두 번씩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배우고 미뤘던 치과 치료도 받았다. 다니는 학교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여름방학 때 연구실 천장 속 석면을 없애고 바닥을 새로 깔아주었다. 막판에 감기로 고생을 하긴 했지만 잘 회복해서 꿋꿋이 내년을 맞이하고 있다. 잘 된 것을 늘어놓았으나 사실 부끄러움이 앞선다. 못 이룬 계획이 선하고, 늘 시간 탓을 하던 내가 떠오른다. 어려움마다 손 내밀어주신 동료와 선후배, 선생님, 가족이 있어 하나씩 해결해왔다. 내년의 목표는 하나다. 받은 만큼 드리는 것,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여느 때처럼 올해도 돌아보니 혼자 이룬 것이 없었다. 마감에 쫓기기보다 지금에 충실하고, 먼 산을 보기보다 가까운 풀숲을 돌보는 2024년이 됐으면 한다. 현장을 꼭 나가보자 조용준 CA조경설계사무소 소장 규모에 상관없이 일 년에 최소 한 개 이상의 시공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3년에는 운이 좋게도 4개의 공간이 완성되었다. 2018년에 설계했던 판교 제2테크노밸리 내 오피스 빌딩, 2022년 가을부터 설계했던 자곡로 포스코 더샵갤러리 2.0, 올 초에 설계했던 반포한강공원 어린이 놀이터 리노베이션, 마지막으로 서울정원박람회에 초청작가로 설계했던 소리의 정원이다. 프로젝트 모두 현장을 여러 번 오가며 현장소장들과의 소통 속에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원하는 만큼 구현된 곳도 있지만, 아쉬움이 남는 공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현장으로부터 깨닫고 배운 것들이 많다. 현장에서의 경험은 도면 속 설계와 시공된 공간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촉매제가 된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설계 능력을 향상시키고, 발주처 설득을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밖에 현장과의 조율 및 협력을 위한 소통 기술을 향상시키며, 설계단계에서 비용과 일정을 고려한 최적의 설계안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다. 당연하면서도 필요한 이런 경험을 나는 설계를 시작한지 9년쯤 되었을 때 시작했었다. 그 후 10년의 시간 동안, 많은 현장에서 좌절과 희망 사이 어느 지점에서 실망하고, 분노하고, 반성하고, 만족하고, 안도하고, 행복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현장은 나의 설계를 냉철하게 평가받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곳이다. 2024년 좀 더 나은 설계를 하고 싶다면, 당신의 현장을 꼭 나가보자. 디로딩, 느리게 걷기 홍진아 정원작가, 가든랩소디 대표 미래의 어느 날 2023년을 떠올린다면 나에게 아주 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해라고 기억할 것이다. 새로운 도전으로 가득했던 해였다. 학생 때부터 휴학 한번 없이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공부를 하며 여기까지 숨차게 달려왔다. 쉰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 때문인지 욕심 때문인지. 그렇게 나는 빠르게 자라기만 하는 속성수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주변 상황에 마구 흔들리며 정신을 놓기 일쑤였다. 조금은 느려지기로 결심했다. 나를 더 들여다보고 조금 더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며 내면의 다른 가능성들을 끌어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자라는 강인한 나무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올해 초 가든랩소디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틈틈이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면서 시야도 넓히고 독서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런 와중에 감사하게도 여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강연의 기회도 생겼다. 그리고 광명에서 열린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작가정원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상까지 수상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다양한 것들을 접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 디자이너로서 평생에 한 번쯤은 내 작품이 누군가에게 강렬한 영감으로 전달되길 바라면서. 내년에는 건설 경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하지만 조급해 말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 개인의 내실을 다지는 희망찬 2024년이 되었으면 한다. 건강한 개인들이 모여 건강한 사회를 만들 듯 조경인 한 명 한 명의 부단한 노력과 발전들이 모여 건강한 조경 사회가 되길 기원한다. 공동주택, 한국적 조경으로 세계화 노린다 이은수 포스코건설 부장 건설사조경협의회에서는 2023년 10월에 ‘제1회 공동주택 조경기술 토론회’를 개최했다. 우리 조경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공동주택 조경의 발전을 위한 첫 공론의 장을 시작한 것이다. 참석자는 회원에 국한하지 않고 개방했으며, 발표자와 토론자 또한 회원 비회원을 가리지 않고 조경계의 저명한 분들이 폭넓게 도움을 주셨다. 이 토론회는 앞으로 격년제로 개최할 예정이며, 점차 내실을 다져서 공동주택 조경과 관련해선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 교류의 장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 최근 우리 공동주택 조경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미니멀리즘적인 예술적 조경과 자연주의 조경이 그것이며, 둘 중 한 가지만 적용한다기 보다 두 가지 모두를 주제나 부제주 등으로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우리 한국의 미는 크게 소박미 계열과 자연미 계열로 나뉜다고 한다. 예술적 조경은 소박미 계열, 자연주의 조경은 당연히 자연미 계열이기에 최근 공동주택 조경의 흐름은 한국적 조경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좋은 흐름이라 판단된다. 위 두 가지 흐름과 함께 평면뿐 아니라 지하에서 테라스를 거쳐 옥상까지 관여하는 조경 공간의 확대는 공동주택 조경을 점차 높은 수준의 작품으로 끌어올리고 있으며, 이는 다른 나라 조경과 차별되는 우리만의 조경으로서도 점점 더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원의 진화, 지속가능한 지구 온수진 양천구청 공원녹지과장 작년 말 서울 양천구 목동 한가운데 위치한 오목공원을 재개장했다. 리노베이션 계획을 수립한 지 딱 3년. 박승진 조경가가 계획하고 김희정 건축가가 조율한 공원 중앙부 회랑은 기후위기와 핵개인화 시대에 맞서는 도시공원의 태도와 품격을 갖췄고, 새롭게 문을 연 오목한 미술관과 서울형 키즈카페는 문화 확산과 저출생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공원도 함께 나서자는 선언이었다. 기존 역할에 더해 시대적 요구까지 담아내는 미래공원의 단초라 감히 자평한다. 새해다. 늘 위기의 시대였으니 새삼스러울 것 없다면서도, 이렇게 희망이 왜소하고 희박했던 적이 있었나 싶어 마음이 무겁다. 기후위기의 신호는 너무 크고 많아져 외려 둔감해지고 외면당한다. 도시는 여전히 게걸스럽고, 덕분에 지역은 소멸을 실감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결혼이나 출산 같은 근본적 관계 맺기조차 소거하니, 외로움이 뉴노멀처럼 여겨지는 상황. 짧고 자극적인 유혹에 길들어지며 긴 호흡도 잃었다. 방향도 동력도 부재한 상실의 시대. 망치를 들면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지만, 공원과 녹지 그리고 산과 강으로 모든 세상을 재단하는 ‘공원주의자’ 입장에선 위기의 해결책도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위기를 극복하는 건 늘 ‘연결’이다. ‘관계 맺음’이고 ‘협력’이며, ‘커뮤니티’이고 ‘커뮤니케이션’이다. 단절과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공원이 그 중심에 서야 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동시에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기 때문이다. 공원을 업그레이드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도시의 빈틈을 만들고, 생물다양성을 높여 자연의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 세상이 바뀌는 만치 공원도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며, 그 노력만큼만 도시도 지구도 지속가능할 것이다.
- 박광윤, 이수정, 신유정 기자[email protected]
- 2024-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