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석환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지난해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15차 UN 생물다양성협약당사국총회에서 제시된 지구 미래의 비전은 ‘자연과 조화되는 삶(Living in harmony with nature)’이다. 이 비전의 달성을 위해 196개 당사국은 2050년까지 달성해야 할 4가지 지표와 2030년까지 실천할 23가지 실천목표(Post-2020 GBF; Global Biodiversity Framework)를 채택하였다.
2030년의 마지막 날까지는 앞으로 8년이 채 남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달성해야 할 목표 중 핵심은 단연 보호지역의 확대와 훼손된 지역의 복원이다. 자연지역의 보호를 위해서는 육역과 해역 각각 최소 30% 이상을 효과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한 공간(보호지역)으로 설정하며(Target 3), 훼손된 육역과 해역 생태계의 최소 30%이상을 효과적으로 복원한다(Target 2)고 결의한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단순히 보호지역과 훼손지복원지역의 면적비율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고, 보호 및 복원해야 할 우선지역을 구체적으로 추가했다는 데에서 과거의 오류를 조정한 대목이다. 참고로 2010년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당사국총회에서는 2020년까지 육역 17%, 해역 10% 이상으로의 보호지역 확대와, 훼손지의 15% 복원을 결의했었다(Target 11, 15).
지금부터는 보호해야 할 지역의 확대가 단순히 쓸모없는 땅이 아니라, 생태적 온전성이 높은 지역을 우선적으로 포함해야 하며, 특히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기능 및 서비스에 중요한 지역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복원해야 할 지역은 생물다양성, 생태계 기능 및 서비스, 생태적 온전성과 연결성을 강화하기 위한 지역으로 선정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태적 온전성이 유지되는 지역을 포함하여 중요하게 생물다양성이 높은 지역의 손실을 0에 가깝게 만들자(Target 1)는 내용을 결의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목표들을 차질 없이 달성하기 위해 정책이나 규정, 계획 및 개발과정, 환경영향평가, 중앙·지방정부 및 모든 부문의 국가재정에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의 다양한 가치가 보호될 수 있도록 완전히 통합시켜야 하며, 특히 생물다양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모든 관련 활동과 재정을 협약에서 결의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집행해야 한다(Target 14)고 결의하였다. 어려운 말 같지만, 핵심 요점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생태적으로 중요한 모든 지역을 보호지역(Protected Areas)으로 지정해야 하며, 보호지역으로의 지정이 어려울 경우 해당 지역이 보호지역과 같은 강도로 보호되는 곳으로 인정되도록 해야 한다(기타 효과적인 보전방법에 의해서, OECM: Other Effective Area-based Conservation Measures). 또한 중요지역 중 훼손된 지역을 복원하고, 국가의 모든 정책과 예산이 생물다양성 보전을 전제로 계획·집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지난 2010년 결의하여, 2020년까지 달성하려 목표했던 기준치가 육역 17%, 해역 10%의 보호지역 지정과 15%의 훼손지 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수치임에 분명하고 모든 국가가 훨씬 큰 도전적 과제에 직면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도전적 과제의 이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국가의 모든 예산과 정책집행에 있어 생물다양성을 훼손하거나 침해할 우려가 없는가를 무엇보다 우선하여 검토해야만 하는 『Target 14』의 적용이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훼손’ 문제를 인류가 직면할(아니 이미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2030년과 2050년의 미래방향을 결정하는 회의에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제15차 총회에 참석한 사람은 환경부장관도, 차관도 아닌 자연보전국장이었다. 우리가 지구적 환경문제를 인식하는 중요성의 정도가 어떤지 가늠할 수 있는 조처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했던 환경부 자연보전국장은 회의에서 채택된 프레임워크에 대해 “전 세계가 생물다양성 손실을 막기 위해 야심찬 목표를 갖고 전략적이며 혁신적인 실천을 하도록 하는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라 평가하였다. 국가를 대표하여 참석한 그의 말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얼마 전 국제사회와 함께 결의한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의 전략을 ‘혁신적으로 실천’할 의지가 있을까?
‘자연과 조화되는 삶’이라는 목표로 한 12월의 전 세계 결의내용이 우리 국민에 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며, 몬트리올 참가단의 시차조차 적응되지 않았을 지난 1월 31일, 환경부 자연보전국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있는 환경부의 국립공원위원회가 개최되었다. 그런데, 이 회의에서는 ‘야심찬 목표’나 ‘혁신적 실천’과는 도저히 연결고리조차 찾을 수 없는, 괴이하다 할 수밖에 없는 안이 상정·통과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보호지역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는 차치하고 국제적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으로 인해 ‘핵심생물서식처지역(Key Biodiversity Areas)’으로 인정받고 있어 이미 국가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가장 강도 높은 보호지역 중 하나인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흑산도 일부를 국립공원에서 해제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생태적으로 우수하여 지정한 ‘국립공원’의 해제목적은 단지 영구적 훼손을 유발하여 생물다양성을 초토화시키는 ‘공항’을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또 하나의 결정적 사건이 지난 2월 27일 결정되었다. 국가지정 멸종위기Ⅰ급 생물종의 핵심서식처이면서, 우리나라 0.1%나 될까 한 원시림지역이며, 국가핵심생태축의 중심에 있고, 우리나라의 모든 강력한 자연보호법률에 의해 보호되는 설악산에 케이블카 건설이 환경부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한 것이다.
역사에 없던, 이 두 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 모든 보호지역은 개발가능한 공간으로 변질되었다. 모든 지자체장은 개발예정지를 대체할 쓸모없는 부지를 확보하여 보호지역 해제를 요청하면 되고, 그 어떤 중요한 지역이라도 개발계획을 수립하여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설악산 정상부보다 생태적으로 더 우수한 지역이 어디 있겠나?
생물다양성협약 총회가 끝난 시점, 우리는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결의한, 보전과 복원을 핵심가치로 두는 ‘프레임워크의 이행방안’ 논의가 아닌, 핵심생물서식처지역의 보호지역 해제(흑산도)와 우리나라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온전한 생태계이자 멸종위기생물종 핵심 서식처의 영구 훼손(설악산 오색케이블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결의안 이행을 위해 맨 앞에서 노력해야 할 환경부가 거꾸로 훼손에 앞장서서 말이다. 그것도 대한민국 역사에서 듣도 보도 못한, 절차적 정당성이 완전히 무너진 해괴한 논리와 방법으로 말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생물다양성을 위한 국토의 ‘효과적 보전’ 시스템은 위 두 사건으로 인해 모두 사라졌다.
환경부는 스스로 정의한 국제사회의 ‘매우 의미있는 진전’을 스스로 헌신짝 버리듯 했다. 이제 우리는 다른 195개국에 어떤 변명을 할까?
Post 2020, 결의안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 우리의 생물다양성 시계는 거꾸로 간다.



홍석환 /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