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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4. 길들이 춤추는 서울숲 하릴 없이 걸으며 사색과 풍경을 즐기는 도시민은 얼마나 될까? 우리 도시가 그런 도시인지는 차치하고, 숨쉬기 바쁘게 걸어야 하는 출근길도 제외하고 부족한 운동을 만회하기 위해 식사 후 하는 잠깐의 걷기 정도가 우리시대 산책의 대부분이 아닐까 싶다. 특별히 시간 내고 돈 들여야 하는 걷기 말고, 우리시대 일상적 산책은 어떤 의미일까? 산책이라고 함은? 먼저 노래를 들어 보자. “산책이라고 함은 정해진 목적 없이 얽매인 데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갈 것. 누굴 만난다든지 어딜 들른다든지 별렀던 일 없이 줄을 끌러 놓고 가야만 하는 것. …(중략)… 인생에 속은 채 인생을 속인 채 계절의 힘에 놀란 채 밤낮도 잊은 채 지갑도 잊은 채 짝 안 맞는 양말로 산책길을 떠남에 으뜸가는 순간은 멋진 책을 읽다 맨 끝장을 덮는 그때. 이를테면 “봉별기”의 마지막 장처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心情)에 불 질러 버려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_ ‘속아도 꿈결’, 계피 노래, 정바비 작사/작곡, 「가을방학 1집」(2010년) 중 “속아도 산책~ 속여도 산책~”이라 해볼까, “그늘진 심정”을 ‘그늘진 심장’이라 들어도 좋을 설명이다. 노래처럼 ‘산책’은 집중하던 일상의 마침점이자 시작점이고 누구나 아무에게나 저마다의 의미를 주는 다양성과 변화의 가치도 있다. 그러니 산책은 다단한 일상 언제든, 어디에서든 가능해야 하지만 그런 여건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럴 공간이 여기저기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선언하듯 말하자면, 삶에서 “산책을 빼버린 도시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 건강하지 못한 도시는 산책이 없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산책이 없는 도시는 불행하다, 산책할 수 없는 도시는 나쁘다. 너무 직설적인지 모르겠으나, 산책을 대표하는 도시 공간은 공원이다. 사회문화적 변화가 대형 몰과 마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었다고는 하여도 나이를 막론하고 산책은 이왕이면 좋은 풍경과 느낌 있는 발걸음을 부르는 곳이어야 가능하다. 공원은 그럴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다. 기능적으로 보자면 산책은 기분 전환에 업무 효율 상승에 휴식과 치유에 모두 좋다. 도시에서 그것은 공장과 마트에 모아두고 매일 아침 전달되는 녹즙처럼 배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품질(실효성)을 생각하는 산책이라면 인위적으로 통제된 그것은 의미 없기까지 하다. 아무리 실외 공기 오염이 심해도 실내 환기가 필수인 것처럼 산책은 뭔가 다른 차별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보자면 이렇다. 산책은 먼저 땅과 함께 걷는 길을 말한다. 흙길과 풀길 없는 산책은 그대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굳건한 포장로를 무릎 아프게 오래 걷는 일은 산책길이 아니다. 운동이거나 작업이거나 어쨌든 하기 싫은 무리한 행위인 것이다. 땅을 즐기며 걷는 것은 자연과 이 지구와 내가 하나임을 실감하는 일이며 산책은 그것 자체이기도 하다. 요즈음 많은 푹신한 우레탄 포장길은 그런 점에서 적당한 산책길이 아니다. 그저 차선이자 대안일 뿐. 산책은 또 계절을 느끼며 걷는 길이다. 인위적 환경에서 통제된 생활을 이어가는 우리들 대부분이지만, 어쩌면 일기예보조차 시답잖게 여기며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날들이지만, 잠깐의 산책은 해와 달이 바뀌고 습기와 햇볕이 바뀌는 지구의 시간을 직접 체감하는 길이다. 세월의 변화를 직접 직면하는 강제적인 감상의 기회이기도 하다. 작게는 적당한 복장이나 우산 챙기기 등 실용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크게는 미세먼지나 지구환경 변화를 생각하며 분리수거를 추동하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공기의 맛만으로 날씨를 점치던 우리의 본성을 되찾는 걸음이기도 하다. 최근의 산책은 이웃과 공동체를 즐기며 걷는 길이 되기도 한다. 혼자 사는 도시가 아니라 함께 살며 어울리는 도시로 변모하며 확대되는 우리 일상을 만나볼 수 있는 길이다. 여기에는 정원문화가 널리 공유되면서 확산되고 있는 이웃과 즐기는 도시, 함께 가꾸고 나누는 도시라는 새로운 공동체성이 깔려 있다. 이쯤 되면 개인적인 산책을 사회적인 산책으로 진화시켜 준다. 다시 말해 어울려 사는 나와 우리를 드러내주는 발걸음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책은 나를 돌보며 몸을 느끼는 길이다, 감각의 행위이다. 자연에 반응하는 나를, 내 몸을 우리는 쉽게 접하지 못한다. 몸은 이미 인공물로 둘러싸여 알레르기처럼 이상 반응이 나타나기 전에는 매일 샤워하며 보는 내 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몸은 의사 선생님들이 훨씬 더 잘 알고 분석해준다. 산책은 그런 내 몸이 내 것이자 나임을 알게 해준다. 꽃향기, 강한 햇볕, 소음과 냄새 등 나만의 감각을 시험하게 한다. 때로는 이런 느낌이 있었나? 몰랐던 감각을 일깨워주는 놀라운 체현의 길이기도 하다. 병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나를 생각이 아니라 몸(육체)으로 먼저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글자로 치환되지 않는 나의 구석구석을 일깨우는 길이 된다. 우리시대의 이런 산책 경험은 다시 말하지만 공원에서 대표적이다. 그 중 서울숲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잘 만들어진 공원이다. 현대 공원은 산책을 기본 유전자로 삼는다. 버큰헤드파크가 센트럴파크가 그랬던 이유 때문이다. 산책 때문에 공원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숲은 그런데 더욱 특화된 공원이다. 공원의 원래 터는 논란과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런 대규모의 터는 여러 갈래와 여러 연결이 가능한 터의 본성을 강하게 보여준다. 공원의 유전자는 도시 건물숲의 정돈된 걷기에서 발걸음을 해방해주는 알고리즘을 가진다. 조경가는 그것을 잘 해석할 의무가 있다. 서울숲은 그런 땅과 공원의 유전자 번역을 거친 장소인 것이다. 길이 많은 공원은 최근 한국의 정원문화, 공원문화의 선두 주자들과 이들을 지원하고 이들과 함께하는 봉사자들의 전당처럼 성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언제나 다채롭고 활기 있으며 변화가 잉태되고 있는 공원으로서도 중요하다. 물론 한계는 있다. 개발 여건 변화에 따라 공원의 특성이 주변으로 확장되지 못한 것은 가장 먼저 지적되어야 한다. 공원이 욕심의 공간이 되어버린 듯 한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한 번은 겪어야 할 몸살인지도 모르겠다. 좀 길게 가는 몸살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서울숲이 여전히 여러 산책의 모습들을 너무도 쉽게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집안에만 있지 말고 어서 한 번 산책해볼 일이라는 듯 길과 걸음이 공원에 가득하다, 발밑이 무엇이었을지 상상을 접어둔 채로. 꼭 공원에서만 산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원이 어디에든 주변에 많거나 배달이 되는 것도 아니므로 서울숲 마냥 쾌적한 산책길은 사실 많지 않다. 최상은 아니더라도 안전에 유념치 않고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책길이 많은 것은 우리 도시만의 자랑이라고 할 만하다. 더욱 다행인 것은 우리 도시는 대부분 차량이나 장애물 정도에 유념하는 정도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도시라는 점이다. 필요한 것은 산책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뿐이다. “걷기는 ‘나’라는 존재의 시간과 공간에 차분하게 다시 매력을 불어넣는 방법으로 일단 집에서 나와 삶에 대한 의욕을 흐리는 구태의연한 습관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_ 다비드 르 브르통 저, 문신원 역, 『느리게 걷는 즐거움』, 북라이프, 2014, p.9.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처럼 강제로 사색에 잠기게 되는 길은 사실 산책에 적합하지 않다. 뭉크가 보여준 오슬로의 에케베르크 언덕(Ekeberg Park)처럼 강렬하게 나를 공포에 떨게 하는 길도 좋지 않다. 산책을 마치 중노동인 양 의무처럼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주변 풍광이 아무리 자연스러운 사색과 감성을 부른다하더라도 그것은 잠깐의 관광에 지나지 않는다. 풍경으로부터 나를 떼어놓기 때문이다. 일상의 산책이 그런 모습이라면 곤란하다. 우리의 뇌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을 구분하지 않는 정보처리 기능을 기본으로 한다. 디지털 시대의 우리가 상시적 주의력 결핍에 시달리며 하이퍼텍스트를 뛰어 다니는 것도 그런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산책은 직접 경험에 더 초점을 두며 산만해진 머리를 보완해 준다. 도시에서 공원이 필수적인 이유 한 가지는 거기에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사색 없는 시대가 산책 없는 일상”과 연관되고 “산책 없는 도시가 사색 없는 시대를 낳는다.”고까지 말할 수 있게 된다. 서울숲은 그런 풍경을 체험하게 한다. 공원이 아름다운 이유는 길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은 공원 안에만 있지 않다. 안팎이 경계를 드나드는 녹색의 풍경과 그 사잇길로 연결된다. 동적 경관(Landscape Sequence), 연속 경관(Sequencial Landscape)은 생각과 행동을 풍부하게 한다. 공원에 펼쳐진 물리적인 길은 결국 마음과 진로로 확장되는 것이다. 서울숲은 그런 새로운 마음의 길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다른 어떤 공원보다도 다양하다. 각자의 새로운 길이 그렇게 생성되는 공원인 것! Park 03. 길들이 춤추는 공원들, “도시의 공공공간과 공유 가치” 나무 심는 일만이 조경의 업(業)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의아해 할 사람이 많이 줄어든 시대를 지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조경에 대한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는 21세기를 지나고 있다. 역사적 전통까지 생각한 조경의 의미와 역할을 의문 없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시대를 바라는 것이 무리는 아닐 터, 작은 노력이지만 조경의 본래적 의미를 한 번 쯤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싶다. 이것이 쌓여 편견이 걷히고 모두가 도시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조경(造景, landscape architecture)은 전문분야(profession)이자 학문(scholarship)으로서 성장한 엄연한 도시 관련 대표 분야이다. 지난 시대 개발의 필요는 조경을 산림사업의 하나쯤으로 여기게 만들었다지만 이제부터라도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것이 지향하는 본래 역할을 공유하는 것이 오해를 줄이는데 중요하다. 따라서 다음의 긴 이야기는 비록 금방 잊어버릴지라도 일독을 권장한다. 조경은 기본적으로 삶의 터를 다룬다. 터를 닦고 길을 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연과 환경을 보전하고 인간과 생태를 보호하는 넓은 의미의 직업적 소명도 가진다. 생명과 지구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한 직업윤리가 필요한 분야이고 그저 나무 심고 녹색 공간을 풍부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최적의 기술과 최선의 철학이 기본인 분야이기도 하다. 이 점까지 여기서 다룰 수는 없고 우선 우리는 도시의 공원으로 맛볼 수 있는 조경의 역할을 기본적인 것 몇 가지로 되짚어보도록 하자. 1.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에 대한 올바른 이해 도시에서 조경의 역할은 전방위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조경은 오해가 많은 분야다. 몇 가지 오해를 이해로 바꾸어야 정원일(gardening)을 실천하는 우리의 시선도 풍경을 바라보는 그것처럼 여유로워질 수 있다. 우선 먼저 우리는 경관과 조경의 관계를 아래 그림과 같이 체계적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관을 어떤 측면에서 접근하여 다루느냐가 조경인 것이다. 바로 보는 ‘조경’ 일반적으로 조경(造景, Landscape Architecture)은 나무만을 다루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조경은 전문적으로 구조물을 제외한 모든 경관을 다룬다. 즉 조경은 ‘경관(景)을 만드는/다루는 행위(造)’인 것이다. 조경이 경관을 다루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고 건물 주변에 나무심어 환경을 치장하는 것으로만 이해되기 때문에 조경하면 다음과 같은 오해를 만나는 경우가 많다. ① 돈이 많이 있어야 한다? 아니다! 비용을 적게 들이고도 누구나 할 수 있다. 화초 하나만으로도 경관이 살아나곤 한다. ② 나무만 심으면 된다? 아니다! 조경은 경관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경관, 즉 풍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③ 보기에 화려한 것이 좋다? 아니다! 그림 같은 풍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알록달록 화려하다고 좋은 그림은 아니다. ④ 비싸고 귀한 나무가 많아야 한다? 아니다! 장소에 맞게 나무가 쓰여야 한다. 경관에 맞는 다양한 식물 소재가 얼마든지 있다. ⑤ 뭔가 범접 못할 신비하고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아니다! 조경은 장소에 담긴 삶의 예술이다. 소소한 일상만으로도 예술이 된다. ⑥ 도시와 농촌이 다르다? 아니다! 누구나 어디서나 조경은 가능하다. 작은 실내정원에서부터 옥상정원, 하천, 산지 등 어디에도 가능하다. ⑦ 정원과 공원이 다르다? 아니다! 자연을 대하는 방식과 자연을 제공하는 방식이 다를 뿐, 자연을 즐기고자 하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같다. 조경을 정의에서부터 살펴보자면, “자연경관과 인공환경을 연구하고 계획, 설계, 관리하는 등의 분야로서 예술적, 과학적 원리를 적용하는 분야”로 되어 있다. 건축, 토목과 같은 구조물을 다루는 분야가 아니라 그 구조물 외부의 공간 또는 외부 경관을 계획하고 설계하고 시공하는 것이 핵심을 이룬다. 조경을 할 때에는 구조물의 주변 경관을 살펴 거기에 맞는 풍경을 만들게 되는데, 대체로 개인 정원이나 공동주택의 정원, 도시공원과 녹지, 문화재, 위락 및 관광시설, 생물 서식환경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개발 개념과 함께 생태적 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어 이와 관련된 생태공원 조성, 생태통로 조성, 하천 복원, 옥상 정원, 벽면 녹화 등이 활발하게 연구되기도 한다. 시민 참여와 장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면서 이에 대한 연구와 실천 사례도 많으며, GIS, RS, AI 등 첨단 기술을 응용한 연구도 활발하다.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환경계획, 농촌시설계획, 녹색관광, 농촌 어메니티 발굴 등 지역 활성화를 위한 연구와 실천도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인공물뿐만 아니라 자연 그대로에도 복원이나 보존의 시각에서 접근한다는 점에서 개발을 기초로 하는 건축이나 도시, 토목 등의 접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야이다. 또 살아있는 것과 구조물을 동시에 다루어 생태와 문화의 접목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굉장히 폭넓은 분야에 걸쳐 경관을 조성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좋은 조경의 조건 조경이란 이처럼 건축물/구조물의 외부 경관을 다루는데, 그저 이러한 경관을 다루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생물 모두가 즐길만한 경관,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자 하는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경관을 애써 만들었는데 오히려 전보다 못하다면 그것은 잘된 조경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조경이란 아름답다는 가치가 가미된 경관 만들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름다움의 기준은 하나가 아니어서 조경으로 만든 경관이 객관적인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경가의 역할이 중요하고, 경관을 조성하는 사람의 미적 감각과 꾸준한 관심이 중요해진다. 최근에는 아름다움을 보는 시각이 예전과는 다르게 인식되고 있는데, 이는 그저 눈에 보기에 좋은 것만이 아름답다고 보았던 과거의 태도를 벗어나게 되면서부터이다. 여기서 신경 써서 즐기고자 하는 경관은 풍경이라고 달리 부를 수 있는데, 누군가에 의해서 해석되고 감상되어야만 경관은 풍경이 되어 좋은 조경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조경에서 말하는 경관이란 무엇일까. 경관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환경적 요소들 모두를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보니 사람 손이 많이 가지 않은 하천과 산지 같은 자연경관, 도로와 건물 같은 문화경관 등으로 경관이 세분되기도 한다. 경관은 본래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요소들이 너무 많으면 복잡하고 너무 적으면 단조로워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좋은 조경은 경관 요소의 많고 적음을 잘 조절하고 그것을 얼마나 잘 배치하느냐가 관건을 이룬다.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몇 가지 좋은 조경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주변과 조화를 이룬 조경이어야 한다: 조경을 하고자 할 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주변의 경관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너무 튀거나 너무 왜소한 조경은 좋지 않다. 적절한 조화는 경관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와 어울리는 경관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② 만들어진 경관에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조경이 이루어진 경관은 전체적으로 통일된 느낌이 있어야 한다. 하나의 분위기 또는 풍경으로 다양한 경관 요소들이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형태나 색상, 질감 등 시각적 요소의 통일된 구성은 경관에 질서와 비례, 균형의 느낌을 주게 된다. ③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경관이어야 한다: 너무 단조로운 경관은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몇 가지 강조가 되는 경관 요소는 자칫 침체되기 쉬운 풍경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다양성이 있는 경관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다양한 경관은 좋지 않다. 복잡한 경관이 되어 오히려 통일성을 깨트리고 어수선한 경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통일과 다양은 그래서 핵심을 이루며 그 균형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조경가란 나름의 개성적 감각으로 자신만의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는 조경전문가(조경가)를 말한다. ④ 일상 활동이 함께여야 한다: 생활과 함께하는 조경은 자연과 함께하는 것과 같다. 콘크리트 도시 속에서 녹색의 자연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실내에 있는 화분 하나만으로도 자연과 자연의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다. 손쉽게 접할 수 있고 큰 노력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⑤ 의미가 있는 조경이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경관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그저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외부 경관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 수 있지만, 왠지 그것만으로는 풍경이 주는 맛이 오래 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조경 공간이라 하더라도 의미와 체험이 있는 장소가 되도록 여러 가지 노력과 이야기가 담기는 것이 좋다. 장소성을 고려하는 것은 그러므로 기본이 된다. 조경 공간의 구분 조경 공간의 구분은 몇 가지의 기능적 특성에 따라 이루어진다. 요구되는 기능에 맞는 공간적 순서와 재료가 사용되도록 하는 것도 기본이다. 다음의 설명은 일반적인 조경공간에 대한 설명이지만 이를 참조하여 조경을 이해하고 정원의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좋은 조경이 될 것이다. ① 진입공간(진입로, 주/부출입구, 정문, 후문 등): 조경공간에는 어디에나 진입공간이 있다. 주진입과 부진입으로 나뉘어 진입의 위계가 설정되기도 하고 공간이 작은 경우 하나의 진입공간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도 한다. 진입공간에는 대부분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경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그늘을 주는 나무를 심거나 작은 화단을 만드는 등 조경이 필요하다. 특히 진입로가 길게 만들어지는 경우 차량에 방해가 되지 않게 가로수를 심어 진입로부터 인상을 살릴 필요가 있다. 간판이나 시설물을 두되 디자인이 가미된 형태로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쉽게 해결이 어려운 경우 초점이 될 수목을 두어 좋은 경관으로 살리는 것도 방법이다. ② 작업공간(논밭, 마당, 비닐하우스(온실), 휴게장소 등): 작업공간은 주로 마당과 작업공간, 창고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주요 동선이 여기를 중심으로 뻗어나간다. 작업을 항상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한 조경은 어렵다. 그렇더라도 건물 옆면이라든지 창고 뒤편 공간, 군데군데 있는 휴게장소 등에는 나무뿐만 아니라 몇 가지 조경 시설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작업하다가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주변의 어수선한 경관을 차분하게 정리해주는 역할도 조경을 통해 바랄 수 있다. ③ 생활공간(주택, 공동시설, 가로, 주차장 등):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정돈된 경관이 만들어지는 것이 좋은데, 여기서 더 나아가 보다 신경을 쓴 조경으로 지역성을 살릴 필요가 있다. 주목할 만한 꽃나무를 심거나 사계절을 고려한 화단을 두는 등 보다 적극적인 조경 식재가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세심한 풍경을 만들어 저마다의 조경공간을 대표하는 경관으로 삼는 것도 좋다. 그렇다고 너무 화려한 꽃치장은 지양하자. ④ 경계공간(경계부, 공간별 교차부분, 외부경관): 도심의 조경공간은 대체로 넓은 면적이 아니고 개방되지 않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폐쇄적인 구성이 많다. 그러나 기능적 문제를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면 가급적 개방적 경관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이는 내부의 경관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주변에 보일 아름다움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변 마을로부터의 근중원의 조망점과 조망 경관을 고려한 조경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⑤ 공유공간(실외 공간, 오픈스페이스, 공원, 공개공지 등):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공적인 도시 공간으로 공공성이 우선된다. 이용 행태와 안전성 등 고려할 사항이 많지만 잘 가꾸고 디자인된 공유공간은 도시의 가치를 높여주고 거주민의 자부심을 형성하게 한다. 다만 수많은 제약과 요청으로 인해 쉬운 의사결정이 어려운 공간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거시적, 미시적 방법론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⑥ 기타 공간(하천, 비오톱, 산지, 옥상, 벽면 등): 도시에는 많은 실외 공간이 형성되며, 최근에는 생태계를 별도로 고려한 공간 구분과 조경 도입이 기본으로 여겨진다. 정형화되기 어려운 공간이지만 도시 서비스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할 때 놓치지 않아야 할 부분이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여러 문제들을 접근하는 단초로서 이러한 공간들에 대한 별도의 접근과 이론, 이해가 필요하다. 조경식재의 기능 구분 조경에서 수목을 사용하여 경관을 조성할 때에는 각 공간별 이용 특성과 수목별 경관 특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위치와 크기로 수목을 배치해야 한다. 정원의 경우 작업 공간과 생활공간, 야적 및 창고 공간 등으로 공간 구성과 동선 구성이 이루어지므로 여기에 맞게 식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경식재의 기능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식재 기능을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정원에서의 식재 기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이렇게 나누어진 식재 기능은 각 공간별로 적절히 배치하고 이에 따라 수종을 선택하도록 한다. ① 차폐식재: 차폐식재는 시각적으로 부정적인 요인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좋지 않은 경관을 수목을 통해 적절히 가리고 내부의 쓰레기장 같은 혐오시설을 차단하도록 식재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에는 수목을 밀식하여 시각적으로나 경관적으로 차단이 가능한 측백나무류, 사철나무, 쥐똥나무 등이 사용되며, 완전하게 가리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는 수고가 높은 메타세쿼이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② 동선유도식재: 차량 및 보행을 유도하기 위한 식재를 말하는데 주로 외곽 진입로와 순환형 작업로 등이 해당한다. 도심에서는 가로수가 이에 해당하며 보행자나 자전거, 자동차 이동을 유도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작은 텃밭이나 정원에는 별도로 가로수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는 없지만 규모가 크고 동선이 분명하게 구별되는 경우 은행나무, 느티나무 같은 녹음수를 열식하여 터널식의 가로식재를 할 필요가 있는데, 가로수 식재만으로도 훌륭한 조경이 되기 때문이다. ③ 초점식재: 식재를 통해 시선을 한 곳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하며 방향성을 주는 식재 기법이다. 길이 만나거나 건물 앞마당 부분 등 시각적으로 초점이 되는 위치에 포인트가 되는 나무를 심어 경관을 살리는 경우이다. 보통 조형성이 높은 수종을 식재하여 공간의 개성을 나타내므로 고가의 수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조형 향나무, 조형 소나무 등 고가의 나무도 좋지만 그보다는 경관에 맞는 느티나무, 섬잣나무, 모과나무, 목련, 단풍나무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사용하면 경제적이다. ④ 경관식재: 중요한 경관을 부각시키거나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기 위해 식재하는 경우로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핵심이다.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데 식재의 목적이 있으므로,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볼륨으로 수목이 위치하도록 한다. 군식이 필요한 곳과 단독목으로 경관이 강조되는 경우를 구분하여 식재한다. 계수나무, 자귀나무, 목련 등 고급스럽고 화려한 수종은 단독 또는 소수로 경관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녹음이 푸르게 형성되어야 하는 곳에는 어떤 수종이든 구하기 쉬운 수목을 군집 형태로 사용한다. 철쭉, 회양목 등 관목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⑤ 경계식재: 공간을 기능별로 구분하고 분리해 주는 역할을 하며, 영역을 설정해 주는 식재를 말한다. 철재 또는 목재 울타리로 경계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가급적 강한 인공 시설로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시설물로 경계를 구분해야 하는 경우 경관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수목을 추가로 식재하는 것이 좋다. 특히 외부에서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경관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효과적이며, 차폐의 기능과 동선유도의 기능을 동시에 하도록 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2. 우리 시대 도시와 조경의 방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라!” 현대 정원문화, 공원문화는 변화를 맞고 있는데 호사취미가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자연이자 공동의 일상 활동으로 전환되고 있다. 여기에 이전부터 그래왔듯 외부의 도움을 바랄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도시 풍경을 개선하려는 각자가 주인공이라는 성찰과 그런 주인공들의 교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사는 도시 공간 및 환경 그 자체를 미적 장(the aesthetic field)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깔려 있으며, 이를 통해 도시의 여러 주인공들(urban actors)이 미적 감성(the Aesthetics)을 소통하려는 욕구가 확산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제 도시의 일상 환경이 하나의 정원으로 인식됨을 잊지 않아야 한다. 현대 정원문화는 이미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모르는 새 우리의 정원과 정원문화가 이미 “의생어중(義生於衆), 심생어원(心生於園)”의 그것을 찾아 움직이고 있음을 성찰할 때가 되었다. 언제나 정원은 생각과 소통의 마당이자 모든 정원사의 스승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새로운 공원문화도 그 갈피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은 우리 도시를 경관이 아니라 풍경으로 보려는 태도에 있다. 물리적 외부 요소로서의 경관이 아니라 감성과 느낌의 내외부 요인으로서의 풍경을 그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다. 풍경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흔하게 쓰인다. 그것은 물리적인 경우도 그렇고 사유나 문화와 같이 개념적인 경우도 그렇다. 다시 말해 실체가 있는 풍경도, 그렇지 않은 풍경도 우리는 흔히 사용한다. 생각해보면 풍경이란 말(개념)은 그 위치나 내용을 고정하기가 어려운데, 그러면서도 우리 사이에서 쉽게 통용되니 뭔가 특별한 지위를 가진 것에는 틀림없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나’로부터 시작되는 풍경, ‘경관’으로부터 시작되는 풍경에 대해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경계와 대화하기; 발견하는 풍경과 설정하는 풍경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의 위력을 쉽게 체감하지 못하고 인공의 환경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도시로 경계 지어진 행동의 반경이 일상의 반경이기도 한 것은 대부분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삶이 무르익으면 우리는 대부분 전원을 찾아 조금은 덜 인공적일 것 같은 환경으로 삶의 자리를 옮기곤 한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이런 세태에도 변화가 있어 기존의 밀집된 도시에서도 경계 없이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자연과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인공의 경계 속에서 하나둘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정원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문화는 가히 정원의 원형을 제4의 본질로 생활기반의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이라고까지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시대의 변화이고 문화의 전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변화는 뭔가 다른 경지를 우리에게 성찰하도록 요청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공동사회와 이익사회의 중간쯤에 놓인 우리의 생활문화가 새로운 첨단을 시험하는 첫 관문에 들어선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고, 핵심은 동서양 자연관의 차이에서 이러한 성찰의 가치와 지평이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동양 자연관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점은 삶의 환경을 자연과 인공이라는 두 주인공만으로 압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자연과 인공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단순화(dualism)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자연과 사회라는 보다 포괄적인 경계설정이 그 본질로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절대법칙으로 자리하지 않고 생활문화 전반으로 그 실체를 분명하게 못 박지 않은 채 저변을 이루게 된다. 철학자의 말대로 ‘기우뚱한 균형’은 그렇게 삶의 기초로서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시작되는 풍경을 따져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로부터 담(생활환경) 너머, 자연(경관) 너머는 풍경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시 크게 두 가지 범주로 감흥의 소통을 담지하게 한다. 먼저, 발견하는 풍경은 내면적이고 참여미학적이다. 그것은 적극적인 참여(engagement)를 부르고 소통을 이끄는 방식이다. 다음, 설정하는 풍경은 외향적이다. 그것은 구축적 합리와 감성적 통리가 경관으로부터 피어나게 한다. 내면에 녹아있는 감성을 먼저 자극하는 풍경이 되게 하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는 자연과 대화하는 우리(인간, 사회)를 이끌며 물리적 실체가 아닌 감성적 실재로서 ‘우리시대 저마다의 풍경’을 시작되게 한다. 시퀀스적 풍경과 풍경적 시퀀스 풍경이란 결국 우리 주변의 ‘경계’들과 대화하는 한 방식이자 매체(channel)라고 할 수 있다. 대화는 동적이어서 흐름(flow & follow)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가 흔히 잊곤 하지만 풍경은 그렇게 고정된 풍경(그림)이 아니라 흐름을 내포한 담지체라고 할 수 있다. 흐름으로 보는 풍경은 새로운 생각과 이론을 불러오는데 연결성(sequence)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 중요한 한 가지 방식이다. 그간 우리는 이 점을 심도 있게 다루지 못했다. 동적이라는 것은 그 만큼 앉혀놓고 판별하기 어려운 상황을 다루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딜 가든 주변(파노라믹 경관)을 먼저 살핀다. 상황(situation)을 파악하는 것은 자연에서든 사람 사이(사회)에서든 중요하다. 이것은 발견하는 풍경과 소통하는 풍경이 결국 ‘전체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주며 풍경을 보기 전에 전체(경관)를 먼저 살펴야(지나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지적해 준다. 여기서 전체는 부분들의 합 이상을 이루며, 풍경이 설정되는 것도 이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앞서 살핀 두 가지 풍경의 범주가 그런 전반적인 관계성과 연관됨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의 네 가지는 결론적으로 새로운 관점으로 정원을 통해 풍경을 진화시키고 있는 우리시대 풍경(개념)의 단면을 보여준다. ① 원로(園路): 담지적 풍경, 움직이는 주인공. 먼저 가있는 감성(viewpoint) 원로는 흔히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우리시대에 집중해서 살펴야 할 경관 및 풍경과 관련된 개념어이자 실행개념이다. 원로는 그 자체로 담지적 풍경들의 연속이며, 그러한 연속성의 구성(originality)은 감성을 옮겨가게 한다. 정원은(공원 포함) 이러한 원로들의 마당(field)이며 움직이는 이용자들에게 저마다의 연속성을 스스로 체험하게 한다. 풍경의 시퀀스는 그렇게 형성되며, 이것은 장소를 형성하는 기본이 된다. ② 차경(借景): 들고나는 관점. 우리시대 정원과 공원의 생산성(productivity) 담 너머 풍경은 주인공이 없이는 안으로 향할 수 없다. 차경이란 결국 주인공을 먼저 상정하는 방식인 것이다. 흔히 우리는 차경하면 일방적 끌어들임을 생각하기 쉽지만 소통과 교류가 없이는 이를 얘기하기 어렵다. 풍경은 그렇게 발생하는 결과중의 하나이자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관점을 고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경은 안팎을 동시에 고려하는 방식이다. 건물과 정원(공원)을 들고나게 하며 우리시대 차경은 풍경(과 관점)을 그렇게 들고나게 한다. 차경은 풍경의 역동성을 그렇게 자극하는 방식이다. ③ 의경(意景): 미리 담은 속마음. 생성적 자연과 생성적 자연관 자연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경관도 그렇다. 그러나 풍경이 되면서는 달라진다. 말(이야기)하기도 하고 말하게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말이 되지 않으면 풍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의경은 풍경이 가능할 때에야 나타난다. 의경은 그대로 생성적(Becoming) 방식이어서 말없는 자연을 말하게 하는 핵심이 된다. 풍경의 다음에서야 이루어지는 이것은 그런데 먼저 담긴 것, 미리 담은 것을 함의하기도 한다. 이분법을 벗어난 우리는 말이 없는 자연에 말을 담기도 말을 꺼내기도 하는 것은 그것이 풍경이 되면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④ 생활(生活): 멀지 않은 풍경, 일상에서 즐기는 생활기반(life-structure) 다시 말하지만 우리 도시는 우리 인류에게 처음인 환경이다. 처음인 생활이다. 그리고 처음인 풍경이 되고 있다. 본능적 가꾸기는 이런 환경에서 빛을 발하며 우리시대 삶터 변화와 진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살펴보면 자연을 즐기려는 여러 욕구의 방향들이 이미 여기저기에서 제각각인데, 그것들은 의미 없고 생각 없는 환경(자연)에 의지를 담아 즐기려는 새로운 생활양식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우리시대 경관이 인프라라면 풍경은 생활인프라로 성장하고 있다. 공원과 정원에 더한 생활기반으로서의 풍경은 새로운 주인공으로 주목받고 있다. 풍경은 그렇게 연속되거나 연속을 이끌거나, 불연속을 뛰어넘거나 하면서 존재한다. 경관이 풍경으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이러한 힘이 작용하지만 경관은 그것과 관계없다. 우리는 이제 우리 도시의 풍경이 그렇게 만들어져 왔음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우리 도시의 경관이 그러한 과정 없이 다루어져 왔음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런 자문도 가능하다. 변화하는 아름다움이 만들어놓은 우리시대의 경관에는 풍경이 있는가? 우리시대의 경관에는 시퀀스적 풍경이 있는가, 풍경적 시퀀스가 있는가? 생각의 아름다움화, 풍경의 예술화 우리는 흔히 잊지만 아름다움(개념)은 달라지고 변화한다. 시절에 따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아름다움이 이 지구를 가만두지 않기도 했다. 풍경은 그 위치가 내면이면서도 그 지향이 자연이이어서 달라지는 아름다움에 따라 우리의 내면을 움직이게도 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풍경 안팎의 문화적 본질이다. 그리고 흔히 잊는 또 하나는 그것의 바탕에 감각을 지원하는 생각(이해)이 흐른다는 점이다. 생각이 담긴 아름다움은 그런 점에서 예술을 지향하고 작품이 되고자 한다. 풍경이 하나의 작품처럼 소통을 기다리며 그림에 담길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풍경화는 그렇게 그 시절의 아름다움(생각)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이다. 작품이 되는 풍경은 그런 점에서 감성과 이성을 이끄는 원본성이 필요하다. 우리시대 정원이 문화가 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아름다움의 표현(풍경) 또한 이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생각과 원본성, 이것에 바탕하는 정원 속 풍경이라면 그 자체로 예술(정원예술)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시대, 우리에게 풍경에는 어떤 아름다움과 어떤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일까? 아니 먼저 그것을 담을 경관을 제대로 이해하고는 있는가? 풍경으로 역동칠 우리 삶터의 경관은 어떤 이론과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우리시대 경관이란 무엇인가? 풍경을 볼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많아져야 할 때이다. 3. 조경이 그리는 공동체 정원, “주민을 주인공으로!” 공동체 정원은 다양한 정원 유형 중의 하나이다. 중요한 점은 정원을 조성하고 유지관리하는데 그 주인공들이 부각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공동체 정원은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과 정원을 즐기며 유지관리 하는 과정 자체에 중점을 두는 참여형 정원 유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원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의 문제보다는 공동체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할 필요가 있고, 다양한 의사를 가진 주민들을 상대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를 리드할 수 있는 여러 수법과 리딩의 경험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참여하는 주민들의 정원 가꾸기 참여 정도 또는 열망에 따라 공동체 정원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참여하는 주민이 주인공이라는 점만을 충분히 주지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를 달성했다고 할 수도 있다. 농촌 지역에서의 경우 고령화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이러한 사업의 추진이 상당히 어려울 수 있지만, 이미 도시 지역의 경우 많은 연구와 실천 경험을 통해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를 획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변화하는 정원문화의 트렌드에 맞춰 공동체 정원을 장려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형식과 실행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충분히 습득하고 실행에 임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 정원의 개념과 새로운 의미 공동체 정원은 여러 형태로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으나 공동체(community)가 주인공이 되는 공공의 정원(public garden)이라고 기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기존의 정원이나 공원의 중간쯤에 놓이는 것으로, 실행하고 지원하는 방식이나 주체에 따라 그 범위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대체로 지역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꽃이나 식물을 좋아하고, 흙과 가까이 하는 것을 좋아하며, 도심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적인 활동공간을 확보하고,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텃밭이나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것”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커뮤니티 가든은 유럽의 경우 도심의 적절한 공간을 주민에게 분배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온 역사가 있으며 근현대로 넘어오면서는 정원문화의 확산과 함께 도시를 친환경적으로 재조정하는 역할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메리카의 경우 도시농사를 테마로 식량 생산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정책적으로 장려된 바 있으며 1970년대에 들어서야 문화 활동이자 시민운동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서구의 커뮤니티 가든은 지역마다 역사와 배경이 다르게 작용하여 현재의 모습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커뮤니티 가든의 효과가 “먹거리의 생산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식물의 체험, 협동작업과 자연물을 통한 힐링, 방치된 지역 공간 활용이나 교류가 없던 지역민 참여를 통한 지역 활성화, 인근 주민들의 매개체 역할을 통한 지역사회 재형성, 녹색의 친환경 마을 만들기, 재해나 범죄 대비를 위한 피난처” 등 식물의 직접적 생산과 육성의 측면 이외의 것들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공동체 정원은 ‘정원이라는 물리적 실체, 생산 활동이라는 결과’가 중심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교류와 문화적 창의성이라는 측면에서 그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업과 도시재생 사업, 다양한 주체간 파트너쉽 등에서 그 가치가 증대되고 있으며 새로운 유형과 진행 형식들도 나타나고 있다. 주민주도 정원 조성의 유의점 공동체 정원은 주민의 생활공간과 가깝다는 점에서 많은 장단점을 가진다. 주어진 대상지가 어떠하냐에 따라 운영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고 주민의 참여도와 정원 관련 지식의 정도에 따라 가변성이 크다. 그간의 연구에서 제시된 참고할 만한 공동체 정원의 대상공간은 다음 표와 같다. 그러나 도시 공간 중 공동체 활동이 가능한 옥외공간이라면 충분히 공동체 정원으로 활용을 고민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대상지에 대한 고민을 우선할 것이 아니라 정원을 어떻게 형성하고 운영해 갈 것인지를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상지의 윤곽이 어느 정도 정해지면 이에 참여할 주인공들을 찾고 지원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년회, 노인회, 부녀회, 주민자치회, 각종 시민단체, 환경단체 등” 기존 대상지와 관련하여 주민들이 자주 모이거나 모임이 가능한 기존 지역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공동체 정원의 취지와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주민 리더를 중심으로 주인공들을 찾아내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의 경우 행정에서 일종의 조력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으며 기존 도시재생 관련 활동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사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먼저 이루어진 후 실행에 나서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농림부에서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매뉴얼 또는 가이드라인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므로 행정 담당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발적으로 주민모임을 형성하여 행정의 도움 없이 공동체 정원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주민들도 있으니 이들을 리더로 육성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수원시의 경우 이러한 주민참여형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공동체 정원을 운영할 수 있는 주민 역량이 상당히 높아져 있는 경우로 유명하다. 어떤 정원을 만들 것인가 부터는 참여하는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상지를 선정하고 어떤 설계안을 마련하여 적용할지 가급적 주민 리더를 통해 결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기술적인 필요가 반드시 필요하게 되는데 이때 적합한 전문가의 도움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특히 공사 진행시 발생할 수 있는 전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주민이 먼저가 아니라 행정 담당자가 사전에 검토하고 확인하여 예방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주민은 어떤 상황에서도 전문가가 아님을 잊지 않아야 한다. 공동체 정원의 운영과 활용 공동체 정원은 지역 사정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다음의 네 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University of California, Division of Agriculture and Natural. “Community Gardens,” marinmg.ucanr.edu, Retrieved 2017-05-22.) 그러나 사실 이러한 유형은 개략적인 것으로 관점에 따라 더 많은 범주로 유형화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웃 정원(Neighborhood gardens)은 과일, 야채 및 관상용 식물을 재배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정원으로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가장 흔한 유형이다. 그것은 명목상 연회비로 지불하는 정원사들 개개인의 임대하는 개인 또는 공공 토지의 구획으로 식별 할 수 있다. · 거주민 정원(Residential Gardens)은 일반적으로 아파트 공동체, 보조 생활 및 저렴한 주택 단위의 주민들이 공유한다. 이 정원은 거주를 전제로 하는 주민들에 의해 조직되고 관리된다. · 단체 정원(Institutional Gardens)은 공공 기관 또는 사설 기관에 연계되며 주민에게 많은 유익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신적 또는 육체적 재활 및 치료뿐만 아니라 직업 관련 기술을 가르치는 것까지도 해당한다. · 시범 정원(Demonstration Gardens)은 교육 및 레크리에이션을 목적으로 사용된다. 짧은 세미나 또는 정원 가꾸기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제공하고 공동체 정원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은 운영의 중점을 어디에 두고 지원할 것인가와 관련되고 실제적인 실행의 중요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공동체 정원이 어느 하나의 유형으로 고착되지 않고 각 유형이 상보적으로 섞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각각 특징이나 방법이 다르므로 적합한 유형을 설정하고 지원 방안을 찾는 정도에서 공동체 정원의 각 유형을 고민해 최적의 방식을 찾을 필요는 충분하다. 미대륙의 경우 공동체 정원은 식량 재배와 소비라는 측면에서 각광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저소득층 도시민들에게 중요한 기능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지적되는 것은 이웃들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와 장소를 제공하였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범죄를 줄이는 동시에, 정치적 조직화의 장이 되는 등 다양한 이점을 가져왔다.(데이빗 헤스, “도시농업, 미국: 커뮤니티 가든의 폭넓은 역할”, 『환경과조경』 2011년 7월호) 반면에 몇몇 문제들도 지적되는데 토지 이용 문제가 먼저 지적된다. 지가 상승 압력으로 인해 개발 압력이 증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원을 가꾸고자 하는 사람들과 개발을 추진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충돌이 있었고 정치적 갈등 요소로까지 확대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뉴욕시에서의 경우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자 개발업자의 편을 드는 시와 정원을 가꾸던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이러한 갈등을 비영리 단체가 개입하여 토지를 매입하면서 해결한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공동체 정원을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다양한 사회적 반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특히 도시재생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도시 문제 해결 방안 중에서 활성화 된 도심에 개발 압력으로 등장하며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큰 사회문제로까지 등장하고 있다. 공동체 정원에 있어서도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명승 제35호인 성락원의 원래 주인에 대한 재검토의 문제가 불거졌다.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沈相應)의 별서였다는 기존의 설명과 달리 심상응이란 인물이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으면서 벌어진 논란이다. 이러한 진위논쟁은 성락원에 각자(刻字)된 ‘영벽지(影碧池)’ 시문의 출처가 밝혀지면서 전기를 맞게 되었다. 황윤명(黃允明)의 『춘파유고(春坡遺稿)』에 수록된 「인수위소지(引水爲小池)」라는 시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논의를 보면 성락원은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의문을 품게 한다. 하나는 성락원을 조선시대에 조성된 정원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성락원의 존재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도에서만 확인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하나는 성락원이 우리나라 전통 정원으로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과연 성락원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정원으로 평가하기에 무색한 곳일까. 이러한 의문의 실마리를 해결하는 데 주목할 만한 자료가 있다. 1887~1888년 정선군수(旌善郡守)를 지낸 오횡묵(吳宖黙, 1834~?)의 『총쇄(叢瑣)』에 기록된 내용을 아래에 밝힌다. “북쪽 시내로 방향을 돌려 시내가로 난 오솔길을 따라 1리 쯤 들어갔다. 길이 구불구불 돌고 아름다운 나무가 무더기로 빽빽하며 기이한 새와 꽃들이 세속 사람의 이목을 번쩍 뜨이고 기쁘게 하였다. 걸음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취병(翠屛) 하나가 있는데 제도가 매우 오묘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듯한 하나의 정자가 걸음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니 바로 황춘파(黃春坡: 황윤명) 선생의 별서이다. 제도가 작고 경계가 그윽하며 폭포물이 떨어지고 향기로운 화훼가 형형색색이라 사람을 기쁘게 할 만 했다.”_ 오횡묵, 『강원도정선군총쇄록(江原道旌善郡叢瑣錄)』 1887년(고종 24) 4월 25일. 오횡묵이 1887년(고종 24) 4월 25일 황윤명의 별서를 기록한 내용의 일부이다. 이때 오횡묵은 혜화문(惠化門)으로 나가 성북동에 들러 참판 김병시(金炳始)의 집과 민영환(閔泳煥)의 별업을 방문하고 이어서 황윤명의 별서를 둘러보았다. 오횡묵의 언급대로 대단히 아름다운 제도를 갖춘 별서였음을 상상하게 한다. 특히 이어지는 내용에서 오횡묵은 정자에 몇 편의 시가 걸려 있어 읊으니 대단히 청아했다며 감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위 글을 쓴 시기가 1887년으로 결국 19세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별서였음을 증언한다. 이후 오횡묵은 황윤명과 친교를 맺고 다시 황윤명의 별서를 방문했다. “참봉(參奉) 이승국(李承國)은 호가 청몽(淸夢)으로 산을 구경하는 벽(癖)이 있다. 일찍이 함께 가기로 약속했는데, 내가 황춘파를 방문하기로 하여 청몽(이승국)에게 먼저 광릉천점(光陵川店)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혜화문에서 황춘파의 계정(溪亭)으로 들어갔다. 춘파는 몇 년 간 병환으로 인해 조제를 불러다 머무르게 하였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몹시 기뻐했다. 안부를 묻는 동안 몇 시간이 지났기에 억지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별장을 나섰다.” _ 오횡묵, 『경상도고성부총쇄록(慶尙道固城府叢鎻錄)』 1894년(고종 31) 10월 20일. 1894년 10월 20일 오횡묵이 이승국과 약조하고 도성을 나서는 길에 황윤명의 별서를 들른 기록이다. 당시 황윤명은 건강이 좋지 않아 병환을 다스리고 있다고 하였다. 황윤명의 『춘파유고』에 자신의 병세를 자조한 시문이 종종 보이는데 어쩌면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일인지 모른다. 이때 오횡묵이 방문하자 황윤명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몇 시간 대화를 나눈 끝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1887년 묘사된 그의 별서가 이때까지 지속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상은 성락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황윤명 별서 기록의 일부에 불과하다. 황윤명의 『춘파유고』를 보면 영벽지에 석가산을 조성한 사실은 이미 밝혀진 바이고, 국화, 대나무, 오동나무 등 화목(花木)의 기록도 곳곳에서 산견된다. 비가 많이 내린 날에는 그곳에 배를 띄워 손자들과 노닐었다고 하였다. 앞서 오횡묵이 선경(仙境)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했던 설명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19세기 한말사대가의 한 사람인 강위(姜瑋)는 1870년대 육교시사(六橋詩社)를 통해 당대 명성을 드날렸다. 이들의 모임을 기록한 『육교연음집(六橋聯吟集)』에도 황윤명의 별서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당시 강위는 황춘파(황윤명)의 시옥(詩屋)에서 문형당(文衡堂: 문유용), 김추당(金秋棠: 김창순) 이취당(李取堂: 이원긍) 이소화(李小華: 이시영), 주소창(朱小滄: 주우남)과 만나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였다. 강위가 말한 곳이 성락원과 동일한 장소인지 여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나 강위의 몰년이 1884년임을 고려하면 황윤명이 별서를 경영한 시기는 그보다 이전일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황윤명의 별서는 본래 존재했던 누군가의 정원을 이어받아 경영되며 주변 문인들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화재청에서도 관련 학자들이 모여 사료를 검증 중이라고 하니 성락원의 가치를 정립하는 일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김세호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문학박사 *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세호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문학박사[email protected]
    • 2019-06-12
  • 경복궁 후원에 향원지(香遠池)란 연못이 있다. 향원지에는 원형의 섬이 있고, 섬에는 육각 2층 정자인 향원정(香遠亭)이 있다. 그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취향교(醉香橋)라는 목교를 건너야 한다. 향원지, 향원정, 취향교의 공통 키워드는 연(蓮)이다. 북송시대 학자 염계 주돈이(濂溪 周敦頤, 1017~1073)는 애련설(愛蓮說)에서 군자가 지녀야 하는 성정을 연(蓮)의 성질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칭송하고 있다.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어 있고 밖은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 치지도 않으며,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더 맑고(香遠益淸)’ 우뚝한 모습으로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함부로 하거나 가지고 놀 수 없음을 사랑한다. 연꽃 향을 표현한 '향원익청(香遠益淸)'이란 구절이 경복궁 후원의 경관요소로 사용됐다. 연의 뿌리, 줄기, 잎, 연자, 꽃, 종자주머니 등은 식재료, 약재, 화훼장식용, 직물, 염주, 향수, 공예 및 놀이용품, 조경용 등 다양하게 사용될 정도로 유용한 식물자원이다. 미국 태생의 아동문학가 셸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 1930~1999)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에서 나무의 성질을 부모의 성정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예찬하고 있다. 한 소년이 사과나무 곁에서 놀고 있다. 그러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면 따먹고, 소년이 자라 청년이 되어 결혼을 한다. 청년은 사과나무 가지를 잘라서 신부와 함께 살 집을 짓는다. 또 세월이 흘러 청년은 장년이 됐다. 이번에는 아예 사과나무 둥치를 베어 배를 만들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노인이 된다. 이제 기력이 다해버린 소년에게 사과나무는 그루터기에 와서 쉴 것을 권한다. 노인이 된 소년은 앉아서 쉰다. 그 모습을 본 사과나무는 행복해 한다. 한국의 현대 수필가 이양하 (李敭河, 1904~1963)는 자신의 수필집 '나무'에서 나무를 의인화하여 성자와 같은 나무의 삶을 예찬하며, 나무를 닮은 삶을 살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아는 덕을 지녔다. 나무에게는 달과 바람과 새 같은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을 차별 대우하는 법도 없고 그들이 오고 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나무의 가장 좋은 친구는 서로 이웃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같은 나무들이다. 나무는 각자 천성대로 가지를 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에 힘쓸 따름이다. 그리고 언제나 하늘을 향해 손을 펼쳐 들고 감사하고 묵도한다. 나무는 견인주의자이며 고독한 철학자이자 현인이다. 인류의 발전사를 돌이켜보면 식물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이로움은 설명이 구차하다. 식물이 없었다면 과연 인간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철학적인듯 하지만 어리석은 질문이다. 진화론적 관점이든 창조론적 관점이든 인간은 식물 없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도 미래에도 식물없는 인간의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호흡 작용을 통해 생명유지 기능에 필요한 산소를 식물로부터 공급받고 체내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호흡의 주된 목적은 산소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우리 몸에서 빨리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요즘에는 ‘(초)미세먼지 농도는 어때’가 주된 아침 인사가 되어버렸다. 비상이다. 인간의 생명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인체의 탄소교환 활동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집, 사무실, 학교, 유치원 그리고 도시와 농촌, 산촌, 어촌을 가리지 않고 전 국토, 모든 곳에서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국가 차원의 환경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때문이다.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진단이 따른다. 중국발생, 화력발전소, 자동차배기가스 등이다. 하지만 대처방안은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다. 발생 원인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안된다.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마지막 해결사 '나무'가 호출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 지자체, 기업, 그리고 사람들마다 나무를 심겠다고 나선다. 20년 전에 시행되었던 ‘생명의 나무 1000만 그루심기(1998~2002)’는 고건 31대 서울시장의 주요 시책 사업이었다. 그리고 20년후, ‘아낌없이 주는 나무심기 프로젝트’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요 시책 사업으로 다시 소환됐다. 그리고 순천시, 울산시, 창원시,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몇 년 전부터 혹은 올해부터 슬로건처럼 내민 정책이 ‘1000만 그루 나무심기’다. 이중 대전시, 광주시, 서울시 등은 올해부터 3000만 그루 나무심기로 상향조정했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처럼 인류를 위한 인간의 마지막 소명 같은 것이다. 그동안 국가, 단체, 개인 차원에서 많은 나무를 심고 가꾸어 왔다.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조경인들도 이제 나무를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달리해야 한다. 염계 주돈이, 셸 실버스타인, 이양하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를 바라보자. 군자, 부모님, 현인처럼 말이다. 너무나 거창한가? 그렇다면 부모가 갓난아이를 돌보듯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어떠한가? 아이가 태어나면 매일 같이 씻기며,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인다. 우리도 나무에 이렇게 해야 한다. 전국 모든 도로변 가로수의 생육환경에는 공통점이 있다. 전선이 지나가는 곳, 간판이 있는 곳의 나무줄기와 가지는 강전정을 당한다. 통신맨홀, 상수도관, 하수도관, 우수관, 도시가스관 등이 지나는 곳의 뿌리는 가차 없이 잘려나간다. 겨울철 눈 온 뒤의 차량과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뿌려지는 염화칼슘은 가로수가 심겨있는 땅속으로 스며든다. 나무를 심자. 하지만 먼저, 심겨진 나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관리하자. 철학적이거나 문학적 감수성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나무가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 중구는 지난 2006년부터 가로수를 버즘나무에서 소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2008년에는 을지로입구역에서 을지로3가 까지를 ‘속초의 거리’라 명명하고 그 거리에 속초시로부터 기증받은 소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소나무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편견이 있었다. 소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백두대간 산마루, 해가 잘 드는 남쪽에 면해서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많은 자동차와 사람이 지나다니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가로수로 식재된 소나무와 관리노력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중구의 이야기다. 중구는 매년 주기적으로 가로수와 주요수종에 목욕을 시킨다. 자동차 매연, 황사, 미세먼지 등에 의해 얼룩진 잎과 줄기에 묻어있는 찌든 때를 씻어준다. 나무 목욕은 뿌리가 있는 곳의 토양에 스며들어 염화칼슘을 중화시키고 배출시켜 뿌리가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어린아이를 대하듯 때론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대하듯 나무를 샤워시키는 것이 중구의 소나무가 건강한 이유였다. ‘나무도 숨을 쉰다.’ 우리가 종종 잊고 지내는 사실이다. 뿌리가 건강해야 줄기가 건강하고, 잎도 건강해서 호흡작용이 잘 이루어진다. 이제는 나무도 숨을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를 자기 몸 안에 가두며 인류에게 필요한 산소를 내어준다. 나무가 묻는다.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나무는 나무란다. 박경복 한국정원산업협동조합 이사장 / 가든프로젝트 대표
  • 2015년 대웅제약과 아름다운재단이 후원하고 통합놀이터만들기네트워크가 주최가 되어 어린이대공원에 통합놀이터의 가치를 지향하는 ‘꿈틀꿈틀 놀이터’를 조성했다. 이후 아이들의 놀 권리, 새로운 형태의 놀이터를 요구하는 사회적 흐름과 맞물려 통합놀이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하고 있고 여러 지역에 조성되고 있다. 그런데 통합놀이터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알려지기 전에도 이미 통합놀이터의 가치를 추구하는 놀이시설은 동네 놀이터 곳곳에 있었다. 이미 마주쳤던 통합놀이시설 아래의 첫 번째 사진은 서울시내 한 놀이터에서 본 조합놀이대 모습이다. 조합놀이대에 오르는 계단이 두 방향으로 나아있다. 한 쪽은 계단 폭과 높이가 좁고 낮은 일반적인 계단이고, 다른 쪽은 계단 폭이 넓고 높이가 높다. 그런데 다른 사진을 보면 계단이 왜 두 곳에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높은 계단은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몸을 가누기 어려운 아이가 시설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이러한 장치를 영어로는 ‘transfer systems’라 하는데 우리말로는 ‘옮겨타기 시스템’이라 번역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미국의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Accessibility Guidelines(미국 장애인법 접근성 지침, 이하 ADAAG)’에 제시돼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1990년에 제정된 장애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시민권법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미국 장애인법, 이하 ADA)’에 따라 작성된 것이고 놀이터를 포함해 여러 환경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디자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옮겨 타기 시스템은 ‘옮겨타기 플랫폼’, ‘옮겨타기 계단’, ‘옮겨타기 지지대’로 구분된다. 각 요소의 디자인 원칙과 규격은 가이드라인에 자세히 명시돼 있다. 그런데 앞서 보았던 국내의 조합놀이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옮겨타기 시스템 가까운 곳에 낮은 미끄럼틀이 있다. 조합놀이대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아이는 올라가면 되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더 오를 필요 없이 낮은 곳의 미끄럼을 타면 된다. 이 시설물이 설치된 놀이터 어디에도 옮겨타기 시스템이나 시설물 구성의 이유를 설명하는 안내문은 없지만 아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이 시설물을 즐겼을 것이다. 통합놀이터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모든 아동이 놀이터나 놀이시설에 접근해 자신의 능력에 따라 놀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렇게 우리나라에 수입된 미국의 제품이나 미국의 제품을 참조하여 제작된 국내 놀이시설물 덕분에 인식하지 못하고 통합놀이시설물을 이미 만나고 있었듯이, 통합놀이터는 그리 별난 게 아니다. 통합놀이터, 장애인의 사회적 통합 영어로는 ‘inclusive playground’인 ‘통합놀이터’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몇몇 사람들은 단어에서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함께 노는 놀이터라는 개념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통합’이라는 단어를 장애아와 비장애아의 ‘통합’만으로 한정시키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런데 왜 ‘통합’이라는 단어를 쓸까? ‘통합 놀이터’는 장애인을 장애인 시설에 고립시키지 말고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살도록 해야 한다는 ‘장애인의 사회적 통합’을 지향하는 시민운동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2018년 ‘어른이 되면’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공개되었고 같은 이름으로 책도 발간됐다. 이 영화의 감독은 18년간 장애인 수용시설에 살았던 중증발달장애인 동생이 시설에서 나와 자신과 사회에서 살기 시작한 첫 6개월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 제작 당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에서 제작비 모금이 이뤄졌다. 장애인의 ‘탈시설’에 대한 이해를 위해 텀블벅에 실렸던 소개 글의 일부를 옮겨 본다.“시설은 보살핌과 지원보다는 통제와 ‘순육(順育)’을 제공합니다. 순육이란 말 그대로 순하게, 고분고분하게 되도록 기른다는 뜻입니다. 시설은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돌보고 지원하기보다는 장애인들을 시설의 규칙에 맞추어 통제합니다. 시설은 장애인들에게 ‘조용히, 얌전히, 가만히 시설의 규칙에 따르기’를 요구합니다.” (자료: https://tumblbug.com/grown_up) 장애인이 몇 명 이용하냐구요? 통합놀이터를 지어야 한다고 하면 받는 질문이 있다. ‘그 동네에 장애아가 몇 명이 있는지?’이다. 또 지었다고 한다면 ‘몇 명의 아동이 이용하는지?’라는 질문도 받는다. 물론 수요조사나 이용 후 평가는 보다 정밀한 현장 진단을 위해 필요하지만, 통합놀이터나 통합놀이터 디자인의 준거가 되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추구하는 바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다. 우리가 계단 옆에 경사로를 놓는 건 단지 장애인만을 위한 건 아니지 않는가? 유모차를 모는 사람, 관절이 좋지 않은 사람도 경사로를 선호한다. 어린이대공원 꿈틀꿈틀 놀이터에 벨트 그네를 설치했더니, 몸을 가누기 어려운 장애아뿐만 아니라 혼자 그네 줄을 잡기 어려운 유아들도 그네를 탈 수 있게 되어 반응이 좋았다. 또 높이가 있는 모래테이블은 다양한 방식의 놀이를 유도한다. 턱이 없는 회전무대는 휠체어 이용자의 접근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안전성이 높아져 많은 아이들에게 놀이 기회를 제공한다. 유니버설디자인이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듯이, 통합놀이터도 장애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아이들이 자신의 신체적 능력과 특성에 맞게 그리고 그 차이를 넘어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추구한다. 통합놀이터를 지어야 한다고 하면 받는 질문이 있다. ‘그 동네에 장애아가 몇 명이 있는가?’통합놀이터는 그리 별난 게 아니다. 계단 옆에 놓인 경사로가 단지 장애인만을 위한 건 아니지 않는가? 유니버설디자인이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듯이 통합놀이터도 장애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통합놀이터 디자인 가이드라인 Ver 1.0’이 필요하신 분들은 조경작업소 울([email protected])로 문의하시면 된다. 김연금 / 조경작업소 울 소장
  • ‘어떻게 오셨어요?’ 시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겪게 되는 경험이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현장에 가면 그곳을 지키는 누군가는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기웃거리는 사람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한 장소에서 근무자가 바뀔 때마다 ‘보고’를 해야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일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 명찰을 패용하는 것이 차라리 편할 때가 있다. ‘조경을 찍으러 왔습니다’ 이 대답은 나름 숙고한 끝에 만들어 낸 모든 단서다. 가끔 퉁명한 담당자를 만나면, ‘나요? 집에서 왔수다’ 하고 싶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긴 하다- 나는 분명 용건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갔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사람이 ‘아, 조경이요. 여기 찍을 게 있나요?’라는 너스레에는 말문이 막힌다. 나는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된 것일까? 지극히 사적인, 어떻게 20대에 생업이라 생각했던 조경을 카메라로 비춰보게 된 것은 30대 초반이었다. 취미 혹은 아르바이트 수단에 불과했던 사진은 일종의 ‘특기’와 같은 존재였고 언젠가 나이가 들거나 안정적일 때 하고 싶은, 반드시 하고 싶은 짓이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전업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결정적 계기라는 것은 없었는데, 지면을 통해 밝히기엔 사소하지만 긴 우연 덕분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사진을 계속하고 있으니 우연은 필연을 낳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 더, 어떻게 또 다른 계기는 수 많은 사람들이 수 많은 조경(경관)을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그리고 수 많은 고찰의 시간과 발전 위에 있음에도, 제도와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면서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구조와 제도를 바꿀 형편은 못 되니 찾은 방법이다. 개인이 사진을 통해 기록으로 혹은 다른 관점으로 조경(경관)을 표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찮은 것 - ‘체계적 정리’의 필요성 기록된 것(곳)은 역사가 된다. 수천년 전 누군가의 낙서가 역사의 중요한 단서가 되듯 지금의 기준과 생각으로 한정 짓는 것은 서둘러서 변방으로 내몰아 낙인을 찍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경(경관)사진의 중요성도 기록에서 시작한다. 사진은 단순히 현실을 베껴 쓰는 행위인 기록에서 발전해 이미지라는 매체로 나의 견해를 덧대는 것이니 이보다 좋을 것이 없다. 하지만 촬영은 대상에 대한 고찰을 동반한다. 조경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무엇으로 찍어야 조경다울까? 남겨둡시다, 우선 손쉽게 허물고 바꾸는 조경(경관)을 보게 된다. 오래된 집을 허물지 않고 고쳐 쓰듯 외부 공간도 ‘맞춰가는’ 행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외부공간이 생겨나고 스러지는 과정에서 '남겨두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것은 비단 사진만이 아니라 영상이 될 수도 있고 글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사진가이니 사진을 강조하고 싶다. 민간에서는 특화설계가, 공공에서는 개선사업과 같은 일들이 있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공간에 내재화되지 않은 이상 기록은 기록일 뿐이다. 단계 중 하나. 이쁘게 찍는 것은 핸드폰도 잘하는 일이다. 찍는 행위가 이쁘게 만들려고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남겨 두는 일, 눈으로 담기에도 바쁜 시간에 카메라를 들고 남겨두는 일이 필요하다. 조경(경관)이 남게되는 것이 공간에서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스스로 자문해 본다. 우리는 어떻게 조경을 하게(알게) 된 것일까? 유청오 조경사진가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제정법의 헌법불합치 여부에 대한 결정을 해준다. 1999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인 소유의 땅에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4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가 있다. 도시계획시설의 기반시설은 녹지, 학교, 공원, 도로 등을 말하며 이중 공원용지는 전체 도시계획 시설 면적 중 50.1%를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20년간 공원이 조성되지 않은 곳들은 2020년 6월 30일까지만 도시공원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도시공원 일몰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2020년 7월 1일 도시공원이 일몰되면 법리적으로 해당지역은 이전 용도로 전환이 된다. 해당 부지는 토지주의 반발로 공공의 자연녹지로 존치가 될 가능성이 많지 않고 개발 허용은 더 더욱 쉽지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19년의 세월이 흘렀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쾌적한 환경과 시민건강을 위해 1인당 공원면적을 9㎡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선진국의 1인당 공원 조성 면적은 20~30㎡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원일몰제로 고시된 공원 면적의 83%가 2020년에 사라지게 되면 당초 1인당 13.16㎡로 계획됐던 공원면적이 약 4㎡ 밖에 남지 않아서 녹색인프라 후진국이 된다. 한국조경학회와 환경조경발전재단은 2011년과 2012년에 걸쳐서 ‘국가도시공원 및 녹색인프라 구축 전국순회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공원일몰제에 대한 전략도 함께 논의했으나 내용이 빈약한 일명 ‘국가도시공원법’으로만 개정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세미나와 행사를 통해서 정부의 대책을 요구했지만 찻잔 속의 태풍으로 여겨졌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둔 1월 29일과 3월 28일에는 전국 27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2020도시공원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이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대국민 서명캠페인 및 지방선거 후보자 도시공원 일몰제 정책 지방선거공약제안 공동기자회견과 협약 활동 선포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지방선거 시국에 맞춰 지자체 단체장 출마자들이 공원일몰제에 대한 공약을 내놓았고 환경운동연합은 6월 13일 전국지방 선거를 맞아 환경정책을 발표하고, 각 정당과 지방선거 출마자에게 정책 제안서를 제출했다. 정책제안서에는 공원일몰제 해결을 위해 지방재정 확보, 도시공원구역 지정, 사유지 매입 및 임차제도 도입, 국공유지 도시계획결정 실효 배제, 민간공원특례사업 시 국공유지 제외 등이 포함됐다. 정책제안은 6개 전국 공통과제와 17개 광역자치단체의 141개 환경과제 그리고 375개 세부과제를 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각 후보와 정당에 정책제안서를 전달하면서 환경정책토론회, 정책분석, 시민참여캠페인 등을 통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란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도시공원일몰제 문제해결 노력을 보면서 조경분야의 그동안의 활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지방선거 이후 공원일몰제 대책에 대한 많은 의견이 개진됐다. 기존에 진행되던 민간공원특례사업이 있지만 특정집단에게만 이익이 돌아간다는 폐단이 거론되고 있고 해당 토지매입을 위한 지방채를 발행하면 국가에서 발행 지방채 이자의 50%를 지원해준다지만 올해 겨우 79억 원만 책정되어 있어서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동안 지자체에서는 미집행공원 문제를 모르고 있던 상태는 아니었다. 담당 공무원이 대책을 논의하려해도 해당 지자체장은 자신의 임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며 국가 재정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 손을 놓고 있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실제 중앙정부는 1999년에 공원녹지 업무를 자자체로 이관을 해버렸는데 업무는 주고 예산은 안준 정책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 그사이 새로운 이슈가 등장했다. 미세먼지 문제를 비롯해서 기후 환경문제가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문제도 대두되면서 도시녹지가 미세먼지 등의 도시환경문제 해결책의 일환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공원녹지정책은 다시 중앙정부의 업무로 환원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조경직 국가공무원을 2022년까지 200명을 채용한다고 한다. 이어서 국토부와 환경부에 5급 7급 경력 조경직 국가공무원 채용 공고가 나왔다. 첫 조경직 국가공무원의 책임도 막중하지만 이들이 미집행공원, 미세먼지 대책, 미기후 발생 등의 도시환경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조경분야의 연구 개발과 정책제안이 전폭적으로 있어야 하겠다. 대책 없이 지나온 세월 때문에 발생된 도시공원일몰제 문제처럼 녹색정책 공백이 반복되어서는 안되겠다. 지난 3월 27일 ‘도시공원일몰제 대응 평가와 대안 로드맵’을 주제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원욱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더불어민주당)은 “전국적으로 미집행공원 문제를 풀지 못하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 도시공원 일몰제 시한폭탄 폭발시간이 1년여가 남았다. 재앙이 될 것인지 재난이 될 것인지 모르지만 이 시대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크던 작던 간에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대책이 책상 위에만 있다는 것이다. 김부식 / 한국조경신문 회장
    • 김부식 한국조경신문 회장
    • 2019-05-20
  • 03. 흙땅이 말하는 남산(남산공원)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대부분인 ‘지금여기 도시’는 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아이와 놀다보면 도시가 어때야 좋은 기억으로 이 시절을 기억할 지 심심치 않게 되묻곤 한다. 그러니 실내 보다는 나무 그늘, 천변 산책로 또는 공원이나 가로수길을 선택하지만 시야에는 늘 높은 건물과 뾰족한 시설물들이 빼곡하게 배경을 이루곤 해서 가슴 한켠이 답답하다. 그래도 아침이면 먼저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는 세 살 아이, 겨우 나비와 꽃을 발음할 수준이지만 조막스런 손가락으로 꽃과 나무를 찾으며 웃는 그 눈빛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싶다. 한편으론 장난감을 더 사드려야 하나 싶기도 하면서. “자연의 가치를 말하는 이야기들은 도시를 벗어나야 할 곳으로 거론할 뿐이다. 자연은 마지막 도로의 끝, 마지막 보도와 교통 신호등 너머에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야생이 시작하기를 우리 대다수는 바란다. 대다수 동식물은 사람이나 도로, 가옥, 농장 등 인간의 상징물들이 거의 없는 곳에서 번창한다. … 하지만 자연 보호 운동이 멀리 있는 자연만 집중해서 보는 사이 정작 손 가까이에 있는 중요한 것이 잊힐지도 모른다. 자연의 가치가 다양한 형태로 주류 경제학, 과학, 그리고 정치학에 들어올 때, 그것은 자동차나 인터넷과 같이 우리 사회와 경제를 혁신할지 모른다.” _ 마크 터섹·조너선 애덤스 저, 김지선 역, 『나는 자연에 투자한다』, 사이언스북스, 2015, p.227. 자연을 대하는 이런 태도는 어쩌면 평범할 정도로 지난 시절 우리에게 가득했다. 비대해진 서울에도 이런 역사가 깔려 있다. 다만 뭔가 다르다. 서울만의 특별함이랄까, ‘아파트숲’인 삶터 사이로 공원이든 공원 아니든 녹색 자연이 적지 않은 것이다. 서울은 다행히 시작부터 자연과 인공이 조화로운 곳에 터를 두었기 때문이다. 시작이 그러하였으니 우리 도시는 산과 들이 그 일부를 이룬다. 서구 도시와 다른 이것은 지금여기 우리가 세심하게 살펴야 할 부분이다. 미세먼지, 기후변화가 피부로 느껴지는 지금과, 아파트, 대로(大路), 지하공간 사이를 헤매는 여기의 우리는 새로운 성찰이 시급하다. 공원을 터와 연관 지어 보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특히 남산공원은 남다르다. “서울을 둘러싼 산계는 내사산(內四山)과 외사산(外四山)이 있습니다. 외사산은 북한산하고 관악산, 용마산, 행주 쪽에 있는 덕양산, 이렇게 크게 둘러친 산들이고, 내사산은 그 안에서 서울 성곽을 이루는 네 개의 산입니다. 마운틴 서클이죠. 내사산은 북악, 인왕, 남산, 낙산 자락이 있는데, 북악산(342m)이 제일 높고, 그 다음이 인왕산(338m), 남산(262m), 낙산(124m)은 거의 백 미터로 제일 낮고요. 이 네 개의 산과 이를 잇는 성곽은 옛날부터 서울이라는 도시의 경관을 가장 크게 결정한 요소입니다.” _ 조성룡, 『건축과 풍화: 우리가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수류산방, 2018, p.307. 「경국대전」은 다른 내사산이 바위산인데 비해 남산은 흙이 많은 토산이라고 지적한다. 의미의 터였던 서울에서 남산은 별도 가치로 언급된 것이다. 흙(土)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오행(五行) 중 위치 상 중심이 되고 다른 것들에 토대로서 작용한다. 나무가 잘 자라는 생태적인 환경은 남산이 가진 가장 중요한 도시적 위상이었던 셈이다. 의미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러니 남산에 들인 남다른 시각은 「사산금표도」 같은 별도의 관리 방안을 가지게 한 것이다. 소나무를 보호하고 묫자리를 금하여 특별한 의미와 가치의 장소로 보호하고 보전하려 한 것이다. 그 결과가 애국가에 흔적으로 남은 “남산 위의 저 소나무”이며 그 소나무는 한국전쟁 때까지도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오래도록 잘 보호된 소나무는 그 줄기가 거북 등같이 갈래가 선명한데, 철갑으로 보일 만큼 충분히 그랬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쉽게도 갑옷 같은 나무들 군집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남산 위에는 많은 나무들이 흙에 뿌리를 두고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서울의 남산은 지리산이나 백두산, 한라산처럼 특별한 영험함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도시의 생활과 문화를 투영하고 시대를 기록하며 중요한 랜드마크(Landmark), 타임마크(Timemark, 타임마크는 도시와 공간에 중점을 두는 랜드마크에 견주어 장소를 대표하는 시대적 특징과 이미지를 지칭하는 용어로 필자가 조탁한 것이다.)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겸재의 그림처럼 특별한 이미지로 인식되곤 한다. 그러니까 남산은 서울(도시)을 보게 하고, 또 보이게 한다. 거기 중심에 남산공원이 있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유년의 뜰’이었을 그곳은 관심만큼이나, 위치만큼이나 근대 이후 부침이 많았다. 모두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어 흔히 잊어버리는 부분만을 살펴보면, 외세 침탈과 전쟁 이후 남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확연히 이전과 다른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남산은 보호의 손길이 무력화되자 개발의 대상으로 바뀌었고, 「조선시가지계획령」(1934년 제정)은 그 종합판으로 1926년경 ‘경성부’ 구상을 설명하는 “대경성” 마스터플랜으로 장기적 변질이 추진되게 된다. 여기에는 무엇이 우리 사고에 이식되었는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일제는 남산 주변에 거류 공간을 확보한 이후 왜성대공원(1987), 한양공원(1910), 장충단공원(1919) 즉 남산의 북, 서, 동쪽에 공원의 설치라는 명목으로 토지를 침탈하였습니다. … 경성의 시가지 확장으로 남산이 점차 경성의 중심 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1917년에는 대삼림공원계획을 수립합니다. … 한편 일부 일본인들을 위해 남산 남록의 조망이 좋은 곳에 고급주택을 짓고자 신당에서 삼각지에 이르는 남산주회도로가 부설되기도 하였습니다. 남산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본의 전원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_ 「남산의 힘(도록)」, 서울역사박물관, 2015, p.54. “도시계획은 하루가 늦어지면 그 하루만큼 손해이다. 또한 그것은 도시계획계만의 일이 아니라 부민 전체의 일이다. … 내무성의 표준이 장래 30년이기 때문에 경성부도 그에 맞추어 진행 중이다. … 경성부의 현재 인구는 33만 명인데 과거의 경향과 수학적 방법을 쓰면 30년 후는 약 46만면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경성부의 현재 주거 가능 면적은 전 부역의 4할 정도이기 때문에 밀집, 포화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 대경성의 장래의 중심은 경성부 신청사(1926년 신축한 서울시 구청사)의 동편이며, 이 중심에서 60분 내에 도달하는 지점은 동은 숭인면 휘경리의 북단, 서는 연희면 연희리 철도 교차점, 남은 북면사무소, 북은 북한산으로 … 도회화가 역연하므로 장래 경성과 공존공영해야 할 지역이다. 이렇게 장래 대경성의 구역을 정하는 것이 경성 도시계획에서 최급선무이다.” _ 염복규, 『서울의 기원 경성의 탄생: 1910~1945 도시계획으로 본 경성의 역사』, 이데아, 2016, p.124, 재인용. 그에 따라 서울의 전체 평면이 다시 작성되었으나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설전 마냥 무슨 사상이나 철학은 아랑곳 않고 “대사업” 도시계획으로 남산의 위상은 재편된 것이다. 남산공원은 이런 연유 후 1940년 3월에 “공원결정”이 “고시”되며 탄생한다. 전쟁 후 1968년 9월에는 남산공원관리사업소도 설치된다. 남산타워가 만들어지고 터널이 뚫리며 길들이 똬리를 틀고 허리춤에는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이후 남산은 개발시대의 상징 노릇이 되기도 한다. 남산공원도 그에 따라 분수대, 야외공연장 등을 추가하며 성장하였고 팔각정이 있는 도심 산책로와 드라마로 대표되는 새로운 이미지의 도시 공원이 된 것은 1990년대가 되어서이다. 남산이 본격적으로 관광지이자 일상의 공원이 된 것도 이 즈음이다. 서울의 남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전국의 남산들 대부분이 그러하였다. “남산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모습은 희뿌연 스모그 사이로 우뚝 솟은 빌딩과 아파트만 보이는 회색 도시다.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산과 일부 공원형 숲을 제외하면 규모가 큰 숲은 찾아보기 어렵다. …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치장한 거대한 괴물을 연상케 하는 것은 비단 서울만이 아니다. 부산, 대구, 대전, 인천, 광주 등 대도시들도 모두 서울의 모습을 닮아가면서 삶의 터전이 갖추어야 할 모습과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 도시화는 1960년대 후반부터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도시 인구가 1984년 대략 3,000만 명 정도였는데, 불과 30년 만에 5,100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_ 안병옥, 『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 21세기북스, 2014, pp.88~89. 남산은 산이기도 하지만 그대로 공원이기도 하다. 자연은 본능에 속하는 것이어서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충분히 그러하게 받아들인다. 흙과 땅은 자연의 기본이어서 바탕에 숨어 드러나지 않더라도 마음을 흔든다. 남산은 언제나 그러했다. 안 그런 것 같아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지금여기 우리에게도 그러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옆에 끼고 산다고 하여도 남산엘 자주 가지는 않을 테고, 멀리 떨어져 보일까 말까하고 살지만 바쁜 일상에서도 우리 대부분은 남산에 꽃이 피는지 눈비가 오는지 동네 공원보다 잘 알지 않는가. 봉우리와 산은 바람을 흔든다. 길을 방해하며 모여 사는 터(도시)의 잡스러움(먼지)을 빨아낸다. 흩어지는 공기는 나무가 추동한다. 땅에 새겨진 물길은 그 시각적 흔적이다. 흙과 땅은 물길을 품는다. 나무는 거기를 통해 숨쉰다. 다져진 땅에는 잡풀도 나지 못한다. 비대해진 서울은 남산이 있어 바람이 통하는 도시다. 빽빽한 삶터가 되었지만 다지고 다져도 가운데 흙이 스스로 자생하며 중심이 되어 주니 도시 전체가 빙 둘러 숨쉬고 춤춘다. 그렇게 남산과 남산공원은 흙과 땅으로 먼저 말하는 곳이다. 공원을 이야기하며, 남산을 이야기하며 서울의 역사와 배경 문화라는 먼 길을 돌아온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남산은 공원이면서 랜드마크이면서 관광지이자 도시이미지, 삶의 전망대, 시대의 타임마크인 것이다. 장소는 기본적으로 여러 위상과 켜로 이해되는데 그 중에서도 남산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서 하나의 중심점이자 도시이미지의 기준이 되는 공원이다. 장소에 투영된 역사와 문화는 그간의 우리 삶을 되돌아보고 지금의 생활을 성찰하게 해준다. 남산공원은 곧 그런 남산의 살가운 피부인 것이다, 모두가 만져볼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것이다. “나무와 물과 바위 위에 투사된 상상의 구성물이라는 점에서, 풍경(경관)은 자연이 되기 전부터 문화다.” _ Simon Schma, Landscape and Memory, New York, 1995, p.61. 그렇게 본능적으로 우리는 땅을 읽으며 산다. 그런 것을 경관(또는 풍경)이라고 한다. 경관은 단순히 흙과 땅, 터를 지칭하는 물리적 개념만이 아니다. 경관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며, 그런 자연은 이미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다. 공원이 우리 시대 자연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지만 산과 들이 함께였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본다면 결코 근대적 발명품이라 편협하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서구 근대성이 사고의 기저를 이루고 있음은 그런 맥락에서 성찰해야 한다. 공원을 삶에서 떼어 보려는 어떠한 시각도 ‘20세기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품앗이가 산촌의 무기”라며 “오히려 시골이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모타니 고스케 저, 김영주 역,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동아시아, 2015, pp.240, 17.)는 말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다음과 같은 힌트를 남산과 남산공원이 던져준다고나 할까. “진리는 새롭지 않다. 오류만이 새롭다. … 없는 데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을 ‘발명(Invention)’이라 한다면(無->有), 있는 데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을 ‘발견(Discovery)’이라 할 수 있다(有->有). 융합은 문언가 이미 있는 것을 발상의 재료로 삼아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에, 형식상으로는 발견에 해당한다. 하지만 새로 창출된 것이 이미 있던 것과는 다른 것이기에, 내용상으로는 발명이라 할 수 있다.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화학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_ 최재목, “삶은 어차피 융합이다(머리말)”, 『융합 인문학』, 이학사, 2016, pp.5,6. Park 02. 흙땅이 말하는 공원들, “공원과 조경의 현대상” 서울의 옛그림을 보면 산과 길이 강조되던 도성도가 후대일수록 물과 녹지가 강조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옛그림에는 터가 가진 경관 특성이 잘 드러난다. 풍속화에서는 나무와 물이 생활공간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그대로 나타난다. 잘 살펴보면 우리에게 조경과 풍경(경관)은 서구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정원과 공원이 경계 없이 삶터에 혼재한 것은 아주 쉽게 흔적으로 찾을 수 있다. 근대 조경학이 대부분의 도시를 감싸고 있지만 역사와 문화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그것으로 공식(公式)화되지 못하는 부분이 우리만의 본성으로 남아있음을 깨닫게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은 뇌가 많은 양의 모르핀을 투여해 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풍경에 색․깊이․움직임이 더해지면 그 경로를 따라 더 많은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된다.” _ 에스더 M. 스턴버그, 서영조 역,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더퀘스트, 2013, p.76. 그것은 위와 같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풍토의 영향이 생과 삶(다시 말해 지역문화)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서구 과학만으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면서 본능과 문화로 이어지고 있는 오래된 정원문화, 오래된 공원문화를 눈 밝게 읽어야 할 때이다. 새로운 성찰은 그러할 때 가능하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그것을 몇 가지로 정리해보니 꼭 읽어두면(알아주면) 좋겠다. 우리 도시에 깔린 조경과 정원(공원)의 문화를 본성으로 깔린 이것을 통해 눈치 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아, 그 전에 여기서는 공원과 정원을 굳이 따로 구분하지 않고 정원으로 일단 부르고자 한다. 그 이유는 다른 기회에 다룰 수 있을 것이다. 1. 우리에게 녹색 자연은 “삶의 배경이자 터(녹색인프라)”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도시가 건축술의 발달로 만들어지고 강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도시혁명이 그런 차원에서 지적되곤 한다. 공원은 그 뿌리를 정원에 두고 있어 정원의 시작을 좇다보면 식물을 가꾸고 즐기던 시절만이 그 전부인 것인 양 한정짓는 것을 보게 된다. 정원이 “작업공간이자 생산환경, 열락장소(황기원, “정원의 원형 시론”, 『환경논총』 제 20권, 1987, pp.85~97.)”이었음을 지적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는 탁월한 원형찾기, 본류찾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놓친 부분이 있다. 정원이 본질적으로 정주환경, 마을공간을 구성하는 뼈대로서 기능하였다는 점과 그 정원을 통해 생산과 문화의 교류가 계속되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정원은 문화적 교류의 바탕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근대적 사고로 분석한 세 가지의 정원 본질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고 본다. 마을이나 공동체가 성장하면서부터는 정원이 마을 단위의 큰 뼈대가 되어주고 마을 문화의 배경이 된다는 점에 이제 주목해야 한다. 이러할 때 우리가 마을정원, 공동체 정원, 도시정원과 도시경관 등을 논의할 수 있는 근거가 확인된다. 다시 말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시대에 정원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으로서의 도시에서 정원이 가지고 있던 본래의 속성 중 하나인 ‘생활기반(green infrastructure)’의 측면을 되살리고 진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원녹지로 대표되는 도시 녹색 공간은 공사(公私)의 여부를 떠나 도시적 기능으로 다시 이해될 시점이 되었다. 따라서 현대 정원은 그 개념에서부터 문화적 확장을 통해 진화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현대 정원과 정원일(gardening)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가장 기초적인 행위라는 측면에서 1)자연물(인공물의 반대적 개념으로, 자생성이 있는 자연속 다양한 동식물과 유기물 등)을 다루는 행위, 2)인간의 의지와 요구에 따라 자연물을 활용하는 방식, 3)대체로 자연물을 선택하고 배치하고 유지관리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추구하는 모든 활동, 4)그리고 자연물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즐기는 공동의 자연(공공정원, public garden)이라는 개념적 확장을 이루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것들은 지금 여기 우리 도시의 정원문화이며 정원의 본질 중 네 번째의 그것을 말한다(안명준 외, 『텃밭정원 도시미학: 농사일로 가꾸는 도시 정원일로 즐기는 일상』,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정원의 네 번째 본질, 정원의 생활기반으로서의 특성에서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을 동시에 모색할 수 있게 된다. 도시가 인공이 가득한 불편한 삶터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유쾌한 삶터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정원으로부터 받았듯 우리도 이제 정원을 가꾸고 정원으로 돌봐야 할 시점이다. 현대 공원은 그렇게 정원과의 경계를 지우며 공진화하고 있다. 2. 우리에게 조경은 자연에 살고 자연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정원은 고래로 인간(문화)과 자연의 접점이었다. 이상적으로 보자면 정원은 인간 탄생의 장소(eden)였으며, 파라다이스였다. 충분한 보호, 적절한 관리로 자연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크지 않았던 보호 공간이었다. 그것은 자연의 말 그대로 자연스런 순환성을 배제한 통제된 자연이자 문화였으며 그러다보니 투입되는 에너지에 비해 실제 얻는 효과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정원의 소유조차 한정되게 만들었다. 근대 이전까지 정원은 그렇게 발전하였고 우리가 가진 정원에 대한 편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원은 본래 자연이 문화화한 것으로서 노동과 예술이 만나 이루는 일상의 미적 장(aesthetic field)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감각이 살아있는 공감각적 경험의 장이었다. 과학의 발달과 풍부한 잉여 산물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사회의 등장은 정원을 보는 시각 또한 변화시키고 있는데, 정원은 제3의 자연(the 3rd Nature)으로서 자연과 문화가 적절하게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환경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는 체험과 참여가 기본이 되는 새로운 장소 구현이 정원의 뼈대로 요청된다는 점이 담겨 있다. 자연을 그림으로 보기 시작한 이래, 그 그림을 자연으로 재작성하던 시대를 벗어나, 이제 저만치 물러나 이러한 상황을 관조하던 ‘나’를, 자연 속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부각시키는 미적 태도가 보편화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과정에 조경(造景, Landscape Architecture)이라는 전문영역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원은 조경의 기초 결과물이자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다루는 방식인 셈이다. 그 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어서 동양의 경우, 이미 조경을 통해 취경(取景)과 유경(遊景)이라는 큰 틀의 기법들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다(황기원, “한국 조경의 문화적 전통 시론,” 『환경논총』 제 42권, 2004, pp.55~81.).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스타일(style, 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경은 그렇게 자연을 어떻게 즐기고 적응하며 사느냐의 방법론이었던 셈이다. 취경은 목적에 따라 경관을 취하여 정원으로 만드는 방식이고, 유경은 대상 경관에 직접 들어가 참여하며 즐기는 방식이다. 경관을 취하는 방식에는 그대로 베껴 만드는 방법 외에도 의미만 취하거나 바깥으로 시선만 열어두거나 하는 방법들이 쓰였다. 경관을 찾아 직접 즐기는 방식으로는 좋은 위치에 정자나 별서를 두고 옮겨 다니며 즐기거나, 몇 가지의 경관을 유람하며 즐기는 방식이 있었다. 다시 말해 이미 오래 전부터 자연은 소유로 한정되지 않고 또 감상자 없이 존재하지 않음을 기본 태도로 삼았던 것이다. 전국의 정자가 보고 보이는 위치에 자리한 것도 그런 연유가 있다. 이 두 가지는 결국 조경의 기법이면서 자연과 정원을 다루는 시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태도는 근대 학문으로는 모두 체계화 되지 못하여 여전히 연구할 부분을 남겨두고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본능에는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자연을 뛰어넘고 이겨내려는 승패의 이분법이 아니라 자연에 적응하고 적당한 인간적 요청만을 이끌어내는 적응의 지속성, 그리고 포월의 취향으로 남아 급속한 산업주의 성장의 시대에도 쉽게 그 오랜 문화를 지우지 못했다. 우리에게 조경은 그저 삶의 기본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요즈음의 누구라도 나무심고 꽃심는 ‘노동’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3. 우리에게 본래부터 정원과 공원은 전통이었다 도시 정원은 그 역사가 짧지 않다. 정원을 만드는 행위를 조경이라고 할 때 조경은 그 시작이 건축, 토목, 원예 등 원시에서부터 시작하는 인접 분야와 비슷한 시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조경은 하나의 문화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데, 조경의 대표적인 산물인 정원은 여러 가지 조경 중에서도 정수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정원은 문화만큼이나 다변화되는데 현대의 정원은 보다 민주적인 자연 향유의 방법으로서 공원과 함께 도시민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도시 요소로까지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문화사적 전통으로 무장한 정원이 도시 삶의 변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변화의 조심까지 보이고 있다. 서양에서 정원을 의미하는 단어는 garden(영), Garten(독), jardin(프), giardino(이) 등인데,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접두어 gar가 쓰인다. 어원은 인도유럽어계의 gher(gherdh)이며, 그 뜻은 일정한 공간을 둘러싸는 행위 또는 그렇게 둘러싸인 공간을 뜻한다. garden이라는 말은 gan과 oden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는데, 접미어 oden은 낙원을 뜻하는 기독교의 이상향 에덴(eden) 즉, 파라다이스(paradise)를 말한다. 따라서 정원에는 ‘울타리 속의 기쁨’이라는 의미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즉 ‘순치(馴致)’된 이상적인 환경이라는 뜻도 있다. 최근 우리에게는 도시농사, 주말농장, 수목원, 정원, 텃밭, 가드닝스쿨, 스쿨가드닝, 옥상정원, 실내정원, 공원, 공공정원, 숲해설, 올레길, 등산 및 야영, 꽃박람회, 정원박람회 등 자연을 직접 체험하고자 하는 다양한 행태들이 사회적으로 활발하다. 이는 콘크리트 회색인프라 속의 일상에 대한 반성으로서 녹색의 자연, 녹색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즐기고자 하는 욕구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것은 웰빙, 삶의 질, 건강, 쾌적한 삶 등 다양한 어휘들로 설명이 되며, 우리시대가 녹색 중심의 도시 환경, 삶의 환경을 기본으로 요청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뭔가 변화된 사회를 우리는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현대 정원은 도시와의 관계 속에서 재설정되고 있고, 현대 도시의 성장 없이는 이러한 유형의 정원도 발전하지 못하였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시대 정원은 새로운 형식으로 현대 도시에 적응한 자연을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중이다. 언제나처럼. 그 중 공원은 지금까지 인류가 내놓은 해법 한 가지인 셈이다. 공원보다 정원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결국 자연을 어떻게 활용하든, 정원이든 공원이든, 텃밭이든, 숲이든 간에 그것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중요하게 작용할 삶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행위라는 점을 성찰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풍족한 도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미와 내용, 가치가 지속되는 삶의 터를 우리는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원과 공원은 지금까지의 기술로 우리가 만들어낸 습관이자 전통인 것이다. 여전히 정원은 여러 이름으로 분화되고 있다. 지금도 새로운 정원 명칭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가 녹아있는 전통적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발맞추어 최근에는 정원과 공원이 뒤섞이며 공원의 개념마저 확대, 진화하고 있다. 이게 모두 우리 삶의 터이자 흙땅 위에서 감추고 속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교류하며 이루어지고 있는 자연 향유의 21세기적 전통문화인 것이다. 4. 우리 도시는 새로운 공원문화, 흙과 땅의 공진화를 부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원예술이 꽃폈던 시절에 정원은 사실 모두의 것이 아니었다. 당시 정원에는 고도의 순수 미학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것을 지원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다. 실은 잉여 에너지가 충분했기에 정원이 예술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풍경식 정원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정원예술에 대해서는 조경가(정원사)에게 맡겨졌던 정원이 화가에게로 넘어간 것으로 비유되기도 한다(Gilles Clément, Une brève histoire du jardin, 이재형 역, 『정원으로 가는 길 : 역사와 인문학의 세계정원 순례』, 홍시, 2012, p.73.). 모더니즘 시대 이후에는 정원예술의 양상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뉘게 되는데 옴스테드의 센트럴파크 스타일을 중심으로 하는 풍경식 정원과 프랑스 모더니즘 정원을 중심으로 하는 기하학식 정원이 그것이다. 하나는 자연의 형태를 모방하고 하나는 인공적 형태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지만, 둘 다 자연물을 이용하여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점은 같다. 이후 ‘정원의 재발견(reinviting gardens)’에 대한 논의가 1980년대 이후 서서히 강조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기술과 과학의 발달로 특정 계층에서만 가능하던 정원 즐기기가 성장한 경제 수준과 문화예술에 맞추어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자연 즐기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다변화된 사회문화로 정원의 가치가 재설정되기도 하고, 정원일의 의미가 다양하게 지적되기도 하면서 정원은 이 분야에서는 핫이슈로 부각한다. 급기야 마이클 폴란은 약 150년간 자연 찬미로 서구 자연관에 경종을 울렸던 “월든”의 저자 소로우에게 “정원을 가꾼 것”이라며 지구 정원에 대한 인간의 돌봄(care)을 역설하기에 이른다 (Michael Pollan, Second nature : a gardener's education, 이순우 역 『세컨 네이처』, 황소자리, 2009, p.162.).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점차 정원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도시 삶터에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자연으로서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적인 추세로 우리 도시에서도 일상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모두가 공유하는 ‘새로운 정원’은 함께 어울려 사는 도시에서 모두의 것이면서 각자의 것이며, 자연에 함께 참여하고 즐기기 위한 것이 되고 있다. 각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주인공의 의지대로 자연의 과정에 참여하게 하며, 서로 즐기고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만족스러운 소통과 교감이 이루어진다. 살펴보면 공사(公私)가 뒤섞인 채 지난 시대 공원이 주던 공공성을 정원에 요청하는 방향으로 실천적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정원과 공원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은 이 때문이고, 도심 자연에 대한 새로운 나이테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정원문화가 대도시에 나타나고 소도시에서 성장하는 모습의 핵심에는 정원을 통해 모두가 돌봄의 의미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정원이 그 스스로 사람들 내면에 담겨 있는 선한 돌봄의 의지를 일깨우고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 정원은 정원문화이기도 하지만 사회현상이자 사회진화의 수단이기도 하다. 인류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현대 도시에서, 이러한 정원은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야 하고 그것을 정원의 새로운 원형으로 지적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자연을 즐기고 자연에 참여하고자 하는 과정과 연관되면서, 우리 도시와 삶터를 그렇게 돌봐야 함과도 관련 있다. 정원은 그런 면에서 인간이 가진 ‘만들기와 가꾸기, 돌보기’ 본성의 발현인 것이다. 이야기가 다소 현학적이 되었다. 도시적 위상은 공원은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만큼 장광설로 밀어두기 보다는 이를 시작으로 모두들 각자의 생각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그렇더라도 많은 생각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곤란하니 생각들의 기저에 항상 흙과 땅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을 옛 경전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 한 줌의 흙에 우리 생존이 달려 있다. 가꾸고 보살피면, 흙은 먹을거리와 땔감과 거처를 길러 내고 우리 주변에 아름다움을 펼쳐 놓는다. 낭비하면 흙은 무너지고 죽고 만다. 인류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_ 「베다(Veda)」(산스크리트 경전), 기원전 1500년. 안명준 조경평론가
  • ‘위험-유익 평가’란? 이전 글에서 영국의 ‘Managing Risk in Play Provision: Implementation guide’에서 제시하고 있는 ‘위험-유익 평가’를 잠깐 언급했었다. 이 평가는 놀이터를 만들고 관리하는 놀이터 제공자는 위험과 유익이라는 두 가지 목표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당위성에서 머물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목표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막을 수 있는 손상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과 아이들에게 모험의 기회를 주는 것을 말한다. 일례로 안전기준 적용의 대상도 아닌 마을의 큰 나무에 아이들이 오를 때, 혹은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안전기준에는 맞지 않는 놀이시설물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나무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거나 안전기준에 벗어나는 놀이 기구를 철거해야 할까? ‘위험-유익 평가’는 나무 오르기나 놀이기구가 갖는 유익함도 평가하자는 것이다. 다음의 표는 아이들한테 마을에 있는 나무에 오르게 해야 할지 금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평가를 보여준다. ‘선택지, 가격, 장단점’, ‘위험-유익 평가’, ‘지역적 판단’ 항목의 내용이 흥미롭다. 표1. ‘나무 오르기를 허용해야 할까? 금지해야 할까’에 대한 위험-유익 평가 주제 설명 유익 -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기쁨과 건강 , 자신감 그리고 웰빙 측면에서의 유익 - 주변 환경에 대한 인지 향상에 있어, 자연과의 정기적 접촉이 갖는 유익 *출처 = Forestry Commission Growing Adventure Report(Forestry commission, 2006), 놀이의 유익성에 대한 출판물, Play England publications 일상적 경험과 관찰 위험 - 경미한 상처와 장기적인 골절의 위험 - 심각한 부상 위험은 적음 - 나무에 해를 입힐 위험 - 몇몇 거주자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될 위험 - 클레임, 소송 및 명예훼손 *출처 = 국가 사고 정보, 상해와 민원 강도 수준에 대한 지역 기반 지식, 동료와 전문가 네트워크로부터의 클레임에 대한 정보 전문가의 관점 - 수목을 조사했을 때 일부 나무는 눈에 띄게 약한 가지가 있음 - 다른 전문가의 관점 : 아동발달 전문가들의 긍정적 관점 - 사고 예방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고려사항 *출처 = 수목 조사 보고서, 놀이 조사자의 관점, Play England publications, 사고 예방 기관에서 출판된 가이드북 관련 지역 요인 - 나무 오르기의 유행 가능성 - 나무의 종류와 위치 *출처 = 공원 관리자들 선택지, 가격, 장단점 1. 나무를 그대로 두고, 올라가기를 허락한다. 2. 약한 가지를 쳐낸 후 올라가기를 허락한다. 3.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를 베거나, 낮은 가지를 쳐낸다. 4. 교육과 강제를 통해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 5. 아이들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도록 아이들과 함께 나무의 강도와 가지의 안전을 이야기한다. - 수목조사, 교육 또는 집행 조치에는 모두 금전적 지출이 따른다. - 약한 가지를 쳐내면 나무 오르기에 유리하게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게 되므로 집중적 사용을 부추기고 장려할 수 있다. - 강제 금지는 아이들을 적대시하는 것을 의미하며, 가능하지도 않다. 결국 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나무에 오르거나, 더욱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다. *출처 = 새로운 정보 없음 : 논의를 통해 선택지에 대한 장단점이 부각되어야 함 선례와 비교 Cityville Metropolitan Borough Council은 나무 오르기를 허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긍정적인 결과를 경험해왔다. *출처 = 전문가 네트워크 : Play England, Greenspace, Design Council, CABE, and other agencies. 위험-유익 평가 - 일반적으로 유익성이 위험보다 더 크지만, 만일 나무를 있는 그대로 놓아두고 오르기를 허락한다면 관리가 필요함 - 상황이 바뀌면, 한 해의 각기 다른 시간대에 세심 하게 모니터링한 후, 1년 이내 혹은 더 빨리 결정 을 검토 - 공원 스태프와 지역주민에게 그 결정사항과 결정 이유에 대한 정보를 제공 *출처 = 전문가 네트워크 : Play England, Greenspace, Design Council, CABE, and 지역적 판단 - 어린 시절 나무에 오르는 것은 많은 어른에게 보편적 경험이었으므로,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아이들을 위해 동의할 것이다. - 부모, 보모, 그리고 감독의 역할을 맡고 있는 다른 어른들은 나무 오르기에 대한 규칙을 정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은 위험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위험 감수에 대한 시의회의 접근 방식을 알리고부모에게 강조하기 위해 결정 사항 홍보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출처 = 전문가 네트워크로부터 얻은 다른 유사한 환경에서의 경험, 국가 에이전시와 지역 놀이연합(ex. London Play 등)으로부터의 지원 자료: Play Safety Forum(2012) Managing Risk in Play Provision: Implementation guide. pp. 67-68. 다치는 사람만 손해죠 얼마 전 가졌던 디자인 워크숍에서 “제일 재미있는 놀이가 무엇이냐”고 아이들한테 물었더니 한 아이가 “정글짐을 끝까지 오르는 것”이라고 했다.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 아이는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놀면 괜찮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다치면 다치는 사람만 손해죠!” ‘손해 볼 짓은 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석할 수 있다. ‘위험-유익’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른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도 ‘위험-유익’ 간의 균형을 이야기했다. 새롭게 조성된 놀이터 개장식을 열면서 아이들한테 이 놀이터에서 놀 친구나 동생들한테 해줄 말을 써달라고 했더니 ‘조심’을 가장 많이 이야기했다. “애들아 놀이터를 안전하게 사용해줘. 그리고 깨끗하게 써줘”“심한 장난 쳐서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놀아”“애들아. 후배들도 써야 하는 놀이터니까 조심히 예쁘게 쓰렴 ㅎㅎ”“재미있고 조심히 놀렴” 아이들은 이미 ‘위험-유익’의 균형을 알고 있는데, 어른들의 ‘위험-유익’에 대한 균형감각은 어떠한가? 강력한 안전기준으로 무조건 위험을 방지하거나, 놀이터는 위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어른들의 책임은 위험을 무조건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에서 만날 위험을 놀이터에서 미리 만나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일 재미있는 놀이가 무엇이냐”고 묻자 “정글짐을 끝까지 오르는 것”이라고 했다.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에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놀면 괜찮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미 ‘위험-유익’의 균형을 알고 있다. 어른들의 ‘위험-유익’에 대한 균형감각은 어떠한가? ‘Managing Risk in Play Provision: Implementation guide’이 필요하신 분들은 조경작업소 울([email protected])로 문의하시면 된다. 김연금 / 조경작업소 울 소장
    •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 2019-05-03
  • 국내에서 1984년부터 상용화된 1세대 이동통신은 음성통화만 가능한 아날로그 통신시대를 말한다. 1 Generation(1세대)은 1G로 줄여서 쓰인다. 이어 1993년부터 등장한 디지털 방식 이동통신 시스템을 2G라고 한다. 2000년대에 상용화된 3G는 음성 데이터와 비음성 데이터를 모두 전송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영상통화도 가능해졌다. 2010년에 상용화된 4G는 게임서비스 및 멀티미디어를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기능을 가진 포괄적이고 안정된 기반의 솔루션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2020년부터는 초고화질 영상이나 3D 입체영상, 360도 동영상, 홀로그램 등 대용량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5G 시대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10년 주기로 시대를 달리하며 발전해온 통신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갈까?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10년은 지난 10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조경 분야 1G에서 5G까지 한국 조경의 변천사도 1G에서 5G까지로 구분해 살펴보면 어떨까? 1970년대는 한국조경의 ‘도입기’로 조경의 1세대(1G)로 볼 수 있다. 1972년 5월 18일 오휘영 청와대 조경담당비서관 임명을 시작으로, 1972년 12월 19일 최초의 조경학과 개설 결정, 1972년 12월 29일 한국조경학회 창립, 1974년 7월 2일 한국종합조경공사 발족, 1980년 12월 12일 한국정원학회 창립 등이 한국조경의 1세대를 가늠할 수 있는 궤적들이다. 1980년대는 한국조경의 ‘성장기’로서 조경의 2G로 생각할 수 있다. 종합조경 면허업체가 1974년 1개에서 1982년 11개, 1988년 33개로 증가하였고, 1980년 조경식재공사업 79개, 조경시설물설치 공사업 67개로 증가하는 등 조경시장이 활성화됐던 시기이다.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은 내수시장 활성화를 불러와 조경 분야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1990년대는 29차 IFLA 한국총회를 계기로 세계적인 조경가들과 교류를 통해서 국제적인 조경계의 흐름을 접하고 이해하는 동시에 한국 전통정원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2000년대는 한국 정원을 해외에 조성하고, 조경시설물을 해외로 수출하면서 다변화를 꾀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를 ‘도약기’인 3G로 볼 수 있다. 2010년대는 초반 민간 건설시장을 통한 경기부양과 공공 조경사업 확대에 따라 기업 숫자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2018년에는 조경공사업 1491개, 조경식재공사업 4419개, 조경시설물설치공사업 2426개였다. 조경 산업의 몸집은 비대해졌지만, 건설경기 불황과 대형 SOC 공사의 감소로 산업계의 어려움은 조금씩 가중돼 왔다. 빙하기, 먹잇감이 없어서 사라진 공룡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기에 새로운 조경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서 ‘정원(庭園) 산업’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4G는 ‘위기(危機)와 기회(機會)’가 공존하는 시기로 볼 수 있겠다. 앞으로 다가올 5G 시대, 2020년대 조경 산업은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1차 산업(수목생산), 2차 산업(시설물 가공‧조립), 3차 산업(설계‧컨설팅)이 결합한 6차 산업화 전략에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과 이동통신 5G 기술을 조경 산업에 접목하여, 스마트시티(Smart City) 사업과 정원(庭苑)이 결합하는 ‘스마트 가든 시티(Smart Garden City)’가 조경 분야의 주력 산업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5G 시대의 조경 '사람이 답이다' 그럼 5G 시대에 펼쳐질 ‘스마트 가든 시티’를 ‘인공지능’에 맡겨야 할까? 아니다. 흔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에게서 답을 찾아야 한다. 현재와 미래 조경의 주역인 당신이 만들어야 한다. 2017년 기준 1년에 배출되는 조경 전공 학생 숫자는 1400여 명이다. 그 가운데 약 66%가 취업문을 통과했다. 전체 취업률인 66%와 유사하다고는 하지만, 그 66% 중 과연 얼마나 전공에 맞춰 취업했는지는 물음표다. 근래 자기 진로를 정확하게 말한 조경 전공 학생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무원, 대형 건설사,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몇몇을 빼곤 ‘아직 잘 모르겠다’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왜 진로를 확실하게 말하지 못할까? 조경일이 싫어서? 아니면 갈 곳이 없어서? 그들이 고민하는 지점은 과연 어디일까? 내 집 앞의 눈을 내가 치워야 하듯, 조경 전공 졸업생 일자리는 조경계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경착륙하는 건설 경기만을 바라봐서는 요원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환골탈태를 위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체질 개선은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처방이 없으면 달성하기 힘들다. 정확한 진단이 먼저다. 조경 분야에 충분한 기초체력과 열정이 있다면, 어려운 경제상황을 마주해도 몇 번이고 넘어졌다 일어서고를 반복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조경계가 처한 상황은 아쉽게도 그렇지가 못하다. 출산율 감소는 국가적 위기로 이어진다. 생산 인구가 감소되기 때문이다. 조경 분야에서도 조경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취직할 곳이 없으면 누가 조경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할까? 중요한 것은 취업률 자체보다는 전공과 관련된 분야로 진출하는 전공 취업률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조경의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 비용과 효과에 치중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사람 중심, 가치 중심으로 사회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변화를 관찰하는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 대안은 ‘민간 건설시장에 편중되어 있는 조경 산업 분야를 사회적경제라는 제3섹터 속으로 확산시키자’이다. 비록 사회적경제가 건설처럼 크게 돈이 되는 영역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회적경제는 일자리를 만드는 복지로서 조경 전체의 몸집을 키우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조경전공 학생들이 선호하는 건설사, 공무원, 공공기관에서 1년에 뽑는 숫자는 배출되는 전체 숫자의 10%가 되지 않는다. 나머지 90%는 어디로 가야 할까. 설계, 시공, 관리 회사의 신입직원 채용공고도 어쩌다 한 번이다. 조경이 위기라고 한다면 생존 전략으로 태세를 전환하자. 살아남아야 기회가 온다. 상위 10%를 위한 조경이 아닌 90% 대중을 위한 조경이 필요하다. 5G 시대의 조경 기업 ‘새 술은 새 부대에’ 대기업 중심의 무한자본과 기술력이 총동원되어 세계시장과 경쟁하는 최첨단 이동통신기술과 중소기업에서 1, 2차 산업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경 산업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겠다. 동시대에 산업 활동을 영위하는 반도체의 경우, A.I 기능을 탑재한 로봇 팔이 생산 공정에 투입돼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조경 산업 분야에서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삽질로 뿌리돌림을 하고 있을 것이고, 기껏해야 굴삭기에 분뜨기 기계를 결합한 대형 장비로 분을 뜨면서 최신 기술을 적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국인의 식생활 문화에 기반한 반도체 분야는 화려한 성공스토리를 써 내려가고 있지만, 조경 분야는 동네 축구에서 공만 쫓아 우르르 몰려가는 아이들처럼 이윤만 좇아가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2019년 조경식재 면허 4400개, 조경시설물 면허 2400개 종합조경면허 1500개에 종사하는 기술자 중에 실제로 근무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고 싶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굳이 들추지 않아도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밀한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오고 있다. 위기는 구태에 젖은 사람의 몫이고 기회는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가볍게 하면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기업의 몫이 될 것이다. 여기서 구조조정이란 적절한 곳에 필요한 사람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면허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4대 보험 비용을 대납하고, 최소한의 자격증 비용을 지급하며 1년에 1~2건의 공사를 입찰로 따내면 회사가 유지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래의 기업 형태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이 가치만을 쫓아 경제적 이익을 등한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사회적 가치와 이윤 추구가 대척점에서 부딪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제도적으로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가져 가고 있다. 지난해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방계약법 시행령’에서 5000만 원 이하의 물품‧용역 계약에 사회적기업이 추가됐고, 지난 3월 5일부터는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따라 중앙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5000만 원이하의 물품‧용역에서도 사회적기업이 수의계약을 할 수 있게 됐다. 사업의 규모도 그만큼 늘릴 수 있다는 말이다. 사회적기업의 영역은 조경의 사업 분야와도 밀접하다. 산림청은 ‘공동산림사업’, 그 안에 정원의 조성과 관리사업과 같은 사업들을 사회적기업이 할 수 있도록 했다. 전라남도의 ‘공동체정원 공모’의 참여대상도 사회적경제 중 하나인 ‘사회적 협동조합’이 포함돼 있었다. 특히 그동안 사업적 규모를 확장하는데 제한 요소가 되어왔던 일부 실적요건이 폐지되고, 진입 문턱까지 낮출 예정이어서 사회적기업의 기회 요소는 앞으로 넓어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공원, 녹지, 정원을 만들 때 전문가가 중심이 되었다면, 이제는 소비자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과정을 공유하며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큰 규모의 사업이 아니라도 마을단위에서 지역단위로, 지역단위에서 도시단위로 녹색복지, 환경복지 분야로 역할을 넓혀가다 보면 어느새 조경 영역은 크게 확장돼 있을 것이다. 조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시키기 위한 명칭 변경 논의도 확대되고 있다. 이제 ‘사회적경제’와 ‘환경복지, 녹색복지’에 주목해야할 때이다. 조경업계와 단체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사회적경제라는 새로운 기회요인은 남의 동네잔치로 끝날 수 있다. 5G 시대의 조경은 그 명칭이 무엇이던지 ‘사회적 가치’를 담은 ‘녹색복지’로 진화해야 한다. 5G 시대의 조경 '환경복지, 녹색복지'로 향해야 지난 3월 5일 조경의 날 기념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축사를 통해 조경직 국가공무원 채용을 약속한 것이 당장 올해부터 5급 2명, 7급 5명 채용 실행으로 옮겨지면서 조경계는 한껏 고무돼 있다. 이 총리는 국가공무원의 조경직 채용을 약속하는 자리에서 ‘외상박수’라는 표현을 썼다. 오늘의 시점에서는 그가 약속을 실천에 옮겼으므로 박수의 부채를 갚은 셈이다. 그간 국가공무원에 조경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오랫동안 애쓰신 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국무총리의 축사는 사전에 조경계와 충분히 조율된 내용이란 점도 잘 안다. 그래도 이것은 좀 빠르다 싶어서 그날의 축사를 다시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이낙연 총리는 정제된 언어로 조경계의 숙원사업을 잘 알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적당한 유머로 조경인들을 격려해주는 섬세함을 보여주었다. 물론 조경직 채용과 조경전문가의 참여도 약속했다. 하지만 유독 필자에게는 조금 다른 내용이 크게 보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을 위주로 듣고, 보고 싶은 것을 위주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일 것이다. 이 총리는 자치단체에게는 공원, 녹지의 조성 뿐 아니라 관리실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했고, 중앙정부에 조경직공무원 채용을 확대하는 목적 또한 조경을 공부하는 청년들이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말했다. 그리고 그는 분명한 목소리로 조경인이 역량을 키우고,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조경인들은 이 총리의 마지막 발언을 가볍게 들어선 안된다. 정부는 조경계의 요구에 대해 발 빠르게 대처하며 각 부처에 대해 수요조사를 실시하여 조경직 국가공무원의 채용계획을 2022년까지 200명을 채용하겠다고 화답했다. 조경인들은 그간의 성과에 취해있기 보다는 약속을 지킨 이 총리와 정부 그리고 국민에게 어떻게 응답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조경계는 2022년까지 몇 명의 일자리 창출로 응답할 것인가?’ ‘몇 명의 청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박경복 한국정원산업협동조합 이사장 / 가든프로젝트 대표
  • 존경하는 조경인 여러분! 아름다운 꽃이 피는 봄을 맞이하여 현장에서, 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많이 바쁘시리라 생각합니다. 2019년은 조경계에 큰 변화가 시작되는 한 해가 되고 있습니다. 4월 23일 국무조정실, 인사혁신처,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산림청 등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조경직 공무원 채용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3월 5일 개최된 조경의 날 행사는 우리 조경인에게는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취임 전부터 조경의 날 행사가 국가적 행사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어렵고 힘든 준비과정이었지만 이낙연 국무총리께서 대부분 자영업과 중소기업에서 활동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경인과 조경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희망을 주고자 참석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국무총리의 참석이 결정된 후, 행사가 보다 의미있는 자리가 되도록 준비하였으며, 조경인의 오랜 숙원인 조경직 공무원 채용과 미세먼지 저감 및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비하여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했습니다. 조경인께서 알고 계신 것처럼 총리께서는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 비무장지대 평화공원의 조성, 조경진흥센터의 지원을 강조하시고, "품격있는 국토를 만들기 위해 조경인의 역할을 확대하도록 하겠으며, 조경인 스스로도 역량을 키우고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조경을 공부하는 청년이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조경직 공무원 채용을 검토하겠다"는 말씀에는 많은 조경인들이 환호하고 감동하였습니다. 2006년 중앙정부에 시설조경 및 산림조경 직류로 조경직 공무원 직제가 신설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인사혁신처 및 관계부처로부터 한국조경학회에 조경직 공무원 채용과 관련하여 다양한 자료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청에 대응하기 어려움이 많았으나 연일 밤샘 작업을 거듭하고 수차례 보완 끝에 ‘푸른 국토, 행복한 국민 3.0’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국무총리실, 인사혁신처, 국토교통부, 환경부, 산림청, 문화재청에 책임있는 담당자들을 면담하여 조경직 공무원 채용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준비된 보고서를 전달하였습니다. 조경직 공무원을 새롭게 채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허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관계자에게 조경직 공무원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모멘텀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국토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과 조경인들에 대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조경인 여러분! 이번에 발표된 조경직 공무원 채용계획의 핵심은 올해 조경직 공무원 22명을 경력채용하고, 2020년부터는 매년 약 60여명을 채용하여 2022년까지 관련 부처에 약 200명의 조경직 공무원을 채용하는 것입니다. 범정부적으로 조경 전문인력을 확충함으로서 정부 각 부처가 추진 중인 미세먼지 저감 및 도시공원일몰제 등 국가적 현안에 대응하고 도시재생, 뉴딜 등 지역밀착형 생활 SOC사업과 수준있는 공원 조성을 통하여 아름답고 품격있는 국토경관을 조성해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산림청과 문화재청, 그리고 국토교통부 등 관련부처에 조경 관련 조직의 발전과 지자체의 조경직 공무원 채용을 검토하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실천계획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푸른 국토를 만드는데 조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성원해 준 이낙연 총리님과 정부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중에도 의견을 경청해 주신 정부 부처 관계자, 특히 국무조정실과 함께 조경직 공무원 현황을 일일이 파악하고 종합적인 채용 계획을 만든 인사혁신처에도 조경인을 대표하여 국민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경직 공무원 채용계획의 수립과정에서 공정성과 객관성, 그리고 보안을 위해 진행 과정을 조경인과 함께 공유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뒤늦게 양해를 구합니다.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고 저의 까다로운 요구를 이겨내고 함께 노력해 준 한국조경학회 교수님과 한국조경협회 조경인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준 언론사와 뜻을 같이 하고 함께 노력한 환경조경발전재단 단체장과 관련단체장께도 감사드립니다. 이제 조경분야가 정부 및 지자체의 전문분야로서 본격적으로 자리매김하는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한 올바른 조경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이 구축된 것입니다. 조경인은 창의적이고 합리적 사고를 통하여, 국민이 행복한 푸른 국토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비하고 도시공원 및 녹지의 수준을 향상시켜야 하며, 미세먼지를 저감하고 기후변화와 재해에 대응해야 합니다. 도시재생, DMZ 평화공원, 조경산업 및 기술의 혁신, 정원문화의 확산, 자연생태계 보전 및 관리, 전통 조경 문화의 계승과 향유 등 많은 국가적 현안을 해결하는데 조경인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향후, 조경직 공무원은 올바르고 전문적인 행정 서비스로 국민에게 가까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토에 대한 비전과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정부와 지자체에 조경 전담 조직을 만들고 조경 정책을 발굴하여 아름답고 품격있는 국토를 만들어 나가는데 노력을 경주합시다. 우리 스스로의 역량과 전문성을 강화하여, 열린 사고로 미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갑시다. 다시 한 번, 조경직 공무원 채용을 위해 노력해 주신 정부 부처, 조경인,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9년 4월 23일 이상석 /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한국조경학회 회장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나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듯, 우리의 생활공간에서 나무와 숲은 대단히 중요하다. 잿빛 콘크리트 문명에 찌든 요즘 도시들은 한결같이 ‘숲 속의 도시’, ‘도시 속의 숲’을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생활공간 주변의 나무와 친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나 이름을 모르고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우리 주변의 나무와 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나무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나무 이름을 부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국제식물명명규약에 따른 ‘학명(學名, Scientific Name)’ ▲국가가 표준으로 정한 나무 이름인 ‘국명(國名, National Name)’ ▲영명·일본명·중국명처럼 국가별로 자신의 언어나 문자로 표기하는 ‘외국명(外國名, Foreign Name)’ ▲일부 사람이나 특정 지방에서 부르는 ‘별명(別名, Nickname)’이나 ‘향명(鄕名, Vernacular Name)’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일반명(一般名, Common Name)’이 그것이다. 일반명은 ‘보통명(普通名)’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배롱나무’를 ‘백일홍나무’나 ‘목백일홍’으로 부르고 있다. 여기서 배롱나무는 우리나라가 표준으로 정한 ‘국명’에 해당하고, 백일홍나무나 목백일홍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통용되는 ‘일반명’에 해당한다.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학명은 Lagerstroemia indica Linnaeus다. 영명은 Crape Myrtle, 일본명은 サルスベリ, 중국명은 紫薇花다. 일부 사람이나 특정 지방에서 흔히 부르는 간지럼나무는 별명이나 향명에 해당한다. 국명, 외국명, 별명, 향명, 그리고 일반명으로는 전 세계의 모든 나무들을 일대일로 대응해 지칭할 수 없다. 국명·외국명·향명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고, 세계 공통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일반명이나 별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나무들의 통일된 이름이 필요하게 되었다. 1867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식물학회에서 세계 공통의 이름을 만들기 위해 ‘국제식물명명규약(國際植物命名規約, International Code of Biological Nomenclature)’을 만들었다. 이 국제식물명명규약에서 정한 방식에 따라 만들어진 학명은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통일된 나무 이름이다. 나무는 각 국가에 따라 여러 이름을 갖지만, 통일된 학명이 있으므로 세계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다. 국제화 시대에 학명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 학명은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가 만든 ‘이명법(二名法, Binominal Nomenclature)’에 기초해, ‘속명(屬名)’과 ‘종소명(種小名)’ 단 두 가지로 모든 나무를 표기할 수 있다. 하나의 학명은 오직 하나의 종(種)을 가리키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생물 종의 표준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이름이다. 한 나라에서 같은 나무를 여러 이름으로 다양하게 부르면,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여러 이름이 갖는 뜻이나 함축된 의미를 알게 되는 장점이 있다. 언어에 있어 사투리의 역할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정감 있고 맛깔스런 사투리도 있어야 하지만, 국어 사용에 있어 혼란을 방지키 위해서는, 공용어는 마땅히 표준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경우 표준어를 우선해서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관점에서 국가가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나무 이름을 표준으로 정한 ‘국가표준식물명(國家標準植物名)’ 즉 국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일반명이나 향명, 별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국명 사용을 원칙으로 모든 경우에 국명을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루는 조경수는 현재 국명, 일반명, 별명, 향명이 서로 혼용된 채로 불리고 있어 혼란스런 경우가 대단히 많다. 같은 나무를 사람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나무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백목련(Magnolia denudata)을 목련(Magnolia kobus)으로 알아 백목련을 목련으로 잘못 부르고, 정작 목련은 산목련(별명)으로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메타세쿼이아, 메타세콰이아, 메타세코이어 등과 같이 다르게 불러도, 이 정도는 사소한 일에 해당하는 것일까? 나무 이름은 정확하고 통일된 국명으로 부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에 해당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조경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강철기 / 경상대학교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
  • 02. 나무가 춤추는 올림픽공원 화면 가득 녹색이 펼쳐진다. 하늘은 그야말로 파아란 하늘색이다. 그 사이를 사람들이 즐겁게 거닐지만, 하얀 토끼와 초록 거북은 숨이 차다. 배우들은 분장을 하고 종일 뛰어다니며 술래잡기하듯 재미를 이어간다. 시대를 풍미했던 TV쇼 「무한도전」 속 장면이다. 배우들이 종일 뛰어다닌 너른 잔디밭과 파아란 하늘, 갖가지 푸른 잎의 나무들은 올림픽공원에 있다. 공원은 원래 이런 곳이다. 한적한 시골 풍경의 낮게 깔린 녹색 자연을 숨죽이며 감상하기도 하지만, 뛰어놀며 시끄럽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현대 도시에서 공원은 자연을 가둬놓은 모습이지만 최소한 그 안에서는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시야를 열어주고 계절을 숨 쉬도록 하며 같은 모습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리듬처럼 듣게 한다. 우리가 이렇게 뛰놀 수 있었던 것은 언제였던가? 우리가 푸른 자연을 이렇게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또 언제였던가? 이곳은 그런 점에서 여러 의미 층위가 중첩된 한국 공원의 역사적 장소이면서 일상적 공원이다. 다행히도 국가적 관심이자 국제적 행사 장소였던 이곳은 이제 사람들이 즐기는 도시의 거대한 녹색 공간으로 지속되고 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조성된 올림픽공원은 지난 1986년 45만여 평의 부지에 완공되었다. 공원 중심부에는 몽촌토성이 복원되어 도심에서 만나기 어려운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고, 이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5개의 경기장이 반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평화의 광장, 몽촌해자, 수변무대, 올림픽 미술관, 몽촌토성, 88호수, 만남의 광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_ 월간 환경과조경 편집부, 『PARK SCAPE』, 도서출판 조경, 2016, p.48. 넓은 도시 공간이 필요한 기능별로 구획되고 그 사이를 동선으로 이어가며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입체적인 짜임을 만들었다. 이만한 곳도 없었을 것이다. 그 사이 성장 궤도의 경제와 강남 지역의 개발이 맞물려 자본 축적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국제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이벤트로 성과를 보이려는 열망이 우리 공원 역사의 중요한 단면을 형성했다. 그것이 이제는 올림픽공원의 개성으로 성장하였다. 커다란 잔디 언덕이 하늘과 직접 만나는 풍경들이 곳곳에 등장한다는 점이 올림픽공원의 가장 큰 특징인데 이는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구획된 공간들은 또 길들이 나무를 따라 연결된다. 나무가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푸른 잔디가 수평면을 통일해주면 그 사이로 나무들이 길을 안내하는 식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들도 저마다의 크기와 모양으로 자라나 마치 공원이 본래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것처럼 느끼게도 한다. 그런 특징은 이 땅 자체의 역사성도 한 몫 한다. “올림픽공원이 있는 땅은 백제 초기 토성이었던 몽촌토성(夢村土城)이 있던 자리입니다. 바로 북쪽 위의 풍납토성(風納土城)과 하나의 지역을 이룹니다. 풍납토성이 북성(北城)이라면 몽촌토성은 남쪽에 있다 해서 남성(南城)이라 불렀습니다. 두 토성 사이를 흘러서 한강으로 들어가는 천이 성내천(城內川)이에요. 토‘성 안을 흐르는 물’이라는 뜻입니다.” _ 조성룡·심세중, 『조성룡 건축과 풍화: 우리가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수류산방, 2018, p.59. 우리는 도시의 공원이 그런 역사 위에 놓인다는 점을 쉽게 놓친다. 국제적 행사를 배경으로 새롭게 개발되는 땅에 역사를 바탕에 두고 세계적 이목이 집중되도록 건물 배치마저 한 눈에 들어오게 하며 촉박한 시간에도 기지를 모아 너른 공원을 모범처럼 만들어낸 것이지만, 그 땅은 이미 수천 년의 도시 발자국이 거름으로 남아 있었다.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 사이에 정착하고 산업화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드라마를 펼치는 와중에 어리둥절 옮겨 심어진 나무들도 저마다 여기가 내 자리네 열심히 뿌리내렸고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을 이뤘다. “올림픽공원은 아주 조형적인 폼(form)을 빚었어요. 성의 구릉으로 탁 펼쳐진 잔디밭을 오르락내리락 산책하죠. 그 공원의 가장 중심축에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평화의 문>(1988년)이 우뚝 서 있고, 그 너머에 남한산성을 향해서 방사상의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1988년 준공)가 펼쳐집니다. 성내천과 남한산성 사이의 땅에 1980년대가 올림픽이라는 사건을 기념하면서 그려 낸 거대한 상징입니다. 아, 드라마틱하지요. 그런데 이 형상이 너무나 강해서 보기에 따라서는 남한산성과 몽촌토성을 짓누르는 듯도 합니다. 그 오래된 토성의 구릉이 마치 공원의 폼을 위한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_ 조성룡·심세중, 앞의 책, p.73. 그렇게 올림픽공원은 바닥면과 하늘면, 그리고 수면이 조화를 이루는 특별한 공간으로 빚어진 것이다. 기념물과 예술이 현대적 의미로서 가미되며 공원은 일상적이지만 세계적인 가치를 지향하게 된다. 처음에는 압도하는 인공적 풍경이 공원을 휘감았지만, 이제는 공원이 그대로 뛰놀고 산책하는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하면 시간과 함께 멋대로 자라난 나무 때문이다, 공원을 사랑한 시민들 때문이다. 이곳의 특징은 무엇보다 초록색과 나무들에 있는 것이다. 초록의 바닥면에 한껏 제 멋대로 형태를 자랑하는 나무들이 계절을 보여주고 자연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올림픽공원은 언덕이 만들어놓은 터의 형상부터 나무가 뛰노는 사이로 도시민들이 함께 자연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이러한 풍경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땅이 자리를 잡아야 가능하다. 나무는 처음 심어 놓은 그대로보다 자리 잡고 뿌리내린 후가 아름답기 마련이고, 몇 차례의 계절을 거치며 축적된 시간은 많을수록 우리에게 전해오는 감성도 깊이 있고 다양하게 한다. 올림픽공원이 좋은 점은 소나무 일색의 이념의 수림(樹林)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나무가 저마다 넉넉한 공간을 가지며 서로 섞이고 어울리며 원로(園路, garden pathway)마다 저마다의 풍경을 만드는데 있다. 그리고 잘 가꾸었기 때문이다. 이런 공원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 그러나 이 공원은 개발이 만들어낸 도시의 새로운 기능 공간이라는 본래의 한계가 있다. 대대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 거대한 문주형 조각과 야외 예술작품, 수변공간과 무대, 주변의 방사형 아파트 등은 본래의 공원이 지향하는 어떤 것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근대 이후 우리에게 공원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 태도가 그대로 묻어난다는 점은 이후 만들어진 대형공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다행히도 공원은 생명을 품는 공간이어서 언제나 그대로인 것 같은 공원일지라도 쌓이는 시간 앞에 장사 없고 자라는 나무 앞에 손길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30여 년이 지난 공원은 나무와 잔디가 주인공이 되어 있다. 나무들은 풍경에 따라 크기든 모양이든 그늘이든 저마다 기분 좋게 뿌리내린 모습이다. 올림픽공원이 점점 더 사랑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공원은 그러니까 강력한 구조물이나 건축물로 성장하고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땅과 계절에 적응하며 정착한 나무들이 춤추고, 계절과 꽃향기를 즐길 줄 아는 시민들에 의해 성장하고 지속되는 것이다. 나무가 춤추면 공원이 들썩인다. 공원이 들썩이면 도시는 춤추기 시작한다.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그랬고 베를린의 티어가르텐이 그랬다. 런던의 하이드파크, 파리의 볼로뉴숲은 또 어떤가? 나무는 도시에 간섭하기도 도시를 북돋기도 하며 도시가 춤추게 한다. 이곳은 그 대표 격이다. 그런 공원을 느끼고 즐겨 보자. 춤은 흥에 겨워 절로 흐르기도 하지만 인내와 슬픔을 승화하며 영혼이 담긴 몸짓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되돌아보면서. 짧게 보자면 우리 도시에서 공원은 서구와는 달리 자생성이 강한 장소로 성장한 측면이 있다. 이것은 억세고 다부진 밀림과 야생의 공원이 아니라 언제나 포근하고 누구나 포용하는 숲과 자연의 공원이라는 의미이다. 자생성보다는 생태성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 시대, 우리식의 도시 공원은 그런 하늘하늘한 춤사위의 나무와 땅으로 연결되는 풍경으로 누구든 자유롭게 맞이하는 오픈스페이스라는 것이다. 올림픽공원은 그렇게 “꽉 찬 춤추는 빈 터”라는 것이다. Park 01. 공원에서 춤추는 나무들 - 자연에서 태어난 공원 어느 공원이든 나무가 없는 경우는 없다. 햇볕이 다르고 빗물이 다르더라도 공원이라면 어떤 공원이든 나무가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공원은 태생부터 자연의 일부였고 그 기능을 간직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나무를 별도로 배우지 않으면 잘 모른다. 길마다 다른 가로수는 단풍철 정도가 아니면 그다지 눈길을 잡지 못한다. 별도로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환경문제가 피부에 와 닿는 요즈음에 몇 가지는 알아두면 좋겠다. 이 나무와 초화만은 꼭 알아두자 요즈음의 공원은 친절하여 나무마다 명찰을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진귀한 초화류와 정원에는 친절하게 별도의 안내판이 놓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보가 많지 않고 용어가 낯설기 일쑤이며, 잎이 없으면 그나마 그 나무가 그 나무로 보이기 마련이다. 또한 공원에 모든 나무와 초화가 있을 수는 없기에 지역마다 위치마다 볼 수 있는 나무들이 다를 수밖에 없어 개인의 취향에 적합한 나무가 언제나 가득한 것도 아니다. 조금만 나무에 대해 알고 있다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 모두 알고 있을 필요는 없겠지만 몇 가지 나무들은 알아두면 비교하며 즐길 수 있으리라. 식물은 주로 잎의 모양으로 구분된다. 공원에 사용되는 나무와 초화는 지역의 기후에 따라 다르지만 200여 가지 정도가 주로 쓰인다. 많지는 않지만 수목학을 공부하듯 나무를 구분하고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으므로 우리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관심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침엽인지 활엽인지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공원에 가득한 나무들이 건네는 이야기와 치유의 손길을 모른 척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몇 가지만은 읽어두고 알아두도록 하자. 1. 소나무 잎은 몇 가닥일까요? - 소나무/잣나무/섬잣나무/스트로브잣나무/리기다소나무/반송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침엽수는 소나무와 잣나무이다. 소나무과에 속하는데, 크기와 모양에 따라 다양한 수종이 있다. 대체로 잎의 수와 줄기 모양으로 구분한다. 먼저 바늘 같은 잎의 숫자로 구분이 되는데, 2개인 경우 소나무, 반송, 곰솔, 3개인 경우 리기다소나무, 백송, 5개인 경우 잣나무, 섬잣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등이 있다. 대체로 2개인 경우는 소나무고 5개인 경우는 잣나무다. 2. 벚나무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 왕벚나무/산벚나무/수양벚나무/겹벚나무 봄에 화사하게 꽃피우고, 여름에 그늘을 만들어주며, 가을에 단풍을 주는 대표적인 나무가 벚나무다. 벚나무는 큰 크기와 달리 장미과에 속하는데, 꽃 모양보다는 나무의 전체적인 모양으로 구분한다. 연분홍의 꽃이 가지 전체에 매달리듯 피는데, 원래 나무 모양이 둥그런 것이 왕벚나무와 산벚나무이고, 가지가 축 늘어져 바람에 날리는 것이 수양벚나무다. 마치 연분홍의 카네이션이 달린 듯, 가지 곳곳에 겹이 있는 꽃이 달리는 것이 겹벚나무다. 아름다운 꽃이 피는 장미과 나무로는 모과나무, 사과나무, 아그배나무, 살구나무, 매실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해당화, 조팝나무, 장미 등이 있다. 3. 목련꽃의 색깔을 아시나요? - 목련/자목련/백목련/일본목련/산목련 목련꽃은 4월부터 피기 시작한다. 한 겨울에도 아름다운 가지를 유지하고 있다가 봄이 되면 봉우리를 올리는데, 꽃이 피기 전까지는 그 색을 알기 쉽지 않다. 대체로 잎이 얼굴만 하게 크고 꽃도 거기에 맞추어 크면서 흰 것은 일본목련이다. 잎도 작고 꽃 크기도 작은 것이 그 밖의 목련들이며, 색깔에 따라 흰색은 목련, 백목련, 보라색은 자목련으로 구분한다. 하나의 줄기를 가지는 이런 목련과 달리 지면에서부터 가지가 여러 갈래로 자라는 산목련(함박꽃나무)도 있다. 4. 단풍나무는 몇 가지나 있을까요? - 단풍나무/홍단풍/청단풍/중국단풍/신나무/고로쇠나무 등 단풍나무는 독특한 잎 모양과 아름다운 단풍으로 사랑받는다. 잎이 크게 갈라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그 잎의 갈래로 구분하는데, 세 갈래인 것이 중국단풍, 신나무, 다섯에서 일곱 갈래인 것이 고로쇠나무, 단풍나무, 일곱에서 아홉 갈래인 것이 홍단풍, 아홉에서 열한 갈래인 것이 당단풍이다. 5. 참나무는 몇 종류? - 갈참나무/굴참나무/졸참나무/떡갈나무/신갈나무/상수리나무/밤나무 등 우리나라는 국토 전체에 걸쳐 다양한 참나무가 자라고 있다. 대표적인 활엽수 종류로 밤이나 도토리와 같이 이로운 열매가 열린다. 잎의 모양도 그 수만큼 다양한데, 그림을 보고 구분해보자. 아래 그림의 나무들을 모두 참나무라고 부른다. 6. 길가의 빽빽한 작은 나무는 무엇일까요? - 쥐똥나무/조팝나무/회양목/옥향 커다란 줄기로 자라는 나무가 교목이라면, 작은 크기로 가는 줄기가 한 곳에서 많이 올라와 자라는 것이 관목이다. 손가락보다 가는 굵기로 아주 작은 잎들을 빽빽하게 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울타리나 경계부에 쓰이는 경우가 많고, 모양을 내거나 장소를 꾸밀 때도 쓰인다. 쥐똥 같은 까만 열매가 달리는 쥐똥나무, 좁쌀로 지은 밥처럼 작고 하얀 꽃이 피는 조팝나무, 둥그런 공처럼 자라고 추위와 전정에 강해 모양을 내기 좋은 회양목, 회양목처럼 생겼지만 잎이 막대처럼 생긴 엄연한 향나무 옥향 등이 있다. 7. 화려한 꽃과 모양을 지닌 나무는? - 백일홍/박태기나무/자귀나무/안개나무/계수나무 모양보다 꽃이 화려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무도 많다. 한번 꽃이 피면 백 일 동안 피고 지고 한다는 백일홍이 대표적이다. 진한 분홍색의 꽃과 얼룩 같고 부드러워 보이는 줄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백일홍보다 더 진한 분홍색을 띠는 꽃도 있는데, 가는 가지가 곧게 자라는 박태기나무가 그렇다. 4월 말에 잎보다 먼저 줄기를 따라 빼곡하게 진분홍의 꽃이 달리는데, 나중에는 콩깍지 같은 열매가 달린다. 우아한 자태를 지닌 자귀나무는 흰색과 분홍색이 섞인 밤송이 같은 꽃이 피는데, 가지가 층을 만들고 그 위에 분홍색 눈이 쌓인 것처럼 보이면서 오묘한 색상을 자랑한다. 잎은 잔잎이 아카시아 잎처럼 열을 지어 달리는데 건드리면 오므라들기도 한다. 자귀나무와 비슷하지만 층이 없고 솜사탕 같은 꽃이 달리는 것으로 안개나무가 있다. 계수나무는 옥토끼를 떠오르게 하는 친근한 이름이지만 주변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는데, 최근에 조경수로 많이 사용한다. 그만큼 귀한 나무인데, 잎이 하트 모양으로 친근함이 들고 가지가 위로 솟으면서도 벌어지지 않아 잎이 진 겨울에도 보기 좋은 나무이다. 특히 가을에 노랗게 물든 잎이 하나 둘 천천히 떨어지는 모습이 아주 아름답다. 8. 휴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녹음수 - 느티나무/느릅나무/회화나무/팽나무/튤립나무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들도 많은데,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는 넓은 공간을 주기 때문에 마을을 대표하는 정자나무로 심곤 했다. 대표적인 것이 느티나무로 수백 년을 자라 줄기의 굵기만도 몇 미터를 넘기기도 한다. 비슷한 나무로 잔잎이 가득한 느릅나무가 있다. 그 밖에도 전통적으로 많이 쓰인 나무는 잎이 양쪽으로 줄지어 나는 회화나무, 가지가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한 팽나무가 있다. 잎이 튤립 꽃처럼 생긴 튤립나무도 많이 쓰인다. 잘 자라고 크게 자라면서 커다란 잎으로 그늘을 충분히 만든다. 9. 몇 가지 가로수 - 메타세쿼이아/플라타너스/은행나무 최근 들어 가로수로 많이 쓰이는 나무로 메타세쿼이아가 있다. 뾰족한 삼각형 모양으로 자라는데 아주 크게 자라고 잘 자라기 때문에 가로수로 쓰기 좋다. 담양에서는 이 메타세쿼이아로 수목 터널을 만들어 유명해지기도 했다. 낙우송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가격이 싸 가로수와 경계부에 많이 쓰인다.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와 은행나무는 흔하게 가로수로 쓰이는데 잘 자라고 공해에도 잘 견디는 나무다. 10. “꽃보다 아름다운 잎”(권순식·노회은 외 4명, 『꽃보다 아름다운 잎』, 도서출판 한숲, 2016) “잎처럼 다양한 개성과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들에게 꽃보다 아름다운 잎을 소개합니다.” 잎이 이미 꽃이라는 이 책 앞부분에 쓰인 문구이다. 식물은 흔히 꽃이 먼저 화려하게 다가오지만 잎은 꽃만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을 보여준다. 잎은 계절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나무만의 개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11. 계절별 색다른 초본류 관목과 초화류는 손쉽게 정원을 만들 수 있어 좋다. 최근에는 관목과 초화류를 조화롭게 잘 활용하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식물의 키이다. 초본류는 다 자랐을 때의 키를 기준으로 작은 것은 앞에 큰 것은 뒤에 배치하여 심는 것이 좋다. 목본류가 다 자랐을 때 나무끼리의 간격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초화류는 계절별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색상도 중요하다. 특히 그 종류와 식재 방법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설계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며, 판매장에서 선택하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모두 다 살필 수는 없고 전반적으로 무난한 초본류를 꽃피는 계절 중심으로 나열해 본다. 그러나 초본류는 꽃만 아니라 잎과 줄기의 모습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봄: 가우라류, 괭이눈, 꼬리풀류, 금꿩의다리, 금낭화, 깽깽이풀, 노랑꽃창포, 노루귀, 돌나물, 돌단풍, 동의나물, 둥굴레, 매발톱꽃, 무크카리류, 바위취, 붓꽃, 상록패랭이, 아주가, 애기똥풀, 앵초, 양지꽃, 얼레지, 은방울꽃, 천남성, 할미꽃 여름: 가시연꽃, 꽃잔디, 금매화, 금불초, 기린초, 꼬리풀, 꽃창포, 꿀풀, 노루오줌, 도라지, 동자꽃, 백리향, 벌개미취, 범부채, 부처꽃, 분홍바늘꽃, 비비추, 산수국, 삼백초, 상사화, 수련, 어리연류, 엉겅퀴, 옥잠화, 원추리, 참나리, 참좁쌀풀, 창포, 초롱꽃, 패랭이꽃 가을: 감국, 구절초, 꽃향유, 둥근잎꿩의비름, 벌개미취, 부들, 산솜방망이, 수크령, 쑥부쟁이, 아스타류, 아이비, 용담, 참억새, 참취, 투구꽃, 큰꿩의비름, 해국, 꽃무릇 겨울: 맥문동, 복수초, 수선화, 수호초, 왕개쑥부쟁이, 털머위 도심에서 자란 현대인들은 대개 나무를 잘 모른다. 가로수로 보고 자란 은행나무나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을 이름이나마 기억하는 것도 대단하다. 나이가 들수록 그 수는 많아지지만 이 또한 관심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미미한 수준이다. 북한산, 관악산처럼 도심의 주요 산지에 자라는 나무들은 그나마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도 좋다. 녹색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굳이 그렇게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충분하다. 다만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나무들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이야기와 신화를 들려줄 것이고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일러주며 아름다움 너머의 치유와 의미를 알게 해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뭐 꼭 그렇게 나무를 공부하듯 알아가라는 것은 아니다, 꼭 알아두라 했지만 말이다. 안명준 조경평론가
  • 희소성이라는 이름의 부제(연재를 시작하며) 사진을 직업으로 한다하면 “어떤 카메라를 사야할까요”라는 질문을 받는 일이 허다하다. 대화는 “예산을 얼마나 잡고 있나요?”로 시작해서 이러저러한 스펙에 대한 대화를 꺼내다가 “원하는 것으로 구입하세요”로 끝이 난다. 마치 어설픈 연애상담사처럼 본인이 원하는 답을 듣기 원했던 사람에게 엉뚱한 내 생각을 심어주려다가 헛된 욕심이었음을 깨닫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결국 본인이 구매하고 싶은 것은 정해져 있다. 나에게 확인하고 싶을 뿐, 대상이 관점을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다만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어쩌면 ‘어떤 카메라를 사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가’고 되묻는 것이 더 생산적인 대화였지 않았을까? 이미지 생산물의 탄생에 기여했다면 그것에 책임을 져야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여러 질문을 하다 보니 죄책감마저 든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매체들의 홍수, 어쩌면 공해라고까지 표현될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틈바구니에 누군가의 사진이 있다. 한 장씩 정성으로 찍어내던 사진의 시대는 갔다. 오늘 지금 순간을 보여주기 위해 각종 매개체들이 뿜어내는 이미지들은 마치 사진의 광원에 다름 아니다. 광원은 다양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나는 함부로 이것을 공해라 표현하고 싶어진다. 내가 만들어낸 이 글과 사진이 한낱 공해로 전락하지 않을지 미리 걱정하며. 서비스하는 전문가 한 달에 한 번 월례행사 중 하나로 미용실 가는 것을 자력갱생으로 삼고 있다. 이발은 기분전환에 그만이다. 5년 이상 다니다보니 눈만 마주쳐도 원장의 ‘왔는가?’라는 반응이 익숙하다. 이어서 시작하는 대화는 짧다. ‘짧게?’ ‘짧게.’ 두 단어로 시작하는 익숙한 대화는 단골의 특권 중 하나라 생각했다. 한편으로 가끔 다른 스타일로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익숙한 손놀림에 젖어들었는지 선뜻 바꿔지지 않는다. 상상해본다. 만약 다른 스타일로 바꾸고 싶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알아서 해주세요’보다 구체적인 단어를 구사해야겠지. 아니면 예시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대로 해주세요 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이후의 대화는 어떻게 될까?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콕 짚어 말할까? 아니면 내가 제시한 것이 얼토당토않더라도 기어코 내(고객) 취향에 맞추어 줄까? 서비스라는 이름의 직업이 참 어렵다. 분명 ‘전문가’인데 동시에 고객에게 맞춰주는 ‘서비스 제공자’여야 한다. 적당한(?) 가격은 저 아래 깔려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프로(Professional)라고하면 좀 그럴듯하지만 전문가라면 어쩐지 서비스 제공자로 변하는 느낌이다. -개인적 생각이다- 사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전문가입장에서 보면 텔레파시를 지녀야하는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상대방이 원하는 방향은 무엇인지 예산은 얼마인지 끊임없이 추파를 던진다. 교감이 없다면 설왕설래해도 결국 견적서 한 장이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얼마에요?’ 예산 관련 대화는 시장통 흥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 괜한 자존심인지 전문가 타이틀을 붙이고 나누는 대화에서 적나라한 말이 나오면 자존심이 발동할 때가 있다. 하지만 어디 자존심이 밥 먹여 주겠는가. 상상이지만 존재하는 그것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는데?’, 고객은 ‘적은 예산에 고퀄리티’를 요구하지만 해답은 없다. 이럴 때 전문가는 ‘얼마나 어떻게 해줄 것인가?’ 매번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고객을 받을 수는 없다. 전문가는 당신의 만족과 나의 만족이 화학적으로 반응하길 바란다. 당신의 만족과 예산이 모든 일의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내가 하는 조경사진 활동도 다르지 않다. 매번 ‘알아서’가 주범이다. 그저 그런 컨셉과 시공이라 할지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실행에 걸림돌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건방질 정도로 처음 맞는 클라이언트에게 새삼스런 질문을 한다. ‘이것이 어떤 점에서 마음에 드시나요?’,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건가요?’ 이제 이일도 십여 년 하다 보니 조금씩 텔레파시가 맞는 고객도 생겼다.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알아서’보고 ‘알아서’ 촬영한다. 반대로 처음 맞는 고객에게는 계속 질문을 하려고 한다. 부디 고객님들아 기억해 주시라. 전문가는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끔 텔레파시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유청오 조경사진가
  • 무서운 건 괜찮은데 위험한 건 안돼요 한 놀이터 현장에서 우리 회사가 진행한 디자인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다. 한 아이가 디자인 속 흔들다리를 발견하고는 “무서운 건 괜찮은데, 위험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주었다. 당시 아이가 덧붙인 설명은, 흔들다리에 올라갔을 때 많이 흔들거리거나 그물다리 아래로 바닥이 보이는 것은 무서울 순 있지만 재미도 있으니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물에 구멍이 나거나 나사가 단단히 고정돼 있지 않아 그물 아래로 발이나 몸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리하게도 이 아이는 영어의 ‘risk(위험)’, ‘hazard(위험요소)’, ‘harm(손상)’을 구분하고 있었고, 많은 놀이 관련 전문가들의 ’risk‘ 관리에 대한 태도와도 일치했다. 위험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인 영국의 ‘Managing Risk in Play Provision: Implementation guide(놀이에서의 위험관리 실행 안내서)’에서 정의하고 있는 세 가지 개념과 이 아이의 말을 비교해볼 수 있겠다. risk 일반적으로, ‘risk(위험)’라는 단어는 가능성, 즉 해롭거나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개연성이나 가능성을 나타낸다. 위험관리 상황에서 이 단어는 부정적 결과의 심각성뿐만 아니라 가능성 또한 포함한다. hazard‘hazard(위험요소)’는 ‘harm(손상)’의 잠재적 원인이다. 위험요소는 도처에 있다. 손상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떤 환경에서도 위험하지 않은 행동과 사물은 없다. 사다리 위에서의 작업, 서랍을 여닫는 것도 손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위험요소이다. 만약 세상이 위험요소로 가득 차 있다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위험을 인지, 대응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harm손상이 포함되는 용어들의 사전적인 정의는 어떤 종류의 부상, 상처에 대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손상(harm)은 부정적인 의미로 여겨진다. 그러나 무언가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상처는 귀중한 교육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위의 세 가지 단어로 아이의 말을 재정리하면 ‘손상을 가져다줄 위험요소는 없어야하지만, 위험을 극복하는 과정은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수치로 된 안전 기준의 기계적 적용’ 이상이 필요하다. 놀이공간에서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 만들어졌고, 2014년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다. 놀이 공간과 관련된 유일한 법이다 보니 놀이터 조성과 관리에 있어서는 안전이 우선시되고 있다. 이 때문에 놀이터가 너무 밋밋하고 재미없어지고 있다는 의견도 많다. 안전 강조로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호기심을 충족하고 모험심을 기르기 어렵다는 지적은 우리나라에만 있지 않다. 앞에서 인용한 ‘Managing Risk in Play Provision: Implementation guide’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작성되었다. 이 가이드라인에 앞서 영국에서는 2002년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Managing Risk in Play Provision: A position Statement’라는 이름으로 놀이환경에서 위험 관리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위험의 평가와 관리는 기계론적인 과정이 아니다. 위험과 혜택 간의 균형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위험 수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아동용 물놀이장은 깊이가 얕을지라도 익사의 위험이 있다(부모의 지도가 있더라도). 하지만 이것은 보통 허용된다. 일반적으로 가능성은 매우 낮고, 위험요소는 명백하고, 즐거움과 물놀이를 통한 경험은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을 줄이거나 관리하게 되면 위험 감수로 인한 혜택도 줄게 된다.” 아이들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논다. 위의 선언문 이후에 작성된 ‘Managing Risk in Play Provision: Implementation guide’의 주제는 위험과 함께 위험이 주는 혜택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이를 위해서는 ‘수치화된 안전 기준의 기계적인 적용’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놀이공간에 대한 지방정부의 가치와 이해, 원칙, 규범을 나타내는 상위의 정책 프레임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정책 프레임과 전략에는 놀이가 갖는 이점과 놀이공간을 만들고 관리하는 놀이공간 제공자가, 위험을 감수하며 놀 수 있는 놀이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이러한 공간의 중요성도 제시되어야 한다. 이 보고서의 안전관리 정책의 위계를 보여주는 이미지를 보면 우리나라의 안전관리에 해당하는 기술검사는 가장 하단에 있다. 생각해볼 일이다. “손상을 가져다줄 위험요소는 없어야하지만, 위험을 극복하는 과정은 흥미롭다.”안전만 강조하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호기심을 충족하고 모험심을 기르기 어렵다.위험과 함께 위험이 주는 혜택도 관리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며 놀 수 있는 놀이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놀이공간에 대한 정책과 전략이 제시돼야 한다. ‘Managing Risk in Play Provision: Implementation guide’이 필요하신 분들은 조경작업소 울([email protected])로 문의하시면 된다.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최근 조경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일부 대학의 조경학과 입학경쟁률이 예년에 비해 조금 낮아진 곳도 있다. 과천에 있는 조경수 묘목시장도 매출이 줄었다.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몇 가지 측면의 연구들을 통해 조경산업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낙관해본다. 건설산업연구원의 ‘국내 건설투자의 중장기 변화추이 연구(이홍일 외, 2009)’에서는 건설산업의 투자 및 형태 변화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의 건설수요를 명쾌하게 예측하고 있다. OECD국가 23개국 38년간의 데이터를 기초로 소득수준과 전체 건설투자 비중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1인당 GDP가 약 1만2000달러 수준까지는 소득수준 증가에 따라 건설투자비중이 지속적으로 늘다가, 이후에는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건설투자비중이 점차 감소하는 특징을 보이며, 1인당 GDP가 3만 달러에 도달하게 되면 건설투자비중이 더욱 감소해 10%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에는 국내 총생산에서 건설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상회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지나왔으나 1인당 GDP가 3만달러에 도달한 현 시점에서는 건설투자비중이 16%선으로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조경산업은 현 수준인 7조 원 정도의 시장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이 건설산업은 GDP와 연계돼 증가하게 되므로 우리나라 GDP가 선진국수준인 5~6만 달러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조경산업의 규모도 이에 비례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 연구에서 우리나라는 건설산업이 성숙기에 진입함에 따라 과거와 같이 대규모 신도시 개발, 기본적인 SOC시설 확충 등의 프로젝트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건설패턴도 선진국가 형태로 변모해 커뮤니티 및 자연친화형 주거공간 창조, 녹색빌딩, 초고층 빌딩, 도로확장, 초고속 하이웨이 및 철도, 초장대교량 등과 같은 신기술에 의해 사회적 니즈(needs)를 질적으로 보다 충족시키는 건설 프로젝트와 도심재생, 주택 리모델링, SOC시설 유지보수, 기존건축 및 시설물의 재생과 유지관리 분야의 프로젝트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산림청은 ‘정원산업 현황조사와 전망(2015)’에서 해외 정원산업의 시장규모는 2013년 210조 원(미국 55조 원, 일본 13조 원)에서 2018년 243조 원까지 약 16% 늘어나며, 2018년까지 정원산업 연평균성장률은 2.9%가 될 것으로 예측돼 지금 추세보다도 다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동 보고서에서 전문가 그룹의 인식을 통해 장단기 우리나라 정원산업 시장규모를 예측한 결과, 2017년까지 단기적으로는 99.7~111.2% 성장해 평균 1조3487억 원, 2025년까지 장기적으로는 105.6~134.5% 성장해 평균 1조5362억 원으로, 이 때 최대 1조721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외에도 세계 주요도시의 공원면적과 우리나라의 1인당 공원면적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평균 공원면적은 9.6㎡로 미국(뉴욕) 18.6㎡, 영국(런던) 26.9㎡의 1/2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미국, 영국 등 선진국 수준으로 되면 이에 비례해 공원과 녹지 확충에 대한 요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의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조경산업의 수요는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증가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급변하는 새로운 시장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조경산업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본다. 우선적으로 교육과 연구에 대해 창의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조경 트렌드(trend)에 맞는 공간계획과 설계기법의 개발도 필요하지만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진 유지관리와 수목생산 등에 대한 교육도 보완돼야 한다. 조경을 위한 소재 중 가장 중요한 품목인 수목에 대한 대학에서의 교육과정은 1~2개 정도만 개설돼 수목의 번식과 생리 등 기초적인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수목과 식물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의 조경계획과 설계는 많은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다. 조경수산업만 해도 연간 7000억 원 정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나 조경수 생산을 위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경우 조경수 유묘의 번식, 조경수 성목 생산과정 등을 기계화해 인력투입을 최소화하고 있고 첨단기술이 가미된 조경수 컨테이너재배 등을 통해 고품질의 균일한 수목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 농촌진흥청과 산림청의 지원으로 컨테이너 재배기술 등이 일부 연구되고 있으나 연구비 규모나 연구참여 인력 등이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조경분야 연구논문의 대부분은 계획과 설계분야에 치중돼 있는 실정이다. 조경산업이 타 분야와의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녹색기술 등 첨단설계기법 외에도 조경수생산, 조경유지관리 등의 분야에서 선진화된 기술이 도입돼야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시대를 맞아 조경수생산용 농기계 및 로봇기술, 컨테이너재배기술, 조경수 재배와 유지관리 기술 등에 관한 연구와 이에 관련된 빅데이터를 구축해야한다. 조경수 유묘생산 등에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을 융합하는 기술이 도입된 스마트팜 조성 등으로 조경수 생산방식을 획기적으로 변모해 나가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경산업의 변화에 대응하는 면밀한 전략수립과 이에 적합한 교육과정의 보완이 필요하고 실제적인 연구를 위한 조경가들의 노력과 함께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하겠다. 권영휴 / 한국농수산대학 조경학과 교수
    • 권영휴 한국농수산대학 조경학과 교수
    • 2019-03-21
  • 01. 도시가 춤춘다(연재를 시작하며) “도시가 춤춘다!” 무슨 소린가? 그냥 해보는 소리는 아니고 여기저기서 지면이든 영상이든 도시를 부르는 ‘말(言)’들이 그렇게 들려서다. 지난 시절 ‘장소 만들기, 마을 만들기’가 설익은 채 요란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엔 제법 리듬을 타고 박자를 맞춰 추니 도시 ‘재생’이라는 사위가 볼 만하다. 도시가 춤추는 것이다. 혹자는 “나빌레라” 춤사위만 시끄러운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도시는 본래 일정 부분이 항상 공사 중인 터임을 생각한다면 굳건한 건설 현장처럼 오늘도 성실하게 새로 짓기를 계속하는 것이 별일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늘 보아오던 춤사위가 딱히 뭐라 하기 어렵지만 다르게 느껴진다면, 그것도 눈에 띄지 않다가 도시가 새롭게 춤추는 것인 양, 눈길에 말들이 오가며 얘기가 계속된다면, 한 번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을까? 공원을 떼어보니 우리시대 도시의 춤사위가 눈에 먼저 들어온 셈이다. 공원을 소개하면서 도시가 춤춘다는 이유는 우선 거기에 있다. 역사와 문화가 된 것을 찬찬히 보고자 할 때는 이처럼 가벼운 성찰이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최근 미세먼지로 촉발된 일상적 도시 공간의 문제는 지난 날 공원이 탄생하던 시절의 사회적 배경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더 나아가면 공원이 도시를 춤추게도 하는데 지금 여기 도시의 춤사위에 눈길이 먼저 가는 것도 그 일환인지 모른다. 공원이 도시를 춤추게 한다? 당면한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원은 그 본성상 도시를 가만히 두지는 않는다. 그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며, 우리가 잘 모르는 공원의 민낯을 먼저 살펴보고 공원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으며 사용되고 있는지, 좋고 나쁜 점은 있는지, 또 가볼 만한 공원은 어디인지 등을 우선 전반적으로 본 연재에서 다룬다는 점을 밝힌다. ‘춤추는 나무, 숨 쉬는 도시’는 그 한 갈래에 대한 이름이며, 이번 연재의 의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공원이 삶의 현장에 외부자처럼 놓인 지금 여기의 모습을 살펴보기도 하겠지만, 조용히 앉아 수줍은 노점상처럼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을 말없이 건네고 있는, 보아주거나 말 걸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공원의 속 얘기도 살펴보고자 한다. 팔 벌려 리듬을 타는 공원이 어떻게 도시를 춤추게 하는 지도 물론이다. 그리고 그것을 ‘공원미학’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우리 이제 그럴 때 되지 않았나? 자 이제 말하고 춤추는 공원을 살펴보자. 도시를 삶터로 바꾸는 나무의 춤사위에 뛰어들어 보자. 어울리며 즐기는 공원에서 숨 쉬는 도시를 느껴보자. 그리고 또 지금의 춤사위가 별일 아닌, 계속될 소란임을 읽어보자. 춤추고 숨 쉬는 게 즐거운 우리가 되어보자. ‘지금 여기 공원미학’의 조건 춤추는 도시를 느끼기 위해서, 우리 주변 공원을 보자, 공공공간을 보자. 일상의 공원은 단맛 가득한 상업가로를 벗어난 대표적인 오픈스페이스(open space)여서 도시를 제대로 맛보게 하고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공원을 먼저 짚고 가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학 전공처럼 공부하려는 것은 아니므로, 개념이나 어원을 깊이 고찰하기보다는 실생활에서 쉽게 지나치던 공원을 다시 볼 수 있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특히 새로운 생활공간으로 쉽게 활용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물론 최소한의 지식은 필요하다. 앞으로 유명한 공원들을 살펴보는데도 알아두면 좋다. 많이 듣던 말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낯선 상태 그대로 읽어둘 뿐 그렇다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차차 익숙해질 것이니. 도시가 사람이 모여 사는 땅(터)이라면 공원은 그 빽빽한 구축물들 사이 여유 공간이자 공적 공간임을 알아두자. 특히 방(건물) 안에 넣을 수 없는 도시민, 우리들의 휴식과 여가의 환경이자 자연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공원은 그런 점에서 ‘필수 시설’이기 때문이다. 시설이라니 낯설지만, 물건처럼 심지어 발명품으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이는 그간 우리가 공원을 보는 태도가 어떠했는지, 어떤 오해 속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그것을 따져볼 필요는 없지만 생각의 전도(顚倒)가 사유의 실로(失路)를 어떻게 이끄는지 산업과 문화 모두에서 급성장을 경험한 우리 사회에서 고질적 문제로 다방면에서 드러나는 하나의 현상 정도로 이해해둘 필요는 있다. 공원도 예외는 아닌 것이 이런 시각은, 물체나 제품으로 보는 시각은 법제도에 그대로 담겨 있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살펴볼 공원들이 우선 우리 실생활 속 공원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법제도에 따라 만들었다는 점에서 몇 가지는 기본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법 없이 살아온 날들이었을지라도 법을 모르면 의무도 권리도 까막눈이 될 수밖에 없음은 이제 공원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외우며 볼 필요 없이 우선 일별해두고 공원을 감잡아보자. 알게 모르게 우리가 가진 편견과 선입견은 그 뒤로 찬찬히 발견해 보자. 우리의 공원(公園, public park) 도입 근대적 공원은 영국에서 먼저 시작되어 일본을 건너거나 서구 도시공원 방문의 직접 경험으로 우리에게 수입된 개념이다. 공원 설치의 역사를 간단히 보자면, 1830년대에 영국에서 이미 시민에게 개방된 왕실정원이 있었고, 1847년에는 시민이 직접 만든 버큰헤드파크(Birkenhead Park)가 개장하기도 한다. 1858년 미국에 센트럴파크가 만들어지며 도시공원이 본격화되고, 1873년에는 일본 최초로 우에노공원이 서구적 공원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우리의 경우 1883년 인천의 만국공원을 시작으로 1896년 독립공원, 1910년 한양공원(남산공원)이 만들어지며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수용되고 전파”된 문물이었다(황기원, “서울 20세기 공원·녹지의 변천: 자연속의 도시에서 도시속의 자연으로”, 『서울 20세기 공간변천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2002, p.387). 초창기 도입된 공원은 이름이 먼저인 일종의 메시지와 같은 것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메시지는 공원의 구성에도 반영되어 강한 시각적 축 또는 거대한 기념물이 공원을 지배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즉 우리의 첫 근대식 공원들은 도시의 일상보다는 이념의 일상이 먼저 이식된 공간이었고, 자연에 대한 이상적 시각이라든가 전원에 대한 동경이라든가 하는 낭만적 입장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공원에 대한 기틀이 정립된 1960년대까지 우리에게 공원은 수입된 문물로서 우리 도시에 서식한 셈이다. 여기서 근대화가 빨랐던 일본이 명치 시대에 이미 파크(park)와 퍼블릭 가든(public garden)을 구분하여 공원(公苑)과 공원(公園)으로 따로 부르고 있었다(이시카와 미키코 저, 이용태 역, 『도시와 녹지 - 새로운 도시환경의 창조를 향하여』, 현진기획, 2004, p.213)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공공정원(public garden, 公苑)은 ‘장식적, 원예적 색채가 강한 공공의 정원’으로, 파크는 영국 풍경화식 정원 양식에 기초한 대규모 공원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니 “일본의 명치 시대 도입된 공원 양식은 정확하게는 공공정원이며, 수렵지에 기원을 두는 파크는 아니었다.”(위의 책, p.211).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했던 영국의 공원문화나 도시적 기능이 중요했던 미국의 센트럴파크와 같이 당시 서구 최신의 퍼블릭 파크(public park, 公園)와도 다소 다른 입지를 가졌던 셈이다.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겠지만 1930년대 도시계획은 우리에게 공원(公園)을 퍼블릭 가든으로 도시의 일상에 들여놓을 수 있는 기틀을 가졌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공원 유형 ‘가원(街園)’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방 이후 전쟁과 폐허의 시대를 지나 제도화 된 공원은 여가활동에 치우친 도시 시설로 규정되고 퍼블릭 가든의 성격은 제한되며 현재의 기능적 공원으로 재편된다. 그나마 기능적 공원은 1970~1980년대 경제 성장기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점차 성장이 가속화 되면서 도시 오픈스페이스로 진화하게 된다. 핵심은 우리에게 공원은 서구와는 다르게 시작되었다는 점이고, 가드닝(garden)의 전통이 공공정원(public garden)으로 연장되고, 수렵원(park)의 전통이 공공공원(public park)으로 확장되었던 서구적 공원 역사와 문화까지는 거기에 담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삶의 전통이 달라 그에 꼭 맞는 것이 우리에게 없었다는 점은 이제 다행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서구식 정원문화와는 다른 형식의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정원문화가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문화의 기저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대 정원과 공원을 유래 없는 우리식의 독특한 공동체문화로 다루게 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그것이 더 나아가면 최근 이런 녹색 공간과 푸른 공간을 묶어 녹색인프라(green infrastructure)로 재설정하며 도시의 빈 공간들을 도시의 구조를 다시 짜는 중요한 주인공(도시 기반)으로 부각시킨다는 점까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도 일단은, 알아만 두자.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전통과 현대, 객관과 본능, 기능과 일상이 뒤섞이는 공원녹지의 달라진 위상이 이미 우리의 일상까지 바꿔놓고 있다는 점은 기억해 두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공원이 도시를 춤추게 한다고 해버렸다. 천천히 말하려 했는데, 속마음이 묻어나 버렸다. 다음으로 서둘러 넘어가자. 이렇게 보면 요즈음 공원이 들썩이며 도시를 춤추게 하는 이유 하나는 드러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자연을 대하고 적응하는 우리만의 태도가 있었는데 그간 숨어 있던 그 본능이 꼭 맞지 않는 속옷처럼 수십 년을 같이 생활해온 공원 같은 기능적 공용 공간에 투영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만의 전통적 가드닝의 숨결이 그렇게 되살아난다고 하면 어떨까, 그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보도록 하고, 최근의 공원이 그런 숨어 있던 우리의 오래된 본능 표출이라는 새로운 요청에 직면해 있다는 점은 짚어둔다. 도시공원의 종류와 진화 공원은 크게 자연공원과 도시공원으로 나뉘는데, 일상의 공원을 보려면 도시공원이 우선이다. 도시공원은 자연과학적 법칙이나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어서 E=mc²과 같은 공식으로는 알 수 없고 또 공식처럼 변하지 않고 지속되지도 않는다. 공원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그 때문이고, 달라지며 진화하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생활이 거기에 투영되기 때문이고, 공원을 알려면 법률부터 봐야 하는 이유가 된다. 도시공원에 관한 법률을 기준으로 거칠게 우리나라 도시공원을 시대별로 분류해 보면 몇 단계의 변천을 확인하고 우리의 현재를 조금이나마 추적할 수 있다. 1939년 조선시가지계획령은 그 첫 시작인데 벌써 도시공원이 비교적 세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62년에는 도시계획법이 제정되어 도시를 종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었는데 이때부터 공원은 도시적 기능 공간으로 명시된다. 1967년에는 공원법이 제정되면서 별도의 법률체계가 수립되고, 1980년 도시공원법 제정으로 그 성격과 종류가 보다 도시 공간에 적합하게 개편된다. 이때까지는 시가지계획령의 기본 틀을 유지한 채 우리 실정에 맞는 도시공원 철학이 고민되던 시기로 이해할 수 있다. 1980년 자연공원법과 도시공원법이 동시에 제정되면서 자연공원과 도시공원은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자연공원법은 자연환경과 풍경을 거시적 차원에서 대표적 공원으로 별도 설정할 수 있도록 하였고, 국립공원과 도립공원 등이 도시공원과는 차별된 위상을 가지게 하였다. 도시공원은 보다 생활과 가까운 형태로 세분되고 변화된 사회적 요청을 수용할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의 도시공원은 도시자연공원과 근린공원이라는 체계, 권역으로 세분된 낯선 명칭, 조성되거나 채워지지 않은 공원시설 등 생각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철학이 분명하게 성립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1980년부터 2006년까지는 전 국토 차원의 공원 관리 시각이 명확해지고, 재규정된 도시공원 성격에 따라 공원이 생활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인식되는 시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에게 ‘근린공원’이라는 말이 익숙해지게 된 배경이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적 다방면의 변화는 공원에도 영향을 주었다. 2007년에 법명이 ‘도시 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로 확장되는 것도 그 일환이다. 기존 공원과 녹지만으로는 수용하지 못하는 것들과 공원과 녹지 안팎에서 요청되는 새로운 역할이 고민된 것이다. 공원녹지의 공적 속성이 보다 강화되며 생활권공원과 주제공원으로 나뉘고 성격별로 명칭과 기준을 달리하는 등 대폭적인 변화가 담긴다. 우리식의 ‘도시공원 철학’이 비로소 최소한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이후 보다 일상과 연관된 공원 기능 그리고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체계가 고민되면서, 2013년 도시농업공원 유형 추가, 2016년 국가도시공원 신설 등 오픈스페이스와 녹색 공간의 가치 변화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결과다. 이처럼 도시공원은 시대적 관점에 따라 종류와 명칭이 진화하였다. 그리고 그 변화의 동인은 다름 아니라 물리적 도시 성장과 도시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활용 방식, 즉 일상생활의 변화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처음 도입 후 공원의 성격이 ‘계몽의 문물 - 도시의 기능 공간 – 시민의 일상생활’로 큰 흐름에서 변화하였음은 여기서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여전히, 꾸준히 변화를 고려하고 있고, 우리가 어떻게 변화해 가느냐에 따라 발맞추어 진화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가? 공원이 먼저 우리에게 갈팡질팡 사유의 실로보다 한 목소리 낼 줄 아는 분명한 철학을 바란다고 하면 무리일까? 우리가 지금 도시권과 거주적합성이 중요시되는 시대를 지나고 있음은 큰 힌트다. 공원이 그 중책을 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일상에 자리 잡은 이름 있는 공원들과 그 가능성을 함께 타진해 보자. 누군가 손에 쥐어준 공원이 아니라 내 손으로 잡아 끌 수 있는 공원이 되도록 사유의 정로(正路)를 같이 고민해 보자. 길은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일러두기 * 연재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필자의 개인 의견과 자료를 바탕으로 진행됩니다. 필자는 주요 공원을 소개하고 공원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계기로서 이 연재를 진행하며, 확인된 학술적 내용에 조경미학적 비평을 더해 공원을 중심으로 도시와 삶터를 살펴봅니다. * 연재는 사정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궁금한 사항이나 제공할 정보는 환경과조경 또는 필자 이메일로 문의 부탁드리며, 인터넷 상 복제는 공개된 것에 한하여 원본 출처 표기 조건으로 허락하나 상업적 활용은 불허합니다. 관련 사항과 보완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 게시됩니다. *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되는 자료, 도표와 그림, 사진 등은환경과조경(『PARK_SCAPE 한국의 공원』, 도서출판 조경, 2006) 및 필자 작성본을 원칙으로 하며, 출처의 표기는 일반적인 방식을 따르되 인터넷 매체 특성을 고려해 링크 또는 약식으로 하거나 별도의 방식으로 게시합니다. 이에 관한 모든 책임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안명준 조경평론가
  • 모래포장과 탄성포장 놀이터를 논하는 자리에서는 거의 “놀이공간의 포장재로 탄성포장과 모래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전문가로서 의견을 주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야말로 난감하다. 탄성포장(푹신한 고무 재질의 바닥 포장)에는 문제가 많다. 우선 포장재에서 나오는 유해물질. 최근에는 안전기준이나 검사가 강화돼 유해성 기준을 벗어날 경우 설치될 수 없게 돼 있지만, 한 여름에 포장재에서 나는 화학 냄새를 맡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탄성이 좋아 낙하에 안전하다고 하지만, 충격을 흡수하지는 않아서 낙하한 아이가 튕겨나갈 위험도 있다. 물론 흔한 일은 아니다. 설계자의 입장에서는 비싸서 꺼리게 된다. 탄성포장이 공사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돼, 다른 공간적 디자인이나 시설물을 설치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깔 때만 비싼 게 아니라 폐기물처리비도 만만치 않다. 폐기물처리비가 높더라도 지구환경에 누가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으니 환경적인 문제도 크다. 그렇다면 모래는? 주민들은 모래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고양이와 개의 배설물로 모래가 오염돼 아이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실제 모래에서 동물의 배설물이 발견되기도 한다. 또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들 몸이나 옷이 더러워져 선호하지 않는다. 놀이터 주변 주민들은 모래가 바람에 날려 실내로 들어온다고 꺼린다. 아이들 몸에 묻은 모래가 아파트 내 복도에 떨어져 싫다는 주민도 있다. 또한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은 모래 위에서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물론 유아와 저학년 아이들은 모래에서 하염없이 논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호도가 떨어진다. 자신의 생각인지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몸과 옷이 더러워져 싫다는 아이도 있고,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면 뛰어놀기 어려워 싫다는 아이도 있다.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이라는 연구를 진행했던 최이명 박사는 “현장조사 과정에서 만난 아이들은 놀이터에 모래가 없는 경우에는 모래를 원하고, 모래로만 포장된 놀이터에서는 탄성포장을 원했다”고 한다. 모래와 탄성포장을 둘러싼 갈등 ‘모래포장 vs 탄성포장’은 지역 사회에서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아이들한테 환경적으로 모래가 좋으니 모래를 깔자는 행정과 싫다는 주민들 간의 갈등, 주민들과 주민들 간의 갈등. 어느 주민들과의 논의 자리에서 한 주민이 탄성포장을 무척이나 반대하셨다. 다른 주민들은 별 대응을 하지 않다가 그 주민이 자리를 비우자 그때서야 탄성포장을 주장하셨다. 모래포장이 여러 가지 면에서 올바르다는 인식이 있어서 당당하게 탄성포장을 주장하지 못 한 게 아닌가 싶다. 몇 년 전 한 지역에서는 아이를 둔 한 주민이 국회의원한테 민원을 넣어서 놀이터 현장에서 주민회의가 급하게 열렸다. 놀이터 개선 사업을 하면서 탄성포장을 없애고 모래로 깐 게 사단이었다. 그 놀이터는 동네에 유일한 놀이터이다 보니 모래를 위생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주민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놀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민원을 넣은 주민은 한 명이었지만, 회의에 참석한 대다수의 주민들은 탄성포장 재설치를 요구했다. 질문의 방향을 돌리기 나는 전문적 의견을 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회의에 참석했고, 이 글의 시작에서 나열했던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나는 탄성포장과 모래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대안으로 포장은 탄성포장으로 하되 모래놀이 공간을 별도로 둔다거나 탄성포장과 모래를 섞어 사용하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할 수 있지만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당신의 집안으로 모래가 날려도 아이들을 위해서 감내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모래가 아이들한테 좋다지만 주민들이 아이들을 안 보내면 헛일이지 않은가? 다양한 욕구의 충돌, 공공공간을 다루는 일이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다. 질문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이 둘을 대립 관계로 보는 질문에서 보완의 관계로 보는 질문으로, 어떻게 하면 행정과 주민이 함께 모래를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로, 놀이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로, 어떻게 아이들에게 다양한 놀이 환경을 줄 수 있는지로, 가능한 한 어떠한 아이도 배제하지 않는 놀이 환경은 어떠해야 하는지로. 더 넓게는 탄성포장을 대체할 수 있는 포장재를 어떻게 개발할 수 있는지로 말이다. 한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모래놀이공간에서 ‘아빠와 함께 하는 보물찾기’ 행사를 했다. 주민들은 보물을 찾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모래 놀이 공간을 헤집었고 자연스럽게 청소가 이루어졌다. 또 가끔 모래를 뒤집어서 뭉친 모래를 흩트리고 골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행사 과정에서 이런 환경 개선도 이루어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접근이지 않을까 싶다. ‘모래포장 vs 탄성포장’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환경적으로 모래가 좋으니 모래를 깔자는 행정과 싫다는 주민들.아무리 모래가 좋다지만 아이들을 안 보내면 헛일이지 않은가?질문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어떻게 행정과 주민이 함께 모래를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어떻게 아이들에게 다양한 놀이 환경을 줄 수 있는지 등등.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폭포(滝石組)는 일본의 전통정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다보니 폭포의 유무나 의장의 정도에 따라서 정원의 가치가 평가되어 내로라하는 일본인들은 앞 다투어 최고의 폭포를 만들기를 원했다. 일본사람들이 폭포를 얼마나 좋아했는가는 일본 고유의 정원양식인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에도 폭포가 있다는 사실을 보면 이해가 된다. 가레산스이 양식이 무언가? 물 없는 정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물 없는 정원에 물 없는 폭포를 만든 것이 되니 우리의 상상력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헤이안(平安)시대에 간행된 일본 최초의 작정서 사쿠테이키(作庭記)에는 폭포를 만드는 작법(作法)이 상세히 쓰여 있다. 특히 폭포에 쓰이는 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폭포 한가운데 높이 세워 물이 흘러 떨어지도록 하는 수락석(水落石), 수락석 좌우에 놓아 수락석을 지지하는 협석(脇石), 그리고 부동명왕(不動明王)과 그것을 좌우에서 협시하는 삼존석(三尊石)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것을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도 적어놓았다. 헤이안시대가 지나고 가마쿠라시대가 되면, 중국의 영향을 받아 리어석(鯉魚石)이라는 특별한 돌을 폭포에 도입하기 시작한다. 리어석이란 잉어를 상징하는 돌로, 이 돌을 수락석의 전면부 물이 떨어지는 곳에 놓아 마치 잉어가 물을 타고 올라가는 모양을 연출했다. 이것은 중국 황하 상류의 물살이 빠른 여울목인 용문(龍門)을 뛰어넘은 잉어가 하늘에 올라 용이 된다고 하는 등용문(登龍門) 고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선가(禪家)에서는 수좌가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는 것이 곧 잉어가 하늘로 올라가 용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했다. 따라서 선찰에 만든 정원에서 용문폭에 리어석을 도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돌을 리어석으로 쓰느냐, 그리고 그 리어석을 어떤 방식으로 세우느냐에 따라서 용문폭의 내용은 많은 차이를 보였다. 수좌들은 용문폭을 보면서 리어석의 잉어가 용문폭을 솟구쳐 올라 승천하듯이 자신도 기어코 득도할 것이라는 다짐을 했을 것이다. 용문폭은 송나라에서 일본으로 온 임제종 스님인 난케이 도류(蘭溪道隆)가 창안한 것으로 일본에서는 가마쿠라(鎌倉)의 겐쵸지(建長寺)에 처음으로 조성했던 폭포석조형식이다. 그것을 일본 최고의 석립승(石立僧)인 무소 소세키(夢窓疎石)가 배워서 자신이 만든 정원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는데, 무소에게 있어서 용문폭에 리어석을 두는 것은 일념으로 성불을 위해 수행하는 선가의 수좌들이 정원을 하나의 수행처로 삼아 용맹정진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무소국사가 도입한 본격적인 용문폭은 교토의 텐류지(天龍寺)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후 무로마치시대에 만든 교토의 로쿠온 킨카쿠지(鹿苑金閣寺), 지쇼 긴가쿠지(慈照銀閣寺)는 물론 여러 것에 조성한 선찰의 정원에서 리어석이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작법이 선찰뿐만 아니라 궁원이나 귀족들의 정원에도 적용됐으니 그것은 리어석이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나 입신출세를 원하는 기원석으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일본정원에 조성된 많은 폭포의 리어석 가운데에서 로쿠온킨카쿠지의 폭포에 세운 리어석을 일등으로 친다. 정말 잉어 한 마리가 힘차게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인데, 폭포수가 힘차게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리어석의 존재는 더욱 더 분명해진다. 신기한 것은 몇몇 가레산스이 정원에서도 용문폭과 리어석을 도입하여 상상력만으로 잉어가 급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등용문에 얽힌 고사를 보면, 그냥 가만히 앉아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세차게 흐르는 급류에 몸을 던져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는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의 많은 인물들의 고사에서 입증이 된다. 양산보가 소쇄원에 대봉대(待鳳臺)를 지어놓고 임금의 부름을 기다렸지만 평생을 기다려도 교지가 오지 않아 결국은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소극적인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입신출세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를 보면, 세상이 변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것에 대응하지 못하고 기회를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서 자기를 던진 사람들도 많다. 물론 자기를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던져서 항상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은 용기와 결단력이었다. 그것이 있었기에 그들은 좌절보다는 성취할 가능성이 많았을 것이고, 실제로 뜻을 이룬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면 그것을 입증할 수 있다. 그러나 변화에 무턱대고 맞서는 것이야말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을 잘 파악하고 그것에 적절하게 대처해야만 변화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가 있다. 그 요건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변화에 대응하는 시기와 정도 그리고 속도이다. 변화의 내용을 모르고 그것에 대응하는 시기를 잘못 선택하면 그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적정한 시기의 선택은 변화를 이겨내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의 원인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변화의 결과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시기가 빨라서도 안 되고, 더뎌서도 안 되는 적기를 찾아야 함은 기초적인 이야기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1970년대 초 우리나라에 조경을 도입하여 새로운 건설의 시대를 맞이한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었다. 당시는 건설 붐으로 환경파괴가 심각할 때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때 만약 조경이라는 새로운 학문과 산업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변화를 꾀할 것인가 역시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변화에 부분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전면적으로 수용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인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그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변화를 거부하는 힘을 완전히 꺾고 새로운 질서를 찾든지 아니면 그러한 힘과 적당히 타협할 것인가를 결정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잉어가 하늘로 올라가 용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조선을 열었던 신흥사대부 가운데 완벽한 변화를 생각했던 사람들이 없었다면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는 역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혁신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조경분야도 과거의 틀에 얽매여서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경이 가진 구조적인 틀을 전면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다른 분야의 엄청난 도전에 희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끝으로 어떠한 속도로 변화를 이끌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를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했던 50년 조경의 역사는 이제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시간에 성취할 수 있게 되었다. 건설시장의 구조가 송두리째 바뀌고, 학문이나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타협의 상대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세상을 과거 완행열차의 속도로 간다면 과연 고속전철을 타고 가는 사람을 따라 잡을 수 있겠는가? 이제 조경분야도 시급하게 새판을 짜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학교의 커리큘럼부터, 관에 대응하는 자세부터, 다른 영역과의 소통부터 그리고 조경의 본질적인 성격부터 모든 것을 새로운 틀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온고이지신이라는 말처럼 지난 세대가 만들었던 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만큼은 빨라야 살 수 있다. 한발 늦었다는 말은 변화를 온전히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쓰는 핑계에 불과하다. 이제 조경 1세대가 무대를 떠나기 시작했다. 73학번 교수들이 정년을 하기 시작했고, 산업일선에서도 그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들에게 배운 조경 2세대 역시 나이가 들기 시작했으니 분명히 변화가 우리 눈앞에 온 것이다. 건설시장도 달라졌다. 건설공사 생산체계 개편 방안을 담은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건설분야의 경쟁이 가속화될 조짐을 보인다. 도시 안의 자연환경 조성에 대한 영역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영역간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인구절벽에 부딪혀 몇 년 내로 지방의 조경학과가 존속된다는 보장도 없어졌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조경이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앞에서 말한 리어석이 왜 일본정원의 폭포에 도입되었을까?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결국은 득도하는 것을 바라는 선원수좌들의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조경계가 바로 이러한 리어석을 도입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우리 모두는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마음자세를 가지고, 변화에 대응하는 시기와 정도 그리고 속도를 지혜롭게 결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경인 모두가 서로 화합하고, 한 마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내야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말뿐인 변화, 말뿐인 대응, 말뿐인 실천은 우리들을 점점 더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러한 변화는 누가 주도해야 할 것인가? 당연히 우리 조경인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조경분야에서 40년 이상 몸을 담고 많은 혜택을 누린 1세대 조경인들이 이제 새판을 짜는 일에 앞장 서줘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조경이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시장에 나올 때, 조경분야는 향후 50년, 아니 100년의 경쟁력을 다시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마리의 잉어가 되어서 용문폭을 뛰어 넘고, 폭포에서 떨어지는 어마어마한 물살을 뚫고 힘차게 솟구쳐 올라야 한다. 홍광표/ 동국대학교조경학과 교수
    • 홍광표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2019-02-20
  •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연재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황금돼지 해인 새해를 맞아 우리 사회의 변화에 부응해서 조경 분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조경 분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큰 변화를 살펴보면, 우선 첫째는 지구 환경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점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을 보면 1954년부터 1999년까지는 10년 단위로 평균 0.23℃가 상승했고, 1981년부터 2010년까지는 10년 단위로 0.41℃가 상승했으며,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은 0.5℃가 상승했다. 이는 근래에 올수록 우리나라의 온난화가 가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둘째로는 우리나라가 급격한 고령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노년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 당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17.3명으로 생산가능인구(15세∼64세 인구) 5.8명이 고령자 1명을 부양하는 실정이다. 현재 저출산이 지속될 경우 베이비붐세대의 고령인구 진입 및 기대수명 증가로 인하여 2030년에는 2.6명이 1명을, 2060년에는 1.2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령화와 더불어 나타난 특색의 하나는 건강하고 경제적 여유를 가진 뉴실버세대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로는 건강과 웰빙의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와 맞물려 국민들의 관심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데 관심을 갖게 되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과 힐링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근래 우리 국민들의 걷기 열풍도 건강과 힐링에 대한 욕구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넷째로는 먹거리의 불안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에 따른 먹거리의 오염이 국민들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먹거리의 불안은 수도물에 대한 불신이며, 외국에서는 가축 사육 과정에서의 항생제 사용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경 분야가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변화 추세에 부응해서 적극적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조경 분야의 변화 방향은 환경오염과 지구환경문제 완화에 기여하는 조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특히 화석에너지 소비 증가는 환경오염물질의 배출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이 중요한 문제이고,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효율을 위한 조경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옥상녹화와 벽면녹화가 건물의 에너지 절약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지구온난화가 해수면 상승을 가져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인 데 이에 대응하는 방안의 하나로 해수면 상승 대응형 조경을 외국의 도시에서는 이미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시는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될 해안지역을 해안습지로 복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해안습지 면적 약 243km²를 확대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근래 우리 국민들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미세먼지이다. 이제는 조경 분야에서 미세먼지 저감형 조경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 국립산림과학원 박찬열 박사의 발표자료에 의하면 나무 한 그루당 연간 35.7g의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침엽수 한 그루당 1년에 44g의 미세먼지를 흡수하며 활엽수 한 그루당 1년에 22g을 흡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경 분야가 그린인프라 도입 등 적극적 녹화를 통해 미세먼지 저감에 크게 기여한다면 국민들로부터 높은 관심과 지지를 받을 것이다. 중국은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펀지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빗물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저장해두었다가 활용하는 도시를 만들자는 사업이다. 오는 2020년까지 전국 도시의 80%를 빗물의 70%를 재활용하는 스펀지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리나라도 물부족 국가인데다 홍수피해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물순환형 조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저영향개발(LID)이라는 명칭으로 물순환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조경 분야에서 보다는 토목분야가 이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조경 분야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또 하나의 방향은 생물다양성의 보전을 위한 조경이다. 특히 도시에서는 생물서식지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어 생물종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도시에서 벌과 나비, 제비를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선진 외국도시에서는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벌과 나비 등 화분매개자의 서식처를 복원하기 위해 화분매개자친화형 공원(pollinator friendly park)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철새들을 위한 조류공원을 대규모(567,051 m²)로 조성한 사례가 한강신도시사업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바 있다.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지구환경문제 때문에 자연재해의 빈도와 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 그 피해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재난피해를 당한 도시들은 원상회복이 오래 걸리고 복구비용도 엄청나게 소요되기 때문에 이제는 도시를 회복탄력성이 높은 도시로 만들어 가자는 움직임이 도시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맞추어 조경 분야에서도 회복탄력성이 있는 조경(resilient landscape)이 대두되어 시공된 조경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Jinhua 시의 Yanweizhou 공원은 강의 중앙에 있는 섬에 위치한 공원인데 홍수 때에는 강의 수위가 올라와 공원의 일부가 물에 잠기게 된다. 설계자는 이를 감안해 홍수 때에도 공원이 기능을 할 수 있고 홍수 이후에도 공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공원 설계를 함으로써 회복탄력성이 있는 조경의 한 사례가 되고 있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2013년 기준 세계인구의 11% 정도인 8억 명이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이다. 이 중 6억 명은 자체소비를 위해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시텃밭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가 증가하고 있다. 조경 분야에서도 도시농업을 위한 조경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호주 조경가협회에서는 도시농업의 새로운 흐름으로 ‘Foodscape’라는 패러다임을 조경설계가들에게 제시한 바 있다. 공적영역에서는 ‘경작’이라는 행위에 더해 미적, 공간적 맥락이 디자인에 적용되어야 하며 조경설계가는 관상식물 뿐 아니라 야채와 과일 등 작물까지도 미학적 연구를 해서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경에서의 시민참여 필요성 또한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공원녹지예산 감축과 뉴실버세대의 증가, 그리고 시민참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증가에 기인한다. 조경사업에서의 시민참여 사례로 미국 뉴욕시의 하이라인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이 사업이 성공한 것은 비영리단체인 ‘하이라인 친구들’이 10년간 모금을 통해 뉴욕의 고가철로를 공원화하는 운동을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욕시의 센트럴파크(Central Park)도 ‘Central Park Conservancy’라는 비영리단체가 뉴욕시로부터 관리를 위탁받아 공원연간예산의 75%를 모금해 충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서울숲을 조성할 때부터 ‘서울그린트러스트’라는 비영리단체가 설립되어 공원 조성 시 시민들의 모금과 나무심기를 통해 참여 했으며, 조성 후에는 공원관리에 참여해 이용자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2016년 11월부터는 서울그린트러스트가 서울시로부터 서울숲의 관리업무 전반을 위탁받아 서울숲을 관리하고 있다. 이제는 지방정부가 도시 공원녹지의 운영관리를 모두 책임지고 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정부가 시민과 함께 파트너십을 갖고 관리와 모금을 병행하는 시민참여형 공원녹지 관리 방식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다. 새해에는 조경 분야가 우리 사회의 변화를 면밀하게 짚어보고, 이에 발맞추어 시대변화를 선도해 나감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얻고 조경이 더욱 발전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양병이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명예교수
    • 양병이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명예교수
    • 2019-01-31
  • 3S의 기원 4종 세트 중의 그네, 미끄럼틀, 시소. 공교롭게도 이 세 가지 놀이기구의 영어명은 S로 시작한다. ‘swing’, ‘slide’, ‘seesaw’. 덕분에 이 셋을 3S로 통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3S는 언제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 궁금증으로 한때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 본 적이 있다. 춘향전에도 등장하는 그네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으로 올라간다. 인터넷에서 그리스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Heraklion Archaeological Museum)에 있는 ‘그네에 앉아 있는 여성(Woman sitting on a swing)’ 조각상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Hagia Triada, Late New Palace period(1450-1300 B.C.)’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하기아 트리아다(Hagia Triada)’는 크레타섬 중부의 유적지이다. 시소와 관련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네처럼 확실한 증거가 없다. ‘REFERENCE’라는 사이트(www.reference.com)에는 ‘Who Invented the Seesaw?(누가 시소 놀이를 발명했는가?)’라는 질문이 있고 그 아래에는 우리나라의 널뛰기를 시소의 조상으로 보는 문구가 있다. “It is believed that Korean girls in the 17th century who were not allowed beyond the confines of their courtyard walls invented the seesaw to catapult themselves in the air high enough to glimpse the outside world, according to Patricia Newman.” (패트리시아 뉴먼에 따르면, 17세기 집 담장 밖을 나서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한국 여성들이 잠시라도 세상 밖을 보기 위해 공중으로 몸을 날아 올리는 시소게임을 발명했다.) 미끄럼틀은 어떨까? 미끄럼틀에 대한 기록물은 더욱 찾기 어려웠다. 그네나 시소는 도구가 필요하지만 미끄럼은 언덕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놀이이다 보니 별다른 시설을 제작하지 않아 기록도 없을 것이라는 게 나의 추측이다. 3S의 발전 3S의 기원을 추적하다보니 중력을 이용하는 기구에 몸을 얹고 움직이며 즐기는 행위는 그 역사가 깊고 여러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꼭 아이들만 이용하지 않았었다. 춘향이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동네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어른은 TV 드라마에 흔하게 등장한다. 널뛰기 또한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양반집 여인들이 바깥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즐기는 놀이이지 않았던가. 경사진 지형을 따라 속도를 즐긴다는 측면에서 어른들도 즐기는 스키도 미끄럼과 다름이 없고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 3S가 근대화, 도시화의 산물인 놀이터에 도입되어 일정 공간을 차지하게 된 건 당연해 보인다. 여러 자료를 볼 때, 3S가 공원에 설치되기 시작한 건 1900년대 초였다. 이 시기의 놀이시설물은 허술해 보이지만 과감하다. 1922년에 세계 최초로 공원에 설치되었다는 미끄럼틀은 손잡이도 없고 가는 나무기둥으로 만들어져 불편할뿐더러 한 번 타고 나면 팔도 엉덩이도 무척 아플 것 같다. 1923년 공원에 최초로 설치다고 이야기되는 그네의 높이는 3.6m로 서커스용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높다. 그러던 시설이 대량생산으로 규격화되면서 지금의 작고 안정된 형태로 변화되었다. 1950년대에 발간되었다는 놀이시설물 카탈로그를 보면 지금의 시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네, 미끄럼틀, 시소. ‘swing’, ‘slide’, ‘seesaw’. 3S의 기원을 추적하다보니 중력을 이용하는 기구를 즐기는 행위는 역사가 깊고 여러 문화권에서 나타난다. 아이들만 이용한 것도 아니다.널뛰기는 양반집 여인들이 바깥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즐기는 놀이이지 않았던가. 3S가 근대화, 도시화의 산물인 놀이터에 일정 공간을 차지하게 된 건 당연해 보인다.3S는 놀이터에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추방해야 할 것도 아니다. 3S의 단점과 장점 모든 놀이터에 있다는 점 이외의 3S의 단점은 무엇일까?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수용할 수 있는 이용자 수가 한정적이라 이용자가 많을 때는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다 다툼이 있을 수 있다’, ‘아이들이 친구가 아니라 혼자 논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시소의 경우 고장이 잦다’ 등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점은? ‘혼자 논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라는 단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혼자 놀이터에 나온 아이가 친구를 기다리며 3S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새로 이사 와 친구가 없는 아이는 3S가 없다면 놀이터에 나올 엄두가 나질 않을 것이다. 어른이 아이를 데리고 놀기에도 좋다. 유아들이 많이 이용하는 동네 놀이터에 시소나 낮은 미끄럼틀, 흔들말을 설치하지 않으면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아이들과 놀 게 없다”라는 원망을 많이 듣는다. 그리고 놀이터를 찾은 아이들이 빠르고 쉽게 놀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놀이터에 달려든 아이들은 일단 3S에서 워밍업을 한 후 다른 놀이로 전환한다. 이 전 글에서 “조합놀이대를 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놀이를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하지 않고 놓아서 문제다”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3S도 마찬가지이다. 놀이터는 놀이시설물을 이용하는 곳이 아니라 노는 곳임을 전제로 한다면, 꼭 3S가 있어야 놀이터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3S는 놀이터에서 추방해야 할 것도 아니다.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정영선 전시②-전시관] 국립현대미술관 가득 메운 조경가적 삶과 작품
[환경과조경박광윤기자]국립현대미술관서울에서는오는9월22일까지약6개월에걸쳐“정영선: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를주제로한국1세대조경가정영선의조경활동을총망라하는전시를개최한다. 이전시는그가태어난1941년부터의삶의여정을되짚어보고1970년대대학원생시절부터지금까지반세기동안진행된60여개의크고작은프로젝트에대한조경작품아카이브로마련됐다.대부분최초로공개되는파스텔,연필,수채화그림,청사진,설계도면,모형,사진,영상등각종기록자료500여점을통해조경가로서의삶의궤적을깊이있게들여다볼수있다. 또한주제별로대표작을엄선해선보임으로써도시공간속자연적환경이설계된맥락과고민,예술적노력을드러내고,이러한사유와철학을조경건축의직능을넘어자연과더불 어사는삶을추구하는우리모두의이야기로환원하고자한다. 전시제목‘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는정영선이좋아하는신경림의시에서착안했다.정영선에게조경은미생물부터우주까지생동하는모든것을재료로삼는종합과학예술이다.삼천리금수강산의아름다운경관을있는그대로그리고자했던겸재정선의진경산수화처럼,정영선은50여년의조경인생동안우리땅의이야기에귀를기울이고고유자생종의생물다양성을보전하기위한노력을해왔다.전시는정영선의작품세계를국가주도의공공프로젝트와민간기업이의뢰한정원과리조트,역사쓰기의방법론으로서기념비적조경과식물을연구하고보존하는수목원과식물원등작업의주제와성격에따라재구성했다.연대기적서사를지양한이러한접근방식은경제부흥과민주화과정이동시적으로발현된한국현대사의특징과도맥을같이한다.동시에수많은유형의작업들이공통적으로정영선이강조하는“지사(地史)적맥락”에기반을두고있음을나타내기도한다. 7개묶음전시,조경직능넘어서는삶의울림 전시는크게7개의‘묶음’으로나뉜다.정영선의조경이그러하듯경계가느슨한최소한의구획을통해관람객이서있는자리에서각프로젝트의맥락을스스로찾아갈수있도록했다.마치자연주의정원속을거닐듯서로배타적이지않은주제들의우연한마주함과포개어짐을의도했다. 첫번째묶음‘패러다임의전환,지속가능한역사쓰기’에서는‘장소만들기’의현장이된조경의사례를살펴본다.한국최초의근대공원인<탑골공원>개선사업(2002)과‘비움의미’를강조한<광화문광장>재정비(2009),일제강점기철길중유일하게조선인의자체자본으로건설된경춘선을공원화한<경춘선숲길>(2015~2017)등수직에서수평으로,채움에서비움으로인식을전환하고공간의정체성을형성하는주요한방법론으로서조경의역할이드러난프로젝트를확인할수있다. 두번째묶음‘세계화시대,한국의도시경관’은주요국제행사개최와더불어한국을찾는세계인에게선진화된도시경관의인상을주기위해동원된사업을다룬다.<아시아선수촌아파트및아시아공원>(1986),<올림픽선수촌아파트>(1988),<대전엑스포>(1993)등한국의경제,문화,기술적도약의기회였던대형국가주도프로젝트들을통해조경가가어떻게발전된도시모습의비전을제시함과동시에인공적인개발사업에땅의논리를연결했는지살펴볼수있다. 세번째묶음‘자연과예술,그리고여가생활’은경제성장이동반한생활양식의변화로수요가생긴가족단위여가활동의장소들을소개한다.정영선은예술,교육,체육,관광등각문화기관과레저시설의기능과목적에충실하면서도우리고유의지형과땅의맥락을살리는데많은노력을기울였다.종합문화예술단지<예술의전당>(1988)의조경구상도와모형사진,스포츠중심의휴양리조트<휘닉스파크>(1995)의식재계획도와피칭자료등이공개되며이는1980~90년대당시디자이너의소통방식을엿보게한다.또한현재진행중인프로젝트로인문학레지던시<두내원>(2025예정)도소개되는데,마르틴하이데거의『숲길』에서영감을받은산책로의개념스케치가공개된다. 네번째묶음‘정원의재발견’은선조로부터향유되어온우리고유의식재와경관,공간구성방식을적극적으로도입한정원을들여다본다.전통정원요소를자유롭게구사할수있는무대가된호암미술관의<희원>(1997)으로시작해경기도와중국광저우사이의교류정원으로조성된광동성월수공원의<해동경기원>(2005),바다가보이는언덕의개인정원<포항별서정원>(2008)등땅의생김새와성격에부합하면서‘깊은주름’의지형을만들어점진적으로경관을볼수있게만드는“전통정원의내적원리를재현”한사례를만날수있다. 다섯번째묶음‘조경과건축의대화’는건축과의유기적인협업을통해탄생한조경작업을살펴본다.제주오설록(2011,2023)의<티뮤지엄>,<티테라스>,<티스톤>,<이니스프리>건축물사이조성한제주특유의지형을살린개인주택인<모헌>(2011)의중정정원에담긴깊은숲의풍경,남해<사우스케이프>(2013)의건물사이바다를향한시야를가로막던돌언덕을마치원래그러했던것같은형태로깎아연출한방식등땅의조건을읽고이를중심으로경관이조성되는과정속에서조경가와건축가의내밀한상생작용을확인할수있다. 여섯번째묶음‘하천풍경과생태의회복’은강이흐르는곳에자연적으로발생한습지를보호하고도심속물의중요성을환기시키는작업을다룬다.정영선은<여의도샛강생태공원>(1997,2007),<선유도공원>(2001),<파주출판단지>(2012,2014)등콘크리트로뒤덮인도시기반시설에수공간을삽입했다.습지를복원하고하천환경을개선해인간을포함한다양한생명체들의보금자리를제공하기위한그의노력이소개된다. 일곱번째묶음‘식물,삶의토양’은다양한식생을수집하고연구하며교육하는수목원과식물원,자연의치유적속성이강조된명상과사색의장소들을조명한다.식물을가까이하는삶을통해자연과조화롭게사는방식을배울수있는곳들이다.광릉수목원으로불리던한국최초의<국립수목원>(1987)의설계청사진과남해의독특한기후대의식생을담은<완도식물원>(1991)의조감도,미국뉴욕주북부의허드슨강상류에자리한원불교명상원인<원다르마센터>(2011)를구상한수채그림,대지와식생현황도등이공개된다. ‘신작정원공개’기대…연계학술행사‘정영선읽기’ 서울관의야외종친부마당과전시마당에는이번전시를위한새로운정원이조성된다.석산인인왕산의아름다움을미술관내·외부에재현하고계절감을더하는한국고유의자생식물을식재하여관람객에게휴식처를제공함과동시에조경가의작품을오감으로체험할수있는기회가될것이다.또한실내전시에소개되는500여점의조경디자인기록자료의다차원적인연출을위해조경의‘시간성’에주목한정다운감독의영상과사진작가정지현,양해남,김용관,신경섭등의경관사진도함께소개된다. 또한전시기간에는다양한행사들이함께열린다.▲정영선의대표작<선유도공원>(2002)의봄,여름,가을,겨울을기록한영상‘선유도의사계’가이달10일부터28일까지상영되며▲5월17일에는14시영화감독정다운의조경가정영선에대한다큐멘터리‘땅에쓰는시’상영및감독과의대화시간이마련된다.▲7월3일에는‘정영선이만든땅을읽다’를주제로학술행사도개최된다.이날행사는‘조경가정영선을읽다’,‘정영선의작업을읽다’,‘정영선과의대화’로구성되며,조경진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교수,배정한서울대학교교수,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교수,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건축학과교수와박승진디자인스튜디오loci소장,전은정조경포레소장,이호영HLD소장,조용준CA소장,백규리현대엔지니어링조경건축매니저등이참여할예정이다. 한편,이번전시에는배우한예리가오디오가이드에목소리를재능기부했다.차분하면서도울림있는목소리의한예리는작품에담긴의미를부드럽게전달했다.녹음을마친후“반세기에걸친작가의대표작이우리모두의일상속에서아름답게숨쉬고있어놀랐다”며전시에대한기대감을나타냈다. 김성희국립현대미술관장은“이번전시는한국을대표하는조경가정영선이평생일군작품세계중엄선한60여개의작업과서울관에특화된2개의신작정원을선보이는특별한전시”라며,“그의조경작품에서나타나는‘꾸미지않은듯한꾸밈’이있기까지의각고의분투와설득,구현과정의이야기를통해정영선의조경철학을깊이있게만나는계기가될것”이라고밝혔다.
[정영선 전시①-개막식] “땅을 돌보는 방법을 잊어버리는 것은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
[환경과조경박광윤기자]1세대조경가정영선의삶과작품이종로구소격동에위치한‘국립현대미술관서울’을가득메웠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은4일“정영선: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전시의개막식을개최했다. 이날행사에서김성희국립현대미술관장은“이번전시가살아있는재료를삼아서평생생물을디자인해온존경받는조경가의예술을감상할수있는기회가될것으로기대한다”며,엄청난국토개발시기속에서도“정영선선생님의조경작업은일찍이자연그대로의모습을놔두자는아주독특한철학이녹아있다”고말했다.“한국현대사의중요한지점에서작가의손길이어떻게담겨져있고또어떤방식으로표현돼있는지방대한양의그림과설계도,사진,영상,모형등다양한매체를통해작품을이해하는데큰도움이될것으로믿는다”며,아울러“전시장을한번방문해서는선생님의작업세계를충분히보시지못할것같다”며“여러차례방문해달라”고부탁했다. 현대사중요한건축조경들,선생님작업이었다니“놀랍다” 전병극문화체육관광부제1차관은축사에서“전시회개막행사에외부인들이이렇게많이온경우는제기억으로는없는것같다”며전시를둘러보니“현대사를지나며중요한랜드마크적인건축물들이많았는데,그건축물의관심받는조경들이선생님의작품이었구나라는생각에놀라웠다”며본받아야할분이라고칭송했다.“인문학적인성찰을기반으로담백하면서도아름다운우리의삶과우리들의정체성을살리고역사적공간을현대적으로재구성해낸상상력이집약된전시”라며“우리삶을쾌적하게해주는공간이면에조경설계자의세심한노력이있었다는것을오늘새삼스럽게깨닫게됐다”고말했다. 이날개막식에는오휘영한양대학교도시대학원명예교수의축사도전달됐다.축사는최자호라펜트이사가대독했다. 오휘영교수는축사를통해,불과반세기전에정영선조경가가언론사기자에서조경분야로뛰어들었던당시에는우리나라가조경의불모지였다며,처음에는“대학에서연구와후학양성에몰두하더니어느새조경설계회사를차려굵직한프로젝트들을거침없이수행해왔다.도전을거듭하는자세는작품에도그대로담겨져늘새로운발상으로시대의정신을잘보여주고있다”고도전정신을치하하며“정영선조경가의발자취는하나하나나이테가되어한국조경의깊이를더하고있다.그의손길이깃든공간들은이땅에많은이들에게편안함과새로운힘을줄것이다”라고찬사를보냈다. “땅을돌보는방법을잊어버리는것은스스로를잃어버리는것” 이어진작가인사말에서정영선조경가는오휘영교수의축사에“은사님의노고는멋진열매가되고싹이되어서조국강산이나날이좋아질것”이라고화답했다. 정영선조경가는“원래우리나라는아득한백제시대때부터정원을소중히여겼고,심지어일본에정원을만들어주기위해전문가가나가기도했다”며일제강점기,6.25등나라가심한고통에시달리다가국가를새롭게세우는과정에서‘조경’이새로운학문으로도입돼당시서울대학교환경대학원을통해지도자들이양성되고수많은일을직접하게됐다고지난조경의역사를회고했다.덧붙여“땅을돌보는방법을잊어버리는것은스스로를잃어버리는것과같다”는간디의말로인사를마쳤다. 이번전시는한국1세대조경가정영선의조경활동을총망라하는전시로,4월5일부터오는9월22일까지이어진다.
‘공간·사람·자연 연결사’ 정영선 조경가의 궤적을 담다
[환경과조경신유정기자]공간과사람그리고자연을연결하는조경을바탕으로한정영선조경가의궤적을담은다큐멘터리영화가개봉을앞두고있다. ‘영화사진진’은지난2일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오는17일개봉예정인영화‘땅에쓰는시’시사회및기자간담회를개최했다. ‘땅에쓰는시’는선유도공원,여의도샛강생태공원,경춘선숲길,서울아산병원등모두를위한정원을만들어온정영선조경가의땅을향한철학과내일의숲을위해현재까지도활동하고있는정영선조경가의사계절을담은다큐멘터리다. 정영선조경가는한국1호국토개발기술사(조경)획득한최초의여성기술사다.다채로운작업을통해대통령국민포장,세계조경가협회(IFLA)상,미국조경가협회상(ASLA),한국건축가협회상,김수근문화상등유수의상들을수상했으며,지난해에는한국인최초로세계조경가협회(IFLA)가수여하는조경계의최고영예상인‘제프리젤리코상’수상자로선정되며세계적으로인정을받았다. 한국에서조경에대한사회적위상이낮았던시기에,아시아선수아파트단지(1984),예술의전당(1984),올림픽선수아파트단지(1985),희원정원,호암미술관(1997-1998),인천국제공항(1999),서울올림픽미술관과조각공원(1999),청계천복원(2002-2005),광화문광장(2007),경춘선재생공원(2014),서울식물원(2014)과같은주요프로젝트를통해조경의중요성과가치를알리는역할을했다. 영화는모든생명이싹트는봄과생동하는녹음으로가득찬여름,무르익은색채너머휴식을기다리는가을그리고모든아름다움을준비하는겨울까지‘사계절’을중심테마로구성해다채롭고도풍성한볼거리를전한다.5년간야생화가만개한정영선조경가의양평집앞마당부터남녀노소모두가즐기는대규모공원과신비로움을간직한개인정원등다양한장소를누비며각계절이지닌고유한경치를온전히담아냈다. 언제나사람과자연의관점에서치열하게고민해온‘땅의연결사’정영선조경가의궤적을따라가며,관객들에게일상의위로를건네는공원의아름다움은물론,‘조화’를잃지않는삶의태도로써공원의의미에대해생각하게만든다. 특히미나리아재비,개쑥부쟁이등우리국토의매력을즐길수있는각양각색의야생화와제주를비롯한전국의금수강산을포착하며,한국적경관의현대적완성을빚어낸정영선조경가가그려온자연스럽고도감각적인풍경들을담아냈다.땅이간직한고유의맥락을읽어시를그리듯공간에생명력을불어넣는1세대조경가의진심어린철학을전하며새로운배움으로관객들에게다가간다. 이영화는국내작품으로는최초로제20회EBS국제다큐영화제개막작으로선정됐으며,남도영화제시즌1순천개막작선정및제49회서울독립영화제장편쇼케이스부문에공식초청되는등작품성을인정받았다. 이날기자간담회에는정영선조경가,기린그림의정다운감독과김종신피디가참석해영화에담긴메시지와영화가만들어지기까지의자세한뒷이야기를들려줬다. 정다운감독은간담회에서“건축과도시를자연과의관계성안에서탐구하는과정을거치며그사이를연결하는‘조경’의중요성을자연스레인지하게됐다.선유도공원,양재천,예술의전당등내인생속의수많은중요한공간들이정영선조경가의손길에의해만들어졌다는사실은운명과도같았다.오랫동안품고있던질문인자연복원과치유에대한희망을풀어나가고자결심한후자연과공간의관계성안에서가장중요한역할을하는조경가의이야기를전하고싶었다”며영화제작의도에대해말했다. 정영선조경가는“1세대조경가라는자격은나혼자잘해서가아닌내주변모든사람들의도움이있어가능했다.그감사함에보답하려다보니지금의내가있는것같다”며“정원을만드는것은단순히꽃을심고나무를기르는것이아닌치유와회복의장이자자연을보살피고서로소통하는장으로만드는것이다.우리가간직하고있는기존의것을더욱아름답게번영시켜자손에게물려주는것이조경가의역할”이라고강조했다. 한편기린그림은정다운감독과김종신피디가2012년에함께설립한건축전문영화영상제작사다.정감독은케임브리지대학에서‘건축과영상’을공부했고,김피디는골드스미스대학에서영화연출을공부했다.
배정한 서울대학교 교수, 차기 한국조경학회장 당선
[환경과조경신유정기자]한국조경학회제27대회장에배정한서울대학교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교수가당선됐다. 한국조경학회는지난29일청주대학교비즈니스대학B동에서‘2024년정기총회및춘계학술대회’를개최하고,제27대회장단선거를진행했다. 차기임원선거는투표를통해진행됐으며선거결과▲회장에배정한서울대학교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교수▲수석부회장에안승홍한경국립대학교교수가당선됐다. 배정한차기회장은“당선된만큼책임감을갖고발표한공약을실천하기위해최선을다하겠다”며“회원개개인의다양한목소리에성실히귀기울이고학회를넘어업계,시민사회,언론,정부·자자체,관련분야등다양한주체와연대하겠다.여러분의많은도움과협조,애정어린질책을많이부탁드린다”는당선소감을밝혔다. 안승홍차기수석부회장은“그동안의경험을바탕으로회원교류증진,학술기능강화,조경교육방향정립,관련학회협력등신임회장님잘도와서회원들의권익신장에노력하겠다.많은협조를부탁드린다”고말했다. 이날정기총회는▲2023년도사업및결산보고▲2024년도사업계획및예산심의▲제27대회장및수석부회장등차기회장단선거▲오웅성홍익대학교건축공학부교수의‘월드스킬&조경가드닝:국력,국격,직업의길’특별강연이진행됐다. 김태경한국조경학회장인사말을통해“청주대학교조경학과창립50주년을기념하는날정기총회및학술대회를개최하게돼뜻깊다.얼마전까지만해도코로나팬데믹속에서벗어나기만기다렸는데,이제는인구절벽을마주하고있다.조경을가르치고,후학을양성하는입장에서가만히있을수는없다.학회를통해보다양질의교육그리고시대에특화된교육을준비하겠다”고약속했다. 홍상표청주대학교공과대학장은축사에서“이번행사를청주대학교에서개최하게돼기쁘게생각한다.우리가살고있는현재는전례없는기후위기와환경문제에직면해있다.해수면상승이상기후,대기오염등이러한문제들에대한해결책을모색하는과정에서조경의역할이어느때보다도중요해졌다”며“도시와자연의조화,지속가능한환경조성을위한혁신적인해결책을찾는것이바로조경분야의과제라고생각된다”고말했다. 조경학회는이날▲서주환경희대학교교수▲이민우공주대학교교수▲이경진공주대학교교수▲박재철우석대학교교수▲조동범전남대학교교수▲변무섭전북대학교교수에게정년퇴임공로상을수여했다. 우수논문상은▲하지아본시구도기업부설연구소장·박재민청주대학교교수의‘탄소저감설계지원을위한수목탄소계산기개발및적용’▲곽윤신가천대학교교수의‘융합도시모델링을통한그린인프라수요예측및지오디자인적용’이수상했다. 우수저술상은▲배정한서울대학교교수의‘공원의위로’▲김순기순천대학교교수·김한배서울시립대학교교수·이상우건국대학교교수·이재호서울시립대학교교수·임의제경상국립대학교교수·최정민순천대학교교수의‘조경개념사전’이받았고,우수번역상은▲황주영서울대학교환경계획연구소박사의‘조경’이선정됐다. 우수졸업생은▲김지연강원대학교▲최수민경북대학교▲민세린경희대학교▲김은주계명대학교▲김유겸고려대학교▲임은혜동국대학교▲권미리동아대학교▲이민서배재대학교▲김소담강릉원주대학교▲이주혁건국대학교▲김하림경남정보대학교▲곽동현경상국립대학교▲이지선공주대학교▲윤영두나주대학교▲김소영단국대학교▲김정재대구가톨릭대학교▲황희진대구대학교▲장지웅상명대학교▲백주희서울여자대학교▲정유진영남대학교▲김태영우석대학교▲송해림전북대학교▲양영백청주대학교▲김지수한국전통문화대학교▲김혜리목포대학교▲이종현서울대학교▲윤예진서울시립대학교▲황서현성균관대학교▲임선영순천대학교▲홍규빈신구대학교▲이현주원광대학교▲김혜교전남대학교▲서현진한경국립대학교▲한승희호남대학교등34명이수상했다. 춘계학술대회는4개분과로▲1분과조경설계·조경이론·조경사▲2분과조경계획·조경시공·조경관리▲3분과경관계획·도시결계▲4분과조경수목·생태계관리순으로진행됐다.
[인사] 이상훈 조경가, 전남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부임
[환경과조경정승환기자]이상훈필드오퍼레이션씨니어어쏘시에이트(FieldOperationsSeniorAssociateDesigner)디자이너가3월부로전남대학교조경학과교수로부임했다. 이상훈교수는서울대학교조경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조경학석사학위를받고,미국펜실베니아대학교에서조경디자인석사학위를취득했다.이후미국의필드오퍼레이션에서10년이상재직하면서시애틀센트럴워터프론트,마이애미언더라인,프린스턴대학교캠퍼스조경설계등의프로젝트를주도했다. 이상훈교수는그동안의경험을토대로전남대학교에서조경설계분야과목을담당할예정이며,도시재생,리질리언스조경설계등에대한실천적대안을제시하고자한다. 이상훈교수는“전남대학교조경학과에합류하게돼영광이다”라며“급변하는현대사회에서조경설계의가치와역할에대해고민하고,학생이실천적창의성을가진인재로성장할수있도록노력하겠다”고포부를밝혔다.
조수다, “전국 조경인 청도에 모이다”
[환경과조경박광윤기자]조경계최대오픈카카오톡방모임인‘조경을좋아하는사람들의수다방(이하조수다)’이지난23일경북도청도에위치한대영수림원장에서조경인들을위한‘무료전지교육’을실시했다. 조수다의전지교육은조경전지및방제에대해교육을받고싶어하는조경인들을대상으로지난2022년부터매년정기적으로실시되고있다. 이날교육은오전11시부터전국각지에서몰려든70여명의조경인들이참여한가운데▲서광민아름두리조경팀장의‘전지교육’▲조봉균일송농원팀장의‘방제교육’▲유성훈유한조경개발부장의‘입찰노하우’▲대영수림원송동근방장의‘조경인의삶’에대한이야기등다양한주제로진행됐다. 교육에앞서참가자들은자기소개와조경인으로서앞으로의포부에대해서발표하는시간을가졌으며,이어전지교육을맡은서광민팀장이인사말을통해“전국을매년순회하며조경계에서활동하는많은분들과대화를나누고,특히지방권의조경학전공자,취준생,취업취약계층들과소통하기위해이번행사를준비했다”고말했다. 조수다운영진은“청도가접근이쉬운곳이아닌데비행기까지타고온조경취준생,인천에서관리를배우기위해내려오신실무자등전국먼곳에서다양한조경인들이찾아와주셨다”며,이번교육에대해“실무에서는배울수없는내용들이많았고,훌륭한선배들을한자리에서만나볼수있는멋진자리”라고말해줘서보람있었다는뜻을전했다. 또한성공적인행사가되도록찬조해준회원들게도감사의말을빼놓지않았다.송동근방장이교육장소인대영수림원장을제공하고,엄영민이룸건설대표가볼펜을선물했으며,청도한샘조경에서지역먹거리인곶감을제공했다.그외문경삼성종합건설,동산식물원김영민대표,리컴퍼니이철용대표,계림조경자재,천병훈대표,대림원예종묘문현수전무등많은회원들이식사및운영경비에도움을주었다.더불어사전답사를통해70대주차에문제가없도록진행해준유한조경개발과이룸건설에도감사의말을전했다. ‘조경을좋아하는사람들의수다방’은지난2021년5월15일개설된이래입소문으로인기가급상승한모임이다.현재는카톡방최대인원인1500명을모두채우고대기방까지운영하고있을정도로여전히인기를과시하고있다. 송동근조수다방장은앞으로좀더체계적인교육이이뤄질수있도록올해교육일정을미리공개했다. 이에따르면▲4월28일에는시흥농원에서‘수도경기지역전지교육’이▲5월26일에는나린조경에서‘조경사업준비및취업생을위한충청권교육’이▲7월5~7일2박일정으로문경캠핑장모임▲9월28일대규모서울정모▲11월2일일송농원에서호남정모▲12월7일연탄봉사등이진행된다. 송동근방장은“조수다의힘을모아젊은조경인들이사회로나와서겪는현실적인어려움을해결하고조경실무에잘적응할수있도록도움을줄것”이라며“교육행사를준비하는데운영진이힘든점이많았는데,이번에교육시행일을미리공지했으니원활한행사가되도록많은협조를부탁드린다”고말했다. 한편‘조경을좋하는사람들의수다방’에참여하고싶은사람은카카오톡오픈톡방에서‘조경’검색어를통해찾을수있으며,회원수초과로가입이힘든경우가입대기하면추후참여코드를보내주고있다.
‘정원’과 ‘공원’을 나누는 사회적 기준 ‘부재’…역할과 가치 ‘오염’
[환경과조경박광윤기자]언론사마저‘정원’과‘공원’에대해애매한정의를사용하면서,이에대한잘못된개념이사회적으로확산될수있다는우려가제기됐다. 울산지역일간지인경상일보가“태화강국가정원은공원이아닙니다”라는고발성영상뉴스를제작하면서‘정원’과‘공원’의차이에대해너무주관적으로정의했다는지적이다. 이언론사는지난18일태화강국가정원에맨발길이나석재벤치등과도한시설물을도입해자연성이훼손되고있는점을안타까워하는내용의고발성영상뉴스를제작해보도했다. 내용의취지는공감하더라도,이러한주장에대한논거로공원과정원을나누는기준이제시됐는데전문분야로서공감하기힘든내용이라는것이다. 영상에서는공원과정원을다음과같이정의하고있다.“정원과공원은개념부터다르다.그중에구성요소로보면정원은식물과꽃,나무등의자연요소와조각품,분수등의예술요소가조화롭게어우러져조성된다고하는반면공원은산책로,운동시설,휴게시설등의시설물과함께자연요소가어우러져조성된다고나와있다” 그러면서태화강국가정원은공원이아니므로과도한시설물을도입하지말라고주장하고있어서자칫시설물도입여부가공원과정원을나누는기준으로해석될여지가크다.공원과정원을가르는공인된기준을통해주장을이어가는신중함이아쉽다는지적이다. 공원과정원을가르는공인된기준 하지만사실공원과정원을가르는명확한기준이없다.우리나라에서공원과정원을학문적으로깊이다루어왔던것은조경학이유일한데,조경학에서전통적으로정의해오던공원과정원에대한구별은산림청이추진한‘정원법’이통과되면서혼란을거듭하고있다. 과거에공원이라고부르던것들이공공정원으로불려지기시작했고,‘공공정원’과‘공원’의차이에대한기준을폭넓게공유하지못한상황이어서“태화강국가정원이공원이아니다”라고단언하는것은논란이있을수있다. 다만법적인정의로보면,“태화강국가정원은공원이아니다”라는말이맞다.공원은법적으로도시계획시설이지만,태화강국가정원은도시계획상공원에해당되지않는다.그렇다고영상뉴스에서제시한공원과정원에대한정의가법적인정의도아니라는점에서문제점은여전히남는다. 울산시담당주문관은“태화강국가정원은도시계획상공원이아닌하천으로지정돼있다”면서도“시설물들을도입하는것은법적인문제는없다”고말했다. 이에대해남수환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정원진흥실실장은“공원과정원의가장큰차이는어떤시설물이나식물에있는게아닌,조성이나관리에참여하는등의행위가중요하다고생각하는데,시설위주로설명을해놓았다”며“완벽하게설명이되지는않더라도법적인개념을갖고설명했으면좋았을걸하는아쉬움이있다”고말했다. 실제법적인개념을비교해보면▲“도시공원이란도시지역에서도시자연경관을보호하고시민의건강․휴양및정서생활을향상시키는데에이바지하기위하여설치또는지정된것”으로정의하고세부항목을정하고있으며▲“정원이란식물,토석,시설물(조형물을포함한다)등을전시·배치하거나재배·가꾸기등을통하여지속적인관리가이루어지는공간(시설과그토지를포함한다)을말한다”고정의하고있다. 태화강,“정원이냐?공원이냐?하천이냐?” 오순환환경조경발전재단본부장은태화강국가정원의성격이다양한측면에서해석될수있다고말하며,우선법적으로는“하천일뿐”이라는점을강조했다.“공원같은경우에는도시계획시설로돼있지만정원은도시계획시설이아니다.이것이산림청에서지정하는국가정원의문제이다.태화강국가정원은하천이지만땅의속성과는상관없이규모가넓게조성되면서도시공원과같은역할을하고있다.그렇다고해서하천에공원까지중복시설로지정된사례는아직없다”며원칙적으로“하천일부를이용하는이수공간일뿐”이라는것이다. 또한오본부장은조경학의전통적인정의를빌어“본래정원은사유의개념이들어간것이고울타리로위요된곳에조성된것을말해왔다”며요즘“공공정원은공원에해당된다”며,법적인정의를벗어나면“태화강국가정원은공원이기도하다”고말했다. 이번사건은조경의정체성을가장잘표현하는단어인‘공원’과‘정원’에대한조경전문가들의최근고민이너무안일하지않은지되돌아보는계기가되었으면한다는제보였다. 아울러“공원”을단순히시설물과식재의형태로정의하는경우,그사회적가치와역할이오염된다는점에서정원법통과이후이어져오는공원과정원에대한혼란스러운정의에대해사회적으로명쾌하게답하고합의해나갈책임이조경학계에던져졌다는지적이다.
[2024 아파트 조경 ③-포스코이앤씨] 심안용·이인효 “백년명원, 백 년을 내다 보는 조경”
[환경과조경박광윤기자]“자연스럽게만든다고해서진짜자연이될순없지않은가.다만바이오필릭을향한사람의마음을계속적으로불러내서자연에가깝게만들어가고자노력하는것이다” 포스코이앤씨의아파트브랜드더샵에대해사람들에게설문조사를해보면첫번째로꼽는것이‘아파트가튼튼하다’는것이다.그래서인지포스코조경의전략도“백년명원”이다.백년을가는튼튼한조경을말하는것일까. ‘백년명원’에대해백년을내다보고만든조경매뉴얼이라고자평하는포스코이앤씨의심안용,이인효부장은,아파트조경이트렌드에급급하지않고긴호흡을가진전략을가져야한다며“백년명원”은단순히‘튼튼한조경’을말하는것은아니라며인터뷰를시작했다. ‘조경’에서‘정원’으로아파트조경은2000년대초반까지도지상주차장을단순히차폐하는역할을했다.이후신도시를중심으로주차장이지하화하면서각건설사마다‘지상부를어떻게할것인가’가큰화두로떠올랐다. 2010년대초중반에는잔디밭같은넓은녹지를두고큰소나무들을심거나관목을빽빽하게심는것이유행했다.하지만5~6년정도살아보니단지가전체적으로어두워지고유지관리비만많이들어가서아파트단지에큰나무들을심는것이좋지않는다는것을알게됐다. 이후에는지피·초화를활용해아기자기한조경에관심을가지기시작하면서,억새갈대등글라스류를심은지피가든이뜨기시작했다.거기에는지자체중심의정원박람회열풍이한몫했다. “황지해작가가영국첼시플라워쇼에서1등하고지자체마다정원박람회가유행하면서아파트에도정원을조성하는것이큰트렌드가됐다.” 회사마다다르지만보통3년에서5년을주기로트렌드조사를통해조경매뉴얼을만들고있다.새로운매뉴얼이만들어지는것을계기로트렌드가조금씩바뀌는경향을보여왔는데,요즘은해마다달라지는느낌을받는단다.그만큼경쟁이치열해지는것일까. ‘MZ세대’,트렌드를이끌다 최근아파트트렌드가급변하는이유중하나는인구구조변화에있다.집을구매하는소비자층대부분을MZ세대가차지하고있는데,MZ세대들은혼자사는경우도많고,결혼을해도아기를낳지않는경우도많으며,반려동물을키우는등생활트렌드도많이다르다보니공동주택트렌드도달라지고있다.특히1인세대에대한고민이커지고있다. “예전에는결혼해서아이를낳으면집을20평대에서30평대로옮겨가는식의루틴화된것이있었지만요즘은이런공식이깨지고있다.요즘은40~50평대아파트가거의없다.이런추세는2010년대부터나타났는데,최근에는단독거주형의아파트도많이생기고있다.” 하지만MZ세대,독립세대,고령화라는사회적변화속에서포스코만이가진조경콘셉트가무엇인가를생각해보니특별한게없었단다.변화된트렌드에맞는새로운조경전략이필요한시점이었던것이다.하지만모순적이게도최근건설사들이내놓는조경전략변화들이큰의미가없다는데에점점더많은건설사조경인들이공감하고있다. “‘이런시설물이제일이고이런식재방식이유행이야’하면서그동안트렌드를쫓아왔는데지나고보니크게의미가없더라.포스코조경브랜드인‘백년명원’은어떤추세나유행을쫓지않고더먼미래를위해어떤조경을해야하는지를담기위해서론칭됐다.” ‘백년명원’과‘바이오필릭’ 많은건설사들이‘명품조경’을강조했을때,포스코는‘조경’이아닌‘정원’이라는개념을쓰기로했다.정원에서의명품이라고하면명원이아닌가.그래서백년천년된오래된정원들이즐비한유럽,일본,중국을가서사례조사를했다.해외유명정원을찾아보고‘어떤요소와매력들이사람들의관심을끄는것인가’를샘플링을하고시뮬레이션을하여매뉴얼화시키는작업이진행됐다. “지금까지도수백만명의사람들이찾아보는이유를알고싶었다.세계적인명원들을직접찾아가조사를해서사람들이무엇을좋아하는지정리했고,이과정에서트렌드를쫓을필요가없다는확신을했다” ‘백년명원’을구체적으로실현시키는것은바이오필릭디자인(BiophilicDesign)이다.바이오필릭은생명(bio)을사랑(philia)한다는뜻의‘바이오필라’에서확장된말로,인간은본능적으로자연을사랑하게돼있다는의미이다. “본능적이라는것은새소리를들으면좋고,물이흐르는소리를들으면편안해지고,녹색을보면행복감을느끼는데,그이유가다른어딘가에서온것이아니라우리안에내재돼있다는의미이다.” 사실바이오필릭디자인은이미20~30년전미국에서생체모방을의미하는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디자인이나바이오모픽(biomorphic)디자인으로존재한개념이다.수영선수들의수영복을상어의피부처럼만들어물의저항을없앤다든지각종자연이나생물의형태를모방해서만들면형태뿐만아니라기능적으로도적합하게작동할것이라는믿음이다. 지속가능한식재,심플한시설물‘백년명원’이추구하는식재는‘자연과정원본연의모습에집중하는식재’로요약할수있다.기후와토양에맞는식물을적용해지속가능한생육환경을만드는것이다.자연에서자라고있는형태그대로를가지고와서심으면세월이지나면서더자연스럽게성장해갈것이라는생각이고,그것이야말로‘생태적’이라는판단이다.기존에크고조형적가치가높은수목을식재하던것과대비된다. 그래서인지포스코센터에최근심어놓은교목에는다간형이많다.정형적인수목에대한기준을과감하게버리고산나무같은자연적인모습들이오히려호평을받고있다. “자연적인식재가사실은매우어렵다.보통제주도면제주도,강원도면강원도등지역적으로만정립되어있고,실제우리가사는공동주택의환경은너무다양하다.” 아파트와같은인공지반에지속가능성을만든다는것은애초에쉽지않은일이다.포스코는현재많은전문가들가함께다양한실험과실패를거듭하고있다.이를통해‘생태’라는큰지향을내재화시킨고유기술을만들어가고있다. ‘백년명원’이추구하는시설물디자인은단기적으로는단순함과간결함을추구하는것이고,장기적으로는자연형모습을구현하기위해외관과기능,소재에서자연유기체의오가닉바이오미미크리디자인(Organic&BiomimicryDesign)을추구하는것’이다.이를통해단순하지만오래지나도고급스러워보이는시설물을찾아가고있다. 이러한시설물콘셉트를실현하는데에최근주목받고있는것이3D프린팅기술이다.직사각형태의거푸집으로형태를만드는데는디자인적인한계가있고,그렇다고금형을떠서만드는것은비용적으로힘든일이다보니자연의형태를선호하는조경시설물분야에서활용도가더욱높아질것으로보인다. “대형시설물을만들만한3D프린터가보급되지않아서아직은소형구조물제작만가능하다.지금은작은스툴나테이블등에한정해서재활용플라스틱등을활용해서제작하고있다.” 재활용소재를활용한업사이클링․리사이클링은아파트조경에서는최신트렌드이다.폐플라스틱,폐섬유,폐콘크리트를활용한제품들은바닥포장,구조물,시설물등다양한활용이가능하다. “예전같으면‘폐’라는접두사가붙으면입주자들의불만이있을것같아많이걱정을했는데요즘MZ세대들은업사이클링한시설물에대해서거부감이없다.실제적용된현장의입주자들을대상으로설문조사한결과긍정적이었으며,디자인을더발전시키면오히려더좋아할것이라는확신이들었다.” 백년명원,10%의실험 “백년명원”은가까운트렌드가아니라먼미래를내다보고만든조경전략이라니실험적일수밖에없다.나아가선도적인라는느낌도든다.시공을어떻게구현할것인가도궁금하지만입주자들을어떻게설득할것인가가더궁금해지는부분이다.아직도많은입주자들은키큰소나무를원하지않을까.이에대해‘10%의실험’이라는답변을내놓았다. “선도한다는것만큼무섭고정말건방진말이없는것같다.우리가실험적으로할수있는것은많아봤자10%정도이다.” 조경도하나의문화가됐다.국민수준에따라서정치가가고문화가가듯이,조경도입주자라는소비자들에맞춰가야한다.너무빨리가서도안되고너무느리게가서도안되고적절하게템포를가져야한다.약반발자국정도만앞서도성공적이라는생각이다. 다만20대부터40대초반까지의입주자들은어릴때부터교육을많이받아서지구환경에대한관심이윗세대와는남다른면이있다.이들세대는“소나무안심으면조경이아니야”라고말하는세대가아니다.오히려낯설고새로운것이라도좋다고판단되면더열광하는열린세대이다. “조경은사람들의내면욕구를반영하고다시조경이사람들의마음에어떤심상을불러일으킨다.공간과사람이상호선순환하는원리이다.그래서우리는사람들의마음을요구하는것이다.바이오필릭을향한마음을계속적으로불러내서진짜환경을생각하고진짜자연에맞게만들어가자는것이본질이고,이것이포스코조경이가야할방향이라고생각한다.” 변화의세대들을맞아본능적으로좋은조경에대한열망을한껏불어넣을수있는다양한실험들이이어지길기대해본다. <인터뷰> 언제까지흉내내기만할것인가! 최신아파트조경트렌드에있어서포스코조경이관심을가지고있는이슈는무엇인가? 요즘은정원과조경이라는용어를혼용하면서각각정의하기가어려운부분이있다.개인적으로정원은휴먼스케일로지근에서의디테일한경관을만들어내는것으로기술과감각이필요하고,조경은그보다는좀큰스케일로구분하고,그러한구분을서로인정을해주는것같다.플랜테리어산업이커지고있는것도주목하는변화이다.우리가볼때는정원도비전공인자에게열린분야라고생각하는데,플렌테리어는식물전공과전혀상관없는사람들에게도열린영역으로자리잡아가고있다.하지만이모든것이조경의영역이라는점에서업역이넓어지고다양화되고있고,한편으로경계가모호해지기도한다. 조경분야가이런변화를보듬어안을수있어야한다고생각한다.원하든원하지않든시대의변화에따라필요한분야들은새로생기고있고,그런트렌드가고스란히공동주택에도반영되고있다. 최근에는아파트지하주차장이나웰컴존에플랜테리어를적용해달라는요구도있다.그런데그곳에서식물을키우려면빛이나온습도등을제어하는유지관리기법이라든지토양,관수,배수등의문제를해결할줄알아야하는데,그것은플랜테리어의한계를벗어나는일이다.이것이조경이해야될역할이다. 포스코조경이추구하는바이오필릭디자인은실내플랜테리어의기법도적극적으로차용해수용한다.업역이더넓어지고그만큼역량도확장되어야하는데낯설다고배척만할것이아니다.플랜테리어의어떤점이사람들에게매력적으로어필되었으며어떤부분이부족한가를고민하고,관련된모든분야의기술을수용해서실제적용이가능한현장의시공기술로발전시킬필요가있다. 건설사조경인들에게하고싶은이야기는? 사회와기술의변화에따라사람들의요구사항이달라지고있다.하지만조경은새로운것에대해좀배타적이고거부감도많다.기득권적인경향이없지않아있다.좀더넓게수용하며좀더깨어있는생각을가져야오래갈수있다고생각한다. 지난해건설사조경협의회에서여러건설사들이조경정보를공유하는세미나를했는데,예전에는서로공유하는것을다소꺼려했었다.하지만이러한시대적변화와속도도빨라지고젋은직원들의깨어있는생각과다양한의견들이반영되면서예전처럼한번전략을세워서몇년씩우려먹던시대는끝났다.꼭꼭숨기고내것만좋은거야라고고집피우다가는도태되기딱좋은시대가된것이다.정보는교류와오픈을통해보다나은발전된지식자산이된다.그야말로집단지성과풍부한데이터를확보하면저절로좋은결과가도출되는AI시대인것이다.좋은것은공유해서발전시키고안좋은것은빨리배제시켜서같이상생해나가길기대한다. “지금까지흉내내는것은많이해왔지않은가.트렌드를쫓아서급급하게흉내만내는조경이너무지겹고,그과정에서버려지는자원이너무많아서죄스럽다.세상은수준이높아졌는데더이상흉내내기만할것이아니라그안에본질적인걸좀더찾자”
[미래포럼] 잘 짜여진 각본, 선형공원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미래포럼연재 조경인이그리는미래 경의선공원,경춘선공원,서울로7017...나아가프롬나드플랑테(파리),하이라인(뉴욕),벨트라인(애틀란타)...그렇다.모두도심한복판을가로지르는선호도높은긴선형공원들이다.제주도의올레길이나북한산의둘레길과같이트레일을위한길이아니라,도심한복판을관통하는‘~선(라인)’으로명명되는공원들이다.‘길’과달리‘선’이라는명칭에서오는차이는어떠한가?전자는자연적으로만들어진그리고자연속에위치한순환형동선을갖춘산책로의느낌이다.반면후자는인공적으로만들어진그리고도심속에있는일자형동선을지닌공원이다.도심에자리하고있는면적인공원과는어떠한차이가있을까?얼마전까지만해도선형공원은단순한산책로정도의‘길’적인의미였으나,최근에는면적공원을조성할여유가없는좁은도심공간속에서새롭게등장한대안적형태의공원이되고있다.그린네트워크라는현판아래면적공원을연결하는보조적의미로서의선형공원이아니라,이제는대등한대안이된것이다. 면이주는장점은다양하다.선적으로나타나는이용자들의동선을무한대로조합할수있다.그래서각동선의조합에따른다양한공간활동이가능하다.가벼운혼자만의산책부터축구와같은격렬한단체운동까지,넓은잔디밭에서는시민들의모든여가행태를수용할수있다.다만,갈림길은선택에부담이있는낯선이에게는고민의시작이다.이곳을잘알고자주찾는주민이라면매일의공간체험으로무의식적인공간선택이가능하겠지만,낯선이에게는객관식시험지의보기들과같다.그래서선택(체험)하면항상아쉬움이남는중간고사같은곳이면적공원이다. 선은면과는다른측면에서매력이있다.한국계미국배우스티븐연이주연을맡아,미국에미상에서작품상과남녀주연상을포함해무려8관왕을차지한‘성난사람들(원제BEEF)’이란드라마가있다.매순간잘못된선택으로점철된인생속에서많은스트레스를받는현대인의모습을블랙코미디로실감나게그려냈다.현대인들은무의식적으로매순간선택을강요받고머리가복잡해진다.스트레스로좀쉬고싶고,아무생각없이멍하게걷고싶은마음이들수밖에없다.이런순간이찾아온다면가까운주변의선형공원을찾아서걸어보라고귀띔해주고싶다.코로나를계기로일방향의선형공원은중요한공원의형태로등장했다.강요된선택없이,머리를비운채,아무런간섭없이,짜여진각본대로방향과속도를제어해주는곳이선형공원이다.발을내딛는순간부터공원에대한매뉴얼은단순하다.정해진길을따라걷기만하면된다.잘만들어진영화를보면서머리를비우고심신을단순하게정화하는순간이다.다른점은앉는게아니라걷는다는것이다. 선형공원은이곳을처음찾는관광객들에게는아주유용한형태의공원이다.다음목적지를향해한방향으로계속나아가야하는관광객들에게일방통행의선형공원은오히려유용한관광코스가될수있다.서울을보행친화적인21세기형관광도시로만들고싶다면,선형공원을도심속핵심인프라로조성해보길제안한다.서울이가진잠재적랜드마크를찾아서,각점을연결한선형공원을조성한다면훌륭한관광자원이될수있다.시점에어떠한시설을놓고,종점에어떠한시설이있느냐에따라선형공원의효용과가치그리고이용률에차이가난다.잘짜여진각본으로대박흥행을기록할수도있다. 뉴욕의하이라인은뉴요커들뿐만아니라전세계인이사랑하는전형적인선형공원이다.같은선상을왕복해야만하는선형공원은지루하게마련이다.그래서선형상의진행방향과역방향보행시보이는경관에변화를주어야하는데이를잘해결한선형공원이하이라인이다.풍성한나무와초화들을의도적으로활용해시야를적절히닫아주면서선형을되돌아올때는새로운경관이전개되도록조성했다.만약개방감을위해시야를열어주었다면,오히려지겹고단조로운공원이되었을것이다.더불어토머스헤더윅의베슬이라는명확한시점(혹은종점)과리틀아일랜드라는명확한종점(혹은시점)이있어더욱걷고싶은장소가되었다.센트럴파크가보고싶은공원이라면하이라인이걷고싶은공원인이유이다. 비슷하지만다른사례로애틀란타의벨트라인이있다.둘을비교해보면확실히이용객의차이가있다.하이라인은관광객들이많이찾는공원인데반해,벨트라인은관광객보다는지역주민들의이용빈도가높다.조성당시부터바이커들을고려하여개방감있게공간을조성하였다.산책보다는이동통로의역할에좀더주안점을두고조성하여,바닥포장재역시목재나블록보다는콘크리트나아스팔트와같은재료를주로사용하였다. 다소극명하게대비되는두공원의목적에서선형공원의형태를그려보고결과를가늠해볼수있다.복잡한도심에서면적공원도중요하지만,잘짜여진각본처럼의도된선형공원을목적에맞게잘살릴수있다면,걷고싶고보고싶은도시를만들기위한촉매역할을할뿐아니라관광객유치에도성공할수있을것이다.이제선형공원이더이상조연이아닌당당한주인공으로등장할때가왔다. 변재상/신구대학교환경조경과교수
골프코스 설계, 창작성 없다?!…골프장 설계 저작권 소송 패소 ‘논란’
[환경과조경박광윤기자]골프코스설계업체들이스크린골프업체를상대로제기한골프코스설계저작권소송에서“골프코스설계는창작성이없다”며저작권보호대상이아니라고판결해논란이다. 지난달1일서울고법민사5부는골프코스설계업체인오렌지엔지니어링등이스크린골프사업자인골프존을상대로제기한소송에서원고일부승소로판결한1심을파기하고패소판결했다. 골프장소유주vs골프존 이번사건은2000년대말경골프존이라는업체에서스크린골프사업을시작하면서국내골프장을그대로재현한시뮬레이션영상을제작해사용하면서저작권비용을지불하지않은데서시작된다. 당시골프존은몇몇골프장으로부터사용동의를받고위성사진,준공도면을받아사업을추진했으며,이후사업이성장하면서골프장들로부터소송이제기됐다. 골프장소유주들은골프장의자료를이용해스크린골프를만들어서상당한이익을취하니일종의이용료를달라고주장했고,2020년3월대법원에서일부승소판결이나와애초동의서를써준골프장들을제외한나머지골프장들에게이용료를지불하도록했다. 하지만당시소송에서골프장소유주들은“골프장이골프코스설계저작권을갖고있다”고주장을했지만,법원에서는“골프코스는골프장이아닌설계자의저작물에해당한다”는점을분명히했다. 골프코스설계업체vs골프존 대법원의판결이후골프코스설계업체들이골프존을상대로저작권소송을제기했으며,오렌지엔지니어링등이제기한소송에서도1심에서“골프존이손해배상을하라”는판결이내려졌다. 하지만지난달1일열린2심에서는기존1심판결을뒤집고원고패소판정이내려졌다. 이번소송을제기한오렌지엔지니어링등골프코스설계업체는법원에서“골프코스구성요소들의구체적인배치,모양,길이,방향및각도,위치,크기등을그대로사용해저작권을침해했다”며“영상을삭제하라”고주장했다. 이에대해스크린골프업체인골프존은“골프코스설계도면에는창조적개성이드러나지않으므로저작물이라할수없다”,“설계도면과스크린골프영상사이에유사성도없다”고주장했다.시공과정에서설계변경이이뤄지기도하고유지관리를통해실제골프장모습이변화된다는것이다. 하지만법원은골프장은티잉그라운드,페어웨이,러프,벙커,워터해저드,그린등의형태,개별홀들의배치,조합에관한인간의사상이표현되어있는‘건축저작물’에해당한다는점을인정했으며,설계업체들이제시한설계도면과골프장의실제모습을비교해본결과거의동일하다는점에서스크린골프영상이설계도면을‘복제’했다는결론을내렸다.골프코스설계업체들이주장한설계저작권을인정한것이다. 하지만법원은설계업체들이제기한각각의골프코스설계에대해창작성을인정할만한요소가없다며저작물로서인정할수없다는결론을냈다.“골프코스가저작권대상이긴하지만창작성이없으니베껴써도된다”는것이다. 창작성의기준,“재미위한것은창작적요소아니다?!” 법원은저작물에대해독창적이지는않더라도창작적이어야한다며,“남의것을모방하지않을것”,“사상과감정에대한창작자자신의독자적인표현을담고있을것”이라는두가지조건을제시했다. 특히골프코스설계는예술이아닌‘기능적저작물’로서,사상을보호하는것이아니라‘창작성있는표현을보호’하는것이므로,설계에창조적개성이드러나있는지를판단했다고밝히고있다. 쟁점은크게두가지였다.하나는“골프코스구성요소들의형태배치조합에있어서창작적인표현이있는가”이고다른하나는“자연물의조작은창작적인가”이다. 결과적으로법원은창조적개성을찾지못했다고판결했다. 법원판결에의하면,“골프코스는경기장”이다.골프코스요소들은골프경기규칙에적합한규격과방식으로설계될수밖에없고,이들의홀배치순서등은골프경기에서난이도,재미,전략등의기능적목적을달성하기위한경기장조성원칙에해당하므로창작성이인정되지않는다는것이다.이에대한근거로미국골프협회(USGA)와전남도청에서발간한골프장사업길잡이에는골프코스설계에대한기준을제시하고있으며,‘난이도,재미,전략’을추구하라는설계지침이포함되어있다는점을들었다. 또한국내골프장은대부분산악지형에조성되고있어서지형적제약을많이받고있으며,클럽하우스등의시설물배치등도이용객들의안전및효율성에따라배치되므로단순히기능적요소로보아야한다고판단했다. 또한‘자연적요소’에대해서는골프장이위치한부지의경관이거나조망대상이어서골프장자체의미적요소에해당한다고보기어려우며,지형,경관,조경요소,설치물등을결합해조성한골프장이라고하더라도자연물의조경관리가저작권법상미적형상으로서의창작적표현으로보기어렵다고판단했다. 실상창작성이없는산악지형이나자연물과경기요소를제거하고나면창작적인것이무엇이남느냐고묻고있는것이다. 골프장이축구장인가?! 이번판결에대해한국골프설계가협회는“수년간,수많은재판을통해인정받았던골프코스의창작성과저작물성을하루아침에모두부정당했다”며반발했다. 협회는이번판결에대해“골프코스는적합한규격이나국제기준이정해져있지않다”“우리나라산악지형처럼지형의변화가많은공간에서골프코스를배치하는것은오히려고도의설계적상상력과창의성이필요하다”,“골프코스는단순히평면적인홀을기능적으로나열하는것이아니다”라며조목조목판결에대해지적했다. 실제골프경기에서난이도,재미,전략등의기능적목적을달성하기위한골크코스요소들을창작적요소에서배제하겠다는결론이얼마나설득력을가질수있을지논란이일고있다. 또한판결에서는독창성과는다른개념으로창작성을이야기하고있는데,골프장의조경공간을자연물에대한관리일뿐이라는이유를들어일괄적으로창작적요소에도해당되지않는다며배제해버리는것은,조경에서‘주변자연과의조화’가매우중요한창작성의한부분이라는점에서배치된다는지적이다. 이현강오렌지엔지니어링대표는“골프장설계는조경설계의광역적인한분야라고생각을하고있다”며조경과별개의사건이아니라고강조했다.또한“우리나라가세계적으로케이컬처의우수성을말하며문화의중요성을강조면서도정작한전문분야의창작성에대해서는반하는결론이난것같다”고깊은유감을표현했다.
“정원, 삶·문화가 되다”… 서울시, ‘매력·동행가든’ 1007곳 조성
[환경과조경신유정기자]서울시가‘정원’이곧삶이자문화가되는도시로거듭나기위해매력가든·동행가든1000여곳을조성한다. 시는이런내용이담긴‘매력가든·동행가든프로젝트’를추진한다고7일발표했다. 시는일상에녹아드는매력가든897곳,사회적약자를위한동행가든110곳등1007개소다.올해부터매년300여곳을조성하고,2026년까지1007곳으로늘린다는계획이다. 지난해내놓은‘정원도시서울’의기본구상에이어오늘발표한‘매력가든·동행가든프로젝트’에서는정원이일상에스며들고시민이체감할수있는정원도시의구체적인모습을담고있다. ‘정원도시서울’이공간구성의관점에서녹색정책·양적확대방향을제시했다면이번발표는시민이일상생활,출퇴근길,나들이에서체감할수있는정원의‘매력’과‘설렘’통해행복감을높이고라이프스타일의혁신을이루기위한구체적정원조성계획이담겨있다. 시는지난해5월오세훈서울시장의‘정원도시서울’선언으로그시작을알렸으며,울산,순천과환경이크게다른서울은그특성에맞춰산,공원,가로등서울곳곳을수준높은정원으로바꿔갈채비를마쳤다. 이를위해조경전문가기획을바탕으로예술적정원조성에새로이적용할매력가든가이드라인을제시하고,각자치구에서도동일적용하여차별화된식재와수준높은예술정원을서울곳곳에조성할계획이다. 먼저매력가든은주거지인근소규모공원167곳에일상매력정원을조성한다.도로·광장·교통섬등유휴부지를활용한자치구매력정원도종로구~종로타워앞광장,도봉구~창동역고가하부,마포구~홍대레드로드,영등포구~문래동공공공지등25곳에구축한다. 아울러도심내유휴부지를활용해꽃을특화시킨거점형꽃정원4곳,걷거나쉴수있는가로변공유정원10곳,자투리공간을활용한마을정원29곳등을선보일예정이다. 출퇴근길힐링이되는도심매력정원을대로변,건물옥상,고가도로등279곳에조성한다.시설녹지내활용도가낮은공간65곳을사계절꽃길정원으로탈바꿈하고,가로변150곳을가로정원으로바꾼다.옥상정원도33곳을만든다. 올해중으로서울을대표하는거점공원9곳에테마가든을조성한다.재미를선사하는해치가든은어린이대공원·뚝섬한강공원·북서울꿈의숲에,예술작품을전시하는조각가든은열린송현광장·뚝섬한강공원·북서울꿈의숲에서만날수있다.강아지와뛰어놀수있는펫가든은노을캠핑장·난지한강공원등3곳에조성한다. 유아·어르신·장애인등사회적약자를위한동행가든도선보인다.올해상반기노인종합복지관과하반기시립병원을시작으로,시산하의료기관12곳과시립노인복지관91곳으로확대해나간다. 장애인학습지원센터·재활자립작업장등장애인시설에도정원을조성한다.가드닝을통해신체활동을유도하고심리적치유를제공하는프로그램을진행한다.삼청공원유아숲체험원등7곳에는어린이와함께가꾸는정원을만든다. 아울러정원도시서울의미래상을만나볼수있는서울국제정원박람회를올5월부터5개월간뚝섬한강공원에서개최한다.이후뚝섬정원의국가지방정원등록을추진할예정이다. 이수연시푸른도시여가국장은“서울곳곳을다채로운정원으로채워시민에겐일상속행복과치유를,도시를찾는방문객에게는서울만이가진매력을전달할것”이라며“서울이세계적인정원도시로발돋움할수있도록수준높은정원을서울전역에조성하고정원문화를확산해나가겠다”고말했다.
정영선 조경가의 사계절 이야기… ‘땅에 쓰는 시’ 4월 개봉
[환경과조경신유정기자]한국인최초로세계조경계에서가장높은권위를인정받고있는세계조경가협회(IFLA)‘제프리젤리코상’을수상한국내1세대정영선조경가의사계절이야기를담은‘땅에쓰는시’가오는4월정식개봉을확정하며눈길을끌고있다. ‘이타미준의바다’,‘위대한계약:파주,책,도시’등웰메이드건축다큐멘터리를배출해온정다운감독의신작‘땅에쓰는시’가오는4월메가박스,CGV,롯데시네마등에서개봉을확정했다. ‘땅에쓰는시’는1984년아시안게임기념공원과아시아선수촌아파트,예술의전당설계를시작으로현재까지도활동하고있는정영선조경가의사계절을담은작품이다. 선유도공원,여의도샛강생태공원,경춘선숲길등랜드마크라불리는공공공원부터오설록티뮤지엄,북촌설화수의집,성수디올등젊은세대를사로잡은핫플레이스까지정원을만들어온정영선조경가의땅을향한철학과내일의숲을위한진심을담은다큐멘터리다. 정영선조경가는공간과사람을연결하고변화무쌍한자연의모습을존중하는철학으로많은이들에게아름답고편안한공간경험을전해왔다. 다채로운작업을통해대통령국민포장,IFLA상,미국조경가협회상(ASLA),한국건축가협회상,김수근문화상등유수의상들을수상했다.지난해에는한국인최초로IFLA가수여하는조경계의최고영예상인‘제프리젤리코상’수상자로선정되며한국적경관의현대적완성을국제적으로증명했다. ‘땅에쓰는시’는이러한정영선조경가의매일매일이담긴사계절정원은물론,그가소망하는미래의숲등다양한이야기를담아내며,사람과자연을연결하는작업을이어오고있는치열한현역이자미래세대를위한오늘을고찰하는한어른의진심과지혜를전할예정이다. 이와관련한자세한내용은영화사진진으로문의하면된다.
  • 환경과조경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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