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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나무 오디세이아 - 가을 ③] 우리 곁에 있는 나무 이야기
단풍나무(Acer palmatum) Palmate maple 丹楓
  • 입력 2023-09-20 19:45
  • 수정 2023-09-20 19:45

가을 보도3.jpg

 

 

울긋불긋

가을에 단풍 드는 나무 가운데 으뜸이라서 단풍나무라고 부른다. 햇볕이 강한 곳보다는 큰 나무 밑이나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잘 자란다. 단풍나무는 잎이 손바닥을 펼친 모양으로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V자 모양 날개 속에 열매가 달린다. 잎이 피면서 붉은 꽃봉오리를 가진 꽃이 핀다. 꽃은 수꽃과 양성화가 한 그루에 피는데 안개꽃보다 작아서 여러 꽃이 다발로 모여서 피어난다. 나무 자체의 수액에 설탕 성분이 많아서 진딧물이 엄청나게 달려든다. 가을이 깊어지면 일교차가 커지면서 설악산같이 높은 산부터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단풍나무의 잎은 새빨갛게 물들어 수많은 가을 단풍 종류 가운데 가장 맑고 아름다운 색깔을 띤다. 

 

단풍-수원11.jpg
수원 어느 아파트단지의 단풍나무


우리 궁궐에서 단풍나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창덕궁 후원에는 참나무와 때죽나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나무가 단풍나무다. 후원에서는 키 큰 활엽수가 그늘을 만들어 단풍나무가 자라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단풍나무가 자생하고, 추가로 심기도 하여 단풍나무가 더욱 많아졌다고 한다. 정조대왕의 기록을 보면 후원 춘당대 옆에 있는 ‘단풍정’에서 활쏘기 등 여러 행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연 천이에 따라 지금은 창덕궁 후원 부용지 주변에 단풍나무는 거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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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시계방향으로 단풍나무-당단풍나무-중국단풍-고로쇠나무-공작단풍-신나무-복자기


단풍나무속에 포함되는 식물은 우리나라에 30여 종류가 있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풍나무’ 외에 여러 가지 단풍나무가 있다. 중부지방의 산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갛게 단풍 든 나무는 대부분 ‘당단풍나무(Acer pseudosieboldianum)’이다. 열매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잎이 8~9개로 갈라져서 5~6개로 갈라지는 단풍나무와 구별할 수 있다. 잎이 7~9개로 갈라지고 뒷면 잎맥 위에 갈색 털이 있으며 열매가 수평으로 벌어지는 것을 ‘내장단풍’, 잎 표면에는 털이 있으나 뒷면에는 없고 열매가 좁은 단풍의 반 정도로 큰 것을 ‘아기단풍’이라고 한다. 진한 주홍색으로 물드는 ‘중국단풍(Acer buergerianum)’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산다. ‘복자기(Acer triflorum)’는 단풍나무 가운데 가장 색이 곱고 진하여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조경수로 도시지역에 많이 심는 나무이다. 봄에 수액을 채취하는 ‘고로쇠나무’도 단풍나무속에 포함되지만 단풍은 그리 화려하지 못하다. 잎이 세갈래로 갈라진 ‘신나무’는 붉은 단풍이 아름답고 열매가 많이 달린다. 


잎이 봄부터 가을까지 붉은 ‘홍단풍’이나 잎이 잘게 갈라져 있는 ‘공작단풍’은 일본에서 건너온 원예종이다. 잎을 국기에 넣을 정도로 캐나다의 단풍나무는 유명하다.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진 캐나다 단풍나무의 학명은 ‘Acer saccharum’으로 종명에서 보듯이 설탕과 관련이 있어 ‘설탕단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단풍나무에서 추출 가공한 것이 그 유명한 캐나다산 메이플 시럽이다.


단풍 든다는 것

나뭇잎에는 광합성을 하는 초록색 엽록소와 더불어 노란색 카로티노이드와 붉은색 안토시아닌 등의 색소가 숨어 있다. 엽록소는 햇빛과 물로 탄수화물을 만드는 광합성을 하는데 식물이 한창 성장할 때는 왕성한 활동을 하여 나뭇잎이 녹색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을로 접어들면 변화가 일어난다. 기온이 떨어지면 잎자루에 떨켜가 생겨 잎에서 만든 탄수화물이 줄기로 가지 못하고 탄수화물이 쌓여 산성화되면서 엽록소가 파괴된다. 녹색의 색소가 없어지고 노란색 또는 빨간색 색소가 만들어져 서로 어울려 여러 가지 빛깔의 단풍을 만들게 된다. 같은 나무에서도 카로틴이나 크산토필, 타닌 같은 색소와 안토시아닌, 탄수화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특유의 단풍색이 만들어진다. 


대서양을 마주하고 유럽의 단풍은 노란색이 대부분이고, 북미대륙은 거의 다 붉은색 단풍이다. 지난 2009년 이스라엘과 핀란드 공동 연구진은 그 원인을 서로 다른 지질 변동에서 찾았다. 3,500만 년 전 지구가 빙하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산맥이 남북 방향으로 발달한 아시아와 북미에선 기온 변화에 따라 나무들이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해충도 따라갔기 때문에 해충 퇴치를 위해 계속 빨강 색소인 안토시아닌을 만들도록 진화했지만, 산맥이 동서 방향으로 발달한 유럽에서는 나무와 해충이 남쪽으로 내려갈 수 없어서 모두 멸종했기 때문에 그 뒤에 생긴 나무들이 굳이 안토시아닌을 만들 필요가 없어져서 노란색 단풍이 우세해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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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단풍나무(노란색 위주), 북미대륙 단풍나무(빨간색 위주)

 

단풍 색깔은 보통 붉은색, 노란색, 갈색의 3가지가 많다. 붉은색은 단풍나무, 신나무, 옻나무, 붉나무, 화살나무, 복자기, 담쟁이덩굴 등이 손꼽히고, 노란색은 은행나무를 비롯해 아까시나무, 피나무, 호도나무, 튜립나무, 생강나무, 자작나무, 물푸레나무 등이다. 노란색이나 붉은색에 뒤질세라 늦가을에 절정을 보여주는 참나무류나 느티나무의 황갈색은 가을을 더욱 화려하게 수놓는다.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요인은 온도, 햇빛, 그리고 수분의 공급이다. 우선 낮과 밤의 온도차가 커야 하지만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야 하고 일사량이 많아야 한다. 특히 붉은색을 나타내는 안토시아닌은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면서 햇빛이 좋을 때 가장 색깔이 좋다. 적당한 습도를 유지해야 하지만, 춥고 비가 오면 충분히 단풍 들기 전에 잎이 떨어지거나, 너무 건조하면 단풍을 보기 전에 잎이 타버려서 산뜻한 단풍을 보기 어렵다.


만산홍엽(滿山紅葉)

가을 단풍의 상징은 붉은색이라고 할 수 있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산행(山行)이란 시에서 ‘서리 맞은 단풍잎이 이월 봄꽃보다 더 붉다’라고 했다. 그러나 아름다움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져 있다. 붉은색 단풍잎에는 해충은 물론 주변에 살고 있는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비밀이 숨어있다. 봄철의 벚꽃 구경과 함께 가을의 단풍은 그 자체로 화려한 구경거리이기도 하다. 일주일이면 절정기가 끝나는 벚꽃과 달리 단풍 시즌은 좀 더 오래가는 편이다. 남쪽에서 올라가는  벚꽃과 반대로 북쪽이나 고도가 높을수록 단풍이 먼저 물든다. 봄에는 하루에 20 ㎞속도로 북쪽으로 올라오고 가을에는 30 ㎞속도로 남녘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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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가을 날씨는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한다. 한반도처럼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는 지역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기에 적당한 기상환경을 가진 지역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가을 단풍철이 되면 온 나라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어 어디를 가도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설악산이나 내장산을 비롯한 유명한 산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래된 사찰 주변은 다양한 나무들이 일제히 단풍이 들어 황홀한 경관을 펼쳐 보여준다. 경주 힐튼호텔 진입로에 조성한 단풍나무 터널은 일부러 다간형 단풍나무로 식재하여 울창한 단풍 숲을 보여주고, 천안 독립기념관이나 인천대공원의 단풍숲길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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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독립기념관 단풍길

 

도시민에게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다

단풍나무 생산은 주로 종자로 번식하는데 씨앗이 여문 후 직파하거나, 저온저장 또는 노천에 매장했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하는 것이 좋다. 씨앗이 건조하거나 숙성되면 발아율이 떨어지므로 채종 후 약 48시간 정도 물에 담가 놓은 후에 저장하거나 파종을 하는 것이 좋다. 원예종의 경우 대부분 접목하는 방식으로 생산한다. 일부 종은 꺾꽂이나 휘묻이도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배수가 잘되고 거름기가 풍부한 토양에서 잘 자란다. 양지나 약간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란다. 가지치기는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으나 생육이 불량하거나 나무 모양을 망치는 가지가 생길 경우 휴면기인 겨울철에 하는 것이 좋다. 조경수로 느티나무와 쌍벽을 이루고 수요가 많은 편이다. 


1987년 여름 6·29선언을 이끌어 낸 화이트칼라 데모 행렬이 한 달 내내 종로에서 벌어졌다. 당시 종각 사거리에서 제일은행본점 건설현장에서 조경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매일같이 데모군중을 향해 쏜 최루탄 가스에 고통을 받곤 했다. 6·29선언으로 데모가 사라진 다음 종각역 지하1층에서 건물로 이어지는 선큰가든에 나무 3주를 심을 공간이 생겨났다. 감독은 상록수인 소나무를 심으라고 지시했지만, 낙엽수인 단풍나무를 고집하여 식재하게 되었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서는 직장인들에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하였다. 앙상한 가지에서 아기 주먹같은 새잎을 보고 봄을 느끼고 빨갛게 드는 단풍을 보고 가을을 느끼도록 하자고 설득했다. 종각 가로변 3열 느티나무 숲과 선큰가든의 단풍나무 3주를 지켜낸 일은 아직도 조경기술자의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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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은행본점 선큰가든 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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