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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나무 오디세이아 ⑦] 봄_우리 곁에 있는 나무 이야기
  • 입력 2023-05-09 12:45
  • 수정 2023-05-0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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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봄날을 마무리하는 꽃나무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봄을 맞아 온갖 나무들과 풀의 새 잎이 돋아나 세상은 초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화려하게 피었던 벚꽃이 봄바람에 순식간에 떨어지면서 키 작은 관목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봄날이 성큼 지나가면서 여름 날씨를 보이는 입하 절기로 들어서면 초록색 나뭇잎과 가지 전부를 흰색 꽃으로 뒤덮는 이팝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풍성한 꽃과 함께 향기까지 좋은 이팝나무는 전주와 포항을 잇는 선 아래인 남부 지방에서 자생하는 세계적인 희귀수종이다. 오래전부터 자생하고 있는 노거수나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이팝나무는 거의 다 남부 지방에 있다. 최근에는 공원이나 도로변에 많이 심어 중부지방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원래부터 추위에 잘 견디는 성질이 있어 중부지방에 심을 수 있었는데도 조경수로 생산하지 않아 뒤늦게 빛을 본 나무이다. 이팝나무가 왕벚나무만큼 인기를 끈 이유는 청계천 복원사업 때문이다. 2004년 당시 가로수는 왕벚나무와 은행나무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청계천복원을 상징하는 나무로 새로운 수종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당시에는 가로수로서는 흔치 않은 수종이지만 추위에 강하고 이식이 잘 되는 이팝나무가 선정됐다. 청계천 준공 이후 전국적으로 이팝나무를 식재하는 유행이 일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도 온대 지방에 자생하는 이팝나무는 동북아와 미국 동부지역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전국 각 지역에서 가로수나 정원수로 심기 시작하여 개체수가 많아져 비교적 흔한 나무로 여기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멸종위기식물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서양 학자가 지은 학명의 뜻은 ‘눈같이 하얀 꽃’이다. 그러나 같은 꽃을 우리 조상들은 전혀 다르게 바라보았다. 꽃이 모여있는 모습이 하얀 쌀밥과 비슷하다고 ‘이밥’으로 부르다가 ‘이팝’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일부 지방에서는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 절기에 꽃이 핀다고 ‘입하’나무로 부르다가 이팝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배고픈 시절의 슬픔

이팝나무는 5월 초순쯤에 초록색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얀 꽃이 나무 전체를 수복이 뒤집어쓴다. 가늘게 네 개로 갈라지는 꽃잎은 밥알처럼 보이고 꽃 뭉치가 모여서 이루는 나무 모양은 멀리서 보면 쌀밥을 수북이 담아 놓은 듯이 보인다. 밤에 보면 마치 흰 눈이 나무에 쌓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새로 난 어린 가지 끝에 흰색 꽃이 무더기로 달려 꽃 무게에 가지가 늘어지기도 한다. 꽃도 오랫동안 피어있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으며 바람에 떨어지는 낙화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팝나무에 꽃이 피면 본격적인 논농사가 시작된다. 못자리에 물을 대며 벼농사를 시작한다. 농사가 중요한 산업이었던 농경시대에는 풍년이나 흉년을 점칠 수 있는 신목(神木)의 지위를 가졌다고 한다. 넓은 들이나 농경지가 발달한 곳에 심어 놓고,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을 기대하고 꽃이 조금 피면 흉년이라고 걱정했다. 과학적인 기상관측이 불가능하던 그 시절에는 농사 수확량을 예상해 보는 것이 최대 관심사였을 것이다. 풍년이 와야 쌀로 지은 이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이팝나무 꽃을 올려다 본 조상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농경시대에는 5월이 식량이 바닥나는 보릿고개였다.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먹을 게 모자라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이팝나무 꽃이 피는 시기와 겹친다. 그래서 흰쌀밥을 마음껏 먹고 싶었던 서민들의 애환과 간절한 바람이 이팝나무 설화로 전해진다. 흉년이 들어 엄마의 젖만 빨다 굶어 죽은 아기를 아버지가 지게에 지고 산에 묻어 놓고 무덤 옆에 이팝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죽어서라도 쌀밥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팝나무를 보고 푸짐하게 먹으라고 했던 가난한 아비의 슬픈 전설이다.

 

왼쪽부터 수꽃나무, 양성화나무ⓒ홍태식.jpg
왼쪽부터 수꽃나무, 양성화나무 ⓒ홍태식

 

 

지금도 진화중

도시지역 가로수로 이팝나무를 많이 심고 있는데 봄철 꽃가루를 날리는 나무로 의심받고 있다. 그러나 꽃의 구조를 보면 수술이 화관으로 둘러쌓여 있어 꽃가루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실제 꽃이 피어있는 가로수를 흔들어 보아도 꽃가루를 날리는 나무는 보지 못했다. 이팝나무 꽃이 피는 시기가 송홧가루와 버드나무의 종모가 흩날리는 때와 일치하는 것 때문에 오해를 받는 것 같다.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마다 꽃이 달린 모습이 차이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을에 열매가 달리는 나무가 더 많은 꽃을 피우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는 암수딴그루로 분류했었는데 실제로 암그루의 암꽃을 자세히 살펴보면 수술이 보인다. 암꽃의 수술을 잘라 내부를 살펴보면 수술에서 꽃가루가 활성화되어 있어 단순히 암꽃이 아니라 양성화로 판명되었다. 독특한 암꽃 구조를 가진 셈이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이팝나무는 ‘수꽃양성화딴그루’로 변경했다. 따라서 암수딴그루가 아니라 수꽃나무 와 양성화나무로 구별할 수 있다. 꽃은 수꽃나무가 먼저 피지만 양성화나무가 꽃이 훨씬 더 풍성하게 피고 가을에 보라색 열매가 달린다. 가끔 수입산 버지니아 이팝나무를 볼 수 있는데 꽃차례가 지난해의 가지에서 나오고 꽃은 비록 크지만 아래로 처지기 때문에 잎이나 가지 속으로 숨어버려 그 화려함은 이팝나무에 비하여 덜한 편이다.

 

이중휴면성으로 종자 번식이 까다롭지만 가을에 채취한 종자를 두 해 겨울 동안 노천매장 후 파종하면 잘 발아된다. 어릴 때는 성장속도가 느리지만 키가 2m 정도가 되면서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 전정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수형을 갖춰 가지만 강풍에 가지가 잘 찢어진다.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규모로 도입한 뒤, 전국적으로 이팝나무 수요가 폭증했다. 일시에 많은 수요가 발생하여 생산농가 대부분이 왕벚나무나 은행나무 대신 이팝나무 묘목을 구하여 키우기 시작했다. 가로수 수요공급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이번엔 아파트 조경공사에 왕벚나무 식재 유행이 돌아왔다. 널뛰기하듯이 이팝나무는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하고 왕벚나무는 구하기 어려워 가격이 급등했다. 조경수 시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왼쪽은 2013년 청계천 어린 이팝나무, 오른쪽은 2023년 청계천 이팝나무와 회화나무.jpg
왼쪽은 2013년 청계천 어린 이팝나무, 오른쪽은 2023년 청계천 이팝나무와 회화나무

 

청계천 이팝나무

이팝나무는 계곡이나 습지 주변 그리고 바닷가에서 주로 살며, 양지바르고 토심이 깊은 사질양토의 비옥한 토지에서 생장이 양호하다. 공해, 염해, 병충해 그리고 추위를 잘 견디나 건조에는 약하다. 이식이 잘 되어 조경수로 많이 쓰인다. 2005년 10월 청계천복원 사업이 준공되었다. 이 때 심은 이팝나무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아쉽게도 17년이 지났어도 별로 크지 않고 꽃도 풍성하게 피지 않는다. 원인은 보도 포장재를 화강석 판석으로 하여 빗물이 뿌리 쪽으로 스며들지 않는 데 있다. 식재 위치도 옹벽 바로 옆이라 뿌리가 뻗어 나갈 공간이 부족하다. 청계천을 내려다보는 보행자 위주로 보도포장을 한 결과이다. 같은 시기에 식재 한 건너편 회화나무는 훨씬 더 성장하여 풍성한 녹음을 자랑한다. 도시 가로수는 수종을 선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식재 위치와 토양 그리고 보도 포장재를 면밀히 검토한 후 시공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불투수성인 화강석을 투수성 포장재로 교체하면 수분 부족으로 신음하는 이팝나무가 생육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가로등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한밤중 어두운 밤길을 새하얀 눈처럼 밝혀주던 꽃나무로 사랑받았다. 보릿고개 시절 배고픔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던 이팝나무는 지금은 꽃이 피는 가로수로 사랑받고 있다. 비록 꽃이 지고 난 뒤에 잎의 수량이나 가지의 발달이 다른 수종보다 떨어지지만 2주일 동안 도시를 아름답게 해주는 흰색 꽃 때문에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가로수로 선정되고 있다. 봄과 여름을 이어주는 멋진 나무로 도시환경에 반드시 필요한 나무이다.

   

 

홍태식 한국정원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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