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전문가로 또 자연인으로 살다 보면 넘지 못할 문턱 앞에서 좌절할 때가 있다. 내 탓이지 하며 포기하려다가도 공정하지 못하거나 억울한 일을 겪을 때는 어디엔가 호소하고 해결책을 찾고 싶어진다. 개인의 난관으로 여겼던 것들이 결국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알게 되면서 제도와 법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내 삶이 각종 법이 허용한 아주 촘촘한 한계들 안에서만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저마다의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조경 전문가로서 살며 부딪치고 넘어지는 걸림돌이 결국 법적인 제한이거나 혹은 법 자체가 없어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올해 여름,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를 포함한 아기와 어린이들이 기후위기와 관련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의 소송을 시작으로 헌법재판소에 제기된 소송은 현재까지 올해의 ‘아기 기후소송’을 포함하여 모두 6건이다. 세계적으로도 기후소송은 2017년 884건에서 2022년 2,180건으로 5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했다.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가 기후위기로부터 현재세대와 미래세대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이렇다 할 판결을 내놓지 않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이해하고 현행법의 위헌 소지를 밝혀달라고 재판을 의뢰한 것일 텐데, 대한민국에 태어나 이 나이 될 때까지 헌법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 그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웠다. 반성하는 마음에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집어 든다. 『지금 다시, 헌법』이 그것이다.
“정치적 불만을 가진 사람은 격앙된 감정으로 헌법을 노려보게 되고, 이를 혁명이나 개혁의 근거로 삼고 싶은 기분에 고양된다. 침착하고 신중한 태도의 사람도 생활의 고단함이 참기 불편한 정도에 이르면 헌법을 찾는다.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변화를 일으킬 힘을 그 속에서 얻고자 하는 희망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헌법을 읽을까. 이에 대한 저자들의 대답이다. 그 이유가 개인적인 억울함이던, 변화를 바라는 집단의 염원이던,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인간의 존엄, 그리고 기본적인 권리를 국가가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법률로 확인하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위안을 준다. 대한민국 헌법은 법률가의 난해한 어휘가 아니라 국민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쉽고 간결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아가 조경 전문가로서 관심이 가는 조항들이 눈에 들어온다. 건설업에 만연한 불공정 관행과 설계 크레딧 이슈는 헌법이 보장하는 제11조 평등권과 제22조 저작권과 상충하며,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대응은 세대 간 불평등(제11조)을 심화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권리(제35조)를 위협한다. 우리가 잘 아는 공원일몰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인 소유의 땅에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한 구 도시계획법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제23조의 재산권과 관련된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는 제35조의 환경권은 공간복지와 공원의 형평성, 주택정책 및 환경보호와 관련한 근본적인 가치를 제시한다. 경제 관련 조항을 모은 9장의 제120, 122조는 국가가 국토와 자원을 보호해야 하며 균형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함을 명시한다.
‘국가의 상징’이라는 헌법의 개별 조항을 해설과 함께 읽다 보니 결국 하나의 큰 질문으로 귀결됨을 깨닫는다. 우리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일까. 국가는 정부인가? 국회인가? 아니면 국민인가? 우리는 국가정원, 국가도시공원 등 ‘국가’라는 접두사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앙정부의 예산을 지원받는다는 행정적인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면, 국가라는 맹목적 권위에 사로잡히기 전에,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국가적 필요성으로 도입된 우리나라 조경의 탄생 배경 때문일까. 혹은 지금 시대가 겪는 공통의 열풍일까. 공공의 이익과 국토 경관의 보호, 그리고 국민의 건강과 행복이 우리 분야의 실천 목표라면, 우리 시대 국가와 조경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해서라도 국가의 역할과 국민의 권리를 공부하고 논의할 필요성을 느낀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용산공원은 우리에게 ‘국가’의 화용적 의미를 보여주었다. 한쪽에서는 용산공원에 공동주택을 짓겠다고 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용산공원에 대통령실을 옮기겠다고 했다. 첫 국가도시공원인 용산공원의 ‘국가’는 국민이 함께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용산공원의 긴 계획 과정 속에 300명의 국민참여단은 오랜 숙의를 거쳐 7개의 제안을 내놓았는데, 그 중 일곱 번째가 “국민 참여 과정이 역사가 되는 공원”이다. 큰 울림을 주는 제안이었다. 국민 참여가 역사의 일부가 되는 국민과 국가의 관계는 요원해 보인다. 헌법에서 그리는 국가의 표상과 현실에서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이 멀어지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하다.
프란츠 카프카의 “법 앞에서”라는 짧은 단편이 있다. ‘법’이라는 문을 지키는 험악한 문지기가 있는데, 시골에서 올라온 주인공이 문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아직 안된다며 막아선다. 만약 이 문을 통과하더라도 더 험악한 문지기가 계속 나올 거라고 협박한다. 주인공은 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이제는 들어갈 수 있냐는 질문을 반복하고 문지기는 아직 안된다는 대답으로 늘 저지한다. 주인공은 이제 늙고 쇠약하여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다른 질문을 해본다. 왜 이 오랜 시간 동안 나 말고 문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없었는가. 이 문은 오직 너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며 문지기는 죽어가는 주인공 앞에서 문을 닫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문지기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앉아서 늙고 병들어 갈까. 문 속으로 첫발을 내딛는 것은 우리, 국민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오늘,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낀 하루였다면 헌법을 읽어보면 어떨까. 현실은 비루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확인받는 뜻밖의 위안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니.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참고문헌
- 기민도, “국감서도 지적된 ‘기후소송’ 지연…헌재 “늦지 않게 결정”, 한겨레, 2023.10.16.
- 유엔환경계획(UNEP), 「글로벌 기후소송 보고서: 2023년 현황(Global Climate Litigation Report: 2023 Status Review)」
- 국가인권위원회는 2023년 8월 21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관련, 제8조 제1항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은 기후변화로 인해 침해되는 현재세대와 미래세대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에 위반되고, 「대한민국 헌법」의 포괄 위임금지 원칙, 의회유보의 원칙 및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위헌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 보도자료, “정부는 기후위기로부터 현재세대와 미래세대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조치 취해야”, 2023.08.23
-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2022) 『지금 다시, 헌법』, 노르웨이숲
김아연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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