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윤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박광윤 기자] “한국 정원을 보고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는 세계적인 두 정원작가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한 명은 우리에겐 아직 낯선 얼굴이고 다른 한 명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한국인 작가이다. ‘정원’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사이먼과 황혜정 두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이먼, “한국정원은 세계적” 엄지척!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할 수는 없다”면서 한국에서 정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비밀리(?)에 방문한 영국 정원작가 사이먼과 한국이 낳은 첼시플라워쇼의 스타 황혜정 작가가 지난 15년간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느낀 정원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이먼은 영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부자들의 정원을 대부분 만들었을 정도로 이미 실력을 인정을 받고 있는 조경가이자 정원디자이너이다. 정원문화가 대중적으로 가장 잘 뿌리 내리고 있는 나라를 꼽으라면 영국을 빼놓을 수 없는데, 특히 영국의 상류층에게 정원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머스트 헤브(must-have)’ 패키지 중 하나로 여겨진다. 마치 중세시대 귀족들이 자신이 소유한 정원을 통해 부나 명예를 과시하던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나 할까. 그만큼 영국에서 정원은 큰 대접을 받고 있다.
“운이 좋게도 매우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많이 했어요” 사이먼은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국은 물론이고 이미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그가 조성한 대표적인 정원은 카타르의 왕 정원 등을 비롯해 매우 내밀한 공간이어서 외부 공개가 제한적인 것이 아쉽다.
또한 사이먼은 한국정원에 애정이 많은 한국 팬이다. 오래 전부터 황혜정 작가와 함께 한 해 두세 번씩은 한국을 방문했으며, 그때마다 한국 전통정원의 디테일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단다.
“한국의 전통적인 정원과 현대성이 접목된 부분이 특히 좋다. 조경은 건축과 잘 융합되어 전체적으로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지론인데, 그런 측면에서 한국 조경은 잘 발달돼 왔다고 생각한다. 청계천이나 경복궁에 갔을 때 서로 맞물려 쌓여 있는 옛날식 벽들의 디테일과 기술을 보고 감동을 많이 받았다. 한국의 정원은 서양의 방식과는 다르다보니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서양과 다른 한국정원 흥미로워”
그는 청계천에 대해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전통미가 스며있어서 매우 조화롭다”고 평했으며, 경복궁과 같은 고궁에 대해서는 “뷰 자체를 이용한 요소들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문에 가려져 있는 뷰는 그 뒤에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을 가지에 한다. 한 단계 넘어가면 새로운 경관이 펼쳐지고 또 다른 문이 다시 새로운 궁금증을 만들어 낸다”
최근에는 순천만 국가정원을 돌아보고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했다.
“순천만정원은 매우 크다. 어떻게 보면 공원 안에 하나의 정원을 만든 것인데, 주어진 콘셉트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과 조화가 될 수 있는 정원이 들어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이먼의 대답은 한국정원에 대한 해박한 이해가 없이 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는 그간의 한국정원에 대한 경험들을 이번에 한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한국정원은 기존 전통적인 디테일들은 많이 살아있는데 현대적인 부분을 가미하면서 디테일이 약해지는 것 같다”는 것이다.
“유럽 사람들은 디테일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조경이나 건축은 전체적인 비주얼이 좋아야 높은 평가를 받는데, 그러한 비주얼이 나오기 위해서는 사실 하나 하나의 디테일들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벽을 만들 때 장식들을 어떻게 시공을 하느냐에 따라서 마지막 완공된 모습이 훨씬 달라질 수 있는데, 한국은 이런 부분이 조금 약하지 않나 싶다”
황혜정, 느릿느릿 유럽 ‘정원 디테일’ 본받아야
황혜정 작가는 2016년과 2018년 두 차례나 첼시플라워쇼에 출전해 우리에게 자부심과 놀라움을 안겨준 세계적인 한국인 정원작가다. 현재는 영국과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다.
황 작가도 유럽의 정원에 대해 ‘디테일’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했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본받아야 할 점도 ‘디테일’이라고 꼽았다. 하지만 유럽에서 디테일한 디자인과 시공이 가능한 것은 한국과 다른 문화에 기인한다. 한 개의 정원을 완공하기까지 큰 프로젝트인 경우는 설계만 3~4년에 시공까지 10년을 걸쳐 진행하는 경우도 많으며, 그렇게 오래 진행을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 같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조성 기간이 길다 보니 그 사이 사람 마음이 바뀔 수도 있고 트렌드도 바뀌면서 디자인도 계속 변경된다. 첫 번째 디자인으로 시공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계속 바뀌면서 더 완벽해진다. 한국은 ‘시간을 단축해서 얼마나 빨리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영국은 시간을 가지고 계속 바꾸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더 완벽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최근 한국도 정원문화가 많이 확산되고는 있지만 유럽과 같이 ‘그런 느릿느릿한 문화가 가능한 날이 올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황 작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빨리 발달했고 요즘은 세계적인 영향력도 가지고 있다. 한국에는 아파트가 많은데, 아파트에 사는 분들도 그린 스페이스에 대한 염원이 많은 것 같다. 단지 내에 조경이 있고, 나무를 기르려 하는 모습을 보면 기회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일본도 그랬다. 당장 지금은 힘들어도 한 10년 20년을 두고 프로페셔널을 추구할 수 있는 시간이 차근차근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 정원 누비는 “우린 일과 삶의 동반자”
황 작가가 보는 사이먼은 탐험가에 가깝다. “새로운 것을 탐험하고 연구하는 것은 영국인들 DNA에 박혀 있는 것 같다. 사이먼은 항상 어딘가로 가서 무언가를 보는 걸 좋아한다.”
사이먼과 황혜정 작가는 부부다. 각자의 회사를 가지고 활동하면서 직업적 동반자로서 협업하며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여행을 가는 곳마다 그 지역의 정원을 함께 돌아보고 어느 곳에서나 정원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은 정원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꿈이다. 조금 더 나은 정원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 우리에겐 그것이 전부이다.”
도전이 재밌는 사람들, 세계를 무대로 도전하고 있는 영국남자 사이먼과 한국여자 황혜정의 정원 이야기는 앞으로 더 무궁무진해 질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